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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사기 강의 자료 요약김영환교수의 지식창고 2026.07.10. 17:43 (2026.07.10. 16:54)

동양고전 아카데미 430강 강의자료 요약(2026.7.09)

 
司馬遷《史記》 原文 강독, 부수적으로 (1)唐詩 〈春夜喜雨〉와 작자 杜甫 및 주요 단어(春夜, 喜雨, 好雨, 知時節, 潛入, 潤物, 細無聲, 野徑, 紅濕處, 花重, 錦官城.. 등)과 봄비의 擬人化, 청각보다 촉각 중심, 어둠과 빛의 대비, 화려한 결말, 儒敎의 이상과 愛民情神 등 감상 포인트에 대해서 설명 ; (2)《史記》와 《漢書》를 통한 蘇武와 李陵의 비교 설명 : (3)《易經》〈乾卦〉「天行健, 自强不息」과 《易經》〈坤卦〉「地勢坤, 厚德載物」에 대하여 설명 ; (4)《論語》〈公冶長〉「子曰:“道不行,乘桴浮于海,從我者,其由與!”子路聞之喜。子曰:“由也好勇過我,無所取材。”」에서 道의 의미, 桴의 大,中,小 구별, 海의 여러 가지 의미(隱居와 斷絶) 및 風餐露宿, 자로의 結纓(曾子의 易簀) 등 상징적 의미, 材에 대한 5가지 學說 등에 대하여 설명 ; (5)儒家의 道와 道家의 道에 대하여 상세히 비교 설명 ; (6)중국 철학사에서 荀子의 철학과 사상(儒家+道家+法家=後聖) 등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하였습니다.
동양고전 아카데미 430강 강의자료 요약(2026.7.09)
 
2026년 7월 9일 서울시 50+센터 중부캠퍼스(마포구 공덕동)
 
 
 
 
 
 
1. 당시제목: 춘야희우
2. 작자: 두보(杜甫, 712~770 )
 
427강 참조
 
 
 
 
 
 
 
* 교수님 ppt자료 15매중 5매만 올림니다.
 
 

 
김영환교수의 동양고전아카데미 제365강(2024,10,31) 강의 교안
 
*《論語》〈公冶長〉
5-6. 子使漆雕開仕。對曰:“吾斯之未能信。” 子說。
 
* 儒家 8 派
《韓非子》〈顯學〉에 나옴.
1. 子張之儒
2. 子思之儒
3. 顔氏之儒
4. 孟氏之儒
5. 漆雕氏之儒
6. 仲良氏之儒
7. 孫氏之儒
8. 樂正氏之儒
 
 

 
* 1《史記》〈周本紀〉4-023
1. 息 - 갑골문, 원래는 코에서 기운이 나감,
 
《說文解字》「息, 喘也。從心從自,自亦聲」
《說文解字注》「從心自 注: 自者,鼻也」
 
 
(1) 드나드는 기운,
《莊子》〈逍遥游〉「野馬也,塵埃也,生物之以息相吹也」
 
(2) 메시지,
《梁書》〈何胤〉「今遣候承音息,矯首還翰,慰其引領」
 
(3) 이자,
《周禮》〈泉府〉「凡民之貸者,與其有司辨而授之,以国服爲之息」
 
(4) 아들,
《戰國策》〈趙策四〉「老臣賤息舒祺,最少,不肖」
 
(5) 고대 예법(鄕飮酒),
《大戴禮記》〈千乘〉「于時有事,蒸于皇祖皇考,息国老六人,以成冬事」
 
(6) 춘추시대 제후국,
《左傳》隱公十一年「鄭息有違言,息侯伐鄭」
 
(7) 호흡하다,
《漢書》〈蕭武傳〉「武氣絶,半日復息」
소무가 기절했다. 반 나절 후에 숨 쉬기 시작했다.
 
* 1. 기원 전 100년(한 무제 천한 원년), 소무는 한나라의 부절(符節, 사신의 신분 상징)을 들고 흉노에 사신으로 파견되었습니다. 그러나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려던 찰나, 동행했던 부사(副使) 장승(張勝)이 흉노 내부의 반란 모의에 가담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소무 일행 전체가 붙잡히게 됩니다.
 
2. 목숨을 건 자결 시도와 부활
흉노의 선우(단군, 우두머리)는 한나라 배신자인 위율(衛律)을 보내 소무를 회유하고 협박했습니다. 소무는 사신으로서 지조를 잃고 굴복 하느니 죽음을 택하겠다며 허리에 차고 있던 칼로 자신의 가슴을 찔렀습니다.
이때 위율이 놀라 의사를 급히 불렀고, 의사는 땅을 파서 희미한 불을 피운 뒤 소무를 그 위에 엎어놓고 등을 밟아 고인 피를 쏟아내게 했습니다.
당시 소무는 이미 완전히 기절해 숨이 끊어진 상태였으나, 반나절 만에 기적적으로 다시 깨어났습니다. 흉노의 선우는 그의 무시무시한 기개와 충성심에 감탄하여 그를 죽이지 않고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3. 북해(바이칼호)에서의 19년 유배
회유가 통하지 않자 흉노는 소무를 아무도 살지 않는 거친 황무지인 북해(北海, 지금의 러시아 바이칼호)로 유배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숫양이 젖을 짜내면 한나라로 보내주겠다"는 황당한 조건을 걸고 양을 치게 했습니다. 이는 사실상 평생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선언이었습니다.
소무는 식량이 끊겨 들쥐를 잡고 야생 풀을 뜯어 먹으면서도, 한나라 사신의 상징인 부절(節)을 잠잘 때나 깨어날 때나 항상 지팡이처럼 쥐고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부절에 매달려 있던 양털이 전부 빠져 닳아 없어질 때까지도 그는 지조를 꺾지 않았습니다.
 
4. 백발이 되어 마침내 이룬 귀환
기원전 81년, 한나라와 흉노 사이에 화친이 맺어지면서 소무는 마침내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흉노는 처음에 소무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으나, 동행했던 부하 상혜(常惠)의 기지로 생존 사실이 들통나 겨우 풀려나게 됩니다.
30대의 젊고 강건한 나이에 출새했던 소무는 19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머리와 수염이 하얗게 세어버린 노인이 되어서야 장안으로 돌아왔습니다. 한나라 조정은 그의 충절을 높이 기려 전속국(典屬國)이라는 벼슬을 내렸고, 훗날 한 선제 시기에는 공신들의 초상화를 걸어두는 '기린각(麒麟閣) 11등 공신'에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소무가 왜 동아시아 역사에서 '불굴의 충절과 애국심'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는지 잘 보여주는 결정적 장면입니다. 죽음 앞에서도 당당했던 그의 기개는 흉노조차 감탄하게 만들었고, 훗날 수많은 문인과 지사들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 불굴의 지조를 지킨 소무(蘇武)와 정확히 대비되어 역사 속에서 ‘투항과 배반의 상징’처럼 굳어진 인물이 바로 명장 집안 출신의 장수, 이릉(李陵, ? ~ 기원전 74년)입니다.
 
 
(8) 탄식하다,
屈原, 〈離騷〉「長太息以掩涕兮,哀民生之多艱」
"길게 탄식하며 눈물을 감추었고, 백성들의 생활에 고난이 많은 어려움을 슬퍼하였다.
 
(9) 정지하다,
《易》〈乾卦〉「天行健,君子以自强不息」
"하늘의 운행은 굳세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스스로 강하게 하여 쉬지 않는다.
 
* 地勢坤,君子以厚德載物
대지의 형세는 수용이니, 군자는 넓은 마음으로, 사물을 넓은 도량으로 품는다.
 
(10) 쉬다,
《詩經》〈殷其雷〉「何斯違斯,莫敢遑息?」
"어찌하여 이곳을 떠나는가, 감히 잠시 쉬지도 못 하는가?
 
* 뒤의 斯는 의미가 없다.
 
(11) 번식, 자라다,
《荀子》〈大略〉「有国之君,不息牛羊;錯質之臣,不息鷄豚」
나라를 가진 임금은 소와 양을 기르지 않고, 군주를 섬기는 신하는 닭과 돼지를 기르지 않는다
 
* 錯質之臣 (착질지신): '착질(錯質)'은 신하가 임금을 처음 뵐 때 예물(폐백)을 땅에 내려놓고 충성을 맹세하던 의식을 말합니다. 즉, 조정에 등용되어 벼슬길에 오른 공직자(신하)를 의미합니다.
 
또 《荀子》〈勸學〉「樹成蔭而衆鳥息焉,醯酸而蚋聚焉」
나무가 자라 그늘이 지면 많은 새들이 와서 쉬고, 식초가 시어지면 파리가 모여 든다.
 
 
* 순자(荀子, 기원전 313년경 ~ 기원전 238년경)는 춘추전국시대 말기 유학을 집대성하고, 당대 모든 사상을 비판적으로 흡수하여 현실적인 정치 철학을 완성한 거장입니다.
1. 유가(儒家)에 준 영향:
자사 맹자의 학문을 이어받았다. 하늘(天)을 도덕적 주체가 아닌 자연 현상일 뿐이라는 천인분리(天人分離) 관점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이로써 유학을 막연한 하늘의 뜻(천명)이 아닌, '인간 중심의 철학'에로 대 전환시켰습니다. 또한 공자의 '예(禮)'를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외적 규범이자 제도적 장치로 객관화·구체화했습니다.
 
2. 도가(道家)에 준 영향:
도가의 핵심 개념인 '도(道)'와 '자연(自然)'의 개념을 적극 수용했습니다. 도가처럼 하늘의 신비성을 제거하고 자연의 법칙성을 인정했으나, 도가와 달리 인간이 자연에 순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재물(자연)을 통제하고 이용해야 한다(制天命而用之)는 능동적인 주체성을 강조하며 도가 사상을 현실 변혁의 도구로 재 해석했습니다.
 
* 융합 비판적으로 녹여 내었다.
 
3. 법가(法家)에 준 영향: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순자가 강조한 외적 규범인 '예(禮)'는 통치자의 강력한 권위와 결합하면서 법가의 '법(法)'으로 진화하는 징검다리가 되었습니다. 인간의 본성을 불신하고 후천적인 강제력으로 통제해야 한다는 성악설은 법가 사상의 가장 탄탄한 심리적·이론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한비자는 순자의 성악설과 예치론을 계승하여 법·술·세를 결합한 법가 사상을 집대성했고, 이사는 진시황을 보필한 승상이 되어 법가 사상을 바탕으로 최초의 천하 통일을 이루었다.
 
 
* 이회(기원전 455년 ~ 기원전 395년)와 그의 제자 상앙 신도 신불회
이회(李悝)와 그의 사상적 영향을 받은 상앙, 신도, 신불해는 전국시대 초기부터 중기까지 법가(法家) 사상의 기틀을 다지고 발전시킨 핵심 인물들입니다.
역사적으로 이회가 법가의 시조로서 '법(法)'의 기초를 닦았다면, 상앙·신도·신불해는 그의 유산을 전수받아 각각 법(法)·세(勢)·술(術)이라는 법가 통치론의 3대 요소를 극대화한 인물들입니다. 이들의 관계와 역할 분담을 알기 쉽게 정리하면
 
1. 이회: 법가 사상의 위대한 시조이자 스승
이회는 전국시대 초기 위(魏)나라의 문후를 보좌해 최초로 '변법(제도개혁)'을 성공시킨 정치가이자 사상가입니다.
• 《법경(法經)》의 편찬: 그는 중국 역사상 최초의 체계적인 성문법전인 《법경》 6편을 저술했습니다. 이 책은 신분과 혈연 중심의 기존 귀족 질서를 타파하고, 오직 '법'에 의해서만 상벌을 내리는 법치의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 사상적 스승의 역할: 직접적인 사제 관계가 서류상 완벽히 남아있지 않더라도, 역사학계는 상앙, 신도, 신불해 모두 이회가 정립한 《법경》의 논리와 위나라의 변법 모델을 철저히 학습하고 연구하며 성장한 '이회의 사상적 제자들'로 정의합니다.
 
2. 세 갈래로 진화한 이회의 제자들: 법(法)·세(勢)·술(術)
이회 사후, 그의 유산은 세 명의 천재 사상가에 의해 세 가지 방향으로 분화·발전하였습니다. 한비자(韓非子)는 이 세 사람의 사상을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요약했습니다.
 
① 상앙(商鞅) ─ '법(法)'을 극대화하다
• 관계: 이회의 《법경》을 품에 안고 진(秦)나라로 건너가 강력한 변법을 시행한, 이회의 가장 정통적인 계승자입니다.
• 핵심 사상: 법(法) 중심주의입니다. 법이란 백성들이 알 수 있도록 명확하게 문서화하여 널리 선포하는 규범입니다.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법을 어기면 반드시 처벌하고(신상필벌), 군 공과 농업 생산량에 따라서 신분을 주는 제도를 확립하여 훗날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 압도적인 국력의 기반을 닦았습니다.
 
② 신도(愼到) ─ '세(勢)'를 발견하다
• 관계: 조나라 출신으로 제나라 직하학궁에서 활동한 이론가이며, 도가 사상을 바탕으로 이회의 법치를 재 해석했습니다.
• 핵심 사상: 세(勢) 중심주의입니다. '세'란 군주가 가진 권력과 지위, 즉 압도적인 힘의 권위를 뜻합니다. 신도는 "아무리 현명한 사람이라도 권력이 없으면 어리석은 자를 굴복시킬 수 없고, 평범한 군주라도 권력(세)만 쥐고 있으면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법을 집행하려면 군주의 절대적인 권위(세)가 먼저 확립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③ 신불해(申不害) ─ '술(術)'을 완성하다
• 관계: 한(韓)나라의 재상이 되어 국가 개혁을 이끈 실무 행정가이자 사상가입니다.
• 핵심 사상: 술(術) 중심주의입니다. '법'이 일반 백성을 향한 공개적인 규칙이라면, '술'은 군주가 마음속에 숨겨두고 신하들을 통제하고 조종하는 '인사 관리 및 통치 기술'입니다. 신하들의 실제 능력과 공적을 꼼꼼히 따져 책임을 묻는 정명책실(正名責實)의 원리를 제창했으며, 군주의 의중을 신하들에게 쉽게 간파 당하지 않아야 나라가 어지러워지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 요약: 법가 사상의 거대한 흐름
이들의 관계를 하나의 유기적인 흐름으로 묶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회가 최초로 법치의 표준 규범을 제정했고, 상앙은 그 법(法)을 온 나라에 엄격히 시행했으며, 신도는 법을 집행할 군주의 권위와 힘(勢)을 공고히 했고, 신불해는 교활한 신하들이 법을 망치지 못하도록 군주가 부리는 통치 기술(術)을 전수했습니다.
이 네 사람의 지혜와 이론은 세월이 흘러 춘추전국시대 말기, 우리가 잘 아는 한비자(韓非子)에 의해 "법·세·술 세 가지는 어느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될 제왕의 도구이다"라는 하나로 완벽하게 집대성됩니다.
 
 
* 귀곡자 (기원전 4세기 중반)
귀곡자는 중국 역사상 가장 베일에 싸인 신비로운 인물이자, 전국시대의 판도를 바꾼 천재들을 길러낸 종횡가(縱橫家, 외교·모략가 학파)의 시조입니다.
 
1. 귀곡자(鬼谷子), 그는 누구인가?
• 정체와 이름: 본명은 왕후(王詡)로 추정되나 명확하지 않으며, '귀신 골짜기(鬼谷)'라는 깊은 산중에 은거하며 제자들을 가르쳤기에 귀곡선생 또는 귀곡자라 불렸습니다.
• 지혜의 영역: 천문, 지리, 수학, 병법에 모두 정통했으나 특히 심리 분석, 변론술, 외교적 모략의 일인자였습니다. 상대를 말로 움직여 원하는 바를 얻어내는 유세(遊說)의 기술을 집대성한 책 《귀곡자》가 전해집니다.
 
2. 천하를 뒤흔든 귀곡자의 4대 제자
귀곡자는 평생 단 한 번도 관직에 나아가거나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골짜기에서 키워낸 네 명의 제자가 전국시대 일곱 나라(전국칠웅)의 국경선을 쥐락펴락했습니다.
제자들은 전공에 따라 크게 '외교(종횡가)'와 '병법(병가)' 두 조로 나뉩니다.
 
① 외교 조: 소진(蘇秦)과 장의(張儀) ─ 혀 하나로 천하를 쪼개다
• 소진 (합종책): 진(秦)나라를 제외한 나머지 6개국을 설득해 동맹을 맺게 한 인물입니다. 그 공로로 6개국의 재상 도장(인수)을 동시에 차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며 진나라의 동진을 15년간 막아냈습니다.
• 장의 (연횡책): 소진의 동문수학 친구이자 라이벌입니다. 소진이 구축한 6국 동맹을 깨기 위해 각국을 돌며 "강한 진나라와 개별적으로 손을 잡아야 살 수 있다"고 설득(연횡책)하여 동맹을 와해시키고 진나라 천하통일의 길을 열었습니다
 
② 병법 조: 손빈(孫臏)과 방연(龐涓) ─ 전장에서 맞붙은 비극의 라이벌
• 손빈: 바로 이 인물이 《손자병법》을 쓴 손무의 직계 후손(손자 또는 대손)입니다. 귀곡자 밑에서 방연과 함께 병법을 배웠습니다.
• 방연: 먼저 하산해 위(魏)나라의 장군이 되었으나, 동문인 손빈의 재능이 자신보다 뛰어남을 시기했습니다. 결국 손빈을 함정에 빠뜨려 부당한 형벌로 무릎뼈를 잘라내는(빈형, 臏刑) 잔혹한 짓을 저질렀습니다.
• 복수극: 불구가 된 채 제나라로 탈출한 손빈은 제나라의 군사가 되어 방연과 전장에서 마주칩니다. 손빈은 아궁이 숫자를 줄여 군사들이 도망치는 것처럼 속이는 '감소책'으로 방연을 좁은 계곡(마릉)으로 유인한 뒤 복수에 성공하고 방연을 자결하게 만들었습니다.
 
 
* 직하학궁은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왕들이 수도 임치에 세운 고대 중국 최초이자 최고의 국가적 학술 기구(오늘날의 국립 연구소 겸 대학)였습니다. 순자는 이곳의 역사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인물입니다.
• 학궁의 최고 권위자, '제주(祭酒)':
조나라 출신인 순자는 50대 무렵 직하학궁에 들어가 학술 활동을 펼쳤습니다. 뛰어난 학식으로 명성을 떨친 그는 학궁의 원장 혹은 총장 격이자 최고 원로 학자에게 주어지는 관직인 '제주'를 무려 세 번이나 역임(삼위제주, 三爲祭酒)했습니다.
 
• 종합적 사상의 완성지:
직하학궁은 유가, 도가, 법가, 명가, 음양가 등 수많은 학자들이 모여 치열하게 논쟁하던 '백가쟁명'의 용광로였습니다. 순자는 이곳에서 타 학파의 논리를 매일 접하며 그들의 장점을 흡수하고 단점을 반박하는 과정을 거쳤고, 그 결과물이 바로 그의 저서인 《순자》입니다.
 
• 한비자와 이사와의 만남:
순자가 직하학궁에서 학계를 리드하던 시절, 그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한비자와 이사를 제자로 거두어 가르친 곳 역시 바로 이 직하학궁 혹은 그 연장선상이었습니다.
요약하자면, 순자는 직하학궁이라는 학문적 자유 공간이 있었기에 유가·도가·법가를 아우르는 거대한 철학 체계를 완성할 수 있었고, 이곳에서 길러낸 제자들을 통해 진·한 시대의 정치 체제를 설계하는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12) 잠깐, 신속을 묘사할 때,
《史記》〈張耳陳余列傳〉「將軍無失時,時間不容息」
장군께서는 시기를 놓침이 없으니, 시간도 잠깐 쉬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快通(蒯通)謂武臣曰:「……今將軍兵少,分散趙地,德不素積。秦兵即至,彼其心不服,又無重賞之期,以此抗秦,難矣。將軍毋失時,時閒不容息。」 武臣乃聽之,遂立爲趙王。
 
지금 장군의 군사는 적고, 그나마 조(趙)나라 땅에 흩어져 있으며, 백성들에게 평소 덕을 쌓아 두지도 못하셨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秦)나라 군대가 곧 들이닥칠 텐데, 저들의 마음은 아직 장군께 복종하지 않고 있으며, 신하들에게 큰 상을 내릴 기약도 없습니다. 이런 처지로 진나라에 대항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장군께서는 이 기회를 절대 놓치지 마십시오. 기회의 틈새는 숨 돌릴 시간조차 주지 않습니다."
무신이 마침내 그의 말을 따랐고, 그리하여 자립하여 조왕(趙王)이 되었다.
 
(13) 안녕, 고요하다,
《左傳》昭公八年「若知君之及此,臣必致死禮以息楚」
"만약 주군(초나라 임금)께서 이 지경에까지 이르실 줄 알면, 신들은 반드시 목숨을 바쳐서 예(禮)를 다 함으로써 초나라를 안정시킬 것입니다."
 
(14) 없어지다,
《禮記》〈中庸〉「其人存則其政擧,其人亡則其政息」
그 사람(훌륭한 통치자)이 있으면 그 정치가 성盛하게 일어나고, 그 사람이 죽으면 그 정치는 없어진다."
 
(15) 위로하다,
《儀禮》〈鄕射禮〉「主人釋服,乃息司正」
주인이 예복을 벗으면, 이에 사정(司正, 의례 감독관)을 쉬게 한다
 
 

 
김영환교수의 동양고전아카데미 제366강(2024,11,07) 강의 교안
 
* 《論語》〈公冶長〉
5-7. 子曰:“道不行,乘桴浮于海,從我者,其由與!”子路聞之喜。
子曰:“由也好勇過我,無所取材。”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도가 행해지지 않으면 뗏목을 타고 바다로 떠다니겠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아마도 자로뿐이겠지!” 자로가 듣고 기뻐했다.
공자께서 말씀하기를 ” 자로가 용맹을 좋아하기를 나보다 더 좋아 하니, 다른 재주는 취할 바가 없다.”
 
(주석)
(1) 道 - 大道, 자신의 주장, 仁과 禮를 가리키고, 道의 구체적 표현은 忠恕, 中庸, 德治, 仁政이다.
(2) 桴 - 音fú,뗏목, 매우 큰 것은 簰, 큰 것은 筏,작은 것은 桴; 《論語注》「編竹木大者曰筏,小者曰桴」 또 《論語正義》「泭,本亦作(氵符),又作桴,或作柎。諸字惟桴是假字,餘皆同音異体也」
(3) 浮 - 표류하다, 이동하다
(4) 海 - 바다, 浮于海는 바다로 나갈 것이다. 어떤 사람은 「浮海指東夷,即渤海也」 또 어떤 사람은 「吳越」 또 어떤 사람은 「箕子所化之朝鮮」
(5) 從 - 따르다, 隨從
(6) 其 - 아마도, 대개, 추측을 나타냄
(7) 由 - 仲由(前542年-前480年),字子路,又字季路, 忠厚正直,力大勇武(結纓의 주인공), 七十二賢; 이 말은 子路가 의리가 있어서 자신을 따를 것이라고 추측함
(8) 與,歟와 동일
(9) 子路 - (7)참고
(10) 喜 - 기뻐하다, 《論語正義》「子路親師,雖相從患難,勿恤也」
(11) 好勇 - 용맹함을 과시하기 좋아하다.
(12) 材 - 桴를 만드는 木材(鄭玄) 또는 翦裁의 裁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모두 부적합하다. 哉와 통하고, 즉 감탄, 의문, 반문을 나타내는 語氣詞. 또는 才와 통하고 재능, 능력을 의미. 또는 자질(因材施教), 즉 용감하지만 다른 자질은 취할 것이 없구나.
 
* 재(材)의 해석에 대한 여러 가지 학설
1) 정현 ~ 목재
2) 하안 ~ 자르다 (翦載)
3) 주희 ~ 절제 판단, 가차자
4) 哉 (감탄 의문문) ~ 청나라 고증학
5) 재주, 재능 ~ 일부 현대 학자
 
 
* 은거 속성의 비교
 
 
 
* 儒家의 道와 道家의 道 초보적 구별
 
 
 
 
 
 
 
 
* PPT 13매중 4매만 올립림니다.
 
 
2026.7.9 주정봉 강의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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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