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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전쟁 별전가담항설의지식창고 2026.08.19. 13:19 (2026.08.19. 12:35)

메넬라오스 –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는 미케네 왕 아트레우스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지만, 아버지가 살해되자 형 아가멤논과 함께 왕국을 떠나야 했다. 스파르타에서 틴다레오스의 보호를 받은 그는 헬레네와 혼인해 왕이 되었고, 파리스가 헬레네를 데려가자 옛 구혼자들의 맹세를 불러내 트로이 전쟁에 나섰다. 십 년의 전쟁 뒤 헬레네를 되찾았으나 곧바로 고향에 돌아오지는 못했다. 바다와 여러 나라를 떠돈 끝에 그는 다시 스파르타로 돌아와 왕좌와 가정을 되찾는다.
목   차
[숨기기]
메넬라오스 – 스파르타의 왕
 
 
 

개요

 
메넬라오스는 미케네 왕 아트레우스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지만, 아버지가 살해되자 형 아가멤논과 함께 왕국을 떠나야 했다. 스파르타에서 틴다레오스의 보호를 받은 그는 헬레네와 혼인해 왕이 되었고, 파리스가 헬레네를 데려가자 옛 구혼자들의 맹세를 불러내 트로이 전쟁에 나섰다. 십 년의 전쟁 뒤 헬레네를 되찾았으나 곧바로 고향에 돌아오지는 못했다. 바다와 여러 나라를 떠돈 끝에 그는 다시 스파르타로 돌아와 왕좌와 가정을 되찾는다.
 
 
 

제1장 아트레우스의 둘째 아들

1.1 미케네의 두 왕자
 
미케네 왕 아트레우스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맏아들은 아가멤논, 둘째는 메넬라오스였다. 두 왕자는 강대한 미케네 왕궁에서 자랐지만, 그들이 태어난 집안에는 이미 오래된 원한이 쌓여 있었다. 아트레우스는 왕위를 두고 동생 튀에스테스와 다투었고, 형제의 싸움은 추방과 배신, 복수로 이어졌다. 어린 메넬라오스가 자란 왕궁은 겉으로는 화려했지만 언제 다시 싸움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곳이었다.
 
아트레우스는 한때 튀에스테스를 미케네에서 몰아냈지만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튀에스테스에게는 아이기스토스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출생을 모른 채 자라다가 훗날 튀에스테스가 친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트레우스와 튀에스테스 사이에서 시작된 오래된 복수는 그렇게 다음 세대로 넘어갔고, 아이기스토스의 칼끝은 마침내 미케네의 왕을 향하게 된다.
 
형 아가멤논은 왕가의 장자로서 미케네의 계승자로 여겨졌고, 메넬라오스는 그 곁을 지키는 둘째 왕자였다. 두 형제에게는 아직 아버지의 왕국에서 살아갈 미래가 남아 있는 듯했다. 그러나 아이기스토스가 자신의 출생을 알게 되면서 왕궁의 평온도 오래가지 못했다. 아버지 세대에서 시작된 싸움은 이제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의 삶까지 뒤흔들려 하고 있었다.
 
미케네 왕궁에서 함께 자라는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
 
 
1.2 아버지를 잃다
 
아트레우스와 튀에스테스의 싸움은 마침내 아버지의 죽음으로 돌아왔다. 전승에 따르면 아트레우스는 붙잡힌 튀에스테스를 죽이려 했고, 그 일을 아이기스토스에게 맡겼다. 그러나 튀에스테스와 마주한 아이기스토스는 자신에게 맡겨진 칼을 그에게 휘두르지 않았다. 오히려 칼끝을 아트레우스에게 돌렸고, 미케네의 왕은 자신이 믿었던 젊은이의 손에 쓰러졌다.
 
왕궁의 주인이 바뀌자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의 처지도 한순간에 달라졌다. 어제까지 왕의 아들이었던 두 사람은 이제 새 왕에게 가장 위험한 존재가 되었다. 그대로 미케네에 남아 있다면 아버지와 같은 운명을 맞을 수도 있었다. 두 형제는 자신들을 따르던 사람들과 함께 왕궁을 빠져나왔고, 아트레우스의 집에서 누리던 권세와 재산을 뒤로한 채 목숨을 지키기 위한 길에 올랐다.
 
메넬라오스에게 이때의 패배는 단순히 왕자의 지위와 권세를 잃은 일이 아니었다. 그는 고향과 아버지, 왕자로서 보장되어 있던 미래를 한꺼번에 잃었다. 형 아가멤논만이 가장 가까운 가족이자 의지할 사람이었다. 두 형제는 언젠가 아버지의 왕국을 되찾겠다는 마음을 품었지만, 당장은 돌아갈 힘이 없었다. 미케네의 성문을 등진 메넬라오스 앞에는 어디에서 끝날지 알 수 없는 망명길이 놓여 있었다.
 
아트레우스를 향해 칼을 돌리는 아이기스토스
 
 
1.3 형과 함께 떠난 망명길
 
미케네를 떠난 두 형제는 곧바로 스파르타에 닿은 것이 아니었다. 전승에 따르면 그들은 먼저 시키온의 왕 폴리페이데스에게 몸을 의탁했고, 다시 아이톨리아의 왕 오이네우스에게 보내졌다. 한때 그리스에서 가장 강한 왕가의 아들이었던 두 사람은 이제 다른 왕들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망명자였다. 어디에서도 오래 머물 수 없었고, 미케네에서 온 소식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들의 처지가 바뀌기만을 기다렸다.
 
형 아가멤논은 잃어버린 왕국을 되찾는 일에 마음을 두었고, 메넬라오스는 형과 함께 움직였다. 두 사람은 혼자 힘으로 튀에스테스와 아이기스토스에게 맞설 수 없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아트레우스 가문의 편에 설 강력한 후원자였다. 여러 나라를 거친 끝에 두 형제가 도착한 곳은 펠로폰네소스 남쪽의 스파르타였다. 그곳에서는 틴다레오스가 왕위를 되찾아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다.
 
틴다레오스는 쫓겨난 두 왕자를 받아들였다. 메넬라오스에게 스파르타는 잠시 머무는 피난처로 시작되었지만, 그의 삶을 완전히 바꾸는 땅이 된다. 미케네에서는 둘째 아들이었던 그가 이곳에서는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왕궁에는 틴다레오스의 딸 클리타임네스트라와 헬레네가 있었고, 두 자매는 훗날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의 운명을 각각 다른 방향으로 이끌게 된다.
 
고향을 떠나 망명길을 걷는 두 형제
 
 
1.4 스파르타에 몸을 의탁하다
 
스파르타에서 지내는 동안 두 형제에게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틴다레오스는 쫓겨난 아트레우스의 아들들을 보호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이 다시 힘을 모을 수 있도록 도왔다. 마침내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는 미케네로 돌아가 튀에스테스를 몰아냈다. 잃어버렸던 아버지의 왕국을 되찾은 뒤 장자인 아가멤논이 미케네의 왕좌에 올랐다. 오랜 망명 생활을 끝낸 두 형제는 다시 왕가의 자리를 되찾았다.
 
아가멤논이 미케네의 왕이 되자 메넬라오스의 운명은 다시 자신과 형을 받아주었던 스파르타로 이어졌다. 틴다레오스는 그에게 단순히 피난처를 제공한 왕이 아니라 오랜 망명 생활을 끝낼 수 있도록 도와준 후원자였다. 그리고 스파르타 왕궁에는 그의 삶을 바꾸게 될 헬레네가 있었다. 제우스와 레다의 딸로 전해지는 헬레네의 아름다움은 이미 그리스 여러 나라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한때 고향에서 쫓겨나 다른 왕의 보호를 받아야 했던 메넬라오스는 이제 다시 아트레우스 왕가의 왕자로 돌아왔다. 그러나 형 아가멤논에게 미케네의 왕좌가 돌아간 뒤에도 그의 삶은 자신을 받아주었던 스파르타와 이어져 있었다. 그곳에는 틴다레오스의 딸 헬레네가 있었고, 그녀와의 혼인은 머지않아 메넬라오스에게 미케네와는 다른 새로운 왕국을 열어주게 된다.
 
두 왕자를 받아들이는 스파르타 왕 틴다레오스
 
 
 

제2장 헬레네와 스파르타의 왕좌

2.1 헬레네의 구혼자들
 
헬레네가 혼인할 나이가 되자 스파르타에는 그리스 여러 나라에서 이름난 왕자와 영웅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저마다 귀한 예물을 보내거나 자신의 가문과 힘을 내세우며 헬레네의 남편이 되기를 바랐다. 메넬라오스 역시 유력한 구혼자 가운데 하나였다. 한때 스파르타에 몸을 의탁했던 망명 왕자였지만, 이제 그는 미케네 왕 아가멤논의 동생이자 되찾은 아트레우스 왕가의 왕자로서 헬레네와의 혼인을 기다렸다.
 
구혼자들이 많아질수록 틴다레오스의 걱정도 커졌다. 한 사람을 사위로 선택하면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이 원한을 품을 수 있었고, 헬레네를 둘러싼 경쟁이 왕들 사이의 싸움으로 번질 위험도 있었다. 왕궁에 모여든 이들은 하나같이 군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틴다레오스에게 딸의 혼인은 단순히 한 사람의 남편을 정하는 일이 아니라 스파르타와 그리스 여러 왕국의 관계를 뒤흔들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메넬라오스도 다른 구혼자들과 함께 결정을 기다렸다. 그가 스파르타 왕가와 가까운 사이였다고 해도 헬레네의 남편이 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때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가 틴다레오스에게 한 가지 계책을 내놓았다. 남편을 선택하기 전에 모든 구혼자가 그 선택을 지키겠다고 맹세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훗날 메넬라오스가 헬레네를 잃었을 때 그 맹세는 그리스의 수많은 왕과 영웅을 움직이는 힘이 된다.
 
헬레네를 위해 스파르타 왕궁에 모인 구혼자들
 
 
2.2 틴다레오스의 맹세
 
오디세우스는 틴다레오스에게 헬레네의 남편을 고르기 전에 모든 구혼자에게 먼저 맹세를 시키라고 조언했다. 누구든 헬레네의 남편으로 선택된 사람을 인정하고, 훗날 그 혼인이 침해받으면 모두 힘을 합쳐 그 남편을 돕겠다고 약속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틴다레오스는 이 계책을 받아들였다. 구혼자들은 희생 제물 앞에서 맹세했고, 조금 전까지 헬레네를 두고 경쟁하던 수많은 왕과 영웅들이 하나의 약속으로 묶였다.
 
이제 틴다레오스는 선택받지 못한 구혼자들의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위를 정할 수 있었다. 마침내 헬레네의 남편으로 선택된 사람은 메넬라오스였다. 전승에 따라 틴다레오스가 그를 선택했다고도 하고 헬레네가 직접 남편을 골랐다고도 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미케네를 떠나 스파르타에 몸을 의탁했던 둘째 왕자가 이제 틴다레오스의 사위이자 헬레네의 남편이 된 것이다.
 
메넬라오스와 헬레네의 혼인이 이루어지자 다른 구혼자들도 자신들이 한 맹세에 따라 그 결정을 받아들였다. 당시에는 누구도 그 약속이 실제 전쟁으로 이어지리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파리스가 헬레네를 데리고 트로이로 떠났을 때 메넬라오스는 바로 그 맹세를 다시 불러낸다. 헬레네의 혼인을 앞두고 맺어진 약속은 훗날 그리스 여러 왕국의 군대를 트로이로 움직이는 힘이 된다.
 
헬레네의 선택을 지키겠다고 맹세하는 구혼자들
 
 
2.3 스파르타의 왕이 되다
 
혼인 뒤 메넬라오스는 스파르타 왕가의 중심으로 들어갔다. 틴다레오스가 왕좌에서 물러나면서 그는 스파르타의 통치권을 이어받았고, 헬레네는 왕비가 되었다. 미케네에서 쫓겨나 떠돌던 아트레우스의 둘째 아들이 마침내 자신의 왕국을 갖게 된 것이다. 형 아가멤논이 미케네를 다스리는 동안 메넬라오스는 남쪽의 스파르타를 다스리며 두 형제는 각각 강력한 왕국의 왕이 되었다.
 
메넬라오스와 헬레네 사이에서는 딸 헤르미오네가 태어났다. 왕궁에는 한동안 평온한 시간이 이어졌다. 메넬라오스는 더 이상 쫓겨난 왕자가 아니었고, 헬레네 역시 수많은 구혼자 사이에서 선택을 기다리던 처녀가 아니었다. 미케네에서 시작된 불안한 젊은 시절과 달리 스파르타에서의 삶은 안정되어 보였다. 메넬라오스에게 이 시기는 그가 가장 오래 바라던 가족과 왕국을 모두 얻은 때였다.
 
그러나 스파르타 왕궁으로 먼 나라의 손님이 찾아오면서 그 평온은 끝나기 시작했다. 바다 건너 트로이에서 프리아모스 왕의 아들 파리스가 찾아온 것이다. 메넬라오스는 왕이자 집주인으로서 그를 후하게 맞아들였다. 아직 그는 이 젊은 트로이 왕자가 자신의 아내와 왕국, 그리고 앞으로 십 년 동안 이어질 삶을 완전히 바꾸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스파르타 왕좌에 앉은 메넬라오스와 헬레네
 
 
2.4 트로이에서 온 손님
 
파리스는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의 아들이었다. 메넬라오스는 먼 나라에서 찾아온 왕자를 손님으로 받아들이고 왕궁에서 머물게 했다. 고대의 관습에서 손님을 보호하고 대접하는 일은 신성한 의무였으며, 메넬라오스는 파리스에게 그 의무를 다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크레타로 떠나야 했다. 외조부 카트레우스의 장례와 관련된 일로 스파르타를 비운 사이 파리스와 헬레네는 함께 왕궁을 떠났다.
 
전승은 헬레네가 파리스에게 유혹되어 스스로 따라갔다고도 하고, 아프로디테의 힘에 이끌렸다고도 하며, 파리스에게 납치되었다고도 전한다. 하지만 메넬라오스에게 중요한 것은 결과였다. 자신이 손님으로 맞이한 사람이 왕비를 데리고 트로이로 떠났고 왕궁의 재물도 함께 가져갔다. 그에게 이것은 아내를 잃은 일이면서 동시에 손님과 주인 사이의 신뢰가 무너진 배신이었다.
 
스파르타로 돌아온 메넬라오스는 텅 빈 왕궁과 마주했다. 그는 헬레네를 그대로 포기하지 않았다. 가장 먼저 찾아간 사람은 형 아가멤논이었다. 그리고 오래전 틴다레오스 앞에서 헬레네의 구혼자들이 했던 맹세가 다시 떠올랐다. 메넬라오스 개인에게 닥친 일이었지만, 이제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 그리스 여러 왕국의 영웅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메넬라오스가 없는 사이 떠나는 파리스와 헬레네
 
 
 

제3장 헬레네를 되찾기 위한 전쟁

3.1 옛 맹세를 불러내다
 
메넬라오스와 아가멤논은 헬레네의 옛 구혼자들에게 사람을 보내 맹세를 상기시켰다. 한때 헬레네를 차지하기 위해 스파르타에 모였던 영웅들은 이제 그녀의 남편을 돕기 위해 군대를 내야 했다. 어떤 왕들은 곧바로 응했지만, 오디세우스처럼 전쟁을 피하려 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오래전 맺어진 약속은 쉽게 무시할 수 없었다. 그리스 여러 지역에서 배와 병사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메넬라오스에게 전쟁은 형 아가멤논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아가멤논은 여러 왕을 거느리는 총사령관이 되었지만, 메넬라오스가 원하는 것은 자신의 아내를 되찾고 파리스에게 책임을 묻는 일이었다. 그에게 트로이는 멀리 있는 적국이기 전에 헬레네가 머물고 있는 곳이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성을 무너뜨리는 길만 택한 것은 아니었다. 싸움이 시작되기 전 그는 한 번 더 말로 해결할 기회를 찾았다.
 
각지에서 모인 함대와 병사들은 마침내 하나의 원정군을 이루었다. 형 아가멤논이 전체 군대를 이끄는 총사령관이 되었고, 메넬라오스도 스파르타의 병사들을 이끌고 전쟁의 중심에 섰다.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트로이를 무너뜨리는 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이 싸우기 전에 헬레네를 돌려받을 수 있다면 전쟁을 피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메넬라오스는 오디세우스와 함께 마지막 협상을 위해 트로이로 향했다.
 
메넬라오스의 부름에 모여드는 그리스의 왕과 영웅들
 
 
3.2 트로이 성 안의 사절
 
트로이 왕궁에 들어간 메넬라오스와 오디세우스는 왕과 귀족들 앞에서 그리스의 요구를 전했다. 메넬라오스는 헬레네와 재물을 돌려보내라고 요구했고, 오디세우스는 능숙한 말로 그 요구를 뒷받침했다. 트로이 안에서도 의견은 갈렸다. 안테노르처럼 헬레네를 돌려주고 전쟁을 피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도 있었지만, 파리스와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부 전승에서는 메넬라오스와 오디세우스를 죽여 버리자는 주장까지 나왔다고 한다. 사절을 해치는 것은 큰 죄였고, 안테노르는 두 사람을 보호해 무사히 그리스 진영으로 돌아갈 수 있게 했다. 메넬라오스는 트로이 성 안에 들어가 직접 협상을 벌였지만 헬레네를 데리고 나오지는 못했다. 그가 평화롭게 아내를 되찾을 마지막 시도는 그렇게 실패했다.
 
이제 남은 것은 전쟁이었다. 그리스군은 트로이 앞에 진을 쳤고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해가 거듭되는 동안 메넬라오스도 다른 영웅들과 함께 전장에서 싸웠다. 그는 단지 전쟁의 명분을 제공한 왕이 아니라 직접 창과 방패를 들고 싸우는 전사였다. 그러나 십 년 가까이 시간이 흘러도 성은 무너지지 않았고, 헬레네와 메넬라오스 사이에는 여전히 트로이의 높은 성벽이 서 있었다.
 
트로이 왕궁에서 헬레네의 반환을 요구하는 메넬라오스
 
 
3.3 파리스와 마주 서다
 
전쟁의 마지막 해 어느 날, 메넬라오스는 마침내 파리스와 직접 마주 설 기회를 얻었다. 양쪽 군대는 헬레네와 파리스가 스파르타에서 가져간 재물을 걸고 두 사람이 일대일로 싸우기로 했다. 승자가 모든 것을 얻고 전쟁을 끝내자는 약속이었다. 파리스는 처음 메넬라오스가 앞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고 물러섰지만, 헥토르의 꾸지람을 듣고 다시 나와 결투를 받아들였다. 메넬라오스에게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싸움이었다.
 
결투가 시작되자 메넬라오스가 파리스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그의 창은 파리스의 방패를 뚫었고, 이어 검으로 투구를 내리쳤으나 검이 부러졌다. 메넬라오스는 물러서지 않고 파리스의 투구 끈을 움켜잡아 그리스군 쪽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대로였다면 파리스는 목숨을 잃고 두 사람의 결투도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파리스를 지켜보던 아프로디테가 싸움에 개입했다.
 
여신은 투구 끈을 끊어 파리스를 메넬라오스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고 짙은 안개로 감춘 뒤 트로이 성 안으로 옮겼다. 전장에 홀로 남은 메넬라오스는 파리스를 찾아 헤맸지만 다시 싸울 수 없었다. 그는 결투에서 사실상 승리했지만 헬레네를 되찾지는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양군 사이의 약속마저 깨지면서, 두 사람의 결투로 끝날 수도 있었던 전쟁은 다시 수많은 병사가 맞서는 싸움으로 돌아갔다.
 
전장에서 일대일로 맞서는 메넬라오스와 파리스
 
 
3.4 무너진 트로이에서 헬레네를 만나다
 
파리스가 죽은 뒤에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트로이에서 헬레네는 파리스의 형제 데이포보스의 아내가 되었고, 메넬라오스는 여전히 그녀를 되찾지 못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가 생각해 낸 트로이 목마의 계책으로 그리스 영웅들이 성 안에 숨어들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밤이 되자 목마에서 나온 전사들이 성문을 열었고, 바다에서 돌아온 그리스군이 십 년 동안 굳게 닫혀 있던 트로이 성 안으로 밀려들었다.
 
메넬라오스가 찾아간 곳 가운데 하나는 헬레네와 데이포보스가 머물던 집이었다. 전승마다 그날 밤의 싸움은 조금씩 다르게 전해지지만 데이포보스는 죽었고, 메넬라오스는 마침내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헬레네와 마주했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그가 분노하여 검을 들어 헬레네를 죽이려 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눈앞에 선 그녀를 바라본 순간 그는 칼을 거두었고, 결국 헬레네를 살려 자신의 곁으로 데려왔다.
 
두 사람이 스파르타 왕궁에서 헤어진 뒤 십 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러 있었다. 그 사이 파리스는 죽었고 수많은 그리스와 트로이의 영웅들이 전장에서 쓰러졌으며, 눈앞에서는 트로이 성이 불타고 있었다. 메넬라오스는 마침내 자신이 전쟁에 나선 가장 직접적인 목적을 이루었다. 이제 남은 것은 헬레네를 데리고 스파르타로 돌아가는 일이었지만, 두 사람 앞에는 다시 여러 해의 방랑이 기다리고 있었다.
 
불타는 트로이에서 다시 마주한 메넬라오스와 헬레네
 
 
 

제4장 돌아가는 길

4.1 신들의 분노와 흩어진 함대
 
트로이가 무너진 뒤 그리스 장수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그러나 승리의 기쁨이 가시기도 전에 귀향 시점을 두고 의견이 갈렸다. 아가멤논은 아테나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더 머물며 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했고, 메넬라오스는 가능한 한 빨리 트로이를 떠나려 했다. 결국 그리스군은 여러 무리로 갈라졌다. 메넬라오스는 네스토르와 디오메데스 등 먼저 떠나는 장수들과 함께 배를 띄워 트로이 해안을 떠났다.
 
처음에는 항해가 순조로운 듯했다. 그러나 수니온 곶에 이르렀을 때 메넬라오스의 배를 이끌던 뛰어난 조타수 프론티스가 갑자기 죽었다. 메넬라오스는 항해를 멈추고 그를 장사지낸 뒤 다시 바다로 나섰다. 그 사이 다른 장수들의 배는 먼저 떠났고, 메넬라오스의 함대는 점차 동료들과 멀어졌다. 이어 말레아 곶 부근에 이르자 제우스가 거센 바람과 높은 파도를 일으켜 함대를 뒤흔들었다.
 
폭풍은 메넬라오스의 배들을 두 무리로 갈라놓았다. 일부는 크레타 쪽으로 밀려가 암초에서 배를 잃었고, 메넬라오스가 이끄는 남은 다섯 척은 거센 바람에 떠밀려 멀리 이집트까지 흘러갔다. 트로이에서 살아남아 헬레네까지 되찾았지만 스파르타는 다시 멀어졌다. 십 년의 전쟁을 끝낸 메넬라오스에게 이제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또 하나의 긴 바닷길이 시작되고 있었다.
 
말레아 앞바다의 폭풍에 휩쓸리는 메넬라오스의 함대
 
 
4.2 여러 나라를 떠도는 왕과 왕비
 
폭풍에 밀려난 메넬라오스의 배들은 곧바로 그리스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는 헬레네와 함께 지중해 동부와 이집트, 리비아를 비롯한 여러 먼 지역을 떠돌았다. 《오디세이아》에서 메넬라오스는 키프로스와 페니키아, 이집트, 에티오피아인들의 땅과 시돈, 리비아까지 다녀왔다고 이야기한다. 리비아에서는 양들이 한 해에도 여러 차례 새끼를 낳을 만큼 풍요로운 땅을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새로운 나라를 지나도 스파르타는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다.
 
메넬라오스와 헬레네는 낯선 항구와 왕궁을 오가며 여러 해를 보냈다. 트로이에서 얻은 전리품에 더해 먼 나라의 귀한 물건들도 배에 쌓여 갔다. 메넬라오스는 큰 부를 얻었지만 그가 바라는 것은 더 많은 재물이 아니었다. 트로이에서 십 년을 보낸 뒤 다시 오랜 세월 바다를 떠돌면서 그는 자신의 왕국이 어떻게 되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고향에 두고 온 사람들의 소식을 들을 길도 거의 없었다.
 
마침내 배들은 이집트 앞바다의 파로스섬에 이르렀지만, 이번에는 바람이 끊겨 더 나아갈 수 없었다. 날이 지나면서 식량마저 바닥나자 메넬라오스와 부하들은 섬에서 물고기를 잡아 허기를 견뎠다. 어떤 신의 노여움 때문에 길이 막혔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바로 그때 바다의 노인 프로테우스의 딸 에이도테아가 메넬라오스에게 나타나 고향으로 돌아갈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나섰다.
 
이집트 해안에 도착한 메넬라오스와 헬레네
 
 
4.3 프로테우스를 붙잡다
 
에이도테아는 자신의 아버지 프로테우스가 바다의 길뿐 아니라 지나간 일과 앞으로 닥칠 일까지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쉽게 붙잡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누군가 손을 대면 사자와 뱀, 표범, 물과 나무 등 갖가지 모습으로 변해 빠져나가려 했다. 에이도테아는 메넬라오스와 세 명의 부하에게 물개 가죽을 덮어씌운 뒤, 프로테우스가 바다에서 나와 물개들 사이에 누워 잠들 때까지 움직이지 말라고 일러주었다.
 
프로테우스가 해변에 누워 잠들자 메넬라오스와 부하들은 한꺼번에 달려들어 그를 붙잡았다. 바다의 노인은 사자와 뱀, 표범으로 변하고 흐르는 물과 큰 나무의 모습까지 취했지만 메넬라오스는 끝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 마침내 변신을 포기하고 본래 모습으로 돌아온 프로테우스는 무엇을 알고 싶어 자신을 붙잡았느냐고 물었다. 메넬라오스는 어째서 자신의 귀향길이 막혀 있는지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프로테우스는 메넬라오스가 이집트를 떠나기 전에 신들에게 필요한 제사를 제대로 올리지 않았기 때문에 바다가 길을 열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 신들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라고 가르쳐 주었다. 이어 다른 그리스 영웅들의 운명도 알려주었다. 오일레우스의 아들 소 아이아스가 귀향길의 바다에서 죽었고, 형 아가멤논은 미케네에 돌아간 뒤 살해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메넬라오스는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갈 길과 함께 자신보다 먼저 귀환한 동료와 형에게 닥친 비극까지 알게 되었다.
 
해변에서 변신하는 프로테우스를 붙잡는 메넬라오스
 
 
4.4 다시 스파르타의 왕으로
 
메넬라오스는 프로테우스의 말에 따라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 신들에게 필요한 제사를 올렸다. 마침내 귀향을 막던 길이 열리자 그는 헬레네와 여러 나라에서 얻은 많은 재물을 배에 싣고 그리스를 향했다. 트로이를 떠난 뒤 여러 해를 떠돈 끝에 여덟째 해에 이르러 마침내 그리스 땅으로 돌아왔다. 그가 돌아온 바로 그날, 조카 오레스테스는 이미 아이기스토스와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죽여 아버지 아가멤논의 원수를 갚은 뒤, 그들의 장례를 치르고 있었다. 메넬라오스는 끝내 형과 다시 만나지 못했다.
 
메넬라오스는 헬레네와 함께 스파르타로 돌아가 오랫동안 비워 두었던 왕궁의 삶을 다시 이어갔다. 세월이 흐르면서 왕궁에는 새로운 세대의 혼인이 이어졌다. 딸 헤르미오네는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에게 보내졌고, 메넬라오스의 아들 메가펜테스도 혼인을 맞았다. 바로 그 무렵 아버지 오디세우스의 행방을 찾아다니던 텔레마코스가 스파르타를 찾아왔다. 메넬라오스와 헬레네는 그를 후하게 맞아들이고 트로이에서 함께했던 오디세우스의 모습을 들려주었다.
 
메넬라오스에게는 다른 인간들과는 조금 다른 마지막 운명도 예고되어 있었다. 파로스섬에서 프로테우스는 그가 다른 사람들처럼 아르고스 땅에서 죽음을 맞을 운명이 아니라고 말했다. 헬레네의 남편이자 제우스의 사위인 그를 신들이 세상 끝에 있는 엘리시온의 들판으로 옮겨 줄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미케네에서 쫓겨난 왕자로 시작해 스파르타의 왕이 되고, 십 년의 전쟁과 오랜 방랑을 지나 다시 자신의 왕궁으로 돌아온 메넬라오스의 마지막에는 그렇게 신들이 약속한 평온한 땅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 방랑 끝에 스파르타로 돌아오는 왕과 왕비
【작성】 가담항설 - 떠도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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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