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눈박이 거인의 동굴
키콘인과 로토스 먹는 사람들의 섬을 지나 다시 항해를 이어가던 오디세우스는 거대한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들이 사는 땅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그는 포세이돈의 아들 폴리페모스의 동굴에 들어갔다가 동료들과 함께 갇히게 되고, 힘으로는 결코 이길 수 없는 적과 맞서야 한다. 오디세우스는 지혜와 침착함으로 탈출에 성공하지만, 마지막 순간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자만으로 포세이돈의 분노를 사며 귀향길에 더 큰 시련을 불러오게 된다.
1.1 낯선 섬에 상륙하다
키콘인과의 전투에서 처음으로 큰 희생을 치르고, 로토스 먹는 사람들의 유혹까지 이겨 낸 오디세우스는 다시 함대를 이끌고 서쪽 바다를 항해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한 섬과, 그 너머로 거친 산과 절벽이 이어진 키클롭스의 땅이 눈앞에 나타났다. 높은 절벽 아래에는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었고, 산비탈마다 수많은 양과 염소 떼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그러나 항구도 성벽도 경작지조차 보이지 않는 풍경은 이곳이 평범한 인간의 땅이 아님을 짐작하게 하였다. 사람의 발자국보다 훨씬 큰 흔적과 거대한 가축의 자취는, 키클롭스의 땅에 인간과는 다른 존재가 살고 있음을 말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함대를 키클롭스의 땅과 마주한 섬에 머물게 한 뒤, 한 척의 배에 가장 믿을 만한 동료 열두 명만 태우고 바다 건너편으로 향하였다. 해안에 배를 댄 그는 동료들과 함께 거인의 땅 안쪽을 살피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거대한 동굴 하나를 발견하였는데, 안에는 치즈와 양젖을 담은 그릇들이 질서 있게 놓여 있었고, 넓은 우리에는 많은 가축이 길러지고 있었다. 동료들은 주인이 돌아오기 전에 식량만 챙겨 떠나자고 권했지만, 오디세우스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제우스가 지키는 손님 환대의 법을 믿었고, 이 땅의 주인이 낯선 손님에게 어떤 환대와 선물을 베풀지 직접 확인하고자 하였다.
또한 그는 키콘인의 사제 마론에게 선물받은 독한 포도주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귀한 손님에게만 내놓는 술이었기에, 혹시 이 땅의 주인과 우호를 맺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해가 저물 무렵 거대한 양 떼와 함께 돌아온 외눈박이 거인의 모습은, 오디세우스가 기대했던 환대 대신 전혀 다른 운명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음을 예고하고 있었다.
키클롭스의 땅을 바라보는 오디세우스와 동료들
1.2 인간을 먹는 거인
거대한 동굴의 주인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인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였다. 그는 양 떼를 모두 동굴 안으로 몰아넣은 뒤, 수십 명의 장정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바위를 입구에 굴려 놓았다. 이어 낯선 인간들을 발견한 그는 거친 목소리로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 물었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고향 이타케로 돌아가는 길이라 밝히며, 제우스께서 여행자를 보호하시니 손님을 환대해 달라고 정중히 청하였다. 그러나 폴리페모스는 제우스의 법 따위는 두렵지 않다며 비웃었고, 자신은 오직 힘만을 믿는다고 대답하였다.
이어 그는 그리스인들의 배가 어디에 있는지 캐물었다. 오디세우스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포세이돈이 일으킨 폭풍으로 배가 부서져 살아남은 사람들만 이곳까지 떠밀려 왔다고 거짓말하였다. 만일 정박한 배의 위치를 알려 준다면 거인이 배를 부수고 귀향의 희망마저 끊어 버릴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의 거짓말은 동료들을 살리기 위한 첫 번째 계략이었다.
그러나 폴리페모스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갑자기 동료 두 사람을 붙잡아 바위에 내리쳐 죽인 뒤,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살을 먹기 시작하였다. 오디세우스는 칼을 뽑아 즉시 거인을 죽이고 싶었지만 곧 마음을 접었다. 입구를 막고 있는 거대한 바위를 움직일 수 있는 존재는 폴리페모스뿐이었다. 그를 죽이는 순간 모두가 동굴 안에 갇혀 죽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분노 대신 침착함을 선택하였다.
동료를 붙잡아 잡아먹는 폴리페모스의 만행
1.3 탈출을 위한 계략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자 폴리페모스는 또다시 동료 두 사람을 잡아먹은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양 떼를 몰고 밖으로 나갔다. 그는 떠나기 전에 다시 거대한 바위로 동굴 입구를 막아 버렸고, 살아남은 그리스인들은 어둠 속에 갇힌 채 절망에 빠졌다. 네 명의 동료를 잃은 오디세우스 역시 깊은 슬픔을 느꼈지만, 공포에 사로잡혀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었다. 살아남으려면 거인의 힘이 아니라 빈틈을 이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동굴 안을 차분히 살펴보다가 거인이 지팡이처럼 사용하던 거대한 올리브나무 기둥을 발견하였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그것의 끝을 날카롭게 깎아 말뚝으로 만들고, 때가 오면 불에 달굴 수 있도록 동굴 한쪽에 숨겨 두었다. 이어 키콘인의 사제 마론에게 선물받은 독한 포도주를 꺼내며, 거인이 술에 취한 틈을 노리기로 결심하였다. 치밀한 준비가 끝나자 그는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해질 무렵 폴리페모스는 다시 동굴로 돌아와 남은 동료 가운데 두 사람을 또다시 잡아먹었다. 이로써 희생된 사람은 모두 여섯 명이 되었다.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오디세우스는 공포를 숨긴 채 거인에게 다가가 귀한 포도주를 권하였다. 거인은 처음 맛보는 진한 술에 크게 만족하여 연거푸 잔을 비웠고, 마침내 술기운이 오르자 오디세우스의 이름을 물었다. 모든 것은 이제 단 한 번의 계략에 달려 있었다.
올리브나무 말뚝을 준비하는 오디세우스의 계략
2.1 아무도라는 이름
폴리페모스는 독한 포도주를 연거푸 마시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며 크게 웃기 시작하였다. 그는 오디세우스에게 이토록 훌륭한 술은 처음 마신다며, 이름을 알려 주면 손님에게 어울리는 선물을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오디세우스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술에 취해 판단력이 흐려진 거인을 이용할 기회가 왔음을 깨달았다. 그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아무도"라고 대답하였다. 평범한 거짓말처럼 들렸지만, 훗날 거인이 다른 키클롭스들에게 도움을 청하게 될 상황까지 내다본 치밀한 계략이었다.
이름을 들은 폴리페모스는 만족스러운 듯 크게 웃으며 말했다. "좋다. 내가 아무도에게 줄 선물은 가장 마지막에 잡아먹는 것이다." 거인은 자신의 말을 우스갯소리처럼 여긴 채 다시 술을 들이켰고, 이내 술기운을 이기지 못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거대한 몸이 바닥을 울리며 쓰러지자 동굴 안은 다시 고요해졌다. 오디세우스는 곧바로 동료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모두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올리브나무 말뚝을 불길 속에서 붉게 달구기 시작하였다. 오디세우스는 가장 용감한 동료 네 명을 골라 함께 말뚝을 들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숨을 죽인 채 어둠 속에서 때를 기다렸다. 실패는 곧 모두의 죽음을 뜻하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깊게 숨을 들이쉰 뒤 잠든 거인을 바라보았다. 이제 모든 것은 단 한 번의 기회에 달려 있었다.
포도주를 건네며 거짓 이름을 밝히는 오디세우스
2.2 외눈을 잃은 거인
붉게 달아오른 올리브나무 말뚝은 쇠처럼 단단해져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동료들과 함께 힘껏 말뚝을 들어 올린 뒤, 잠든 폴리페모스의 하나뿐인 눈을 향해 있는 힘껏 밀어 넣었다. 타오르는 나무가 눈을 꿰뚫자 거인은 천지가 무너질 듯한 비명을 질렀고, 동굴 전체가 흔들릴 만큼 거센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디세우스와 동료들은 말뚝을 더욱 힘껏 돌려 넣으며 끝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
거인의 비명을 들은 다른 키클롭스들이 동굴 밖으로 몰려와 무슨 일이냐고 큰 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폴리페모스는 고통 속에서 "아무도가 나를 죽이려 한다! 아무도가 나를 해쳤다!"라고 외쳤다. 밖에 있던 거인들은 그 말을 듣고 신이 내린 병이거나 신들의 뜻이라 여겼다. 그들은 더 이상 도와줄 일이 없다며 하나둘 돌아갔고, 동굴 안에는 다시 적막만이 남았다. ‘아무도’라는 거짓 이름은 다른 키클롭스들의 도움을 완전히 막아 냈다.
그러나 탈출은 아직 시작도 하지 못한 상태였다. 눈을 잃은 폴리페모스는 입구를 막고 앉았다. 그는 양들이 밖으로 나갈 때마다 한 마리씩 등을 더듬어 인간이 숨어 있는지 확인하려 하였다. 오디세우스는 서둘러 승리를 기뻐하지 않았다. 이제 남은 것은 거인의 손을 피해 동굴 밖으로 빠져나가는 마지막 계략뿐이었다.
달군 말뚝으로 외눈을 찌르는 오디세우스와 동료들
2.3 숫양 아래 숨다
다음 날 아침, 폴리페모스는 앞을 볼 수 없었지만 평소와 다름없이 양 떼를 풀어놓기 위해 입구의 거대한 바위를 옮겼다. 그리고 동굴 앞에 앉아 한 마리씩 양의 등을 손으로 더듬으며 밖으로 내보냈다. 오디세우스는 바로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밤사이 가장 크고 털이 많은 숫양들을 골라 세 마리씩 서로 묶고, 가운데 양의 배 아래에 동료들을 가죽끈으로 단단히 매달았다. 자신은 가장 크고 힘센 숫양의 배 아래에 몸을 숨긴 채, 두 손으로 두꺼운 털을 단단히 붙잡았다.
양들은 천천히 동굴 밖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하였다. 폴리페모스는 한 마리 한 마리 등을 쓰다듬으며 지나가게 했지만, 배 아래 숨어 있는 사람들은 끝내 발견하지 못하였다. 마지막으로 가장 아끼던 숫양이 다가오자 거인은 걸음을 멈추고 그 양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는 평소보다 늦게 나가는 숫양에게 자신의 눈을 잃은 슬픔을 털어놓으며, 눈을 멀게 한 인간을 붙잡지 못한 분노를 토해냈다. 숫양은 아무 말 없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동굴에서 충분히 멀어진 뒤 오디세우스와 동료들은 재빨리 몸을 풀고 해안으로 달려갔다. 모두가 무사히 배에 오르자 오디세우스는 곧바로 먼바다로 나아갈 것을 명령하였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죽음의 동굴에서는 벗어났지만, 거인의 분노가 아직 끝난 것은 아니었다. 배는 점점 먼바다로 나아갔고, 오디세우스는 조용히 뒤를 돌아보았다.
숫양 배 아래 숨어 동굴을 빠져나가는 탈출
3.1 이름을 밝힌 영웅
배가 해안에서 충분히 멀어지자 살아남은 동료들은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의 마음에는 승리의 기쁨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는 배 위에 일어서서 동굴을 향해 크게 외쳤다. "손님을 해친 자는 신들의 벌을 피할 수 없다! 너는 제우스의 법을 업신여기고 죄 없는 인간을 잡아먹은 대가를 치른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절벽과 바다를 넘어 거인의 귀까지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동료들은 놀라며 서둘러 노를 저었다. 이미 죽음의 문턱을 벗어났으니 더 이상 거인을 자극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계략으로 거인을 이겼다는 자부심을 억누르지 못하였다. 그는 자신에게 패배한 거인이 승리자의 이름조차 모른 채 살아가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승리의 기쁨은 조금씩 신중함보다 앞서기 시작하였다.
결국 오디세우스는 다시 한번 크게 외쳤다. "나는 라에르테스의 아들, 이타케의 왕 오디세우스다!" 그의 이름은 메아리처럼 바다를 가로질러 울려 퍼졌다. 그 순간 지혜로 얻은 승리는 자만으로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동료들은 얼굴빛이 굳어졌고, 오디세우스 역시 자신이 던진 한마디가 앞으로 어떤 운명을 불러올지 아직은 알지 못하였다.
배 위에서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오디세우스
3.2 포세이돈의 저주
자신을 속인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된 폴리페모스는 분노에 휩싸여 산보다 큰 바위를 들어 바다를 향해 힘껏 던졌다. 거대한 바위는 배 바로 옆에 떨어지며 엄청난 파도를 일으켰고, 그 충격으로 배는 다시 해안 가까이 밀려갈 뻔하였다. 동료들은 필사적으로 노를 저어 간신히 바다 한가운데로 빠져나왔다.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은 순식간에 다시 공포로 바뀌었다.
폴리페모스는 더 이상 바위를 던질 수 없게 되자 두 팔을 하늘로 들어 올리고 아버지 포세이돈에게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는 자신을 눈멀게 한 오디세우스가 결코 순조롭게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해 달라고 호소하였다. 설령 귀향에 성공하더라도 모든 동료를 잃고 오랜 세월 방황한 끝에 홀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거인의 기도는 원망이 아니라 바다의 신에게 올리는 저주가 되었다.
오디세우스는 말없이 멀어지는 해안을 바라보았다. 거인의 저주는 바다를 따라 멀리 퍼져 나갔고, 오디세우스의 이름은 포세이돈의 분노 속에 깊이 새겨졌다. 그날 이후 그의 귀향은 단순한 항해가 아니라, 포세이돈의 분노를 견뎌야 하는 길고도 험난한 시련의 여정이 되었다.
두 팔을 들어 포세이돈에게 기도하는 폴리페모스
3.3 승리보다 어려운 절제
외눈박이 거인의 동굴에서 겪은 모험은 오디세우스의 귀향길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누구도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거인을 힘이 아닌 지혜로 물리쳤고, 침착한 판단과 치밀한 계략이 가장 강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몸소 보여 주었다. 상대를 관찰하고, 거짓 이름을 준비하며, 포도주와 말뚝, 숫양을 이용한 그의 탈출은 훗날까지 지혜로운 영웅의 대표적인 이야기로 전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 모험은 승리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디세우스는 마지막 순간 자신의 이름을 밝힘으로써 스스로 더 큰 시련을 불러들였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명예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과 자만을 끝까지 절제하지 못하면 승리를 온전히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그의 선택은 보여 준다. 영웅에게 필요한 것은 뛰어난 용기와 지략뿐 아니라, 승리한 뒤에도 자신을 다스리는 절제와 겸손이었다.
오디세우스는 다시 돛을 올리고 서쪽 바다를 향해 항해를 이어 갔다. 그러나 그의 앞에는 아직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가 다스리는 섬이 기다리고 있었고, 귀향은 여전히 멀리 남아 있었다. 외눈박이 거인의 동굴을 빠져나온 것은 긴 여정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련의 시작이었다. 이제 그는 포세이돈의 저주를 짊어진 채, 더욱 험난한 귀향길을 향해 나아가야 했다.
먼바다를 향해 다시 항해하는 오디세우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