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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로클로스 – 아킬레우스를 깨운 영웅
파트로클로스는 어린 시절 다툼 중 사람을 죽여 고향을 떠나 프티아의 펠레우스에게 몸을 의탁하고, 그곳에서 아킬레우스의 가장 가까운 동료가 된다. 트로이 전쟁에서 아킬레우스가 분노하여 싸움을 멈추자 그는 무너지는 그리스군을 지켜보다 친구의 갑옷을 입고 대신 전장에 나선다. 파트로클로스는 트로이군을 몰아내고 사르페돈까지 쓰러뜨리지만, 지나친 추격 끝에 헥토르에게 죽는다. 그의 죽음은 끝내 아킬레우스를 다시 전장으로 불러낸다.
1.1 고향을 떠난 소년
파트로클로스는 로크리스의 오푸스 출신인 메노이티오스의 아들이었다. 훗날 아킬레우스의 가장 가까운 동료가 되어 트로이 전쟁의 운명을 바꾸게 되지만, 그의 삶은 어린 시절 고향에서 벌어진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크게 달라졌다. 그는 처음부터 전쟁터를 누비는 영웅으로 자란 것이 아니라, 한순간의 잘못 때문에 자신이 태어난 땅을 떠나야 했던 소년이었다.
아폴로도로스가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파트로클로스는 오푸스에서 또래들과 주사위 놀이를 하다가 다툼을 벌였다. 싸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그는 암피다마스의 아들 클레이토니모스를 죽이고 말았다. 고의로 계획한 일이 아니었지만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파트로클로스는 더 이상 고향에 머물 수 없었고 아버지 메노이티오스와 함께 오푸스를 떠났다.
메노이티오스가 아들을 데리고 찾아간 곳은 프티아의 왕 펠레우스의 집이었다. 펠레우스는 고향을 떠나온 파트로클로스를 받아들여 자신의 집에서 지낼 수 있도록 했다. 그곳에는 펠레우스와 바다의 여신 테티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킬레우스가 있었다. 모든 것을 뒤로하고 낯선 땅에 도착한 파트로클로스는 프티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고, 그곳에서 훗날 자신의 운명과 떼어놓을 수 없게 될 아킬레우스를 만나게 되었다.
아버지와 함께 오푸스를 떠나는 어린 파트로클로스
1.2 아킬레우스의 곁에서
파트로클로스는 펠레우스의 집에서 아킬레우스와 가까워졌다. 두 사람의 관계가 처음부터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자세히 전하는 이야기는 많지 않지만, 《일리아스》가 시작될 무렵 파트로클로스는 이미 아킬레우스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미르미돈족의 진영에서 언제나 아킬레우스의 곁에 있었고, 아킬레우스 역시 중요한 일을 거리낌 없이 그에게 맡겼다.
트로이 원정을 떠나기 전 메노이티오스는 아들에게 한 가지 당부를 남겼다. 아킬레우스가 혈통에서도 더 높고 힘에서도 더 강하지만, 파트로클로스가 그보다 나이가 많으니 좋은 말로 이끌고 현명한 조언을 하라는 것이었다. 네스토르는 훗날 전쟁터에서 이 말을 파트로클로스에게 다시 상기시킨다.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와 힘을 겨루는 사람이 아니라 그의 곁에서 말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전투와 무관한 인물은 아니었다. 파트로클로스 역시 무장을 갖춘 전사였고, 아킬레우스와 함께 트로이 원정에 참가했다. 두 사람은 같은 진영에서 오랜 전쟁을 견뎠다. 아킬레우스가 가장 앞에서 적을 무너뜨릴 때 파트로클로스는 그의 곁을 지켰고, 전쟁이 십 년째에 접어들었을 때 두 사람의 관계는 그리스군 전체의 운명을 움직일 만큼 깊어져 있었다.
프티아에서 함께 성장하는 파트로클로스와 아킬레우스
1.3 트로이의 긴 전쟁
트로이 전쟁이 이어지는 동안 아킬레우스와 미르미돈족은 그리스군에서도 가장 두려운 전력 가운데 하나였다. 아킬레우스가 전장에 나서면 트로이군은 쉽게 그 앞을 막지 못했다. 파트로클로스도 미르미돈족과 함께 전쟁을 치렀지만, 《일리아스》의 초반에서 그는 자신의 이름을 앞세우기보다 아킬레우스의 진영을 지키며 친구와 행동을 함께했다.
전쟁 십 년째, 아킬레우스와 총사령관 아가멤논 사이에 큰 다툼이 벌어졌다. 아가멤논이 아킬레우스의 전리품이었던 브리세이스를 빼앗자 아킬레우스는 모욕을 참지 못하고 싸움을 거부했다. 브리세이스를 데려가기 위해 아가멤논의 전령들이 찾아왔을 때,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에게 그녀를 천막 밖으로 데려오게 했다. 파트로클로스는 친구의 명령에 따라 브리세이스를 전령들에게 넘겨주었다.
아킬레우스가 전투에서 물러나자 미르미돈족도 함께 전장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파트로클로스 역시 그와 함께 함선 곁에 남았다. 그러나 전쟁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리스군은 가장 강한 전사를 잃은 채 헥토르가 이끄는 트로이군을 상대해야 했다.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길어질수록 그리스군의 피해는 커졌고, 파트로클로스는 친구의 곁에서 동료들이 점점 위기에 몰리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다.
브리세이스를 전령들에게 넘겨주는 파트로클로스
1.4 무너지는 그리스군
아킬레우스가 전투를 거부하자 트로이군의 기세는 점점 거세졌다. 헥토르는 군대를 이끌고 그리스군을 밀어붙였고, 디오메데스와 오디세우스, 아가멤논 같은 주요 장수들이 차례로 부상을 입었다. 그리스군은 방벽 뒤로 밀려났고 전투는 함선 가까이까지 다가왔다. 아킬레우스는 여전히 싸우지 않았지만 함선 곁에 서서 멀리 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아킬레우스는 네스토르의 전차에 실려 돌아오는 부상자를 발견했다. 그는 아스클레피오스의 아들 마카온처럼 보였지만 멀리서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다.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를 불러 네스토르에게 가서 부상자가 누구인지 알아보라고 했다. 파트로클로스는 곧장 그리스군 진영을 가로질러 네스토르의 막사로 향했고, 그곳에서 부상자가 실제로 마카온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네스토르는 그를 그냥 돌려보내지 않았다. 노장은 아킬레우스가 언제까지 분노한 채 동료들의 죽음을 바라볼 것이냐고 물었다. 그리고 메노이티오스가 옛날 아들에게 남긴 당부를 상기시키며 아킬레우스를 설득해 보라고 했다. 만약 아킬레우스가 끝내 움직이지 않는다면 파트로클로스라도 그의 갑옷을 입고 미르미돈족을 이끌라고 제안했다. 네스토르의 말은 파트로클로스의 마음에 깊이 남았다.
네스토르의 막사에서 충고를 듣는 파트로클로스
2.1 부상자를 돌보다
네스토르의 막사를 떠난 파트로클로스는 곧바로 아킬레우스에게 돌아가지 못했다. 도중에 화살을 맞고 전장에서 물러나는 에우뤼필로스를 만났기 때문이다. 에우뤼필로스는 허벅지에 깊은 상처를 입어 제대로 걷기도 어려웠다. 그는 디오메데스와 오디세우스, 아가멤논을 비롯한 뛰어난 전사들이 잇달아 부상을 당했고, 트로이군의 공격을 막아 낼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파트로클로스는 그를 부축해 막사로 데려갔다. 에우뤼필로스를 눕힌 뒤 허벅지에서 화살을 잘라 빼내고 따뜻한 물로 피를 씻어 냈다. 이어 손으로 으깬 쓴 약초를 상처 위에 놓아 통증과 출혈을 가라앉혔다. 창과 화살이 오가는 전장 가까이에서 파트로클로스는 한동안 무기를 드는 대신 부상당한 동료를 돌보았다. 그러나 막사 밖에서 들려오는 전투의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침내 트로이군은 그리스군의 방벽을 돌파했고 병사들은 함선 쪽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본 파트로클로스는 두 손으로 허벅지를 치며 탄식했다. 그는 에우뤼필로스에게 더 이상 곁에 머물 수 없다고 말하고, 하인에게 에우뤼필로스를 돌보게 한 뒤 막사를 나섰다. 네스토르가 들려준 충고와 눈앞에서 본 부상자들의 모습은 이제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를 찾아가기로 했다.
에우뤼필로스의 화살 상처를 치료하는 파트로클로스
2.2 눈물을 흘린 파트로클로스
그리스 함선들을 둘러싼 싸움이 절정으로 치달을 무렵,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에게 돌아왔다. 그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킬레우스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파트로클로스는 디오메데스와 오디세우스, 아가멤논과 에우뤼필로스까지 그리스군의 뛰어난 전사들이 잇달아 부상을 입었다고 말했다. 이제 트로이군은 함선 바로 앞까지 닥쳐와 있었다.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에게 분노를 거두고 동료들을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아킬레우스가 여전히 직접 싸울 뜻을 보이지 않자 그는 다른 방법을 내놓았다. 자신에게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빌려주고 미르미돈족을 맡겨 달라는 것이었다. 트로이군이 멀리서 갑옷을 보고 아킬레우스가 돌아왔다고 생각한다면 물러설 것이고, 지친 그리스군도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아킬레우스는 마침내 친구의 청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분명한 조건을 붙였다. 트로이군을 함선에서 몰아내는 데까지만 싸우고 반드시 돌아오라는 것이었다. 승리에 취해 트로이 성벽까지 추격해서는 안 되었다. 아폴론을 비롯한 신들이 트로이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트로클로스는 그 말을 들었고, 곧 자신이 오랫동안 보아 온 친구의 갑옷을 입을 준비를 했다.
아킬레우스에게 갑옷과 출전을 청하는 파트로클로스
2.3 아킬레우스의 갑옷
바로 그때 헥토르가 텔라몬의 아들 아이아스를 밀어붙였고, 트로이군은 마침내 그리스 함선 한 척에 불을 붙였다. 불길을 본 아킬레우스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그는 파트로클로스에게 서둘러 갑옷을 입으라고 외치고 미르미돈족을 모았다. 파트로클로스는 정강이받이와 흉갑을 차고 청동 검과 커다란 방패를 갖춘 뒤 말총 장식이 달린 아킬레우스의 투구를 썼다. 다만 펠리온산의 물푸레나무로 만든 거대한 창만은 들지 못했다. 그것은 오직 아킬레우스만 다룰 수 있는 무기였다.
전차에는 아킬레우스의 불멸의 준마 크산토스와 발리오스, 그리고 필멸의 말 페다소스가 매어졌다. 아우토메돈이 고삐를 잡았고, 그 뒤로 오랫동안 전투에서 물러나 있던 미르미돈족이 무장을 갖추어 전열을 이루었다. 아킬레우스는 직접 싸움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미르미돈족을 독려하고 그들을 파트로클로스에게 맡겼다. 이제 친구의 갑옷을 입은 파트로클로스가 그들의 선두에 설 준비를 마쳤다.
출전에 앞서 아킬레우스는 천막으로 들어가 제우스에게만 술을 부어 기도할 때 사용하던 특별한 잔을 꺼냈다. 잔을 깨끗이 씻고 포도주를 부은 그는 파트로클로스가 트로이군을 함선에서 몰아내고 영광을 얻은 뒤, 갑옷과 동료들을 이끌고 무사히 돌아오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제우스는 그 기도를 들었지만 모두 이루어 주지는 않았다. 함선을 구하는 것은 허락했으나 파트로클로스의 귀환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파트로클로스와 미르미돈족은 마침내 전장으로 향했다.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출전을 준비하는 파트로클로스
2.4 함선에서 트로이군을 몰아내다
파트로클로스와 미르미돈족이 전장에 나타나자 싸움의 흐름이 달라졌다.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본 트로이군은 그가 분노를 거두고 다시 전장에 나타난 것으로 여기며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미르미돈족이 함선 주변의 적에게 달려들었다. 파트로클로스는 가장 먼저 파이오니아군을 이끌던 퓌라이크메스를 창으로 쓰러뜨렸고, 그의 죽음을 본 병사들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리스군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불붙은 함선의 불길을 끄고 다시 전열을 갖춘 뒤 트로이군을 밀어냈다. 조금 전까지 함선 사이에 몰려 있던 그리스 전사들은 앞으로 나아갔고, 트로이군은 방벽과 해자를 넘어 평원으로 퇴각했다. 전차들이 뒤엉키고 도망치는 병사들이 흩어지면서 그리스군의 진영을 덮쳤던 위기는 빠르게 걷히기 시작했다.
여기까지가 아킬레우스가 파트로클로스에게 맡긴 일이었다. 함선을 구하고 트로이군을 몰아냈으니 이제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전장에서 승기를 잡은 파트로클로스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도망치는 적을 뒤쫓아 트로이 평원으로 나아갔다.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미르미돈족의 선두에 선 그는 이제 친구 대신 모습을 드러낸 전사가 아니라 자신의 창으로 전투를 이끄는 한 명의 영웅이었다.
미르미돈족을 이끌고 트로이군을 몰아내는 파트로클로스
3.1 사르페돈을 쓰러뜨리다
파트로클로스가 거세게 추격하자 트로이의 동맹군들도 큰 피해를 입었다. 그 앞을 막아선 전사 가운데에는 리키아군의 왕 사르페돈이 있었다. 그는 제우스의 아들이자 먼 리키아에서 군대를 이끌고 트로이를 돕기 위해 온 강력한 영웅이었다. 사르페돈은 달아나는 리키아인들을 꾸짖고 전차에서 내려 파트로클로스와 맞섰다. 두 영웅이 서로를 향해 다가가는 모습을 하늘에서 지켜보던 제우스는 아들의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알아차렸다.
제우스는 사르페돈을 전장에서 구해 고향으로 돌려보낼 것인지 고민했다. 그러나 헤라는 이미 운명으로 정해진 죽음을 거슬러 아들을 구한다면 다른 신들도 전쟁터에 있는 자신의 자식들을 살려 내려고 할 것이라고 만류했다. 제우스는 결국 사르페돈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전투가 시작되자 사르페돈의 창은 파트로클로스를 빗나가 전차에 매여 있던 필멸의 말 페다소스를 쓰러뜨렸다. 아우토메돈은 고삐에 얽힌 죽은 말의 연결끈을 재빨리 잘라냈다. 사르페돈이 다시 던진 창도 빗나갔고, 파트로클로스의 반격은 사르페돈의 몸 깊숙이 박혔다.
사르페돈이 쓰러지자 그의 시신과 갑옷을 둘러싸고 리키아군과 그리스군 사이에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마침내 그리스군이 갑옷을 차지했고, 제우스는 아폴론에게 아들의 시신을 거두게 했다. 아폴론은 사르페돈의 몸을 강물로 씻고 암브로시아를 바른 뒤 불멸의 옷을 입혀 잠과 죽음의 신에게 맡겼다. 두 신이 시신을 고향 리키아로 옮기는 동안에도 전투는 계속되었다. 그러나 파트로클로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달아나는 트로이군을 뒤쫓았다.
리키아의 왕 사르페돈과 맞서는 파트로클로스
3.2 트로이 성벽 앞까지
사르페돈을 쓰러뜨린 뒤에도 파트로클로스는 돌아가지 않았다. 아킬레우스는 분명 함선에서 적을 몰아낸 뒤 돌아오라고 했지만, 눈앞에서는 트로이군이 무너져 달아나고 있었다. 파트로클로스는 아우토메돈에게 전차를 몰게 하고 트로이와 리키아의 병사들을 뒤쫓았다. 그의 손에 수많은 적이 쓰러졌고 헥토르마저 전차를 돌려 성 쪽으로 물러났다.
파트로클로스는 마침내 트로이 성벽에 이르렀다. 기세는 너무나 강해 그리스군이 그날 성을 함락할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는 성벽의 한쪽을 향해 세 번이나 돌진했지만 그때마다 아폴론이 성벽 위에서 그를 밀어냈다. 파트로클로스가 네 번째로 달려들자 아폴론은 물러가라고 명했다. 트로이는 파트로클로스에게 함락될 운명이 아니었고, 아킬레우스에게조차 허락된 일이 아니었다.
파트로클로스는 신의 명령을 거역하지 못하고 성벽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그는 함선으로 돌아가지도 않았다. 스카이아이 문 근처에 있던 헥토르는 계속 싸울지 성 안으로 들어갈지 망설이고 있었다. 그때 아폴론이 트로이 전사의 모습으로 나타나 헥토르에게 다시 전장으로 나가 파트로클로스를 상대하라고 부추겼다. 두 영웅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트로이 성벽으로 돌진하다 아폴론에게 저지되는 파트로클로스
3.3 헥토르의 창에 쓰러지다
파트로클로스와 헥토르가 맞서기 전에 두 군대는 헥토르의 전차를 몰던 케브리오네스의 시신을 두고 격돌했다. 파트로클로스가 커다란 돌을 던져 케브리오네스를 쓰러뜨리자 헥토르는 전차에서 뛰어내려 그의 시신을 지키려 했다. 파트로클로스도 달려들었고 두 영웅의 주변으로 병사들이 몰려들었다. 치열한 싸움 끝에 그리스군이 케브리오네스의 시신을 끌어냈지만, 파트로클로스는 물러나지 않고 다시 트로이군 한가운데로 돌진했다.
그는 세 차례 적진으로 뛰어들어 수많은 전사를 쓰러뜨렸다. 그러나 네 번째로 돌진하는 순간 아폴론이 짙은 안개에 몸을 감추고 뒤에서 다가왔다. 신이 파트로클로스의 등과 어깨를 세게 내리치자 그의 눈앞이 흐려졌다. 머리에서는 아킬레우스의 투구가 굴러 떨어졌고, 손에 들고 있던 창은 부러졌으며, 방패도 땅으로 떨어졌다. 아폴론이 몸을 감싼 갑옷의 끈마저 풀어 버리자 파트로클로스는 무장을 잃고 힘없이 비틀거렸다. 그때 에우포르보스가 뒤에서 창으로 그의 두 어깨 사이를 찌른 뒤 곧바로 물러났다.
큰 상처를 입은 파트로클로스가 동료들에게 돌아가려는 순간 헥토르가 다가왔다. 헥토르는 창으로 그의 몸에 마지막 치명상을 입히고, 쓰러진 파트로클로스를 향해 트로이를 함락하려 했던 뜻을 조롱했다. 그러나 파트로클로스는 자신을 먼저 쓰러뜨린 것은 운명과 아폴론이며, 에우포르보스가 그다음이고 헥토르는 마지막 세 번째였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헥토르 역시 오래 살아남지 못하며 아킬레우스의 손에 죽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 말을 끝으로 파트로클로스는 전장에서 숨을 거두었다.
무장을 잃은 파트로클로스에게 다가오는 헥토르
3.4 아킬레우스를 깨운 죽음
파트로클로스가 죽은 뒤에도 그의 시신을 둘러싼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헥토르는 파트로클로스가 입고 있던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벗겨 차지했고, 트로이군은 시신까지 빼앗으려 했다. 메넬라오스와 두 아이아스를 비롯한 그리스 전사들은 파트로클로스의 몸을 지키며 필사적으로 싸웠다. 한편 아킬레우스는 아직 친구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함선 곁에 있었다.
네스토르의 아들 안틸로코스가 달려와 소식을 전했다. 파트로클로스가 죽었으며 그의 시신을 두고 싸움이 벌어지고 있고, 갑옷은 헥토르가 차지했다는 것이었다. 아킬레우스는 두 손으로 흙을 움켜 머리에 뿌리고 땅에 쓰러졌다. 그의 울부짖음을 들은 어머니 테티스가 바다에서 올라왔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죽이면 자신의 죽음도 뒤따르리라는 말을 듣고도 물러서지 않았다. 테티스는 헥토르에게 빼앗긴 갑옷을 대신할 새로운 무구를 마련해 오겠다며 그때까지 전투를 기다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을 둘러싼 싸움은 계속되고 있었다. 이리스의 말을 들은 아킬레우스는 무장하지 않은 채 방벽 앞으로 나아갔다. 아테나가 그의 머리 위에 신성한 빛을 두르자 그는 해자 너머의 트로이군을 향해 세 번 크게 외쳤다. 아킬레우스의 목소리에 트로이군이 혼란에 빠진 사이 그리스군은 마침내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을 함선으로 옮겼다. 아직 새 갑옷도 입지 않았지만 아킬레우스는 이미 달라져 있었다. 살아 있을 때 그의 곁을 지켰던 파트로클로스는 자신의 죽음으로 마침내 아킬레우스를 다시 전장으로 불러냈다.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에 절규하는 아킬레우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