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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의 별전가담항설의지식창고 2026.07.15. 14:52 (2026.07.15. 14:40)

알키오네와 케익스 – 겨울 바다의 약속

 
새벽별의 아들 케익스와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의 딸 알키오네는 서로를 누구보다 사랑한 부부였다. 그러나 불길한 징조의 뜻을 묻기 위해 바다를 건넌 케익스는 폭풍에 휩쓸려 목숨을 잃고 만다. 남편의 죽음을 모른 채 무사 귀환만을 기도하던 알키오네는 꿈을 통해 진실을 알게 되고, 결국 사랑하는 이를 따라 바다로 뛰어든다. 두 사람의 변함없는 사랑에 마음을 움직인 신들은 그들을 물총새로 바꾸어 영원히 함께 날게 하였고, 겨울 바다는 그들의 둥지를 지키기 위해 잠시 평온을 되찾게 되었다.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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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키오네와 케익스 – 겨울 바다의 약속
 
 
 

개요

 
새벽별의 아들 케익스와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의 딸 알키오네는 서로를 누구보다 사랑한 부부였다. 그러나 불길한 징조의 뜻을 묻기 위해 바다를 건넌 케익스는 폭풍에 휩쓸려 목숨을 잃고 만다. 남편의 죽음을 모른 채 무사 귀환만을 기도하던 알키오네는 꿈을 통해 진실을 알게 되고, 결국 사랑하는 이를 따라 바다로 뛰어든다. 두 사람의 변함없는 사랑에 마음을 움직인 신들은 그들을 물총새로 바꾸어 영원히 함께 날게 하였고, 겨울 바다는 그들의 둥지를 지키기 위해 잠시 평온을 되찾게 되었다. '할키온의 날'의 기원을 전하는,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이다.
 
 
 

제1장 떠나는 왕

1.1 새벽별의 아들
 
케익스는 새벽별의 신 에오스포로스의 아들로 태어나 트라키스를 다스리는 왕이 되었다. 그는 뛰어난 무력으로 이름을 떨친 영웅은 아니었지만, 온화한 성품과 공정한 판단으로 백성들의 신뢰를 받는 현명한 군주였다. 그의 곁에는 바람을 다스리는 신 아이올로스의 딸 알키오네가 있었다. 두 사람은 신의 혈통을 이어받은 고귀한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권력과 명예보다 서로를 아끼는 마음을 더 소중하게 여겼다.
 
알키오네는 왕비의 지위보다 남편의 벗으로 살아가는 것을 더 기쁘게 여겼다. 케익스가 나라의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면 곁에서 의견을 나누었고, 왕 역시 그녀의 지혜와 판단을 깊이 신뢰하였다. 두 사람은 화려한 연회보다 함께 정원을 거닐거나 바닷가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즐겼다. 백성들은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만 보아도 나라의 평화가 오래 이어질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케익스의 마음 한편에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 슬픔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랑하던 동생 다이달리온이 딸 키오네의 죽음을 견디지 못하고 절벽에서 몸을 던졌다가 매로 변한 뒤부터, 그는 인간의 행복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절감하였다. 알키오네와 함께하는 평온한 삶은 여전히 소중했지만, 그들의 왕궁에도 운명의 어두운 그림자가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트라키스 왕궁 정원에서 함께 걷는 케익스와 알키오네
 
 
1.2 불길한 징조
 
동생 다이달리온이 인간의 모습을 잃고 매가 된 뒤에도 케익스의 슬픔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 비극을 뒤따르듯 그의 주변에서는 뜻을 알 수 없는 기이한 징조들이 이어졌다. 케익스는 이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신들이 자신의 집안과 나라에 또 다른 운명을 예고하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아무런 대비 없이 불행을 기다릴 수 없었던 그는 신탁을 통해 신들의 뜻을 확인하기로 결심하였다.
 
본래 케익스는 그리스에서 가장 이름 높은 델포이의 신탁소를 찾아가려 하였다. 그러나 포르바스가 이끄는 플레기아이인들이 델포이로 향하는 길을 장악하고 있어 육로로는 신전에 접근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바다를 건너 소아시아의 클라로스에 있는 아폴론의 신탁소를 찾아가기로 하였다. 위험한 항해였지만, 왕으로서 불길한 징조의 뜻을 외면한 채 나라와 백성을 불안 속에 내버려 둘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알키오네의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녀는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의 딸로 태어나 누구보다 바다의 변덕과 바람의 힘을 잘 알고 있었다. 잔잔한 바다는 한순간에 거대한 무덤으로 변할 수 있었고, 한 번 동굴 밖으로 풀려난 바람은 거센 파도를 일으키며 모든 배를 삼킬 수 있었다. 알키오네는 케익스가 신탁의 답을 듣기도 전에 바다에서 더 큰 불행을 만나게 될 것만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불길한 징조를 바라보며 클라로스 신탁으로 떠나기를 결심하는 케익스
 
 
1.3 떠나지 말아요
 
알키오네는 케익스의 두 손을 붙잡고 바닷길만은 포기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 아이올로스가 거센 바람들을 동굴 속에 가두어 다스리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들이 한꺼번에 풀려나면 잔잔하던 바다도 순식간에 뒤집히며, 아무리 튼튼한 배와 노련한 선원도 그 힘을 막아 낼 수 없었다. 그녀의 두려움은 막연한 불안이 아니라 바람과 바다를 아는 사람이 느끼는 절박한 경고였다.
 
케익스는 나라에 닥칠지도 모르는 재앙을 모른 척할 수 없다고 설명하였다. 경험 많은 선원들이 함께하고 신탁을 받는 즉시 돌아올 것이므로 지나치게 걱정하지 말라고 아내를 달랬다. 그러나 알키오네는 그 말을 듣고도 마음을 놓지 못하였다. 반드시 떠나야 한다면 자신도 함께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였다. 같은 배에 있다면 적어도 남편과 운명을 함께할 수 있지만, 궁전에 홀로 남아 아무것도 모른 채 기다리는 일은 견딜 수 없다고 호소하였다.
 
케익스 역시 아내의 간청에 마음이 흔들렸지만, 위험한 바다에 알키오네를 데려갈 수는 없었다. 그는 아내를 품에 안고 자신이 겪을지 모르는 위험으로부터 그녀만큼은 지키고 싶다고 말하였다. 알키오네는 더는 남편의 뜻을 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눈물을 흘렸다. 서로를 누구보다 사랑했기에 한 사람은 함께 가기를 원했고, 다른 한 사람은 사랑하는 이를 남겨 두려 하였다. 그러나 그 선택이 두 사람의 마지막 이별이 되리라는 사실은 아직 누구도 알지 못하였다.
 
케익스의 두 손을 붙잡고 바닷길을 만류하는 알키오네
 
 
1.4 마지막 작별
 
출항하는 날 아침, 항구에는 평소와 다름없이 잔잔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선원들은 배를 물가로 밀어 넣고 돛과 밧줄을 점검하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겉으로는 모든 것이 평화로워 보였지만 알키오네의 마음속에서는 이미 거센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그녀는 케익스의 망토를 마지막으로 다듬어 주며 반드시 무사히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켜 달라고 거듭 부탁하였다.
 
케익스는 아내를 품에 안고 아버지인 새벽별의 빛을 걸어 맹세하였다. 운명이 허락한다면 달이 두 번 차기 전에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이었다. 알키오네의 눈물을 닦아 준 그는 애써 미소를 지었지만, 배가 부두에서 떨어지기 시작하자 그의 얼굴에서도 웃음이 사라졌다. 갑판 위에 선 케익스는 멀어지는 아내를 향해 몇 번이고 손을 흔들었고, 알키오네도 흰 돛이 희미해질 때까지 물가를 떠나지 않았다.
 
배가 수평선 너머로 완전히 사라지자 알키오네는 힘없이 시녀들의 부축을 받으며 궁전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케익스가 돌아올 날을 헤아리며 그가 입을 옷과 자신이 맞이할 때 입을 옷을 함께 준비하였다. 또한 매일 헤라의 제단을 찾아 남편의 무사 귀환을 기도하였다. 그러나 그녀가 다시 만날 순간을 상상하고 있는 동안, 먼바다에서는 검은 구름이 모여들고 있었다. 케익스가 약속한 두 달은 시작되었지만, 운명은 그에게 돌아올 시간을 허락하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항구를 떠나는 배와 눈물로 손을 흔드는 케익스와 알키오네
 
 
 

제2장 폭풍과 꿈

2.1 검은 바다
 
출항 직후 한동안 항해는 순조로웠다. 바다는 잔잔했고, 순풍은 돛을 부드럽게 밀어 주었다. 선원들은 노를 거두고 돛을 높이 올린 채 바람에 배를 맡겼다. 케익스도 갑판에 서서 멀어지는 고향 쪽을 바라보며, 신탁을 받은 뒤 서둘러 돌아갈 날을 생각하였다. 항구에서 눈물을 흘리던 알키오네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지만, 그는 자신이 괜한 걱정을 안겨 준 것뿐이라 믿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나 배가 양쪽 해안에서 모두 멀어지고 아직 바다를 절반도 건너지 못했을 무렵, 날이 저물면서 하늘의 표정이 갑자기 변하기 시작하였다. 먼 곳에서 검은 구름이 몰려와 마지막 햇빛을 가렸고, 잔잔하던 바다는 거대한 숨을 들이쉬듯 요동치기 시작했다. 거센 바람들이 서로 뒤엉켜 사납게 울부짖었고, 높은 파도는 산처럼 솟아올라 배를 집어삼킬 듯 덮쳐 왔다. 선장은 황급히 돛을 내리라고 외쳤지만 바람은 이미 돛과 밧줄을 거칠게 뒤흔들고 있었다.
 
순식간에 하늘과 바다의 경계는 사라졌다. 번개가 번쩍일 때마다 거대한 파도와 기울어진 배가 잠깐씩 모습을 드러냈다가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인간이 아무리 노를 젓고 밧줄을 붙잡아도 자연의 힘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케익스는 자신이 두려워하던 징조가 바로 이 순간을 가리키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신탁의 답을 듣기도 전에 운명이 먼저 그를 찾아온 것이었다.
 
거센 폭풍과 검은 파도에 휩싸여 기울어지는 케익스의 배
 
 
2.2 마지막 기도
 
폭풍은 밤이 깊어질수록 더욱 거세졌다. 거대한 파도가 갑판을 덮칠 때마다 선원들은 바닷물과 함께 바다로 휩쓸려 갔고, 부러진 돛대는 배를 산산조각 내기 시작하였다. 누구는 포세이돈의 이름을 외쳤고, 누구는 제우스에게 살려 달라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폭풍 속에서는 그 어떤 기도도 들리지 않는 듯하였다. 사람들의 외침은 천둥소리에 묻혀 사라졌고, 끝내 배는 거대한 파도에 두 동강이 나며 검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하였다.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떨어진 케익스는 부서진 널빤지를 붙잡고 마지막 힘으로 물 위에 몸을 띄웠다. 그는 이미 자신의 운명이 끝나 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왕국도, 왕관도, 아폴론의 신탁도 떠오르지 않았다. 항구에서 마지막까지 눈물을 흘리며 손을 흔들던 알키오네의 모습만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지금도 자신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도하고 있을 아내를 생각하자 차가운 바닷물보다 더 큰 슬픔이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케익스는 마지막 힘을 다해 하늘을 향해 기도하였다. "신들이시여, 제 목숨은 거두어 가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아내가 끝없는 기다림 속에서 평생 저를 기다리게 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살아 돌아갈 수 없다면 제 몸만이라도 그녀가 있는 고향 바다로 보내 주십시오. 그녀가 제 죽음을 알고 마지막 작별이라도 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의 기도가 끝나자 거대한 파도가 다시 덮쳐 왔다. 새벽별의 아들은 끝까지 알키오네의 이름을 부르며 깊은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부서진 널빤지를 붙잡고 마지막 기도를 올리는 케익스
 
 
2.3 잠의 신이 보낸 꿈
 
한편 왕궁에서는 아무것도 모른 채 알키오네가 매일 헤라의 제단을 찾아 남편의 무사 귀환을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는 케익스를 위해 새 옷을 만들고, 돌아오는 날 함께할 식사를 준비하며 하루하루를 기다렸다. 이미 세상을 떠난 이를 위해 살아 있는 사람처럼 기도하는 그녀의 모습은 헤라의 마음마저 무겁게 만들었다. 더 이상 헛된 희망 속에 머물게 둘 수 없다고 판단한 헤라는 무지개의 여신 이리스를 잠의 신 히프노스에게 보내 진실을 전하도록 명하였다.
 
히프노스는 세상의 모든 소리가 닿지 않는 깊은 동굴에서 잠들어 있었다. 그곳에는 새의 울음도, 개 짖는 소리도,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레테 강의 잔잔한 물소리만이 어둠 속을 흐르며 끝없는 졸음을 불러일으켰다. 침상 주위에는 수많은 꿈들이 안개처럼 떠다니고 있었고, 히프노스는 그 가운데에서도 인간의 모습과 목소리를 가장 완벽하게 흉내 내는 아들 모르페우스를 불렀다.
 
죽은 케익스의 모습으로 알키오네의 꿈에 나타나라. 아버지의 명을 받은 모르페우스는 젖은 머리카락과 찢어진 옷, 창백한 얼굴까지 그대로 재현한 채 조용히 왕궁으로 향하였다. 그날 밤 알키오네의 침실에 나타난 이는 살아 돌아온 남편이 아니라, 마지막 이별을 전하기 위해 찾아온 꿈의 사자였다.
 
잠의 동굴에서 케익스의 모습으로 변하는 모르페우스
 
 
2.4 꿈이 전한 이별
 
꿈속의 케익스는 물에 젖은 모습 그대로 알키오네 앞에 서 있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내의 이름을 부른 뒤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알키오네, 더 이상 항구에서 나를 기다리지 마오. 폭풍이 내 배를 삼켰고,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오.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의 이름을 불렀지만 끝내 돌아갈 수 없었소. 살아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오."
 
알키오네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남편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그녀의 두 팔은 허공만을 껴안을 뿐 아무것도 붙잡지 못하였다. 케익스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이제 헛된 희망을 버리고 나를 위해 슬퍼해 주시오. 신들이 내 몸을 당신 곁으로 보내 준다면 마지막 작별만은 해 주기를 바라오."라고 말하였다. 그의 모습은 물안개처럼 점점 희미해졌고, 끝내 새벽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알키오네는 울부짖으며 그의 이름을 불렀고, 그 외침에 스스로 잠에서 깨어났다. 얼굴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가슴은 미친 듯 뛰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이 단순한 악몽이 아니라 신들이 전한 마지막 인사임을 직감하였다. 날이 밝자마자 그녀는 남편을 마지막으로 배웅했던 해안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자신의 운명을 바꾸게 될 마지막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아직 알지 못한 채였다.
 
꿈속에서 알키오네에게 마지막 이별을 전하는 케익스
 
 
 

제3장 겨울 바다의 약속

3.1 다시 만난 두 사람
 
날이 밝자 알키오네는 상복을 걸친 채 남편을 마지막으로 배웅했던 해안으로 향하였다. 그녀는 방파제 끝에 서서 케익스의 배가 사라졌던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꿈이 전한 죽음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그것이 거짓이기를 바라고 있었다. 혹시 신들이 자신의 믿음을 시험한 것은 아닐까, 혹시 남편이 먼바다에서 흰 돛을 올리고 돌아오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희미한 기대를 끝내 버리지 못하였다.
 
그때 파도 위에서 검은 물체 하나가 해안을 향해 밀려오는 것이 보였다. 처음에는 난파선에서 떨어져 나온 나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물결이 그것을 가까이 밀어 올릴수록 사람의 팔과 어깨, 물에 젖은 머리카락이 차례로 드러났다. 알키오네는 이름 모를 사람이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다며 안타까워하다가, 익숙한 얼굴을 알아보고 숨을 멈추었다. 꿈속에서 보았던 창백한 모습 그대로, 케익스가 두 눈을 감은 채 고향 해안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알키오네는 남편의 이름을 외치며 방파제 위를 달려갔다. 그녀에게는 더 이상 자신의 삶과 케익스의 운명을 따로 생각할 수 없었다. 마지막까지 고향으로 보내 달라던 그의 기도는 이루어졌지만, 살아 돌아오겠다는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못하였다. 알키오네는 바다가 두 사람을 갈라놓도록 두지 않겠다는 듯 케익스를 향해 몸을 던졌다. 그녀의 발이 방파제를 떠나는 순간, 인간의 힘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변화가 시작되었다.
 
파도에 떠밀려 온 케익스의 시신을 발견하는 알키오네
 
 
3.2 신들의 자비
 
알키오네의 몸이 바다를 향해 떨어지는 순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그녀의 두 팔에는 부드러운 깃털이 돋아나기 시작했고, 몸은 점점 가벼워지며 작은 새의 형상으로 변하였다. 그녀는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은 채 수면 위를 스치듯 날아 케익스에게 다가갔다. 인간의 말은 사라졌지만, 슬프게 울어 대는 새소리에는 남편을 향한 사랑과 그리움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그녀는 부리로 그의 차가운 얼굴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신들은 끝내 두 사람을 외면하지 못하였다. 알키오네가 차가운 입술에 부리를 맞추자 물 위에 떠 있던 케익스의 얼굴이 희미하게 움직였다.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파도가 그의 몸을 들어 올린 것인지, 그가 아내의 마지막 입맞춤을 느낀 것인지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케익스는 분명 알키오네의 슬픔을 느끼고 있었다. 신들의 자비가 두 사람에게 내려오자 그의 굳어 있던 팔에도 깃털이 돋았고, 젖은 몸은 서서히 새의 형상으로 변하였다. 두 마리의 새는 서로를 알아본 듯 날개를 맞대고 바다 위를 함께 날기 시작하였다.
 
비록 왕과 왕비의 모습은 잃었지만, 그들은 이제 어떤 폭풍도 갈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인간으로 함께하지 못한 시간을 대신하듯 파도 위를 나란히 날며 서로를 지켰고, 신들이 내린 마지막 선물은 과거의 삶을 되돌려 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모습으로 영원히 함께할 시간을 허락하는 것이었다.
 
물총새로 변한 알키오네가 케익스에게 마지막 입맞춤
 
 
3.3 할키온의 날
 
물총새가 된 알키오네와 케익스는 바다 가까이에 둥지를 틀고 새로운 삶을 이어 갔다. 알키오네는 겨울이 깊어지는 때면 파도 위에 낮게 매달린 둥지에서 알을 낳아 품었다. 그러나 겨울 바다는 여전히 거칠었고, 높은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작은 둥지는 금세 휩쓸려 갈 듯 위태롭게 흔들렸다. 인간이었을 때 케익스를 빼앗아 간 폭풍이 이제는 두 사람의 새끼와 새로운 삶마저 위협하고 있었다.
 
딸의 모습을 지켜본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는 깊은 연민을 느꼈다. 그는 알키오네가 알을 품는 한겨울의 일곱 날 동안 모든 바람을 동굴 속에 가두었다. 북풍과 남풍, 동풍과 서풍이 잠잠해지자 거세게 일던 파도는 잦아들고 검은 구름도 걷혔다. 바다는 거울처럼 고요해졌으며, 알키오네와 케익스는 폭풍의 위협 없이 둥지를 지키고 새끼를 품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된 아이올로스가 자손들을 위해 마련한 짧은 평화였다.
 
사람들은 한겨울에 찾아오는 이 고요한 시기를 알키오네의 이름을 따 ‘할키온의 날(Halcyon Days)’이라 불렀다. 가장 차갑고 거친 계절에도 잠시 따뜻하고 평화로운 날이 찾아오는 것은, 죽음마저 갈라놓지 못한 부부와 그들의 새끼를 위해 바람이 쉬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이후 ‘할키온의 날’은 겨울 바다의 평온뿐 아니라 걱정과 혼란이 사라진 행복하고 평화로운 시절을 뜻하는 말로도 오래도록 전해지게 되었다.
 
고요한 겨울 바다 위 둥지에서 새끼를 품는 물총새 부부
 
 
3.4 겨울 바다의 약속
 
알키오네와 케익스의 이야기는 죽음을 없던 일로 만들고 잃어버린 삶을 되돌린 기적의 이야기가 아니다. 케익스는 살아서 왕궁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알키오네 역시 인간으로서 누리던 행복으로 되돌아갈 수 없었다. 신들조차 이미 일어난 비극을 지우거나 두 사람에게 과거의 삶을 돌려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를 잊지 않았고, 바로 그 변함없는 사랑이 신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케익스는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목숨보다 아내가 끝없이 기다리게 될 일을 먼저 걱정하였다. 알키오네는 남편이 떠난 뒤에도 기도를 멈추지 않았으며, 꿈을 통해 진실을 알게 된 뒤에는 망설임 없이 그에게 달려갔다. 두 사람의 사랑은 인간으로 살아 있을 때뿐 아니라 죽음이 찾아온 뒤에도 끊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신들은 그들에게 이전의 삶을 돌려주는 대신, 새로운 모습으로 영원히 함께할 시간을 허락하였다.
 
겨울 바다가 잠시 고요해질 때마다 사람들은 물결 위를 나란히 나는 물총새 한 쌍을 떠올렸다. 폭풍은 다시 찾아오고 평온한 날도 오래 머물지는 않지만, 사랑이 남긴 짧은 고요는 해마다 같은 계절에 되돌아왔다. 그것은 가장 차갑고 거친 시간에도 사랑과 희망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겨울 바다의 약속이었다. 알키오네와 케익스는 그렇게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부부로 영원히 기억되었다.
 
잔잔한 겨울 바다 위를 나란히 날아가는 물총새 부부
【작성】 가담항설 - 떠도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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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