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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서 찾은 삶의 질문덕이야기의 지식창고 2026.07.08. 16:28 (2026.07.08. 16:28)

분노를 다스린다는 것 - 《일리아스》를 읽고

 
《일리아스》에서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쓰러뜨렸을 때 가장 강한 영웅이 되었지만, 프리아모스의 슬픔을 이해했을 때 비로소 가장 위대한 인간이 되었다. 분노는 상대를 무너뜨릴 수는 있어도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지는 못한다. 분노는 상대를 이길 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슬픔을 이해할 때 비로소 끝난다. 인간을 성숙하게 만드는 것은 승리가 아니라, 서로의 슬픔과 그 속에 담긴 분노를 이해하려는 마음이다. 《일리아스》는 그 오래된 진실을 가장 장엄한 전쟁 이야기 속에서 들려준다.
분노를 다스린다는 것
- 《일리아스》를 읽고
 
 
사람은 누구나 분노한다. 분노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며, 때로는 정의를 지키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분노가 나를 지배하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분노는 남을 아프게 하고, 결국 나도 아프게 만든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을 노래한 작품이다. 그러나 그 웅장한 서사의 중심에는 한 인간의 분노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끝나는지가 담겨 있다.
 
《일리아스》는 서양 문학의 출발점이라 불리는 호메로스의 대서사시이다. 작품은 트로이 전쟁 전체를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전쟁 마지막 시기의 짧은 기간을 배경으로, 아킬레우스의 분노에서 시작하여 그의 변화로 끝난다. 첫 구절이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노래하라, 여신이여!"로 시작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호메로스가 이야기하려 했던 것은 전쟁의 승패보다 인간의 마음이었다.
 
아킬레우스는 총사령관 아가멤논에게 모욕을 당하자 전쟁 참여를 거부한다. 그의 분노는 처음에는 자신의 명예를 지키려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그 분노는 곧 그리스군 전체를 위험에 빠뜨린다. 수많은 병사가 목숨을 잃고, 가장 소중한 친구 파트로클로스마저 대신 싸우다 죽는다. 한 사람의 분노는 결코 한 사람에게만 머물지 않았다. 분노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먼저 상처를 남겼다.
 
파트로클로스의 죽음 이후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는 광기로 변모한다. 그는 헥토르를 죽인 뒤에도 분노를 거두지 못하고, 그의 시신을 전차 뒤에 묶어 끌며 모욕한다. 그러나 아무리 복수를 해도 그의 마음은 평온해지지 않는다. 헥토르가 죽어도 파트로클로스는 돌아오지 않고, 적을 쓰러뜨려도 자신의 슬픔은 사라지지 않는다. 분노는 상대를 무너뜨릴 수는 있었지만, 아킬레우스 자신의 상처는 조금도 치유하지 못했다.
 
작품의 마지막에서 늙은 프리아모스 왕은 목숨을 걸고 아킬레우스를 찾아온다. 그는 왕이 아니라 아들을 잃은 아버지로서 무릎을 꿇고, 아킬레우스에게 그의 아버지를 떠올려 달라고 말한다. 그 순간 아킬레우스는 처음으로 적의 슬픔을 바라본다. 헥토르는 적장이기 이전에 한 아들의 모습이었고, 프리아모스는 적국의 왕이기 전에 자식을 잃은 아버지였다. 아킬레우스 역시 가장 소중한 친구를 잃은 슬픔을 품고 있었다. 서로 다른 편에 서 있었지만, 슬픔만큼은 같았다. 그들은 함께 눈물을 흘렸고,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준다.
 
《일리아스》는 분노를 없애라고 말하지 않는다. 분노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그러나 분노는 상대를 쓰러뜨릴 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슬픔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슬픔이 품고 있는 분노까지 이해하는 일이다. 서로가 같은 상실과 아픔을 지닌 인간임을 깨닫는 순간, 분노는 비로소 다스릴 수 있게 된다. 공감은 분노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분노를 넘어서는 힘이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쉽게 분노한다. 사회적 갈등과 정치적 대립, 인터넷 공간의 혐오와 비난은 분노를 더욱 빠르게 키운다. 상대를 이겨야 한다는 생각은 점점 커지지만, 상대가 왜 그런 감정을 품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점점 줄어든다. 분노는 처음에는 상대를 향하지만, 끝내는 자신의 마음까지 갉아먹는다. 상대를 미워할수록 평온을 잃는 사람도 결국 자기 자신이다. 서로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슬픔이 낳은 분노 또한 이해할 수 없다. 이해받지 못한 분노는 또 다른 분노를 낳고, 갈등은 끝없이 반복된다.
 
《일리아스》에서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쓰러뜨렸을 때 가장 강한 영웅이 되었지만, 프리아모스의 슬픔을 이해했을 때 비로소 가장 위대한 인간이 되었다. 분노는 상대를 무너뜨릴 수는 있어도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지는 못한다. 분노는 상대를 이길 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슬픔을 이해할 때 비로소 끝난다. 인간을 성숙하게 만드는 것은 승리가 아니라, 서로의 슬픔과 그 속에 담긴 분노를 이해하려는 마음이다. 《일리아스》는 그 오래된 진실을 가장 장엄한 전쟁 이야기 속에서 들려준다.
 
- 2026.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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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