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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타로스 – 신들도 두려워한 심연
세상의 가장 깊은 곳에는 신들조차 함부로 다가가지 못하는 심연 타르타로스가 있었다. 태초부터 존재한 이 심연은 우라노스와 크로노스의 시대를 거치며 키클롭스와 백수거인들을 가두는 감옥이 되었고, 티타노마키아 뒤에는 패배한 티탄들이 갇힌 장소가 되었다. 제우스는 그 이름만으로 올림포스의 신들을 경고했고, 후대에는 큰 죄를 지은 인간의 영혼이 형벌을 받는 세계로도 여겨졌다. 타르타로스는 세상의 밑바닥이자 누구도 쉽게 돌아올 수 없는 마지막 감옥이었다.
1.1 태초에 나타난 타르타로스
세상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기 전, 처음에는 카오스가 있었다. 그 뒤 넓은 가슴을 지닌 가이아와 깊은 타르타로스가 나타났고, 이어 사랑의 힘 에로스도 모습을 드러냈다. 헤시오도스는 타르타로스를 누군가가 뒤늦게 만든 장소가 아니라 세상의 시작부터 존재했던 것 가운데 하나로 노래했다. 그것은 신의 모습을 한 인물이라기보다, 우주의 가장 깊은 심연 자체가 신적인 존재로 여겨진 경우에 가까웠다.
가이아가 산과 바다를 낳고 우라노스가 하늘을 덮으면서 세계에는 위와 아래가 생겨났다. 높은 하늘과 인간이 살아갈 땅이 모습을 갖추는 동안에도 타르타로스는 그 모든 것보다 더 아래에 남아 있었다. 햇빛도 닿지 않고 길도 이어지지 않는 그곳은 인간의 발길은 물론 불사의 신들조차 함부로 접근하기 어려운 세계의 밑바닥이었다.
아직 그곳에는 티탄도 죄인도 갇혀 있지 않았다. 타르타로스는 처음부터 형벌을 위해 마련된 감옥이 아니라 세상이 생겨날 때부터 존재한 깊이였다. 그러나 신들의 세대가 바뀌고 싸움이 거듭되면서 그 끝없는 심연은 차츰 패배한 자들을 가두는 장소가 되었다. 태초의 심연은 그렇게 훗날 신들도 이름을 듣고 두려워하는 감옥으로 변해 갔다.
태초의 세계 아래 펼쳐진 거대한 타르타로스의 심연
1.2 하데스보다 더 아래
올림포스의 신들이 인간 세상을 내려다볼 때에도 타르타로스는 그들의 시야보다 훨씬 아래에 있다고 여겨졌다. 호메로스는 제우스의 입을 빌려 그 깊이를 설명한다. 하늘이 땅에서 멀리 떨어져 있듯, 타르타로스는 다시 하데스보다 그만큼 아래에 있다는 것이다. 죽은 자들이 향하는 명계보다도 더 깊은 곳에 또 하나의 심연이 펼쳐져 있다고 생각한 셈이었다.
그곳에는 햇빛도 별빛도 없었다. 죽은 자들이 머무는 하데스에도 길과 강, 궁전과 들판이 있었지만, 타르타로스는 그보다 훨씬 거칠고 막막한 공간으로 그려졌다. 누구도 쉽게 오르내릴 수 없도록 깊이가 끝없이 이어졌고, 한번 떨어진 존재가 스스로 힘으로 되돌아오기 어려운 곳이었다. 그래서 타르타로스는 단순히 죽은 자들이 머무는 장소와는 처음부터 성격이 달랐다.
제우스가 다른 신들에게 자신의 명령을 거스르지 말라고 경고할 때 타르타로스의 이름을 꺼낸 것도 그 때문이었다. 올림포스의 신이라 해도 그곳에 던져진다면 하늘의 빛에서 완전히 끊어질 수 있었다. 높은 올림포스와 가장 깊은 타르타로스는 서로 마주 보는 두 극점이 되었고, 그 사이에 인간의 땅과 죽은 자들의 세계가 놓여 있었다.
하데스 아래 끝없이 깊게 이어지는 타르타로스
1.3 청동 문 너머의 심연
헤시오도스는 타르타로스가 얼마나 깊은지를 청동 모루 하나에 빗대어 들려준다. 하늘에서 모루를 떨어뜨리면 아흐레 낮과 밤 동안 계속 떨어진 끝에 열째 날 땅에 닿고, 다시 땅에서 떨어뜨리면 또 아흐레가 지나 열째 날 타르타로스에 이른다고 했다. 인간이 살아가는 땅에서도 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운 곳이 바로 그 심연이었다.
그 둘레에는 청동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었고, 짙은 어둠이 여러 겹으로 감싸고 있었다. 땅과 바다의 뿌리가 닿는 곳도 그 가까이에 있었으며, 밤과 낮이 서로 스쳐 지나가는 경계 또한 그 주변에 놓여 있다고 노래되었다. 훗날 티탄들이 갇히면서 그 앞에는 거대한 문과 벽까지 세워져, 세상과 심연을 갈라놓는 단단한 경계가 되었다.
문 너머에는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고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어둠이 이어졌다. 그곳에 들어선 존재는 바닥이 어디인지조차 알기 어려울 만큼 막막한 깊이에 놓이게 되었다. 그래서 청동 문은 단순히 적의 침입을 막는 성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올림포스의 빛이 닿는 세계와 패배한 신들이 갇혀 있는 심연을 갈라놓는 마지막 문이었다.
청동 문과 거대한 벽 너머로 펼쳐진 어두운 심연
1.4 신들도 두려워한 곳
신들은 죽지 않는 존재였지만 그렇다고 두려움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올림포스에서 다투거나 전쟁을 벌여 상처를 입더라도 다시 일어나 힘을 되찾을 수 있었지만, 타르타로스에 갇히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그곳에 떨어진 신은 하늘과 땅, 다른 신들의 세계에서 완전히 떨어져 끝을 알 수 없는 감금 속에 머물러야 했다.
헤시오도스가 그린 타르타로스 주변에는 땅과 바다의 뿌리가 얽혀 있었고, 청동 문 안쪽에는 패배한 티탄들이 갇혀 있었다. 문 가까이에는 백수거인들이 감시자로 자리 잡아 누구도 함부로 빠져나오지 못하게 했다. 한때 세상을 지배했던 신들조차 그 안에서는 자신의 힘을 세상에 펼칠 수 없었다. 불사의 존재를 죽이지 않고도 세상에서 완전히 떼어 놓을 수 있는 곳이 바로 타르타로스였다.
그 뒤로 타르타로스라는 이름은 올림포스에서도 무거운 경고가 되었다. 제우스가 분노하여 그 심연을 입에 올리면 다른 신들도 가볍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무리 높은 곳에 사는 신이라도 패배하면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질 수 있었다. 타르타로스는 신들에게조차 자신들이 세상의 질서에서 추방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가장 두려운 장소였다.
타르타로스의 심연을 내려다보는 올림포스의 신들
2.1 타르타로스에 갇힌 형제들
우라노스와 가이아 사이에서는 열두 티탄뿐 아니라 외눈의 키클롭스들과 백 개의 팔을 지닌 거대한 형제들도 태어났다. 그들은 막강한 힘을 지녔지만 아버지 우라노스는 그들을 처음부터 달가워하지 않았다. 아폴로도로스의 전승에서는 우라노스가 그들을 결박하여 깊은 타르타로스에 던졌다고 한다. 세상에 태어난 거대한 신들은 빛을 제대로 누려 보기도 전에 땅 아래 심연에 갇혀 버렸다.
자식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본 가이아는 분노했다. 그녀는 티탄들에게 아버지 우라노스에게 맞서라고 요구했고, 마침내 막내 크로노스가 낫을 들고 일어나 하늘의 권력을 빼앗았다. 같은 전승에서는 티탄들이 키클롭스와 백수거인들을 한때 풀어 주었지만, 왕위에 오른 크로노스가 그들을 다시 묶어 타르타로스에 가두었다고 한다.
그렇게 키클롭스와 백수거인들은 지배자가 바뀐 뒤에도 다시 심연에 남겨졌다. 키클롭스들은 훗날 제우스와 포세이돈, 하데스에게 강력한 무기를 만들어 줄 장인들이었고, 백수거인들은 티탄과의 전쟁을 뒤집을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까지 그들의 힘은 타르타로스의 깊은 감옥에 봉인되어 있었다. 타르타로스는 세상의 운명을 바꿀 힘마저 감춰 두는 신들의 감옥이 되어 갔다.
타르타로스에 결박되어 갇힌 키클롭스와 백수거인
2.2 제우스가 감옥을 열다
크로노스의 시대가 끝나갈 무렵, 제우스와 그의 형제자매들은 티탄들을 상대로 긴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올림포스에 자리 잡은 젊은 신들과 오트리스 산을 중심으로 맞선 티탄들은 좀처럼 승부를 내지 못했다. 해가 거듭되어도 전쟁이 끝나지 않자 가이아는 제우스에게 깊은 곳에 갇혀 있는 존재들을 풀어 주어야 승리할 수 있다고 알려 주었다.
제우스는 타르타로스의 감옥을 열고 키클롭스와 백수거인들을 세상으로 끌어냈다. 후대 이야기에서는 감옥을 지키던 괴물 캄페를 쓰러뜨린 뒤 그들을 구했다고도 전한다. 오랜 감금에서 벗어난 키클롭스들은 자신들을 해방시킨 신들에게 보답했다. 제우스에게는 번개와 벼락을, 포세이돈에게는 삼지창을, 하데스에게는 모습을 감추는 투구를 주었다.
백수거인들도 제우스의 편에 섰다. 코토스와 기에스, 브리아레오스는 수많은 손으로 거대한 바위를 집어 들어 티탄들의 진영을 향해 쏟아부었다. 하늘에는 제우스의 번개가 번쩍이고 땅은 거인들이 던진 바위에 흔들렸다. 오랫동안 그들을 가두고 있던 타르타로스의 감옥이 열리자, 그 안에서 나온 힘이 오히려 새로운 신들의 승리를 결정하게 된 것이다.
타르타로스에서 키클롭스와 백수거인을 풀어주는 제우스
2.3 티탄들을 심연에 던지다
키클롭스의 무기를 얻고 백수거인들의 힘까지 더해지자 전쟁의 균형은 마침내 무너졌다. 제우스는 쉬지 않고 번개를 던졌고, 백수거인들은 한꺼번에 수백 개의 바위를 들어 티탄들에게 퍼부었다. 하늘과 땅과 바다가 함께 흔들릴 만큼 거대한 싸움 끝에 크로노스의 세력은 쓰러졌고, 오래 이어진 티타노마키아도 마침내 끝을 맞았다.
승리한 신들은 패배한 티탄들을 그냥 놓아주지 않았다. 그들은 한때 키클롭스와 백수거인들이 갇혀 있던 바로 그 깊은 심연으로 끌려갔다. 높은 하늘을 차지했던 신들이 이제는 하데스보다도 더 아래에 있는 타르타로스로 떨어졌다. 권력을 잃은 티탄들에게 그곳은 다시 전쟁을 일으킬 수 없도록 세상과 완전히 끊어 놓는 감옥이었다.
누가 모두 그곳에 갇혔는지는 전승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타르타로스가 패배한 옛 신들의 감옥이 되었다는 기억은 강하게 남았다. 한 시대의 지배자였던 티탄들이 청동 문 너머로 사라지면서 올림포스 신들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타르타로스는 태초의 심연에서 더 나아가, 새 질서에 패배한 불사의 존재들을 가두는 가장 무서운 감옥으로 자리 잡았다.
패배한 티탄들을 타르타로스로 몰아넣는 올림포스 신들
2.4 백수거인들이 문을 지키다
티탄들을 타르타로스에 던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들이 언젠가 힘을 되찾아 다시 올라온다면 새로 세운 올림포스의 질서도 흔들릴 수 있었다. 그래서 심연에는 빠져나올 수 없는 장벽이 세워졌다. 헤시오도스의 노래에서는 포세이돈이 청동 문을 달았고, 튼튼한 성벽과 어둠이 그 감옥을 둘러싸 티탄들을 세상과 갈라놓았다.
문 앞을 지키는 임무는 백수거인들에게 맡겨졌다. 한때 자신들이 갇혀 있던 곳에서 풀려나 제우스의 승리를 도왔던 코토스와 기에스, 브리아레오스가 이제는 패배한 티탄들을 감시하게 된 것이다. 백 개의 팔과 쉰 개의 머리를 지닌 거인들이 지키는 문을 힘으로 돌파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한 티탄이라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타르타로스의 문이 닫히자 티타노마키아의 승리는 비로소 완성되었다. 하늘에는 제우스가, 바다에는 포세이돈이, 죽은 자들의 세계에는 하데스가 자리 잡았고, 그보다 더 아래에는 옛 신들을 가둔 심연이 남았다. 타르타로스는 이제 세계의 가장 깊은 곳일 뿐 아니라 올림포스의 질서를 떠받치는 마지막 감옥이 되었다. 그 문이 굳게 닫혀 있는 동안, 패배한 옛 신들의 시대도 함께 봉인되어 있었다.
청동 문 앞을 지키는 코토스·기에스·브리아레오스
3.1 티폰도 심연으로 떨어지다
티타노마키아가 끝난 뒤에도 제우스의 지배는 완전히 굳어진 것이 아니었다. 헤시오도스의 전승에서 가이아는 타르타로스와 결합하여 무시무시한 티폰을 낳았다. 그의 어깨에서는 수많은 뱀의 머리가 솟아 있었고, 눈에서는 불길이 번뜩였으며, 입에서는 때로 신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가, 때로 황소와 사자와 개 같은 짐승의 울음이 터져 나왔다. 타르타로스의 아들은 하늘의 새 주인 제우스에게 도전했다.
제우스는 번개와 벼락을 쥐고 그 거대한 적과 맞섰다. 티폰이 불을 뿜으며 하늘을 뒤흔들자 제우스도 쉬지 않고 벼락을 내리쳤고, 싸움의 열기에 땅과 바다가 끓어오르는 듯했다. 마침내 티폰은 제우스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헤시오도스는 패배한 티폰이 넓은 타르타로스로 던져졌다고 전하며, 후대에는 제우스가 그를 시칠리아의 에트나 산 아래 눌러 놓았다는 이야기도 생겨났다.
타르타로스의 아들로 태어난 괴물이 마침내 아버지의 이름을 지닌 심연으로 떨어진 셈이었다. 이제 그곳은 티탄들만을 가두는 감옥이 아니었다. 올림포스의 질서를 뒤엎으려는 존재라면 누구라도 그 아래로 추방될 수 있었다. 제우스의 벼락이 적을 쓰러뜨리는 무기였다면, 타르타로스는 그 적이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봉인하는 마지막 장소가 되었다.
제우스의 벼락에 맞아 타르타로스로 추락하는 티폰
3.2 제우스가 신들에게 경고하다
트로이 전쟁이 한창일 때 신들은 인간들의 싸움에 끊임없이 끼어들었다. 헤라와 아테나는 그리스군을 돕고 싶어 했고, 아프로디테와 아폴론은 트로이 편에 마음을 두었다. 포세이돈을 비롯한 다른 신들도 저마다 인간들의 전쟁을 바라보며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제우스는 그날만큼은 누구도 자신의 뜻을 거슬러 전장에 내려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제우스는 올림포스의 신들을 모아 놓고 자신의 명령을 어기는 자에게 어떤 벌이 기다리는지 말했다. 몰래 그리스군이나 트로이군을 돕다가 자신에게 붙잡힌다면 어두운 타르타로스로 던져 버리겠다는 것이었다. 그곳에는 쇠문과 청동 문지방이 있고, 하데스보다도 훨씬 아래에 있다고 그는 경고했다. 불사의 신이라도 그곳에 떨어진다면 올림포스와 세상에서 완전히 격리될 수 있었다.
제우스의 말을 들은 신들은 잠시 침묵했다. 그곳에 티탄들이 갇혀 있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높은 올림포스에 앉은 제우스가 가장 깊은 타르타로스를 벌로 내세운 순간, 심연은 그의 권위를 보여 주는 가장 무서운 이름이 되었다. 신들조차 전장으로 내려가기 전에 그 이름을 떠올려야 했고, 타르타로스는 더 이상 먼 태초의 세계만이 아니었다.
올림포스에서 신들에게 타르타로스를 경고하는 제우스
3.3 인간의 죄인들이 향하는 곳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타르타로스를 바라보는 생각도 달라졌다. 처음에는 티탄과 거대한 신적 존재들을 가두는 심연이라는 성격이 강했지만, 죽은 인간들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가 풍부해지면서 그곳은 점차 무거운 죄에 대한 형벌과도 연결되었다. 그렇다고 죽은 자들이 모두 타르타로스로 향한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영혼은 하데스의 넓은 영역에 머물렀다.
초기의 서사시에서도 큰 죄를 저지른 자들이 명계에서 형벌을 받는 모습은 등장한다. 탄탈로스는 눈앞에 있는 물과 열매를 얻지 못한 채 괴로워했고, 시시포스는 거대한 바위를 산 위로 밀어 올리는 일을 끝없이 되풀이했다. 티튀오스 역시 죽어서도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오래된 이야기에서 그들이 형벌받는 장소가 언제나 타르타로스라고 불린 것은 아니었다.
후대로 갈수록 가장 무거운 죄를 지은 영혼과 타르타로스가 보다 분명하게 연결되었다. 신과 인간의 질서를 짓밟고 돌이키기 어려운 죄를 저지른 자는 죽음 뒤 심판을 받아 깊은 심연으로 내려간다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이렇게 타르타로스는 패배한 신들을 가두던 감옥에서 인간의 죄까지 받아들이는 형벌의 세계로 넓어졌다. 태초의 심연에 인간의 사후 운명이라는 새로운 의미가 덧붙여진 것이다.
명계에서 끝없는 형벌을 받는 시시포스와 죄인들
3.4 엘리시온과 갈라진 길
죽은 자들이 모두 같은 곳으로 향한다고 여겨진 것은 아니었다. 많은 영혼은 하데스의 넓은 영역에 머물렀지만, 오래된 전승에서는 신들의 사랑을 받은 특별한 영웅들에게 고통 없는 땅이 허락되기도 했다. 호메로스가 노래한 엘리시온의 평원에는 눈과 폭풍이 없었고, 부드러운 바람이 불었다. 그것은 어둡고 깊은 타르타로스와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죽은 뒤의 운명을 가르는 생각은 더욱 뚜렷해졌다. 신들의 총애를 받은 영웅뿐 아니라 올바르고 경건하게 살아온 영혼들이 축복받은 곳으로 향한다는 이야기가 생겨났고, 반대로 신과 인간의 질서를 짓밟은 자들에게는 깊은 형벌의 세계가 기다린다고 여겨졌다. 그렇게 엘리시온과 타르타로스는 죽음 뒤 서로 다른 운명을 보여 주는 두 세계로 점차 마주 서게 되었다.
그 가운데 타르타로스는 언제나 가장 깊은 곳에 남아 있었다. 태초에는 세상의 밑바닥이었고, 티타노마키아 뒤에는 패배한 신들의 감옥이 되었으며, 후대에는 돌이키기 어려운 죄를 지은 영혼의 형벌과도 이어졌다. 축복받은 자들이 빛과 평온을 향한다면, 타르타로스에 떨어진 자들은 세상과 단절된 심연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태초의 깊이는 마침내 신과 인간 모두가 두려워하는 마지막 형벌의 심연이 되었다.
엘리시온과 타르타로스로 갈라지는 죽은 자들의 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