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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수와 쌀구멍
산세 좋고 물이 맑아 경관이 좋기로 유명한 팔공산 동쪽 기슭에는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룩한 김유신 장군이 어린 시절 지혜를 닦고 힘을 길렀다는 석굴이 있다.
그 석굴 아래 마치 대문처럼 생긴 석벽을 들어서면 탁 트인 공간에 뒤로는 높은 산이 버티고 섰고 그 중턱에 매달리듯 아담한 암자가 하나 지어져 있다. 바로 돌구멍 절이라 불리는 중암암(中岩庵)이다. 이 암자는 신라시대 만들어졌는데 어느 해부턴가 원주스님 한 분만 절을 지키게 되었다. 어느 해 겨울 이곳에는 예년에 볼 수 없었던 큰 눈이 내려 팔공산 주위를 오통 설원 천지로 만들었다. 모든 길이 막히고 달빛마저 묻혀버린 듯 보이는 것이라고는 하얀 눈뿐이었다. 원주스님은 괴이한 일이라 생각했으나 별다른 도리가 없어 불경만 외우고 그날그날을 보내고 있었다. 더구나 날씨마저 혹한이라 눈이 녹기는커녕 오히려 얼음장처럼 단단하게 굳어지기만 하였다. 이렇게 며칠을 보낸 뒤 이제 참말 걱정거리가 생긴 것이다. 다른 것은 참을 수 있지만 먹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는 데 쌀독이 비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드디어 그 날이 오고야 말았다. 칡뿌리라도 캐어 먹으려 해도 뿌리는커녕 가지조차 보이지 않으니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원주스님은 부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마음을 가다듬고 조용히 합장을 하였다.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이제 속세에서 할 일은 끝나옵니까? 만약 그러시다면 부름에 따르겠습니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속으로 열심히 기도를 하고 있는 데 난데없이 산이 쩌렁쩌렁 울리는 호랑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문살을 핥는 발톱소리가 요란하게 정적을 깨뜨렸다.
“올 것이 왔구나.”
원주스님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고 일어나 조용히 문을 열었다. 금세 덮칠 줄 알았던 호랑이가 넙죽 엎드려 꼬리를 흔드는 것이었다. 실로 황소만큼 큰 짐승이었다. 어이없는 사실에 원주스님은 그 자리에 장승처럼 굳어있을 뿐이었다. 호랑이는 무언가 이상한 소리를 내다가 드디어는 짜증스럽게 옷자락을 물고 당기는 것이었다. 그대로 끌려갔다. 법당 동쪽에 이상하게도 눈이 쌓이지 않은 곳이 있었다. 그곳까지 안내하고는 홀연히 사라지고 말았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호랑이가 물지 않은 사실도 기이하지만 이곳까지 끌고 온 사실도 이상한 일이었다. 필시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원주스님은 사방을 훑어보았다. 달빛이 눈에 부셔 사방은 대낮처럼 밝았다. 참으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바로 서있는 뒤편 바위 앞에 쌀이 놓여져 있지 않는가. 하루 분은 족할 것 같았다.
“부처님 감사하옵니다.”
원주스님은 그 자리에 부복하여 부처님의 뜻이라 생각하고 감사를 드렸다. 다음날에도 손가락 크기의 구멍에서 쌀이 흘러 나왔다. 매일같이 일정한 양이 흘러 나왔으며 원주스님은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쌀로 지루하고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있었는데 세월은 흘러 입춘 무렵이 되었다. 하루는 남루하게 차려입은 스님 한 분이 찾아왔다.
“저는 태백산 암자에서 수도하던 중이온데 지난겨울 내린 눈으로 인해 암자를 잃었습니다. 몇 달간만 쉬어가게 해주십시오.”
우선 식량이 걱정되었으나 하루 분이라도 계속 구할 수 있으니 부족한 대로 나누어 먹으면 될 것이므로 불제자로 거절할 수 없어 쾌히 승낙하고 같이 생활하게 되었다. 다음 날 아침 바위구멍 앞으로 가니 어제까지보다도 많은 쌀이 흘러나와 있었다. 분명 두 사람 분이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뒤 길을 잃고 헤매던 사냥꾼 몇 사람이 또 찾아왔다. 바위구멍은 어찌 알았는지 조금의 빈틈도 없이 사람의 숫자에 맞추어 쌀을 내놓는 것이었다. 이튿날 사냥꾼이 떠난 후에는 여느 때와 같이 두 사람 분이 흘러나왔다.
원주스님보다는 손님으로 눌러앉은 스님이 더 신기하게 여기고 있었다. 한 달쯤 지났을까. 객승이 드디어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 조금 떨어진 산채로 숨어 들어가 팔공산을 무대로 온갖 못된 짓을 골라하는 산적을 찾아간 것이었다.
“원주스님을 처치하고 암자를 차지하면 평생 먹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 아예 산채를 그리 옮기는 것이 어떻소?”
객승이 험상궂은 두목 앞에서 의기양양하게 그 동안의 사실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거사를 할 것을 종용하였다. 처음에는 산적들이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팔공산 일대라면 손바닥을 펴놓고 그림을 그리라고 해도 다 그릴 것인데 그 암자에 그런 신기한 바위가 있으리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쑥 찾아온 중이 너무나 진지하게 그리고 수차 강조를 하니 속는 셈 치고 따라가 보기로 했다. 틀림없이 바위 구멍에서 쌀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신이 난 산적 떼는 승방으로 들어가 원주스님의 목을 자르려 하였다. 순간 마른하늘에 번개가 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객승이 낙뢰에 맞아 숨지고 말았다. 그리고는 집 채 만한 바위덩이가 나머지 산적들을 내리덮을 듯 공중으로 뜨는 것이었다.
“아니옵니다. 제가 이들을 개과천선 시키겠습니다.”
원주스님은 두 손으로 바위를 서너 칸 뒤로 물러놓았다. 그 바위가 바로 건들바위로 중암암 뒤쪽에 있다. 그 후 불제자가 된 산적 중에 한 사람은 원주스님의 힘의 원천이 무엇일까? 궁금하게 생각한 끝에 원주스님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그 날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원주스님은 석굴을 지나서 양 200m 서쪽에 위치한 약수터에 물을 마시러 간 것이었다.
“아, 저것이로구나.”
확신에 찬 모습으로 그 물을 계속 마시던 중 역발산과 같은 힘이 솟구치게 되었다. 힘을 주체할 수 없게 된 산적은
“나에게 덤빌 자는 덤벼보아라.”
하며 아름드리나무를 송두리 채 뽑아들고 지나가는 행인을 때려죽이는 등 못된 일을 일삼았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원주스님이 출타하고 없는 틈을 타서 온 절간의 스님들을 깨워
“나를 따르라, 내가 이 곳의 주인이다.”
하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소란을 피웠다. 그리고는 바위구멍 앞으로 가서 구멍을 더 크게 만들면 쌀이 더 많이 나오리라 여겨 막대기로 쑤시기 시작하자 꽝 소리와 함께 난데없이 물줄기가 쏟아져 그 산적의 눈을 쳐서 죽여 버렸다. 그 후 그 구멍에서는 쌀 대신 물만 교교히 흐르고 있으며, 장군수라 불리던 약수터는 인간을 어리석은 곳으로 유혹한다고 하여 묻어버렸다고 한다.
출처 : 영천시 홈페이지 (전해오는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