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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 아카데미 425강 강의자료 요약(2026.6.4)
2026년 6월 4일 서울시 50+센터 중부캠퍼스(마포구 공덕동)
1. 당시제목: 조어만 2. 작자: 저광희(儲光羲, 706~763년경 ) 중국 당나라 성당(盛唐) 시기의 대표적인 전원파(田園派) 시인 저광희(儲光羲, chǔ guāng xī)는 왕유, 맹호연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자연과 농촌의 삶을 깊이 있게 노래한 인물입니다.
문학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음에도 안사의 난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비극에 휘말려 말년이 불우했던 시인이기도 합니다. 그에 대한 핵심 내용을 생애, 시풍, 문학적 평가로 나누어 정리해 드립니다.
1. 생애와 성정 (生崖) • 출생과 관직: 윤주(潤州) 연릉(延陵, 현재의 장쑤성 단양시) 출신으로, 개원(開元) 14년(726년)에 서석(徐嚱) 등과 함께 진사(進士)에 급제했습니다. 이후 안풍현위(安豊縣尉), 만년현위(萬年縣尉) 등 주로 지방과 수도의 하급 관직을 전전했습니다. • 은거와 전원생활: 관직 생활이 순탄치 않자 일찍이 벼슬을 버리고 종남산(終南山)이나 태백산(太白山) 등에 은거하며 직접 농사를 짓고 전원생활을 즐겼습니다. 이 시기의 경험이 그의 전원시의 굳건한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 안사의 난과 비극적 말년: 755년 안사의 난이 발발했을 때 낙양에 머물고 있다가 반군에게 붙잡혔습니다. 왕유 등 많은 시인들처럼 그 역시 강압에 의해 반군 조정의 관직(위관, 僞官)을 맡게 되었습니다. 난이 진압된 후, 숙종(肅宗) 조정에 의해 반역 가담죄로 잡혀가 영남(嶺南)의 유주(兪州, 현재의 광둥성 지역)로 유배되었고, 결국 그곳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2. 시풍과 특징 (詩風) 저광희의 시는 성당 전원시파 중에서도 '가장 순수하고 사실적인 농촌의 묘사'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동시대의 왕유나 맹호연이 산수의 고요한 아름다움이나 도교·불교적 은일(隱逸)의 경지를 주로 노래했다면, 저광희는 농민들의 실제 노동과 소박한 일상생활에 시선을 던졌습니다.
• 사실적이고 소박한 농촌 묘사: 씨뿌리고 수확하는 농사일, 이웃 간의 소박한 정, 시골마을의 사계절 풍경을 가식 없는 평이한 언어로 담아냈습니다. • 도잠(陶潛)의 계승: 위진남북조 시대의 대시인 도연명(도잠)의 시풍을 가장 진지하게 계승한 시인으로 꼽힙니다. 겉으로는 담담하고 소박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깊은 아취와 고결함을 품고 있는 질박(質樸)함이 특징입니다. • 대표작: 《전가즉사(田家卽事)》, 《목동치(牧童詞)》, 《조아사(釣魚詞)》 등이 유명하며, 농촌의 한가로운 정취와 서민들의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포착해 냈습니다.
3. 후대의 평가 • "성당 시인들 중 도연명의 진수를 얻은 자는 오직 저광희 한 사람뿐이다." — 남송(南宋)의 문론가 엄우(嚴羽), 《창랑시화(滄浪詩話)》 • 후대의 평론가들은 저광희가 비록 왕유(위 사진)만큼 화려하거나 맹호연만큼 수려하지는 않을지언정, 농촌의 흙냄새와 서정을 가장 진솔하게 표현한 시인이라고 극찬했습니다. • 그의 시는 한나라, 위나라 시기의 고시(古詩)가 가진 담백하고 두터운 멋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성당 전원시의 스펙트럼을 한층 더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오늘날 전해지는 그의 작품은 《저광희집(儲光羲集)》 5권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 選擧 = 選賢擧能= 選賢任能= 選賢與能 * 묵이지지 (默而識之) ~ 말없이 묵묵히 마음에 새겨 두고 잊지 않는다. 학이불려 (學而不厭) ~ 배움에 결코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정진한다. 회인불권 (誨人不倦) ~ 남을 가르칠 때에는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
김영환교수의 동양고전아카데미 제362강(2024,10,10) 강의 교안 *《論語》〈公冶長〉 5-3. 子謂子賤,“君子哉若人!魯無君子者,斯焉取斯?”
*《史記》〈周本紀〉4-023 1. 榮 - 金文, ▣ 원래는 나무이름으로 梧桐木,草木의 花를 가리키다가 나중에는 번영, 영화, 현달
《說文解字》「桐木也。從木熒省聲。一曰屋梠之两頭起者爲榮」
1) 오동나무
2) 초목의 꽃
3) 지붕의 처마
4) 좋은 기색
5) 혈색
6) 영화롭게 하다,
7) 무성하다,
8) 낭비하다,
9) 풍부한, 화려한, 《荀子》〈大略〉「上好義,則民闇飾矣!上好富,則民死利矣!二者治亂之衢也。民語曰欲富乎?忍耻矣!傾絶矣!絶故舊矣!與義分背矣! 上好富,則人民之行如此,安得不亂!湯旱而禱曰. 政不節與? 使民疾與?何以不雨至斯極也!宮室榮與?婦謁盛與?何以不雨至斯之極也!苞苴行與?讒夫興與?何以不雨至斯極也!天之生民,非爲君也, 天之立君,以爲民也。故古者,列地建国,非以貴諸侯而已, 列官職,差爵禄,非以尊大夫而已。主道知人,臣道知事。故舜之治天下,不以事詔而萬物成。」 "위에서 (군주가) 부유함을 좋아하면 백성들의 행실이 이와 같아지니, 어찌 어지러워지지 않겠는가! 탕(湯)왕이 가뭄이 들었을 때 기도하며 말하기를. '정치가 절제가 없었는가? 백성들을 고통스럽게 했는가? 어찌하여 비가 내리지 않음이 이토록 극에 달했는가! 궁궐이 너무 화려했는가? 여인들의 청탁이 성행했는가? 어찌하여 비가 내리지 않음이 이토록 극에 달했는가! 뇌물이 횡행했는가? 참소하는 무리(간신)들이 창궐했는가? 어찌하여 비가 내리지 않음이 이토록 극에 달했는가!'라고 하였다. 하늘이 백성을 낳은 것은 군주를 위한 것이 아니요, 하늘이 군주를 세운 것은 백성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옛날에 땅을 나누어 나라를 세운 것은 제후들을 귀하게 하려 함만이 아니었고, 관직을 나누고 작록에 차등을 둔 것은 대부들을 높이려 함만이 아니었다. 군주의 도리는 사람을 알아보는(적재적소에 쓰는) 데 있고, 신하의 도리는 실무를 아는 데 있다. 그러므로 순(舜)임금이 천하를 다스릴 때는 일일이 지시하지 않아도 만물이 이루어졌다."
* 生民(단어) = 百姓=庶民=衆民=黎民=民草=黔首=蒼生=億兆=平民=子民= 布衣=人民 * 恭己正南面而已 (공기정남면이이) ~ 군주가 오직 스스로 최고의 도덕적 모범(덕치)을 보이며 왕의 자리에서 중심을 잡고 있었을 뿐이지만 천하가 저절로 잘 다스려졌다는 뜻입니다.
10) 즐거운, 《國語》〈晉語四〉「狐偃曰.日,吾來此也,非以狄爲榮,可以成事。吾曰.奔而易達,困而有資,休以擇利,可以戾也。今戾久矣,戾久將底。底着滞淫,誰能興之?蓋速行乎!吾不適齊、楚,避其遠也。蓄力一紀,可以遠矣。齊侯長矣,而欲親晋。管仲殁矣,多讒在側。謀而無正,衷而思始。夫必追擇前言,求善以終,餍邇逐遠,遠人入服,不爲邮矣。會其季年可也,兹可以親。皆以爲然。」 "호언이 말하였다. '과거에 우리가 이곳(적족의 땅)으로 올 때, 적(狄) 땅을 즐거워 해서가 아니라 대업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당시에 (속으로) 말하기를, "도망쳐 도달하기 쉽고, 곤궁할 때 물자를 얻을 수 있으며, 휴식을 취하며 이로운 길을 선택할 수 있으니 머물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머문 지 오래 되었는데, 한곳에 오래 머물면 막다른 곳에 이르게 되고, 막다른 곳에 이르면 정체되고 나태 해 집니다. 정체되고 나태해지면, 그 누가 나라를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대저 속히 떠나야 합니다! 우리가 (처음에) 제나라나 초나라로 가지 않은 것은 그 거리가 먼 것을 피하기 위해서다. 이제 힘을 비축한 지 일기(一紀, 12년)가 되었으니, 먼 곳으로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나라 제후(제환공)는 나이가 많아졌으나 진(晉)나라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합니다. 관중(管仲)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아첨하는 무리들이 군주의 곁에 많습니다. 계책을 꾸며도 올바른 기준(또는 중심을 잡아줄 올바른 사람)이 없고, 속마음으로는 그저 (관중이 있던) 처음을 그리워할 뿐입니다. 무릇 (제나라 환공이) 틀림없이 예전(관중)의 말을 되새겨 선택하고,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선(善)을 구하며, 가까운 이들을 만족시키고 먼 곳에 있는 이들을 쫓아내야만, 멀리 있는 사람들이 들어와 복종하여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나라 환공의) 말년(季年)의 때에 만나는 것이 좋겠으니, 지금이 제나라와 친하게 지낼 수 있는 때입니다.' 하자, 모두들 그렇게 여겼다."
* 호언 (狐偃): 자는 자범(子犯)으로, 조쇠(趙衰)와 함께 중이를 19년간 보좌하며 춘추오패의 하나인 '진문공'으로 키워낸 최고의 책사입니다. 안주하려는 중이를 끊임없이 일깨워 대업으로 이끌었습니다.
* * “초상을 틈타 이익을 탐하지 않겠다”고 한 것을 주희는 “덕을 외면하고 재물을 앞 세운다.”로 잘못 해석한 듯하다.
* 문연각 판본의 13경 註疏 註는 정현의 주 참조 疏는 당나라 공영달과 賈公彦의 疏를 참조
* 가공언 (賈公彦) * 중국 수·당 시기의 학자로, 유교 경전인 『주례(周禮)』와 『의례(儀禮)』에 주석을 달고 내용을 해설한 『주례소(周禮疏)』, 『의례소(儀禮疏)』를 저술한 인물입니다.
* 주희가 주석을 달아 사서(四書)로 격상시킨 《대학》은 소대(대성)가 정리한 《소대예기(소대기)》 안의 한 편(제42편)이었습니다.
1. 배경: 진시황의 분서갱유와 '예(禮)'의 소실 진나라의 분서갱유(焚書坑儒)로 인해 고대 중국의 제도와 의례를 기록한 수많은 예법 문서들이 불타 없어졌습니다. 한나라가 들어선 후, 학자들은 기억에 의존하거나 벽 속에서 발견된 단편적인 문헌들을 모아 '예(禮)'를 복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한나라 조정에서 '예'에 관한 방대한 기록과 자료를 수집했는데, 이를 《기(記)》 또는 《백편(百篇)》이라고 불렀습니다. 내용이 너무 방대하고 정리가 되지 않아 후대 학자들이 이를 편집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2. 대대예기와 소대예기의 성립 한나라 선제(宣帝) 때, 경학의 대가였던 후창(后蒼)이라는 인물이 이 방대한 자료를 정리하여 제자들에게 전수했습니다. 이 후창의 제자들 중에 친형제(혹은 사촌 형제) 관계인 대덕(戴德)과 대성(戴聖)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성이 '대(戴)' 씨였기 때문에, 형인 대덕을 '대대(大戴)', 동생인 대성을 '소대(小戴)'라고 불렀습니다. 두 사람은 스승에게 받은 방대한 예법 관련 기술을 각각 자신만의 기준으로 요약·정리했습니다.
* 대대예기 (大戴禮記) - 형 대덕 (대대) 85편 글이 다소 거칠고 정리가 덜 되었다는 평가를 받아 점차 소외됨. 상당수 유실되어 현재는 39편만 전해짐. * 소대예기 (小戴禮記) - 동생 대성 (소대) 49편 내용이 정연하고 핵심적임. 후대 학자들의 표준이 되어 **오늘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예기(禮記)》**가 됨.
즉, 오늘날 서점에서 '예기'라는 이름으로 출간되는 책은 100% 동생인 소대(대성)가 엮은 《소대예기》를 의미합니다.
3. 《소대예기》와 주희의 《대학》 동생 소대가 정리한 49편의 《소대예기》 중에는 성리학의 핵심이 되는 두 편의 보석 같은 논문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바로 제42편 〈대학(大學)〉과 제31편 〈중용(中庸)〉입니다. • 당나라 이전: 《대학》은 독자적인 책이 아니라, 공자의 제자나 후대 유학자들이 쓴 수많은 예법·수양론 에세이 중 하나(예기의 42번째 장)에 불과했습니다. • 송나라 시대 (주희): 북송의 정이·정호 형제를 거쳐 남송의 주희(주자)에 이르러 이 〈대학〉의 가치가 극대화됩니다. 주희는 《예기》 안에 묻혀 있던 〈대학〉을 끄집어내어 글자 순서를 바꾸고 자신의 주석(장구)을 달아 《대학장구(大學章句)》라는 독립된 한 권의 책으로 재탄생 시켰습니다.
* 왕념손(王念孫, 1744~1832) 청나라 고증학(考證學)의 전성기를 이끌며 오로지 객관적인 증거와 엄밀한 방법론으로 학문의 경지를 개척한 인물입니다. 그는 아들 왕인지(王引之)와 함께 ‘고우왕씨(高郵王氏)’ 혹은 ‘왕氏 부자(父子)’로 불리며, 건륭·가경 연간 고증학의 최정점인 ‘완파(皖派, 안휘학파)’의 학풍을 완성한 거장입니다.
1. 학문적 배경과 완파(皖派)의 계승 왕념손은 강소성 고우(高郵) 출신으로, 청대 고증학의 기틀을 다진 대석학 대진(戴震)의 제자입니다. 그가 속한 완파(안휘학파)는 문자의 자형을 연구하는 문자학(文字學), 글자의 본래 소리를 연구하는 성운학(聲韻學), 글자의 뜻을 연구하는 훈고학(訓詁學)을 바탕으로 경전의 본래 의미를 복원하려 했습니다. 왕념손은 스승 대진의 학문을 이어받아, 이 ‘소학(小學, 언어학·문자학)’적 방법론을 극치로 끌어올렸습니다.
2. 왕념손 고증학의 핵심: "음(音)으로 뜻(義)을 구한다" 왕념손이 학계에 남긴 가장 위대한 업적은 ‘인성구의(因聲求義)’, 즉 “소리를 통해 글자의 참뜻을 찾는다”는 방법론의 확립입니다. • 개념: 고대 중국의 문헌들은 오랜 세월 필사되고 전해지는 과정에서 글자가 잘못 적히거나(오자), 다른 글자와 바뀌는 경우(통자)가 허다했습니다. 왕념손은 한자의 모양(자형)에만 얽매이지 않고, 그 글자가 고대에 어떤 소리로 읽혔는지(고음, 古音)를 추적했습니다. • 효과: 모양이 전혀 달라서 해석이 불가능했던 구절도, 고대 음운이 같은 글자를 대입해 보면 순식간에 맥락이 통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 이 방법으로 그는 수천 년 동안 해결되지 않던 선진(先秦) 시대 고전들의 오독과 왜곡을 완벽하게 바로잡았습니다.
3. 불후의 명저 (대표 저서) 왕념손의 저작은 오늘날에도 중국 고대 문헌을 전공하는 학자들에게 '필독서'를 넘어 일종의 '바이블'로 통합니다. • 《광야소증(廣雅疏證)》: 위(魏)나라 장집이 지은 어휘집 《광야》에 엄밀한 고증과 성운학적 주석을 보탠 책입니다. 훈고학과 성운학을 결합하여 고대 어휘의 어원을 밝혀낸 고증학의 최고 걸작입니다. • 《독서잡지(讀書雜誌)》: 《전국책》, 《사기》, 《한서》, 《관자(管子)》, 《묵자》, 《순자》, 《회남자》 등 선진·양한 시대의 방대한 고전들을 읽으며, 문헌상의 오류와 잘못된 해석을 조목조목 바로잡은 고증 비평서입니다.
4. 그의 학문적 성격과 평가 "지나치게 대담하게 의심하고, 극도로 정밀하게 증거를 찾는다." • 철저한 실사구시(實事求是): 그는 단 하나의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수십 개의 문헌 속 용례를 전수 조사하여 증거로 제시했습니다. 주관적인 억측이나 성리학적 형이상학적 해석을 배제하고, 오직 '언어학적 증거'만을 신뢰했습니다. • 아들과의 학문적 동역: 그의 아들 왕인지(王引之) 역시 아버지를 이어 대석학으로 성장했습니다. 왕인지는 고대 조사와 어조사의 쓰임새를 체계화한 《경전석사(經傳釋詞)》를 저술했는데, 이 부자의 연구 덕분에 춘추전국시대 문헌을 해독하는 문이 활짝 열리게 되었습니다.
왕념손은 주자학의 공리공론에 반대하고, "문자가 바로 서야 문장이 통하고, 문장이 통해야 성인의 도리(義理)를 알 수 있다"는 신념을 몸소 증명한 청대 학술의 거장입니다. 후대 학자들은 그를 일컬어 "청나라 300년 고증학 중 훈고와 성운 분야에서 단연 독보적인 제일인자"라 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 究天人之際 (구천인지제) ~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깊이 탐구하고 通古今之變 (통고금지변) ~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변화를 통찰하여 成一家之言 (성일가지언) ~ 독창적인 나만의 학문적 견해(일가)를 이룬다.
11) 부귀영화, 《呂氏春秋》〈務大〉「嘗試觀於上志,三王之佐,其名無不榮者, 其實無不安者,功大故也。俗主之佐,其欲名實也與三王之佐同,其名無不辱者,其實無不危者,無功故也。皆患其身不貴於其國也,而不患其主之不貴於天下也,此所以欲榮而逾辱也,欲安而逾危也。」 "시험 삼아 옛 기록(上志)을 살펴보면, 삼왕(하·상·주나라의 창업 군주)을 보좌했던 신하들은 그 명예가 부귀하고 영화롭지 않은 이가 없었고 그 실상(처지)이 편안하지 않은 이가 없었으니, 이는 (나라와 천하에 세운) 공로가 컸기 때문입니다. 평범하고 어리석은 군주(俗主)를 보좌하는 신하들도 명예와 실상을 바라는 마음은 삼왕의 신하들과 같지만, 그 명예는 욕되지 않은 이가 없고 그 실상은 위태롭지 않은 이가 없으니, 이는 (아무런) 공로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두 자기 자신만 나라에서 귀하게 되지 못할까 걱정할 뿐, 자신의 군주가 천하에서 귀하게 되지 못하는 것은 걱정하지 않으니, 이것이 바로 영광을 원하면서도 더욱 욕되게 되고, 편안함을 원하면서도 더욱 위태로워지는 까닭입니다."
• 上志 (상지): 고대의 역사적 기록이나 문헌을 뜻합니다. • 三王之佐 (삼왕지좌): 고대 중국의 성왕인 하나라 우왕, 상나라 탕왕, 주나라 문왕·무왕을 도와 천하를 태평하게 만든 현신들(백익, 후직, 이윤, 여상 등)을 의미합니다.
12) 영광, 《易經》〈繫辭上〉「子曰..君子居其室,出其言,善則千里之外應之,况其邇者乎。居其室,出其言,不善則千里之外違之,况其邇者乎。言出乎身,加乎民,行發乎邇,見乎遠。言行,君子之樞機,樞機,制動之主。樞機之發,榮辱之主也。言行,君子之所以動天地,可不慎乎。」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가 실내에 있어도 그 말을 내면, 그 말이 선(善)하다면 천 리 밖에서도 그에 호응하는데, 하물며 가까운 자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실내에 있으면서 그 말이 선하지 못하다면 천 리 밖에서도 그것을 거역하는 데, 하물며 가까이 있는 자들이야 오죽하겠는가! 말은 몸에서 나오지만 백성에게 영향을 미친다. 행동은 가까운 곳에서 나오지만 먼 곳에서 볼 수 있다. 말과 행동은 군자의 추기(樞機)이다. 이 추기는 제동의 주체이고, 이 추기가 발동하는 것은 영광과 치욕을 결정하는 주체이다. 말과 행동은 군자가 천지를 움직이는 핵심이니, 어찌 신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추기(樞機) ~ 문고리와 방아쇠, 즉 핵심 장치)
김영환교수의 동양고전아카데미 제363강(2024,10,17) 강의 교안 *《論語》〈公冶長〉 5-4. 子貢問曰:“賜也何如?”子曰:“女,器也。”曰:“何器也?”曰:“瑚璉也。
(주석) 1) 子貢 - 端木赐(前520年-前456年),復姓端木,字子貢。儒商鼻祖(상업 능숙, 공자 제자 중 최고 부자, 端木遺風(君子愛財,取之有道-誠信 강조), 민간의 財神, 孔門12哲之一(康熙, 大成殿 配祀12인, 有若, 朱熹),언어 능통(德行-顏淵, 閔子騫, 冉伯牛, 仲弓 ; 言語-宰我, 子貢 ; 政事-冉有, 季路 ; 文学-子游, 子夏),魯國、衛國의 丞相 역임. * 성이 단목(端木), 이름이 사(赐) 2) 賜 - 1)과 동일 3) 何如 - 주로 질문, 진술, 반문, 까닭 등 설명할 때 사용, 如何, 怎么样(how about, why not, what do you think) 4) 女 - 대명사로 당신, 너, 汝, 你 5) 器 - 宗廟의 제기, 才能(capacity, abilit), 人才(talent), 동사로 重視(think highly) 6) 瑚璉 - 古代 祭器 중에서 귀중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제사지낼 때 黍와 稷을 담는 그릇, 夏나라는 瑚, 商나라는 璉 ; 瑚璉之器-특별한 재능이 있어서 큰 임무와 治国安邦의 재능을 가진 사람 비유, 그러나 君子不器의 수준에는 못 미침.
단계별 내용 참고 a. 《禮記》〈學記〉「玉不琢,不成器」 b. 《老子》41장「大器晚成」 c. 《論語》〈爲政〉「君子不器」 d. 《易經》〈繫辭〉「形而上者(道無形爲形上 즉 無形故虛而不可見)謂之道,形而下者(器有形爲形下 즉 有形則實而可見)謂之器」 e. 《禮記》〈學記〉「大德不官, 大道不器, 大信不約, 大時不齊」
(번역) 자공이 묻기를 저는 어떻습니까? 공자가 말하기를 너는 그릇에 비유할 수 있다. 자공이 또 묻기를 어떤 그릇입니까? 공자가 말하기를 호련(한 가지 방면만 잘하는 사람에 비유)과 같구나.
2026.6.4 주정봉 강의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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