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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티아 – 아킬레우스의 고향
테살리아 남부의 프티아는 펠레우스 왕가의 나라로, 그의 아들 아킬레우스와 미르미돈족의 고향으로 전해진다. 아이기나를 떠나온 펠레우스가 이 땅에 자리 잡고 테티스와 혼인하면서 프티아는 펠레우스 왕가의 중심지가 되었다.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자 왕자와 미르미돈 전사들은 바다를 건너 떠났고, 펠레우스는 그들의 귀환을 기다리며 고향에 남았다. 전쟁 뒤에는 네오프톨레모스와 안드로마케의 이야기가 다시 프티아로 이어지며, 아킬레우스 이후에도 계속되는 왕가의 운명을 보여준다.
1.1 아이기나에서 온 왕자
아이기나의 왕 아이아코스는 엔데이스에게서 펠레우스와 텔라몬을 두었고, 바다의 여신 프사마테에게서는 포코스를 두었다. 펠레우스와 텔라몬은 이복형제 포코스의 죽음에 얽힌 뒤 아버지의 나라에서 쫓겨났다. 텔라몬이 살라미스로 향한 것과 달리 펠레우스는 북쪽 테살리아로 떠나 프티아의 왕 에우리티온을 찾아갔다. 에우리티온은 낯선 땅으로 흘러온 그를 받아들이고 포코스의 죽음으로 생긴 살인의 부정을 씻어 주었다.
에우리티온은 자신의 딸 안티고네를 펠레우스와 혼인시키고 나라의 일부도 나누어 주었다. 방랑하던 왕자에게 마침내 새로운 가정과 터전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다. 칼리돈의 멧돼지 사냥에서 펠레우스가 멧돼지를 향해 던진 창이 빗나가 에우리티온을 맞혔고, 그는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자신을 받아 주었던 장인을 죽였다는 죄를 짊어진 펠레우스는 다시 프티아를 떠나 이올코스로 향해야 했다.
그곳에서도 아카스토스와 그의 아내 때문에 새로운 시련을 겪었지만, 여러 방랑과 속죄를 거친 펠레우스는 끝내 다시 프티아와 인연을 맺었다. 《일리아스》에서 그는 미르미돈족을 다스리는 왕으로 등장하며, 아이기나에서 시작된 아이아코스의 혈통도 그렇게 테살리아에 새로운 뿌리를 내렸다. 프티아는 펠레우스의 왕국이 되었고, 훗날 그의 아들 아킬레우스와 미르미돈족을 통해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영웅의 고향으로 기억된다.
에우리티온에게 받아들여지는 젊은 펠레우스
1.2 신과 인간의 혼인
펠레우스의 운명을 다시 바꾼 존재는 바다의 여신 테티스였다. 제우스와 포세이돈조차 아름다운 테티스와의 혼인을 원했지만, 그녀가 낳을 아들은 아버지보다 더 위대한 존재가 될 것이라는 예언이 전해졌다. 자신보다 강한 후손이 태어날 것을 염려한 신들이 물러나면서 테티스는 인간인 펠레우스와 혼인하게 되었다. 두 사람의 혼인은 테살리아의 펠리온산 부근에서 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대하게 치러졌다.
혼인 잔치에는 올림포스의 여러 신들이 모였고, 펠레우스는 귀한 선물도 받았다. 케이론에게서 받은 물푸레나무 창과 포세이돈이 내린 불사의 말 크산토스와 발리오스는 훗날 그의 아들 아킬레우스와 함께 트로이 전장으로 향한다. 신과 인간이 한자리에 모인 이 혼인은 펠레우스의 왕가를 인간과 신들의 세계 사이에 놓았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바로 아킬레우스였다.
테티스는 펠레우스와의 사이에서 아킬레우스를 낳았지만 인간의 세계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여러 전승에서 그녀가 떠난 뒤 아킬레우스는 펠레우스에게 남겨졌고, 프티아 왕가를 이을 후계자로 성장한다. 《일리아스》에서도 아킬레우스는 프티아를 자신의 집과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거듭 떠올린다. 그렇게 프티아는 펠레우스의 왕국을 넘어, 훗날 트로이 전쟁의 가장 뛰어난 영웅이 전장에서 끊임없이 돌아가기를 바랐던 고향이 되었다.
신들이 지켜보는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혼인식
1.3 왕궁에 모인 사람들
프티아의 왕궁에는 펠레우스와 아킬레우스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다른 땅에서 쫓겨나거나 죄를 짊어진 사람들도 이곳으로 들어와 새로운 삶을 얻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물은 파트로클로스였다. 어린 시절 다툼 끝에 또래를 죽인 그는 아버지 메노이티오스와 함께 펠레우스를 찾아왔고, 펠레우스는 그를 받아들여 자신의 아들 곁에서 자라게 했다. 두 소년의 우정은 이렇게 프티아의 왕궁에서 시작되었다.
노장 포이닉스 역시 아킬레우스의 곁을 지켰다. 그는 고향에서 아버지와 갈등을 겪은 뒤 펠레우스에게 몸을 의탁했고, 왕은 그에게 사람들을 다스릴 자리와 어린 아킬레우스를 돌보는 일을 맡겼다. 포이닉스는 훗날 트로이에서도 아킬레우스를 ‘아이’처럼 대하며 아버지 펠레우스의 말을 전한다. 프티아의 왕궁은 혈연만으로 이어진 집이 아니라, 여러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가문처럼 살아가는 곳이었다.
그래서 아킬레우스가 성장한 환경을 이해하려면 그의 개인적인 수련만이 아니라 이 왕궁의 사람들을 함께 볼 필요가 있다. 펠레우스는 왕이자 보호자였고, 포이닉스는 스승과 양부 같은 존재였으며, 파트로클로스는 가장 가까운 벗이 되었다. 훗날 트로이 전장에서 아킬레우스 곁을 지키는 이들의 관계는 이미 오래전 프티아에서 만들어져 있었다.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를 돌보는 포이닉스
1.4 미르미돈의 왕국
프티아의 왕 펠레우스와 그의 아들 아킬레우스를 따르는 전사들은 미르미돈족이었다. 그들의 기원에는 여러 전승이 있지만, 이야기는 펠레우스의 아버지 아이아코스가 다스리던 아이기나섬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전승에서는 아이아코스가 홀로 있던 섬에 제우스가 개미들을 사람으로 바꾸어 새로운 백성을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후대에는 역병으로 섬의 사람들이 사라진 뒤 아이아코스의 기도에 응답한 제우스가 개미들을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졌다. 개미를 뜻하는 말에서 그들이 ‘미르미돈족’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미르미돈족은 아이아코스의 후손인 펠레우스와 함께 다시 프티아의 전승으로 이어진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는 프티아와 헬라스의 사람들을 미르미돈족, 헬레네스, 아카이오이라고 부르며 모두 아킬레우스의 지휘 아래 놓는다. 아킬레우스가 이끄는 사람들의 땅으로는 프티아뿐 아니라 알로스·알로페·트라키스 등도 함께 언급된다. 신화 속 프티아는 하나의 성이나 도시라기보다 펠레우스 왕가가 이끄는 지역과 그곳의 전사들을 아우르는 중심지로 그려진다.
미르미돈족은 트로이 전쟁에서도 왕자와 운명을 함께했다.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과 다투어 전투에서 물러났을 때 그들은 함선 곁에 머물렀고,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나갈 때 비로소 다시 무기를 들었다. 이들은 아킬레우스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프티아의 전사들이었으며, 아킬레우스가 한 명의 뛰어난 용사를 넘어 자신의 나라를 대표하는 지휘관임을 보여 주었다. 프티아와 미르미돈족의 이름은 그렇게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이 되었다.
펠레우스 앞에 모여든 프티아의 미르미돈 전사들
2.1 전쟁의 소식이 왕궁에 닿다
트로이 원정이 준비되자 그리스 각지에서 왕들과 전사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일리아스》에서 네스토르는 자신과 오디세우스가 원정에 참가할 사람들을 모으며 프티아의 펠레우스 왕궁을 찾아갔던 일을 회상한다. 왕궁에는 펠레우스와 메노이티오스가 있었고, 젊은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도 그 자리에 있었다. 멀리 스파르타와 미케네에서 시작된 분쟁이 마침내 프티아의 왕궁 문 앞까지 다가온 것이다.
펠레우스에게 이 원정은 남의 전쟁만은 아니었다. 그리스의 여러 왕들과 군대가 아가멤논 아래 모이고 있었고, 프티아를 이을 아킬레우스도 미르미돈족과 함께 원정에 참가하게 되었다. 펠레우스에게 그것은 하나뿐인 아들과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를 먼 바다 건너로 떠나보내는 일이었다.
출정이 결정되자 왕궁에는 전쟁을 위한 준비가 이어졌다. 무기와 식량이 모이고 미르미돈 전사들이 집결했으며, 포이닉스와 파트로클로스도 아킬레우스와 함께 길을 나설 준비를 했다. 후대에는 아킬레우스가 스키로스에 숨어 있다가 원정에 합류했다는 다른 이야기도 전하지만, 호메로스의 전승에서 프티아는 왕자와 그의 사람들을 트로이로 보내는 출발점이다. 한 영웅이 아니라 왕국의 젊은 세대가 함께 고향을 떠나는 순간이었다.
펠레우스 왕궁을 찾아온 네스토르와 오디세우스
2.2 아들을 떠나보내는 왕
아킬레우스가 프티아를 떠날 무렵, 펠레우스는 전장으로 향하는 아들에게 왕가의 후계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당부했다. 훗날 네스토르는 그날을 떠올리며 펠레우스가 아들에게 언제나 가장 뛰어난 사람이 되고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라고 가르쳤다고 말한다. 그것은 단순히 싸움에서 승리하라는 뜻만이 아니라, 여러 그리스 왕들과 영웅들이 모인 원정군 속에서도 자신의 이름과 가문의 명예를 지키라는 아버지의 당부였다.
펠레우스는 아들을 혼자 보내지 않았다. 오랫동안 왕궁에서 아킬레우스를 돌보았던 포이닉스를 함께 보내며, 아직 전쟁과 사람들의 회의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 왕자를 ‘말에도 능하고 행동에도 능한 사람’으로 이끌어 달라고 부탁했다. 파트로클로스 역시 그의 곁에 섰다. 케이론에게서 펠레우스가 받았던 무거운 물푸레나무 창과 신들이 혼인 선물로 내렸던 불사의 말들도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 전해져 함께 트로이로 향했다.
왕자와 측근들, 미르미돈 전사들이 배에 오르자 프티아에는 늙어 가는 펠레우스가 남았다. 아킬레우스가 트로이에서 여러 번 프티아를 떠올리는 것은 그곳에 왕궁과 재산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살아 돌아갈 수만 있다면 다시 만나고 싶은 아버지가 그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프티아는 영웅의 출발점이면서 동시에 전쟁터에서 죽음과 명예 사이에 놓일 때마다 아킬레우스가 마음속으로 되돌아보았던 집이었다.
출정을 앞둔 아킬레우스에게 당부하는 펠레우스
2.3 오십 척의 미르미돈 함대
아킬레우스가 이끈 프티아의 군대는 미르미돈족을 중심으로 편성되었다. 호메로스는 그들이 오십 척의 배를 타고 트로이로 향했다고 전한다. 그 함대에는 프티아와 헬라스, 그리고 주변 지역에서 모인 전사들이 올랐다. 그들은 다른 그리스 군대와 함께 아울리스에 집결한 뒤 바다를 건넜고, 마침내 트로이 해안에 진을 쳤다. 왕국의 젊은 전사들이 한꺼번에 떠나면서 프티아는 전쟁과 직접 연결되었다.
트로이에서 미르미돈족은 언제나 아킬레우스의 명령을 기다렸다. 아가멤논과의 다툼으로 그가 전투를 거부했을 때에도 그들은 독자적으로 싸우지 않고 함선 곁에 머물렀다. 그들의 힘이 다시 움직인 것은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출전했을 때였다. 파트로클로스의 외침에 미르미돈 전사들이 모여들었고, 오랫동안 멈춰 있던 프티아의 군대가 다시 전장으로 쏟아져 나갔다.
이 때문에 트로이 전쟁에서 프티아의 존재는 아킬레우스 한 사람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의 뒤에는 고향에서 함께 온 전사들과 지휘관들, 전차를 모는 사람들과 배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아킬레우스는 한 명의 뛰어난 전사가 아니라 하나의 왕국을 대표하는 지휘관이었다. 트로이 해안의 미르미돈 진영은 멀리 떨어진 프티아가 전쟁터에 옮겨진 작은 왕국과도 같았다.
바다로 출항하는 아킬레우스와 미르미돈 함대
2.4 돌아오지 않는 왕자를 기다리다
전쟁이 길어지는 동안 프티아에는 늙은 펠레우스가 남아 있었다. 처음에는 몇 해 안에 끝날 것처럼 보였던 원정이 십 년 가까이 이어졌고, 아들과 함께 떠난 미르미돈 전사들도 돌아오지 않았다. 트로이에서 아킬레우스는 고향을 여러 번 떠올린다. 그는 자신이 전쟁을 버리고 프티아로 돌아간다면 오래 살 수 있다고 말하고, 한편으로는 늙은 아버지가 아직 살아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먼 땅에 머문다.
펠레우스 역시 아들의 소식을 기다리는 사람으로 남았다. 《일리아스》에서 아킬레우스는 프리아모스를 보며 자신의 아버지를 생각하고, 멀리 떨어진 펠레우스가 자신 때문에 슬퍼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프리아모스가 죽은 헥토르를 되찾기 위해 적진에 찾아왔을 때, 아킬레우스가 그 노인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데에는 고향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있었다.
왕자가 없는 프티아의 시간은 전장의 영광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트로이에서는 이름을 떨치는 영웅의 이야기가 이어졌지만, 고향에서는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이 쌓였다. 전쟁이 끝나기 전에 파트로클로스가 죽고, 마침내 아킬레우스마저 트로이에서 생을 마치면서 펠레우스가 기다리던 귀환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프티아는 승리한 영웅을 맞이하는 왕국이 아니라, 왕자를 잃은 고향이 되었다.
빈 왕궁에서 아킬레우스를 기다리는 늙은 펠레우스
3.1 아킬레우스의 자리를 이은 손자
네오프톨레모스가 전쟁 뒤 어디에 자리 잡았는지는 전승마다 다르게 전해진다. 어떤 전승에서는 그가 육로를 따라 귀환한 뒤 에페이로스에 자리 잡았다고 하지만,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안드로마케》에서는 이야기가 다시 프티아로 이어진다. 이 작품에서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는 전쟁에서 돌아온 뒤에도 펠레우스 왕가의 후계자로 등장하며, 늙은 펠레우스 역시 여전히 테살리아의 왕으로 살아 있다.
네오프톨레모스의 집은 프티아와 파르살리아의 경계에 있는 테티데이온에 자리한다. 이곳은 오래전 바다의 여신 테티스가 인간인 펠레우스와 함께 살았다고 전해져 그녀의 이름으로 불리던 곳이었다. 네오프톨레모스는 그 땅에 자신의 집안을 두었지만, 늙은 펠레우스가 살아 있는 동안 파르살리아의 통치는 할아버지에게 그대로 맡겨 두었다. 아킬레우스를 트로이로 떠나보냈던 왕이 세월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왕가의 가장 어른으로 프티아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 돌아온 왕가의 모습은 예전과 달랐다.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는 돌아오지 않았고, 새로운 세대의 중심에는 네오프톨레모스가 자리했다. 여기에 트로이에서 데려온 포로들과 전쟁 뒤 새롭게 맺어진 혼인까지 왕가 안으로 들어왔다. 승리한 그리스의 왕국이었던 프티아에는 이제 패전한 트로이의 기억도 함께 머물렀고, 그 중심에는 헥토르의 아내였던 안드로마케가 있었다.
늙은 펠레우스 앞에 선 네오프톨레모스
3.2 헥토르의 아내가 프티아에 오다
안드로마케는 트로이가 함락된 뒤 네오프톨레모스의 전리품으로 배정되어 그리스로 끌려왔다. 한때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의 아내로 왕궁에서 살았던 그녀는 이제 자신이 두려워했던 아킬레우스의 아들이 지배하는 집에서 포로로 살아가야 했다. 네오프톨레모스와의 사이에서는 몰로소스라는 아들도 태어났다. 남편과 아들 아스티아낙스, 고향까지 잃은 안드로마케에게 어린 몰로소스는 새로운 땅에서 지켜야 할 마지막 가족이 되었다.
그러나 네오프톨레모스가 메넬라오스와 헬레네의 딸 헤르미오네와 정식으로 혼인하면서 왕가 안에는 갈등이 생겼다. 자식을 얻지 못하던 헤르미오네는 남편의 마음이 안드로마케에게 기울었다고 의심했고, 자신이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까지 그녀의 저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네오프톨레모스가 델포이에 가서 집을 비운 사이, 헤르미오네는 아버지 메넬라오스의 도움을 받아 안드로마케와 어린 몰로소스를 없애려 했다.
죽음의 위기에 몰린 안드로마케는 테티스의 신전으로 달아나 제단을 붙잡고 보호를 청했다. 그곳은 바로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이며 펠레우스 왕가의 여신인 테티스를 섬기는 성소였다. 한때 아킬레우스에게 남편을 잃고, 전쟁으로 고향까지 잃었던 여인이 이제 그의 어머니에게 목숨을 의탁하게 된 것이다. 트로이와 프티아의 운명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끝나지 않았고, 서로 적이었던 두 왕가의 기억은 한 지붕 아래에서 다시 맞부딪치기 시작했다.
테티스의 제단을 붙잡은 안드로마케와 몰로소스
3.3 안드로마케를 지킨 늙은 왕
안드로마케와 어린 몰로소스가 죽음의 위기에 놓였을 때 그들을 구하러 나타난 사람은 늙은 펠레우스였다. 메넬라오스는 딸 헤르미오네를 위해 안드로마케와 그 아들을 제거하려 했지만, 펠레우스는 자신의 집안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트로이에서 싸운 자신의 아들 아킬레우스까지 거론하는 메넬라오스를 거칠게 꾸짖으며, 붙잡혀 있던 안드로마케와 몰로소스를 풀어 주라고 요구했다.
펠레우스가 물러서지 않자 메넬라오스는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떠났고, 안드로마케와 몰로소스는 목숨을 건졌다. 트로이 전쟁에 아들을 보냈던 늙은 왕은 이제 그 전쟁에서 포로가 되어 끌려온 여인과 자신의 증손자를 보호하게 되었다. 손자 네오프톨레모스가 델포이로 떠나 있는 동안에도 펠레우스는 여전히 왕가의 가장 어른으로 남아 자신의 집과 그 안의 사람들을 지켰다.
한때 프티아에서 아킬레우스를 트로이로 떠나보냈던 펠레우스 앞에는 이제 헥토르의 아내가 서 있었다. 아킬레우스와 헥토르가 서로 목숨을 걸고 싸웠던 전쟁은 끝났지만, 두 집안의 운명은 다음 세대에서 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전쟁 뒤 프티아의 이야기는 더 이상 승자와 패자의 구분만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서로 얽힌 채 새로운 가족과 왕가를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 시간이 시작되고 있었다.
메넬라오스 앞을 막아선 펠레우스와 안드로마케
3.4 프티아 왕가의 마지막 운명
프티아의 왕가에 다시 비극이 찾아온 것은 네오프톨레모스가 델포이에서 돌아오지 못하면서였다. 에우리피데스의 《안드로마케》에서 그는 과거 아폴론에게 아버지 아킬레우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으려 했던 일을 뉘우치고, 신과 화해하기 위해 다시 델포이를 찾는다. 그러나 헤르미오네를 데려가려던 오레스테스가 네오프톨레모스가 다시 아폴론의 신전을 약탈하려 한다는 거짓 소문을 퍼뜨렸고, 델포이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그는 성소에서 끝내 목숨을 잃었다.
손자의 죽음이 전해지자 펠레우스는 아킬레우스에 이어 네오프톨레모스마저 잃었다며 무너져 내렸다. 아들과 손자를 차례로 트로이 전쟁과 그 뒤의 비극 속에서 잃은 늙은 왕에게 남은 것은 깊은 슬픔뿐이었다. 그때 오랫동안 인간의 세계를 떠나 있던 테티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네오프톨레모스의 시신을 다시 델포이로 가져가 피티아의 제단 곁에 묻도록 하고, 남겨진 가족들이 앞으로 걸어갈 길을 알려 주었다.
안드로마케는 헬레노스와 함께 몰로시아로 가게 되고, 몰로소스에게서는 훗날 그 땅을 다스리는 왕가가 이어질 것이었다. 펠레우스에게도 마지막 운명이 남아 있었다. 테티스는 그를 인간의 늙음과 죽음에서 벗어나게 하여 자신과 함께 바다에서 살도록 하겠다고 약속한다. 이렇게 프티아에서 시작된 왕가의 이야기는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다. 한 갈래는 몰로시아로 이어지고, 펠레우스 자신은 테티스와 함께 인간의 세계를 떠나면서 프티아에서의 긴 이야기를 마친다.
네오프톨레모스의 죽음 앞에 나타난 테티스와 펠레우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