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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티아낙스 – 트로이의 마지막 왕자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와 안드로마케 사이에서 태어난 아스티아낙스는 아직 어린아이였지만, 트로이 사람들에게는 도시의 미래와 다름없는 존재였다. 아버지는 그가 자신보다 훌륭한 전사가 되기를 기도했으나, 헥토르가 죽고 트로이가 함락되면서 그 희망은 오히려 아이의 목숨을 위협하는 이유가 된다. 그리스군은 훗날 트로이를 다시 일으킬 가능성을 두려워했고, 아스티아낙스는 트로이의 성벽에서 내던져져 짧은 생을 마친다.
1.1 트로이의 어린 왕자
헥토르와 안드로마케에게는 어린 아들이 하나 있었다. 헥토르는 아이를 스카만드리오스라 불렀지만, 트로이 사람들은 그를 아스티아낙스라고 불렀다. 트로이 사람들이 보기에 성벽과 성문을 지키며 그리스군을 막아 내는 이는 누구보다 헥토르였고, 그의 아들은 언젠가 그 뒤를 이어 도시를 지킬 존재였다. 《일리아스》에서도 사람들이 아이를 아스티아낙스라 부른 까닭을 헥토르가 홀로 일리오스를 지켰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그러나 아스티아낙스가 태어나 자라던 때는 평화로운 왕궁의 시절이 아니었다. 트로이는 이미 오랫동안 그리스군의 포위 속에 있었고, 성 밖에서는 날마다 전투가 이어졌다. 아이가 보고 들은 세계에는 병사들의 함성과 성벽 위의 파수꾼, 전장에서 돌아오는 전차와 무장한 병사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다. 헥토르는 왕궁에 오래 머무를 수 없었고, 안드로마케는 다시 전쟁터로 향하는 남편을 바라보며 아들을 키웠다.
아스티아낙스는 아직 자신의 이름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는 나이였다. 하지만 트로이 사람들에게 그는 헥토르의 아들이자 프리아모스 왕가의 다음 세대를 잇는 아이였다. 전쟁이 끝나면 그가 자라 성 안을 걸어 다니고, 언젠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트로이를 지킬 것이라는 기대가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그가 알지 못하는 사이, 트로이 사람들의 기대는 이미 어린 왕자에게 향하고 있었다.
성벽 아래에서 어린 아스티아낙스를 안은 안드로마케
1.2 투구를 무서워한 아이
전투가 계속되던 어느 날, 헥토르는 잠시 트로이 성 안으로 돌아왔다. 그는 어머니 헤카베에게 트로이의 여인들을 이끌고 아테나의 신전으로 가서 기도하라고 당부하고, 궁전에 머물고 있던 파리스에게 다시 전장으로 나가라고 재촉했다. 그런 뒤 아내와 아들을 만나기 위해 자신의 집으로 향했지만 안드로마케는 그곳에 없었다. 전세를 걱정한 그녀는 유모에게 아스티아낙스를 안기고 스카이아이 성문 가까운 성벽으로 나가 있었다.
성문 가까이에서 마주한 안드로마케는 헥토르의 손을 붙잡고 다시 전장으로 나가지 말라고 애원했다. 이미 아버지와 일곱 형제를 아킬레우스에게 잃고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난 그녀에게 헥토르는 남편이면서 남은 가족 전부였다. 그러나 헥토르는 자신이 싸움을 피해 성 안에 머문다면 트로이 사람들과 여인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견딜 수 없다고 말했다. 언젠가 트로이가 무너질 것을 예감하면서도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싸움을 피할 생각이 없었다.
헥토르가 아들을 안으려고 팔을 내밀자 아스티아낙스는 뜻밖에도 유모의 품으로 몸을 숨겼다. 아버지의 머리를 덮은 청동 투구와 그 위에서 사납게 흔들리는 말총 장식이 무서웠던 것이다. 헥토르와 안드로마케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함께 웃었다. 헥토르는 투구를 벗어 땅에 내려놓은 뒤에야 아들을 품에 안았다. 오래 이어진 전쟁 속에서 세 사람에게 허락된 짧고도 평범한 가족의 순간이었다.
헥토르의 말총 투구를 보고 유모 품에 숨는 아스티아낙스
1.3 아버지의 마지막 기도
헥토르는 투구를 벗은 채 아스티아낙스를 들어 올리고 제우스와 여러 신들에게 기도했다. 그는 아들이 자신처럼 트로이 사람들 가운데 뛰어난 전사가 되기를 바랐다. 언젠가 전장에서 돌아오는 아이를 보고 사람들이 “아버지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말하고, 적에게서 얻은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와 어머니를 기쁘게 해 주기를 빌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을 전사의 언어로 빌었던 것이다.
기도를 마친 헥토르는 아이에게 입을 맞추고 다시 안드로마케의 품에 건넸다. 안드로마케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미소를 지었다. 헥토르는 그런 아내를 바라보며 집으로 돌아가 베 짜는 일과 시녀들을 돌보라고 말했다. 전쟁은 남자들의 몫이며, 그 가운데에서도 자신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했다. 안드로마케는 남편을 붙잡지 못한 채 아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헥토르 역시 땅에 내려놓았던 투구를 다시 썼다. 말총 장식은 다시 그의 머리 위에서 흔들렸고, 그는 성문을 지나 전장으로 향했다. 아스티아낙스가 무서워했던 그 투구는 아버지를 다시 전사의 모습으로 돌려놓았다. 그날 헥토르가 빈 기도는 아이가 성장할 미래를 향하고 있었지만, 트로이의 전쟁은 이미 그 미래를 조금씩 빼앗고 있었다.
투구를 벗고 아들을 들어 올려 신들에게 기도하는 헥토르
2.1 돌아오지 않은 헥토르
헥토르가 다시 전장으로 돌아간 뒤 싸움은 더욱 거세졌다.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과의 갈등으로 전투에서 물러나 있는 동안 트로이군은 그리스군을 함선 가까이까지 밀어붙였다. 위기에 몰린 그리스군을 구하기 위해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미르미돈 병사들을 이끌고 출전했다. 그는 트로이군을 성벽 가까이까지 몰아냈지만 아폴론의 공격으로 무장을 잃고 에우포르보스의 창에 부상을 입은 뒤, 마지막에는 헥토르의 창에 쓰러졌다.
친구의 죽음을 알게 된 아킬레우스는 다시 전장으로 돌아왔다. 새로운 무구를 갖춘 그는 트로이군을 몰아붙이며 헥토르를 찾아 성벽 앞까지 다가왔다. 헥토르는 스카이아이 성문 밖에 홀로 남았다. 성벽 위에서는 프리아모스와 헤카베가 아들에게 성 안으로 들어오라고 외쳤지만 그는 돌아서지 않았다. 그러나 아킬레우스가 가까이 다가오자 두려움에 달아났고, 두 영웅은 트로이 성벽을 세 바퀴나 돌았다.
마침내 아테나의 속임수에 멈춰 선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와 맞섰다. 그는 마지막까지 창을 들고 싸웠지만 결국 아킬레우스의 창에 쓰러졌다. 성벽 안에는 안드로마케와 어린 아스티아낙스가 남아 있었다. 얼마 전 헥토르는 아들이 자신보다 훌륭한 전사가 되어 트로이 사람들에게 칭송받기를 빌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아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아스티아낙스에게서 아버지와 함께 자신을 지켜 주던 가장 강한 방패도 사라졌다.
성벽 앞에서 아킬레우스의 창에 쓰러지는 헥토르
2.2 성벽 위의 울음
헥토르가 죽을 때 안드로마케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녀는 집 안에서 베를 짜고 있었고, 시녀들에게 남편이 돌아오면 목욕할 수 있도록 물을 데우라고 했다. 그러나 성벽 쪽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가 점점 커지자 불길한 예감에 밖으로 달려나갔다. 성벽 위에 오른 그녀는 멀리서 아킬레우스의 전차에 끌려가는 헥토르의 시신을 보았고,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정신을 되찾은 안드로마케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자신과 어린 아들의 앞날이었다. 헥토르가 없는 트로이에서 아스티아낙스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두려워했다.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 아이는 그의 무릎에 앉아 좋은 음식을 먹고, 놀이에 지치면 유모의 품에서 편안히 잠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버지를 잃은 아이로서 사람들에게 밀려나고, 누구도 예전처럼 그를 지켜 주지 않을 것이라고 안드로마케는 울부짖었다.
아스티아낙스는 어머니의 품에 있었지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얼마 전 자신을 안아 들었던 아버지는 더 이상 성문을 지나 돌아오지 않았다. 안드로마케가 두려워한 것은 단순히 가난이나 외로움만이 아니었다. 헥토르와 함께 트로이의 안전도 흔들리고 있었다. 아이에게 닥칠 위험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이미 그 그림자를 보고 있었다.
끌려가는 헥토르의 시신을 보고 쓰러지는 안드로마케
2.3 헥토르 없는 트로이
프리아모스는 아들의 시신을 되찾기 위해 밤중에 그리스군 진영으로 향했다. 그는 아킬레우스의 막사에 들어가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사람의 손에 입을 맞추며 헥토르를 돌려달라고 간청했다. 늙은 왕의 슬픔에서 자신의 아버지 펠레우스를 떠올린 아킬레우스는 마침내 헥토르의 시신을 내주었다. 프리아모스가 아들을 전차에 싣고 돌아오자 트로이 사람들은 성문 밖으로 몰려나와 도시를 지키던 영웅의 귀환을 울음으로 맞았다.
안드로마케는 헥토르의 시신 앞에서 남편뿐 아니라 어린 아들의 앞날까지 슬퍼했다. 헥토르가 죽었으니 트로이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며, 자신과 아스티아낙스도 언젠가 그리스인들의 손에 떨어질 것이라고 탄식했다. 그녀는 더 끔찍한 운명도 떠올렸다. 헥토르에게 아버지나 형제, 아들을 잃은 그리스인 가운데 누군가가 원한을 품고 아스티아낙스를 붙잡아 높은 성벽에서 던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두려워하는 어머니의 탄식이었다.
트로이 사람들은 아홉 날 동안 장작을 모으고 열째 날 헥토르의 시신을 화장한 뒤, 다음 날 남은 뼈를 모아 황금 항아리에 넣고 봉분을 쌓았다. 그러나 장례가 끝나도 전쟁은 계속되었다. 헥토르를 잃은 트로이는 이전보다 더욱 위태로워졌고, 그리스군의 포위도 끝나지 않았다. 그 뒤에도 수많은 영웅이 싸우고 쓰러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해변의 그리스군 진영이 텅 비고 트로이 성 밖에는 거대한 목마 하나만 남겨졌다.
돌아온 헥토르의 시신 앞에서 아들을 안고 탄식하는 안드로마케
3.1 무너진 성벽 안에서
그리스군이 떠난 것처럼 보이자 트로이 사람들은 해변에 남겨진 거대한 목마를 성 안으로 끌어들였다. 밤이 깊어 축제가 끝나고 사람들이 잠든 뒤, 목마 안에 숨어 있던 그리스 영웅들이 밖으로 나왔다. 그들은 성문을 열어 되돌아온 그리스군을 받아들였고, 오랫동안 버텨 온 트로이는 단 한밤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왕궁과 집들이 불타고 거리마다 피난하려는 사람들과 침입한 병사들이 뒤엉켰다.
프리아모스는 제우스의 제단에서 네오프톨레모스에게 죽었고, 트로이 왕가의 사람들도 각자의 운명을 맞았다. 살아남은 여성들은 그리스군의 포로가 되었다. 안드로마케 역시 아스티아낙스를 품에 안은 채 붙잡혔다. 전쟁이 끝나면 남편과 함께 아이를 키우리라던 삶은 이미 사라졌고, 이제 그녀 자신도 승자의 몫으로 나뉘어야 했다.
그리스군이 포로와 전리품을 나누는 과정에서 안드로마케는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아스티아낙스의 운명은 어머니와 같지 않았다. 그는 무기를 들 수도, 싸울 수도 없는 어린아이였지만 헥토르의 아들이었다. 트로이는 무너졌어도 그 아이가 살아 있는 한 프리아모스 왕가의 혈통과 헥토르의 이름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불타는 트로이에서 아스티아낙스를 안고 붙잡힌 안드로마케
3.2 살아남아서는 안 되는 아이
그리스 장수들은 아스티아낙스를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했다. 에우리피데스의 《트로이아 여인들》에서는 오디세우스가 헥토르처럼 뛰어난 아버지의 아들을 살려 두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그 의견이 그리스군의 결정이 된다. 아이가 성장해 언젠가 무너진 트로이의 성벽을 다시 세울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아직 무기를 잡을 수도 없는 어린아이가 앞으로 무엇이 될지 모른다는 이유로 죽음의 대상이 된 것이다.
전령 탈튀비오스가 안드로마케에게 찾아와 그 결정을 전했다. 그는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다가 결국 아스티아낙스를 트로이 성벽에서 떨어뜨려 죽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안드로마케가 아무리 저항해도 결정을 뒤집을 힘은 없었다. 남편도 도시도 이미 잃었고 그녀 자신마저 포로가 된 뒤였다. 탈튀비오스는 그리스군에게 맞서면 아이의 시신마저 제대로 묻어 주지 않을 수 있다며 안드로마케를 만류한 뒤 아스티아낙스를 데려갔다.
아스티아낙스의 최후를 전하는 고대 전승은 세부에서 서로 다르다. 《일리오스의 함락》 계통에서는 오디세우스가 아이를 죽였다고 전하고, 《소일리아스》 계통에서는 네오프톨레모스가 아이를 높은 성벽에서 던졌다고 한다. 아이를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는 전승마다 다르지만, 두 전승 모두 헥토르의 어린 아들이 트로이 함락 과정에서 죽음을 맞았다고 전한다. 트로이의 미래로 여겨졌던 아이는 바로 그 미래가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짧은 생을 마쳤다.
아스티아낙스를 데려가려는 탈튀비오스와 붙잡는 안드로마케
3.3 헥토르의 방패 위에서
얼마 뒤 탈튀비오스는 아스티아낙스의 시신을 헥토르의 커다란 방패 위에 놓아 헤카베에게 가져왔다. 안드로마케는 이미 네오프톨레모스를 따라 떠난 뒤였기 때문에 아들의 장례를 직접 치를 수 없었다. 떠나기 전 그녀는 헥토르의 방패를 그리스로 가져가지 말고 아이를 묻는 데 사용해 달라고 부탁했다. 수많은 전투에서 헥토르의 몸을 지켜 주었던 방패가 이제는 그의 어린 아들을 마지막으로 받치게 되었다.
탈튀비오스는 스카만드로스 강물로 아이의 몸을 씻고 상처를 정리한 뒤 장례를 준비했다. 헤카베는 방패 위에 누운 손자를 바라보며 어린아이 하나를 두려워해 죽인 그리스군을 탄식했다. 그녀가 바라본 방패의 손잡이에는 헥토르의 손이 닿았던 흔적이 남아 있었고, 가장자리에는 전장에서 그가 흘린 땀의 자국도 남아 있었다. 헤카베는 아스티아낙스가 훗날 혼례를 올릴 때 입혔어야 할 옷으로 작은 몸을 감싸고 아버지의 방패에도 마지막 장식을 더했다. 왕자로 자라야 할 아이에게 남은 의식은 혼례도 즉위도 아닌 장례였다.
장례가 끝나자 그리스군은 귀향을 준비했고 트로이에는 다시 불길이 번졌다. 왕궁과 성벽이 무너지는 가운데 살아남은 트로이 여성들은 각자 배정된 주인을 따라 배에 올라야 했다. 헥토르가 한때 아들을 두 팔로 들어 올리며 자신보다 훌륭한 전사가 되기를 빌었던 미래도 함께 사라졌다. 그때 아버지의 품에서 웃던 어린 아스티아낙스는 결국 그 아버지의 방패를 관 삼아 무너진 트로이의 땅에 묻혔다.
헥토르의 방패 위에 놓인 아스티아낙스를 바라보는 헤카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