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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콘 – 아무도 믿지 않은 경고
십 년 동안 이어진 트로이 전쟁의 끝에서 그리스군은 자취를 감추고 해변에 목마를 남긴다. 사제 라오콘은 그것이 그리스인의 계략이라며 성 안으로 들여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목마에 창을 던진다. 그러나 시논의 거짓말과 불길한 징조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든다. 바다에서 나타난 두 마리의 뱀이 라오콘과 두 아들을 덮치자, 트로이인들은 그의 죽음을 신벌로 받아들인다. 결국 아무도 경고를 믿지 않은 채 트로이는 스스로 멸망을 성 안으로 끌어들인다.
1.1 텅 빈 그리스 진영
십 년 동안 트로이 성벽 아래를 메우고 있던 그리스군이 어느 날 아침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해안을 내려다보던 트로이인들은 믿기 어려운 광경에 술렁였다. 수많은 천막은 비어 있었고, 배들이 늘어서 있던 바다도 텅 비어 있었다. 오랜만에 성 밖에서 그리스군의 함성과 무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마침내 긴 전쟁이 끝났다고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성문을 나섰다.
트로이인들은 버려진 그리스 진영을 돌아다니며 적이 남긴 흔적을 살폈다. 아킬레우스와 헥토르가 싸웠던 들판도, 수많은 전사들이 쓰러졌던 해변도 이제 고요했다. 누군가는 그리스군이 마침내 전쟁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외쳤고, 누군가는 바닷가에 남겨진 물건을 전리품처럼 챙겼다. 오랫동안 성 안에 갇혀 살았던 사람들에게 그날의 바람과 햇빛은 전쟁이 끝났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리스군이 사라진 자리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하나 남아 있었다. 해변 가까이에 사람이 만든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거대한 나무 말이 서 있었다. 높은 목과 굵은 몸통, 단단히 맞물린 목재로 이루어진 목마는 멀리서도 성벽만큼 위압적으로 보였다. 사람들은 그 주위로 몰려들었다. 누구도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했지만, 바로 그 목마가 트로이의 마지막 날을 열고 있었다.
텅 빈 그리스 진영을 살피는 트로이인들
1.2 해변에 남겨진 거대한 목마
거대한 목마를 둘러싼 트로이인들의 의견은 곧 갈렸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인들이 무사한 귀환을 빌며 신들에게 남긴 봉헌물이라고 생각했다. 오랜 전쟁 끝에 적이 사라진 해변에서 목마는 승리의 기념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리스군이 정말 떠난 것인지, 이 거대한 나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한 채 저마다 다른 주장을 내놓았다.
그러나 카퓌스와 몇몇 사람들은 적이 남긴 물건을 믿어서는 안 된다며 목마를 바다에 던지거나 불태워 버리자고 주장했다. 다른 이들은 나무 몸통을 갈라 속을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십 년 동안 트로이와 싸운 그리스군이 아무 까닭 없이 이런 거대한 물건을 남겼을 리 없다는 의심이었다. 반면 신에게 바쳐진 물건을 함부로 손대면 화를 입을 수 있다는 두려움도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았다.
사람들은 목마 주위를 돌며 거대한 몸체를 올려다보고 나무 표면을 두드렸다. 그 안에서는 무장한 그리스 영웅들이 숨을 죽이고 있었지만 밖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목마를 성 안으로 옮기자는 목소리와 없애 버리자는 목소리가 뒤섞이던 순간, 군중 사이로 한 사제가 급히 다가왔다. 트로이의 사제 라오콘이었다. 그는 환호하는 사람들과 달리 처음부터 목마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해변의 거대한 목마를 둘러싼 트로이인들
1.3 목마를 의심한 사제
라오콘은 트로이의 사제로서 사람들의 환호보다 해변에 남겨진 목마를 먼저 바라보았다. 그는 그리스군이 아무 까닭 없이 거대한 구조물을 남기고 떠났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적이 진정 물러났다면 이런 수상한 선물을 남길 이유가 없었다. 트로이는 십 년 동안 그리스인들의 힘뿐 아니라 오디세우스와 같은 영웅들의 계략에도 시달려 왔다. 라오콘에게 목마는 승리의 기념물이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처럼 보였다.
그는 군중 앞에 서서 목마를 성 안으로 들이지 말라고 외쳤다. 그리스인들이 정말 떠났는지 누가 확인했느냐고 묻고, 적이 준 선물 속에 속임수가 없다고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고 따졌다. 목마 속에 병사들이 숨어 있을 수도 있었고, 성벽과 도시를 살피기 위한 장치일 수도 있었다. 무엇을 위한 물건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이 남긴 것을 스스로 성 안으로 가져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라오콘의 목소리는 잠시 사람들을 조용하게 만들었다. 십 년 동안 전쟁을 겪은 사람들에게 그의 의심은 충분히 타당해 보였다. 하지만 바로 그 긴 전쟁이 판단을 흐리고 있기도 했다. 너무 오래 승리를 기다렸던 트로이인들은 이제 전쟁이 끝났다고 믿고 싶어 했다. 목마 앞에서 라오콘은 그들이 듣고 싶지 않은 말을 하는 사람이 되어 갔다. 그리고 그는 말로만 경고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목마를 가리키며 경고하는 라오콘
2.1 목마를 향해 던진 창
라오콘은 사람들의 머뭇거림을 보자 무거운 창을 집어 들었다. 그는 다시 한번 그리스인의 선물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외친 뒤 목마를 향해 온 힘을 다해 창을 던졌다. 창은 거대한 말의 옆구리에 깊숙이 박혔다. 단단한 나무판이 떨리고 목마 전체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 순간 속이 빈 몸체 깊은 곳에서 둔탁한 울림이 퍼져 나왔다. 마치 거대한 빈 공간 안쪽에서 무언가 흔들리며 메아리치는 듯한 소리였다.
목마 안에 숨어 있던 그리스 영웅들에게는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다. 조금만 더 큰 소리가 나거나 누군가 나무판을 뜯어냈다면 계략은 그 자리에서 끝날 수 있었다. 라오콘의 창은 목마의 깊은 몸체에 박혔고, 안의 병사들은 움직이지도 숨을 크게 쉬지도 못한 채 밖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라오콘은 목마에서 울린 소리를 근거로 안을 조사해야 한다고 재촉했다.
그러나 군중은 결정하지 못했다. 어떤 사람들은 분명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고 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거대한 나무 구조물이 흔들리며 난 소리일 뿐이라고 여겼다. 바로 그때 트로이 병사들이 한 그리스인을 붙잡아 사람들 앞으로 끌고 왔다. 그의 이름은 시논이었다. 두 손이 묶인 채 겁먹은 모습으로 나타난 그는 자신이 그리스군에게 버림받은 희생자라고 주장했다. 사람들의 관심은 곧 그에게 쏠렸다.
거대한 목마의 옆구리에 창을 던지는 라오콘
2.2 시논의 거짓말
시논은 처음에는 입을 열기를 두려워하는 척하다가 자신이 그리스군에게 버림받은 사람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억울하게 죽은 팔라메데스와 가까웠으며, 그 때문에 오디세우스의 원한을 샀다고 말했다. 결국 그리스군이 귀환을 위해 사람을 제물로 바쳐야 하게 되자, 오디세우스가 예언자 칼카스를 끈질기게 압박해 자신을 희생자로 지목하게 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제물이 되기 직전 달아나 숨어 있다가 함대가 떠난 뒤 모습을 드러냈다고 거짓말했다.
사람들이 목마의 정체를 묻자 시논은 더 교묘한 이야기를 내놓았다. 디오메데스와 오디세우스가 트로이의 성물 팔라디온을 훔치면서 아테나의 분노를 샀고, 그 죄를 씻기 위해 이 목마를 여신에게 바쳤다고 했다. 목마를 이토록 크게 만든 것도 트로이인들이 성문 안으로 들여놓지 못하게 하려는 뜻이었다고 설명했다. 만일 목마를 파괴하면 아테나의 분노가 트로이에 닥치지만, 성 안으로 들이면 여신의 보호가 트로이로 옮겨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논의 눈물과 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조금 전까지 목마를 불태우자던 사람들조차 혹시 신성한 봉헌물을 훼손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라오콘의 창이 목마 속의 비밀을 드러낼 뻔했지만, 시논은 그 틈을 다시 거짓말로 덮었다. 이제 트로이인들의 의심은 목마에서 라오콘에게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트로이인들 앞에서 거짓말하는 포로 시논
2.3 바다에서 나타난 두 뱀
논쟁이 이어지는 동안 라오콘은 제단으로 향했다. 그날 라오콘은 제비뽑기로 포세이돈의 제사를 맡게 되어, 제단에서 커다란 황소를 희생 제물로 바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의 두 아들도 가까이에 있었다. 목마를 둘러싼 소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라오콘은 사제로서 맡은 의식을 치러야 했다. 그는 목마를 성 안으로 들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거두지 않은 채 제사를 준비했다.
그때 바다 쪽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멀리 테네도스섬 방향의 잔잔한 물결 위로 거대한 두 머리가 솟아올랐다. 두 마리의 뱀이 긴 몸을 굽이치며 나란히 트로이 해안을 향해 헤엄쳐 오고 있었다. 붉은 볏을 세운 머리는 파도 위로 높이 솟았고, 뒤따르는 몸통은 여러 겹으로 굽이치며 바닷물을 갈랐다. 해변에 있던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두 뱀은 달아나는 군중을 뒤쫓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목표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방향을 바꾸지 않고 곧장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에게 다가왔다. 조금 전까지 그리스인의 계략을 경고하던 라오콘은 이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두 괴물을 마주해야 했다. 사람들은 멀리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누구도 아직 그 징조의 뜻을 알지 못했지만, 곧 벌어질 일은 라오콘의 운명뿐 아니라 트로이인들의 판단까지 뒤바꾸게 된다.
바다에서 라오콘을 향해 다가오는 두 거대한 뱀
3.1 라오콘과 두 아들의 죽음
두 마리의 뱀은 먼저 라오콘의 두 아들에게 달려들었다. 아이들이 피할 틈도 없이 거대한 몸이 다리와 허리를 휘감았다. 라오콘은 아들들의 비명을 듣고 제단 곁에 있던 무기를 움켜쥔 채 달려들었다. 그는 뱀의 몸을 떼어 내고 아이들을 구하려 했지만, 한 마리를 밀어내기도 전에 다른 뱀이 그의 몸을 감았다. 두 아들을 향했던 뱀들은 곧 아버지까지 거대한 고리 속에 가두었다.
라오콘은 온 힘을 다해 뱀의 몸을 풀어내려 했다. 그러나 굵은 몸통은 그의 허리를 여러 겹 감고 다시 목까지 치솟았다. 사제의 머리에 두른 띠가 흐트러지고 제단 앞의 그릇이 넘어졌다. 멀리 달아난 트로이인들은 아무도 가까이 가지 못한 채 그 광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라오콘은 끝까지 두 아들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세 사람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목마를 향해 가장 강하게 경고했던 목소리도 그렇게 끊겼다.
두 뱀은 라오콘과 두 아들을 쓰러뜨린 뒤 아테나의 성채로 올라가, 여신의 발과 둥근 방패 아래에 몸을 숨겼다.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그 모습은 우연한 재앙처럼 보이지 않았다. 신들이 어떤 뜻을 드러낸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 징조가 무엇을 뜻하는가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라오콘이 남긴 경고와는 정반대의 답을 선택했다.
두 아들을 구하려 뱀과 맞서는 라오콘
3.2 잘못 이해된 죽음
라오콘의 죽음을 본 트로이인들 사이에서는 곧 하나의 해석이 퍼졌다. 그가 아테나에게 바쳐진 신성한 목마에 창을 던졌기 때문에 벌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두 뱀이 다른 사람은 건드리지 않고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에게 곧장 달려든 데다, 일을 마친 뒤 아테나의 성소 쪽으로 사라진 모습은 그런 생각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조금 전까지 의심스럽게 들리던 시논의 이야기는 이제 신의 뜻처럼 받아들여졌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목마를 불태우거나 바다에 던지자는 주장도 빠르게 사라졌다. 라오콘이 목마를 공격하고 죽었다면 자신들이 같은 행동을 했다가 어떤 벌을 받을지 알 수 없었다. 오히려 여신의 분노를 풀기 위해 목마를 정중히 성 안으로 모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라오콘이 목숨을 걸고 막으려 했던 일이 그의 죽음 때문에 더 빠르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목마의 속을 확인한 사람도 없었고 그리스 함대가 정말 고향으로 돌아갔는지 확인한 사람도 없었다. 트로이인들은 목마에서 울린 둔탁한 소리보다 시논의 거짓말을 믿었고, 라오콘의 경고보다 두 뱀의 출현을 두려워했다. 그의 죽음은 경고를 증명하는 마지막 기회가 아니라, 사람들이 그 경고를 버리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이제 목마를 성 안으로 끌어들이는 일을 막을 사람은 거의 남지 않았다.
쓰러진 라오콘을 바라보며 두려워하는 트로이인들
3.3 성 안으로 들어간 목마
트로이인들은 마침내 거대한 목마를 성 안으로 끌어들이기로 했다. 사람들은 성벽 일부를 헐어 길을 넓히고 목마의 발 아래 바퀴를 받쳤으며, 굵은 밧줄을 목에 걸어 힘을 모아 당겼다. 소년들과 처녀들은 노래를 부르며 밧줄에 손을 얹었고, 사람들은 긴 전쟁이 끝났다고 환호했다. 라오콘과 두 아들이 죽은 해변의 공포는 승리의 열광 속에서 빠르게 밀려났다.
그러나 목마는 성문의 문턱을 넘는 순간에도 마지막 경고를 보냈다. 거대한 몸체는 네 번이나 문턱에서 멈추었고, 그때마다 뱃속에서는 숨어 있던 그리스 전사들의 갑옷과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트로이인들은 그 소리를 듣고도 행렬을 멈추지 않았다. 목마가 도시 안으로 들어온 뒤 카산드라 역시 다가올 파멸을 예언했지만, 아폴론의 저주 때문에 그녀의 말을 믿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침내 목마는 트로이 성 안에 세워졌다. 사람들은 그것을 아테나에게 바친 성물로 여기고 신전들을 축제의 가지로 장식하며 전쟁의 끝을 기뻐했다. 해가 저물자 잔치에 지친 사람들은 하나둘 잠들었다. 그러나 목마의 어두운 내부에서는 무장한 그리스 영웅들이 밤이 깊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라오콘의 경고도, 목마 안에서 울린 쇳소리도, 카산드라의 예언도 모두 지나친 트로이는 스스로 적을 성벽 안에 들인 채 마지막 밤을 맞았다.
성벽을 지나 트로이 안으로 끌려가는 목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