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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넬라오스와 헬레네 – 스파르타로 돌아가는 길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메넬라오스는 헬레네를 되찾아 스파르타로 향하지만, 신들의 노여움과 거센 폭풍 때문에 긴 방랑에 빠진다. 이집트 앞바다에서 프로테우스의 도움을 얻은 그는 마침내 귀향의 길을 찾아 여덟 해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1.1 되찾은 헬레네
트로이의 성벽이 무너지고 불길이 도시를 삼키던 밤, 메넬라오스는 마침내 오랫동안 찾아 헤맨 헬레네와 다시 마주했다. 파리스가 죽은 뒤 헬레네는 그의 동생 데이포보스의 아내가 되어 있었고, 그리스군이 성 안으로 몰려들자 메넬라오스는 데이포보스를 죽이고 그녀를 되찾았다. 십 년 동안 이어진 전쟁의 시작점에 있었던 두 사람은 폐허가 된 트로이 한복판에서 다시 서로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나 그 재회는 오래전 스파르타 왕궁에서의 모습과 같을 수 없었다. 헬레네가 트로이를 떠난 뒤 수많은 왕과 병사들이 바다를 건너왔고,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 텔라몬의 아이아스를 비롯한 수많은 전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전쟁의 중심에 놓였던 헬레네는 불타는 도시를 뒤로한 채 말없이 그리스군의 배가 있는 해안으로 향했다. 메넬라오스 역시 승리의 기쁨보다 지나간 세월과 희생의 무게를 더 크게 느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헬레네와 함께 스파르타로 돌아가는 일이었다. 그곳에는 오랫동안 비워 둔 왕궁과 어린 시절 헤어진 딸 헤르미오네가 기다리고 있었다. 트로이는 무너졌고 전쟁도 끝났으니 고난 역시 끝난 듯 보였다. 그러나 바다는 아직 그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트로이의 불길을 뒤로하고 시작된 귀향은 또 하나의 긴 시련의 시작이었다.
불타는 트로이에서 다시 마주한 메넬라오스와 헬레네
1.2 갈라진 그리스 함대
트로이를 무너뜨린 그리스군은 승리를 거두었지만 곧바로 한마음으로 귀환하지 못했다. 로크리스의 아이아스가 아테나의 신상에 매달려 보호를 구하던 카산드라에게 불경을 저질렀고, 그리스군은 여신의 노여움을 두려워했다. 출항을 앞두고 아가멤논은 아테나를 달래기 위해 트로이에 더 머물며 제사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메넬라오스는 가능한 한 빨리 바다로 나가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결국 장수들의 의견은 갈라졌다. 메넬라오스는 네스토르와 디오메데스 등 먼저 떠나려는 이들과 함께 트로이 해안을 벗어났다. 처음 며칠 동안 바다는 평온했다. 그러나 함대가 아테나이 남쪽의 수니온 곶에 이르렀을 때 뜻밖의 죽음이 찾아왔다. 메넬라오스의 뛰어난 키잡이 프론티스가 아폴론의 화살을 맞아 갑자기 쓰러진 것이다. 메넬라오스는 항해를 멈추고 그곳에서 충실한 동료의 장례를 치렀다.
장례가 끝난 뒤 그는 다시 돛을 올렸다. 함께 출발했던 다른 장수들은 이미 저마다의 항로를 따라 멀어지고 있었다. 메넬라오스의 함대도 스파르타를 향해 남쪽으로 내려갔다. 고향까지 남은 거리는 길지 않아 보였고, 오랜 전쟁을 견딘 병사들은 귀환이 눈앞에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펠로폰네소스 남쪽의 말레아 곶에 가까워질 무렵, 하늘과 바다가 거칠게 변하면서 그들의 운명도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수니온 곶에서 죽은 키잡이 프론티스의 장례
1.3 폭풍에 흩어진 배들
말레아 곶에 가까워지자 제우스가 일으킨 거센 바람이 바다를 뒤흔들었다. 높은 파도가 배들을 덮쳤고, 메넬라오스의 함대는 서로의 모습을 확인하기 어려울 만큼 흩어졌다. 일부 배들은 크레타 쪽으로 밀려가 거친 해안과 암초에 부딪혀 부서졌지만,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가까스로 육지에 올라 목숨을 건졌다. 스파르타를 향해 곧장 이어질 것 같았던 귀향길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메넬라오스와 함께 남은 다섯 척의 배는 더욱 멀리 남쪽으로 떠밀려 갔다. 그들은 거센 바람과 파도에 휩쓸린 채 익숙한 그리스 바다를 벗어나 마침내 이집트에 이르렀다. 트로이의 전장에서 수많은 적과 맞섰던 메넬라오스도 바다의 힘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는 헬레네와 살아남은 동료들을 지키며 배를 수리하고, 낯선 해안에서 식량과 물을 마련해야 했다.
폭풍이 잦아든 뒤에도 고향으로 돌아갈 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들 앞에는 이제 익숙한 라코니아의 산과 항구가 아니라 처음 보는 나라와 긴 해안선이 펼쳐져 있었다. 메넬라오스는 다섯 척의 배를 이끌고 다시 항해를 시작했지만, 어느 바람이 자신들을 스파르타로 데려갈지는 알 수 없었다. 이렇게 해서 트로이 전쟁 뒤의 짧은 귀향은 여러 나라와 바다를 떠도는 긴 방랑으로 바뀌었다.
말레아 곶의 거센 폭풍에 흩어지는 그리스 함대
2.1 끝나지 않는 귀향
메넬라오스는 남은 배들을 이끌고 오랫동안 지중해와 먼 남쪽 바다를 떠돌았다. 그는 키프로스와 페니키아, 이집트를 비롯해 에티오피아와 리비아의 먼 땅까지 찾아갔다고 전해진다. 어느 곳에서는 물과 식량을 얻었고, 어느 곳에서는 낯선 왕과 사람들의 환대를 받았다. 트로이에서 스파르타까지라면 오래 걸리지 않았을 항해가 해를 거듭하는 방랑으로 바뀌었다.
긴 여행 동안 메넬라오스의 배에는 많은 재물이 쌓였다. 금과 은, 정교한 그릇과 귀한 직물이 먼 나라에서 얻은 선물로 실렸다. 헬레네도 이집트에서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테베의 알칸드레는 그녀에게 황금 물렛가락과 은으로 만든 바구니를 주었고, 이집트 여인 폴리담나는 슬픔과 고통을 잊게 하는 신비한 약을 건네주었다. 훗날 헬레네는 스파르타에서 그 약을 포도주에 섞어 사람들의 슬픔을 달래는 데 사용했다.
하지만 화려한 재물이 늘어나도 메넬라오스가 가장 원하는 것은 고향이었다. 그는 항구를 떠날 때마다 이번에는 스파르타에 닿기를 바라며 돛을 올렸다. 트로이에서 싸운 십 년에 이어 귀향길에서도 여러 해가 흘렀고, 다른 그리스 장수들의 생사조차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오랜 방랑을 이어가던 메넬라오스와 헬레네는 마침내 이집트 앞바다의 파로스섬에 머물게 되었다.
이집트 항구에 머무는 메넬라오스와 헬레네의 함대
2.2 파로스섬에 갇히다
파로스섬에는 배를 안전하게 댈 수 있는 항구가 있었지만, 메넬라오스에게 그곳은 또 하나의 감옥이 되었다. 섬에 도착한 뒤 바람이 완전히 멎어 버렸기 때문이다. 돛은 축 늘어졌고 바다는 움직이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고 열흘이 지나도 순풍은 불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스무 날 동안 섬을 떠나지 못했다. 배에 남아 있던 식량도 조금씩 바닥나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굶주림을 견디기 위해 해안을 돌아다니며 낚싯바늘로 물고기를 잡았다. 메넬라오스 역시 혼자 섬을 돌아다니며 탈출할 방법을 찾았지만 아무런 답을 얻지 못했다. 바로 그때 바다의 노인 프로테우스의 딸 에이도테아가 그에게 나타났다. 그녀는 메넬라오스에게 왜 아무 방법도 찾지 못한 채 섬에서 고통받고 있느냐고 물었다. 메넬라오스는 자신이 원해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신들이 길을 막고 있다고 대답했다.
에이도테아는 아버지 프로테우스라면 그 이유를 알고 있다고 말했다. 포세이돈을 섬기는 프로테우스는 바다의 깊은 곳과 지나간 일,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아는 신비로운 존재였다. 하지만 그는 쉽게 진실을 말해 주지 않았다. 에이도테아는 프로테우스가 매일 정오 무렵 바다에서 나와 물개 떼를 세어 본 뒤 그들 사이에서 잠든다고 알려 주었다. 그리고 그를 붙잡을 수 있는 방법도 함께 가르쳐 주었다.
바람이 멎은 파로스섬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선원들
2.3 바다의 노인 프로테우스
다음 날 새벽, 메넬라오스는 가장 믿을 만한 동료 세 명을 골라 에이도테아가 기다리는 해안으로 갔다. 그녀는 네 장의 물개 가죽을 준비해 두고 모래 위에 몸을 숨길 자리를 만들었다. 메넬라오스와 동료들은 가죽을 뒤집어쓴 채 물개들 사이에 누웠다. 견디기 힘든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에이도테아가 코 밑에 향기로운 암브로시아를 발라 주어 가까스로 버틸 수 있었다.
정오가 되자 프로테우스가 바다에서 올라왔다. 그는 해변에 누운 물개들을 하나씩 세었고, 변장한 네 사람도 아무 의심 없이 무리에 포함시켰다. 잠시 뒤 그가 물개들 사이에 누워 잠들자 메넬라오스와 동료들은 동시에 달려들어 그를 붙잡았다. 프로테우스는 사자와 뱀, 표범과 거대한 멧돼지로 모습을 바꾸었고, 다시 물과 커다란 나무로 변하며 빠져나가려 했다.
그러나 네 사람은 끝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 마침내 지친 프로테우스가 본래 모습으로 돌아오자 메넬라오스는 자신이 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지 물었다. 바다의 노인은 그가 앞서 이집트를 떠나기 전에 제우스와 여러 신들에게 마땅한 제물을 바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스파르타로 돌아가려면 먼저 다시 이집트의 강으로 가서 신들에게 정성껏 제사를 올려야 한다고 알려 주었다.
변신하는 프로테우스를 붙잡는 메넬라오스와 동료들
3.1 프로테우스가 전한 비극
메넬라오스는 귀향할 방법을 들었지만 프로테우스를 곧바로 놓아주지 않았다. 다른 그리스 장수들의 운명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프로테우스는 먼저 귀향길에서 목숨을 잃은 로크리스의 아이아스의 최후를 들려주었다. 이어 메넬라오스의 형 아가멤논이 무사히 고향에 도착했지만 아이기스토스의 계략에 빠져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형의 죽음을 들은 메넬라오스는 모래 위에 주저앉아 한동안 눈물을 흘렸다.
프로테우스는 죽은 이를 슬퍼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며 서둘러 귀향하라고 말했다. 그는 오레스테스가 이미 아버지의 원수를 갚았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또 아직 돌아오지 못한 오디세우스가 칼립소의 섬에 붙잡혀 고향으로 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려 주었다. 메넬라오스는 트로이의 승리가 모든 영웅에게 무사한 귀환을 보장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프로테우스가 바다로 사라진 뒤 메넬라오스는 그의 말에 따랐다. 그는 파로스를 떠나 다시 나일강이 흐르는 이집트로 향했고, 그곳에서 제우스와 여러 신들에게 제물을 바쳤다. 또한 이집트 땅에 먼 미케네에서 죽은 형 아가멤논을 기리는 봉분을 쌓았다. 제사를 마치자 마침내 신들의 노여움이 풀렸고, 오랫동안 막혀 있던 바람도 바뀌었다. 이제 메넬라오스와 헬레네 앞에 스파르타로 돌아갈 길이 다시 열렸다.
프로테우스에게 아가멤논의 죽음을 듣는 메넬라오스
3.2 여덟 해 만의 귀환
이집트에서 제사를 마친 뒤 순풍이 돛을 가득 채웠다. 메넬라오스의 배들은 오랫동안 떠돌았던 남쪽 바다를 벗어나 다시 그리스를 향했다. 이번에는 바람도 그들의 길을 막지 않았다. 수평선 너머로 익숙한 산과 해안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자 선원들은 환호했고, 메넬라오스와 헬레네도 오래도록 기억 속에만 남아 있던 고향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메넬라오스가 귀향길에서 보낸 시간은 여덟 해에 이르렀다. 십 년 동안 이어진 트로이 전쟁까지 합치면 그는 십팔 년에 가까운 세월을 전쟁과 바다에서 보낸 셈이었다. 그동안 많은 전우가 죽었고, 살아남은 사람들도 서로 다른 길을 떠돌았다. 헬레네 역시 스파르타를 떠났을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오고 있었다. 긴 세월은 두 사람 모두에게 되돌릴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전승에 따르면 메넬라오스는 그리스로 돌아와 먼저 미케네에 이르렀다. 그곳에서는 오레스테스가 아버지 아가멤논을 죽인 아이기스토스와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이미 복수한 뒤였다. 프로테우스에게 형의 비극을 들었던 메넬라오스는 이제 그 비극의 마지막 결과를 직접 마주했다. 그는 오레스테스를 만난 뒤 다시 길을 떠났고, 마침내 헬레네와 함께 오랫동안 그들을 기다리던 스파르타로 돌아갔다.
오랜 방랑 끝에 스파르타로 돌아오는 왕과 왕비
3.3 다시 왕과 왕비로
스파르타 왕궁에는 다시 메넬라오스와 헬레네가 자리했다. 오랫동안 떠나 있던 왕과 왕비가 돌아왔고, 세월이 흐르면서 어린아이였던 딸 헤르미오네도 어느덧 성장하여 혼인을 앞두게 되었다. 먼 나라에서 가져온 금과 은, 귀한 직물과 정교한 그릇들이 왕궁을 가득 채웠다. 훗날 텔레마코스가 스파르타를 찾아왔을 때, 메넬라오스의 왕궁은 해나 달처럼 빛날 만큼 화려한 곳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그 화려함 속에는 트로이의 기억도 남아 있었다. 메넬라오스는 죽은 전우들과 형 아가멤논을 잊지 못했고, 헬레네 역시 자신이 트로이에서 보낸 세월을 이야기했다. 텔레마코스를 맞이한 자리에서 두 사람은 오디세우스의 지략과 트로이 목마 속에 숨어 있던 영웅들을 회상했다. 헬레네는 자신이 스파르타를 떠났던 일을 후회했고, 메넬라오스도 돌아오지 못한 전우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긴 방랑은 끝났다. 헬레네를 되찾기 위해 바다를 건넜던 메넬라오스는 십 년의 전쟁을 마친 뒤에도 여덟 해를 더 떠돌아야 했다. 폭풍은 그의 함대를 흩뜨렸고 낯선 나라들은 고향을 멀어지게 했지만, 그는 결국 헬레네와 함께 처음 떠났던 스파르타로 돌아왔다. 트로이에서 시작된 싸움과 바다에서 이어진 방랑은 그렇게 끝나고, 두 사람은 다시 스파르타의 왕과 왕비로 살아가기 시작했다.
스파르타 왕궁에서 다시 자리한 메넬라오스와 헬레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