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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 우다청(吳大澂)의 보국헌신
우다청(吳大澂, 1835~1902)의 본명은 吳大淳이며, 자는 청경(清卿), 호는 항헌(恒軒)이고 말년에는 객재(愙斎)라고 불렸다. 그는 장쑤성 오현(蘇州) 출신이다. 1861년 동치제(同治帝)의 휘(諱) ‘재순(載淳)’을 피하기 위해 이름을 우다청(吳大澂)으로 바꾸었다. 1868년 진사에 급제한 뒤 한림원(翰林院) 편수(編修), 섬감학정(陝甘學政), 허난허베이도(河南河北道), 태부시경(太仆寺卿), 좌부도어사(左副都御史) 등의 관직을 지냈다. 섬감학정으로 재직 시절에는 조정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자희태후(慈禧太后, 서태후, 1835~1908)의 원명원(圓明園) 중건 명령에 대하여 중단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릴 정도로 성품이 강직했다.
우다청(吳大澂) 초상화(사진:Arts & LifeNews)
우다청(吳大澂)은 흑룡강성 닝안(寧安)시에 있는 청나라 만주 발원지 영고탑(寧古塔) 등의 방어를 감독하던 大臣으로 근무하면서 국경문제의 심각성을 파악했다. 당시 청나라와 러시아는 전쟁 당사국이 아니었다. 러시아는 청나라와 제2차 아편전쟁(영국, 프랑스 연합국)의 강화를 알선했다는 명목으로 청나라에 강하게 보상을 요구했다. 이에 청나라는 1858년 아이훈 조약을 체결하여 헤이룽강(黑龍江) 이북지역을 러시아 제국에 넘겨준 데 이어서 할 수 없이 1860년(함풍 10년)에〈北京條約〉을 체결해 우수리강 이동의 연해주 지역 40만㎢를 추가로 할양하였다. 이후 우다청은 1861년(함풍 11년)에 중러 국경을 확정해 만든 지도가 〈北京條約〉에 기록된 구역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880년 길림(吉林)에 파견된 그는 길림장군(吉林將軍)과 함께 방어를 강화하는 한편 황무지 개간, 이민(移民) 정책 등을 추진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1883년(광서 9년) 1월 17일, 우다청은 군기처와 길림 장군에게 경계 지정 지도를 송부했다. 아울러 길림장군이 관리를 파견해 러시아 측 관료와 함께 “옛 지도에 정해진 붉은 선을 따라 연해 지역의 경계를 명확히 하고, 러시아 측이 점령했던 훈춘 소속 지역을 전면 반환하도록 조치해야 한다.”라는 내용을 상소하여 청원하고, 황제의 허가를 받았다.
훈춘(사진:경향신문)
우다청(吳大澂)은 러시아 측과 1884년(광서 10년) 3월부터 공동으로 국경을 측량하기로 합의했지만, 이후 양측이 각자의 주장을 계속 고수하면서 결론이 지체되었다. 1885년(광서 11년) 5월, 우다청은 이홍장을 보좌하여 일본 전권대신 이토 히로부미와 조선 갑신정변의 사후 처리에 관한 협상을 진행하고, 〈청일 텐진조약〉에 서명했다. 당시 청나라와 프랑스와의 전쟁도 최종 평화 단계에 접어들자, 우다청은 다시 한번 吉林 지역의 국경 재측량과 경계비 추가 설치를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다. 이에 청나라 조정은 우다청을 훈춘에 파견해 러시아와의 국경 조율을 전담토록 하였다.
그는 1886년에 청나라 정부 대표 자격으로 파견되어 러시아 외교관과 동부지역 국경 담판을 진행하여 훈춘(琿春)의 흑정자(黑頂子) 지방을 회수하고, 두만강을 항행하는 중국 선박이 러시아 측의 저지를 받지 않게 항행권을 확보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후 우다청은 능력을 인정받아 1886년 광동순무(廣東巡撫), 1888년 하도총독(河道總督), 1892년 호남순무(湖南巡撫) 등의 요직을 거쳤다.
1894년에 청일전쟁이 발발하자, 우다청은 3만 명의 군대를 이끌고 참전하여 일본군에게 빼앗긴 요동(遼東) 해성(海城) 지역을 탈환하려고 했으나, 끝내 전투에서 패해 관직에서 물러났다. 청나라 조정은 패장의 관직을 박탈하고 “앞으로 영원히 관직에 임용하지 않는다,”라는 혁직영불서용(革職永不敍用)의 중벌 처분을 내렸다. 관직에서 물러난 우다청은 학문과 예술에 몰두하며 소장하던 서화 및 골동품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다 1902년 세상을 떠났다. 우다청은 예서(篆書)에 아주 능한 서예가로 고문자(古文字) 및 고대 상주 시대의 청동기 명문과 금석문(金石文)의 대가로 금석문에 관한 《愙齋集古錄》 등 여러 저서를 남겼다.
훈춘(琿春)시 팡촨(防川)(사진:월간조선)
중국 훈춘시(珲春市)는 지린성 연변조선족자치주의 현급시로 전체 행정구역 면적이 우리나라 춘천시의 약 4배에 달한다. 훈춘이란 지명은 여진어로 ‘변방’을 뜻하며, 만주어로는 ‘강어귀, 변두리’를 뜻하는 훈춘(ᡥᡠᠨᠴᡠᠨ / huncun)에서 유래되었다. 고대에는 이 지역에 북옥저(옥저)가 있었다. 북옥저의 다른 이름으로 미구루, 매구루, 치구루가 있는데, 삼국시대에 들어 고구려가 북옥저를 정복하고 치구루를 한자로 음차하여 책성(柵城)이라고 하였다. 책성은 고구려 지방구획 5부 중 동부의 중심지로 지방장관 동부욕살의 치소가 위치했다. 남북국시대에는 발해의 동경용원부 또는 책성부였다. 발해 멸망 이후에는 여진족들이 주로 살았다. 조선왕조 세종과 성종 시기에는 개척하였다. 조선 후기부터 조선인들이 두만강을 건너가 거주하였다.
발해의 동경용원부(사진:두산백과)
중국 동북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 훈춘(琿春)시 동쪽 끝에 있는 팡촨(防川)이라는 농촌 마을에 중국과 러시아 땅을 나누는 국경 경계 표지석인 토자패(土字牌)가 서 있다. 이 화강임 석비는 1886년 4월에 세워져 옆면에는 ‘光緖帝十二年四月立’이라고 건립시기가 한자가 적혀 있다. 비의 높이는 1.44m, 폭은 0.5m, 두께 0.22m로 국경 철책선 너머에 유리보호각에 보존되어 있다. 이 경계비는 단순한 돌을 넘어, 중화민족의 불굴의 정신과 국가 주권에 대한 확고한 수호 의지를 영원히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 중국인들은 우다청을 청나라 국경을 지켜내고 두만강 항행권을 얻어낸 중화민족 영웅(英雄)으로 높이 추앙하고 있다.
장푸유(張福有)는 중국 지린성 사회과학원 부원장과 지린성 文史館을 역임한 저명한 고구려사 및 발해사 연구 학자로 중국 동북공정과 관련된 역사 연구 및 유적 조사에 깊이 관여해 왔다.
지안시 마센향 五組村의 농민 마샤오빈(馬紹彬)이 2012년 7월 29일에 집안과 단동 간 고속도로에서 4.3km 떨어진 지점인 압록강 지류 마센하(馬線河)의 오른쪽 물가 모래톱에서 큰 돌을 발견했다. 당시 돌은 인근에 사는 주민들이 빨래판으로 사용했다. 이곳은 馬線河 구마센교(舊馬線橋)와 신마센교(新馬線橋) 사이의 중간 지점으로 석비가 발견된 지리 지형은 분지 형태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천추총(사진:동북아재단)
마센하(馬線河) 강가 주변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천추총 등 700~800여 기의 고구려 무덤이 분포되어 있다. 지린성 지안문물국은 전문 조사팀을 구성해 140여 글자를 판독하고, 2013년 1월 4일 ‘지안 고구려비(集安高句麗碑)’라고 발표했다. 장푸유는 고구려비 판독에 참여하여 비석이 “정묘년(丁卯년, 427년)에 장수왕이 세웠다.”라고 주장했다.
지안 고구려비(사진:연합뉴스)
지안 고구려비 비문 글자는 모두 218자로 세로로 10줄로 되어있자. 앞의 9줄은 22자, 마지막 줄은 20자이다. 오른쪽 윗부분이 파손되어 10여 자가 빠져 있다. 화강암 비는 강가 둔치에서 오랫동안 방치되어 글씨의 흔적이 모호한 것이 많다. 비의 길이는 173cm이며, 너비 60.6cm~66.5cm. 두께 12.5cm~21cm이고, 무게는 약 464.5kg이다. 현재 집안 박물관에 보관하고 있으며, 고구려 초기 율령과 무덤 관리 제도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1차 사료이다. 학계에서 인정하는 고구려비는 광개토대왕릉비, 충주 고구려비, 지안 고구려비 총 3개이다.
역사학자 장푸유(張福有)는 2014년 10월 20일 백두산 南坡 일대에서 화산암을 깨뜨려 만든 길이 24.6cm, 폭 9.5cm, 무게 1.3kg의 대형 주먹도끼와 흑요석기 10여 점을 발견해 화제가 되었다.
장푸유(張福有)의 칠언율시(사진:길림신문)
2019년 9월 15일, 장푸유는 우다청 대신의 업적을 높이 기리는 칠언율시 詩碑와 노정을 적은 소개비를 왕청현 동광진 오인반촌(五人班村)에 세웠다. 촌민위원회는 2024년 7월 1일 정부의 공식 승인을 거쳐 우다청 기념비를 설립하였다. 길림신문 김태국 기자가 현장을 방문하고 2024년 8월 8일 자 신문에 기사화하였다.
〈北京條約〉은 우수리강 동쪽 청나라 영토를 제정 러시아가 강제로 편입한 것으로 훈춘 관할 지역의 모든 해안 지역과 섬이 포함되었다. 그리고 조약의 내용을 명확히 하기 위해 우수리강 하구에서 두만강 하구까지의 400여 킬로미터의 육지 경계에 경계판을 설치했다. 원래 합의된 경계비는 두만강 하구에서 20리(약 10km) 떨어진 곳에 세워야 했지만, 러시아 측이 두만강 하구에서 44리(약 20km) 떨어진 곳에 세웠다. 러시아는 2차 아편전쟁(1856~1860년) 이후 맺어진 중·러 베이징(北京)조약(1860.10.18)에 근거해 1886년 극동지역 국경 협상을 요구했다. 러시아제국의 의도는 동해와 맞닿아 있던 중국의 지린성과 헤이룽장(黑龍江)성 동부지역을 모두 차지하겠다는 의도였다.
1886년(光緒 12년) 4월 5일, 우다청(吳大澂)은 훈춘에 도착했다. 5월 25일, 러시아 연해주 주지사 겸 주둔군 사령관 바라노프와의 회담을 시작했다. 양측은 마주 앉아 국경을 반복해서 논의했다. 우다청은 조사한 자료를 통해 강하게 주장을 관철하려고 노력했다. 29일, 양측은 훈춘 동부 국경을 재측량하고 협의하여 ‘토’자 비를 사초봉(沙草峰) 약 9km 앞쪽으로 옮겨, 산 남쪽 강가의 고지 아래에 세우기로 했다. 이 지점은 두만강의 하천을 따라 계산한 출구까지의 거리가 약 15km, 육로 직선거리가 약 13.5km였다. 1886년 6월 20일, 우다청은 러시아 측 관리를 두만강 가에 초대해 경계비를 세울 위치를 측량하고 확인했다. 수행원은 경계비를 세울 장소에 깊이 2척(약 60cm)의 구멍을 파고, 주변을 파쇄석으로 메워 다진 뒤, 중앙에 돌 받침대를 쌓고 직사각형 구멍을 뚫어 두고 다음 날, 공동으로 감독하여 ‘土’자 비를 세웠다.
국경 土字牌(토자패)
중국은 1886년 중러훈춘동계조약을 통해 팡천촌 주민들이 두만강을 따라 바다로 나갈 수 있는 권리를 얻어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고, 염전을 가꾸고, 상업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우다청은 長嶺子(창링즈)에 있는 중러 국경 지점에 「疆域有表国有維、此柱可立不可移」라는 명문을 새긴 동주(銅柱)를 추가로 세웠다. 명문을 번역하면 “강역에는 경계가 있고 나라에는 기강이 있다. 이 기둥은 세울 수는 있으나 옮길 수는 없다.”
1992년 중국과 러시아는 동해 출어권을 두고 재협상을 벌여 두만강을 통해 바다로 나갈 수 있는 권리를 회복했지만, 현재 두만강 하류에 있는 북러 두만강 철로의 높이가 7m로 매우 낮고 두만강 바닥의 침전물이 쌓여 있어 300톤 이하의 작은 배만 겨우 통과할 수 있다. 동방제일촌(東方第一村)이라고 불리는 팡촨(防川) 지역은 닭이 울면 3국에서 들을 수 있다고 해 옛날부터 ‘鷄鳴聞三國’이라 하였다. 土字牌(토자패) 표지석이 있는 훈춘시 팡촨(防川)은 러시아, 중국, 북한 3국이 두만강과 동해를 바라보며 국경을 가르는 곳으로 경관이 매우 뛰어나 4A급 풍경구로 지정되었다. 중국 국무원은 2019년 10월 7일에 국경 土字牌(토자패)를 제8차 국가중점 문물보호단위로 공식 발표하였다.
신압록강대교(사진:한겨레)
2009년 10월, 중국 원자바오 총리가 방북했다. 정상회담을 통해 북·중 경제협력의 오랜 염원이었던 신압록강대교 건설이 마침내 성사되었다. 당시 다렌의 창리(創立) 그룹은 나진항 1호 부두의 10년간 임차권을 따내는 등 양국 교류가 최고조에 달했다. 신압록강대교는 랴오닝성 단둥시 랑터우와 평북 신의주시를 연결하는 왕복 4차로, 길이 3,030m로 중국 측이 사업비를 모두 부담해 2010년 12월 31일 건설을 시작해 2014년에 10월에 웅장한 사장교로 완공되었지만, 이후 북한의 재정난과 건설자원 부족, 코로나 19 사태와 맞물려 도로 및 세관 통과 시설이 제때 마련되지 못해 개통이 지연되었다.
2026년 3월 평양 베이징 간 철도 재개(사진;연합뉴스)
중국은 평양과 신의주 사이의 거리 230km 중 평양과 안주 사이 70km는 포장이 되어 있고 4차로 고속도로이지만, 나머지 구간은 비포장 상태이며 노면 상태가 매우 열악해 이 도로가 모두 포장되면 하루 차량 2만 대, 인원 5만 명이 새로 만든 다리를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 평양 베이징 간 철도 통행은 코로나 방역을 위해 2020년 1월에 중단되었다가 2026년 3월에 이르러 6년 만에 재개되어 장차 신압록강대교 개통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나진항(사진:연합뉴스)
중국 정부는 북한 나진항과 청진항 부두 사용권 확보를 추진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 연결 사업으로 옌지(延吉)~투먼(圖們)~훈춘(琿春)을 잇는 360㎞ 구간의 고속철도 공사를 2010년 착공하여 2015년 9월 20일 개통되었다. 새로운 노선은 설계 때 산을 관통하고 직선 터널로 연결하여 노선의 43.5%가 터널이다. 투먼(圖們)~훈춘(琿春)을 잇는 투훈(圖琿) 철도는 80.79km로 투먼역에서 시작하여 훈춘 남역을 거쳐 훈춘 장령자까지 연장되며 러시아 내 하산 철도와 연결된다. 러시아는 2008년 북한과의 합의를 거쳐 향후 50년간 나진항 3호 부두의 장기 독점 사용권을 선제적으로 확보했다.
투훈(圖琿) 철도
중국은 2012년 훈춘의 취안허(圈河)에서 북한의 원정리~나진항을 잇는 53㎞의 도로 건설을 시작하고, 국가급 경제특구인 ‘훈춘국제합작시범구’를 지정했다. 훈춘종합 보세구역은 2021년 중국 동북부 최초로 국제 전자상거래 국제도로운송(TIR) 업무를 개시했다. 속초시(인구 8만 명)와 중국 훈춘시(인구 24만 명)는 1992년 항로 개설 협의를 기점으로 2000년 백두산 항로 개설을 협의해 경제무역협력에 관한 협정서를 체결하고, 이어 2009년 6월 자매결연협정을 맺었다.
속초상공회의소 훈춘대표처 개소식(사진:강원도민일보, 2023.9.1)
속초시는 문화, 관광, 행정 분야에서 자매도시(해외도시: 미국 오리건주 그레샴시, 일본 요나고시, 중국 지린성 훈춘시)와 다양한 교류와 우호 협력을 이어오며 속초시 시장단, 시의회 대표단이 상호 방문하였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궁인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