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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전쟁 별전가담항설의지식창고 2026.08.15. 12:08 (2026.08.15. 12:08)

파리스 – 트로이의 왕자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는 태어나기도 전에 나라를 불태울 아이라는 예언을 받고 이다산에 버려졌지만, 목동으로 살아남아 다시 왕궁으로 돌아왔다. 황금사과의 심판에서 아프로디테를 선택한 그는 헬레네를 트로이로 데려와 전쟁의 불씨가 되었고, 전쟁에서는 활을 든 왕자로 싸웠다. 아킬레우스의 죽음에 관여한 뒤 필록테테스가 쏜 화살에 치명상을 입은 그는 마지막 순간 자신이 버렸던 오이노네를 찾아가며 파란만장한 생애를 마친다.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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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스 – 트로이의 왕자
 
 
 

개요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는 태어나기도 전에 나라를 불태울 아이라는 예언을 받고 이다산에 버려졌지만, 목동으로 살아남아 다시 왕궁으로 돌아왔다. 황금사과의 심판에서 아프로디테를 선택한 그는 헬레네를 트로이로 데려와 전쟁의 불씨가 되었고, 전쟁에서는 활을 든 왕자로 싸웠다. 아킬레우스의 죽음에 관여한 뒤 필록테테스가 쏜 화살에 치명상을 입은 그는 마지막 순간 자신이 버렸던 오이노네를 찾아가며 파란만장한 생애를 마친다.
 
 
 

제1장 버려진 트로이의 왕자

1.1 트로이를 불태울 꿈
 
트로이의 왕비 헤카베가 둘째 아들을 잉태했을 때, 그녀는 섬뜩한 꿈을 꾸었다. 자신의 몸에서 불붙은 횃불이 태어나더니 불길이 성벽과 궁전으로 번져 트로이 전체를 삼켜 버리는 꿈이었다. 놀란 헤카베는 남편 프리아모스에게 꿈을 이야기했고, 왕은 꿈의 뜻을 풀기 위해 예언에 밝은 아들 아이사코스를 불렀다. 아이사코스는 태어날 아이가 장차 나라에 파멸을 가져올 것이라며 아이를 살려 두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얼마 뒤 헤카베는 사내아이를 낳았다. 이미 헥토르라는 훌륭한 장남을 두고 있던 프리아모스에게 새로 태어난 아이 역시 소중한 아들이었지만, 왕에게는 한 아이보다 트로이 전체의 운명이 더 무겁게 놓여 있었다. 프리아모스는 결국 갓난아이를 궁정의 하인 아겔라오스에게 맡기며 이다산에 버리라고 명령했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부모와 왕궁에서 떨어져 죽음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다. 누구도 훗날 그 아이가 다시 트로이로 돌아와 왕자의 자리를 되찾고, 황금사과와 헬레네를 둘러싼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되리라 알지 못했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버려진 아이가 오히려 나라의 운명과 가장 깊이 얽히게 되는 파리스의 이야기는 이 불길한 꿈에서 시작되었다.
 
불타는 트로이의 꿈에서 깨어나는 헤카베
 
 
1.2 이다산에 버려진 아이
 
아겔라오스는 갓난아이를 안고 트로이 성을 떠나 이다산 깊숙한 곳으로 올라갔다. 왕의 명령은 아이를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그는 자신의 손으로 왕자를 해치지 못하고 산속에 아이를 내려놓은 채 돌아섰다. 며칠 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그곳을 찾은 그는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아이가 죽지 않고 살아 있었으며, 전승에 따르면 암곰이 젖을 먹여 닷새 동안 아이를 지켜 주었다고 한다.
 
아겔라오스는 이를 신들의 뜻으로 여겼다. 그는 아이를 다시 버려 둘 수 없었다. 왕궁으로 데려가면 프리아모스의 명령을 거스르게 되므로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아들처럼 기르기로 했다. 왕자의 신분은 감추어졌고 아이는 파리스라는 이름으로 목동들의 생활 속에서 성장했다. 궁전의 대리석 바닥 대신 산길을 걷고, 왕자들의 무술 교육 대신 양 떼와 소 떼를 지키며 활과 창을 익혔다.
 
파리스는 자신이 누구의 아들인지 모른 채 이다산의 소년으로 자랐다. 높은 산에서 내려다보면 멀리 트로이의 성벽이 보였지만, 그곳이 자신의 집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한때 그의 죽음을 명령했던 왕과 왕비도 아이가 오래전에 죽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죽은 것으로 여겨진 왕자는 산속에서 살아남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뛰어난 용모와 힘을 가진 청년으로 성장해 갔다.
 
이다산에서 갓난 파리스를 돌보는 암곰
 
 
1.3 목동 알렉산드로스
 
파리스는 이다산의 목동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청년으로 자랐다. 그는 몸이 민첩하고 활을 잘 다루었으며, 산속의 짐승이나 도적이 가축을 노리면 앞장서서 맞섰다. 전승에서는 그가 약탈자들을 물리치고 목동과 가축을 지켜 냈기 때문에 ‘사람을 지키는 자’라는 뜻으로 알렉산드로스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훗날 전쟁터에서 불리게 되는 또 하나의 이름은 이때부터 그에게 붙었다.
 
이다산에서 파리스는 강의 신 케브렌의 딸인 님프 오이노네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오이노네는 아름다울 뿐 아니라 예언과 치유의 능력을 지닌 존재였다. 두 사람은 산속에서 부부가 되어 한동안 평온하게 살았다. 트로이의 왕자라는 출생도, 바다 건너 스파르타의 헬레네도 아직 파리스의 삶에 들어오지 않은 때였다.
 
그러나 파리스의 삶은 이다산에서 끝나도록 정해져 있지 않았다. 왕궁에서는 오래전에 죽었다고 여긴 왕자를 추모하는 경기가 열렸고, 경기의 상품으로 쓸 훌륭한 황소를 찾던 사람들이 산으로 올라왔다. 그들이 선택한 황소는 하필 파리스가 아끼던 짐승이었다. 자신의 황소가 트로이로 끌려가는 것을 본 파리스는 그것을 되찾기 위해 목동의 옷차림 그대로 성으로 향했다.
 
이다산에서 오이노네와 함께하는 목동 파리스
 
 
1.4 왕자로 돌아오다
 
트로이에서는 오래전에 죽은 것으로 여겨진 왕자 파리스를 기리는 장례 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파리스는 자신을 위한 경기라는 사실도 모른 채 아끼던 황소를 되찾기 위해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그는 황소를 상품으로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직접 경기에 참가했고, 왕족과 귀족 청년들을 상대로 잇달아 승리를 거두었다. 마침내 프리아모스의 아들들까지 꺾으면서 이름 없는 목동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게 되었다.
 
패배한 데이포보스는 목동에게 왕자들이 모욕당했다고 생각해 분노했고, 칼을 뽑아 파리스를 위협했다. 파리스는 몸을 피해 궁정에 있는 제우스 헤르케이오스의 제단으로 달려가 신의 보호를 구했다. 바로 그때 예언의 능력을 지닌 카산드라가 그를 알아보았다. 눈앞에 있는 청년이 오래전 이다산에 버려져 죽은 것으로 여겼던 자신의 형제이며, 프리아모스와 헤카베의 아들이라고 밝힌 것이다.
 
프리아모스와 헤카베는 잃었다고 믿었던 아들이 살아 돌아온 사실에 놀랐지만 결국 그를 받아들였다. 나라를 멸망시킬 아이라는 옛 예언도 아들을 되찾은 기쁨 속에서 뒤로 밀려났다. 파리스는 하루아침에 이다산의 목동에서 트로이의 왕자로 돌아왔다. 사람들을 지킨다는 뜻의 알렉산드로스로 살아온 청년은 이제 본래의 혈통을 되찾았고, 그의 앞에는 산속에서와 전혀 다른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제단 앞에서 파리스를 알아보는 카산드라
 
 
 

제2장 황금사과와 헬레네

2.1 황금사과 앞의 심판
 
파리스의 운명은 이다산에서 신들의 다툼과 얽히게 되었다.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는 뜻을 담은 황금사과를 던지자, 헤라와 아테나, 아프로디테가 서로 그것을 차지하려 했다. 어느 여신도 포기하지 않자 제우스는 직접 판결하기를 피하고, 헤르메스에게 세 여신을 이다산의 파리스에게 데려가 심판을 맡기도록 했다.
 
세 여신은 인간인 파리스에게 자신을 선택하면 주겠다는 보상을 내놓았다. 헤라는 강대한 왕권과 지배를, 아테나는 전쟁에서의 승리와 명성을 약속했다.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그의 아내로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그 여인은 제우스의 딸로 이름난 스파르타의 헬레네였지만, 이미 메넬라오스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파리스는 왕권도 전쟁의 영광도 아닌 헬레네를 선택하고 황금사과를 아프로디테에게 건넸다. 아프로디테는 승리를 얻었지만 헤라와 아테나는 파리스와 그가 속한 트로이에 깊은 원한을 품었다. 파리스에게는 한 여신의 약속을 받아들인 선택이었지만, 그 선택은 곧 그를 이다산에서 스파르타로 이끌게 된다. 황금사과의 심판은 이제 신들의 다툼을 넘어 인간 세계의 사건으로 번져 가기 시작했다.
 
세 여신 앞에서 황금사과를 든 파리스
 
 
2.2 오이노네를 떠나다
 
파리스가 스파르타로 떠날 준비를 하자 이다산에서 함께 살았던 오이노네는 그를 붙잡았다. 그녀는 예언의 능력으로 이 여행이 평온한 사랑으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이노네는 파리스에게 헬레네를 찾아 바다를 건너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아프로디테의 약속을 받은 파리스의 마음은 이미 산을 떠나 있었다. 왕자로 돌아온 뒤 그에게 열린 세상은 이전의 목동 생활보다 훨씬 넓고 화려했다.
 
오이노네는 끝내 남편의 뜻을 꺾지 못하자 마지막 말을 남겼다. 언젠가 전쟁에서 상처를 입게 되면 자신을 찾아오라고 했다. 그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라고 예언한 것이다. 파리스는 그 말을 뒤로한 채 이다산을 떠났다. 한때 자신의 전부였던 아내와 산속의 삶보다 아프로디테가 약속한 헬레네를 선택한 셈이었다.
 
이별은 훗날 파리스의 마지막 순간을 결정하게 된다. 그러나 그때의 파리스에게 오이노네의 경고는 먼 미래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는 배를 마련해 에게해를 건너 스파르타로 향했다. 어린 시절 자신을 죽음에서 구해 준 이다산을 떠난 왕자는 이제 다른 사람의 아내를 찾아 먼 나라로 가고 있었고, 그의 뒤에는 다시 돌아올 길을 알고 있는 오이노네가 홀로 남았다.
 
떠나는 파리스를 붙잡아 경고하는 오이노네
 
 
2.3 스파르타의 헬레네
 
파리스는 트로이의 왕자 자격으로 바다를 건너 스파르타에 도착했다. 메넬라오스는 먼 나라에서 찾아온 그를 손님으로 받아들이고 왕궁에서 후하게 대접했다. 파리스는 그곳에서 아프로디테가 약속했던 헬레네를 처음 마주했다. 제우스의 딸로 전해질 만큼 아름다움으로 이름난 그녀는 이미 메넬라오스와 혼인하여 어린 딸 헤르미오네를 두고 있었다.
 
파리스는 메넬라오스의 궁전에서 아흐레 동안 환대를 받았다. 그러나 열흘째 되는 날 메넬라오스가 외조부 카트레우스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크레타로 떠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전승에서는 아프로디테가 헬레네의 마음을 파리스에게 향하게 했다고 한다. 남편이 자리를 비운 동안 두 사람은 가까워졌고, 파리스는 마침내 헬레네에게 자신과 함께 트로이로 떠날 것을 권했다.
 
헬레네는 어린 헤르미오네를 스파르타에 남겨 둔 채 파리스와 함께 배에 올랐다. 두 사람이 사랑하여 스스로 떠났다는 전승도 있고 파리스가 헬레네를 납치했다고 전하는 이야기들도 있다. 그러나 메넬라오스의 손님으로 들어온 파리스가 그의 아내와 재물을 가지고 떠났다는 결과는 같았다. 밤을 틈타 출항한 배는 스파르타를 뒤로하고 트로이를 향해 나아갔고, 신성한 손님과 주인의 관계도 이 순간 깨져 버렸다.
 
스파르타 왕궁에서 처음 마주한 파리스와 헬레네
 
 
2.4 헬레네와 함께 트로이로
 
스파르타를 떠난 파리스와 헬레네의 항해는 곧바로 트로이로 이어지지 않았다. 황금사과의 심판에서 선택받지 못한 헤라는 파리스에게 분노했고, 전승에서는 그녀가 일으킨 폭풍 때문에 배가 항로에서 벗어나 시돈에 닿았다고 한다. 파리스는 자신들을 뒤쫓는 이들을 피하며 한동안 페니키아와 키프로스 일대를 거쳤고, 긴 항해 끝에 마침내 헬레네와 함께 트로이에 도착했다.
 
한편 스파르타로 돌아온 메넬라오스는 아내와 재물이 사라진 사실을 알고 형 아가멤논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가멤논은 과거 헬레네에게 구혼했던 왕과 영웅들이 맺은 맹세를 상기시키며 그리스 여러 지역의 왕들에게 원정 참여를 요청하는 전령을 보냈다. 한때 헬레네의 남편이 되기 위해 경쟁했던 옛 구혼자들은 이제 그녀를 되찾기 위한 원정에 나서게 되었다.
 
각지의 왕과 영웅들이 병사와 함선을 준비하면서 그리스의 거대한 연합군이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파리스가 아프로디테의 약속을 믿고 헬레네를 데려온 일은 더 이상 한 왕가의 문제가 아니었다. 여러 나라와 영웅들이 얽힌 전쟁으로 번져 갔고, 그리스군은 마침내 바다 건너 트로이를 향할 준비를 갖추었다. 이다산에서 시작된 파리스의 선택은 이제 트로이 전체의 운명을 뒤흔드는 전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트로이 성문에 도착하는 파리스와 헬레네
 
 
 

제3장 트로이 전쟁과 파리스의 최후

3.1 메넬라오스와의 결투
 
트로이와 그리스의 군대가 맞선 어느 날, 파리스는 표범 가죽을 어깨에 걸치고 활과 칼을 멘 채 두 자루의 창을 들고 전열 앞으로 나섰다. 그는 그리스군의 영웅들에게 자신과 일대일로 싸울 사람이 나오라고 도전했다. 이를 본 메넬라오스는 자신의 아내를 데려간 파리스를 직접 쓰러뜨릴 기회가 왔다며 곧바로 전차에서 뛰어내렸다. 그러나 파리스는 메넬라오스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모습을 보자 두려움에 사로잡혀 트로이군 사이로 물러섰다.
 
이를 본 헥토르는 동생을 거칠게 꾸짖었다. 자신의 선택으로 전쟁을 불러오고도 정작 메넬라오스를 피한다면 트로이인들의 수치가 될 것이라는 질책이었다. 파리스는 형의 말을 받아들이고 다시 앞으로 나섰다. 그는 자신과 메넬라오스가 헬레네와 그녀의 재물을 걸고 결투하여 승자가 모두 차지하고, 나머지 군대는 화해하여 전쟁을 끝내자고 제안했다. 양쪽은 맹약을 맺고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결투가 시작되자 파리스가 먼저 던진 창은 메넬라오스의 방패를 뚫지 못했다. 반대로 메넬라오스의 창은 파리스의 방패와 갑옷을 관통했지만, 파리스가 몸을 틀어 창끝을 피하면서 목숨을 건졌다. 메넬라오스는 이어 칼로 파리스의 투구를 내리쳤으나 칼날이 부러지자 투구끈을 붙잡아 그를 그리스 진영으로 끌고 가려 했다. 그 순간 아프로디테가 끈을 끊고 파리스를 안개 속에 감추어 성 안으로 옮겼다. 아가멤논은 메넬라오스의 승리를 선언했지만, 뒤이어 판다로스가 메넬라오스에게 화살을 쏘면서 휴전은 깨지고 전투가 다시 시작되었다.
 
메넬라오스와 창을 겨루는 파리스
 
 
3.2 활을 든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는 형 헥토르처럼 창과 방패를 들고 적진 한가운데로 돌진하는 전사는 아니었다. 그가 가장 능숙하게 다룬 무기는 활이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적의 빈틈을 노리고 화살을 날리는 방식 때문에 그리스 영웅들은 종종 그를 활 뒤에 숨는 전사라고 조롱했다. 헥토르 역시 전쟁의 원인을 만든 동생이 전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 가차 없이 꾸짖곤 했다.
 
그러나 파리스가 전쟁을 피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일리아스》에서 그는 무덤의 기둥 뒤에서 디오메데스를 겨누어 오른발을 화살로 꿰뚫는다. 디오메데스는 상처를 입고도 파리스의 활을 비웃었지만, 파리스의 화살은 계속 그리스군을 위협했다. 그는 그리스군의 중요한 의사 마카온의 오른쪽 어깨를 맞혀 전장에서 물러나게 했고, 에우뤼필로스의 넓적다리에도 화살을 꽂았다.
 
파리스는 헥토르와 같은 힘센 전사가 아니라 먼 거리에서 적의 주요 인물을 노리는 궁수로 트로이군에서 싸웠다. 전장에서 받는 평가는 엇갈렸지만 그가 날린 화살은 여러 그리스 전사에게 실제 상처를 입혔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 활은 훨씬 더 중요한 순간을 맞게 된다. 헥토르를 죽이고 트로이를 위협하던 그리스군 최고의 영웅 아킬레우스 역시 훗날 파리스가 쏜 화살과 아폴론의 힘 앞에서 최후를 맞게 된다.
 
전장에서 그리스군을 겨누는 궁수 파리스
 
 
3.3 아킬레우스를 쓰러뜨리다
 
헥토르가 아킬레우스에게 죽은 뒤에도 파리스는 살아남아 전쟁을 계속했다. 《일리아스》에서 죽음을 앞둔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에게 언젠가 스카이아이 성문 앞에서 파리스와 아폴론의 손에 죽게 되리라고 예언한다. 아킬레우스의 최후는 《일리아스》 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뒤이어 전해진 서사시권과 후대 이야기에서는 헥토르의 이 마지막 말이 현실이 된 것으로 이어진다.
 
아마존의 여왕 펜테실레이아와 에티오피아의 영웅 멤논까지 쓰러뜨린 아킬레우스는 여전히 트로이에서 가장 두려운 적이었다. 그러나 스카이아이 성문 가까이에서 싸우던 그에게 파리스가 쏜 화살이 날아왔다. 전승에서는 아폴론이 파리스를 도왔거나 그의 화살을 이끌었다고 한다. 수많은 트로이 전사를 쓰러뜨렸던 아킬레우스는 마침내 파리스와 아폴론이 함께한 공격에 치명상을 입고 쓰러졌다.
 
파리스에게는 형 헥토르를 죽인 적을 쓰러뜨린 순간이었고, 트로이에는 가장 위험한 적 하나가 사라진 순간이었다. 그러나 아킬레우스의 죽음도 전쟁을 끝내지는 못했다. 그 뒤에도 여러 영웅의 죽음과 새로운 예언이 이어지는 가운데, 그리스군은 트로이를 함락시킬 방법을 계속 찾았다. 마침내 렘노스에 버려 두었던 필록테테스가 다시 전장으로 불려 왔다. 그가 지니고 있던 헤라클레스의 활과 화살은 이번에는 파리스 자신을 향하게 되었다.
 
아킬레우스를 향해 화살을 쏘는 파리스
 
 
3.4 오이노네에게 돌아간 파리스
 
필록테테스가 트로이 전장으로 돌아오면서 파리스의 운명도 끝을 향했다. 필록테테스는 헤라클레스가 남긴 활과 화살을 지닌 뛰어난 궁수였으며, 그 무기를 가지고 다시 트로이 전장에 섰다. 전승에서는 필록테테스와 파리스가 서로 맞서 싸웠고, 그 과정에서 파리스는 필록테테스가 쏜 화살에 치명상을 입었다고 한다. 상처가 깊어지고 상태가 빠르게 악화되자 파리스는 오래전 이다산에서 오이노네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파리스는 죽어 가는 몸을 이끌고 이다산으로 올라가 오이노네를 찾았다. 한때 아프로디테가 약속한 헬레네를 얻기 위해 버리고 떠났던 아내에게 이제 자신의 목숨을 구해 달라고 청해야 했다. 오이노네는 뛰어난 치유 능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자신을 저버리고 다른 여인을 선택한 파리스에 대한 원망을 버리지 못했다. 그녀가 치료를 거절하자 파리스는 다시 트로이로 돌아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처를 견디지 못하고 죽었다.
 
그러나 파리스가 떠난 뒤 오이노네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그녀는 약을 가지고 서둘러 트로이로 향했지만 도착했을 때 파리스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전승에 따라 오이노네의 마지막 모습은 다르게 전해진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슬픔을 견디지 못해 목을 매었고, 다른 이야기에서는 파리스의 장작더미에 몸을 던졌다고 한다. 이다산에서 사랑을 시작했던 두 사람의 인연은 오랜 이별과 배신을 거쳐 결국 파리스의 죽음과 함께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상처 입은 채 오이노네를 찾아온 파리스
【작성】 가담항설 - 떠도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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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