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가바위 전설
전주·남원 간 도로에서 약 200m 떨어지고 의암 수원지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100m쯤 되는 곳에 높이 20~30m의 채기바위가 있다. 이 바위에는 ‘옷도리’라는 인물에 얽힌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이 마을에는 품팔이로 살아가는 과부가 있었다. 어느 날 이상한 꿈을 꾼 뒤 저절로 임신하여 여섯 달 만에 아들을 낳았는데, 아이는 허리 윗부분만 있는 모습으로 태어났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아이를 ‘웃도리’라고 불렀다.
웃도리는 갓 태어난 아기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비범한 기상을 지니고 있었다. 어머니가 아이를 씻겨 눕히자마자 방 안 벽에 높이 걸린 시렁 위로 훌쩍 올라가 앉더니 대여섯 살 아이처럼 유창한 말로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듣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하시오. 내 말이 끝나는 즉시 채기바위에 나를 데려다 놓되, 내가 이르는 세 가지를 절대로 발설하지 말고 그대로 실행하시오. 첫째, 삼 년 안에는 나를 낳았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시오. 둘째, 서숙 서 말을 그곳에 가져다 두시오. 셋째, 메밀 서 말도 함께 가져다 두시오. 이 세 가지를 지금 바로 행하되, 만약 삼 년 안에 이 사실을 발설한다면 어머니와 나는 철천지원수가 될 것이니 그리 아시오!”
갓난아기가 서슬 퍼렇게 호령하자 과부는 너무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나 귀한 아들의 부탁이니 그대로 따르기로 했다. 아들을 업고 채기바위에 가서 서숙 서 말과 메밀 서 말을 함께 두고 돌아온 뒤, 웃도리에 관한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두문불출하며 지냈다.
그 무렵 이름난 도승 한 사람이 장차 역모를 일으킬 큰 장수가 이미 태어났다는 기운을 알아차렸다. 도승은 마을로 내려와 최근 아이를 낳은 사람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살폈으나 별다른 기미를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여섯 달 전 꿈을 꾼 뒤 임신한 과부가 있었고, 얼마 전까지 만삭처럼 배가 불러 있었는데 최근에는 통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도승은 과부를 찾아갔다. 그러나 과부는 여섯 달 만에 아이를 낳았으나 사산했다며 아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완강히 부인했다. 도승은 그 과부가 장차 역모를 일으킬 장수를 낳았다고 확신하고, 숨겨진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 태도를 바꾸었다. 과부에게 은근히 접근한 뒤 함께 살기 시작했고, 이 년이 지나 다시 아이의 행방을 물었다. 그러나 과부는 여전히 아이가 죽었다고 대답했다.
도승은 아무리 짚어보아도 아이가 죽었다고 믿을 수 없었다. 그는 계속 과부에게 극진히 대하며 부부의 정을 쌓았다. 마침내 삼 년을 불과 사흘 앞둔 때, 도승은 둘 사이의 정을 강조하며 다시 아이의 행방을 물었다. 자신들이 이제 진짜 부부가 되었다고 믿은 과부는 마침내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들은 도승은 곧바로 종적을 감추었다. 세상의 혼란을 막겠다며 삼 년이라는 세월 동안 사실을 캐내려 했던 것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안 도승은 곧장 채기바위로 달려갔다. 웃도리가 들어 있는 바위를 깨뜨려야 했지만 칼로 내려쳐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도승은 바위 옆의 억새풀을 뜯어 그것으로 바위를 내리쳤다.
그러자 놀랍게도 바위가 갈라지며 삼만 명이 넘는 군사가 쏟아져 나왔다. 웃도리의 부탁대로 어머니가 가져다 둔 서숙 서 말은 군사로 변했고, 메밀은 갑옷과 투구가 되어 이제 막 눈을 뜨려는 참이었다. 웃도리 또한 백마를 타고 막 일어서려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도승이 억새풀로 바위를 내리치자 쏟아져 나오던 군사들이 차례로 억새풀에 맞아 쓰러졌다. 웃도리도 백마를 탄 채 일어서려다가 억새풀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아무리 어머니라지만…, 방정맞은 여자 입 때문에 내가 죽는구나!”
웃도리는 그렇게 어머니를 원망하며 죽었다고 한다.
출처 : 완주군 홈페이지 (향토자료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