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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산(思母山)의 모정(慕情)
영천에서 북천을 건너 쳐다보면 쌍계동 뒤편에 그리 높지 않은 3개의 산봉우리가 있다. 그 중 금호 쪽으로 있는 2개의 산봉우리는 옛날 통신 수단으로 사용하였던 봉화산이고, 나머지 한 봉우리는 한 여인이 애틋한 사연을 간직한 채 조용히 잠들어 있는 곳이다.
지금도 정상에는 무덤이 남아있다. 그러니까 조선 중엽이라고 전해진다. 당씨 조씨 성을 가진 사람이 영천군수로 부임하여 왔다. 그는 서울에 살던 사람으로 줄곧 내직에만 근무하다가 처음으로 외직을 맡게 된 것이다. 요즘도 그러하듯이 잠깐 근무하다가 다른 곳으로 이주하여야 할 공직 생활에 멀리 서울에 있는 가솔을 모두 데리고 부임하려니 번거롭기도 하여 딸아이만 동행하여 부임을 하였다.
조 군수는 단정한 품위에 퍽 미남이었다. 아버지를 닮았음인지 조 낭자 역시 무척 아름다웠다. 훤한 이마와 반듯한 콧날, 항상 웃음기 감도는 입술과 총명한 눈빛은 어느 한 곳도 나무랄 곳이 없었다. 마치 깎아놓은 불상처럼 아름다우면서도 신비스러웠다.
이러한 낭자가 어느 날 우연히 사랑을 하게 되었다. 마침 타향의 생활도 조금씩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하루는 멀리 두고 온 어머니를 그리며 천천히 연당 뜰을 거닐고 있었다. 그런데 그리 넓지 않은 연못 저쪽에서 물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더니 한 건장한 도령이 앞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구중궁궐은 아니더라도 연못 속의 별당이라 날아가는 새도 감히 침범하지 못할 이 곳에 한 남자가 침범하였으니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시중을 들어주던 하녀마저 그날따라 바쁜 일이 있어 이곳에는 조 낭자 외에 아무도 없었다.
조 낭자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누구요?”
하고 숨이 끊어질 듯 기어가는 음성으로 얼떨결에 물었다.
“놀라지 마십시오. 옛날 이 집에 살던 사람이온데 하도 낭자가 아름다워서 나도 모르게 찾아온 것뿐이옵니다.”
실례를 범한 사람답지 않게 낭랑하게 말하는 도령은 여간 단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하얀 달빛을 받은 탓인지 얼굴은 수정처럼 맑고 깨끗하였다.
“하지만 선비의 몸으로 아무도 모르게 별당까지 숨어 들어온 것은 체면이 아닌 줄 아옵니다. 남이 볼까 두렵사오니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낭자의 마음은 무엇엔가 홀린 듯 친근감을 느꼈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오래도록 그 자리에 서있었다. 전류처럼 마음에서 마음으로 연결되는 그들의 정감은 달리 대화가 필요 없었다.
그 날부터 밤마다 별당 후미진 곳에서는 도란도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조 낭자는 도령에 대하여 어디 사는 누구인지, 이름도 성도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물론 물어보지도 않았다. 알 필요도 없었다. 무조건 도령이 죽도록 사랑스러웠던 것이다. 그런데 도령이 찾아오는 시간과 돌아가는 시간이 그토록 정확할 수가 없었다. 자정이 되면 그림자처럼 나타났다가 첫닭이 울기 전에 바람처럼 살아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방으로 높은 담이 쌓여있고 순라꾼들이 시간을 다투어 경비를 하는데 어떻게 찾아오는지 그것도 몰랐다. 이 역시 알 바가 아니었다. 만나면 별다른 할 이야기도 없으면서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만나면 시간이 흐르는 게 두려워 그대로 세월을 꽁꽁 묶어두고 싶었다.
이렇듯 마냥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밤이었다. 다른 때와는 달리 도령은 굳은 얼굴로 나타났다. 그리고 나직하게 조 낭자를 부른 후에,
“우리가 이렇게 만난 지 이미 오래되었지만 낭자는 나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을 것이오. 나는 수 년 전에 낭자의 부친처럼 이 고을의 군수로 있었던 사람의 아들이오. 그런데 불행하게도 몹쓸 병에 걸려 죽은 몸이 되었소. 그러니까 나는 사람이 아니고 혼령이오. 객귀로 방황하다가 낭자의 미색을 보고 장난기가 발동하여 이렇게 되었소. 그러나 이제는 참으로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소이다. 그러나 나는 저승의 몸이오, 낭자는 이승의 몸인데 어떻게 연분이 맺어지겠소. 그 동안 저의 부질없었던 장난을 용서하시고 언제까지나 행복하게 사십시오.”
하며 도령은 서운하다는 듯 눈물까지 뚝뚝 흘리며 떨리는 듯 말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조 낭자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로 들렸다. 무섭다는 생각보다도 다시는 도령을 만날 수 없다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러나 엄연한 현실이고 보니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도리가 없고 땅을 치며 통곡해도 소용이 없었다. 조 낭자는 드디어 병을 앓게 되었다. 눈을 감으면 꿈처럼 나타나는 도령의 다감한 모습을 잊으려고 애를 쓰면 더욱 선명하게 아롱거리는 것이었다. 결국 식욕을 잃게 되고 기운이 쇠잔하여 나중에는 아예 들어 눕고 말았다. 규중의 처녀가 외간 남자와 밤마다 속삭였다면 당시의 사회도덕으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었으며 만약 알려진다면 백 번 죽어도 가문의 용서를 받지 못할 것이었다. 그러기에 속으로 끙끙 앓으며 혼자 몸부림하고 있는 것이었다. 조 군수의 걱정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멀리 타향에서 소중한 딸이 중병을 앓고 있으니 부인도 가까이 없는 처지라 어디 의논할 자리도 없었다. 다만 의원을 불러 백방으로 처방하였으나 뚜렷한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조 낭자의 병은 더욱 깊어지고 이제는 도저히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자 그녀는 모든 사실을 아버지에게 털어놨다. 연유를 알게 된 아버지는 두 눈을 지그시 감으며 딸을 위로하였다.
“어디 너의 잘못이겠느냐? 사람이 아닌 귀신의 장난일진데 무엇으로 감당하겠느냐? 네가 아니라 난들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훌훌 털어버리고 마음 크게 먹어야 한다.”
하고 어린아이 다루듯 사랑스럽게 손을 꼭 쥐었다.
“아버님 죄송하옵니다. 못난 제가 마음이 허실하여 정결함을 잊은 듯하옵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은 듯하옵니다. 그토록 여자의 길을 가르쳐주시던 어머님을 뵈올 면목도 없고요. 만약 제가 죽으면 어머님이 계시는 한양길이 훤히 보이는 산봉우리에 묻어주십시오. 비록 죽어서라도 어머님의 가르침을 지키지 못한 죄를 빌며 또한 어머님을 그리며 떠나고자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며칠 후 조 낭자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조 군수는 딸의 유언에 따라 봉화산 옆에 고이 묻어주었다. 이 산에서 내려다보면 영천 서문통에서 화산을 거쳐 서울로 가는 당시 국도가 멀리까지 아련하게 내려다보인다.
한편 조 군수는 딸을 묻어놓고 날마다 못 잊는 마음으로 관아 난간에 걸터앉아 멀리 봉화산 쪽을 쳐다보게 되었다. 딸의 무덤까지 훤히 쳐다보일 정도로 생생한 거리였다. 그때부터 어머니를 사모하는 조 낭자의 무덤이 있었다고 하여 이 산을 사모산(思母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출처 : 영천시 홈페이지 (전해오는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