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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 별전가담항설의지식창고 2026.08.16. 23:13 (2026.08.16. 23:13)

이타카 – 오디세우스의 왕국

 
이타카는 그리스 서쪽 바다에 자리한 오디세우스의 왕국이었다. 라에르테스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오디세우스는 페넬로페와 혼인하고 아들 텔레마코스를 얻지만, 트로이 전쟁에 나서며 오랫동안 나라를 비운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왕이 돌아오지 않자 왕궁에는 구혼자들이 몰려들고 왕가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스무 해 만에 거지의 모습으로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아들과 힘을 합쳐 왕궁을 되찾고, 마침내 이타카의 질서를 다시 세운다.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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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카 – 오디세우스의 왕국
 
 
 

개요

 
이타카는 그리스 서쪽 바다에 자리한 오디세우스의 왕국이었다. 라에르테스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오디세우스는 페넬로페와 혼인하고 아들 텔레마코스를 얻지만, 트로이 전쟁에 나서며 오랫동안 나라를 비운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왕이 돌아오지 않자 왕궁에는 구혼자들이 몰려들고 왕가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스무 해 만에 거지의 모습으로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아들과 힘을 합쳐 왕궁을 되찾고, 마침내 이타카의 질서를 다시 세운다.
 
 
 

제1장 이타카의 왕가

1.1 바다의 작은 왕국
 
그리스 서쪽 바다에 자리한 이타카는 넓은 평야와 거대한 도시를 가진 나라가 아니었다. 산이 많고 땅은 거칠었으며, 바다를 건너야 다른 나라와 이어질 수 있는 작은 섬이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에게 이곳은 세상의 어떤 풍요로운 땅과도 바꿀 수 없는 고향이었다. 왕궁과 항구, 밭과 목초지가 가까이 이어졌고, 섬 곳곳에는 왕가를 섬기는 목자와 농부들이 살아갔다.
 
오디세우스가 거느린 사람들은 이타카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의 세력은 주변의 여러 섬과 해안까지 이어졌으며, 트로이 원정이 시작되었을 때 그는 이 지역의 전사들을 모아 열두 척의 배를 이끌고 바다를 건넜다. 미케네와 같은 강대한 왕국은 아니었지만, 이타카는 주변 섬들과 함께 하나의 세력을 이루었고 그 중심에는 라에르테스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오디세우스가 있었다.
 
오디세우스가 오랜 방랑 끝에 수많은 나라와 섬을 지나면서도 끝까지 돌아가려 한 곳 역시 이타카였다. 칼립소가 불멸을 약속하고 파이아케스의 왕궁이 안락함을 내어주어도 그의 마음은 고향을 향했다. 바다 한가운데 자리한 작고 거친 섬이었지만, 그에게 이곳은 아내와 아들, 아버지와 자신의 집이 기다리는 유일한 고향이었다. 이타카의 이야기는 바로 그 고향을 떠난 왕과 그를 기다린 사람들에게서 시작된다.
 
이타카의 산과 바다를 바라보는 오디세우스의 모습
 
 
1.2 라에르테스의 아들
 
오디세우스의 아버지 라에르테스는 이타카의 왕가를 이은 인물이었다. 어머니 안티클레이아는 교활함과 기지로 이름난 아우톨리코스의 딸이었고, 오디세우스는 어린 시절부터 이 두 집안의 혈통 속에서 자랐다. 파르나소스산에서 외조부의 집을 찾았다가 멧돼지에게 입은 다리의 상처는 훗날 그가 오랜 세월 만에 이타카로 돌아왔을 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표지가 된다.
 
《오디세이아》가 시작될 무렵 라에르테스는 이미 왕궁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 농장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는 늙고 지친 모습으로 밭과 포도밭을 돌보며 아들의 귀환을 기다렸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에서 돌아오지 않고 며느리와 손자가 구혼자들에게 시달리는 동안에도, 노쇠한 라에르테스가 다시 왕궁의 중심에 나설 수는 없었다. 왕이 돌아오지 않은 이타카에는 오디세우스의 자리가 오랫동안 비어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거대한 체격이나 압도적인 힘보다 판단과 말, 상황을 헤아리는 능력으로 이름난 왕이었다. 그는 필요할 때 자신을 감추고, 상대의 마음을 읽으며,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길을 찾아냈다. 이러한 성격은 훗날 트로이와 바다에서 그를 살려냈지만, 그보다 먼저 이타카를 다스리는 왕의 모습이기도 했다. 작은 왕국의 중심에는 힘보다 지혜로 기억되는 라에르테스의 아들이 서 있었다.
 
어린 오디세우스의 다리에 상처를 내는 멧돼지
 
 
1.3 페넬로페가 온 왕궁
 
오디세우스는 스파르타 왕가와 가까운 혈통을 지닌 페넬로페와 혼인했다. 페넬로페는 이카리오스의 딸로, 결혼 뒤 남편을 따라 이타카로 와 그의 집안에 자리 잡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들 텔레마코스가 태어났다. 오디세우스에게는 자신의 집과 가문을 이어갈 아들이 생겼고, 늙은 라에르테스와 오디세우스, 어린 텔레마코스로 이어지는 왕가의 세 세대가 이타카에 함께 살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가족이 함께한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텔레마코스가 아직 갓난아이였을 무렵 트로이 원정을 위한 소집이 이타카에도 닿았다. 오디세우스는 전쟁에 나가기를 피하려 했다는 전승도 있지만, 결국 다른 그리스 왕들과 함께 원정에 참여해야 했다. 그가 이타카의 전사들과 배를 이끌고 섬을 떠나면서 페넬로페는 어린 아들과 왕궁에 남았고, 아버지 라에르테스 역시 이타카에서 아들의 귀환을 기다리게 되었다.
 
처음에는 전쟁이 끝나면 오디세우스도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트로이 전쟁은 십 년 동안 이어졌고, 도시가 함락된 뒤에도 그의 배는 이타카 항구에 나타나지 않았다. 페넬로페는 남편의 생사조차 알 수 없었으며, 갓난아이였던 텔레마코스는 아버지를 거의 알지 못한 채 청년으로 자랐다. 그렇게 한때 세 세대가 함께했던 왕가는 차츰 ‘돌아오지 않는 왕’을 기다리는 집안으로 변해갔다.
 
어린 텔레마코스와 함께한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
 
 
 

제2장 왕이 없는 이타카

2.1 트로이로 떠난 왕
 
헬레네가 파리스와 함께 트로이로 떠나자, 오래전 그녀에게 구혼했던 그리스의 왕과 영웅들은 맹세에 따라 메넬라오스를 돕도록 요구받았다. 오디세우스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이타카에는 갓 태어난 텔레마코스와 페넬로페가 있었기에 그는 원정에 나서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결국 다른 그리스 왕들과 함께 전쟁에 참여했다. 그는 이타카와 주변 지역의 전사들을 이끌고 아울리스에 모인 연합군에 합류했다.
 
오디세우스는 떠나면서 오랜 친구 멘토르에게 자신의 집을 맡겨 지켜보게 했다. 그러나 전쟁이 십 년 동안 이어지는 사이 텔레마코스는 아버지 없이 자라야 했고, 페넬로페는 남편을 기다리며 왕가를 지켜야 했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에서 여러 계책과 협상에 참여하고 마지막에는 트로이 목마의 계략에도 깊이 관여했지만, 이타카 사람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의 왕이 너무 오랫동안 고향을 비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십 년 만에 트로이가 함락되자 이제 오디세우스도 곧 돌아올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다른 영웅들의 귀환 소식이 하나둘 전해져도 그의 배는 이타카에 나타나지 않았다. 바다에서는 키클롭스와 키르케, 세이렌과 칼립소로 이어지는 긴 방랑이 시작되고 있었지만, 고향 사람들은 그 사정을 알지 못했다. 전쟁은 끝났지만 이타카의 기다림은 끝나지 않았고, 왕의 부재는 전쟁보다도 더 긴 시간을 향해 이어지고 있었다.
 
이타카 항구에서 가족을 뒤로하고 출정하는 오디세우스
 
 
2.2 십 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에도 여러 해가 흐르자 이타카에서는 오디세우스가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시신도 무덤도 없었지만 살아 있다는 확실한 소식 역시 없었다. 페넬로페는 남편이 죽었다고 단정하지 않았고, 텔레마코스는 아버지의 행방을 알지 못한 채 청년이 되었다. 왕이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오디세우스의 집과 이타카의 질서는 점점 불안해졌다.
 
마침내 이타카와 주변 섬의 유력한 젊은이들이 왕궁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페넬로페에게 오디세우스를 포기하고 자신들 가운데 한 사람을 새 남편으로 선택하라고 요구했다. 페넬로페와의 혼인은 오디세우스가 없는 이타카에서 그의 집안과 재산의 중심에 설 수 있는 길이기도 했다. 구혼자들은 왕궁에 머물며 가축을 잡고 술과 곡식을 소비했고, 날마다 연회를 벌였다. 오디세우스의 재산은 마치 주인이 없는 것처럼 빠르게 사라져갔다.
 
텔레마코스는 그들을 미워했지만 한꺼번에 몰아낼 힘이 없었다. 구혼자들은 젊은 그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가 성장하여 아버지의 집을 지키려 할 가능성을 경계했다. 라에르테스는 왕궁을 떠나 시골에서 늙어가고 있었으며, 페넬로페는 혼자서 구혼자들의 요구를 버텨야 했다. 이타카는 외부의 적에게 정복된 것이 아니었다. 오디세우스의 오랜 부재 속에서 그의 집과 재산, 가족의 자리가 안에서부터 서서히 침범당하고 있었다.
 
구혼자들에게 둘러싸인 페넬로페와 텔레마코스
 
 
2.3 왕궁을 차지한 구혼자들
 
페넬로페는 구혼자들의 요구를 정면으로 거부하면서도 끝없이 버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시아버지 라에르테스가 죽었을 때 입힐 수의를 다 짠 뒤 새 남편을 고르겠다고 약속했다. 낮에는 베틀 앞에서 수의를 짜고 밤이 되면 몰래 실을 풀어버렸다. 이 계책은 삼 년 동안 이어졌지만 하녀 가운데 한 사람이 비밀을 구혼자들에게 알려주면서 더는 시간을 벌기 어려워졌다.
 
구혼자들의 행동도 더욱 거칠어졌다. 안티노오스와 에우리마코스를 비롯한 이들은 오디세우스의 집을 자기 집처럼 사용했고, 텔레마코스가 민회를 열어 그들의 횡포를 호소해도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텔레마코스가 필로스와 스파르타로 떠나 아버지의 소식을 찾기 시작하자, 돌아오는 길목에 배를 띄워 그를 죽이려는 매복까지 준비했다. 이제 왕가의 문제는 재산의 낭비를 넘어 텔레마코스의 목숨까지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동안 페넬로페는 왕궁 안에서 버티고, 텔레마코스는 밖으로 나가 아버지의 흔적을 찾았다. 충실한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와 늙은 유모 에우리클레이아 같은 이들은 여전히 오디세우스의 집을 자기 주인의 집으로 여겼다. 반면 일부 하인들은 구혼자들의 편에 섰다. 오랜 부재는 이타카 사람들의 마음까지 갈라놓고 있었다. 왕이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누가 끝까지 그 집을 지킬 것인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밤마다 라에르테스의 수의를 풀어내는 페넬로페
 
 
 

제3장 다시 왕의 나라로

3.1 아버지를 찾아 나선 왕자
 
아테나는 오디세우스가 돌아올 때가 가까워지자 먼저 텔레마코스에게 움직일 용기를 주었다. 젊은 왕자는 오랫동안 구혼자들의 연회를 지켜보기만 했지만, 이제 이타카 사람들을 민회로 불러 모아 왕궁에서 벌어지는 일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구혼자들은 그의 말을 비웃었으나, 텔레마코스는 더 이상 어린아이로 머물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의 소식을 직접 찾기 위해 배를 마련해 섬을 떠났다.
 
텔레마코스는 필로스에서 네스토르를 만나 트로이에서 돌아온 그리스 영웅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다시 스파르타로 가 메넬라오스와 헬레네를 만났다. 메넬라오스는 이집트의 바다 신 프로테우스에게서 오디세우스가 칼립소의 섬에 붙잡혀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아버지가 살아 있을 가능성을 처음으로 분명하게 확인한 텔레마코스는 이타카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그러나 구혼자들은 이미 그의 귀로를 노리고 있었다.
 
아테나의 도움으로 매복을 피한 텔레마코스는 곧장 왕궁으로 가지 않고 충실한 에우마이오스의 오두막을 찾았다. 그곳에는 그가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늙고 초라한 나그네가 머물고 있었다. 바로 그 무렵 파이아케스인들의 배를 타고 고향에 도착한 오디세우스가 아테나의 힘으로 모습을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를 찾아 바다를 건넌 아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미 아버지와 같은 지붕 아래에 들어서고 있었다.
 
에우마이오스의 오두막에서 나그네와 마주한 텔레마코스
 
 
3.2 거지의 모습으로 돌아온 왕
 
파이아케스인들은 잠든 오디세우스를 이타카 해안에 내려놓고 그가 받은 보물도 곁에 두었다. 스무 해 만에 고향 땅을 밟은 그는 처음에는 안개 때문에 이곳이 이타카인지조차 알아보지 못했다. 아테나는 그의 앞에 나타나 그곳이 이타카임을 알려주고, 곧장 왕궁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했다. 누가 충성하고 누가 배신했는지 살펴보기 위해 오디세우스는 늙은 거지의 모습으로 변장해 에우마이오스의 오두막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텔레마코스가 돌아오자 아테나는 잠시 오디세우스의 본래 모습을 되찾게 했다. 처음에 텔레마코스는 눈앞의 남자가 신이라고 생각했지만, 오디세우스는 자신이 그의 아버지라고 밝혔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헤어진 아들과 스무 해 만에 만난 아버지는 서로를 끌어안고 울었다. 그러나 기쁨을 오래 나눌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은 곧 왕궁의 구혼자들을 상대할 방법을 의논하고, 텔레마코스가 먼저 돌아가 아무 일도 없는 듯 행동하기로 했다.
 
뒤이어 거지 차림의 오디세우스도 왕궁으로 들어갔다. 구혼자들은 초라한 나그네를 조롱하고 모욕했지만 그는 분노를 감추며 사람들을 하나씩 살폈다. 늙은 개 아르고스는 주인을 알아본 뒤 숨을 거두었고, 유모 에우리클레이아는 그의 발을 씻기다 오래된 멧돼지 상처를 보고 정체를 알아차렸다. 오디세우스는 비밀을 지키게 했다. 왕은 이미 자신의 궁전에 돌아와 있었지만, 구혼자들은 자신들이 조롱하던 나그네가 바로 그 집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에우마이오스의 오두막에서 재회하는 아버지와 아들
 
 
3.3 다시 세워진 왕국
 
페넬로페는 마침내 오디세우스의 활을 내놓고 마지막 시험을 제안했다. 활에 시위를 걸어 늘어선 도끼의 구멍을 화살로 꿰뚫는 사람을 남편으로 택하겠다는 것이었다. 구혼자들은 차례로 활을 들었지만 누구도 제대로 당기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거지에게 활이 건네지자 그는 익숙한 손으로 시위를 걸고 화살을 날려 도끼들을 꿰뚫었다. 곧이어 오디세우스는 안티노오스를 향해 화살을 쏘며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다.
 
텔레마코스와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 소치기 필로이티오스가 그의 곁에 섰고, 왕궁의 문이 닫힌 가운데 구혼자들은 차례로 쓰러졌다. 싸움이 끝난 뒤 오디세우스는 페넬로페와 마주했지만 그녀는 눈앞의 남자를 곧바로 남편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페넬로페가 두 사람의 침상을 밖으로 옮기라고 하자, 오디세우스는 살아 있는 올리브나무를 기둥으로 삼아 만든 침상은 움직일 수 없다고 말했다. 침상에 얽힌 비밀이 확인된 뒤에야 부부는 서로를 알아보았다.
 
오디세우스는 이어 시골 농장에서 늙은 아버지 라에르테스를 찾아갔다. 처음에는 자신의 정체를 감추었지만, 아들을 그리워하는 아버지의 슬픔을 보고 마침내 자신이 살아 돌아왔음을 밝혔다. 한편 죽은 구혼자들의 가족들이 복수를 위해 무기를 들었고, 라에르테스는 싸움에서 안티노오스의 아버지 에우페이테스를 쓰러뜨렸다. 다시 피의 복수가 이어지려는 순간 아테나가 제우스의 뜻에 따라 양쪽의 싸움을 멈추게 했다. 그렇게 스무 해에 걸친 왕의 부재가 끝나고 이타카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오디세우스의 활을 당기는 거지 모습의 오디세우스
【작성】 가담항설 - 떠도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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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