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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페이오스와 아레투사 – 바다 아래 이어진 강과 샘
아르테미스를 따르던 님프 아레투사는 어느 날 사냥을 마치고 맑은 알페이오스 강에 몸을 담근다. 그러나 강의 신 알페이오스가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기면서 평화로운 휴식은 긴 도주로 바뀐다. 지친 아레투사가 아르테미스에게 도움을 청하자 여신은 그녀를 구름으로 감싸 숨기고, 물로 변한 아레투사에게 땅속 깊은 길을 열어 준다. 아레투사는 바다 건너 시칠리아의 오르티기아에서 맑은 샘으로 다시 솟아오르고, 알페이오스의 물도 그곳까지 이어진다는 전설이 남는다.
1.1 아르테미스의 님프
그리스의 숲과 들에는 아르테미스를 따라 사냥에 나서는 님프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아레투사는 누구보다 숲길을 빠르게 달리고 활과 그물을 다루는 데 익숙했다. 산과 골짜기를 누비는 동안 화려한 옷이나 장신구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고, 다른 님프들이 그녀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면 오히려 얼굴을 붉혔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보다 바람을 맞으며 짐승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일이 그녀에게는 훨씬 편안했다.
아레투사는 아르테미스의 곁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을 좋아했다. 사랑이나 혼인을 바라기보다 새벽부터 여신을 따라 숲으로 들어가 활을 들고 하루를 보내는 것이 좋았다. 사냥이 끝나면 동료들과 활시위를 풀고 샘가에 앉아 지친 몸을 쉬었다. 흐르는 물은 목을 축이고 더위를 식혀 주는 친숙한 것이었으며, 그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바꿀 신을 만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느 날 아레투사는 스팀팔로스의 숲에서 사냥을 마치고 홀로 돌아오는 길에 나섰다. 뜨거운 햇볕 아래 오랫동안 걸은 탓에 몸은 땀으로 젖고 발걸음도 무거워졌다. 숲을 빠져나오던 그녀는 나무 사이로 반짝이는 물빛을 발견했다. 맑고 조용한 강이 짙은 그늘 아래를 흐르고 있었다. 아레투사는 잠시 그곳에서 쉬어 가기로 했다.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물이 강의 신 알페이오스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였다.
숲에서 아르테미스를 따라 사냥하는 아레투사
1.2 맑은 강물에 몸을 담그다
아레투사가 다가간 강은 흐르는 소리조차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했다. 물은 바닥의 작은 돌을 헤아릴 수 있을 만큼 맑았고, 강가에는 버드나무와 포플러가 가지를 늘어뜨려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그녀는 먼저 발끝으로 물을 건드렸다. 사냥으로 달아오른 발에 차가운 물이 닿자 피로가 조금 가시는 듯했다. 아레투사는 무릎까지 들어갔다가 마침내 사냥옷을 강가에 걸어 두고 맑은 물에 몸을 맡겼다.
차가운 강물은 지친 몸을 부드럽게 감쌌다. 아레투사는 팔로 물살을 가르며 이쪽저쪽 헤엄쳤고, 한동안 아무런 걱정도 없이 강 가운데까지 나아갔다. 숲에서는 새들이 울고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반짝였다. 조용한 물 위에 그녀가 만든 작은 물결만 퍼져 나갔다. 긴 사냥 뒤에 찾아온 평온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물속 깊은 곳에서 지금까지 듣지 못했던 낮고 희미한 소리가 올라왔다.
처음에는 돌 사이로 물이 흐르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웅얼거림은 점점 또렷해졌고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듯했다. 놀란 아레투사는 헤엄을 멈추고 주변을 살폈다. 강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발 아래 물이 흔들리며 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아레투사는 두려움에 휩싸여 가장 가까운 둑으로 몸을 돌렸다. 조금 전까지 자신을 쉬게 해 주던 강이 어느새 낯선 존재처럼 느껴졌다.
사냥 뒤 알페이오스 강에서 몸을 식히는 아레투사
1.3 물속에서 들려온 목소리
아레투사가 물에서 빠져나오자 강 한가운데에서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어디로 가느냐, 아레투사?” 물결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 강을 다스리는 신 알페이오스였다. 그는 물속을 헤엄치던 아레투사를 보고 마음을 빼앗겼다. 하지만 그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아레투사에게 사랑이 아니라 공포였다. 그녀는 대답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강가에서 달아났다. 옷은 건너편 버드나무에 남아 있었지만 그것을 가지러 돌아갈 겨를도 없었다.
알페이오스는 물속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사람의 모습을 취해 강 밖으로 올라온 뒤 달아나는 아레투사의 뒤를 쫓았다. 아레투사는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숲길로 뛰어들었다. 평생 산과 들을 누비며 사냥해 온 그녀였기에 거친 길도 익숙했다. 그러나 알페이오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발소리는 사라지지 않았고, 아레투사가 속도를 높이면 그 역시 더욱 빠르게 뒤따랐다.
사냥꾼이던 아레투사는 어느새 사냥감처럼 달리고 있었다. 나뭇가지가 몸을 스치고 돌과 가시가 발을 찔렀지만 멈출 수 없었다. 뒤에서는 자신을 부르는 알페이오스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강가에서 시작된 추격은 숲을 벗어나 들판으로 이어졌고, 해가 기울어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레투사가 원한 것은 단 하나, 그에게서 멀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강의 신은 그녀의 발자국을 놓치지 않았다.
물속에서 나타난 알페이오스를 보고 달아나는 아레투사
2.1 숲과 들을 가로질러
아레투사는 길을 가리지 않고 달렸다. 오르코메노스와 프소피스를 지나고, 킬레네와 마이날로스의 산자락을 가로질렀으며, 차가운 에리만토스를 넘어 엘리스까지 내달렸다. 평소라면 하루의 사냥만으로도 지쳤을 거리를 그녀는 두려움에 쫓겨 계속 달렸다. 발밑의 흙과 풀, 바위와 골짜기가 끝없이 뒤로 밀려났다. 그러나 아무리 멀리 달아나도 뒤따라오는 알페이오스의 기척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산과 들을 누비던 아레투사의 빠른 발이 그를 앞섰다. 하지만 긴 추격이 이어지자 상황은 조금씩 달라졌다. 숨은 가빠지고 다리는 무거워졌으며, 언덕 하나를 넘을 때마다 몸에 남은 힘이 줄어들었다. 반면 강의 신에게서는 지친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해가 기울 무렵 아레투사는 땅 위에 길게 드리운 자신의 그림자 뒤로 또 하나의 그림자가 가까워지는 것을 보았고, 곧 등 뒤에서 알페이오스의 거친 숨소리까지 들었다.
이제 알페이오스는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워져 있었다. 아레투사는 마지막 힘을 모아 다시 달렸지만 몸은 더 이상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머리카락 끝에 그의 숨결이 닿는 듯했고,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얼마나 가까이 다가왔는지 알 수 있었다. 앞에는 넓은 들판만 펼쳐져 있었고 몸을 숨길 곳도 보이지 않았다. 더는 자신의 힘만으로 달아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아레투사의 머릿속에는 오랫동안 따르며 활과 화살을 들어 주었던 여신 아르테미스가 떠올랐다.
들판을 가로질러 알페이오스에게 쫓기는 아레투사
2.2 아르테미스에게 도움을 청하다
아레투사는 마지막 힘을 다해 달리며 아르테미스를 불렀다. “여신이여, 저를 도와주세요. 당신의 활과 화살을 들고 따르던 님프가 도움을 청합니다.” 숨이 차 목소리는 자꾸 끊겼지만 간절한 외침은 여신에게 닿았다. 그 순간 맑았던 들판 위로 갑자기 짙은 구름이 내려앉았다. 구름은 빠르게 퍼지며 아레투사의 몸을 감쌌고, 그녀의 모습은 순식간에 그 속으로 사라졌다.
알페이오스는 아레투사가 보이지 않자 걸음을 멈추었다. 하지만 포기하고 돌아서지는 않았다. 그는 구름 주위를 맴돌며 아레투사의 이름을 거듭 불렀고, 그녀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를 기다렸다. 아레투사는 바로 가까이에서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숨을 죽였다. 여신이 자신을 가려 주었지만 알페이오스는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녀의 두려움은 더욱 커져 갔다.
마침내 아레투사의 온몸에서 차가운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마와 목에서 떨어지던 작은 물방울은 곧 팔과 가슴, 다리 전체를 타고 흘렀다. 발밑에는 맑은 물이 고였고 머리카락에서도 물방울이 끊임없이 떨어졌다. 손끝과 발끝의 감각은 점차 희미해졌으며 몸의 형태마저 부드럽게 풀려 가는 듯했다. 공포 속에서 그녀의 몸은 조금씩 물이 되어 가고 있었다.
구름 속에서 아르테미스에게 도움을 청하는 아레투사
2.3 구름 속에서 물이 되다
아레투사의 변화는 멈추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두려움에 떨며 서 있던 두 다리는 맑은 물줄기로 풀렸고, 팔과 머리카락에서도 끊임없이 물이 흘러나왔다. 마침내 님프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구름 속에는 맑은 물줄기만이 남아 있었다. 사람의 몸은 없어졌지만 아레투사의 의식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녀는 눈앞의 모습을 볼 수 없으면서도 가까이에 알페이오스가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알페이오스도 곧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아차렸다. 그는 인간의 모습을 버리고 다시 자신의 본래 모습인 강물이 되어 아레투사의 물줄기로 흘러들려 했다. 물이 된 그녀에게 더는 달아날 발도, 그를 밀어낼 손도 없었다. 알페이오스의 물줄기가 자신에게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자 아레투사는 다시 두려움에 휩싸였다. 서로 다른 두 물이 곧 하나로 섞이려는 순간이었다.
그때 아르테미스가 다시 아레투사를 구했다. 여신은 아레투사의 발아래 땅을 갈라 깊은 길을 열어 주었다. 아레투사의 물은 그 틈으로 빠르게 흘러들어 지상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햇빛은 사라지고 차가운 바위 사이로 어두운 물길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녀를 붙잡으려는 손이 없었다. 아레투사는 아르테미스가 열어 준 땅속 길을 따라 고향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구름 속에서 물줄기로 변해 가는 아레투사
3.1 사라지지 않은 알페이오스
한편 또 다른 전승에서는 알페이오스의 물길이 바다를 건너 아레투사가 있는 오르티기아까지 이어졌다고 전한다. 이미 강물의 모습이 된 알페이오스는 펠로폰네소스 서쪽을 향해 흘렀고, 여러 골짜기에서 흘러온 물을 받아들이며 점점 넓어졌다. 그러나 강의 신은 자신에게서 멀어진 아레투사를 잊지 않았다.
마침내 알페이오스의 물은 서쪽 해안에 이르러 넓은 바다와 만났다. 보통의 강이라면 그곳에서 짠 바닷물과 섞여 흔적을 잃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래된 전승에서는 알페이오스의 물이 바다에 들어간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강물은 바다 깊은 곳으로 내려가 짠물과 섞이지 않는 자신만의 길을 찾아 계속 흘렀고, 눈으로 볼 수 없는 물길을 따라 아레투사가 향한 곳을 뒤쫓았다고 전해졌다.
그 물길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는 누구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알페이오스가 육지에서 끝난 강이 아니라 바다 밑에서도 흐르는 강이라고 믿었다. 펠로폰네소스에서 시작된 그의 흐름은 깊은 바다를 지나 서쪽으로 이어졌고, 먼 시칠리아까지 닿는다고 여겨졌다. 그렇게 알페이오스의 추격은 육지에서 끝나지 않고,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바다 아래의 길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
바다 밑으로 아레투사를 따라 흐르는 알페이오스
3.2 바다 밑을 건너다
아레투사는 햇빛 한 줄기 들지 않는 땅속의 물길을 따라 오래 흘렀다. 머리 위에는 두꺼운 바위가 놓여 있었고, 어디선가 바다의 무게가 느껴지는 듯했다. 때로는 물길이 좁아졌다가 다시 넓어졌으며, 깊은 틈을 지나면 끝을 알 수 없는 어두운 동굴이 이어졌다. 사람의 몸이었다면 결코 지나갈 수 없었을 먼 길을 아레투사는 한 줄기 맑은 물이 되어 흘러갔다. 아르테미스가 열어 준 땅속 길을 따라 흐르던 아레투사의 물은 그리스에서 멀어져 바다 건너 시칠리아를 향했다.
긴 어둠 속을 흐르며 아레투사는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떠올렸다. 활을 들고 아르테미스를 따라 숲을 달리던 날들, 스팀팔로스에서 돌아오다 잠시 쉬려고 들어갔던 맑은 강, 그리고 뒤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던 알페이오스의 발소리가 차례로 스쳐 갔다. 잠깐의 휴식으로 시작된 일이 그녀를 고향에서 한없이 먼 곳으로 데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붙잡히지 않은 채 낯선 땅을 향해 계속 흘러갔다.
얼마나 오랫동안 흘렀는지 알 수 없던 어느 순간, 물길 앞쪽에서 희미한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어두운 바위 틈이 조금씩 넓어지고 지상의 공기가 스며들자 아레투사의 물은 위를 향해 솟구쳤다. 그녀가 다시 하늘을 본 곳은 시칠리아의 시라쿠사 곁에 자리한 작은 섬 오르티기아였다. 그곳에서 아레투사는 더 이상 들판을 달아나는 님프가 아니었다. 맑은 샘으로 땅 위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그녀는 그리스에서 시작된 긴 도주를 마치고 새로운 자리를 얻었다.
어두운 지하 물길을 따라 시칠리아로 흐르는 아레투사
3.3 오르티기아의 아레투사 샘
오르티기아에서 다시 솟아난 아레투사의 물은 맑고 풍부했다. 시라쿠사 사람들은 바다 가까이에서 솟아나는 샘을 바라보며 먼 그리스에서 달아온 님프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사냥터를 누비던 아레투사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그녀는 아르테미스의 보호를 받아 신성한 샘으로 그곳에 머물렀다. 깊은 땅속과 바다 아래의 긴 길을 지나온 물은 끊임없이 솟아올랐고, 사람들은 그 샘을 님프의 이름을 따라 아레투사라 불렀다.
그러나 전설은 아레투사가 오르티기아에 도착한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리스인들은 펠로폰네소스의 알페이오스 강도 바다 밑으로 흘러와 마침내 아레투사의 샘과 만난다고 믿었다. 그래서 올림피아의 알페이오스 강에 던진 잔이 멀리 시칠리아의 아레투사 샘에서 다시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또 올림피아에서 소를 제물로 바치면 멀리 떨어진 아레투사의 샘물까지 흐려진다는 이야기도 전해졌다. 사람들에게 두 물은 서로 다른 곳에 있으면서도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그렇게 알페이오스와 아레투사의 이야기는 한 님프의 도주를 넘어 그리스와 시칠리아를 잇는 전설이 되었다. 한쪽에서는 알페이오스 강이 넓은 바다로 흘러들고, 다른 쪽에서는 아레투사의 맑은 샘이 오르티기아에서 솟아났다. 서로의 모습을 볼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사람들은 바다 아래 보이지 않는 물길에서 두 흐름이 다시 만난다고 믿었다. 오르티기아의 샘은 그렇게 아레투사의 긴 도주가 끝난 곳이자, 바다 아래로 이어진 강과 샘의 전설이 완성된 마지막 무대가 되었다.
오르티기아에서 맑은 샘으로 다시 솟아난 아레투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