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메인화면 (다빈치!지식놀이터)  
지식놀이터
지식자료
지식자료 구독
구독 내역
게시판
게시판
작업요청
최근 작업 현황
지식창고
지식창고 개설 현황
자료실
사용자메뉴얼
about 지식놀이터

사마천 사기 강의 자료 요약김영환교수의 지식창고 2026.07.19. 23:29 (2026.07.19. 22:57)

동양고전 아카데미 431강 강의자료 요약(2026.7.16)

 
司馬遷《史記》 原文 강독, 부수적으로 (1)唐詩 〈旅夜書懷〉와 작자 杜甫 및 주요 단어(旅夜,書懷,細草,微風,危檣,獨夜舟,星垂,月涌,官休,飄飄,何所似,沙鷗.. 등)과 자연묘사, 자조적 한탄, 시상의 점층적 전개, 예술적 특징 등 감상 포인트에 대해서 설명 ; (2)愼의 金文과 《說文解字》에서의 문자학적 의미 설명 ; (3)法家의 대표적 인물 商鞅(法-法律, 刑無貴賤, 信賞必罰), 愼到(勢-君主權威, 勢位足以屈賢), 申不害(術-官吏統制, 刑名賞罰)에 대한 설명 ; (4)중국 고대 字(辭)典의 系譜(《爾雅》《說文解字》《玉篇》《廣雅》《廣韻》《字彙》《康熙字典》)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 ; (5)《論語》〈公冶長〉「由也, 千乘之國, 可使治其賦也」에서 賦의 문자학적 의미, 문헌에 나타난 다양한 의미, 역대 注釋家의 해석, 현재 학계의 통설 등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 ; (6)賦(田賦, 兵賦, 戶賦)와 稅의 차이 및 각 王朝의 세금제도(租庸調, 兩稅法, 一條鞭法, 地丁銀制)에 대하여 설명 ; (7)萬乘之國, 千乘之國, 百乘之家의 차이와 각 乘에 소속된 병사의 인원과 역할 등에 대하여 설명 ; (8)將의 甲骨文과 《說文解字》에서의 문자학적 의미 설명 ; (9)《史記》〈陳涉世家〉에 나타난 5대 宣傳煽動 名言에 대하여 설명 ; (10)耒者不迎,去者不將과 來者不拒,去者不追(留) 비교 설명 등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하였습니다
동양고전 아카데미 431강 강의자료 요약(2026.7.16)
 
2026년 7월 16일 서울시 50+센터 중부캠퍼스(마포구 공덕동)
 
 
 
 
 
 
1. 당시제목: 여야서회
2. 작자: 두보(杜甫, 712~770 )
 
427강 참조
 
 
 
 
 
 
* 교수님 ppt 자료 16매중 5매만 오림니다.
 
 

 
김영환교수의 동양고전아카데미 제366강(2024,11,07) 강의 교안
 
* 《論語》〈公冶長〉
5-7. 子曰:“道不行,乘桴浮于海,從我者,其由與!” 子路聞之喜。子曰:“由也好勇過我,無所取材。”
 
 

 
《史記》〈周本紀〉4-023
1. 愼 - 金文, 원래는 조심하다
 
《說文解字》「慎,謹也。從心,真聲」
“신은 조심하다”이다. 마음 부를 따르고, 소리는 ‘진“을 따른다.
 
(1) 근심하다,
張揖《廣雅》〈釋詁一〉「慎,憂也」
”신은 근심한다“이다.
 
 
* 중국의 위(魏)나라 때 장집(張揖)이 편찬한 《광아(廣雅)》는 한나라 때의 자전(字典)인 《이아(爾雅)》를 계승하고 확장한 고대 중국의 대표적인 훈고학(자구의의미를 해석하는 학문) 사전입니다.
여기서 책 이름인 ‘광아(廣雅)’는 “《이아(爾雅)》를 넓혔다(廣)”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1.《광아》가 탄생한 배경
고대 중국에는 가장 오래된 어휘 사전인 《이아(爾雅)》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단어들이 많이 생겨났고, 기존 단어들의 의미도 변하거나 확장되었습니다.
박학다식했던 박사(博士) 장집은 《이아》에 실리지 않은 한나라, 위나라 시대의 새로운 어휘들과 복잡해진 문헌 속 글자들을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이에 주나라·한나라 시대의 시가, 산문, 전고(典故) 등을 폭넓게 수집하여 《이아》의 체제를 그대로 모방해 이 책을 지었습니다.
 
2. 책의 구성과 특징
《광아》는 총 3 권 19 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이아》의 19 편 구성 체제와 완전히 일치합니다.
• 기존 사전의 확장: 《이아》에 수록된 어휘가 약 4,300 여 개였던 반면, 《광아》는 그보다 훨씬 많은 총 18,150 개의 어휘를 수집하여 분류했습니다.
• 백과사전식 분류: 단순한 자구 해석을 넘어 천문(釋天), 지리(釋地), 가옥(釋宮), 기구(釋器), 음악(釋樂), 동식물(釋鳥, 釋獸, 釋魚, 釋草, 釋木) 등 세상의 만물을 부문별로 나누어 정리한 일종의 고대 백과사전이기도 합니다.
 
3. 후대에 이름이 바뀐 사연 (박아)
수나라 때, 수 양제의 이름이 양광(楊廣)이었습니다. 당시 중국에서는 황제의 이름에 쓰인 글자를 피해야 하는 피휘(避諱) 전통이 엄격했기 때문에, 《광아》의 ‘광(廣)’ 자를 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나라와 당나라 시기에는 이 책을 《박아(博雅)》라고 바꾸어 불렀습니다. (뜻은 ‘넓고 우아하다’로 비슷합니다.)
 
4. 학술적 가치와 왕념손의 《광아소증》
《광아》는 본래 글자의 뜻만 나열되어 있고 구체적인 출처나 논리적인 설명이 부족해 읽기 어려운 책이었습니다. 이를 완벽하게 보완하며 《광아》를 세계적 고문헌의 반열에 올린 인물이 청나라의 고증학자 왕념손(王念孫)입니다.
왕념손은 《광아》의 어휘들을 하나하나 고증하고, 소리(음운)와 뜻(훈고)의 관계를 밝혀 《광아소증(廣雅疏證)》이라는 거대한 주석서를 남겼습니다.
오늘날 선진(先秦) 시대부터 한·위 진나라 시대에 이르는 고대 문헌을 읽을 때, 단어의 정확한 유래와 옛 뜻을 파악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중국 고전학술 연구의 필수 도서로 꼽힙니다.
 
 
(2) 順과 통하고, 따르다,
《墨子》〈天志中〉「本察仁義之本,天之意,不可不慎也」
본래 인과 의의 근본을 살펴 하능의 뜻은 따르지 않을 수 없다.
 
(3) 姓氏, 陳彭年、丘雍 等,
《廣韵》〈震韵〉「慎,姓,古有慎到」
신은 성씨이다. 옛날에 “신도”가 있었다.
 
 
* 중국 제자백가 중 하나인 법가(法家) 사상에서 신도(愼到, 기원전 약 350~275 년)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흔히 법가의 세 가지 핵심 통치 수단인 법(法)·술(術)·세(勢) 중 '세(勢)'를 본격적으로 정립하고 강조한 사상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신도의 사상과 법가에서의 의의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신도 사상의 핵심: 세(勢)의 강조
신도는 통치자가 백성을 다스리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도덕적 덕성이나 뛰어난 지혜보다, 그 자리가 주는 권력과 권위(세, 勢)가 본질적이라고 보았습니다.
•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신도는 "나는 용이 구름을 타고, 뱀이 안개를 타는 것과 같다"는 비유를 들었습니다. 용과 뱀이 신령스러운 동물이라도 구름과 안개가 없으면 지렁이와 다를 바 없고, 반대로 평범한 인물이라도 왕의 자리에 있으면 천하를 호령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 현능(賢能)의 부정: 통치자가 현명하고 유능할 필요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오히려 통치자 개인의 지혜에 의존하면 정치가 불안정해지므로, 통치자는 오직 '세(勢, 권력의 지위)'를 굳건히 쥐고만 있으면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2. 도가(道家) 사상과의 연결 (도가적 법가)
신도는 원래 제나라의 직하학파(稷下學派)에서 활동하며 황로학파(도가의 일파)의 영향을 깊게 받았습니다. 이 때문에 그의 법가 사상에는 도가적 색채가 짙게 남아 있습니다.
• 인위(人爲)의 배제와 수동성: 통치자가 스스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말고(무위, 無위), 객관적인 법과 권력의 구조가 스스로 작동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 사사로운 마음을 버림(기사, 棄私): 통치자 개인의 감정이나 판단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상벌을 주어야 나라가 안정된다고 보았습니다.
 
3. 한비자(韓非子)로의 계승과 집대성
신도의 '세(勢)' 사상은 이후 한비자에 의해 법가 사상으로 완벽하게 통합됩니다. 한비자는 신도의 사상을 수용하면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신도는 ‘세(勢)'만 있으면 된다고 보았지만, 한비자는 "신도의 세(勢)에 상앙의 법(法)과 신불해의 술(術)이 결합되어야만 완벽한 통치가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즉, 신도는 한비자가 법가 사상을 집대성할 수 있도록 거대한 기둥 하나를 세워준 셈입니다.
요약하자면 신도는 인간의 도덕성이나 지혜 대신, **체제와 직위가 주는 권력(세,勢)**의 힘을 꿰뚫어 본 사상가였습니다. 그의 이론은 객관적인 법치와 군주의 절대권력을 옹호하는 후대 법가 사상의 핵심적 기초가 되었습니다.
 
 
(4) 三의 별칭,
董仲舒, 《春秋繁露》〈官制象天〉「其率三臣而一慎,故八十一元士爲二十七慎
세 신하를 1신이라 한다.그런 까닭에 81원사는 27신 이다.
 
(5) 天神의 이름,
《左傳》襄公十一年「司慎,司盟」
하늘의 신을 관리하고, 하늘의 신 맹을 관리한다.
 
(6) 조용한,
《爾雅》〈釋詁上〉「慎,靜也」
“신은 고요하다.“
 
(7) 생각하는,
顧野王, 《玉篇》〈心部〉「慎,思也」
”신은 생각하다.”
 
 
 
(8) 정성,
《爾雅》〈釋詁上〉「慎,誠也」
“신은 정성이다.”
 
(9) 지명,
《左傳》哀公十六年「吳人伐慎,白公敗之」
오나라 사람이 신을 정벌했다. 백공이 패했다.
 
 
* 백공승(白公勝)은 중국 춘추시대 말기 초나라의 왕족이자, 역사에 큰 파장을 남긴 ‘백공 승의 난’의 주인공입니다.
본명은 미승(羋勝) 또는 웅승(熊勝)이며, 백읍(白邑)이라는 지역에 봉해졌기 때문에 흔히 '백공승' 또는 '백공 승'으로 불립니다. 그는 개인적인 복수심과 권력욕이 얽혀 초나라 조정을 뒤흔든 비극적인 인물입니다.
 
백공승의 생애와 그가 일으킨 사건의 핵심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망명 생활과 비극적인 출생
백공승은 초나라 평왕(平왕)의 태자였던 웅건(태자 건)의 아들이었습니다.
당시 초 평왕은 간신 비무기의 모함을 믿고 태자 건을 폐위하려 했습니다. 신변의위 협을 느낀 태자 건은 아들 승을 데리고 송나라, 정나라 등으로 망명길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정나라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중, 태자 건이 정나라를 전복하려는 음모에 휘말려 처형당하고 맙니다.
홀로 남은 어린 승은 아버지를 죽인 정나라에 깊은 원한을 품게 되었고, 이후 오나라로 도망쳐 그곳에서 성장했습니다. 이때 초나라에 원수를 갚으려던 명장 오자서 밑에서 보호를 받으며 복수심을 키웠다고 전해집니다.
 
2. 초나라 귀환과 복수의 칼날
기원전 487 년, 초나라의 영윤(재상)이었던 자서(子西)가 망명객이었던 승을 가엾게 여겨 초나라로 불러들였습니다. 자서는 그를 백읍(白邑)의 수령으로 임명하고 '백공'이라는 칭호를 주었습니다.
초나라 조정을 지배하던 자서 등은 승이 과거의 원한을 잊고 충성하기를 바랐으나, 승의 머릿속은 오직 아버지의 원수인 정나라를 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는 백읍에서 군사를 훈련시키고 민심을 모으며 때를 기다렸습니다.
 
3. 백공 승의 난 (기원전 479 년)
백공승은 마침내 정나라를 공격할 기회를 잡고 초나라 조정에 군사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초나라 조정(영윤 자서)은 정나라가 진(晉)나라와 동맹을 맺었다는 이유로 군사를 내주지 않았고, 오히려 정나라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려 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백공승은 타깃을 정나라에서 초나라 조정 자체로 돌리게 됩니다. 왕위를 빼앗아서라도 복수를 완수하겠다고 다짐한 것입니다.
• 반란의 서막: 기원전 479 년, 백공승은 오나라의 침공을 막아냈다는 핑계로 군대를 이끌고 수도인 영성(郢城)에 입성했습니다.
• 조정 장악: 그는 자신을 거두어주었던 영윤 자서와 사마 자기를 살해하고, 당시 군주였던 초 혜왕(소왕의 아들)을 사로잡아 감금했습니다.
• 반란의 진압: 그가 권력을 잡은 것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초나라의 명신이자 섭현의 행정관이었던 섭공 심제량(沈諸梁)이 이 소식을 듣고 정의군을 일으켜 수도로 진격했습니다. 백공승의 군대는 섭공의 군대와 수도 주민들의 반격에 밀려 대패했습니다.
• 최후: 막다른 길에 몰린 백공승은 산속으로 도망쳤으나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반란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김영환교수의 동양고전아카데미 제367강(2024,11,14) 강의 교안
 
* 《論語》〈公冶長〉
5-8. 孟武伯問:“子路仁乎?” 子曰:“不知也。” 又問。子曰:“由也,千乘之国,可使治其賦也,不知其仁也。” “求也何如?” 子曰:“求也,千室之邑,百乘之家,可使爲之宰也,不知其仁也。” “赤也何如?” 子曰:“赤也,束带立于朝,可使與賓客言也,不知其仁也。
 
맹무백이 "자로(子路)는 인합니까?"라고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모르겠다." 그가 다시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유(由: 자로의 이름)는 제후국의 재정을 맡겨 군사적·행정적 임무를 수행하게 할 수는 있겠지만, 그가 '인'한지는 모르겠다.“
맹무백이 "구(求: 염구의 이름)는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구는 천 가구가 사는 고을이나 백 대의 전차를 가진 집안의 가재(家宰: 가신들의 우두머리)를 맡겨 행정을 다스리게 할 수는 있겠지만, 그가 '인'한지는 모르겠다.“
맹무백이 "적(赤: 공서적의 이름)은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적은 예복을 갖춰 입고 조정에 서서 손님을 맞이하고 외교적 응대를 하게 할 수는 있겠지만, 그가 '인'한지는 모르겠다.“
 
 
 
 
 
* 부(賦) ~전(田 토지세), 병(兵,역세), 호(戶, 주민세 인두세)
* 세(稅) ~토지세, 생산물세
 
* 당 ~租庸調, 송 ~兩稅法 명 ~一條便法 청 ~地丁銀制
 
 
(주석)
(1) 孟武伯 - 姓仲孫(달리 孟孫),名彘,諡武,春秋时期 魯國大夫, 孟子 五世祖, 孟懿子는 父 孟敬伯은 子
(2) 子路 - 仲由(前542年-前480年),字子路,又字季路, 忠厚正直,勇武(結纓의 주인공), 七十二賢
 
* 결영(結纓) : 의관을 정제하고 죽음을 맞이한 선비의 절개
'결영(結纓)'은 중국 춘추시대의 인물인 자로(子路)의 고사에서 유래한 단어로, "죽음 앞에서도 의관을 바로 하여 선비로서의 마지막 품위를 지킨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결영의 주인공'은 바로 공자의 제자인 자로를 지칭합니다.
 
1) 역사적 배경과 일화
자로(본명 중유, 仲由)는 공자의 제자 중 가장 용맹하고 강직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원전 480년, 위(衛)나라에서 내란이 발생했을 때, 자로는 그곳에서 벼슬을 하고 있었습니다.
 
• 상황: 내란에 휘말려 위태로운 상황에 처한 자로는 도망쳐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스승인 공자의 가르침인 "군자는 위태로움을 보고 도망가지 않는다"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성안으로 다시 뛰어들었습니다.
• 결정적 장면: 치열한 전투 도중 자로의 갓끈(纓, 영)이 끊어졌습니다. 이때 자로는 적에게 쫓기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군자는 죽을 때 의관을 흐트러뜨리지 않는다(君子死而冠不免)"라며 걸음을 멈추고 끊어진 갓끈을 바로 매어(結纓) 의관을 정제했습니다.
• 결말: 의관을 다 매고 자세를 바로잡는 동안 적들이 그를 살해했습니다. 그는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마지막을 맞이했습니다.
 
2) 결영의 의미
이 고사는 단순한 죽음에 대한 태도를 넘어, 선비가 갖추어야 할 궁극의 도덕적 완성을 상징합니다.
 
• 지조와 절개: 육체는 비록 죽음을 맞이할지라도, 정신과 품격은 마지막 순간까지 굽히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입니다.
• 예(禮)의 실천: 공자가 평생 강조했던 '예'를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실천함으로써, 선비로서의 삶을 완벽하게 마무리하려는 태도입니다.
• 용기: 죽음을 앞두고 두려움에 떨지 않고 평온하게 자신의 옷매무새를 다듬을 수 있는 내면의 담대함을 보여줍니다.
 
3) 문학적 함의
이후 '결영'은 동양 문학사에서 지조 높은 선비의 죽음을 상징하는 관용구로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죽음마저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인물들을 묘사할 때 결영의 고사를 인용하여 그들의 높은 기상을 찬미하곤 했습니다.
 
 
(3) 由-仲由, 주석(2)참고
(4) 千乘之國-제후국(兵車 1천대 보유)
 
*'1승(一乘)
고대 중국(춘추전국시대)의 군사 편제법인 《사마법(司馬法)》에 따르면, 전차 1대를 뜻하는 '1승(一乘)'의 기본 구성은 전차 1대, 말 4마리, 그리고 총 100명의 인원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100명은 크게 전투 병력 75명과 보급 및 후방 지원 인력 25명으로 긴밀하게 짜여 있습니다. 자세한 내부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전투 병력: 총 75명
• 차상갑사 (車上甲士) - 3명: 전차 위에 탑승하는 정예 장교 및 무사입니다.
o 어자 (馭者): 말 4마리를 모는 전차 운전수입니다.
o 융우 (戎右): 주로 오른쪽에 타며 뵤족 창(모, 극)을 쓰는 근접 전투원입니다.
o 융좌 (戎左): 주로 왼쪽에 타며 활을 쏘는 원거리 전투원 및 지휘관입니다.
• 차하보졸 (車下步卒) - 72명: 전차를 엄호하며 발로 뛰는 일반 보병들입니다.
 
2. 보급 및 후방 지원 인력 (치중인원): 총 25명
전투병들이 싸우는 동안 뒤에서 취사와 장비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필수 군수 부대입니다.
• 취가자 (炊家者) - 10명: 밥을 짓는 취사병입니다.
• 고수의장 (固守衣裝) - 5명: 피갑, 옷, 무기 등 군수 장비를 보수하고 관리하는 병사입니다.
• 구양 (圉養) - 5명: 전차를 끄는 말들을 돌보고 사료를 주는 마부입니다.
• 초급 (樵汲) - 5명: 불을 피울 땔나무를 베고 물을 길어오는 사역병입니다.
 
 
(5) 賦-兵賦,주민에게 징수한 군사비용
(6) 求-冉求(前522年—?),字子有,通稱 冉有,尊稱 冉子, 孔門4科 중 政事, 12哲
(7) 千室之邑-1千戶의 大邑
(8) 百乘之家-卿, 大夫(兵車 1천대 보유)
(9) 宰-家臣
(10) 赤-公西赤(前509年-?),字子華,公西華라고도 함, 72賢
(11) 束帶-腰带, 衣冠을 갖춤
(12) 朝-조정
(13) 賓客-貴賓
 
 

 
* 《史記》〈周本紀〉4-024
1. 將 - 甲骨文, 원래는 장군
 
《說文解字》「將帥也。從寸,𤖕省聲」
장수다. ”촌“자를 따르고, 소리는 장의 소리를 생략형이다.
 
《說文解字注》「從寸。必有法度而後可以主之先之。故從寸」
촌을 따르고, 반드시 부하를 다룰 때 법도가 있고, 그런 연후에 사람들 보다 앞서서 가므로 촌이라는 글자를 따랐다.
 
(1) 장군,
《國語》〈晉語〉「將止不面夷」
장군이 포로(止)가 되면 얼굴에 상처(夷)내지 말라.
 
注:「帥也」
장수이다.
 
(2) 통솔하다,
《史記》〈陳涉世家〉「葛嬰將兵」
진섭의 부하인 갈영이 병사를 통솔했다.
 
* 이름은 승이고 자는 섭이다.
 
 
1. 우리중에 나중에 부자되고 귀하게 되면 서로 잊지 말자.
2. 제비나 참새가 큰 기러기와 고니의 뜻을 알겠는가?
3. 지금 도망가도 죽고, 큰 거사를 계획해도 죽으니, 기다리다 앉아서 죽느니, 나라를 위해서 죽는 게 어떠한가?
4. 장사가 죽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죽어야 한다면 큰 이름을 남겨야 되지 않겠는가?
5. 왕후장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느냐?
 
* 진승의 반란이 6개월만에 실패하지만 그가 던진 이 명언이 진나라를 멸망하는 도화선이 되었고, 후대 수 많은 민중봉기의 정신적 기반이 되었다.
 
 
(3) 지원하다,
《史記》〈田叔傳〉「爲人將車」
다른 사람을 위해서 수레를 지원하라.
 
《史記索隱》..「猶御車也」
수레를 몰고 가는 것과같다.
 
(4) 따르다,
元結, 《賊退示官吏》「使臣將王命,岂不如賊焉?」
당신(사신)은 왕명을 따르라,어찌 저 도적만도 못한가?
 
(5) 보내다,
《淮南子》〈詮言〉「耒者弗迎,去者弗將」
오는 사람 맞이하지 않고, 가는 사람을 배웅하지 않는다.
 
 
2026. 7. 16, 강의 요약자 주정봉
 

 
▣ 참조 지식지도
▣ 다큐먼트
▣ 참조 정보 (쪽별)
▣ 스토리 연결
©2004 General Libraries

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