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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가호(具家虎)
조선 제21대 임금 영조 때의 일이다. 완주군 고산면 오산리에 구석린(仇錫麟)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효성이 지극하여 마을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했다.
구석린은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 육 년 동안 시묘(侍墓)를 하였다. 사람들은 그의 지극한 효성에 감복했고, 호랑이마저 그 마음에 감동해 구석린을 지켜주었다고 한다. 추운 겨울이면 호랑이가 나타나 떨고 있는 구석린을 품에 안고 몸을 녹여주었다.
육 년 동안 구석린과 호랑이는 거의 함께 살다시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호랑이가 돌아오지 않았다. 구석린은 밤늦도록 기다리다가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꿈속에 호랑이가 나타나 웅덩이에 빠져 죽을 지경이니 빨리 와서 구해달라고 애원했다.
구석린은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꿈에서 본 곳을 찾아 사십여 리나 되는 길을 달려가 보니 많은 사람이 웅덩이를 둘러싸고 긴 창으로 호랑이를 찔러 죽이려 하고 있었다.
구석린이 사람들에게 애원했다.
“이 호랑이는 나와 함께 사는 호랑이입니다. 제발 죽이지 말아주십시오.”
그러자 사람들이 말했다.
“정말 자네와 함께 사는 호랑이라면 웅덩이 안으로 들어가 직접 끌어내게.”
구석린은 주저하지 않고 웅덩이에 들어가 호랑이를 무사히 구해냈다.
호랑이는 구석린이 육 년 동안 시묘하는 동안 계속 곁을 지켰으나, 시묘가 끝나자 어디론가 사라져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고산현감(高山縣監)이 조정에 상소했다. 이야기를 들은 상감은 말했다.
“사람의 성씨가 어찌 원수 구 자(仇)란 말이냐?”
상감은 구(具) 자를 하사해 성을 바꾸게 하였고, 이후 그는 구석린(具錫麟)이라 불리게 되었다. 또한 그의 효성을 높이 기려 정문(旌門)을 세우고 백성들이 본받게 했다고 전한다.
출처 : 완주군 홈페이지 (향토자료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