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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 별전가담항설의지식창고 2026.08.13. 20:17 (2026.08.13. 18:25)

라다만튀스 – 법을 세운 왕

 
라다만튀스는 제우스와 에우로페 사이에서 태어난 크레타의 왕자로, 미노스와 사르페돈의 형제였다. 그는 형 미노스와 함께 크레타를 다스렸으며 특히 공정한 판결로 큰 명성을 얻었고, 여러 섬과 아시아 해안의 사람들은 스스로 그의 통치를 받아들였다. 훗날 크레타를 떠나 보이오티아에 정착한 그는 죽은 뒤에도 정의로운 판관으로 기억되어 명계에서 망자들을 심판하는 자가 된다.
목   차
[숨기기]
라다만튀스 – 법을 세운 왕
 
 
 

개요

 
라다만튀스는 제우스에우로페 사이에서 태어난 크레타의 왕자로, 미노스사르페돈의 형제였다. 그는 형 미노스와 함께 크레타를 다스렸으며 특히 공정한 판결로 큰 명성을 얻었고, 여러 섬과 아시아 해안의 사람들은 스스로 그의 통치를 받아들였다. 훗날 크레타를 떠나 보이오티아에 정착한 그는 죽은 뒤에도 정의로운 판관으로 기억되어 명계에서 망자들을 심판하는 자가 된다.
 
 
 

제1장 크레타의 왕자

1.1 제우스와 에우로페의 아들
 
페니키아의 공주 에우로페가 흰 황소로 모습을 바꾼 제우스에게 이끌려 바다를 건너 크레타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서 세 아들이 태어났다. 미노스라다만튀스, 사르페돈이었다. 세 형제는 모두 제우스의 피를 이었지만 인간의 땅에서 자라야 했다. 에우로페는 훗날 크레타의 왕 아스테리온과 혼인했고, 아스테리온은 세 아이를 자신의 아들처럼 거두어 왕궁에서 키웠다.
 
라다만튀스는 크레타의 왕자로 성장했다. 형제 가운데 미노스가 맏이였고, 왕위와 가장 가까운 사람도 그였다. 그러나 라다만튀스에게는 다른 명성이 따라붙었다. 사람들의 다툼을 들을 때 어느 한쪽의 지위나 힘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따져 판단하는 사람이라는 평판이었다. 훗날 그가 이름을 얻은 것은 전쟁이나 괴물 사냥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판결 때문이었다.
 
세 형제가 성인이 되면서 크레타 왕가의 앞날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미노스는 왕권을 향해 나아갔고 사르페돈은 마침내 크레타를 떠나 소아시아 쪽으로 향했다. 라다만튀스는 한동안 고향에 남아 미노스와 함께 사람들을 다스렸다. 그에게 왕궁은 권력을 누리는 자리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다툼과 잘못을 가려야 하는 자리였다. 훗날 명계의 판관이 될 라다만튀스의 이름은 이때부터 크레타의 법과 판결 속에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크레타 왕궁에서 자라나는 세 형제와 라다만튀스
 
 
1.2 미노스와 함께 크레타를 다스리다
 
아스테리온이 세상을 떠난 뒤 크레타의 왕권은 미노스에게 돌아갔다. 미노스는 자신이 신들의 뜻에 따라 왕이 되었음을 보이기 위해 포세이돈에게 기도했고, 바다에서 황소가 나타나자 이를 왕권의 증거로 내세웠다고 전해진다. 그는 크레타의 여러 지역을 하나의 지배 아래 모으고 법을 세우기 시작했다. 라다만튀스도 형의 곁에서 크레타를 다스리며 사람들 사이의 다툼과 범죄를 판단하는 일을 맡았다.
 
미노스가 왕으로서 나라의 질서를 세우고 바다로 세력을 넓혀 가는 동안, 라다만튀스는 사람들 사이의 분쟁을 판결하는 일로 이름을 얻었다. 그는 어느 한쪽의 지위나 힘에 흔들리지 않고 사건의 옳고 그름을 가렸으며, 한번 내린 판단을 쉽게 바꾸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사람들은 어려운 다툼이 생길 때 그의 판단을 구했고, 라다만튀스의 공정함에 대한 명성은 점차 크레타 밖으로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같은 크레타를 다스린 두 형제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명성을 넓혀 갔다. 미노스의 이름은 왕권과 법, 함대와 함께 알려졌고, 라다만튀스의 이름은 사람들의 분쟁을 가르는 공정한 판결과 함께 퍼졌다. 크레타 안에서 시작된 그의 평판은 점차 바다를 건너 여러 섬에도 전해졌다. 왕궁에서 내려지는 그의 판결과 공정함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크레타 밖에서도 라다만튀스의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재판석에서 사람들의 분쟁을 판결하는 라다만튀스
 
 
1.3 크레타를 떠나다
 
라다만튀스의 명성이 커질수록 두 형제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거리가 생겼다. 디오도로스가 전하는 이야기에서는 미노스가 동생의 정의로운 판결과 그로 인해 높아지는 명성을 시기했다고 한다. 미노스는 라다만튀스를 공동 통치자로 두고 있었지만, 사람들이 그의 공정함을 칭송하는 일이 계속되자 동생을 자신의 권력 중심에서 멀리 보내기로 했다. 결국 라다만튀스는 미노스의 지배 영역 가운데 먼 곳으로 보내졌고, 이오니아와 카리아 앞바다의 섬들로 향했다.
 
라다만튀스는 크레타를 떠나 배를 타고 동쪽 바다를 건넜다. 더 이상 크노소스의 왕궁에서 형과 함께 나라를 다스릴 수는 없었지만, 고향을 떠났다고 해서 그의 명성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도착한 여러 섬과 해안에서는 크레타에서부터 알려진 공정한 판결의 소문이 힘을 발휘했다. 사람들은 분쟁을 해결하고 질서를 세울 통치자로 라다만튀스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라다만튀스가 머문 여러 지역에서는 그의 공정한 판결에 대한 명성이 더욱 널리 퍼졌다. 전승에 따르면 사람들은 그의 정의를 믿고 스스로 통치를 받아들였고, 라다만튀스는 그곳에 법과 질서를 세워 갔다. 크레타에서 익힌 통치와 판결은 이제 더 넓은 바다에서 이어졌다. 미노스의 곁을 떠난 일은 왕궁으로부터 멀어지는 사건이었지만, 동시에 라다만튀스가 한 왕의 동생을 넘어 자신의 이름으로 법을 세운 통치자가 되는 시작이었다.
 
크레타를 뒤로하고 동쪽 섬으로 떠나는 라다만튀스
 
 
 

제2장 법을 세운 왕

2.1 섬들이 받아들인 통치자
 
라다만튀스는 크레타를 떠난 뒤 이오니아와 카리아 앞바다의 여러 섬으로 향했다. 디오도로스의 전승에 따르면 그는 많은 섬과 소아시아 해안의 상당한 지역까지 자신의 영향 아래 두었다. 그러나 그의 세력이 넓어진 것은 군대의 힘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미 크레타에서 공정한 판결로 이름이 알려져 있었기에 여러 지역의 사람들은 라다만튀스의 통치를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분쟁을 그의 판단에 맡겼다고 전해진다.
 
그의 앞에는 도둑과 신을 모독한 자, 다른 사람에게 악행을 저지른 자들이 끌려왔다. 라다만튀스는 죄가 드러난 사람에게 엄격한 벌을 내렸고, 누가 더 강한지보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따졌다. 지위가 높다고 벌을 피하거나 힘이 약하다고 억울한 판결을 받아서는 안 되었다. 그가 한 번 정한 판단은 쉽게 뒤집히지 않았고, 사람들은 그런 엄격함을 두려워하면서도 그의 재판을 믿었다.
 
라다만튀스가 다스리는 땅이 늘어날수록 그의 이름은 왕보다 재판자의 이름으로 널리 퍼졌다. 어떤 지역은 싸움 없이 그의 지배를 받아들였고, 섬과 도시들은 그의 법에 따라 질서를 세웠다. 라다만튀스에게 새로운 땅을 얻는 일은 사람들을 굴복시키는 것보다 그곳에 같은 판단의 기준을 세우는 일이었다. 그렇게 그는 크레타의 왕자에서 에게해 여러 섬이 인정하는 통치자가 되어 갔다.
 
섬 주민들의 분쟁을 공정하게 판결하는 라다만튀스
 
 
2.2 헤라클레스가 인용한 법
 
라다만튀스가 세웠다고 전해지는 법 가운데 후대의 이야기 속에 분명하게 남은 것이 하나 있었다. 부당한 공격을 받은 사람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맞서 싸운 경우에는 그 결과만으로 죄를 묻지 않는다는 규정이었다. 훗날 젊은 헤라클레스가 이 법 때문에 살인 혐의에서 벗어나게 된다. 당시 헤라클레스는 리노스에게 리라 연주를 배우고 있었는데, 가르침을 제대로 따르지 못한다는 이유로 스승에게 맞았다.
 
성미가 급했던 헤라클레스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리라로 리노스를 내리쳤고, 리노스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사람을 죽인 헤라클레스는 재판을 받게 되었지만 자신이 먼저 공격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부당하게 공격해 오는 자에게 맞서 자신을 지킨 사람에게는 죄를 묻지 않는다는 라다만튀스의 법을 자신의 행동을 변호하는 근거로 내세웠다.
 
재판에서는 그 주장이 받아들여졌고 헤라클레스는 살인죄에서 벗어났다고 전해진다. 그가 세운 법은 크레타와 에게해를 넘어 다른 땅의 재판에서도 판단의 근거가 되었다. 한 사람의 죽음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누가 먼저 공격했고 어떤 상황에서 일이 벌어졌는지를 따지는 규정이었다. 라다만튀스가 남긴 법은 이렇게 한 영웅의 운명을 가르는 판단의 기준이 되었다.
 
재판정에서 라다만튀스의 법을 인용하는 헤라클레스
 
 
2.3 법으로 이어진 섬들
 
라다만튀스의 통치가 넓어지자 그는 모든 섬과 도시를 혼자 다스리려 하지 않았다.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땅을 맡기고 그곳의 질서를 책임지게 했다. 전승에서는 아들 에리트로스에게 훗날 그의 이름을 따 에리트라이로 불린 도시의 왕권을 주었고, 아리아드네의 아들 오이노피온에게는 키오스를 맡겼다고 한다. 다른 장수들에게도 렘노스와 파로스, 안드로스 같은 여러 섬과 도시가 나뉘어 주어졌다.
 
이렇게 나누어진 땅들은 라다만튀스가 세운 질서 아래 이어졌다. 그는 자신이 모든 지역을 직접 다스리는 대신, 각 섬과 도시에 믿을 만한 통치자를 두었다. 에리트로스와 오이노피온을 비롯한 사람들이 각자의 땅을 맡으면서 라다만튀스의 영향력은 에게해 여러 섬과 아시아 해안으로 퍼져 갔다. 그의 권위는 한곳의 왕궁에 머물지 않고 여러 도시와 섬의 통치 속에서 이어졌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정복자보다는 재판자와 입법자의 이름으로 오래 남았다. 여러 섬을 거느렸다는 전승도 있지만, 후대 사람들이 가장 오래 기억한 것은 그가 얼마나 넓은 땅을 차지했는지가 아니었다. 어디에서든 같은 기준으로 선악을 가르고, 법에 따라 다스렸다는 기억이었다. 그 평판은 훗날 그가 인간의 세상을 떠난 뒤 맡게 될 자리와도 이어지게 된다.
 
여러 섬의 통치자들에게 땅을 맡기는 라다만튀스
 
 
 

제3장 죽어서도 판결하는 자

3.1 보이오티아의 마지막 세월
 
라다만튀스의 이야기는 이후 에게해의 섬들을 떠나 보이오티아로 이어진다. 아폴로도로스는 그가 섬 사람들에게 법을 세워 준 뒤 보이오티아로 달아나 알크메네와 혼인했다고 전한다. 그는 그곳의 오칼레아이에 머물렀다. 한때 크레타 왕궁에서 미노스와 함께 나라를 다스리고 여러 섬에 자신의 법을 퍼뜨렸던 라다만튀스는 이제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 무렵 보이오티아에는 헤라클레스의 어머니 알크메네가 살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 암피트리온은 헤라클레스가 미니아인들과 싸우던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후 라다만튀스는 알크메네와 혼인했다. 제우스와 에우로페 사이에서 태어난 라다만튀스와, 제우스의 아들 헤라클레스를 낳은 알크메네는 오칼레아이에서 함께 살았다고 전해진다. 크레타의 왕자로 시작된 그의 삶은 그렇게 보이오티아의 작은 땅에서 마지막 시기를 맞았다.
 
라다만튀스가 보이오티아에서 다시 큰 왕국을 세웠다는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섬들에 남긴 법과 판결에 관한 기억은 이미 널리 퍼져 있었다. 헤라클레스의 재판에서도 그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법이 인용되었고, 사람들은 그를 오래도록 공정한 판단을 내린 통치자로 기억했다. 오칼레아이 이후 라다만튀스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인간의 세월이 끝난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오칼레아이에서 알크메네와 함께하는 라다만튀스
 
 
3.2 엘리시온의 라다만튀스
 
라다만튀스의 이름은 인간의 세상을 넘어 복된 자들이 머무는 땅에서도 이어졌다. 《오디세이아》에서 바다의 노인 프로테우스는 메넬라오스에게 그의 마지막 운명을 알려 주면서 세계의 끝에 있는 엘리시온 들판을 이야기한다. 그곳에는 눈도 내리지 않고 거센 비와 혹독한 겨울도 없으며, 오케아노스에서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이 사람들에게 편안한 삶을 가져다준다고 했다.
 
그리고 바로 그 평화로운 땅에 라다만튀스가 머물고 있었다. 이 오래된 이야기에서 그는 아직 명계의 법정에 앉아 망자들의 죄를 심판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오디세이아》가 보여 주는 라다만튀스는 인간이 가장 편안하게 살아가는 세계의 끝, 엘리시온에 자리한 존재였다. 크레타에서 태어나 여러 섬에 법을 세웠던 그의 이름은 그렇게 인간의 세계를 넘어 엘리시온의 이야기 속에도 남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모습은 조금씩 달라졌다. 엘리시온에 머무는 라다만튀스라는 오래된 모습에, 죽은 자들을 심판하는 재판관이라는 역할이 더해졌다. 살아 있을 때 사람들의 잘못을 가렸던 라다만튀스가 이제는 삶을 모두 마치고 명계로 내려온 영혼들의 행적을 살피게 된 것이다. 인간 세상에서 시작된 그의 판결은 그렇게 죽음 너머의 세계까지 이어졌다.
 
평화로운 엘리시온 들판에 자리한 라다만튀스
 
 
3.3 명계의 재판관
 
후대의 이야기에서 라다만튀스는 마침내 죽은 자들을 심판하는 재판관이 된다. 사람이 죽으면 왕관도 재산도 높은 지위도 모두 인간 세상에 남겨 두어야 했다. 망자는 아무것도 숨길 수 없는 영혼의 모습으로 재판관 앞에 섰고, 라다만튀스는 그 영혼에 남은 삶의 흔적을 살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판단했다. 살아 있을 때 사람의 지위보다 행위를 먼저 보았던 그의 판결은 죽음 뒤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명계의 재판을 맡은 이는 라다만튀스 혼자가 아니었다. 플라톤의 이야기에서 제우스는 자신의 아들인 라다만튀스와 미노스, 아이아코스를 죽은 자들의 재판관으로 세웠다. 라다만튀스는 아시아에서 온 망자들을 맡았고, 아이기나의 왕 아이아코스는 유럽에서 온 망자들을 심판했다. 두 사람이 쉽게 판단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미노스가 그들의 판결을 살펴 마지막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크레타에서 시작된 라다만튀스의 판결은 죽음의 세계까지 이어졌다. 한때 미노스의 곁을 떠났던 동생은 다시 형과 같은 법정에 앉았고, 먼 아이기나에서 정의로운 왕으로 살았던 아이아코스도 그들 곁에 자리했다. 세 사람 앞에서는 왕도 평범한 사람도 자신이 살아온 삶만으로 판단받아야 했다. 이제 세 재판관이 함께 망자들의 운명을 가르는 이야기는 〈미노스·라다만튀스·아이아코스 – 명계의 세 재판관〉으로 이어진다.
 
명계에서 망자의 삶을 심판하는 세 재판관
【작성】 가담항설 - 떠도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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