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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도(蓼島)와 무리미산
옛날 영천 땅에 구(具) 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에게는 꽃처럼 예쁜 고명딸이 있었다. 그 때의 풍속대로 그녀는 어릴 때 이미 인근의 건강한 청년과 정혼을 하였다.
그러나 양가 모두 지지리도 가난하여 정식으로 예식을 올리지 못하고 있는 처지였다. 젊은 청년과 규수는 서로 안타깝게 그리워하면서도 한 번도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서로가 먼발치에서 곁눈질로 훔쳐보며 속으로 부모님들이 야속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혼례라도 올려 주면 두 사람이 합심하여 노력한다면 남부럽지 않게 살 것 같기도 했으나 그들의 심정을 이야기 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남녀가 유별하고 도덕을 생명처럼 생각하는 부모님으로부터 무슨 날벼락이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해 드디어 불행이 찾아오게 되었다. 당시 고을 사또가 구 처녀를 마음에 두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사또는 관속을 앞세워 청혼을 했다. 사난한 살림이므로 논마지기라도 마련해주면 쾌히 응락 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또의 생각일 뿐 당사자인 구씨는 한 마디로 거절을 하였다. 이미 정혼한 처지이므로 인륜을 져버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또는 불쾌했다. 남의 사정은 아랑곳없이 감히 자기의 청을 거역하는 못된 놈이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성질이 난폭하여 걸핏하면 백성들을 중벌로 다스려 모두가 두려워하는 처지였다. 그런데 이미 아리따운 구 처녀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렸으니 가만있을 리 없었다. 순박한 구씨는 즉시 관아로 잡혀가 흠씬 매를 맞았다. 죄명은 역모를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고을사람들은 그 사실을 믿으려하지 않았다. 남의 집 품팔이로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평생 얼굴 한 번 찌푸리지 않고 착하게 살아가는데 설령 그가 사람을 죽였다고 해도 믿지 않을 터인데 역모를 했다는 것은 더더구나 당치도 않는 말이었다. 사또는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지쳐있는 구씨를 향해 은근히 일렀다.
“만약 내 청을 거역하지 않으면 죄를 불문에 부치고 너희 식구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후하게 전답을 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할 수 없이 국법에 따라 목을 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보아라.”
하고 회유를 하였다.
그러나 구씨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사실이지 째지도록 가난한 형편에 전답을 준다니 그보다 더 큰 도움은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리 사또라지만 다 늙은 사람에게 딸을 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보다 이미 정혼한 처지라 죽으면 죽었지 배신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사또는 목숨을 걸고 거절하는 구씨의 심경이 바위처럼 단단한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당장 죽이고 싶었으나 범죄는 처음부터 조작한 것이라 그럴 수도 없었다. 하기야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니 목을 베는 것도 문제는 아니지만 하잘 것 없는 농부 하나를 죽이고 행여 조정에 알려지면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사령 나졸들이 수군거려 이미 알 사람은 모두 알아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한 형편이었다. 한참동안 골똘히 생각한 사또는 어쩔 수 없이,
“지독한 놈이로구나. 저 놈을 요도(蓼島)에 위리 하여라.”
하고 이를 갈 듯 명령하였다.
요도는 도동(道東)에 있다. 영천 중심지에서 남천과 북천이 합하여 흐르고 다시 북안 쪽에서 흘러드는 호계천과 도동에서 합류를 하는데, 이 지점은 강이 넓어 조그마한 삼각주를 이루는 섬이 바로 요도이다. 지금은 제방을 쌓아 마을과 연결하여 과수원으로 변하였지만 아직도 당시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있다. 이곳이 바로 옛날 영천지방에서 중죄를 지은 사람을 가두어 두는 유배지였다. 구씨는 결국 위리된 몸이 되었다. 사방은 청청한 강물이 몸부림치듯 출렁거리고 멀리 강 건너에는 순라꾼들이 쉴 새 없이 순찰을 하고 있었다. 사람이라고는 그림자도 없고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소리만 마음을 슬프게 하였다. 더구나 모진 매에 시달린 데다 먹을 것이라고는 물뿐이니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빌어먹을 세상 딸년 하나 마음대로 출가시키지 못하는 세상이니 차라리 태어나지 말 것을……”
혼자 중얼거리며 탄식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몸부림쳐도 소용이 없었다. 어느 한 사람이 나서서 자신의 처지를 탄원하는 이가 없었다. 그럴 수도 없는 것이 서슬 푸른 사또 앞에 감히 나설 수는 없는 일이었다. 사또의 거동만 보아도 오금이 저리는 상황이라 “당신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소이다.” 라고 직언한다면 목숨이 열 개라도 부지하기 어려울 것이었다. 구씨는 처음 몇 날은 악으로 버티었다. 그러나 날짜가 지날수록 몸은 가누지 못할 정도로 지치게 되었고 정신만 초롱처럼 맑아질 뿐이었다. 이대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승복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다잡았다. 한편 정혼한 딸과 청년은 멀리 강 건너 유봉산에 올라 요도를 향해 정좌를 하고 있었다. 가까운 강 언덕에서 지켜보다가 순라꾼에게 쫓겨 이곳까지 올라온 것이었다.
그들은 아예 끼니를 거르고 기도하는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따지고 보면 구씨의 불행은 두 사람의 인연을 지켜주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러한 어른이 생사의 길목에 있는데 어찌 걱정만 하고 편히 쉴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 고통을 함께 나누기 위해 서로가 고난을 자원한 것이며, 언제라도 아버지가 풀려나면 내려갈 것이라고 서로가 언약하였다. 낮이면 아버지와 딸이 멀리 개미처럼 보이는 서로를 확인하며 영혼으로 이야기를 하였다. 비록 천하게 버림받고 살지만 결코 마음이라도 더럽게 살지 말라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밤이 되면 어렴풋이 보이던 형체마저 사라지면 딸과 청년은 목청을 가다듬어,
“아버지……”
하고 불렀으며, 아버지는 되받아
“오냐.”
하고 소리쳤다.
그 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온 산을 더듬고 벌판을 거슬러 밤마다 오장을 녹이는 처량한 울부짖음이 되어 인근 사람들의 가슴을 서럽게 적시었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 차츰차츰 식어가는 육신과 함께 음성도 가라앉았다. 아버지는 이제 스스로 잠들어 감을 느끼며 보일 듯 말 듯 딸이 앉아있는 산마루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연신 손짓을 했다. 이제 자신은 살아날 가망이 없으니 너희라도 부디 돌아가 행복하게 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두 남녀에게 그러한 손짓이 보일 리 없었다. 결국 허공을 휘젓다가 생을 하직하고 말았다.
그날 밤 난데없이 구름이 몰려오고 뇌성이 천지를 진동하는 괴변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억울하게 죽은 구씨의 사정을 안 하늘이 노하였다고 수군거렸다. 밤새도록 몰아친 비바람은 이튿날 먼동이 틀 무렵에야 개었다.
그런데 정말 괴이한 일은 밤사이에 벌어졌다. 죽어 있어야할 시신은 온 데 간 데 없어지고 유봉산에서 아버지를 목 놓아 부르던 딸과 청년은 산 아래로 내려와 돌이 되어 나란히 서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또는 벼락을 맞아 갈갈이 찢어진 살점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그러한 일이 있은 후 유봉산은 구씨가 딸을 그리워하며 죽는 날까지 물끄러미 쳐다보았다고 해서 무리미 산이라고 부르며, 두 남녀가 돌이 된 산 아래 마을은 입석동이라 불렀다. 또한 구씨의 원혼이 비가 되었다고 믿어 가뭄이 닥치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며, 강을 사이에 두고 애절하게 부르던 부녀의 주고받은 소리가 오동나무로 만든 가야금 소리처럼 애절하였다고 해서 강 이름을 동강포(桐江浦)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출처 : 영천시 홈페이지 (전해오는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