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파르타 – 헬레네의 왕국
펠로폰네소스 남쪽, 에우로타스 강과 타이게토스 산 사이의 땅에는 신들의 후손과 오래된 왕가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라케다이몬이 아내 스파르타의 이름을 도시에 붙인 뒤, 이곳은 틴다레오스와 레다, 디오스쿠로이와 헬레네의 고향이 된다. 마침내 헬레네와 혼인한 메넬라오스가 왕위를 잇지만, 파리스가 찾아오면서 평온했던 왕국은 트로이 전쟁의 출발점이 된다. 십 년의 전쟁과 긴 방랑이 끝난 뒤, 헬레네와 메넬라오스는 다시 스파르타로 돌아온다.
1.1 에우로타스 강의 왕
아주 오래전, 펠로폰네소스 남쪽 라코니아의 땅에는 레렉스라는 왕이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의 뒤를 이어 아들 밀레스가 왕이 되었고, 다시 밀레스의 아들 에우로타스가 나라를 다스렸다. 이 땅은 높은 타이게토스 산맥과 넓은 평야, 남쪽 바다로 흘러가는 물길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러나 평야 곳곳에는 물이 고여 습지가 되었고, 사람들이 살아가기에는 불편한 곳도 많았다.
에우로타스는 물길을 바다 쪽으로 터서 고인 물을 흘려보냈다. 물이 빠진 뒤에도 하나의 큰 강줄기가 남았고, 그는 그 강에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 그렇게 에우로타스 강은 라코니아 평야를 가로지르며 흐르게 되었다. 왕에게는 아들이 없었지만 스파르타라는 딸이 있었고, 왕국은 장차 그녀를 통해 새로운 계보로 넘어가게 되었다.
한편 타이게토스 산의 이름과 이어지는 님프 타이게테에게는 제우스의 아들 라케다이몬이 태어났다고 전해졌다. 에우로타스는 이 젊은 영웅을 자신의 뒤를 이을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딸 스파르타와 혼인하게 했다. 강의 왕가와 제우스의 혈통이 하나로 이어지면서, 오래된 라코니아의 땅은 이제 라케다이몬과 스파르타의 이름 아래 새로운 왕국으로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물길을 터 에우로타스 강을 만드는 에우로타스
1.2 라케다이몬과 스파르타
에우로타스의 뒤를 이어 왕이 된 라케다이몬은 자신이 다스리는 땅과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 그 뒤로 넓은 지역은 라케다이몬이라 불리게 되었고, 그 이름은 훗날 스파르타와 함께 이 나라를 가리키는 또 하나의 이름으로 오래 남았다. 그러나 라케다이몬은 자신의 이름만을 남기지 않았다. 그는 왕비 스파르타를 위해 새로운 중심 도시를 세웠다.
새 도시는 에우로타스 강 가까이 자리 잡았다. 서쪽으로는 타이게토스 산이 길게 뻗어 있었고, 주변에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평야가 펼쳐졌다. 라케다이몬은 이 도시에 아내의 이름을 붙여 ‘스파르타’라 불렀다. 왕비의 이름은 그렇게 한 사람의 이름을 넘어 도시와 왕국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오래 남게 되었다.
라케다이몬과 스파르타에게서는 아미클라스가 태어났고, 왕위는 다시 그의 후손들에게 이어졌다. 아미클라스는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 아미클라이를 세웠으며, 그의 집안에서는 히아킨토스의 슬픈 이야기도 전해졌다. 여러 세대를 거친 뒤 왕가는 오이발로스에 이르렀고, 뒤이어 틴다레오스와 히포코온이 왕위를 두고 맞서면서 스파르타는 새로운 격랑 속으로 들어갔다.
새 도시에 스파르타의 이름을 붙이는 라케다이몬
1.3 왕위를 빼앗긴 틴다레오스
오이발로스의 왕가에서는 틴다레오스와 히포코온이 스파르타의 왕위를 두고 맞섰다. 히포코온은 많은 아들과 지지자들을 거느린 강력한 인물이었고, 결국 틴다레오스를 밀어내고 왕국을 차지했다. 힘에서 밀린 틴다레오스는 고향을 떠나 피신해야 했다. 전승에 따라 그가 머문 곳은 펠라나라고도 하고, 메세니아의 왕 아파레우스에게 의지했다고도 전한다.
스파르타를 차지한 히포코온과 그의 아들들은 왕국을 지배했다. 그러던 중 그들은 헤라클레스와 원한을 맺게 되었다. 히포코온의 아들들이 헤라클레스의 친족이자 동료였던 오이오노스를 죽이자, 헤라클레스는 그들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군사를 모아 스파르타로 쳐들어왔고, 히포코온의 집안과 격렬한 싸움을 벌였다.
전투 끝에 히포코온과 그의 아들들이 쓰러지면서 빼앗겼던 왕좌도 주인을 잃었다. 헤라클레스는 스파르타를 자신의 나라로 삼지 않고, 오랜 망명 생활을 하던 틴다레오스를 불러 왕위를 돌려주었다. 그렇게 틴다레오스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스파르타의 왕좌에 앉았다. 훗날 헬레네와 디오스쿠로이의 이야기가 펼쳐질 왕가는 이 귀환으로 다시 이어지게 되었다.
틴다레오스에게 왕위를 돌려주는 헤라클레스
1.4 레다와 왕가의 아이들
다른 전승에서는 고향을 떠난 틴다레오스가 아이톨리아의 왕 테스티오스에게 의지했고, 그곳에서 그의 딸 레다와 혼인했다고 전한다. 레다는 뛰어난 아름다움으로 이름난 여인이었고, 훗날 틴다레오스가 왕위를 되찾으면서 그녀도 스파르타 왕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레다를 둘러싼 가장 유명한 전승에는 제우스가 등장한다. 제우스는 백조의 모습으로 레다에게 다가갔으며, 그 뒤 여러 아이가 태어났다. 그러나 아이들의 아버지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옛 전승마다 조금씩 다른 이야기가 남아 있다.
왕궁에서 자란 아이들 가운데 카스토르와 폴리데우케스는 훗날 디오스쿠로이라 불리는 쌍둥이 영웅이 되었다. 카스토르는 말 다루기와 전차에 뛰어났고, 폴리데우케스는 권투의 명수로 이름을 떨쳤다. 두 형제는 언제나 함께 모험에 나섰으며, 서로를 위해 목숨까지 나누는 형제애의 상징으로 기억되었다.
딸들 가운데에는 클리타임네스트라와 헬레네가 있었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훗날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과 혼인했고, 헬레네는 그리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 두 혼인은 스파르타 왕가를 미케네의 아트레우스 가문과 깊이 연결했다. 그때까지는 누구도 이 왕가의 혼인들이 장차 그리스 전체를 뒤흔들 전쟁과 비극으로 이어지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디오스쿠로이와 헬레네를 바라보는 레다
2.1 스파르타로 모여든 구혼자들
헬레네가 혼인할 나이가 되자 그리스 곳곳에서 왕과 왕자, 이름난 영웅들이 스파르타로 찾아왔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대한 소문은 이미 널리 퍼져 있었고, 헬레네와 혼인한다는 것은 스파르타 왕가와 연결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구혼자들은 저마다 선물과 수행원을 데리고 왕궁에 모였고, 틴다레오스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을 사위로 선택해야 했다.
그러나 선택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사람을 고르면 나머지 영웅들이 모욕을 당했다고 여기고 서로 싸울 수도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자신의 나라와 군대를 가진 강력한 인물들이었다. 혼인을 잘못 결정하면 축하의 자리가 그리스 여러 왕국의 분쟁으로 바뀔 수도 있었다. 틴다레오스는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보다, 선택한 뒤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더 걱정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 있던 오디세우스는 틴다레오스의 고민을 알아차렸다. 그는 자신에게 페넬로페와 혼인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준다면 해결책을 알려주겠다고 제안했다. 틴다레오스가 이를 받아들이자 오디세우스는 모든 구혼자에게 먼저 맹세를 시키라고 조언했다. 헬레네의 남편으로 누가 선택되든 그 혼인을 인정하고, 누군가 그 결혼을 해치려 하면 모두 힘을 합쳐 남편을 돕게 하자는 것이었다.
헬레네를 위해 스파르타 왕궁에 모인 구혼자들
2.2 틴다레오스의 맹세
틴다레오스는 오디세우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헬레네를 얻기 위해 모여든 영웅들은 자신이 선택되지 않더라도 결과를 인정하고, 선택된 남편의 혼인과 권리를 지키겠다고 맹세했다. 이 약속은 단순히 구혼 경쟁을 평화롭게 끝내기 위한 장치였지만, 훗날에는 그리스의 수많은 왕과 영웅을 하나의 전쟁으로 불러 모으는 약속이 되었다.
맹세가 이루어진 뒤에야 헬레네의 남편이 정해졌다. 선택된 사람은 미케네 왕가의 왕자 메넬라오스였다. 그의 형 아가멤논은 이미 틴다레오스의 딸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연결되어 있었고, 메넬라오스와 헬레네의 혼인으로 스파르타와 미케네의 관계는 더욱 가까워졌다. 많은 구혼자들은 약속대로 결과를 받아들이고 각자의 나라로 돌아갔다.
오디세우스도 스파르타에서 자신의 길을 얻었다. 틴다레오스의 도움을 받아 그는 이카리오스의 딸 페넬로페와 혼인하게 되었고, 훗날 이타카의 왕으로 살아갔다. 그렇게 스파르타 왕궁에서 이루어진 두 혼인은 서로 멀리 떨어진 왕국들을 이어 놓았다. 그날 영웅들이 나눈 맹세도 당장은 필요 없는 약속처럼 보였지만, 세월이 흐른 뒤 파리스가 헬레네를 데려가면서 그 약속은 다시 불려 나오게 된다.
헬레네의 혼인을 지키기로 맹세하는 구혼자들
2.3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
헬레네와 혼인한 메넬라오스는 스파르타 왕가의 사위가 되었다. 그는 미케네 왕 아트레우스의 아들이었지만, 스파르타의 왕위는 자신의 혈통을 통해 물려받은 것이 아니었다. 훗날 디오스쿠로이가 인간 세상을 떠난 뒤, 틴다레오스는 메넬라오스를 불러 스파르타의 왕위를 넘겼다고 전해진다. 헬레네는 그와 함께 왕비가 되었고, 두 사람 사이에서는 딸 헤르미오네가 태어났다.
메넬라오스가 왕이 되면서 스파르타와 미케네의 관계는 더욱 가까워졌다. 그의 형 아가멤논은 이미 틴다레오스의 딸 클리타임네스트라와 혼인해 있었으므로, 두 형제는 각각 틴다레오스의 두 딸과 연결되었다. 한동안 스파르타의 왕궁에는 오랜 구혼 경쟁이 끝난 뒤의 평온이 찾아왔고, 헬레네와 메넬라오스는 왕과 왕비로 나라를 다스렸다.
그러나 바다 건너 트로이에서는 프리아모스의 아들 파리스가 자신의 운명을 바꿀 선택을 하고 있었다. 이다산에서 세 여신의 아름다움을 판정하게 된 그는 아프로디테를 선택했고, 그 대가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얻으리라는 약속을 받았다. 그 여인이 바로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파리스의 배가 에게해를 건너 스파르타를 향했다.
스파르타의 왕과 왕비가 된 메넬라오스와 헬레네
2.4 트로이에서 온 손님
파리스는 트로이 왕자의 신분으로 스파르타를 찾아왔다. 메넬라오스는 먼 나라에서 온 손님을 왕궁으로 맞아들여 융숭하게 대접했다. 손님을 보호하고 환대하는 일은 왕에게 중요한 의무였고, 파리스도 그 보호 아래 여러 날 동안 왕궁에 머물렀다. 그곳에서 그는 아프로디테가 자신에게 약속했던 여인,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마주했다.
그러던 중 메넬라오스는 외조부 카트레우스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크레타로 떠나야 했다. 왕이 자리를 비운 사이 파리스와 헬레네는 더욱 가까워졌다. 헬레네가 스스로 그를 따라갔다고도 하고 파리스가 그녀를 데려갔다고도 하는 등 전승은 서로 다르다. 그러나 두 사람이 함께 스파르타를 떠났고, 아홉 살이던 딸 헤르미오네는 왕궁에 남겨졌다고 전해진다.
헬레네는 왕궁의 많은 재물을 배에 싣고 파리스와 함께 스파르타를 떠나 트로이를 향해 길을 나섰다. 메넬라오스가 돌아왔을 때 왕궁에는 아내도 손님도 없었다. 자신이 환대한 손님이 왕비를 데리고 떠났다는 사실은 개인적인 모욕만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오래전 헬레네의 구혼자들이 이곳에서 했던 맹세가 다시 떠올랐고, 스파르타에서 벌어진 한 사건은 곧 그리스 전역의 왕과 영웅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파르타 왕궁에서 처음 마주하는 파리스와 헬레네
3.1 맹세가 전쟁이 되다
메넬라오스는 스파르타에서 곧장 형 아가멤논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가멤논은 그리스 여러 왕에게 사자를 보내 헬레네의 구혼자 시절에 했던 맹세를 상기시켰다. 한때 혼인 다툼을 막기 위해 맺었던 약속은 이제 메넬라오스의 아내를 되찾기 위한 군사 동맹의 근거가 되었다. 여러 영웅이 각자의 배와 군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오디세우스처럼 전쟁에 나가기를 꺼린 영웅도 있었지만, 맹세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살라미스의 아이아스, 크레타의 이도메네우스, 필로스의 네스토르를 비롯한 여러 왕과 영웅이 모였고, 스파르타에서도 메넬라오스가 병사들을 이끌었다. 아울리스에 집결한 함대는 마침내 바다를 건너 트로이를 향했다.
전쟁의 직접적인 목적은 헬레네를 되찾는 것이었지만, 싸움은 어느 한 왕의 집안일을 훨씬 넘어섰다. 트로이 성벽 아래에는 그리스 여러 왕국의 영웅들이 모였고, 전쟁은 십 년 동안 이어졌다. 헬레네의 혼인을 둘러싼 다툼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던 맹세가 오히려 수많은 사람을 전장으로 불러낸 셈이었다. 스파르타에서 시작된 한 혼인의 약속은 이제 그리스와 트로이의 운명을 함께 묶고 있었다.
트로이 원정을 위해 아울리스에 모인 그리스 함대
3.2 왕이 떠난 스파르타
메넬라오스가 전쟁에 나선 뒤 스파르타의 왕궁에서는 긴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헬레네는 트로이에 있었고, 왕은 멀리 전쟁터에 있었다. 아홉 살에 어머니와 헤어진 헤르미오네는 아버지마저 전쟁에 나서면서 부모와 떨어진 채 성장해야 했다. 다른 왕국에서도 수많은 가족이 전쟁에 나간 남편과 아들들을 기다렸지만, 스파르타는 전쟁의 중심에 놓인 왕과 왕비가 모두 떠난 왕국이라는 점에서 더욱 깊은 빈자리를 안고 있었다.
트로이 전쟁은 빠르게 끝나지 않았다. 해마다 전투가 이어졌고 수많은 영웅이 쓰러졌다. 파트로클로스와 헥토르가 죽고, 마침내 아킬레우스마저 전장에서 사라진 뒤에도 트로이의 성벽은 버텼다. 마지막에는 오디세우스가 제안한 목마의 계략으로 그리스 전사들이 성 안으로 들어갔고, 십 년을 이어온 전쟁은 마침내 트로이의 함락으로 끝났다.
불타는 도시에서 메넬라오스는 오랜 세월 떨어져 있던 헬레네와 다시 마주했다. 그러나 트로이가 무너졌다고 해서 스파르타로 돌아가는 길까지 열린 것은 아니었다. 귀향길에서 신들의 분노와 거센 폭풍이 그리스 함대를 덮쳤고, 여러 영웅의 배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전쟁을 위해 고향을 떠난 지 십 년이 지났지만, 메넬라오스와 헬레네에게는 아직 긴 방랑이 남아 있었다.
텅 빈 왕궁에서 부모를 기다리는 어린 헤르미오네
3.3 바다를 떠도는 왕과 왕비
트로이를 떠난 메넬라오스와 헬레네의 배는 곧장 라코니아로 돌아가지 못했다. 바다는 귀향하는 함대를 흩어놓았고, 메넬라오스는 살아남은 배들과 함께 여러 먼 땅을 떠돌았다. 《오디세이아》에서 그는 키프로스와 페니키아, 이집트와 리비아를 비롯한 여러 지역을 돌아다녔다고 회상한다. 전쟁에서 살아남았지만 에우로타스 강가의 스파르타는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다.
이집트 앞바다의 파로스섬에서는 바람마저 끊겨 배가 움직이지 못했다. 메넬라오스는 바다의 늙은 신 프로테우스를 붙잡아 귀향의 길을 물었고, 트로이를 떠날 때 신들에게 마땅한 제사를 올리지 않았기 때문에 길이 막혔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다시 이집트의 강가로 돌아가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예를 갖춘 뒤에야 비로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얻었다.
긴 방랑 동안 메넬라오스는 여러 나라를 지나며 많은 재물을 모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침내 스파르타로 돌아갈 길을 찾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오디세이아》에서 오랜 표류 끝에 여덟 해째에 재물을 싣고 귀향했다고 말한다. 트로이에서 보낸 십 년에 다시 긴 방랑의 세월이 더해진 뒤에야, 메넬라오스와 헬레네는 타이게토스 산과 에우로타스 강이 있는 고향을 다시 바라볼 수 있었다.
파로스섬에서 프로테우스를 붙잡는 메넬라오스
3.4 다시 스파르타의 왕궁으로
마침내 메넬라오스와 헬레네는 스파르타로 돌아와 다시 왕과 왕비로 살아갔다. 세월이 흘러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가 아버지의 소식을 찾아 스파르타를 방문했을 때, 왕궁에서는 혼인 잔치가 한창이었다. 메넬라오스는 성장한 딸 헤르미오네를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에게 보내고 있었고, 왕궁에는 혼인 잔치를 위해 많은 친족과 이웃들이 모여 있었다.
텔레마코스를 맞이한 메넬라오스와 헬레네는 트로이에서 겪은 지난날을 떠올렸다. 메넬라오스는 오디세우스가 전쟁에서 보여준 지혜와 용기를 이야기했고, 헬레네도 목마가 들어오기 전 트로이에서 만났던 오디세우스를 회상했다. 전쟁과 방랑을 함께 지나온 두 사람은 이제 다시 에우로타스 강가의 왕궁에서 손님을 맞으며, 오래전에 사라졌던 일상의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그러나 스파르타 왕가의 이야기는 그들에서 끝나지 않았다. 다른 전승에서는 네오프톨레모스가 죽은 뒤, 헤르미오네가 오레스테스와 혼인했다고 전해진다. 파우사니아스는 오레스테스가 메넬라오스의 뒤를 이어 스파르타의 왕이 되었다고 전한다. 라케다이몬이 아내 스파르타의 이름을 붙였다는 도시에서 시작된 왕가의 이야기는 여러 세대를 지나 다시 다음 세대로 이어졌다. 트로이 전쟁의 시작과 귀환의 끝에는 언제나 에우로타스 강가의 스파르타가 자리하고 있었다.
스파르타 왕궁에서 텔레마코스를 맞는 왕과 왕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