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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름꾼과 옥피리
아주 옛날 금호강변에 자리 잡은 영천땅 어느 고을에 강갈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어엿한 양반집 자손으로써 노름도 일종의 재주라고 여겼다. 아침밥술을 놓기가 무섭게 투전판으로 달려갔다. 돈을 한 꾸러미씩 안고서 모여든 노름꾼들은 며칠 낮 며칠 밤을 세워가며 화투장을 돌렸던 것이다. 돈은 돌고 돌다가 오늘따라 운 좋게 강갈이 앞으로 모이기 시작하였다. 이때였다.
“주인 마님, 큰일났습니다. 집에 불이 났어요.”
강갈이네 하인놈이 목이 터져라 외쳐댔지만,
“이 놈 끗발 죽는다. 어서 없어져라.”
하면서 노름판을 떠날 줄 몰랐다. 하인놈이 다녀간 후로는 하늘의 노여움인지 강갈이는 계속 돈을 잃게 되었고 새벽녘에는 아주 털리게 되었다. 투덜투덜 집으로 돌아온 강갈이는 집이 불에 탄 것을 보고 그제서야 어젯밤에 하인놈이 외쳐대던 말이 되살아났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 노름판에서 돈을 다 날리고, 집마저 불에 타버렸으니 강갈이는 하루아침에 거지가 된 셈이다.
이렇게 되자 그의 부인은 남편이 다시는 노름을 하지 않게 되기를 부처님께 빌고 나서 그동안 푼푼이 모아두었던 몇 푼의 돈에다 그녀의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을 잘라서 말을 한 필 사게 되었다. 시장에서 짐이나 날라주고 또 행상을 하기 위함이었다.
노름판에서 돈을 날려 부인에게 미안해하던 차에 부인의 귀한 머리카락마저 자르게 했으니 아무리 노름에 미친 강갈이였지만 마음을 잡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날그날 벌어들인 돈으로 입에 풀칠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마을에 행상을 나갔다가 목이 컬컬하던 차에 막걸리를 한 잔 들이키게 되었다. 그때 골방 안에서는 이 마을 사람들이 노름을 하고 있었다.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된 강갈이는 노름이 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으나 부인과의 맹세도 있고 해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는데 장기를 두고 있던 한 젊은이가,
“여보, 장기나 한 판 두려오.”
하며 그를 끌어 앉혔다. 이윽고 술내기 장기가 벌어져 그날 번 돈을 전부 날려버린 강갈이는 근성이 나오기 시작해 그 귀한 말을 잡히고 내기를 했다. 내기 장기꾼인 젊은이에게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었다. 외통수에 걸려들기 직전이다. 이때 밖에 매어둔 말이 ‘히잉’ 하고 울자 문득 깨달은 바가 있어 마장을 부르니 바로 외통수였다.
말 한 마리를 따먹었으면 일어나야 할 텐데 제 버릇 개에게 주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두 번 세 번 장기를 거듭 뜨자 강갈이는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이 자신의 말까지 잃어 버렸다. 빈대도 낯짝이 있다고 차마 아내를 대할 면목이 없어진 강갈이는 술 한 잔을 더 마시더니 길가에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그는 정신은 말짱하였으나 웬일인지 몸이 말을 듣지 않아 누운 채로 스스로 눈을 감고 말았다. 강갈이는 억만금을 가지고 남방의 풍경을 구경하기 위해 유람길에 올랐다. 헌데 가는 도중에 호수가 있어서 배로 건너려 하였다. 하늘이 난 데 없이 흐려지고 강한 파도가 있어 배를 기슭에 붙여 놓았다.
사방이 캄캄한 지라 할 수 없이 하룻밤을 쉬어가게 되었는데 밤의 무료함을 달랠 길이 없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주사위 구르는 소리가 들려오는지라 강갈이는 좀이 쑤셔 견딜 수가 없던 차에 푸른 저고리를 단정하게 입은 두 처녀가 화장을 어여쁘게 하고 강갈이를 찾아와,
“삼가 아뢰옵니다. 저희 주인께서 긴 밤의 무료함을 달래고자 어르신을 모시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무엇으로 무료함을 풀고자 하시더냐?”
“예, 노름이옵니다.”
옳구나, 하고 무릎을 탁 치고서 그녀들을 따라갔다.
한 십 리쯤 걸었다고 생각되었을 때였다. 안개를 뚫고 휘황하니 밝게 서있는 큰 기와집이 보였다. 강갈이가 안내되어 넓은 방에 홀로 앉았는데, 당당하게 문이 열리며 네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는데 그들 모두가 귀인의 풍모를 지녔으며 영락없는 신선의 모습이었다.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우리들도 실은 유람 중인 몸으로서 심심풀이로 투전을 하고 있습니다. 뭣하시면 저희에게 한 수 가르쳐 주십시오.”
판 위의 주사위의 눈도 지금과는 달리 빨강, 노랑 …… 등 색칠이 되어 있었다. 붙기 시작하면 어차피 밤을 새울 각오를 하고 시작하였으나, 한밤중이 되기도 전에 네 신선은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 그 중에서 한 젊은 신선이,
“또 한 판 승부! 현금이 없으면 그 옥구를 가져오너라.”
하고 하인에게 명령하고 주사위를 던졌으나 강갈이를 당해낼 수가 없었다.
“정말 훌륭한 선물입니다. 황공하옵게 받아가옵니다.”
“그 옥구는 천하의 보물이라 월수를 건널 때 옥경이가 빼앗으려 할지도 모르니 각별히 조심하십시오.”
하고 한 신선이 일러주었다. 월수란 낙동강 근처에 흐르는 옛 이름이지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초계를 건넌 것은 밤이었다. 물은 잔잔하고 달은 교교하게 밝은 것이 아무 일도 없이 무사히 건너려니 하였으나, 소매 속 깊숙이 감춰둔 옥구가 별안간 사라져 버렸다.
“요 앞 수선사에 옥경이란 여신이 사옵는데 그녀의 짓인가 하옵니다.”
뱃사공의 말에 강갈이는 짚이는 것이 있어서 옥경이가 산다는 집으로 찾아갔다. 돌계단을 오르니 넓은 정원 좌우에 자줏빛 옷을 입은 하녀가 십 여 명 늘어섰다가,
“여왕님 옥구의 도둑이 도착하였습니다.”
“무슨 소리냐? 도둑은 그 쪽이 아니냐?”
강갈이의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입 다무세요. 이 옥구는 나의 궁중에 수 년 간 내려온 보물인데 며칠 전 사라졌다가 이제 홀연히 나타난 거요.”
이 말에 강갈이는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노름을 즐긴다는 옥경이와 한 판 승부를 벌였다.
“당신이 질 것이 뻔한 일, 내기는 무엇으로 할까?”
옥경이의 말에 강갈이는 목숨을 걸고, 옥경이는 그의 몸을 6개월 간 걸게 되었다. 이 내기에서 이긴 강갈이는 6개월 간 미녀를 끼고 지냈다. 이윽고 6개월의 마지막 밤에 모든 것이 귀찮아진 강갈이가 지게 되어 목을 늘여 뜨리려는 순간 머리가 아픔과 동시에 자리가 축축하여 눈을 뜬 강갈이는 초라한 그의 부인이 허리를 떠메느라 끙끙거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실로 허망하고 괴이한 꿈을 꾼 것이었다.
그 후로는 절대로 노름을 하지 않고 오직 부인만을 사랑하여 부지런히 일하며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전한다.
출처 : 영천시 홈페이지 (전해오는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