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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 별전가담항설의지식창고 2026.08.21. 21:47 (2026.08.21. 21:47)

아테나이 – 아테나의 도시

 
아티카의 땅에는 오래전부터 여러 마을과 왕들이 있었다. 땅에서 태어난 케크롭스의 시대에 아테나와 포세이돈이 이곳을 두고 다투었고, 올리브나무를 선물한 아테나가 도시의 수호신이 되었다. 에리크토니오스와 에레크테우스를 거쳐 이어진 왕가는 아이게우스와 테세우스에게 닿았고, 테세우스는 흩어진 아티카를 하나로 모았다. 그의 시대가 끝난 뒤에도 메네스테우스와 데모폰을 거쳐 왕들은 이어졌으며, 마지막에는 자신의 목숨으로 도시를 지킨 코드로스의 이야기가 남았다.
목   차
[숨기기]
아테나이 – 아테나의 도시
 
 
 

개요

 
아티카의 땅에는 오래전부터 여러 마을과 왕들이 있었다. 땅에서 태어난 케크롭스의 시대에 아테나와 포세이돈이 이곳을 두고 다투었고, 올리브나무를 선물한 아테나가 도시의 수호신이 되었다. 에리크토니오스와 에레크테우스를 거쳐 이어진 왕가는 아이게우스와 테세우스에게 닿았고, 테세우스는 흩어진 아티카를 하나로 모았다. 그의 시대가 끝난 뒤에도 메네스테우스와 데모폰을 거쳐 왕들은 이어졌으며, 마지막에는 자신의 목숨으로 도시를 지킨 코드로스의 이야기가 남았다.
 
 
 

제1장 아테나의 도시가 태어나다

1.1 땅에서 태어난 케크롭스
 
아티카에서 가장 오래된 왕으로 기억된 케크롭스에게는 인간 부모가 없었다. 사람들은 그가 아티카의 땅에서 스스로 태어났다고 믿었다. 허리 위는 인간이지만 아래는 뱀의 모습을 한 기묘한 왕이었다. 그 모습은 그가 어느 먼 나라에서 건너온 사람이 아니라 이 땅 자체에서 나온 존재임을 보여주었다. 당시 아티카는 아직 하나의 큰 도시가 아니었고, 사람들은 바위 언덕과 평야 곳곳에 흩어져 작은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었다.
 
케크롭스는 이들을 다스리며 높은 바위 언덕에 자신의 중심지를 두었다. 그가 왕이 되기 전 이 땅은 악테라 불렸다고 하지만, 그의 시대에는 케크로피아라는 이름도 생겨났다. 케크롭스에게는 아들 에리시크톤과 아글라우로스, 헤르세, 판드로소스라는 세 딸이 있었다. 그러나 왕위를 이어야 할 에리시크톤은 자식을 남기지 못한 채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케크롭스의 시대에 아티카를 둘러싼 더 큰 사건이 일어났다. 신들이 인간의 도시 가운데 자신이 특별히 보호할 곳을 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다를 지배하는 포세이돈과 지혜와 전쟁의 여신 아테나가 모두 아티카를 원했다. 땅에서 태어난 최초의 왕 케크롭스는 이제 두 신이 자신의 나라를 두고 벌이는 경쟁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게 되었다.
 
아크로폴리스에 선 반인반사의 왕 케크롭스
 
 
1.2 두 신이 탐낸 아티카
 
먼저 아크로폴리스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포세이돈이었다. 바다의 신은 높은 바위 위에 올라 삼지창으로 땅을 힘껏 내리쳤다. 바위가 갈라진 자리에서 물이 솟아올랐고, 사람들은 그 물에서 바다와 같은 짠맛이 났다고 전했다. 포세이돈은 그렇게 자신이 바다와 항해를 지배하는 강대한 신임을 아티카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바다 가까이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의 선물은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것이었다.
 
뒤이어 아테나가 같은 곳에 나타났다. 여신은 케크롭스를 증인으로 세우고 땅에 올리브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뿌리는 바위 사이로 파고들었고 가지에는 은빛 잎이 돋아났다. 열매에서는 기름을 얻을 수 있었고, 나무는 음식과 등불, 제사에 두루 쓰일 수 있었다. 포세이돈이 거센 바다의 힘을 보여주었다면 아테나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가꾸며 살아갈 수 있는 선물을 내놓았다.
 
두 신이 모두 아티카를 자신의 땅이라 주장하자 다툼은 제우스에게까지 올라갔다. 제우스는 열두 신에게 어느 신이 이 땅을 차지할지 판정하도록 했다. 그 자리에서 케크롭스는 아테나가 처음으로 올리브나무를 심은 일을 증언했다. 이제 포세이돈이 남긴 바닷물과 아테나가 심은 올리브나무를 앞에 두고, 아티카의 운명을 정할 판정이 내려지려 하고 있었다.
 
삼지창의 포세이돈과 올리브를 심는 아테나
 
 
1.3 올리브나무의 승리
 
판정은 아테나의 승리로 끝났다. 아티카는 여신의 땅이 되었고, 도시는 그녀의 이름을 받아 아테나이라 불리게 되었다. 아크로폴리스의 올리브나무는 단순한 나무가 아니라 여신이 자신의 도시를 위해 남긴 첫 번째 선물로 여겨졌다. 사람들은 그 열매에서 기름을 짜고 등불을 밝히며 음식을 만들었다. 올리브나무가 세대를 이어 살아가는 것처럼 아테나와 도시의 관계도 오래 이어질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포세이돈은 판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은 아티카에 분노하여 바닷물을 밀어 올렸고, 트리아시아 평야를 물에 잠기게 했다고 전해진다. 아티카가 아테나의 땅이 되었다고 해서 바다의 신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훗날 아테나이 사람들은 아테나를 가장 중요한 수호신으로 섬기면서도 포세이돈에게도 제사를 바쳤고, 아크로폴리스에는 두 신과 관련된 오래된 흔적들이 함께 남았다.
 
케크롭스 역시 신들의 다툼이 남긴 흔적을 지켜보았다. 그의 도시는 아테나의 이름을 얻었지만 바다의 신과의 관계까지 끊어진 것은 아니었다. 훗날 에레크테우스 왕가의 운명 속에서도 포세이돈은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아테나와 포세이돈의 경쟁은 한 번의 판정으로 완전히 끝난 사건이 아니라, 아테나이 왕가의 오랜 이야기 속에 반복해서 모습을 드러낼 첫 장면이었다.
 
올리브나무 곁에서 승리를 인정받는 아테나
 
 
1.4 왕이 바뀌어도 남은 여신
 
케크롭스가 죽었을 때 그의 아들 에리시크톤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왕위는 케크롭스의 집안에서 곧바로 이어지지 못하고 크라나오스에게 넘어갔다. 크라나오스 역시 땅에서 태어난 존재라 전해졌으며, 그의 시대에 데우칼리온의 대홍수가 일어났다고도 한다. 그의 딸 아티스가 젊은 나이에 죽자 슬픔에 빠진 왕은 딸의 이름을 따서 나라를 아티스라 불렀고, 여기에서 아티카라는 이름이 비롯되었다는 전승도 생겨났다.
 
그러나 크라나오스도 오래 왕좌를 지키지 못했다. 암픽티온이 그를 몰아내고 왕이 되었으며, 십이 년이 흐른 뒤에는 암픽티온 역시 새로운 인물에게 쫓겨났다. 왕들은 계속 바뀌었지만 아크로폴리스에 심어진 올리브나무와 아테나의 자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도시의 중심에는 여전히 케크롭스가 증언한 여신의 선물이 남아 있었다.
 
암픽티온을 몰아낸 새 왕의 이름은 에리크토니오스였다. 그는 다른 왕들과 달리 평범한 인간의 혈통에서 태어난 존재가 아니었다. 아테나와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 그리고 아티카의 땅이 그의 탄생에 얽혀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아테나가 직접 지켜본 아이였다. 케크롭스 뒤로 잠시 끊어진 듯 보였던 땅과 여신의 관계가 이제 새로운 왕을 통해 다시 이어지려 하고 있었다.
 
아크로폴리스의 올리브나무를 바라보는 새 왕들
 
 
 

제2장 땅에서 이어진 왕가

2.1 아테나가 맡은 아이
 
어느 날 아테나는 무기를 만들기 위해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를 찾아갔다. 그러나 여신에게 마음을 품은 헤파이스토스가 그녀를 붙잡으려 했고, 아테나는 끝내 그를 뿌리쳤다. 그 과정에서 그의 씨가 여신의 다리에 묻었고, 아테나가 그것을 양털로 닦아 땅에 버리자 대지가 생명을 품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에리크토니오스였다. 그는 인간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왕자가 아니라 신과 아티카의 땅이 얽혀 태어난 아이였다.
 
아테나는 에리크토니오스를 외면하지 않았다. 여신은 아이를 자신의 보호 아래 두고 다른 신들에게조차 그의 존재를 감춘 채 길러, 마침내 불사의 존재로 만들고자 했다. 전승에서는 에리크토니오스 곁에 뱀이 있었다고도 하고, 그의 몸 일부가 뱀의 형상이었다고도 했다. 케크롭스처럼 아티카의 땅에서 태어난 존재에게 다시 뱀의 모습이 따라붙은 것이다.
 
아테나는 아이를 작은 상자에 넣어 케크롭스의 딸 판드로소스에게 맡기며 절대로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명했다. 판드로소스는 여신의 명령을 지켰지만, 아글라우로스와 헤르세에게는 상자 속의 비밀이 점점 견디기 어려운 유혹이 되었다. 신들이 알지 못하도록 숨겨져 있던 아이의 운명은 이제 케크롭스의 딸들이 금지된 상자를 열 것인지에 달려 있었다.
 
어린 에리크토니오스를 품에 안은 아테나
 
 
2.2 열어서는 안 되는 상자
 
판드로소스는 아테나의 명령을 지켰지만, 자매들은 끝내 호기심을 참지 못했다. 아글라우로스와 헤르세가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어린 에리크토니오스와 그의 몸을 감고 있는 뱀이 있었다. 어떤 전승에서는 아이 자신이 뱀과 뒤섞인 기묘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여신이 숨기려 했던 광경을 본 순간 자매들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들에게 닥친 결말 역시 평범하지 않았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상자 속의 뱀이 자매들을 죽였다고 하고, 다른 이야기에서는 아테나의 분노 때문에 두 사람이 미쳐 아크로폴리스의 높은 바위 아래로 몸을 던졌다고 전한다. 한때 케크롭스와 함께 여신의 도시가 탄생하는 순간을 지켜보았던 왕가에, 이번에는 아테나가 맡긴 비밀을 어긴 대가가 닥친 것이다.
 
아테나는 다시 에리크토니오스를 거두어 자신의 성역에서 길렀다. 아이는 이제 인간의 손을 떠나 여신의 직접적인 보호를 받으며 성장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자신의 기이한 탄생에 걸맞은 힘을 갖춘 청년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암픽티온을 몰아내고 아테나이의 왕좌를 차지했다. 상자 속에 감추어졌던 아이가 아테나의 도시를 다스리는 왕으로 돌아온 것이다.
 
상자 속 아이와 뱀을 발견한 두 자매
 
 
2.3 여신이 길러낸 왕
 
왕이 된 에리크토니오스는 자신을 길러준 아테나를 도시의 중심에 더욱 굳게 세웠다. 그는 아크로폴리스에 여신의 오래된 목상을 세우고 아테나를 위한 축제를 마련했다고 전해진다. 훗날 아테나이의 가장 중요한 축제가 되는 판아테나이아도 그의 이름과 연결되었다. 땅에서 태어나 여신의 손에서 자란 왕은 자신의 도시가 누구의 보호 아래 있는지를 사람들의 기억 속에 깊이 새겼다.
 
에리크토니오스는 물의 님프 프락시테아와 혼인해 판디온을 낳았고, 왕위는 아들에게 이어졌다. 판디온의 집안에서도 여러 비극이 일어났다. 그의 딸 프로크네와 필로멜라는 트라키아 왕 테레우스와 얽혀 끔찍한 사건을 겪었고, 끝내 새들로 변했다는 이야기를 남겼다. 아테나이 왕가가 다른 지역의 왕가와 혼인으로 이어지면서 그들의 비극도 도시의 전승 속으로 들어왔다.
 
판디온이 죽은 뒤 그의 두 아들은 서로 다른 역할을 맡았다. 에레크테우스가 아테나이의 왕이 되었고, 부테스는 아테나와 포세이돈을 섬기는 제사장이 되었다. 한 사람은 왕좌를, 다른 한 사람은 신들의 제사를 이어받은 것이다. 그러나 에레크테우스가 다스리던 아테나이에는 오래전 아테나와 포세이돈의 경쟁을 떠올리게 하는 새로운 전쟁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테나의 목상 앞에 선 왕 에리크토니오스
 
 
2.4 딸을 바친 에레크테우스
 
에레크테우스가 왕이 되었을 때 아테나이는 서쪽의 엘레우시스와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엘레우시스 사람들은 트라키아에서 에우몰포스를 불러들였고, 그는 큰 군대를 이끌고 그들을 도왔다. 더구나 에우몰포스는 포세이돈의 아들이었다. 전쟁이 길어지자 에레크테우스는 신탁을 찾아가 어떻게 해야 아테나이가 승리할 수 있는지 물었다.
 
신의 대답은 잔혹했다. 왕의 딸 가운데 하나를 희생해야 도시가 살아남는다는 것이었다. 에레크테우스는 끝내 가장 어린 딸을 제물로 바쳤다. 전승에 따르면 나머지 딸들은 누구 한 사람이 죽으면 모두 함께 죽겠다고 맹세했기 때문에 자매를 따라 목숨을 버렸다고 한다. 왕은 가족을 잃은 뒤 전장으로 나갔고, 마침내 에우몰포스를 쓰러뜨렸다. 아테나이는 살아남았지만 승리의 대가는 너무 컸다.
 
아들을 잃은 포세이돈은 분노했다. 바다의 신은 에레크테우스와 그의 집안에 복수했고 왕은 목숨을 잃었다. 아테나이가 처음 태어날 때 아테나에게 패했던 포세이돈이 여러 세대가 지난 뒤 왕가의 운명 속에 다시 나타난 셈이었다. 에레크테우스 뒤에도 왕가는 계속 이어졌지만, 이제 아테나이의 왕좌는 또 다른 추방과 귀환의 시대를 맞게 된다.
 
전쟁을 앞두고 딸과 마지막 인사를 하는 왕
 
 
 

제3장 테세우스의 왕국

3.1 쫓겨난 판디온
 
에레크테우스가 죽은 뒤 그의 아들 케크롭스가 왕위를 이었고, 그 뒤에는 다시 판디온이라는 이름을 가진 왕이 나타났다. 그러나 판디온은 왕가의 다른 갈래인 메티온의 아들들에게 쫓겨나 아테나이를 떠나야 했다. 그는 서쪽의 메가라로 달아나 그곳의 왕 필라스에게 몸을 의탁했고, 마침내 그의 딸 필리아와 혼인해 메가라의 왕위까지 이어받았다.
 
망명지에서 판디온에게 네 아들이 태어났다. 아이게우스와 팔라스, 니소스, 뤼코스였다. 아버지는 자신의 나라를 되찾지 못한 채 죽었지만 아들들은 아테나이를 포기하지 않았다. 네 형제는 군대를 모아 아티카로 돌아와 메티온의 아들들을 몰아냈다. 오랫동안 빼앗겼던 아버지의 왕국이 다시 판디온의 아들들에게 돌아왔다.
 
형제들은 땅을 나누어 다스렸지만 가장 큰 권력을 잡은 것은 아이게우스였다. 그러나 그의 왕좌는 불안했다. 형제들과 그들의 자손이 주변에 있었고, 정작 아이게우스 자신에게는 왕위를 이어줄 아들이 없었다. 두 번 혼인했지만 후계자를 얻지 못한 왕은 점점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결국 그는 자신의 혈통이 이어질 수 있는지를 묻기 위해 델포이의 아폴론에게로 향했다.
 
메가라로 향하는 망명 왕 판디온과 가족
 
 
3.2 바위 아래의 검과 샌들
 
델포이에서 받은 신탁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아이게우스는 뜻을 풀지 못한 채 아테나이로 돌아가다가 트로이젠의 현명한 왕 피테우스를 찾아갔다. 피테우스는 신탁의 의미를 알아차렸고 아이게우스에게 술을 마시게 한 뒤 자신의 딸 아이트라와 함께하도록 했다. 전승에 따라 같은 밤 아이트라가 포세이돈과도 관계를 맺었다고 하여, 태어날 아이에게는 인간 왕과 바다의 신이라는 두 아버지의 이야기가 함께 따라붙게 되었다.
 
아이게우스는 아이트라에게 아들이 태어나더라도 아버지가 누구인지 곧바로 알려주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는 커다란 바위를 들어 올리고 그 아래에 자신의 검과 샌들을 넣었다. 아이가 자라 스스로 바위를 움직일 만큼 강해지면 그 물건들을 꺼내 아테나이로 보내라는 것이었다. 검과 샌들은 훗날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증표였다.
 
아이게우스는 혼자 아테나이로 돌아갔고, 아이트라는 트로이젠에서 아들을 낳았다. 그의 이름이 테세우스였다. 소년은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 채 성장했지만 누구보다 강한 청년이 되었다. 마침내 어머니가 바위 아래의 비밀을 알려주자 테세우스는 거대한 돌을 밀어내고 검과 샌들을 꺼냈다. 이제 그가 향해야 할 곳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아버지의 도시 아테나이였다.
 
바위를 들어 검과 샌들을 꺼내는 테세우스
 
 
3.3 아테나이에 나타난 왕자
 
아이트라는 위험한 육로보다 배를 타고 아테나이로 가라고 권했지만 테세우스는 육지를 택했다. 코린토스 지협에서 아티카로 이어지는 길에는 여행자들을 해치는 악당들이 있었고, 그는 그들을 차례로 쓰러뜨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마침내 아테나이에 도착했을 때 아이게우스는 낯선 청년이 자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왕 곁에 있던 메데이아는 그가 장차 왕위를 위협할 존재임을 먼저 알아차렸다.
 
메데이아는 식사 자리에서 테세우스에게 독이 든 잔을 건네려 했다. 그 순간 테세우스가 고기를 자르기 위해 검을 꺼내자 아이게우스는 오래전 트로이젠의 바위 아래 남겨두었던 자신의 검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왕은 아들이 독을 마시기 전에 잔을 쳐냈고, 테세우스를 자신의 아들로 인정했다. 계획이 드러난 메데이아는 아테나이를 떠났지만, 새로운 후계자의 등장은 또 다른 왕위 다툼을 불러왔다.
 
아이게우스의 동생 팔라스와 그의 오십 아들은 왕위를 자신들이 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테세우스를 제거하려 했다. 그러나 그들의 계획은 미리 드러났고 테세우스는 공격을 물리쳤다. 뒤이어 그는 마라톤 지방을 어지럽히던 사나운 황소까지 제압해 아테나이로 끌고 왔다. 이제 아이게우스의 후계자로 자리 잡은 그의 앞에는 왕실 내부의 다툼보다 더 오래된 문제, 크레타의 미노스에게 젊은이들을 보내야 하는 굴욕이 기다리고 있었다.
 
검을 보고 테세우스를 알아보는 아이게우스
 
 
3.4 하나가 된 아티카
 
미노스의 아들 안드로게오스의 죽음으로 시작된 원한과 전쟁 뒤, 아테나이는 크레타의 왕 미노스에게 젊은이들을 보내야 하는 굴욕을 겪고 있었다. 테세우스는 희생자들과 함께 크레타로 건너가 미궁에 들어갔고, 미노타우로스를 쓰러뜨린 뒤 살아 돌아왔다. 그러나 귀환하는 배의 검은 돛을 흰 돛으로 바꾸겠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아들이 죽었다고 믿은 아이게우스는 절망하여 바다에 몸을 던졌고, 테세우스는 승리와 동시에 아버지를 잃은 채 왕이 되었다.
 
왕위에 오른 테세우스는 아티카 곳곳에 흩어진 공동체들을 찾아다녔다. 각 지역에는 저마다의 지도자와 관습이 있었지만 그는 이들이 하나의 중심을 가져야 한다고 설득했다. 유력한 사람들에게는 명예를 보장하고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함께 도시를 이루는 새로운 질서를 약속했다. 마침내 여러 마을과 공동체는 아테나이를 자신들의 공동 중심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흩어져 있던 아티카는 하나의 아테나이로 묶였다고 전해진다. 케크롭스 시대의 작은 성채와 여러 마을이 테세우스의 시대에 하나의 공동체로 모인 것이다. 그러나 테세우스의 삶에는 아직 수많은 모험과 비극이 남아 있었다. 아마존과의 전쟁, 페이리토오스와 함께한 모험, 명계로 향한 여정과 그의 최후는 별도의 「테세우스의 모험」으로 이어진다.
 
아티카의 여러 지도자를 모으는 왕 테세우스
 
 
 

제4장 테세우스 이후의 아테나이

4.1 왕좌를 잃은 테세우스
 
테세우스가 강한 왕으로 남아 있는 동안에는 하나가 된 아테나이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듯했다. 그러나 그의 모험이 계속되면서 왕이 도시를 비우는 시간도 길어졌다. 친구 페이리토오스와 함께 아직 어린 스파르타의 헬레네를 데려온 사건은 특히 큰 화를 불렀다. 테세우스가 다시 페이리토오스와 함께 명계로 향해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하자, 헬레네의 오빠들인 디오스쿠로이가 여동생을 되찾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아티카로 쳐들어왔다.
 
디오스쿠로이는 헬레네를 찾아내고 테세우스에게 반감을 품고 있던 메네스테우스를 왕좌에 올렸다. 한때 흩어진 아티카의 공동체들을 하나로 모았던 테세우스의 왕국은 그가 없는 사이 다른 왕의 손에 넘어갔다. 훗날 명계에서 빠져나온 테세우스가 아테나이로 돌아왔지만 상황은 이미 달라져 있었다. 메네스테우스는 사람들의 지지를 얻고 있었고, 테세우스는 자신의 왕위를 되찾을 수 없었다.
 
결국 테세우스는 아들 데모폰과 아카마스를 에우보이아의 왕 엘레페노르에게 보내고 자신은 스키로스섬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자신과 관련된 오래된 영지가 있었지만, 스키로스의 왕 리코메데스는 그를 경계했다. 리코메데스는 땅을 보여주겠다며 테세우스를 높은 곳으로 데려간 뒤 절벽 아래로 밀어 죽였다고 전해진다. 아티카를 하나로 모아 아테나이의 가장 위대한 왕 가운데 하나가 되었던 테세우스는 끝내 자신의 도시로 돌아오지 못한 채 타향에서 생을 마쳤다.
 
스키로스 절벽에서 리코메데스와 마주한 테세우스
 
 
4.2 트로이로 간 아테나이인들
 
테세우스를 대신해 왕이 된 메네스테우스의 시대에 트로이 전쟁이 일어났다. 《일리아스》는 아테나이 사람들을 ‘위대한 에레크테우스의 백성’이라 부르며, 메네스테우스가 그들을 이끌었다고 노래한다. 그는 전차와 보병을 질서 있게 배치하는 능력이 뛰어난 지휘관으로 묘사되며, 아테나이 군은 오십 척의 배를 타고 그리스 연합군에 참가했다. 케크롭스와 에레크테우스의 오래된 왕국이 이제 바다 건너 트로이의 전쟁터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테세우스의 아들들도 아버지의 나라와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었다. 후대 전승에서는 데모폰과 아카마스 역시 트로이 원정에 참가했다고 한다. 특히 그들에게는 전쟁과 별개로 되찾아야 할 사람이 있었다. 할머니 아이트라는 디오스쿠로이가 헬레네를 되찾아갈 때 함께 포로로 끌려갔고, 이후 헬레네를 따라 트로이까지 와 있었다.
 
트로이가 함락되자 데모폰과 아카마스는 마침내 아이트라를 찾아냈다. 데모폰은 아가멤논에게 할머니를 풀어달라고 청했고, 아이트라는 긴 포로 생활을 끝내고 손자들과 함께 그리스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테세우스는 이미 세상에 없었지만 그의 어머니와 두 아들이 트로이의 폐허에서 다시 만났다. 아테나이 왕가의 이야기가 트로이 전쟁의 마지막 순간과 맞닿는 장면이었다.
 
트로이에서 할머니 아이트라를 찾은 두 형제
 
 
4.3 돌아온 테세우스의 아들
 
트로이 전쟁이 끝날 무렵 메네스테우스의 시대도 막을 내렸다. 전승에 따르면 메네스테우스는 트로이에서 죽어 다시 아테나이의 왕좌로 돌아오지 못했다. 왕좌가 비자 전쟁에 참가했던 테세우스의 아들들도 아버지의 나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두 형제 가운데 데모폰이 왕위를 이어받으면서, 한때 메네스테우스에게 밀려났던 테세우스의 왕통이 다시 아테나이를 다스리게 되었다.
 
데모폰의 시대에 헤라클레스의 자식들이 에우리스테우스에게 쫓겨 아티카로 피신했다. 여러 도시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한 그들은 마라톤의 제단에 몸을 의탁했고, 에우리스테우스는 그들을 넘겨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데모폰은 자신의 땅으로 도움을 청해온 사람들을 적에게 내어줄 수 없다고 맞섰다. 에우리스테우스가 군대를 이끌고 아티카로 쳐들어오자 결국 전쟁이 벌어졌다.
 
아테나이는 헤라클레스의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 싸웠고, 에우리스테우스는 패배했다. 아버지 테세우스가 왕좌를 잃을 무렵 아테나이를 떠나야 했던 데모폰은 이렇게 왕으로 돌아와 자신의 나라를 지켰다. 그의 뒤로 테세우스의 후손들이 몇 세대 동안 왕위를 이어갔다. 메네스테우스에게 한때 끊겼던 왕통은 다시 이어졌지만, 이 오래된 혈통에도 머지않아 마지막 왕이 나타나게 된다.
 
아테나이 왕좌에 돌아온 데모폰
 
 
4.4 마지막 왕 코드로스
 
데모폰 뒤로 여러 세대에 걸쳐 테세우스의 후손들이 아테나이의 왕위를 이어갔고, 그 왕통은 옥신테스와 그의 아들 티모이테스에게까지 이어졌다. 티모이테스는 테세우스 혈통에서 나온 마지막 아테나이 왕으로 기억되었다. 이후 필로스 왕가의 후손으로 아티카에 들어온 멜란토스가 티모이테스를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으며, 오랫동안 이어졌던 테세우스의 왕통은 여기에서 끝났다.
 
멜란토스의 뒤를 이은 아들이 코드로스였다. 그의 시대에 펠로폰네소스에서 올라온 도리아인들이 아티카를 위협했다. 전쟁을 앞둔 적들이 델포이의 신탁을 묻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테나이의 왕을 죽이지 않는다면 도리아인들이 승리하리라는 것이었다. 이 소식을 알게 된 코드로스는 자신의 목숨 하나로 도시를 구할 수 있음을 깨닫고 왕의 옷을 벗은 뒤 평범한 사람처럼 변장하여 적진 가까이로 향했다.
 
코드로스는 적군 병사들과 일부러 다툼을 벌였고, 그의 정체를 알지 못한 병사는 왕을 죽였다. 뒤늦게 죽은 사람이 코드로스라는 사실을 알게 된 도리아인들은 신탁에 따라 자신들이 승리할 수 없음을 깨닫고 물러났다고 전해진다. 자신의 죽음으로 아테나이를 지킨 코드로스는 후대에 도시의 마지막 왕으로 기억되었다. 케크롭스에서 시작해 수많은 왕을 거쳐 이어진 아테나이의 신화적 왕정은 그렇게 한 왕의 희생과 함께 마지막 장면을 맞았다.
 
평민으로 변장해 적진으로 향하는 코드로스
【작성】 가담항설 - 떠도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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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