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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 아카데미 432강 강의자료 요약(2026.7.23)
2026년 7월 23일 서울시 50+센터 중부캠퍼스(마포구 공덕동)
1. 당시제목: 송인부안서 2. 작자: 잠삼(岑參 717?–769) 잠삼은 당나라 현종·숙종·대종 시대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고상(高適)과 함께 변경(변방)의 자연과 군사 생활을 웅장하고 호탕한 어조로 노래한 '고참(高岑)'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초당(初唐)의 궁체시풍에서 벗어나 성당(盛唐) 시기의 기상천외한 상상력과 웅장한 기개를 보여주었으며, 특히 변방의 혹독한 대자연과 군대 생활을 생생하게 담아낸 변새시(邊塞詩)의 대가로 평가받습니다.
주요 생애와 특징 • 출신과 관료 생활: 남양(현재의 허난성) 출신으로, 집안이 대대로 관리를 지낸 명문가였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학문에 뛰어났으나 과거 급제 후 탄탄대로를 걷기보다는 지방관이나 변방 절도사의 막료(참모)로 활동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 변방 체험: 잠삼의 시 세계를 형성한 가장 큰 원동력은 두 차례에 걸친 서북 변경(지금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 및 간쑤성 일대) 근무였습니다. 안서절도사(安西節度使) 고선지(高仙芝) 장군의 휘하 등에서 종군하며 사막, 눈보라, 변방의 성채 등 이국적인 풍경과 군사들의 삶을 직접 체감했습니다. • 말년: 안사의 난 시기에 조정으로 돌아와 여러 직위를 거쳤으나, 정쟁에 휘말려 좌천되었고 청도현령(靑都縣令)으로 재직하던 중 세상을 떠났습니다.
시 세계와 문학적 의의 1. 웅장하고 기괴한 변새시의 진수 잠삼의 시는 광활한 사막, 타오르는 봉화, 혹독한 추위 등 변방의 거친 풍경을 묘사하는 데 탁월했습니다. 단순히 자연의 아름다움을 읊는 것을 넘어, 변방의 장엄함과 그곳에서 고생하는 군인들의 비장미를 함께 담아냈습니다.
2. 독창적인 비유와 상상력 자연 현상을 묘사할 때 기발한 비유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눈을 꽃에 비유한 명작인 <백설가송무판관귀경(白雪歌送武判官歸京)>에서는 "마치 봄바람이 불어와 밤사이에 만 리의 배꽃이 피어난 듯하다(忽如一夜春風來, 千樹萬樹梨花開)"라는 유명한 구절을 통해 혹독한 변방의 눈보라를 아름다운 환상처럼 표현했습니다.
3. 고독과 향수 호탕한 시풍 이면에는 멀고 험준한 변방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쓸쓸함과 외로움, 그리고 전쟁의 참상에 대한 깊은 연민이 깔려 있어 감정의 깊이를 더해줍니다.
대표 작품 • <백설가송무판관귀경 (白雪歌送武判관歸京)> 무판관이 서울(장안)로 돌아가는 길에 내린 거대한 눈을 배경으로, 이별의 아쉬움과 변방의 기이한 설경을 노래한 잠삼의 최고 명작 중 하나입니다. • <봉입서경천청은대 (奉和中書舍人賈至早朝大明宮)> 이른 아침 대명궁에 드는 신하의 시에 화답한 작품으로, 성당 시기 궁궐의 웅장한 기상과 위엄을 잘 보여줍니다. • <우림행 (走馬川行奉送出師西征)> 달리는 말 위에서 서역으로 출정하는 군대의 긴박하고 웅장한 기세를 역동적인 리듬으로 담아낸 시입니다.
* 교수님 제공 PPT 15매중 4매만 소개함
김영환교수의 동양고전아카데미 제367강(2024,11,14) 강의 교안
*《論語》〈公冶長〉 5-8. 孟武伯問:“子路仁乎?” 子曰:“不知也。” 又問。子曰:“由也,千乘之国,可使治其賦也,不知其仁也。” “求也何如?” 子曰:“求也,千室之邑,百乘之家,可使爲之宰也,不知其仁也。” “赤也何如?” 子曰:“赤也,束带立于朝,可使與賓客言也,不知其仁也。
(주석) (1) 孟武伯 (2) 子路 - 仲由(前542年-前480年), (3) 由 - 仲由 (4) 千乘之國 (5) 賦 - 兵賦, (6) 求 - 冉求(前522年—?) (7) 千室之邑 (8) 百乘之家 (9) 宰 - 家臣 (10) 赤 - 公西赤(前509年-?) (11) 束帶 - 腰带, (12) 朝 - 조정 (13) 賓客 - 貴賓
* 《史記》〈周本紀〉4-024 1.將 - 甲骨文, 원래는 장군 《說文解字》「將帥也。從寸,𤖕省聲」 《說文解字注》「從寸。必有法度而後可以主之先之。故從寸」
(1) 장군, 《國語》〈晉語〉「將止不面夷」 注:「帥也」
(2) 통솔하다, 《史記》〈陳涉世家〉「葛嬰將兵」
(3) 지원하다, 《史記》〈田叔傳〉「爲人將車」 《史記索隱》..「猶御車也」
(4) 따르다, 元結, 《賊退示官吏》「使臣將王命,岂不如賊焉?」
(5) 보내다, 《淮南子》〈詮言〉「耒者弗迎,去者弗將」
(6) 휴대하다, 元結, 《賊退示官吏》「將家就魚麥,歸老江湖邊」 가족을 데리고 물고기와 곡식이고 풍부한 곳 강과 호 수가 있는 자연속에서 여생을 보낸다.
* 협객 = 건달,
(7) 이끌다, 《淮南子》〈人間訓〉「將胡駿馬而歸」 오랑캐의 준마를 이끌고 돌아왔다.
(8) 의문의 어기사, 《左傳》僖公三十三年「將自何所至」 (애), 어디에서 왔어?
(9) 제공하다, 모시다, 《詩經》〈四牡〉「不遑將父」 아버지를 모실 겨를이 없다.
모(牡) ~수컷 빈(牝 ~암컷)
書經 牧誓 “牝雞之晨惟家之索” (모계지신 유가시색) 암탉이 새벽에 울면 집안이 망한다
* 索 = 亡
(10) 나아가다, 《詩經》〈敬之〉「敬之敬之,天維顯思,命不易哉。無曰高高在上,陟降厥士,日監在兹。維予小子,不聰敬止。日就月將,學有緝熙于光明。佛時仔肩,示我顯德行」
* 思가 뜻이 없는 어조사 어기사로 사용 1. 왜 '생각하다'라는 글자가 어조사가 되었을까? (어원의 유래) • 어기(語氣)의 연장: 고대 한문에서 '사(思)'는 원래 마음속에 품은 감정이나 깊은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마음속에 맺힌 정이나 감탄, 혹은 말을 이어 나가기 전에 여운을 두는 과정에서 '아~', '오~' 하고 소리를 내며 숨을 고르는 톤이 글자로 굳어졌습니다. • 음운학적 기능: 고대 시가(특히 《시경》)는 글자 수와 운율(압운)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문장을 매끄럽게 잇거나 글자 수를 맞추기 위해 의미 없는 허사(虛詞)를 넣었는데, 이때 '思'가 종종 활용되었습니다.
2. 구체적인 쓰임새와 대표적인 예시 어조사로 쓰이는 '思'는 주로 다음과 같은 형태로 나타납니다. ① 시어의 중간이나 끝에서 어조를 고르는 경우 (语助詞) 시의 구절 속에서 특별한 실질적 의미(생각) 없이 숨을 고르거나 리듬을 형성합니다. • 대표적 예시 (《시경》 주남·관서 中): "悠哉悠哉,輾轉反思" (유재유재, 전전반사) o 여기서 앞의 '반사(反思)'는 몸을 뒤척이며(전전반측) 잠 못 이루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이때 뒤의 '思'는 실질적으로 '무엇을 생각한다'는 목적어가 아니라, 앞구절과의 운율과 여운을 맞추기 위해 덧붙은 어조사로 기능합니다. (후대 주석가들도 이때의 '思'를 뜻이 없는 어조사로 풀이하곤 합니다.) ② 문장의 끝이나 중간에서 감탄이나 어기를 나타내는 경우 고대 중국어에서 어조사 '어(於)', '호(乎)', '재(哉)' 등과 비슷하게 문장의 맛을 살려주는 구실을 합니다. 독백을 할 때 한숨을 쉬듯 호흡을 내 쉬는 감탄사 성격의 허사로 쓰입니다.
3. 문법적 특징 (어조사 '思'의 구별법) 문장을 읽을 때 이 글자가 실사(실질 의미)인지 허사(어조사)인지 구별하는 팁은 다음과 같습니다. • 목적어나 대상이 없는 경우: '思' 뒤에 생각하는 대상(무엇을 생각하는지)이 오지 않고, 문장이 끝나거나 단순히 음의 장단을 맞추는 자리에 놓여 있다면 대부분 어조사입니다. • 시가(詩歌)의 압운(韻) 위치: 글자 수를 채우거나 리듬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쓰인 허사인 경우가 많습니다. 요약하자면: 뜻이 없다는 것은 우리말의 **"아~", "어~", "~구나", "~여"**처럼 실질적인 뜻은 담겨 있지 않되, 말의 가락을 부드럽게 만들고 감정을 실어주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는 뜻입니다. 고대인의 숨결과 음악적 리듬이 문자에 반영된 흔적이라고 이해하시면 좋습니다.
* 군주의 1인칭 호칭 정리 1. 여 (余 / 予) o 뜻: 나, 저 o 성격: 고대 중국(상나라, 주나라 등)에서 제후나 천자가 공적 문서나 연설에서 자신을 지칭할 때 쓰던 가장 오래된 1인칭 대명사 중 하나입니다. 앞서 살펴본 《서경》 <목서> 등에서도 군주가 스스로를 가리킬 때 자주 등장합니다.
2. 고 (孤) o 뜻: 외로운 사람, 덕이 적은 사람 o 성격: 제후들이 스스로를 낮추어 이르던 겸칭입니다. "덕이 부족하여 홀로 남겨진 사람"이라는 겸손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삼국지 등의 역사 고전에서 제후들이 자신을 칭할 때 흔히 볼 수 있습니다.
3. 불곡 (不穀) o 뜻: 착하지 않은 사람, 복이 없는 사람 o 성격: 주로 제후나 왕들이 자신을 낮추어 이르던 말로, '곡(穀)'은 선(善)이나 복(福)을 뜻합니다. 즉 "덕이 없고 착하지 못한 나"라는 깊은 겸양의 표현입니다.
4. 짐 (朕) o 뜻: 나, 저 o 성격: 원래는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쓸 수 있는 평범한 1인칭 대명사였습니다. 그러나 진나라의 시황제가 천하를 통일한 이후, 오직 황제만이 자신을 가리키는 독점적인 칭호(지존의 1인칭)로 법제화하였습니다. 이후 중국 및 한자문화권의 황제들이 주로 사용했습니다.
5. 과인 (寡人) o 뜻: 덕이 적고 허물이 많은 사람 o 성격: "덕이 적어 백성들을 제대로 이끌지 못하는 부족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제후나 왕들이 신하들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 부를 때 주로 사용했습니다. (흔히 '덕이 적은 사람이 백성을 다스린다'는 겸손의 미덕이 담겨 있습니다.)
* 왕념손(王念孫, 1744~1832)은 청나라 중기 건륭·가경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고증학자(훈고학자)입니다. <이아소정>이라는 책은 정확한 명칭으로는 《광아소증(廣雅疏證)》을 가리킵니다. 《광아소증》은 《이아(爾雅)》와 깊은 연관이 있는 문헌이기에 종종 이와 연관되어 설명되거나 혼동되곤 합니다. 이 책의 실체와 학술적 의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광아소증(廣雅疏證)》이란 어떤 책인가? • 원저와의 관계: 삼국시대 위나라의 장읍(張揖)이 지은 《광아(廣雅)》는 중국 최초의 자서(어휘집)인 《이아(爾雅)》의 체제를 모방하고 내용을 증보하여 편찬한 책입니다. 즉, 《광아소증》은 《이아》의 계보를 잇는 《광아》에 대해 왕념손이 상세히 주석하고 증명(소증, 疏證)을 덧붙인 역작입니다. • 구성: 총 19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고대 중국어의 동의사(뜻이 같은 말)와 어휘들을 방대한 문헌 자료를 바탕으로 깊이 있게 파헤쳤습니다.
2. 학술적 특징과 핵심 내용 • 음운을 통한 의미 탐구 (인성구의, 因聲求義): 왕념손 학문의 가장 큰 특징은 글자의 형태(모양)에만 얽매이지 않고, 소리(음운)가 같거나 비슷한 옛 글자들 사이의 통가(通假, 빌려 쓰기) 현상을 밝혀내어 단어의 진짜 뜻을 찾아낸 점입니다. "글자의 소리가 같으면 뜻도 통한다"는 원칙을 적용해, 수많은 고전 속 난해한 구절들을 명쾌하게 해독했습니다. • 박식한 고증과 방대한 인용: 청대 학자 완원(阮元)은 왕념손의 학문을 칭송하며 "글자 하나를 증명함에 만 권의 책을 두루 미친다(一字之證, 博及萬卷)"라고 극찬했습니다. 《광아소증》 역시 수많은 선진(先秦) 시대의 경전과 역사 서적을 인용하여 단어의 어원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3. 청대 고증학에서의 위치 - 동양고전종합DB • 왕념손은 그의 아들 왕인지(王引之)와 함께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최고의 경학자로 이름을 날린 '양왕(兩王)'으로 불립니다. • 그중에서도 왕념손의 《광아소증》은 청대 훈고학·고증학의 성취를 집대성한 최고 명저 중 하나로 꼽히며, 후대 학자들이 《이아》나 《설문해자》 등 고대 문헌과 경전을 연구할 때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필수적인 안내서이자 기준으로 대접받고 있습니다.
* 유교 십삼경 명칭 목록 1. 주역(周易) - 통칭 《역경(易經)》, 우주와 만물의 변화 원리를 담은 복서(卜筮)와 철학의 서 2. 상서(尙書) - 통칭 《서경(書經)》, 요순시대부터 주나라까지의 역사적 기록과 정치적 연설문 모음 3. 시경(詩經) - 고대 중국의 민요와 궁중 음악 등의 시가 305수를 모은 책 4. 주례(周禮) - 주나라의 관제와 국가 제도, 행정 조직을 기록한 책 5. 의례(儀禮) - 춘추시대 제후와 사대부들의 예법(관혼상제, 제사 등)을 다룬 책 6. 예기(禮記) - 예의 정신과 철학적 의미를 해설하고 기록한 글들의 모음 7.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 보통 줄여서 '좌전(左傳)', 《춘추》의 내용을 상세한 역사적 사건과 함께 서술한 역사서 8.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 《춘추》의 글자 속에 담긴 미치(微旨, 숨은 뜻)를 공양고의 해석에 따라 풀이한 책 9.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 - 《춘추》의 뜻을 곡량사의 설에 따라 풀이한 책 10. 논어(論語) - 공자와 제자들의 언행을 기록한 유교 최고의 어록 11. 효경(孝經) - 부모에 대한 효도와 덕치의 근본을 가르치는 경전 12. 이아(爾雅) - 중국 최고(最古)의 자서(어휘집)이자 분류별 사전 13. 맹자(孟子) - 맹자의 철학(성선설, 왕도정치 등)과 사상을 담은 어록이자 경전
* 開綠燈(간체자: 开个绿灯)의 의미와 유래 • 직역: 초록색 불을 켜다 (신호등의 녹색불) • 비유적 의미: 자동차가 신호등의 초록불을 보면 멈추지 않고 수월하게 지나가듯, 원래는 규정이나 절차가 까다롭지만 특별히 걸림돌 없이 진행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거나 편의를 봐주는 것을 뜻합니다.
- 활용 예시 • "이번 한 번만 좀 봐주세요(특혜를 좀 베풀어 주세요)." "能不能开个绿灯?" (Néng bù néng kāi gè lǜdēng?) • "규정대로 하면 안 되지만, 사정을 봐서 특별히 통과시켜 주었다." "领导特意为他开了绿灯。" (Lǐngdǎo tèyì wèi tā kāi le lǜdēng.)
일상생활이나 비즈니스 상황에서 원칙대로라면 통과하기 어려운 일을 "사정을 봐서 살짝 넘어가 주거나 통과시켜 달라고 부탁할 때" 완벽하게 쓸 수 있는 표현입니다.
(11) 사용하다, 《西游记》「菩薩將甚兵器?」 보살은 어떤 무기를 사용했나요?
(12) ~하려하다, 《左傳》隱公六年「君將若之何?」 임금께서는 어떻게 하려 하시나요?
* 若何 = 如何 = 奈何 = 怎么办
(13) 반드시, 《左傳》僖公三十三年「將拜君賜」 반드시 군주의 은혜를 갚아드리겠다.
*《춘추좌씨전(春秋左傳)》 희공 33년(僖公三十三年)에 나오는 “장배군사(將拜君賜)”는 진(晉)나라와 진(秦)나라 사이의 역사적 사건인 효원전(殽之戰) 및 그 이후의 외교적·도덕적 관계를 보여주는 매우 유명한 구절입니다. 이 구절의 배경과 원문 내용, 그리고 역사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사건의 배경 (효원전과 진나라 장수들의 석방) • 기원전 627년, 진(秦)나라의 목공(穆公)은 정(鄭)나라를 기습하려다가 진(晉)나라의 요격을 받아 효(殽)라는 지역에서 참패하고, 장수였던 맹명시(孟明視), 서걸기(西乞術), 백을병(白乙丙) 등 진나라의 핵심 장수들이 모두 진(晉)나라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 진나라 장수들을 처형하여 북을 치는 데 피를 바치려(釁鼓, 틈고) 하였으나, 진(晉)나라의 군주인 문공(文公)의 부인(진목공의 딸이기도 함)의 간청과 양처父(양처부) 등의 계책으로 인해 이들을 처형하지 않고 살려주어 진나라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합니다.
2. 원문 및 "將拜君賜"의 대목 진나라의 사신 양처부가 포로가 된 장수들을 쫓아가 황하 강가(諸河)에서 배에 오르기 전 그들을 풀어주며 진나라 목공의 명을 전했습니다. 이때 풀려난 장수 중 맹명시(孟明視)가 머리를 조아리며(稽首)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君之惠,不以纍臣釁鼓,使歸就戮于秦,寡君之以為戮,死且不朽。若從君惠而免之,三年將拜君賜。" (군주의 은혜로 저희 같은 죄인들의 피로 북을 치지 않게 하시고, 고국으로 돌아가 진나라 군주에게 벌을 받게 하시니, 우리 임금께서 저희를 벌하신다 해도 죽어서까지 썩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군주의 은혜를 따라 저희를 살려주신다면, 삼 년 뒤에 군주의 은혜에 절을 올리겠습니다(보답하겠습니다).)
3. "將拜君賜"의 의미와 역사적 결과 • "삼 년 뒤에 군주의 은혜에 절을 올리겠다"라는 말은 단순히 감사 인사를 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살아 돌아가 국력을 기른 뒤, 정확히 3년 뒤에 진(晉)나라에 다시 쳐들어와 전쟁으로 그 은혜(또는 승부)에 보답하겠다"는 비장한 선전포고이자 외교적 수사였습니다. • 실제로 이 약속대로 진(秦)나라의 맹명시는 치욕을 씻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였고, 정확히 3년 뒤인 희공 36년(기원전 624년)에 다시 진(晉)나라를 침공하여 효산의 패배를 설욕하고자 하였습니다 (비록 이 전쟁에서도 진나라가 승리하지는 못했지만, 맹명시의 신의와 복수의 결기를 상징하는 고사로 남았습니다). 이 구절은 목숨을 건진 장수가 적국을 향해 품은 의기와, 군자의 도리와 복수가 교차하는 춘추시대 고유의 비장미를 잘 보여주는 명문으로 꼽힙니다.
(14) 근처, 《孟子》〈滕文公上〉
2026.7.23 강의 요약 : 주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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