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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토이 – 트로이 영웅들의 귀환
트로이가 무너진 뒤 그리스 영웅들은 고향을 향해 흩어진다. 그러나 아테나의 분노와 폭풍, 배신과 복수가 귀향길을 뒤흔든다. 네스토르와 디오메데스는 돌아가지만 소 아이아스는 바다에서 죽고, 아가멤논은 미케네에서 살해된다. 오랜 방랑 끝에 메넬라오스가 돌아온다.
1.1 불타는 트로이를 뒤로하고
열 해 동안 이어진 전쟁이 끝나고 트로이는 불길 속에 무너졌다. 그리스군은 성 안에서 빼앗은 전리품을 배에 싣고, 살아남은 포로들을 각 장수에게 나누었다. 오랫동안 바라던 승리를 손에 넣은 병사들은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바닷가에는 수백 척의 배가 다시 돛을 올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승리의 밤은 질서와 경건함을 잃은 밤이기도 했다. 무너진 신전과 제단까지 약탈의 손길을 피하지 못했고, 프리아모스의 딸 카산드라는 아테나의 신상에 매달려 보호를 청했다. 그때 로크리스의 소 아이아스가 그녀를 억지로 끌어내며 여신의 성소를 더럽혔다. 이를 본 그리스인들조차 불길한 일이 벌어졌고 신들의 분노가 뒤따를 것임을 느꼈다.
새벽이 밝자 장수들은 출항을 서둘렀다. 배에는 금과 청동, 무기와 포로, 그리고 죽은 전우들의 기억이 함께 실렸다. 하지만 트로이를 떠나는 바다는 그들이 생각한 것처럼 평온하지 않았다. 성을 무너뜨린 뒤에도 신들의 분노는 남아 있었고, 각자의 고향에도 새로운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누구도 승리 뒤의 귀환길이 전쟁만큼 길고 위험해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불타는 트로이를 뒤로 출항을 준비하는 그리스 함대
1.2 아테나의 분노
그리스군이 출항을 준비하자 예언자 칼카스는 장수들에게 아테나가 크게 노해 있다고 경고했다. 여신의 신전에서 벌어진 소 아이아스의 행동 때문이었다. 전쟁 동안 그리스군을 여러 차례 도왔던 아테나가 이제 그들의 귀환을 막을 수 있다는 말에 장수들은 술렁였다. 그리스인들은 아이아스를 죽이려 했지만, 그는 여신의 제단으로 달아나 몸을 맡겼고 누구도 그곳에서 그를 죽이지 못했다.
아가멤논은 곧바로 바다로 나가는 것을 망설였다. 그는 제물을 바치고 아테나의 분노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메넬라오스의 생각은 달랐다. 트로이를 무너뜨리고 헬레네까지 되찾았으니 더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그는 가능한 한 빨리 함대를 띄워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했다.
같은 전쟁을 치른 두 형제는 마지막 순간에 서로 다른 선택을 내놓았다. 그들의 말다툼은 곧 그리스 장수 전체의 선택으로 번졌다. 누구는 아가멤논 곁에 남았고 누구는 메넬라오스를 따라 배에 올랐다. 열 해 동안 하나의 적을 향해 싸웠던 군대는 승리를 거둔 바로 그 자리에서 둘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부터 귀향은 군사적 결정이 아니라 신들의 뜻을 묻는 일이 되었다.
아테나의 제단으로 달아난 소 아이아스와 분노한 그리스인들
1.3 갈라지는 그리스 함대
다음 날 아침 메넬라오스의 의견에 동의한 장수들이 먼저 배를 바다로 밀었다. 네스토르와 디오메데스가 그와 함께 트로이 해안을 떠났고, 오디세우스를 비롯한 여러 장수도 처음에는 그 뒤를 따랐다. 반면 아가멤논은 남은 병사들과 해안에 머물며 아테나에게 제사를 올리고 여신의 분노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먼저 떠난 함대도 오래 하나로 움직이지 못했다. 항해 도중 장수들은 다시 귀환 방향과 출항의 옳고 그름을 두고 의견을 달리했다. 오디세우스는 테네도스까지 갔다가 마음을 돌려 아가멤논에게 돌아갔고, 네스토르와 디오메데스는 그대로 고향을 향해 항해를 계속했다. 같은 바다 위에서도 장수들의 선택은 조금씩 다른 귀환과 서로 다른 운명을 만들기 시작했다.
트로이로 올 때 그리스군은 하나의 목적 아래 아울리스에 모였지만, 돌아가는 길에서는 수많은 항로로 흩어졌다. 누군가는 순풍을 만나 곧 고향에 닿고, 누군가는 폭풍과 표류 속에 길을 잃게 될 터였다. 바다 위로 멀어지는 돛들은 승리한 군대의 귀환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이야기의 시작처럼 보였다. 노스토이, 곧 여러 ‘귀환들’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서로 다른 항로를 향해 갈라져 출항하는 그리스 함대
2.1 네스토르와 디오메데스의 귀환
네스토르는 귀향을 서두른 장수들 가운데 가장 운이 좋았다. 그는 바다의 기세가 잔잔할 때 머뭇거리지 않고 항해를 계속했다. 여러 장수가 갈림길마다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았지만, 네스토르는 고향 필로스를 향해 곧장 나아갔다. 오랜 전쟁을 살아남은 노장은 큰 재난을 만나지 않고 마침내 자신의 땅에 도착했다.
디오메데스도 네스토르와 함께 바다를 건넜다. 트로이 전쟁에서 아테나의 도움을 받아 수많은 공을 세웠던 그는 다른 함대가 폭풍과 표류에 휘말리는 동안 무사히 아르고스에 이르렀다. 두 영웅의 빠른 귀환은 뒤이어 닥칠 재난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었다. 같은 날 트로이를 떠났어도 모든 배에 같은 바람이 불어 준 것은 아니었다.
필로스의 궁전에 돌아온 네스토르는 가족과 백성의 환영을 받으며 다시 왕의 자리에 앉았다. 훗날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가 아버지의 소식을 찾아왔을 때, 네스토르는 바로 이 귀환길과 아가멤논 형제의 다툼을 들려주었다. 전쟁의 마지막을 본 늙은 왕은 살아 돌아왔지만, 함께 떠난 많은 전우들은 아직 바다 위에 남아 있었다. 그의 궁전에는 마침내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이 함께 도착했다.
잔잔한 바다를 건너 고향으로 향하는 두 영웅의 함대
2.2 칼카스의 마지막 길
모든 장수가 배를 타고 그리스로 향한 것은 아니었다. 예언자 칼카스는 암필로코스와 레온테우스, 포달레이리오스, 폴리포이테스 등과 함께 배를 버리고 육로를 택했다. 그들은 트로이 남쪽의 소아시아 해안을 따라 콜로폰으로 향했다. 배를 떠나 육로를 택한 이들의 귀향은 다른 영웅들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어졌다.
콜로폰에는 아폴론과 만토의 아들로 전해지는 예언자 몹소스가 있었다. 칼카스에게는 자신보다 뛰어난 예언자를 만나면 죽으리라는 예언이 내려져 있었다. 두 사람은 능력을 겨루었다. 몹소스는 무화과나무에 달린 열매의 수를 맞혔고, 새끼를 밴 암퇘지가 아홉 마리의 수컷 새끼를 낳을 것과 그 시각까지 정확히 예언했다. 칼카스의 답은 빗나갔다.
자신보다 뛰어난 예언자를 만났음을 깨달은 칼카스는 깊은 실의에 빠져 세상을 떠났고, 동료들은 그를 노티온에 묻었다. 아울리스에서 그리스군의 출항을 예언하고 전쟁 내내 신들의 뜻을 해석했던 사람도 끝내 고향에 닿지는 못했다. 동료들은 그의 장례를 마친 뒤 다시 길을 떠났다. 콜로폰에서 벌어진 예언의 승부는 칼카스의 마지막 시험이 되었다. 귀환은 살아남은 자 모두에게 허락된 약속이 아니었다.
콜로폰에서 예언 능력을 겨루는 칼카스와 몹소스
2.3 이집트로 밀려난 메넬라오스
메넬라오스는 헬레네를 되찾았다는 기쁨을 안고 트로이를 떠났다. 그는 네스토르와 디오메데스와 함께 출항했지만 그들의 길은 오래 함께하지 못했다. 순풍을 만난 두 영웅이 그리스 본토를 향해 빠르게 나아간 반면, 메넬라오스의 함대는 남쪽 바다에서 거센 폭풍을 만났다. 바람은 배들을 서로 떼어 놓고 귀환의 항로를 완전히 뒤흔들었다.
그가 이끌던 배 대부분은 흩어지거나 파도 속에서 사라졌다. 수많은 전우와 선박을 잃은 뒤 메넬라오스에게 남은 것은 다섯 척뿐이었다. 작은 함대는 고향 스파르타가 있는 서쪽이 아니라 남쪽으로 밀려 내려가 이집트에 닿았다. 본래 그리스 본토를 향해 곧장 이어져야 할 항로였지만, 신들의 뜻이 어긋나자 그의 귀향은 긴 방랑으로 바뀌었다.
메넬라오스와 헬레네는 곧바로 스파르타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들은 키프로스와 페니키아, 이집트 등 동부 지중해의 여러 지역을 떠돌며 귀환할 길을 찾고 많은 재물을 모았다. 전쟁의 원인이 되었던 두 사람이 이제는 함께 낯선 해안을 헤매게 된 것이다. 트로이의 왕궁에서 시작된 헬레네의 긴 이별은 끝난 듯했지만, 스파르타의 궁전은 여전히 멀리 떨어져 있었다.
폭풍을 뚫고 이집트 해안에 도착하는 다섯 척의 함대
3.1 아킬레우스의 경고
아테나에게 제사를 올리며 시간을 보낸 아가멤논도 마침내 트로이를 떠날 준비를 마쳤다. 그는 전리품과 포로들을 배에 싣고 남아 있던 장수들을 이끌어 바다로 나가려 했다. 그의 곁에는 트로이의 왕녀이자 예언자인 카산드라도 있었다. 열 해 동안 그리스 연합군을 지휘한 왕에게 이제 남은 일은 미케네로 돌아가는 것뿐처럼 보였다.
함대가 트로이 해안을 떠나 바다로 나서려 할 때, 죽은 아킬레우스의 혼령이 그리스인들 앞에 나타났다. 그는 앞으로 닥칠 재앙을 예고하며 곧바로 바다로 나가지 말라고 경고했다. 트로이 전쟁에서 가장 강했던 영웅이 죽은 뒤에도 전우들이 곧바로 바다로 나서는 것을 막으려 한 것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 있던 병사들은 다시 해안에 머무르려 하지 않았고, 아가멤논도 끝내 출항을 선택했다.
함대는 아킬레우스의 경고를 뒤로하고 에게해로 나아갔다. 처음에는 잔잔하던 바다 위로 점차 먹구름이 모였고, 바람의 방향도 거칠게 바뀌었다. 트로이 성벽 앞에서는 칼과 창이 운명을 갈랐지만 이제는 바다가 그 역할을 대신하려 하고 있었다. 뒤늦게 떠난 배들도 결국 아테나의 분노가 기다리는 바다로 들어갔다. 경고는 곧 현실이 되기 시작했다.
출항하는 아가멤논의 함대 앞에 나타난 아킬레우스의 혼령
3.2 소 아이아스의 최후
폭풍이 거세지자 로크리스의 소 아이아스가 탄 배도 거대한 파도에 휩쓸렸다. 아테나는 자신의 신전을 더럽힌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 여신이 벼락을 내리치자 배는 산산이 부서졌고 많은 병사가 바다로 사라졌다. 그러나 아이아스는 가까스로 물 위로 솟은 바위에 올라 목숨을 건졌다. 그는 신들의 분노에서도 살아남았다고 생각했다.
바위 위에 선 아이아스는 신들의 뜻을 거슬러서도 자신이 살아남았다고 큰소리쳤다. 그 오만은 마지막 피난처마저 잃게 만들었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삼지창으로 바위를 내리치자 거대한 바위가 갈라졌고, 아이아스는 다시 파도 속으로 떨어졌다. 트로이의 수많은 전투를 견뎌 낸 전사는 귀향길의 바다에서 끝내 목숨을 잃었다.
뒤에 그의 시신이 파도에 밀려오자 테티스가 미코노스에 묻어 주었다고 전해진다. 소 아이아스의 죽음은 트로이 함락 때부터 이어진 신들의 분노가 실제 재앙으로 모습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그의 배뿐 아니라 다른 그리스 함선들도 폭풍 속에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디가 안전한 항구인지조차 알지 못한 채 부서진 돛과 노를 붙잡고 서쪽의 해안을 찾아 헤맸다.
갈라지는 바위 위에서 파도에 휩쓸리는 소 아이아스
3.3 카페레우스의 거짓 불빛
폭풍에 밀려 에우보이아 부근에 이른 그리스 함대 앞에 어두운 밤바다가 펼쳐졌다. 멀리 카페레우스 곶에서 불빛 하나가 보이자 선원들은 안전한 항구로 이끄는 봉화라고 믿었다. 지친 사람들은 그 빛을 따라 배의 방향을 돌렸다. 그러나 그곳에는 피난처가 아니라 파도 아래 숨은 날카로운 암초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전승에 따르면 그 거짓 불빛을 피운 사람은 나우플리오스였다. 그의 아들 팔라메데스는 트로이 원정 중 오디세우스의 계략에 휘말려 죽었고, 나우플리오스는 그리스 장수들에게 아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귀환하는 함대가 가장 위험한 밤을 맞은 순간 높은 곶에 불을 밝혀 배들을 암초 쪽으로 유인했다.
배들이 하나둘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고, 가까스로 폭풍을 견딘 병사들까지 어두운 물속으로 떨어졌다.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고향을 눈앞에 둔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다. 폭풍과 거짓 봉화가 겹치면서 귀환 함대의 피해는 더욱 커졌다. 에게해 곳곳에는 부서진 배의 잔해가 떠다녔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밤이 밝기만을 기다리며 거센 파도 속에서 해안을 찾아 헤맸다.
거짓 봉화를 따라 암초로 향하는 그리스 귀환 함대
4.1 네오프톨레모스의 다른 길
네오프톨레모스는 다른 장수들과 같은 길을 택하지 않았다. 그의 할머니 테티스가 나타나 곧바로 바다에 나서지 말고 이틀 동안 기다리며 신들에게 제사를 올리라고 경고했기 때문이다. 아킬레우스의 아들은 그 말을 따랐다. 그 사이 먼저 출항한 그리스 함대는 거센 폭풍에 휘말렸고, 네오프톨레모스는 바다에서 벌어진 큰 재앙을 피할 수 있었다.
이틀 뒤 그는 헬레노스와 함께 육로로 귀환하기 시작했다. 트라키아를 지나 마로네이아에 이르렀을 때에는 다른 방향으로 떠돌던 오디세우스와 마주쳤다고 전해진다. 오랜 행군을 계속하던 중 늙은 영웅 포이닉스가 세상을 떠나자 네오프톨레모스는 그의 장례를 치러 주었다. 아버지 아킬레우스를 보살폈던 노인의 마지막 길을 이제 아들이 지켜 준 것이다.
네오프톨레모스는 계속 서쪽으로 나아가 마침내 몰로소이인의 땅에 이르렀고, 그곳에서 할아버지 펠레우스에게 아킬레우스의 아들로 인정받았다. 그는 몰로소이인의 땅에 자리를 잡았고, 안드로마케와 헬레노스의 운명도 그곳에서 새로운 길로 이어졌다. 트로이에서 가장 젊은 세대의 영웅 가운데 하나였던 그는 서둘러 바다로 나가지 않고 신의 경고를 따랐다. 그 선택 덕분에 그의 귀환은 폭풍과 난파에 휘말린 영웅들과는 다른 길로 이어졌다.
트라키아의 육로를 따라 서쪽으로 향하는 네오프톨레모스 일행
4.2 미케네로 돌아온 아가멤논
수많은 배가 폭풍 속에서 사라진 뒤에도 아가멤논은 살아남아 마침내 미케네에 도착했다. 열 해 동안 그리스 연합군을 이끌었던 총사령관이 전리품과 함께 왕궁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의 곁에는 포로가 된 카산드라가 있었다. 그러나 트로이 성을 무너뜨린 왕도 자신의 집에서 기다리는 위험까지는 피하지 못했다.
아가멤논이 전쟁에 나가 있는 동안 왕비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아이기스토스와 가까워져 있었다. 딸 이피게네이아의 희생에 대한 원한도 그녀의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었다. 아이기스토스는 오랫동안 왕의 귀환을 지켜보다가 마침내 살해를 준비했다. 전승에 따라 세부는 다르지만, 아가멤논은 환영을 받아야 할 자신의 궁전 안에서 속임수에 빠져 목숨을 잃었다.
카산드라 역시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트로이의 파멸을 미리 보았으나 아무도 믿어 주지 않았던 그녀는 미케네에서도 다가오는 살인을 알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트로이 전쟁의 최고 지휘관은 적의 창이 아니라 가족과 원한이 얽힌 집 안에서 최후를 맞았다. 가장 위대한 승리자의 귀환은 가장 비극적인 귀향 가운데 하나로 끝났다. 미케네의 문은 열렸지만 왕에게 평안은 돌아오지 않았다.
카산드라와 함께 미케네 왕궁으로 돌아오는 아가멤논
4.3 마침내 돌아온 메넬라오스
메넬라오스는 여전히 이집트 근처에서 고향으로 갈 길을 찾고 있었다. 파로스 섬에 바람이 막혀 오래 머물게 되자 바다의 노인 프로테우스의 딸 에이도테아가 그를 도왔다. 메넬라오스는 모습을 끊임없이 바꾸는 프로테우스를 끝까지 붙잡았고, 마침내 신들을 달래기 위해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 제사를 올려야 한다는 답을 얻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형 아가멤논의 죽음도 알게 되었다.
메넬라오스가 먼 바다를 떠도는 사이 미케네에서는 또 다른 복수가 끝나고 있었다.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가 성장해 친구 필라데스와 함께 돌아왔고, 아버지를 죽인 아이기스토스와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복수했다. 오레스테스가 두 사람의 장례를 치르던 바로 그 무렵, 오랜 방랑을 끝낸 메넬라오스도 마침내 많은 재물을 실은 배와 함께 그리스 땅으로 돌아왔다.
메넬라오스와 헬레네는 다시 스파르타의 궁전에 자리 잡았다. 네스토르와 디오메데스는 일찍 고향을 찾았고, 소 아이아스는 바다에서 죽었으며, 아가멤논은 돌아온 뒤 자신의 궁전에서 목숨을 잃었다. 메넬라오스도 수년간의 방랑 끝에 마침내 귀환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만은 아직 이타카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트로이에서 시작된 그의 긴 귀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랜 방랑 끝에 스파르타로 돌아오는 메넬라오스와 헬레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