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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의 조선 유학생 5(황기환 애국지사)
황기환(1886~1923) 지사는 1886년 4월 4일 평안남도 순천에서 태어나 1904년 증기선을 타고 하와이를 거쳐 미국에 건너갔다, 이후 안창호 선생이 주도하여 설립한 공립협회에 가입해 로스앤젤레스 인근 해드랜드 지회의 부회장을 맡아 1906년까지 활동하였다. 청년 황기환은 1918년에 미 육군에 자원입대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전선에 배치되어 전투 중에 다친 중상자를 구호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종전 후에도 프랑스와 독일을 오가며 활동하다 프랑스 파리에서 파리평화회의가 열리게 되자,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김규식을 파리위원부 대표로 선정했다. 김규식은 독일에서 활동하던 황기환을 서기장으로 임명하여 두 사람은 파리에서 활발한 외교 독립운동을 펼쳤다.
황기환(1886~1923) 서기장(사진:국가보훈부)
황기환 지사는 제1차 세계대전 참전 경력을 바탕으로 승전국 대표들을 만나 조선의 독립을 당당하게 요구했다. 파리에서는 프랑스 한인회를 결성하고 《자유한국(La Corée Libre)》이라는 잡지를 발간하고, 강연에서 연설도 하였다. 1919년 10월, 일제에 의해 북위 69도 러시아 최북단 부동항인 무르만스크로 끌려왔던 조선인 노동자 500명 중 홍재하를 비롯한 200명이 탈출하여 영국군을 따라 에든버러에 도착했다는 놀라운 소식을 알려졌다.
임시정부 파리위원회는 서둘러 황기환 서기장을 영국으로 파견해 일본으로의 강제 송환을 막으려고 노력했다. 그는 일본제국의 방해를 뚫고 35명을 구출해 프랑스로 건너온다. 일본은 남은 노동자들을 제물포로 귀국시켰다. 런던에서는 영국 언론인 매켄지 기자와 함께 국회의원 17명을 포함한 친한파 인사 62명을 규합해 1920년 10월 26일 ‘대영제국 한국친우회’를 창립했다.
1921년 8월, 미국에서 활동하던 이승만이 “위싱턴 회의를 준비해야 하니 미국으로 와달라.”고 황기환 서기장에게 요청하여 그는 뉴욕으로 건너와 이승만, 서재필을 보좌하며 외교선전 활동을 하였다. 그는 뉴욕과 런던을 바쁘게 오가며 조국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다가 1922년 뉴욕으로 이주하고, 뉴욕한인교회에 자주 출석했다.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미위원회’에서 열심히 활동하던 중 1923년 4월 18일, 37세 나이에 심장병으로 숨을 거두었다. 뉴욕한인교회는 이국 땅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친 애국지사를 뉴욕 퀸즈 매스패스 마운트 올리벳 공동묘지에 안장하였다. 그는 결혼도 하지 않아 후손도 없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위원회 당시 그의 위대한 업적을 인정해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장철우 목사(사진:연합감리교뉴스)
뉴욕한인교회 장철우(1939~2025) 목사는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감리교 신학대학교(56학번)를 졸업한 후 1971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72년 미국 시카고로 이주한 후, 1974년 11월 교인 몇 명과 더불어 라그란지 한인제일감리교회를 개척하며 삼일절 정신 계승 및 민족정신, 한국혼, 애국 운동 선양에 앞장을 섰다.
뉴욕한인교회애서 사역하던 장 목사는 나이가 점차 많아지자, 뉴욕에서 독립운동을 한 애국자들이 한인교회를 거쳐 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는 교회 초기 교인들의 발자취를 조사하려고 옛 문서와 명부를 하나씩 꺼내 보다 2006년에 신도들의 묘지 기록이 적혀있는 명부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교회명부에는 “황기환: 서울에서 출생, 1923년 4월 18일 사망, 장지 Grave No. 2484 in Plot Westlawn, Mount Olivet Cemetery. ‘대한인 황긔환 지묘’, 영문 이름 ‘Earl Whang, Born in Korea, Died April 19, 1923”이라고 적혀있었다.
장 목사는 교인들에게 삼일절 정신 계승을 항상 강조했다. 교회 청년들과 함께 선각자들의 묘지를 일일이 찾아다니다 2년 만인 2008년에 퀸즈 매스패스 마운트 올리벳 공동묘지에서 ‘대한인 황긔환지묘’라고 적힌 50cm의 작은 애국자 묘비를 찾아냈다. 인근에는 애국지사 염세우의 묘도 있었다.
대한인 황긔환 지묘(사진:연합뉴스)
장철우 목사는 2005년부터 2012년 7월까지 뉴욕한인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다 은퇴했다. 2013년 4월에 국가보훈처는 뉴욕한인교회의 ’대한인 황긔환 지묘‘ 실사 요청을 받아들여 실사단을 현지로 파견했다. 실사단은 생전 고인에 대한 신분 확인 절차를 실시했다. 대전 현충원에 유해 봉환을 추진하려고 협의했지만, 고인이 생전에 미군 장교로 활동해 미국 시민권자로서 무공훈장까지 받았고, 묘를 파묘하려면 반드시 유족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미국 뉴욕주 법원의 입장이 있었다. 당시 뉴욕한인교회와 황기환 애국지사 기념사업회는 황 지사의 유해를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에 모시는 안장 방안을 추진하기도 했다.
국가보훈처는 황기환 지사의 유해를 국내 봉환하기 위해 국내에서 후손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찾지 못하고 2016년 7월 1일 미국 법원에 청원서를 제출했다. 복잡한 상황 속에 세월만 무심하게 흘러갔다.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사진:tvn)
2018년 7월 7일, tvn은 김은숙 각본, 이응복 연출의 토·일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밤 9시에 방영하였다. 이 드라마는 1900년부터 1907년까지의 의병(義兵) 이야기의 뜨거운 항일 투쟁사를 아주 묵직하게 다뤘다. 배우 이병헌(유진 초이 역), 김태리, 유연석, 김민정, 변요한 등 인기가 많은 젊은 배우들이 출연해 높은 인기를 끌었다. 특히 놀라운 것은 작품이 로맨스 드라마가 아닌데도 온 가족이 TV 앞에 모여 숨을 죽이며 24부작 드라마를 보았다. 2018년 9월 30일 종영되자, 많은 시청자가 드라마가 너무 빨리 끝났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드라마의 감동을 더한 〈미스터 션샤인〉의 주제곡은 〈그날〉로 박효신이 노래했다. 작사는 김이나, 박효신이하고, 작곡은 박효신, 정재일이 맡고 편곡을 정재일이 하여 완성도를 높였다.
〈그날〉
잔인한 햇살에도 그 봄은 아름다웠어 숨죽인 들판 위로 꽃잎은 붉게 피어나 끝없이 긴 밤에도 나를 덮은 건 푸르름이라 비루한 꿈이라도 다시 떠나리라 모든 바람이 멎는 날 그리움이 허락될 그 날 거칠게 없는 마음으로 널 부르리라 행여 이 삶의 끝에서 어쩌면 오지 못할 그 날 잠들지 않는 이름으로 널 부르리라 너와 나의 다름이 또 다른 우리의 아픔이라 서로를 겨눈 운명에 눈을 감으리라 모든 바람이 멎는 날 그리움이 허락될 그 날 거칠게 없는 마음으로 널 부르리라 행여 이 삶의 끝에서 어쩌면 오지 못할 그 날 잠들지 않는 이름으로널 부르리라 메마른 나의 바다에 단 한번 내린 붉은 태양 닿을 수 없는 머나먼 꿈 못 잊으리라 혹여 이 삶의 끝에서 결국 하나가 되는 그 날 찬란했던 아픔을 다 푸르름이라 부르리라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실제 주인공(사진:tvn)
인기작가 김은숙의 〈미스터 션샤인〉 작품은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 국가보훈처는 해외에서 의롭게 독립 투쟁하다 순국하신 애국지사들의 묘지 발굴과 140여 기의 애국지사 묘와 유해 봉환을 서둘렀다. 2019년 뉴욕한인교회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황 지사의 유해를 한국 현충원에 안장하기로 결정하고, 미국 뉴욕 총영사에 공식 의뢰했다.
2021년 12월, 허성호 영사가 뉴욕총영사관에 부임했다. 허 영사는 2022년 전담변호사를 선임해 본격적인 승인절차를 밟았다.
당시 미국 뉴욕 법원은 “유족의 동의 없이는 파묘가 불가능하다.”라는 입장에 한인사회가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김광수 변호사가 ‘유족 증빙 서류 부재’ 문제를 해결했다. 미국 퀸즈 마운트 올리베 공동묘지 에드워드 슈미트 묘지관리소장에게 한국의 입장을 설득하여 도움을 요청하여 파묘, 화장 절차 등 복잡한 문제를 무사히 해결했다. 마침내 2023년 2월 유해 봉환이 최종 결정되었다.
2023년 3월 1일 3·1절을 맞아 뉴욕한인회와 뉴욕총영사관, 뉴욕한인교회는 퀸즈 마운트 올리베 공동묘지에 있는 황기환 애국지사 묘역에서 ‘황기환 염세우 애국지사의 추모식 및 뉴욕주 애국자 선포식’ 행사를 거행하였다.
황기환 · 염세우 애국지사 추모식(사진:하이뉴욕코리아)
염세우(廉世雨, 1873~1923) 애국지사는 강원도 김화군 군내면 천동읍의 만석군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결혼 후 노동이주자를 결심하여 1904년 11월 17일에 일본 고베에서 시베리아 기선을 타고 하와이로 입국하였다. 이후 1907년 미국 나성으로 이주하였다. 1918년에 나성 중국촌에 서양음식점을 개업했다. 1921년에는 활동 무대를 미 동부로 옮기고 뉴욕한인교회에서 활동했다. 그는 독립운동자금을 모아 조국에 보내는데, 앞장을 섰다. 국민회 뉴욕지방회에 참여해 조국의 독립운동에 힘을 보탰다.
그의 묘비에 “한국인 렴세우 지묘 민국 5년 8월 23일 영면”이 새겨져 있다. 민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연호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숭고한 뜻을 기려 2017년 건국포장을 수여했다.
대한인 렴세우 지묘(사진:미주뉴스)
2023년 4월 8일 오전 11시 미국 맨해튼 뉴욕한인교회에서 황기환 애국지사의 유해 봉환 추모식이 엄숙히 거행되었다. 이 자리에는 김의환 주뉴욕총영사와 찰스 윤 뉴욕한인회장을 비롯해 국가보훈처 직원, 교민 100여 명이 참석하였다.
추모식 식순은 양국 국가 제창, 헌화 및 묵념, 양력 보고, 봉송사, 추모사, 추모시 낭독, 축도로 경건하게 이어졌다. 추모식이 끝난 후 고국으로 향하는 봉송 행사가 이어졌다. 태극기로 관을 감싼 황 지사의 유해를 미국 재향군인회 회원들과 교민들이 마지막 예를 갖춰 정중히 운구하여 차량에 안치했다.
뉴욕한인교회 추모식 후 봉송행사(사진:국가보훈부)
황기환 지사의 유해는 서거 100년 만인 2023년 4월 9일, 뉴욕 JFK 국제공항에서 대한항공 KE 086편으로 출발해 다음 날 4월 10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 무사히 도착했다.
인천공항 국방부 의장대 사열(사진:경향신문)
인천국제공항 계류장에서 유해 영접 행사가 거행되었다. 국기에 경례를 시작으로 유해 하기(下機), 대한민국 국방부 의장대의 엄숙한 사열 속에 운구되어 분향, 건국훈장 헌정이 있었다. 영접식을 마친 유해는 운구 차량에 분송되어 국립대전현충원으로 향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후손이 없는 황기환 애국지사을 위해 가족관계등록부(호적)을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 279-24(현저동)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주소로 만들어 순국 100년 만에 최초로 헌정하며 국가적 예우를 다했다.
국립대전현충원 황기환 애국지사 유해 봉환식 영현 봉송(사진:국가보훈부)
2023년 4월 10일,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See you again(독립된 조국에서 다시 보리라!)” 장중한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황기환 애국지사는 국립대전현충원에 도착해 현충탑 중앙에 모셔졌다. 국가보훈부 장관이 고인 앞에 나와 고인의 호적을 엄숙히 선포하였다. 오후 3시 고인의 넋을 기리는 조총 발사가 끝난 후, 독립유공자 제7묘역 121호에 안장되어 온전한 조국의 품에서 영면에 들었다.
애국지사 황기환의 묘(사진:국립대전현충원)
고 황기환 애국지사의 묘비를 찾아낸 장철우 목사는 한국 국립대전현충원 유해 봉환식에서 유족(家族)을 대신해 고인의 무덤 위에 한 줌 흙을 정성스레 뿌리고 덮어주었다. 그는 한국에서의 모든 공식 일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뉴욕 독립기념전시관(사진:미주중앙일보)
평생 헌신하며 소박한 삶을 살았던 장철우 목사는 2021년 대한민국 국가보훈부의 지원으로 완공된 뉴욕 독립기념전시관 개관 준비에 정성을 기울였다. 전시관은 코로나 팬터믹으로 개관이 지연되다 마침내 2025년 9월 23일로 개관일이 확정되었다.
그는 휴식을 위해 부인과 함께 에머랄드 빛 바다를 보기 위해 캐리비안 크루즈 여행을 떠났다. 카리브해의 바하마연방에서 머물던 중 뉴욕 독립기념전시관의 초대 관장으로 위촉받아 수여식을 앞두고 2025년 2월 11일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향년 86세였다.
세계 한인의 날 유공포상(사진:재외동포청)
대한민국 재외동포청은 2025년 10월 2일 ‘제19회 세계 한인의 날’을 기념하여 대한민국과 동포사회 발전에 공헌한 유공 정부 포상자 91명을 선정해 발표했다.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훈한 고 장철우 목사는 미주 독립운동의 역사를 발굴하여 세상에 알리고, 황기환 애국지사의 유해 봉환을 이끌고, 한국과 뉴욕 간의 역사적 유대를 강화하였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궁인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