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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인창의 독서여행궁인창의 지식창고 2026.08.15. 15:01 (2026.08.15. 15:01)

[궁인창 독도항로 탐사기-2] 프랑스 로랑 살로몽, ‘경관 한계 극복하고 육항산과 관계 시적 표현한 작품’ 선정

 
동해를 품은 아름다운 사람들 2
정라진 바닷가는 일제강점기인 1915년 삼척항 개발과 방파제 건설이 시작되면서 옛 모습을 잃고 해안가가 많이 매립되었다. 이후 삼척항 주변에는 조선소와 삼표시멘트 제2공장, 자재창고 등이 많이 들어섰다. 동해안에 고기가 많이 잡혀 한동안은 어업전진기지 역할을 담당했다. 최근 들어 삼척시는 항구 주변의 공장들과 노후화된 산업시설들을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정비하고자 노력해 왔다, 그러나 부지 개발을 위한 공업지역에서 준공업지역으로의 용도변경 등 복잡한 행정 절차의 인해 신속한 사업 추진에 난항을 겪었다.
동해를 품은 아름다운 사람들 2
 
 
정라진 바닷가는 일제강점기인 1915년 삼척항 개발과 방파제 건설이 시작되면서 옛 모습을 잃고 해안가가 많이 매립되었다. 이후 삼척항 주변에는 조선소와 삼표시멘트 제2공장, 자재창고 등이 많이 들어섰다. 동해안에 고기가 많이 잡혀 한동안은 어업전진기지 역할을 담당했다. 최근 들어 삼척시는 항구 주변의 공장들과 노후화된 산업시설들을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정비하고자 노력해 왔다, 그러나 부지 개발을 위한 공업지역에서 준공업지역으로의 용도변경 등 복잡한 행정 절차의 인해 신속한 사업 추진에 난항을 겪었다.
 
삼척항(사진:이효웅)
 
2017년 7월, 삼척시(당시 김양호 시장)는 이사부 장군의 해양 개척정신을 기리고 환동해권의 문화, 역사, 관광 자료를 전시하기 위해 ‘이사부 독도 기념공원’ 건립을 위한 국제 설계 공모를 시행했다. 삼척시는 공모 참여 건축가들에게 ‘꽉 막힌 바다 경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독도 기념관으로서의 역사적인 의미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라는 두 가지 핵심 과제를 제시하며 창조적인 대안을 요구했다.
 
이사부 독도 기념공원 국제건축공모전(사진:삼척시)
 
‘이사부 독도 기념공원’ 국제 설계 공모에는 22개국 총 72개 팀이 참여하였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프랑스 건축가 로랑 살로몽(Laurent Salomon)은 한국의 ‘심플렉스 건축사사무소’에서 제출한 설계안을 최종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로랑 살로몽 위원장은 당선작에 대해 “주어진 경관의 한계를 극복하고, 육향산과의 관계를 시(詩)적으로 훌륭하게 설정했다.”라며 수상작 선정 이유를 밝혔다.
 
프랑스 건축가 로랑 살로몽(사진:프랑스 건축가협회)
 
로랑 살로몽은 1992년부터 5년간 프랑스 건축가협회장을 역임하고, 1995년부터 2000년까지 프랑스 국가자문 건축가로 활동한 프랑스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이다. 그는 1995년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국제 설계 공모에서 5등으로 입상하며 한국과 첫 인연을 맺었다. 이 계기를 통해 한국 전통건축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전국의 유명 사찰을 찾아가고, 전통 한옥과 정자를 둘러보며 한국 건축 고유의 미학에 깊이 심취했다. 2012년에는 부산 용호동 IS동서 주상복합 69층 ‘더블유아파트’ 설계를 맡아 건축가는 부산 앞바다를 거실에서 조망을 즐길 수 있도록 설계하여 1,500가구 분양을 성공시켰다. 그는 경기도 양지 고급 주택 ‘루아르밸리’ 설계에 참여하고, 2022년 ‘전남 도민광장 디자인 국제아이디어’ 공모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삼척포진성지(三陟浦鎭城址) 내 우전각(禹篆閣)(사진:궁인창)
 
2019년 초, 건축 부지 주변에서 과거 삼척포진성(三陟浦鎭城) 성벽의 일부가 확인되고 해안가 사구 유적에 대한 발굴 조사가 시작되면서 공사가 약 1년간 중단되는 일이 발생했다. 삼척포진성은 육향산의 옛날 지명인 죽간도(竹間島)에 위치했다. 삼척포진은 1384년(고려 우왕 10년)에 처음 운영되기 시작해 1489년(조선 성종 20년)에 축성을 시작하여 1520년(중종 15년)에 완성했다. 성에는 영장(營將)이 상주하며 동해안의 해상 방어를 총괄하는 영동지역 군사의 핵심 전초기지로 활용되었다. 이 관방유적은 대한제국 말기 군사제도 개편으로 1895년(고종 32년)에 폐지되었고, 1916년 삼척항 축조 공사 당시 성벽 대부분이 헐려 그동안 성의 흔적을 찾기가 어려운 상태였다. 과거 유적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굴되면서, 공모 당선작은 수공간(연못)의 면적과 건물의 위치를 상당 부분 재설계해야만 했다.
 
이사부 독도 기념관(사진:심플렉스 건축사사무소)
 
이사부 독도 기념관(사진:심플렉스 건축사사무소)
 
심플렉스 건축사사무소는 이 상황을 위기가 아닌 새로운 기회로 삼았다. 건축가 송상헌 소장과 홍익대 박정환 교수는 매립된 땅 아래에 과거 섬이었던 육향산의 하부 지형이 그대로 남아있는 점에 주목하고, 하부 유적을 발굴하여 땅이 품은 역사성을 시각적으로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자고 주장했다.
 
건축가들은 대지의 지형적 특성을 살려 드러난 땅을 통해 지역성과 역사성을 보여주기 위해 건축 대상지의 지반을 과거 땅의 높이로 대폭 낮추고, 그 자리에 물을 끌어들여 바다였던 환경을 회복했다. 특히 땅의 높이를 4m로 낮추면서 답답하던 경관을 시원하게 되살려냈다. 이렇게 채워진 물은 바위 마당에서 방문객들이 바라보는 대상이 되어, 육향산과 연계되어 마치 바다 위에 있는 섬(독도)의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구현해 냈다.
 
독도 판타지아(사진;궁인창)
 
독도 판타지아(사진;궁인창)
 
2022년 9월 건축물을 완공한 이사부 독도 기념관은 내실 있는 준비 기간을 거쳐 2024년 7월 23일 정식으로 개관했다. 대지 높이를 낮춰 지은 4개 동 건물에는 동해의 해양 생태계 정보는 물론이고 이사부 장군의 해양 영토 개척을 소개한 실감 명상과 우산국 미디어아트 등 정말 다양하고 볼거리가 가득했다.
 
B관(이사부관)에서는 이사부 장군의 우산국 정벌 과정을 미디어아트 영상으로 상영했다. 나무 사자를 앞세워 막강한 해상세력이었던 우산국을 정벌하는 이야기는 놀랍고 흥미진진했다. 필자는 영상을 보면서 우산국은 언제 건국되었고 왕들은 몇 명이나 있었는지 무척 궁금했다. 우산국의 마지막 왕인 우해왕 설화 스토리에 빠져있을 때 전화가 걸려왔다. 7분 영상을 다 보고 이효웅 사진가와 통화하였다. 형님은 “어디쯤 왔는가?”라며 반갑게 물어 “이사부 독도 기념관에서 재미있는 영상과 전시물 등을 관람하고 있는데, 바로 찾아뵙겠다.”라고 답했다.
 
우해왕, 이사부, 지증왕(사진:궁인창)
 
이사부 독도 기념관에서 산 쪽의 정원을 바라보니, 나지막하고 고풍스런 기와집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기념관 관람을 마치고 발걸음을 옮겨 사당을 찾아갔다. 사당은 조선왕조 후기의 대문장가이자 삼척부사를 지낸 미수(眉叟) 허목(許穆, 1595~1682)의 신주를 모신 미수사였다. 건물은 2004년 12월에 착공하여 2005년 7월 19일에 준공되었다. 아쉽게도 대문이 굳게 잠겨 내부로 들어설 수 없어 담장 너머로 조용히 참배를 올리며 선생의 애민정신을 생각했다.
 
미수사(眉叟祠)(사진;궁인창)
 
미수사(眉叟祠)(사진;궁인창)
 
선비 허목(許穆) 선생은 한양에서 태어나 50세가 넘을 때까지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오롯이 학문에만 전념했다. 경기도 광주 자봉산에 은거하던 그는 한강 정구 선생을 찾아가 스승으로 모시고 3년간 사사했다. 1615년에는 정언눌(鄭彦訥, 1549~ ?) 선생에게 경학(禮記)를 배웠다. 그는 인조의 실정(失政)에 반발해 인조 대에는 절대로 벼슬길에 오르지 않겠다고 다짐한 채 학문을 닦아, 퇴계 선생과 남명 조식의 사상을 묵묵히 계승해 나갔다.
 
이후 1650년(효종 1), 그의 나이 56세에 박학능문(博學能文)하며 뜻이 고상하다고 선비들이 천거하여 정릉 참봉에 처음 제수되어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1659년 사헌부 장령으로 재직할 때 우암 송시열이 북벌론을 주장하자, 왕에게 “실현 불가능한 정책은 백성의 고통만 가중할 뿐이니, 크게 군사를 일으키는 데 신중해야 한다.”라는 내용의 옥궤명(玉几銘)을 지어 올렸다.
 
허목은 나이 65세 때인 1660년 현종의 어전 경연(經筵)에서 송시열의 예송(禮訟)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 화근이 되어 중앙정계에서 밀려나게 된다. 이듬해 10월, 그는 강원도 삼척으로 좌천된다. 당시 문인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 1597~1673)은 기해예송 논쟁에서 패해 정치적 풍파를 겪고 멀리 길을 떠나는 벗을 향해 〈허목을 삼척에 보내며〉(送許三陟)라는 시를 지어 깊은 위로를 전했다.
 
大關東北有名州 三陟川溪五十流。
知道使君多逸興 夜來明月竹西樓。
 
【번역】
대관령 동북쪽에 이름난 고을이 있으니,
삼척의 정든 계곡물과 시냇물은 쉰 줄기로 굽이쳐, 오십천에 흐르네
고을을 다스리는 부사의 세속을 벗어난 고아한 흥취가 많음을 세상이 모를 리 있겠나
밤 깊어 밝은 달이 죽서루를 비추는구나!
 
 
허묵의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사진;이효웅)
 
허목 부사는 삼척에서 약 2년간 목민관으로 재직하면서 군민에게 선정을 베풀었다. 당시 삼척 바다는 거친 파도와 해일이 자주 일어나 바닷가 마을을 침범하고, 수해가 잦아 백성들의 고통이 극심했다. 부사는 매일 이를 안타깝게 여기고 고심했다. 그는 1661년(현종 2년)에 바다를 예찬하고 다스리는 글인 동해송(東海頌)을 지어 이듬해 1662년 정라진 앞 만리도(萬里島)에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를 건립했다. 놀랍게도 비석에는 신비한 힘이 있어 이후 동해 큰 바다가 잠잠해지고, 수해를 입는 일이 일어나지 않아 사람들은 퇴조비(退潮碑)라 불렀다.
 
만리도(萬里島)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 추정 지역(사진;김인영)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의 비문을 해석한 여러 문헌을 찾아보니 잘못된 번역(誤譯)이 너무 많아 한자의 단어를 중국 고전에 나오는 원문과 《옥편(玉篇)》을 일일이 대조해가며 오류를 수정했다.
 
【번역문】 동해송(東海頌)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 도호부사 허목 예찬
 
척주는 옛 실직국의 땅이자, 예(濊)나라의 옛 터전이다. 한양으로부터 700리 거리에 있으며 동쪽으로는 큰 바다와 맞닿아 있다.
 
큰 바다 끝없이 넓어 온갖 물이 모여드니 그 크기가 끝이 없네.
 
동북쪽은 사해(沙海)라서 밀물도 없고 썰물도 없어 대택(大澤: 東海)이라 이름했네.
 
무진장 많은 물 하늘까지 닿아 출렁댐이 넓고도 아득하니 바다가 일렁이고 음산하네.
 
밝디 밝은 양곡(暘谷: 해뜨는 곳)은 태양의 문이라서 희백(羲伯: 四時를 다스린 官員)이 공손히 아침 해를 맞아하네. 이곳은 석목(析木) 별자리가 머물고, 빈우(牝牛: 箕, 尾 두 별자리) 궁(宮) 자리니 해가 돋는 동쪽의 끝이로다. 
 
교인(鮫人: 갓난아기의 울음소리처럼 큰 소리를 내는 바다의 여신으로 물속에서 비단을 제조하며, 슬퍼 울면 모두 구술을 이룬다.)의 보배와 바다에 가득한 온갖 산물 한없이 많으며 기이한 물건 변화하여 너울대는 그 상서는 덕을 일으켜 나타나도다.
 
조개의 태에 든 진주는 달과 더불어 성하고 쇠하며 신기루같은 안개를 뿜어 올리네.
 
머리가 아홉 개인 괴수 천오(天吳: 朝陽之谷, 曰天吳, 是爲水伯, (중략) 其爲獸也, 八首八面, 八足八尾, 背靑黃.) - 《산해경-해외동경(海外東經)》)와 소같이 생긴 뿔이 없는 외발 달린 짐승 기(虁)는 폭풍을 일으키고 비를 내린다네.
 
아침에 돋은 햇살 둥글게 올라 휘황찬란 빛나니 자줏빛 붉은빛 가득하여라.
 
십오일 둥실 뜬 보름달 하늘에 밝은 거울 되니 온 뭇 별들 빛을 감추도다. 
 
해 뜨는 동쪽 바다의 사화족(沙華族: 日本의 별칭, 사할린, 타타르 해협의 나라)과 빈랑(檳榔) 열매를 씹어 이를 검게 물들이는 흑치족(黑齒族: 광서 장족 자치구)과 남만(南蠻: 말레이반도)의 마라족(麻羅族)과 백성은 머리를 박박 깎고 귀족은 머리털을 뒤로 모아 묶어 상투를 트는 보가족(莆家族)과 바다에 들어가 굴(蠔: 굴 호)을 채취하는 연만족(蜒蠻族)과 조와(爪蛙: 자바 섬)의 원숭이들과 해상왕국 삼불제(Srivijaya, 스리위자야, 佛齊, 수마트라 팔렘방을 수도로 7세기부터 13세기까지 해상권을 장악한 강력한 고대 해상왕국)의 소들은 바다 밖 잡종으로 종류도 풍속도 다른 데, 이 위대한 하늘 아래 한 세상을 이루어 함께 살아가는구나!
 
옛 성인(聖人. 임금)의 덕이 멀리 미쳐 온갖 이민족이 대를 이어 중역(重譯: 이중 통역)을 거쳐 찾아와 복종하지 않은 자가 없었네. 참으로 거룩하고 빛나도다. 그 다스림과 교화가 넓고도 커서 성인의 유풍(遺風: 교화의 풍속)이 아득히 오래가리라!
 
 
【원문】 동해송(東海頌) 허목 예찬
 
瀛海漭瀁 百川朝宗 其大無窮
東北沙海 無潮無汐 號爲大澤
積水稽天 浡潏汪濊 海動有曀
明明暘谷 太陽之門 羲伯司賓
析木之次 牝牛之宮 日本無東
鮫人之珍 涵海百産 汗汗漫漫
奇物譎詭 宛宛之祥 興德而章
蚌之胎珠 與月盛衰 旁氣昇霏
天吳九首 怪夔一股 颷回且雨
出日朝暾 轇軋炫煌 紫赤滄滄
三五月盈 水鏡圓靈 列宿韜光
扶桑沙華 黑齒麻羅 撮髻莆家
蜒蠻之蠔 爪蛙之猴 佛齊之牛
海外雜種 絶黨殊俗 同囿咸育
古聖遠德 百蠻重譯 無遠不服
皇哉煕哉 大治廣博 遺風邈哉
 
 
조선 후기의 대학자 미수(眉叟) 허목 선생은 중국 고대신화의 물의 신 천오(天吳, 天吴,天俣, Tianwu: 八首八面, 八足八尾, 背靑黃)의 머리가 여덟(八首) 개인데도 불구하고 왜 아홉(九首) 개라고 표현했는지 의문이 들어, 진(秦)나라 이전의 고문헌인 《산해경》을 다시 공부했다. 허목 선생은 동해를 달래기 위해 물을 관장하는 신 천오를 모셔오고 주술적인 요소를 더하여 조수를 조용히 잠재웠다.
 
물의 신 천오(天吳)(사진;바이두백과)
 
천오는 《산해경(山海經)》의 〈해외동경(海外東經)〉과 〈대황동경(大荒東經)〉 편에 처음 등장하며 신비롭고 무서운 동물과 인간의 무서운 신수(神獸) 모습을 겸비한 이중적 성격을 지녔다. 신화에 따르면 천오는 양곡(陽谷)이라는 골짜기에 거주하며, 동물의 형상일 때는 호랑이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한 머리 8개, 다리 8개, 꼬리 8개(대황동경(大荒東經)에는 10개 꼬리)를 가진 신수(神獸)의 모습으로, 몸은 청황색을 띠며 구름과 안개를 내뿜거나 들이마시는 능력이 있다. 인간의 형상일 때는 검은 도포를 입고 백발을 한 모습으로 나타나며, 위엄 있고 압도적인 기운을 풍긴다. 천오의 오(吳)는 오나라 사람들의 초기 토템 신앙을 뜻한다.
 
진강(秦腔) 그림자극인 《영락왕서원(永樂王許願)》에서는 거북과 뱀 장군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 난동을 부리자, 장천사(張天師)가 천오를 소환하여 이들을 제압하게 했다. 천오는 왼손으로 거북을, 오른손으로 뱀을 움켜쥐고 천계로 돌아갔다고 전해진다.
 
물의 신 천오(天吳)(사진;紀妖)
 
미수(眉叟) 허목은 괴력을 지닌 물의 신 천오(天吳)에게 천재적인 발상을 발휘하여 강력한 머리 하나를 더 얹어 주어 더 강력한 힘으로 동해의 높은 해일과 홍수를 완벽히 차단하고자 미리 설계했다. 이처럼 신비로운 힘과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깃든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 덕분에 오늘날 삼척 시민들은 바다의 재해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언제나 평안한 일상을 누리고 있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궁인창
【작성】 궁 인창 (생활문화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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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