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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우스 – 이타카의 왕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는 힘보다 지략으로 이름을 남긴 그리스의 영웅이다. 페넬로페와 혼인해 왕이 된 그는 트로이 전쟁에 참가하여 수많은 계략과 협상으로 그리스군을 이끌고, 마침내 트로이 목마로 전쟁의 끝을 앞당긴다. 그러나 귀향길에는 포세이돈의 분노가 기다리고 있었다. 십 년 동안 바다를 떠돈 그는 마침내 이타카로 돌아와 왕국과 가족을 되찾지만, 후대의 전승은 그의 삶이 또 다른 예기치 않은 운명으로 이어졌다고 전한다.
1.1 라에르테스의 아들
그리스 서쪽 바다에 자리한 이타카는 크고 부유한 왕국은 아니었다. 산이 많고 땅은 거칠었지만 바다를 오가는 배들이 드나드는 섬이었으며, 라에르테스가 이곳의 왕으로 다스리고 있었다. 그의 아들로 태어난 오디세우스는 어린 시절부터 이타카의 바다와 바위산을 보며 자랐다. 훗날 그는 이 작은 섬을 무엇보다 사랑했고, 수많은 부와 영원한 삶의 유혹 앞에서도 결국 돌아가기를 바라는 고향으로 기억했다.
오디세우스의 어머니는 안티클레이아였다. 그녀는 헤르메스의 아들 아우톨리코스의 딸로 전해지며, 아우톨리코스는 뛰어난 술수와 도둑질로 이름난 인물이었다. 오디세우스가 태어났을 때 외조부 아우톨리코스가 아이의 이름을 지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어린 오디세우스는 외가를 찾아 파르나소스산으로 갔다가 사냥 중 멧돼지에게 허벅지를 다쳐 깊은 상처를 입었고, 그때 생긴 흉터는 훗날 그의 정체를 알아보는 중요한 표지가 되었다.
라에르테스가 늙어 왕궁에서 물러난 뒤 오디세우스는 이타카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그는 거대한 군대를 가진 왕도, 넓은 영토를 다스리는 군주도 아니었다. 그러나 말을 고르고 상대의 마음을 읽으며 위험한 상황에서도 빠르게 방법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었다. 힘을 앞세우기보다 생각으로 길을 찾는 젊은 왕자의 이름은 점차 이타카 밖에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파르나소스산에서 멧돼지에게 상처 입는 어린 오디세우스
1.2 지혜로운 젊은 왕자
젊은 오디세우스는 힘과 혈통을 자랑하는 다른 영웅들과 조금 달랐다. 그는 위험한 상황에서 먼저 상대의 뜻을 살피고, 싸움보다 말과 판단으로 길을 찾는 데 능했다. 훗날 트로이 전쟁과 긴 귀향길에서 수없이 드러나는 그의 지략은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었다. 젊은 시절부터 그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서두르기보다 상황을 읽고,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과 약속을 만들어 가는 인물로 전해진다.
젊은 시절 오디세우스는 이타카에서 빼앗긴 양 떼와 목자들을 찾기 위해 메세네까지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잃어버린 암말을 찾고 있던 이피토스를 만나 서로 우정을 맺었다. 두 사람은 헤어지며 선물을 교환했는데, 오디세우스는 칼과 창을 주고 이피토스에게서는 그의 아버지 에우리토스에게서 물려받은 활을 받았다. 오디세우스는 이 활을 특별히 아껴 트로이 전쟁에도 가져가지 않고 이타카에 남겨 두었다.
그 활은 훗날 그의 삶에서 뜻밖의 역할을 하게 된다. 스무 해가 지나 거지의 모습으로 이타카에 돌아온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왕궁을 되찾을 때, 누구도 제대로 당기지 못한 바로 그 활을 다시 손에 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젊은 오디세우스 앞에는 전쟁보다 먼저 혼인의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스파르타의 왕 틴다레오스가 딸 헬레네의 혼처를 정하려 하자, 오디세우스도 수많은 구혼자들과 함께 그곳으로 향했다.
이피토스에게 활을 건네받는 젊은 오디세우스
1.3 헬레네의 구혼자들 가운데서
스파르타의 왕궁에는 헬레네와 혼인하려는 구혼자들이 그리스 각지에서 모여들었다. 미케네의 왕가를 비롯해 이름난 왕과 왕자들이 선물과 명성을 앞세워 경쟁했고, 틴다레오스는 누구를 사위로 선택해야 할지 고민했다. 한 사람을 선택하면 탈락한 구혼자들이 서로 다투거나 선택된 신랑에게 원한을 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헬레네의 혼인이 자칫 여러 왕국을 싸움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틴다레오스의 걱정을 알아차리고 한 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모든 구혼자들에게 헬레네와 혼인하게 된 남편을 인정하고, 누군가 그 혼인을 깨뜨리거나 부당하게 빼앗으려 한다면 함께 나서서 남편을 돕겠다고 맹세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틴다레오스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구혼자들은 희생 제물을 앞에 두고 훗날 ‘틴다레오스의 맹세’라 불리게 되는 약속을 맺었다.
헬레네의 남편으로는 메넬라오스가 선택되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에게도 얻은 것이 있었다. 틴다레오스는 그의 도움에 보답하여 자신의 조카 페넬로페와 오디세우스의 혼인이 이루어지도록 도왔다고 전해진다. 오디세우스가 구혼자들의 싸움을 막기 위해 생각해 낸 맹세는 훗날 파리스가 헬레네와 함께 트로이로 떠났을 때 다시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그 약속은 결국 오디세우스 자신까지 이타카에서 먼 전쟁터로 불러내게 된다.
틴다레오스에게 구혼자들의 맹세를 제안하는 오디세우스
1.4 페넬로페를 얻다
페넬로페는 이카리오스의 딸이자 스파르타 왕가와 가까운 혈통을 지닌 여인이었다. 전승에는 오디세우스가 구혼 경쟁이나 달리기에서 승리하여 그녀를 아내로 얻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헬레네를 둘러싼 수많은 구혼자들이 스파르타에 모였던 때, 오디세우스는 틴다레오스에게 다툼을 막을 방법을 알려 주었고, 그 도움의 대가로 페넬로페와 혼인할 수 있었다고도 한다.
혼인이 이루어진 뒤 이카리오스는 딸과 사위를 곁에 붙잡아 두고 싶어 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려 했다. 이카리오스가 계속 뒤따르며 딸에게 남아 달라고 청하자 오디세우스는 페넬로페에게 아버지 곁에 남을지 자신과 함께 떠날지 선택하라고 했다. 페넬로페는 말로 대답하지 않고 얼굴에 베일을 내렸다. 이카리오스는 딸의 뜻을 알아차렸고, 두 사람은 마침내 이타카로 향했다.
이타카에서 페넬로페는 왕비가 되었고 얼마 뒤 아들 텔레마코스가 태어났다. 오디세우스에게는 이제 지켜야 할 왕국과 아내, 어린 아들이 있었다. 그러나 평온한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헬레네가 트로이 왕자 파리스와 함께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메넬라오스와 아가멤논은 오래전 구혼자들이 맺은 맹세를 불러냈다. 오디세우스 자신이 제안했던 그 약속이 이제 그를 이타카에서 떠나게 하려 하고 있었다.
베일을 내리고 오디세우스를 따라가는 페넬로페
2.1 전쟁을 피하려 한 왕
메넬라오스의 사절들이 이타카로 찾아왔을 때 오디세우스는 쉽게 전쟁에 나서려 하지 않았다. 오래전 헬레네의 구혼자들과 함께 맹세했지만, 이제 그는 페넬로페와 가정을 이루고 어린 텔레마코스까지 얻은 뒤였다. 트로이는 바다 건너 먼 곳에 있었고 전쟁이 시작되면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제안했던 맹세가 이제 자신을 가족과 고향에서 떼어 놓으려 하자 오디세우스는 그것을 피할 방법을 생각했다.
그는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전승에 따르면 말과 소를 한 쟁기에 함께 매어 밭을 갈았으며, 또 다른 전승에서는 밭고랑에 씨앗 대신 소금을 뿌렸다고도 한다. 사절들이 그 모습을 보고 정말 미쳤다고 믿는다면 원정에서 빠질 수 있었다. 그러나 함께 온 팔라메데스는 오디세우스의 행동을 의심했다. 뛰어난 지혜로 이름난 그는 이타카의 왕이 전쟁을 피하기 위해 거짓 광기를 꾸미고 있다고 생각했다.
팔라메데스는 어린 텔레마코스를 쟁기가 지나가는 길 앞에 놓았다고 한다. 오디세우스는 아들을 향해 그대로 쟁기를 몰 수 없었고 급히 방향을 바꾸었다. 그 순간 그의 광기가 거짓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더 이상 맹세를 피할 방법은 없었다. 오디세우스는 결국 이타카의 병사와 배를 모아 원정에 참가하기로 했다. 페넬로페와 어린 아들을 남겨 둔 채, 그는 자신도 끝을 알 수 없는 전쟁을 향해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쟁기 앞의 텔레마코스를 피해 방향을 돌리는 오디세우스
2.2 이타카를 떠나다
전쟁에 나서기로 한 오디세우스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이타카를 떠나는 것이었다. 페넬로페와 혼인해 가정을 이룬 지 오래되지 않았고, 텔레마코스는 아직 아버지를 기억하기에도 어린 나이였다. 전쟁이 얼마나 계속될지, 자신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오디세우스는 왕으로서 오래전 맹세를 지켜야 했지만, 남편과 아버지로서는 가족 곁에 남고 싶은 마음을 쉽게 버릴 수 없었다.
그는 이타카와 그 주변 지역에서 병사들을 모으고 함대를 준비했다. 《일리아스》의 함선 목록에서는 오디세우스가 이타카와 자킨토스를 비롯한 여러 지역의 케팔레니아인들을 이끌고 열두 척의 배를 거느렸다고 전한다. 아가멤논이나 다른 강력한 왕들이 이끄는 함대와 비교하면 크지 않은 군세였다. 그러나 오디세우스가 앞으로 전쟁에서 맡게 될 역할은 배와 병사의 수로 결정되지 않았다. 그리스군은 협상과 정찰, 계략이 필요한 순간마다 그를 찾게 된다.
마침내 출정의 날이 찾아왔다. 오디세우스는 페넬로페와 어린 텔레마코스를 이타카에 남겨 두고 자신의 배에 올랐다. 왕이 떠난 뒤 페넬로페는 오랜 세월 왕궁을 지켜야 했고, 텔레마코스는 아버지의 모습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 채 자라게 된다. 오디세우스 역시 자신이 고향을 떠나 스무 해가 지나서야 돌아오게 되리라고는 알지 못했다. 그의 열두 척의 배는 다른 그리스 영웅들과 합류하기 위해 아울리스로 향했다.
페넬로페와 텔레마코스를 남기고 배에 오르는 오디세우스
2.3 아킬레우스를 찾아 스키로스로
그리스군이 트로이를 공격하기 위해 준비하던 무렵, 아킬레우스가 없으면 트로이를 함락할 수 없다는 예언이 전해졌다. 그러나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테티스는 아들이 전쟁에 참가하면 젊어서 죽게 될 운명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아들을 스키로스섬의 리코메데스 왕궁에 숨기고 여자 옷을 입혀 왕의 딸들 사이에서 지내게 했다. 그리스군은 아킬레우스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냈지만 그를 찾아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때 오디세우스가 나섰다. 그는 상인으로 가장하여 왕궁으로 들어가 여러 장신구와 옷가지 사이에 무기들을 함께 펼쳐 놓았다고 전한다. 왕궁의 여인들이 보석과 천을 살펴보는 동안 갑자기 전쟁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렸다. 대부분은 놀라 물러섰지만 한 사람만은 본능적으로 무기를 집어 들었다. 오디세우스는 그가 바로 숨어 있던 아킬레우스라는 사실을 알아보았다.
아킬레우스는 결국 그리스 원정에 참가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오디세우스가 전쟁터에 도착하기 전부터 그리스군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인물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상대를 힘으로 몰아붙이지 않고 상황을 만들어 스스로 정체를 드러내게 했다. 이후에도 그리스군이 막다른 길에 부딪힐 때마다 오디세우스는 사람을 찾아오거나, 설득하거나, 적진에 숨어드는 임무를 맡게 된다.
스키로스로
2.4 트로이로 향하다
그리스의 여러 왕과 영웅들은 함대를 이끌고 아울리스에 모였다. 아가멤논이 전체 원정을 이끌었고, 메넬라오스와 아킬레우스, 대 아이아스, 디오메데스, 네스토르를 비롯한 영웅들이 함께했다. 그러나 트로이로 향하는 길은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한 차례 출항한 그리스군은 항로를 잘못 잡아 미시아를 트로이로 여기고 상륙했고, 그곳을 다스리던 텔레포스와 싸움을 벌였다.
전투에서 텔레포스는 아킬레우스의 창에 상처를 입었고, 미시아를 떠난 그리스 함대도 폭풍을 만나 뿔뿔이 흩어졌다. 상처가 낫지 않던 텔레포스는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것이 치료도 해 줄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그리스인들을 찾아왔다. 오디세우스는 그것이 아킬레우스 자신이 아니라 그의 창을 뜻한다고 풀이했다. 창에서 긁어낸 녹을 상처에 사용하자 텔레포스는 회복되었고, 그 대가로 그리스군에게 트로이로 향하는 길을 알려 주었다.
영웅들이 다시 아울리스에 모였을 때에는 바람이 출항을 막았다. 이피게네이아를 둘러싼 비극이 벌어진 뒤에야 함대는 다시 바다로 나갈 수 있었다. 마침내 트로이에 도착한 뒤 오디세우스는 메넬라오스와 함께 성 안으로 들어가 헬레네의 반환을 요구하는 사절로도 나섰지만 협상은 전쟁을 막지 못했다. 결국 그리스군은 트로이 해안에 진을 쳤고, 오디세우스도 이타카의 병사들과 함께 십 년에 걸친 전쟁 속으로 들어갔다.
메넬라오스와 함께 트로이에 사절로 들어가는 오디세우스
3.1 전장에서 싸운 오디세우스
오디세우스는 지략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트로이 전쟁에서는 직접 무기를 들고 싸우는 전사이기도 했다. 《일리아스》에서 그는 다른 그리스 영웅들과 함께 전열에 서며, 창을 들고 트로이군과 맞선다. 전투가 불리해졌을 때에도 쉽게 자리를 버리지 않았고, 부상을 입고서도 싸움을 이어 갔다. 그의 지혜는 용기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전사로서의 능력 위에 더해진 또 하나의 힘이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가 특히 빛난 곳은 여러 영웅들의 이해가 충돌하는 순간이었다.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가 다투고 그리스군의 전열이 흔들리자 그는 병사들을 다시 모으고 지휘관들을 설득했다. 전쟁터에서는 적과 싸우는 것만큼 같은 편을 하나로 묶는 일이 중요했다. 오디세우스는 말을 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를 알았고, 왕 앞에서는 왕에게 맞는 말로, 병사들 앞에서는 병사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사람들을 움직였다.
그는 디오메데스와 함께 밤의 정찰에도 나섰다. 두 사람은 트로이 측 정찰병 돌론을 붙잡아 적진의 상황을 알아내고, 트라키아 왕 레소스의 진영을 습격했다고 《일리아스》는 전한다. 오디세우스에게 전쟁은 정면에서 창을 겨루는 일만이 아니었다. 적의 정보를 알아내고 가장 약한 지점을 찾아 움직이는 것도 전쟁이었다. 이런 경험은 훗날 트로이의 성벽을 무너뜨릴 마지막 계략으로 이어진다.
디오메데스와 함께 밤의 적진을 정찰하는 오디세우스
3.2 아킬레우스를 찾아간 사절
아가멤논에게 모욕당한 아킬레우스가 전투를 거부하자 그리스군은 큰 위기에 빠졌다. 트로이군은 헥토르를 앞세워 그리스군을 해안까지 몰아붙였고, 함선마저 위협받기 시작했다. 결국 아가멤논은 브리세이스를 돌려주고 많은 선물을 주겠다고 약속하며 화해를 청하기로 했다. 그를 설득할 사절로는 아킬레우스의 스승 포이닉스와 대 아이아스, 그리고 오디세우스가 선택되었다.
세 사람은 미르미돈의 진영을 찾아가 아킬레우스 앞에 앉았다. 오디세우스는 아가멤논이 내놓은 보상과 선물을 하나씩 전하고, 그리스군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놓였는지를 설명했다. 그는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지금 전투에 돌아온다면 헥토르를 물리치고 가장 큰 명예를 얻을 수 있다고 설득했다. 그러나 아킬레우스의 마음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아가멤논을 용서할 생각이 없다며 전투 복귀를 거부했다.
오디세우스의 설득은 그날 아킬레우스를 움직이지 못했다. 하지만 이 장면은 그리스군이 어려움에 빠질 때 누구에게 가장 중요한 말을 맡겼는지를 보여준다. 오디세우스는 언제나 성공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그의 지략도 모든 상황을 바꾸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협상과 정찰, 판단이 필요한 순간마다 계속 불려 나왔다.
아킬레우스에게 아가멤논의 화해를 전하는 오디세우스
3.3 아킬레우스 이후의 전쟁
아킬레우스가 죽은 뒤에도 트로이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의 무구를 누구에게 줄 것인가를 두고 대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가 맞섰고, 판정 끝에 무구는 오디세우스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트로이의 성벽은 여전히 굳건했다. 그리스군은 트로이를 함락할 방법을 찾기 위해 예언에 의지했고,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의 왕자이자 예언자인 헬레노스를 붙잡아 성을 무너뜨리는 데 필요한 조건들을 알아내는 일에 나섰다.
그 뒤 그리스군은 승리에 필요한 인물들을 다시 전쟁터로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헤라클레스의 활과 화살을 가진 필록테테스는 원정 초기에 렘노스섬에 버려져 있었지만 다시 트로이로 돌아왔고, 그의 화살은 마침내 파리스를 쓰러뜨렸다. 오디세우스는 스키로스에 있던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도 데려왔다. 그리고 자신에게 돌아왔던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그의 아들에게 넘겨주었다. 한때 숨어 있던 아킬레우스를 찾아냈던 그가 이제는 그 아들까지 같은 전쟁터로 데려온 것이다.
아직 또 하나의 장애물이 남아 있었다. 트로이를 지키는 신성한 수호물 팔라디온이었다. 전승에 따르면 오디세우스는 디오메데스와 함께 몰래 트로이 성 안으로 들어가 팔라디온을 빼내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그리스군은 예언이 가리키는 조건들을 하나씩 갖추어 갔지만, 성벽 자체를 힘으로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결국 오디세우스는 성벽을 넘어가는 대신 트로이인들 스스로 적을 성 안으로 들이게 만드는 마지막 계략을 생각하게 되었다.
네오프톨레모스에게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건네는 오디세우스
3.4 트로이 목마
십 년 동안 싸웠지만 트로이의 높은 성벽은 끝내 정면 공격으로 무너지지 않았다. 결국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인들 스스로 그리스 전사들을 성 안으로 들이게 할 계략을 내놓았다. 거대한 나무 목마 속에 정예 병사들을 숨기고, 나머지 그리스군은 전쟁을 포기하고 떠난 것처럼 함대를 감추는 방법이었다. 전승에 따르면 장인 에페이오스가 아테나의 도움을 받아 거대한 목마를 만들었고, 오디세우스는 그 안에 들어갈 영웅들을 이끄는 중심 인물이 되었다.
그리스군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자 트로이인들은 해변에 남겨진 목마를 발견했다. 라오콘과 카산드라는 그것을 성 안으로 들여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지만, 남겨진 그리스인 시논은 목마가 아테나에게 바친 신성한 제물이라고 속였다. 여러 징조까지 이어지자 트로이인들은 마침내 성벽의 문을 열고 목마를 성 안으로 끌어들였다. 오디세우스와 메넬라오스, 네오프톨레모스를 비롯한 그리스 영웅들은 목마 안에서 밤이 오기를 기다렸다.
트로이인들이 승리를 축하하고 잠든 밤, 목마의 문이 열렸다. 오디세우스와 영웅들은 조용히 내려와 성문을 열었고, 바다로 물러난 척했던 그리스 함대가 다시 돌아왔다. 트로이의 마지막 밤이 시작되면서 십 년 동안 그리스군을 막아 온 성은 마침내 함락되었다. 전쟁의 끝을 가져온 것은 거대한 군세나 성벽을 무너뜨린 무기가 아니라 적이 스스로 문을 열게 만든 계략이었다. 오디세우스는 이제 승리보다 이미 십 년 동안 떠나 있던 고향 이타카로 돌아갈 길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트로이 목마 안에서 밤을 기다리는 오디세우스와 영웅들
4.1 끝나지 않은 귀향
트로이가 무너진 뒤 오디세우스는 이타카로 돌아가기 위해 배를 띄웠다. 그는 십 년 동안 전쟁터에 있었고, 이제 어린아이였던 텔레마코스가 얼마나 자랐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귀향의 첫걸음부터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트로이를 떠난 그리스 영웅들은 서로 다른 항로를 선택했고, 신들의 분노와 거친 바다 때문에 여러 함대가 흩어졌다. 오디세우스의 배들도 곧 낯선 해안으로 밀려가기 시작했다.
키코네스인의 땅에서 처음 큰 피해를 입은 뒤 오디세우스의 배들은 로토스를 먹는 사람들의 나라와 키클롭스의 섬으로 이어졌다. 그곳에서 오디세우스는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에게 갇혔다가 그의 눈을 멀게 하고 탈출했다. 하지만 폴리페모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이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오디세우스가 쉽게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고, 그때부터 바다는 오디세우스에게 더욱 위험한 길이 되었다.
오디세우스는 눈앞에 이타카가 보이는 곳까지 갔다가 다시 먼 바다로 떠밀려 가기도 했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의 귀향은 끝나지 않았다. 함께 출발했던 동료들은 하나씩 사라지고 배의 수도 줄어들었다. 오디세우스가 원하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땅이나 명예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왕으로 다스리던 작은 섬과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가족에게 돌아가는 것만을 바랐다.
폴리페모스의 동굴에서 탈출하는 오디세우스와 동료들
4.2 십 년의 방랑
오디세우스의 귀향길에는 수많은 섬과 낯선 존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람의 주인 아이올로스에게 받은 바람 자루를 동료들이 열어 버리면서 이타카를 눈앞에 두고 다시 먼 바다로 떠밀렸고, 라이스트뤼고네스인의 항구에서는 대부분의 배를 잃었다. 키르케의 섬에서는 동료들이 돼지로 변했지만 오디세우스는 헤르메스의 도움으로 그들을 구했다. 그는 그곳에서 다시 길을 떠나기 전 죽은 자들의 나라로 내려가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의 혼에게 귀향길에 대한 경고를 들었다.
다시 바다에 오른 그는 세이렌의 노래를 지나고 스킬라와 카리브디스가 지키는 위험한 해협을 통과했다. 그러나 트리나키아섬에서 동료들이 태양신 헬리오스의 신성한 소를 잡아먹자 마지막 배마저 폭풍 속에서 부서졌다. 모든 동료를 잃은 오디세우스만 홀로 살아남아 오기기아섬에 도착했고, 님프 칼립소와 함께 여러 해를 보냈다. 칼립소가 그에게 머물기를 바라며 붙잡았지만 오디세우스의 마음은 한결같이 이타카를 향하고 있었다.
신들의 뜻으로 마침내 오기기아를 떠난 그는 다시 난파한 끝에 파이아케스인의 나라에 닿았다. 공주 나우시카와 왕 알키노오스의 도움을 받은 오디세우스는 그곳에서 자신이 겪은 긴 방랑을 들려주었다. 파이아케스인들은 그에게 배와 선물을 내주어 고향으로 보내 주었다. 트로이 전쟁에 십 년, 귀향길에 다시 십 년 가까운 세월을 보낸 끝에 이타카를 떠난 지 모두 스무 해가 흘러 있었다. 잠든 오디세우스를 태운 배가 마침내 이타카의 해안에 닿았다.
돛대에 묶여 세이렌의 노래를 듣는 오디세우스
4.3 다시 이타카의 왕으로
오디세우스가 돌아온 이타카는 그가 떠났을 때와 달라져 있었다. 왕이 죽었다고 믿는 많은 구혼자들이 왕궁을 차지하고 페넬로페에게 재혼을 요구하며 재산을 소비하고 있었다. 텔레마코스는 이미 청년으로 성장했지만 아직 이들을 몰아낼 힘은 없었다. 아테나는 오디세우스를 늙은 거지의 모습으로 바꾸어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게 했고, 그는 충성스러운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의 오두막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처음으로 서로의 뜻을 함께할 수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텔레마코스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왕궁을 되찾을 계획을 세웠다. 거지의 모습으로 왕궁에 들어간 그는 자신이 없는 동안 누가 충성을 지켰고 누가 왕가를 배신했는지를 살폈다. 늙은 유모 에우리클레이아는 그의 다리에 남은 멧돼지의 흉터를 보고 주인을 알아보았지만, 오디세우스는 아직 비밀을 지키게 했다.
마침내 페넬로페가 오디세우스의 활을 이용한 시합을 열었다. 구혼자들이 당기지 못했던 활을 거지 모습의 오디세우스가 손에 들었고, 그는 활시위를 당겨 도끼 구멍 사이로 화살을 통과시켰다. 이어 텔레마코스와 충성스러운 종들의 도움을 받아 구혼자들을 쓰러뜨리고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올리브나무를 기둥 삼아 만든 침상의 비밀을 말하자 페넬로페도 마침내 남편을 알아보았다. 스무 해 만에 이타카의 왕이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이피토스의 활을 당겨 도끼 사이로 화살을 쏘는 오디세우스
4.4 왕의 마지막 운명
《오디세이아》의 끝에서 오디세우스는 페넬로페와 다시 만나고, 늙은 아버지 라에르테스를 찾아가 자신의 귀환을 알린다. 죽은 구혼자들의 가족들이 복수를 위해 무기를 들지만 아테나가 싸움을 멈추게 하면서 이타카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온다. 그러나 테이레시아스는 오디세우스에게 귀향 뒤에도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고 예언했다. 그는 노를 어깨에 메고 바다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는 먼 내륙까지 가서 포세이돈에게 제사를 올려야 했다.
후대의 《텔레고네이아》에서는 오디세우스의 삶이 그 뒤에도 이어진다. 그는 테스프로티아로 가서 여왕 칼리디케와 혼인하고 그곳의 전쟁에 참여했으며, 두 사람 사이에서 폴리포이테스가 태어났다고 전한다. 칼리디케가 죽은 뒤 오디세우스는 왕국을 아들에게 맡기고 다시 이타카로 돌아왔다. 한편 키르케가 오디세우스와 헤어진 뒤 낳았다는 아들 텔레고노스도 성장하여 자신이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아버지를 찾아 바다로 나섰다.
텔레고노스는 자신이 도착한 섬이 이타카인 줄 모른 채 식량을 구하다 섬사람들과 싸우게 되었고, 이를 막으러 나온 오디세우스와 맞섰다. 두 사람은 서로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싸움 끝에 후대 전승에서 가오리의 독침이 달렸다고 하는 텔레고노스의 창이 오디세우스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죽어 가는 왕의 정체를 알고서야 텔레고노스는 자신이 찾던 아버지를 자신의 손으로 쓰러뜨렸음을 깨달았다. 트로이와 긴 바다를 살아남은 이타카의 왕은 그렇게 고향에서 뜻밖의 최후를 맞았다.
서로를 모른 채 맞서는 오디세우스와 텔레고노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