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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 아카데미 426강 강의자료 요약(2026.6.11)
2026년 6월 11일 서울시 50+센터 중부캠퍼스(마포구 공덕동)
1. 당시제목: 송이중승 귀한양 별업 2. 작자: 유장경(劉長卿, 709? ~ 786? ) 유장경은 중당(中唐) 시기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격동의 시기를 살아가며 남긴 쓸쓸하고 애잔한 풍격의 시로 유명합니다
1. 생애와 관직 여정: '오언의 장성(五言長城)' 장경은 당나라 현종(玄宗) 연간에 진사에 급제하며 관직에 나아갔으나, 평생 운이 평탄치 못했습니다. 두 번이나 무고하게 모함을 받아 유배를 당하는 등 부침이 심했습니다.
• 안사의 난과 유배: 안사의 난(755년)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소용돌이를 겪었고, 이후 영남(嶺南) 지방과 반주(睦州) 등 변방으로 좌천과 유배를 반복했습니다. • 수주자사(隨州刺史): 말년에는 수주자사를 지냈는데, 이 때문에 후세 사람들은 그를 '유수주(劉隨州)'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 오언의 장성: 스스로를 만리장성에 비유해 "오언시(다섯 글자 시)에서만큼은 내가 장성이다"라고 자부할 만큼 오언시에 극치에 달한 인물이었습니다.
2. 시풍(詩風)과 특징 그의 시는 안사의 난 이후 가라앉은 사회적 분위기와 자신의 불우한 처지가 맞물려 슬프고 쓸쓸한 정조(감정)가 깊게 깔려 있습니다.
• 청수(淸秀)하고 담백함: 화려한 수식보다는 맑고 깨끗한 시어를 사용하여 마음속의 응어리나 고독을 담담하게 표현했습니다. • 변방과 이별의 정서: 좌천과 유배를 자주 다녔기 때문에, 나그네의 외로움(羈旅), 변방의 황량함, 그리고 지인과의 이별을 노래한 시가 많습니다. 질문하신 <송이중승귀한양별업> 역시 전쟁터에서 공을 세웠으나 은퇴 후 쓸쓸히 돌아가는 장수(이중승)를 보내며 지은 대표적인 이별 시입니다.
3. 문학사적 위치: 대력십재자(大曆十才子) 유장경은 당나라 대력(大曆, 766~779) 연간에 활약한 뛰어난 시인 10명을 일컫는 '대력십재자'의 한 사람으로 꼽힙니다. (다만 그의 재능과 명성이 워낙 독보적이라 이들보다 한 체급 위로 평가하는 문학가들도 많습니다.) 성당(盛唐) 시기의 이백, 두보, 왕유 등이 이룩한 거대한 산맥을 이어받아, 중당(中唐) 시기만의 섬세하고 감성적인 시풍을 여는 가교 역할을 했습니다.
김영환교수의 동양고전아카데미 제363강(2024,10,17) 강의 교안
*《論語》〈公冶長〉 5-4. 子貢問曰:“賜也何如?”子曰:“女,器也。”曰:“何器也?”曰:“瑚璉也。 자공이 묻기를 저는 어떻습니까? 공자가 말하기를 너는 그릇에 비유할 수 있다. 자공이 또 묻기를 어떤 그릇입니까? 공자가 말하기를 호련(한 가지 방면만 잘하는 사람에 비유)과 같구나.
(주석) 1) 子貢 - 端木赐(前520年-前456年),復姓端木,字子貢。儒商鼻祖(상업 능숙, 공자 제자 중 최고 부자, 端木遺風(君子愛財,取之有道-誠信 강조), 민간의 財神, 孔門12哲之一(康熙, 大成殿 配祀12인, 有若, 朱熹),언어 능통(德行-顏淵, 閔子騫, 冉伯牛, 仲弓; 言語-宰我, 子貢; 政事-冉有, 季路; 文学-子游, 子夏),魯國、衛國의 丞相 역임. * 성이 단목(端木), 이름이 사(赐)
* 孔門12哲의 분야별 인물 구성 1. 덕행 (德行) - 인품과 도덕성이 뛰어난 제자 • 안회 (안연): 공자가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수제자입니다. 가난한 환경에서도 배움을 즐겼으며, 공자로부터 "인(仁)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극찬을 받았습니다. • 민손 (민자건): 효심이 매우 깊기로 유명한 제자였습니다. 권력과 재물에 욕심이 없어 벼슬을 거절하기도 했습니다. • 염경 (백우): 덕행이 뛰어났으나 불치병에 걸려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공자가 그의 병문안을 가고 몹시 슬퍼했습니다. • 염옹 (중궁): 신분은 미천했으나 덕망이 높아, 공자가 "임금 자리에 앉혀도 부족함이 없다"고 칭찬했던 인물입니다.
2. 언어 (言語) - 외교 수완과 말재주가 뛰어난 제자 • 재여 (재아): 말재주가 뛰어나고 논리적이었으나, 낮잠을 자다가 공자에게 혼나기도 하는 등 개성이 강한 제자였습니다. • 단목사 (자공): 뛰어난 언변과 외교술로 국가 간의 문제를 해결했으며, 이재(재테크)에도 밝아 공자 학단의 재정을 지원한 경제적 기둥이었습니다.
3. 정사 (政事) - 정치와 행정 능력이 뛰어난 제자 • 염구 (자유): 행정과 군사적 재능이 뛰어났으며, 노나라의 실권자 계씨 가문에서 가신으로 일하며 재정 개혁을 이끌었습니다. • 중유 (자로): 공자의 제자 중 가장 용맹하고 의리가 넘치는 행동파였습니다. 공자를 호위하는 보디가드 역할을 자처했으며, 정치를 할 때 과단성이 있었습니다.
4. 문학 (文學) - 학문과 시·서·례(예법)에 밝은 제자 • 언언 (자유): 예악(禮樂)에 정통했으며, 작은 읍을 다스릴 때 백성들에게 예절과 음악을 가르쳐 공자를 흐뭇하게 했습니다. • 복상 (자하): 시(詩)와 예(禮)에 밝았으며, 공자 사후에 많은 제자를 양성하여 유학을 전파하는 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후대에 추가된 2명의 현인 (송나라 시대 추가) 원래는 위의 10명을 '공문10철'이라 불렀으나, 후대(송나라)에 유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2명이 추가되어 '12철'이 되었습니다.
• 유약 (유자): 공자의 후기 제자로, 유교 학단 내에서 스승에 버금가는 높은 존경을 받아 유자(有子)라 불린 인물입니다. 성격과 학문적 깊이 면에서 공자의 가르침을 가장 잘 계승한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 주희 (주자): 공자 시대의 제자는 아니지만, 후대에 유학을 집대성하여 '성리학'을 창시한 인물입니다. 그 학문적 업적을 인정받아 공자 문하의 가장 높은 반열(12철)에 함께 모셔지게 되었습니다.
* 畢 = 별자리 수 28수 (宿)의12번째 별
2) 賜 - 1)과 동일
3) 何如 - 주로 질문, 진술, 반문, 까닭 등 설명할 때 사용, 如何, 怎么样(how about, why not, what do you think)
4) 女 - 대명사로 당신, 너, 汝, 你
5) 器 - 宗廟의 제기, 才能(capacity, abilit), 人才(talent), 동사로 重視(think highly)
6) 瑚璉 - 古代 祭器 중에서 귀중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제사 지낼 때 黍와 稷을 담는 그릇, 夏나라는 瑚, 商나라는 璉; 瑚璉之器-특별한 재능이 있어서 큰 임무와 治国安邦의 재능을 가진 사람 비유, 그러나 君子不器의 수준에는 못 미침.
단계별 내용 참고 a.《禮記》〈學記〉「玉不琢,不成器」 "옥은 쪼고 다듬지 않으면, 훌륭한 그릇(물건)을 이룰 수 없다."
b.《老子》41장「大器晚成」 "큰 그릇은 원래 완성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또는 "큰 인물은 늦게 대성한다.")
c.《論語》〈爲政〉「君子不器」 "군자는 한 가지 쓰임새로만 고정된 그릇이 되어서는 안 된다." (또는 "군자는 그릇처럼 국한되지 않는다.")
d.《易經》〈繫辭〉「形而上者 (道無形爲形上즉 無形故虛而不可見) 謂之道, 形而下者(器有形爲形下 즉 有形則實而可見)謂之器」 "형상(형체)을 초월한 것—[주석: 도(道)는 형상이 없으므로 형상의 위에 있는 것이니, 즉 형상이 없기 때문에 텅 비어서 눈으로 볼 수 없다]—을 일컬어 '도(道)'라 하고, 형상(형체)을 갖춘 것—[주석: 기(器)는 형상이 있으므로 형상의 아래에 있는 것이니, 즉 형상이 있기 때문에 실질적이어서 눈으로 볼 수 있다]—을 일컬어 '기(器)'라 한다."
e.《禮記》〈學記〉「大德不官, 大道不器, 大信不約, 大時不齊」 "가장 위대한 덕(大德)은 어느 한 관직에 국한되지 않고, 가장 위대한 도(大道)는 어느 한 가지 쓰임새(그릇)에만 매이지 않으며, 가장 위대한 신의(大信)는 굳이 말로 약속하지 않아도 신뢰가 가고, 가장 위대한 시간(大時, 사계절)은 만물을 한꺼번에 똑같이 흐르게 하지 않는다."
*《史記》〈周本紀〉4-023 1. 伯 - 甲骨文, 본래 의미는 사람의 머리, 점차 첫 번째의 의미
《說文解字》「伯, 長也。从人白聲。博陌切」 백은 장이다. 모양은 사람인을 따르고 발음은 소리성이다.
반절은 (博 bó 陌 mò) 伯 (b+o) = bo (戶 hù 乖 guāi) 淮(h+uái)= huái
*추린두지(抽麟頭角) ~ "기린의 무리 속에서 머리와 뿔을 높이 드러내다"라는 뜻으로, 평범한 무리 속에 섞여 있지 않고 학식이나 재능이 독보적으로 우뚝 솟아 세상에 명성을 떨치는 모습을 비유합니다.
*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관련된 문제 비교 1. 사료적 가치와 기록의 정밀함 부문 ➡ 김창업, 《노가재 연행록》 만약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딱 한 권만 남기고 다 불태워야 한다면 뭘 고르겠는가?"라고 묻는다면, 많은 이들이 김창업의 책을 고를 것입니다. 박지원의 글은 재미를 위해 사실을 비틀거나 과장한 부분이 있지만, 김창업은 18세기 초 청나라 전성기(강희제 시대)의 풍경, 복식, 풍속을 정밀한 사진을 찍듯 객관적으로 기록했습니다. 후대 조선 사신들이 청나라에 갈 때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서이자 교과서, 왜 이 책을 '바이블'로 들고 다녔는지 증명하는 기록 문학의 극치입니다.
2. 문학적 예술성 부문 ➡ 박지원, 《열하일기》 단순히 여행기를 넘어 문학, 철학, 정치 등을 종횡무진 넘나드는 천재성에서는 《열하일기》를 능가할 작품이 전무합니다. 인류 보편적 윤리, 신분을 초월한 인간애, 예법에 얽매이지 않는 열린 세계관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단점으로 정조 임금에게 "문체를 더럽혔다"며 반성문을 쓰라는 '문체 반정'을 당한 책입니다.
3. 대중성과 접근성 부문 ➡ 노이점, 《수사록》 최고의 걸작 반열에 올리기엔 무게감이 다소 부족하지만, "당대 평범한 조선 양반들의 평균적인 시선과 심리 변화"를 가장 인간적이고 솔직하게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현대 연구자들에게 매우 사랑받는 '숨겨진 보물' 같은 책입니다.
劉熙(東漢), 《釋名》「父之兄曰伯父。伯,把也,把持家政也。又兄曰伯」 아버지의 형이 백부이다. 백은 파다(잡다) 집안의 정사를 장악한다. 형도 백이라 한다.
(1) 長兄, 韓愈, 〈過始興江口感懷〉「億作兒童隨伯氏,南來今只一身存」 과거를 생각해 보니 아동 때 큰 형을 따라서 남쪽으로 왔는데 지금은 오직 나만 살았구나.
(2) 적장자, 《禮記》〈檀弓〉「昔者文王舍伯邑考而立武王」 옛날에 문왕이 큰 아들 백읍고를 버리고 동생 무왕을 세웠다. 注「言文王舍伯邑考是嫡妃長子,所謂嫡長曰伯,庶長曰孟是也」
伯: 1) 적장자. 2) 남성 孟: 1) 서장자. 2) 여성
* 주나라 문왕(서백 창)과 그의 적장자 백읍고(伯邑考)에 얽힌 이야기는 중국 고대 역사와 신화(《봉신연의》 등)에서 가장 비극적이고도 유명한 일화 중 하나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문왕이 백읍고를 의도적으로 '버린' 것은 아니었으며, 폭군 주왕(紂王)의 인질로 잡혀 있던 아버지를 구하러 갔던 백읍고가 음모에 휘말려 희생당한 비극에 가깝습니다. 이 가슴 아픈 사건의 전말을 역사적 배경과 전설을 곁들여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1. 배경: 서백 창(문왕)의 유리성 감금 당시 상(은)나라의 마지막 왕이었던 주왕(紂王)은 달기라는 총비에 빠져 폭정을 일삼고 있었습니다. 당시 주나라의 제후이자 덕망이 높아 백성들과 제후들의 신망을 한 몸에 받던 서백 창(훗날의 주 문왕)을 주왕은 매우 경계했습니다. 결국 주왕은 서백 창을 반역의 음모가 있다는 죄목으로 유리(羑里)라는 지역의 감옥에 가두어 버립니다.
2. 아버지의 구명을 위해 호랑이 굴로 들어간 백읍고 아버지가 감금된 지 수년이 지나도 풀려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당시 주나라에 남아 나라를 돌보던 적장자 백읍고는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직접 상나라의 수도인 조가(朝歌)로 향합니다. 백읍고는 가문의 보물(향마차, 술을 깨게 하는 원숭이, 거문고 등)을 바치며 아버지를 석방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백읍고는 외모가 매우 수려하고 예의가 바르며, 특히 거문고(琴) 연주 실력이 천하 일품이었다고 전해집니다.
3. 달기의 유혹과 비극의 시작 소설 《봉신연의(封神演義)》와 민간 전설에 따르면, 백읍고의 수려한 외모에 반한 악녀 달기가 그를 유혹하려 했습니다. 달기는 거문고를 배우겠다는 핑계로 그를 은밀히 불러 유혹했으나, 강직하고 성품이 곧았던 백읍고는 이를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유혹에 실패하여 자존심이 상하고 앙심을 품은 달기는 주왕에게 "백읍고가 거문고를 가르쳐 준다며 저를 희롱하고, 대왕을 저주하는 노래를 불렀습니다"라고 거짓 모함을 합니다. 이에 분노한 주왕은 백읍고를 처형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4. 잔혹한 시험: 아들의 고기로 만든 만두(또는 국) 폭군 주왕과 달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욱 잔인한 짓을 저지릅니다. 백읍고의 시신으로 음식을 만들어, 감옥에 갇혀 있는 그의 아버지 서백 창에게 먹이기로 한 것입니다. 당시 서백 창은 주역(周易)에 통달하여 천지이치를 판단하는 신통한 능력이 있다고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주왕은 만약 서백 창이 진정한 성인(聖人)이라면 자식의 고기인 줄 알고 먹지 않을 것이고, 모른 채 먹는다면 그저 평범한 인간일 뿐이니 경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여 시험을 한 것입니다. 감옥에서 음식을 받은 서백 창은 점을 쳐보지 않고도 이것이 자신의 사랑하는 맏아들 백읍고의 살점으로 만든 음식임을 단번에 알아차렸습니다. 피눈물이 흐르는 고통이었지만, 여기서 음식을 거부하면 자신도 죽임을 당하고 주나라의 대업도 끊길 것을 알았기에, 서백 창은 슬픔을 극도로 억누르며 묵묵히 그 음식을 다 먹어 치웠습니다. 이를 본 주왕은 "자기 아들의 고기인지도 모르고 먹다니, 서백 창이 성인이라는 말은 다 거짓이구나!"라며 안심했고, 방심한 틈을 타 주나라 신하들이 뇌물을 바치자 결국 서백 창을 석방해 줍니다.
5. 토토(吐껵): 토끼가 된 백읍고의 넋 주나라로 무사히 돌아온 서백 창은 마침내 참았던 슬픔과 울분을 토해내며 구토를 하게 되는데, 이때 그의 입에서 나온 아들의 살점들이 하얀 토끼로 변해 달아났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중국 민간에서 토끼를 뜻하는 단어 중 하나인 '토(吐)'가 '토하다'라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슬픈 설화입니다.
결론적으로 문왕이 백읍고를 버린 것이 아니라, 백읍고는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바친 효자였으며, 문왕은 아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짐승 같은 고통을 참아내고 살아남아 후일을 도모했던 것입니다. 이 비극적인 희생 이후, 문왕의 둘째 아들이었던 발(發)이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건국한 주무왕(武王)입니다.
(3) 항렬 가장 높은 자, 班固,《白虎通》〈姓名〉「以時長幼,號曰伯仲叔季也。伯者,子最長,迫近父也。仲者,中也。叔者,少也。季者,幼也」 "태어난 때의 순서(장유)에 따라, '백(伯)·중(仲)·숙(叔)·계(季)'라고 부른다.' 백(伯)'이란 자식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자로, 아버님와 밀접하다는 뜻이다. '중(仲)'이란 중간(둘째)이라는 뜻이다. '숙(叔)'이란 젊은(셋째) 자를 뜻한다. '계(季)'란 가장 어린(막내) 자를 뜻한다."
(4) 부친의 형, 颜之推(北齊), 《顔氏家訓》〈風操〉「古人皆呼伯父、叔父,而今世多單呼伯、叔」 옛날 사람들은 모두 '백부(伯父)' 혹은 '숙부(叔父)'라고 (부(父) 자를 붙여서) 불렀으나, 지금 세상(당대)의 사람들은 대개 단지 '백(伯)' 또는 '숙(叔)'이라고만 단독으로 부른다."
* 동양 가훈의 비조 (안씨 가훈)은 21장의 PPT중 5장만 소개합니다.
2026.6.11 주정봉 강의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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