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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전쟁 별전가담항설의지식창고 2026.08.11. 18:05 (2026.08.11. 18:05)

프리아모스 – 무릎 꿇은 트로이의 왕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는 젊은 시절 헤라클레스에게 나라와 가족을 잃고도 살아남아 다시 왕국을 일으킨다. 그러나 파리스가 헬레네를 데려오면서 시작된 트로이 전쟁은 그의 아들들을 하나씩 빼앗아 간다. 마침내 가장 의지하던 헥토르마저 아킬레우스에게 죽자, 늙은 왕은 아들의 시신을 되찾기 위해 직접 적진으로 향한다. 왕의 권위와 자존심을 내려놓고 아들을 죽인 자 앞에 무릎 꿇은 프리아모스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킬레우스의 마음을 움직인다.
목   차
[숨기기]
프리아모스 – 무릎 꿇은 트로이의 왕
 
 
 

개요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는 젊은 시절 헤라클레스에게 나라와 가족을 잃고도 살아남아 다시 왕국을 일으킨다. 그러나 파리스가 헬레네를 데려오면서 시작된 트로이 전쟁은 그의 아들들을 하나씩 빼앗아 간다. 마침내 가장 의지하던 헥토르마저 아킬레우스에게 죽자, 늙은 왕은 아들의 시신을 되찾기 위해 직접 적진으로 향한다. 왕의 권위와 자존심을 내려놓고 아들을 죽인 자 앞에 무릎 꿇은 프리아모스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킬레우스의 마음을 움직인다.
 
 
 

제1장 왕이 된 포다르케스

1.1 한 번 무너진 트로이
 
프리아모스가 태어났을 때 그의 이름은 프리아모스가 아니라 포다르케스였다. 그의 아버지는 트로이의 왕 라오메돈이었다. 라오메돈은 성벽을 쌓아 준 아폴론과 포세이돈에게 약속한 보상을 주지 않았고, 훗날 바다 괴물에게서 딸 헤시오네를 구해 준 헤라클레스에게도 약속한 말을 내주지 않았다. 분노한 헤라클레스는 동료들을 이끌고 다시 트로이로 돌아와 성을 공격했다.
 
트로이는 함락되었고 라오메돈과 여러 왕자들이 헤라클레스의 손에 죽었다. 왕궁이 무너지고 가족들이 살해되는 가운데 포다르케스만은 목숨을 건졌다. 그의 목숨을 구한 사람은 누이 헤시오네였다. 헤라클레스가 포로 가운데 한 사람을 선택하도록 허락하자 헤시오네는 어린 동생 포다르케스를 골랐다. 그러나 헤라클레스는 그를 그냥 풀어 주지 않고 몸값을 치르도록 했다.
 
헤시오네는 자신의 머리를 덮고 있던 베일을 벗어 동생의 몸값으로 내놓았다. 그렇게 포다르케스는 죽음을 피했고, 몸값을 치러 되찾은 사람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프리아모스’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왕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하루아침에 아버지와 여러 형제들을 잃었지만 살아남았다. 헤라클레스가 떠난 뒤 폐허가 된 트로이에는 라오메돈의 왕가를 이어 갈 프리아모스가 남아 있었다.
 
헤시오네의 베일로 목숨을 되찾는 포다르케스
 
 
1.2 폐허 위에 오른 왕
 
헤라클레스가 떠난 뒤 트로이에는 라오메돈의 왕가를 이어 갈 새로운 왕이 필요했다. 살아남은 프리아모스가 왕위를 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것은 번영하는 나라가 아니었다. 성은 공격을 받아 무너졌고 왕가의 많은 사람이 죽었으며 백성들도 전쟁의 상처를 입고 있었다. 한때 포로가 되어 누이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던 왕자는 이제 폐허가 된 나라를 다시 세워야 하는 왕이 되었다.
 
프리아모스는 무너진 트로이를 다시 일으켰다. 다르다노스에서 에리크토니오스와 트로스, 일로스, 라오메돈으로 이어져 온 왕가도 그의 시대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성벽 안에는 궁전과 신전이 들어섰고 트로이는 주변 여러 나라와 관계를 맺으며 다시 강한 도시로 성장했다. 젊은 날 나라가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프리아모스는 어느새 넓은 영토와 많은 백성을 거느린 왕이 되어 있었다.
 
그에게는 여러 여인에게서 많은 아들과 딸이 태어났다. 특히 왕비 헤카베와의 사이에서는 헥토르와 파리스, 데이포보스, 헬레노스, 카산드라, 폴릭세네 등이 태어났다. 《일리아스》에서 프리아모스는 훗날 트로이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자신에게 아들이 쉰 명이나 있었다고 회상한다. 한때 트로이의 함락에서 살아남아 왕위를 이었던 프리아모스의 주위에는 이제 수많은 자식이 모여 있었다. 그러나 또 다른 전쟁이 그 가족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너진 트로이에서 왕위에 오르는 프리아모스
 
 
1.3 왕궁으로 돌아온 파리스
 
프리아모스와 헤카베에게 파리스가 태어나기 전, 헤카베는 불붙은 횃불을 낳아 그 불길이 트로이 전체를 삼키는 꿈을 꾸었다고 전한다. 프리아모스는 꿈을 풀이하는 능력이 있었던 아들 아이사코스에게 그 뜻을 물었다. 아이사코스는 태어날 아이가 장차 나라에 재앙을 가져올 것이라고 해석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프리아모스는 갓 태어난 아기를 하인 아겔라오스에게 맡겨 이다산에 버리도록 했다.
 
그러나 파리스는 죽지 않았다. 이다산에 버려진 아기는 암곰의 젖을 먹으며 닷새 동안 살아남았다. 아겔라오스는 다시 찾아갔다가 아이가 무사한 것을 보고 데려가 자신의 아들처럼 길렀다. 그렇게 이다산에서 자란 파리스는 자신의 왕족 신분을 모른 채 청년으로 성장했다. 한 전승에 따르면 그는 훗날 트로이에서 열린 경기에서 여러 왕자들과 겨루어 뛰어난 솜씨를 보였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프리아모스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오래전 죽었다고 생각했던 아들이 살아 돌아오자 프리아모스는 그를 다시 가족으로 받아들였고 파리스는 트로이의 왕자가 되었다.
 
프리아모스가 가장 의지한 아들은 헤카베가 낳은 맏아들 헥토르였다. 헥토르는 가족과 도시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을 짊어졌고, 나이가 든 아버지에게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반면 다시 왕궁으로 돌아온 파리스는 훗날 아프로디테의 약속을 따라 스파르타로 향했고 그곳에서 메넬라오스의 왕비 헬레네와 함께 트로이로 돌아왔다. 한때 재앙을 가져올 것이라는 예언 때문에 버려졌던 아들이 헬레네와 함께 돌아오면서, 오래전 잊혔던 불길한 예언도 다시 트로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왕궁에서 아들 파리스를 다시 맞는 프리아모스
 
 
1.4 파리스가 데려온 전쟁
 
메넬라오스는 헬레네를 되찾기 위해 형 아가멤논과 함께 그리스의 왕과 영웅들을 불러 모았다.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 대 아이아스, 그리고 아킬레우스를 비롯한 전사들이 트로이를 향했다. 수많은 함선이 바다를 건너와 트로이 앞 해안에 늘어섰다. 왕궁으로 돌아온 파리스가 헬레네까지 데려오면서 시작된 일이 이제 도시 전체의 생존을 건 전쟁으로 바뀌었다.
 
전쟁을 피할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리스 측에서는 헬레네와 함께 가져온 재물을 돌려달라고 요구했고, 트로이 안에서도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두 군대가 맞섰다. 프리아모스는 파리스를 내치지 않았으며 헬레네에게도 함부로 책임을 돌리지 않았다. 훗날 《일리아스》에서 그는 성벽 위로 올라온 헬레네를 자신의 곁에 부르고, 전쟁의 책임은 그녀가 아니라 신들에게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왕이 가족을 품는 동안 성 밖에서는 사람들이 죽어 갔다. 왕자들은 갑옷을 입고 성문을 나섰고, 어떤 아들은 돌아왔지만 어떤 아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곧 끝날 것처럼 보였던 전쟁은 한 해를 넘기고 다시 한 해를 넘기며 십 년 가까이 이어졌다. 젊은 시절 헤라클레스의 공격으로 트로이의 멸망을 경험했던 프리아모스는 이제 자신이 다시 세운 도시가 또다시 거대한 전쟁에 갇히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다.
 
트로이 해안에 밀려드는 그리스군의 함선들
 
 
 

제2장 아들들을 잃는 왕

2.1 성벽 위에서 바라본 적
 
전쟁이 오래 이어지던 어느 날 프리아모스는 트로이의 원로들과 함께 스카이아이 성문 위에 앉아 그리스군을 바라보았다. 그때 헬레네가 성벽으로 올라오자 그는 그녀를 다정하게 곁으로 불러 앉혔다. 멀리 들판을 가득 메운 군대를 바라보던 프리아모스는 그리스 진영에 서 있는 영웅들이 누구인지 헬레네에게 하나씩 물었다.
 
가장 위엄 있게 서 있는 아가멤논을 바라보던 프리아모스는 젊은 시절을 떠올렸다. 그는 예전에 프리기아의 오트레우스와 미그돈을 도와 상가리오스 강가에서 아마존과 싸우는 군대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 보았던 군대도 지금 트로이 앞에 모여 있는 그리스군만큼 많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한때 직접 전장을 누볐던 왕은 이제 성벽 위에서 아들들이 싸우는 모습을 바라보는 노인이 되어 있었다.
 
헬레네는 아가멤논에 이어 오디세우스와 대 아이아스 같은 영웅들을 하나씩 알려 주었다. 이날 파리스와 메넬라오스가 헬레네를 두고 결투하기로 하자 프리아모스도 성 밖으로 나가 양측의 맹세에 참여했다. 그러나 그는 두 사람이 실제로 싸우는 모습까지 지켜보지 않았다. 자신의 아들이 메넬라오스와 목숨을 걸고 맞서는 장면을 차마 볼 수 없다며 다시 트로이로 돌아갔다. 전쟁을 아는 왕이었지만, 그날 그는 무엇보다 자식을 전장에 내보낸 아버지였다.
 
헬레네와 함께 그리스 영웅들을 바라보는 프리아모스
 
 
2.2 십 년 동안 버틴 왕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트로이군은 헥토르를 중심으로 여러 차례 그리스군을 몰아붙였고 한때는 그리스 함선 가까이까지 진격했다. 그러나 전쟁이 길어질수록 프리아모스의 집에서는 한 명씩 자리가 비기 시작했다. 전장으로 나갔던 왕자들이 돌아오지 않았고, 살아 돌아온 자들도 다시 갑옷을 입고 성문을 나섰다. 왕궁에는 승전의 함성보다 죽은 이를 위한 울음이 점점 많아졌다.
 
프리아모스에게 자식이 많다는 사실은 이제 위안이 되지 않았다. 아킬레우스에게 죽은 아들들도 있었고 다른 그리스 영웅의 손에 쓰러진 아들들도 있었다. 훗날 프리아모스가 아킬레우스 앞에서 자신의 처지를 말할 때, 그는 전쟁이 시작되었을 당시 아들이 쉰 명이었으며 그 가운데 열아홉은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전쟁은 그 많은 아들들을 차례로 빼앗아 갔다.
 
그럴수록 프리아모스가 의지한 사람은 헥토르였다. 헥토르는 트로이군을 이끌어 성을 지켰고 시민들은 그가 있는 한 트로이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프리아모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아들이 전장에서 쓰러졌어도 헥토르만 돌아오면 아직 트로이는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파트로클로스가 죽고 아킬레우스가 다시 전장으로 돌아오면서 그 마지막 믿음마저 흔들리기 시작했다.
 
전사한 아들들의 소식을 듣는 늙은 프리아모스
 
 
2.3 헥토르를 말리는 아버지
 
아킬레우스가 트로이군을 몰아붙이며 성벽으로 다가오자 살아남은 병사들은 급히 성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헥토르는 스카이아이 성문 밖에 홀로 남았다. 성벽 위에서 그 모습을 발견한 프리아모스는 두 손을 뻗어 아들에게 돌아오라고 외쳤다. 아킬레우스와 혼자 맞서지 말고 성 안으로 들어오라고 간청했다. 군대를 이끄는 왕의 명령이라기보다 아들을 살리고 싶은 늙은 아버지의 절박한 외침이었다.
 
프리아모스는 이미 아킬레우스의 손에 많은 아들을 잃었다고 탄식했다. 헥토르마저 죽는다면 트로이가 무너질 때 다른 아들들도 죽고, 딸들과 며느리들은 포로로 끌려갈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늙은 몸으로 성이 함락되는 모습을 본 뒤 궁전 앞에서 죽어, 자신이 길렀던 개들에게조차 몸이 훼손되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될 것이라고 울부짖었다. 그는 그런 모습을 자신에게 남기지 말고 제발 성 안으로 돌아오라고 헥토르에게 호소했다.
 
헤카베도 성벽 위에서 아들을 불렀지만 헥토르는 움직이지 않았다. 멀리서 아킬레우스가 빠르게 다가오자 헥토르는 마침내 두려움에 몸을 돌려 달아났고 아킬레우스가 그 뒤를 쫓았다. 두 사람은 트로이 성벽 주위를 세 차례나 돌았다. 프리아모스는 그 모든 광경을 성벽 위에서 바라보았다. 아들을 살리고 싶어도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조금 전 자신이 두려움 속에서 말했던 트로이의 미래가 헥토르와 함께 성벽 아래를 달리고 있었다.
 
성벽 위에서 헥토르에게 돌아오라 외치는 프리아모스
 
 
2.4 성문 앞에 쓰러진 아들
 
도망치던 헥토르는 마침내 멈추어 아킬레우스와 맞섰다. 그는 자신이 죽더라도 시신만은 서로의 가족에게 돌려주자고 제안했지만 아킬레우스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두 사람의 싸움 끝에 아테나의 도움까지 받은 아킬레우스의 창이 헥토르의 목을 꿰뚫었다. 트로이를 지키던 왕자는 자신이 지켜 온 성벽 바로 앞에서 쓰러졌다.
 
죽어 가는 헥토르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시신을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돌려보내 달라고 부탁했지만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그는 헥토르의 갑옷을 벗기고 시신을 전차 뒤에 매달았다. 그리고 트로이 성벽이 바라보이는 들판을 지나 그리스군 진영으로 끌고 갔다. 성벽 위의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헥토르의 몸은 먼지를 일으키며 점점 멀어졌다.
 
프리아모스는 그 모습을 보고 머리를 치며 통곡했다. 그는 성문 밖으로 뛰쳐나가 아킬레우스에게라도 매달리려 했고, 주위 사람들이 달려들어 늙은 왕을 붙잡아야 했다. 헤카베와 트로이 사람들의 울음도 성 안에 퍼졌다. 수많은 아들이 죽었지만 헥토르의 죽음은 달랐다. 그는 프리아모스가 가장 의지하던 아들이자 트로이군을 떠받치던 마지막 버팀목이었다. 그러나 지금 아버지는 그 아들을 품에 안을 수도, 장례를 치러 줄 수도 없었다.
 
끌려가는 헥토르의 시신을 바라보는 프리아모스
 
 
 

제3장 무릎 꿇은 트로이의 왕

3.1 돌려받지 못한 시신
 
헥토르가 죽은 뒤에도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그는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잊지 못하고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주지 않았다. 날이 밝을 때마다 시신을 전차에 묶어 파트로클로스의 무덤 주위를 세 차례씩 끌고 돌았다. 그렇게 헥토르의 몸은 여러 날 동안 그리스군 진영에 남겨졌다. 그러나 아폴론은 헥토르의 몸을 지켜 끌려 다니는 동안에도 시신이 훼손되지 않도록 했다.
 
헥토르가 죽은 뒤 열두째 날 아침이 되자 신들도 더 이상 이 일을 두고 보지 않았다. 제우스는 헥토르의 시신이 아버지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결정했다. 신들의 뜻을 전하는 이리스가 트로이로 내려와 프리아모스에게 아킬레우스를 찾아가 몸값을 주고 아들의 시신을 되찾으라고 전했다. 아들을 죽인 사람의 막사까지 직접 들어가야 하는 위험한 일이었지만 프리아모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헤카베는 남편을 붙잡았다. 헥토르를 죽이고 그의 몸까지 욕보인 사람을 어떻게 직접 찾아갈 수 있느냐며 말렸지만 프리아모스는 아들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 그는 보물창고를 열어 아름다운 옷과 외투, 금과 값진 그릇을 비롯한 몸값을 마련했다. 한때 누이 헤시오네가 몸값을 치러 목숨을 구해 주었던 프리아모스가 이제는 늙은 아버지가 되어 죽은 아들을 되찾기 위한 몸값을 직접 싣고 길을 떠나게 되었다.
 
헥토르의 몸값을 보물창고에서 준비하는 프리아모스
 
 
3.2 적진으로 향한 늙은 왕
 
해가 지자 프리아모스는 전령 이다이오스와 함께 수레를 타고 트로이를 나섰다. 수레에는 헥토르의 시신을 되찾기 위해 준비한 보물들이 실려 있었다. 성 밖은 그리스군이 오가는 위험한 들판이었고, 적에게 발견된다면 왕 자신도 살아 돌아오지 못할 수 있었다. 그러나 프리아모스는 자신이 다스리던 성벽을 뒤로한 채 어둠 속으로 나아갔다.
 
제우스는 헤르메스를 보내 그를 돕게 했다. 젊은 전사의 모습으로 나타난 헤르메스는 처음에는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은 채 프리아모스의 수레를 호위했다. 그리스군 진영에 가까워지자 그는 보초들을 깊이 잠들게 하고 빗장을 열어 수레가 무사히 안으로 들어가도록 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헤르메스임을 밝힌 뒤, 이제부터는 프리아모스가 직접 아킬레우스를 만나야 한다고 일러 주었다.
 
프리아모스는 수레를 두고 홀로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자신과 십 년 동안 전쟁을 벌여 온 그리스군 진영의 한복판이었고, 눈앞에는 헥토르를 죽인 아킬레우스가 있었다. 그는 왕의 사절에게 일을 맡기지 않았다. 헥토르의 아버지가 직접 와야 했다. 프리아모스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자 아킬레우스와 곁에 있던 사람들은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늙은 트로이의 왕은 말없이 아들을 죽인 전사에게 다가갔다.
 
헤르메스의 인도로 밤의 그리스 진영을 지나는 프리아모스
 
 
3.3 아킬레우스의 손에 입맞추다
 
프리아모스는 아킬레우스 앞으로 다가가 그의 무릎을 붙잡았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들을 죽인 그 손에 입을 맞추었다. 왕좌에 앉아 다른 사람의 경배를 받던 트로이의 왕이 이제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죽인 젊은 전사 앞에 몸을 낮추었다. 그는 왕의 권위도 전쟁의 명분도 내세우지 않았다. 다만 아킬레우스에게 고향에 있는 늙은 아버지 펠레우스를 떠올려 달라고 부탁했다.
 
프리아모스는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자신에게 아들이 쉰 명이나 있었지만 이제 많은 아들을 잃었다고 말했다. 그 가운데 트로이를 지키던 헥토르마저 아킬레우스의 손에 죽었다. 그의 말을 들은 아킬레우스도 고향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프리아모스는 헥토르를 생각하며 울었고, 아킬레우스는 펠레우스와 죽은 파트로클로스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한동안 두 사람의 울음만이 막사 안을 채웠다.
 
마침내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돌려주기로 했다. 그는 시종들에게 시신을 프리아모스의 눈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겨 씻고 기름을 바른 뒤 옷을 입히도록 했다. 그리고 헥토르의 몸을 수레에 실어 주었다. 프리아모스는 아홉 날 동안 애도하고 장작을 모은 뒤 열째 날 화장하고 열한째 날 봉분을 쌓겠으니, 열두째 날부터 다시 싸워도 좋다고 요청했다. 아킬레우스도 이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프리아모스는 죽은 아들과 장례를 치를 시간을 얻어 적진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아킬레우스의 무릎을 붙잡고 손에 입맞추는 프리아모스
 
 
3.4 트로이와 함께 쓰러지다
 
프리아모스는 헥토르의 시신을 싣고 트로이로 돌아왔다. 성 안에서는 안드로마케와 헤카베, 헬레네를 비롯한 사람들이 헥토르를 맞으며 통곡했다. 트로이 사람들은 여러 날 동안 죽은 왕자를 애도하고 장작을 모았다. 열째 날 헥토르의 몸을 화장하고, 다음 날 유골을 거두어 봉분을 쌓았다. 그렇게 프리아모스는 마침내 아들에게 왕자이자 전사에게 합당한 장례를 치러 주었다. 《일리아스》의 이야기도 헥토르의 장례와 함께 끝난다.
 
하지만 트로이 전쟁은 계속되었다. 아킬레우스가 죽은 뒤 그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가 그리스군에 합류했고, 마침내 그리스군은 거대한 목마를 남겨 두어 트로이인들이 그것을 성 안으로 끌어들이게 하는 계책을 사용했다. 한밤중 목마에서 나온 영웅들이 성문을 열자 그리스군이 몰려들었고 트로이는 다시 불길에 휩싸였다. 젊은 시절 헤라클레스에게 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경험했던 프리아모스는 노인이 되어 다시 한번 자신의 도시가 멸망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리스 전승에서도 프리아모스는 제우스 헤르케이오스의 제단으로 피신했다가 네오프톨레모스에게 죽었다고 전한다. 후대의 《아이네이스》는 그 마지막을 더욱 자세하게 그린다. 프리아모스는 눈앞에서 아들 폴리테스가 네오프톨레모스에게 살해되자 분노해 늙은 힘으로 창을 던졌지만 상대를 쓰러뜨리지 못했다. 곧 네오프톨레모스의 칼에 늙은 왕도 쓰러졌다. 수많은 아들과 백성을 거느렸던 프리아모스의 삶은 트로이의 멸망과 함께 끝났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에서 가장 오래 기억되는 순간은 왕좌에 앉아 있던 때가 아니라, 죽은 아들을 되찾기 위해 적장의 손에 입을 맞추었던 그 밤이었다.
 
불타는 트로이의 제단 앞에서 최후를 맞는 프리아모스
【작성】 가담항설 - 떠도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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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