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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일을 한다는 것 ― 《안티고네》를 읽고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무엇이 옳은지를 고민하는 순간을 만난다. 그럴 때 우리는 흔히 옳고 그름은 분명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티고네》를 읽으며 그런 생각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작품에는 분명한 악인이 없다. 오히려 누구도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비극은 승패보다 오래 남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옳은 일을 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처음에는 안티고네가 당연히 옳다고 생각했다. 왕의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오빠를 장사 지내는 모습은 가족을 향한 사랑과 양심을 지키는 행동처럼 보였다. 죽음을 알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그녀는 자연스럽게 작품의 주인공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작품이 쓰인 시대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서 내 생각도 달라졌다.
오늘날 우리는 《안티고네》를 국가의 법과 개인의 양심이 충돌하는 이야기로 읽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소포클레스가 살았던 고대 그리스 사람들에게 안티고네는 무엇보다 신의 질서를 지키려 한 인물이었다. 그녀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 했던 것은 단순한 가족애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법보다 앞서는 신들의 법이었다.
반대로 크레온 역시 처음부터 악한 왕으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그는 내전이 끝난 나라를 다시 세워야 하는 왕이었다. 반역자를 처벌하고 법을 세우는 것이 국가를 지키는 길이라고 믿었다. 당시의 관객들도 그의 생각을 충분히 이해했을 것이다.
비극은 법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정의를 절대화한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크레온의 잘못은 법을 만든 데 있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판단을 절대적인 것으로 믿기 시작했고, 아들 하이몬의 충고도,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의 경고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신의 정의만을 끝까지 고집한 순간, 그는 신보다 자신의 판단을 앞세우게 되었고 결국 모든 것을 잃는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가장 경계했던 것은 바로 이런 인간의 오만이었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작품을 조금 다르게 읽는다. 안티고네는 국가 권력에 맞서는 개인의 양심으로, 크레온은 법과 권력을 상징하는 인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시대가 달라질수록 작품을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졌다. 문득 《변신 이야기》를 읽으며 품었던 생각이 떠올랐다. 오래 살아남은 고전은 시대에 따라 새로운 의미를 얻으며 끊임없이 변신한다는 것이었다. 《안티고네》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대에는 신과 인간의 문제였던 이야기가 오늘날에는 법과 양심, 국가와 개인의 문제로 새롭게 읽히고 있다.
그렇다고 작품의 본질까지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가장 오래 마음에 남았던 장면은 안티고네가 죽음을 앞두고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살고 싶다고 애원하지도 않았고, 자신의 행동을 변명하지도 않았다.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지만 끝내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처음에는 '옳은 사람은 두려움이 없는 사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티고네 역시 죽음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가족과 헤어지는 일도 슬펐을 것이다. 그럼에도 끝내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을 안고도 자신의 신념을 선택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안티고네만을 영웅으로 남겨 두고 싶지는 않았다.
크레온 역시 자신의 방식으로 나라를 지키려 했던 사람이었다. 그의 비극은 정의를 추구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정의만이 유일한 정의라고 믿은 데서 시작되었다. 어쩌면 안티고네가 보여 준 것은 신념의 용기였고, 크레온이 남긴 것은 신념에도 겸손이 필요하다는 교훈이었는지도 모른다.
문득 우리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으며 살아간다. 가족 안에서도, 직장에서도, 사회에서도 서로 다른 신념은 끊임없이 충돌한다. 문제는 옳고 그름보다 자신의 생각만이 정답이라고 믿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안티고네》를 읽고 가장 오래 남은 것은 누가 옳았는가 하는 답이 아니었다.
옳은 일을 한다는 것은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일일까, 아니면 자신의 신념조차 끊임없이 돌아볼 줄 아는 일일까.
그래서 《안티고네》는 답을 가르쳐 주는 작품이 아니라, 끝내 답할 수 없는 질문을 우리에게 남긴다. 무엇이 옳은가보다 더 어려운 것은 서로 다른 정의가 마주했을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아마 이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는 한, 《안티고네》는 앞으로도 계속 읽히게 될 것이다.
- 2026. 5.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