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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나 – 지혜와 전쟁의 여신
제우스의 머리에서 완전한 무장을 갖춘 채 태어난 아테나는 지혜와 전략, 도시와 전쟁을 맡은 올림포스의 여신이 된다. 포세이돈과 아티카의 수호권을 다투어 올리브나무를 선물하고 자신의 이름을 지닌 도시 아테나이를 얻은 그녀는 페르세우스와 헤라클레스, 이아손 등 수많은 영웅의 길을 이끈다. 트로이 전쟁에서는 그리스군의 편에 서서 전쟁의 흐름을 바꾸고, 마지막에는 자신이 아끼던 오디세우스를 이타카로 돌아오게 하여 오랜 싸움에 종지부를 찍는다.
1.1 메티스를 삼킨 제우스
제우스가 성장하여 아버지 크로노스에게 맞설 준비를 하던 무렵, 그의 곁에는 지혜로운 여신 메티스가 있었다. 오케아노스의 딸인 메티스는 누구보다 뛰어난 지혜와 계략을 지닌 여신이었다. 그녀는 크로노스가 삼켜 버린 자식들을 다시 토해 내게 할 방법을 제우스에게 알려 주었고, 제우스는 그 도움으로 포세이돈과 하데스, 헤라와 데메테르, 헤스티아를 되찾았다. 이후 형제들과 힘을 합친 제우스는 티탄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새로운 하늘의 지배자가 되었다.
전쟁이 끝난 뒤 제우스는 자신을 도왔던 메티스를 가까이했고, 마침내 그녀는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가이아와 우라노스는 제우스에게 두려운 예언을 전했다. 메티스가 먼저 매우 뛰어난 딸을 낳고, 그 뒤에 태어날 아들은 아버지보다 강해져 하늘의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우라노스가 크로노스에게 밀려나고 다시 크로노스가 제우스에게 왕좌를 빼앗겼던 일을 아는 제우스에게 그것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말이었다.
제우스는 메티스를 안심시킨 뒤 그녀를 자신의 몸속으로 삼켜 버렸다. 이미 아이를 품고 있던 메티스는 그의 몸 안으로 사라졌지만, 태어나지 않은 생명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제우스는 아들이 자신을 몰아낼 운명을 막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그의 머릿속에서는 전에 없던 고통이 시작되었다. 자신이 삼킨 지혜로운 여신과 그 안에서 자라고 있던 딸이 이제 세상 밖으로 나올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메티스를 삼키는 제우스
1.2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나다
어느 날 제우스는 머리가 갈라질 듯한 고통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천둥을 다루는 신들의 왕조차 견디기 어려운 아픔이었다. 마침내 그는 자신의 머리를 열어 달라고 명했다. 한 전승에서는 헤파이스토스가 거대한 도끼를 들어 제우스의 머리를 갈랐다고 하며, 다른 전승에서는 프로메테우스가 그 일을 맡았다고 전한다. 누가 도끼를 들었든, 머리가 열리는 순간 올림포스의 신들 앞에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광경이 펼쳐졌다.
갈라진 제우스의 머리에서 한 여신이 힘찬 함성과 함께 뛰쳐나왔다. 갓난아이가 아니라 이미 다 자란 모습이었으며, 머리에는 투구를 쓰고 한 손에는 창을, 다른 손에는 방패를 들고 있었다. 완전한 무장을 갖춘 여신이 모습을 드러내자 올림포스의 신들이 놀라 바라보았고, 그녀의 탄생에 하늘과 땅까지 흔들렸다고 전해졌다. 그렇게 세상에 나타난 여신이 바로 아테나였다.
아테나는 어머니 메티스의 지혜와 아버지 제우스의 힘을 함께 이어받은 존재였다. 그러나 그녀가 맡은 전쟁은 분노에 사로잡혀 무작정 적에게 달려드는 싸움과 달랐다. 아테나는 전장을 살피고 적의 약점을 찾아내며, 도시와 백성을 지키기 위해 가장 알맞은 방법을 선택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혜와 무장을 함께 갖추었던 그녀는 곧 제우스가 가장 신뢰하는 딸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제우스의 머리에서 무장한 채 태어나는 아테나
1.3 팔라스라는 이름
한 전승에 따르면 아테나는 바다의 신 트리톤의 곁에서 지내며 그의 딸 팔라스와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둘은 서로 창과 방패를 겨루며 무예를 익혔고, 누구보다 친밀한 벗이자 좋은 상대가 되었다. 둘의 겨루기는 서로를 해치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자신의 솜씨를 시험하고 더욱 뛰어난 전사가 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평소처럼 시작된 겨루기가 뜻하지 않은 비극으로 이어졌다.
팔라스가 아테나를 향해 공격하려는 순간, 이를 지켜보던 제우스가 딸을 염려하여 아이기스를 내밀었다.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무서운 방패에 팔라스는 놀라 몸을 멈추었고, 바로 그 순간 아테나가 내민 무기가 그녀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승부에 몰두하던 아테나는 쓰러진 팔라스를 보고서야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가까운 벗을 자신의 손으로 죽인 아테나에게 그것은 어떤 승리보다도 쓰라린 일이었다.
아테나는 팔라스의 죽음을 오래도록 슬퍼했다. 그녀를 잊지 않기 위해 벗의 모습을 본뜬 신상을 만들고 그 위에 자신의 아이기스를 둘러 주었다고 전해지며, 이 신상이 훗날 ‘팔라디온’이라 불리게 되었다. 또한 아테나가 죽은 벗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에 더하여 ‘팔라스 아테나’라 불리게 되었다는 전승도 남았다. 훗날 도시의 운명을 지켜 주는 신성한 상징이 되고 트로이의 멸망과도 연결되는 팔라디온의 이야기는 이렇게 아테나가 잃어버린 벗의 기억에서 시작되었다.
쓰러진 팔라스를 바라보는 아테나
1.4 거인들과의 전쟁
올림포스의 신들이 하늘의 지배권을 굳혀 가던 무렵, 또 하나의 거대한 전쟁이 일어났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낳은 거인들, 기간테스가 올림포스의 신들에게 맞서 일어난 것이다. 거인들은 거대한 바위와 나무를 무기로 삼아 신들을 공격했다. 그러나 그들을 완전히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신들만의 힘으로는 부족하며 인간 영웅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예언이 있었다. 그 때문에 제우스의 아들 헤라클레스도 신들과 함께 전장에 나섰다.
아테나는 헤라클레스에게 거인들의 약점을 알려 주면서 자신도 직접 싸움에 뛰어들었다. 알키오네우스는 자신이 태어난 팔레네 땅에 있는 동안에는 죽지 않았으므로, 아테나는 헤라클레스에게 그를 고향 밖으로 끌어내라고 가르쳐 주었다. 또한 그녀는 앞서 등장한 트리톤의 딸 팔라스와는 전혀 다른 존재인 거인 팔라스를 직접 쓰러뜨렸다. 달아나는 엔켈라도스에게는 거대한 시칠리아섬을 던져 그를 땅 아래에 눌러 버렸다는 전승도 남았다.
이 전쟁에서 아테나는 지혜와 무력을 함께 갖춘 전쟁의 여신다운 모습을 드러냈다. 적의 약점을 먼저 알아내어 헤라클레스에게 승리할 방법을 알려 주면서도, 필요한 순간에는 직접 창과 방패를 들고 가장 위험한 적과 맞섰다. 격정과 살육을 상징하는 아레스와 달리 아테나는 싸움의 방법과 결과를 판단하며 움직였다. 이후 수많은 인간 영웅이 위험한 전투를 앞두고 그녀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 것은 강한 힘뿐 아니라 승리에 이르는 길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인 팔라스와 맞서는 아테나
2.1 도시를 둘러싼 두 신의 경쟁
그리스의 아티카 땅에는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그곳을 다스리던 왕은 땅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케크롭스였다. 아직 도시의 이름조차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았던 어느 날, 두 올림포스 신이 이 땅을 자신의 보호 아래 두고 싶어 했다. 한쪽은 바다를 지배하는 포세이돈이었고, 다른 한쪽은 지혜와 도시를 지키는 아테나였다.
먼저 나타난 포세이돈은 자신의 힘을 보여 주었다. 그는 아크로폴리스의 바위를 삼지창으로 내리쳤고, 갈라진 바위에서 바닷물이 솟아올랐다. 포세이돈이 얼마나 강대한 신인지 보여 주기에 충분한 광경이었다. 어떤 후대의 전승에서는 그가 사람들에게 말을 처음 보여 주었다고도 한다. 포세이돈은 바다와 말을 통해 사람들에게 힘과 이동, 전쟁에서의 우위를 가져다줄 수 있는 신이었다.
곧 아테나도 아크로폴리스에 모습을 드러냈다. 두 신 모두 자신이 이 땅의 수호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어느 한쪽도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결국 누가 사람들에게 더 귀중한 선물을 줄 수 있는지 보여 주어 결정하기로 했다. 케크롭스와 그 땅의 사람들 앞에서 바다의 신과 지혜의 여신이 맞섰고, 앞으로 수천 년 동안 이어질 도시의 이름이 그 선택에 달려 있었다.
아크로폴리스에서 마주 선 아테나와 포세이돈
2.2 올리브나무를 선물하다
포세이돈의 힘을 확인한 뒤 아테나는 조용히 땅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창을 땅에 꽂거나 손을 뻗었다고 전해지는데, 그 자리에서 작은 나무 한 그루가 자라기 시작했다. 가느다란 줄기가 뻗고 은빛을 띤 잎이 돋아나더니 곧 튼튼한 올리브나무가 되었다. 사람들은 처음 보는 나무를 바라보며 아테나가 무엇을 보여 주려는지 기다렸다.
아테나는 올리브 열매에서 기름을 얻을 수 있으며 그것으로 음식을 만들고 등불을 밝힐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나무는 쉽게 죽지 않았고 오랫동안 열매를 맺었다. 목재도 사용할 수 있었으며, 메마른 아티카의 땅에서도 잘 자랐다. 포세이돈의 선물이 눈앞에서 강대한 힘을 보여 주었다면 아테나의 선물은 사람들이 해마다 키우고 거두면서 삶을 이어 갈 수 있는 것이었다.
이제 선택의 시간이 왔다. 전승마다 판정의 과정에는 차이가 있지만, 한 전승에서는 제우스가 열두 신을 판정자로 세웠고 케크롭스가 아테나가 올리브나무를 심었다고 증언한다. 열두 신은 마침내 아테나의 손을 들어 주었다. 전쟁에서도 강한 여신이었지만 아테나에게 승리를 안겨 준 것은 창과 방패가 아니었다. 그녀에게 이 도시를 안겨 준 것은 긴 세월 동안 사람들의 삶을 지탱할 한 그루의 나무였다.
아크로폴리스에 올리브나무를 돋우는 아테나
2.3 아테나의 도시가 되다
판정이 내려지자 아티카는 아테나의 보호 아래 놓였다. 사람들은 자신들을 지켜 줄 여신의 이름을 따라 도시를 ‘아테나이’라 부르게 되었다. 아크로폴리스의 높은 언덕은 여신의 거룩한 장소가 되었고, 사람들이 바라보는 곳마다 아테나의 흔적이 남았다. 올리브나무는 단순한 나무가 아니라 여신이 도시에 남긴 약속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포세이돈은 패배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부 전승에서는 그가 분노하여 아티카의 일부 지역에 바닷물을 밀어 보내거나 땅을 괴롭혔다고 한다. 사람들은 바다의 신 역시 함부로 소홀히 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테나이가 아테나의 도시가 된 뒤에도 포세이돈을 위한 제사와 숭배는 이어졌고, 두 신의 흔적은 아크로폴리스에서 나란히 기억되었다.
아테나는 이제 자신이 지킬 도시를 얻었다. 그녀는 성벽과 병사만을 지키는 여신이 아니었다. 직조와 도기, 목공과 여러 기술을 익히는 장인들 역시 그녀에게 도움을 청했고, 시민들은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지혜를 구했다. 전쟁이 닥치면 투구를 쓰고 도시 앞에 서고 평화로운 날에는 사람들이 삶을 가꾸도록 돕는 여신, 그것이 아테나이가 자신의 수호신에게 기대한 모습이었다.
아테나를 수호신으로 맞이하는 아테나이 사람들
2.4 에리크토니오스를 지키다
아테나이 왕가와 아테나의 관계는 에리크토니오스의 탄생 이야기에서 더욱 깊어졌다. 어느 날 아테나는 무기를 만들기 위해 헤파이스토스를 찾아갔다. 그러나 헤파이스토스는 여신에게 욕망을 품고 다가왔고, 결혼하지 않기로 한 아테나는 그를 뿌리치고 달아났다. 그 과정에서 헤파이스토스의 씨앗이 땅에 떨어졌고, 대지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그 아이가 에리크토니오스였다.
아테나는 뜻밖에 태어난 아이를 외면하지 않았다. 그를 남몰래 거두어 기르기로 하고 상자 안에 넣어 케크롭스의 딸들에게 맡겼다. 절대로 상자를 열어 보지 말라는 명령도 함께 내렸다. 그러나 판드로소스를 제외한 자매들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는 아기 에리크토니오스와 함께 뱀이 있었고, 놀란 자매들은 광기에 사로잡혀 아크로폴리스에서 몸을 던졌다고 전해진다.
아테나는 다시 아이를 자신의 신전으로 데려가 보호했다. 에리크토니오스는 성장하여 마침내 아테나이의 왕이 되었고, 아크로폴리스에 아테나의 신상을 세웠으며 여신을 기리는 축제도 마련했다고 한다. 남편도 자식도 두지 않은 처녀신이었지만 아테나는 한 인간 아이의 보호자가 되어 도시의 왕가를 지켜 주었다. 그 뒤 아테나와 아테나이는 단순히 이름을 나눈 신과 도시를 넘어 서로의 운명을 함께하는 존재가 되었다.
어린 에리크토니오스를 품에 안은 아테나
3.1 페르세우스의 손을 이끌다
세리포스의 왕 폴리덱테스에게 메두사의 머리를 가져오라는 명령을 받은 페르세우스는 거의 불가능한 모험에 나섰다. 메두사는 세 고르곤 자매 가운데 유일하게 죽을 수 있는 존재였지만, 그녀의 얼굴을 직접 바라본 사람은 그대로 돌이 되어 버렸다. 아무리 뛰어난 검술을 가진 영웅이라도 정면으로 다가갈 수 없는 상대였다. 페르세우스가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적을 만났을 때 아테나와 헤르메스가 그의 길잡이가 되었다.
두 신의 도움으로 필요한 도구를 마련한 페르세우스는 마침내 고르곤들이 잠들어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는 메두사의 얼굴을 직접 보지 않고 빛나는 청동 방패에 비친 모습만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아테나는 그의 곁에서 메두사가 어디에 있는지 살피게 하고 손을 이끌어 정확한 순간을 알려 주었다고 전해진다. 페르세우스는 거울처럼 비친 모습에만 시선을 둔 채 검을 휘둘러 마침내 메두사의 목을 베었다.
위험한 모험을 마친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의 머리를 아테나에게 바쳤다. 여신은 그것을 자신의 아이기스에 달았고, 고르곤의 무서운 얼굴은 이후 아테나를 상징하는 가장 강력한 표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페르세우스가 메두사를 쓰러뜨릴 수 있었던 것은 누구보다 강해서가 아니었다.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을 직접 바라보지 않고, 눈앞의 적을 다른 방법으로 살피며 정확한 순간을 기다렸기 때문이다. 아테나가 영웅에게 가르쳐 준 것은 바로 그런 싸움의 지혜였다.
방패에 비친 메두사를 바라보는 페르세우스와 아테나
3.2 헤라클레스와 함께 싸우다
제우스의 아들 헤라클레스가 에우리스테우스의 명령을 받아 여러 과업을 수행할 때 아테나는 그의 곁에 자주 나타났다. 헤라클레스는 인간 가운데 누구보다 강했지만 모든 문제를 힘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스팀팔로스 호숫가의 무서운 새들을 쫓아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수많은 새가 울창한 숲과 습지 깊숙이 숨어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강한 영웅이라도 활을 겨눌 대상을 제대로 찾을 수 없었다.
아테나는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청동 크로탈라를 헤라클레스에게 건넸다. 영웅이 높은 곳에 올라 그것을 힘껏 울리자 날카롭고 요란한 소리가 호숫가 전체에 퍼졌다. 숲속에 숨어 있던 새들은 놀라 한꺼번에 하늘로 날아올랐고, 그제야 헤라클레스는 활을 들어 날아오르는 새들을 쏘거나 멀리 쫓아낼 수 있었다. 힘으로 숲을 뒤지는 대신 적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도록 만든 것이 아테나가 마련한 방법이었다.
아테나의 도움은 헤라클레스의 과업이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케르베로스를 데려오기 위해 살아 있는 몸으로 명계에 내려갔을 때도 헤르메스와 아테나가 그의 길을 도왔다. 에우리스테우스가 내린 어려운 명령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아테나는 여러 차례 헤라클레스가 위험을 벗어나도록 도왔다. 인간 가운데 가장 강한 영웅조차 홀로 모든 시련을 헤쳐 나간 것은 아니었다. 힘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지 알려 준 아테나는 헤라클레스가 수많은 과업을 넘어 마침내 신들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그의 든든한 조력자로 남았다.
헤라클레스에게 청동 크로탈라를 건네는 아테나
3.3 아르고호를 만든 여신
이올코스의 왕자 이아손이 황금 양털을 찾아 먼 콜키스로 떠나게 되었을 때, 그에게는 바다를 건널 특별한 배가 필요했다. 그리스 곳곳에서 영웅들이 모여들었지만 수많은 사람을 태우고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바다를 건널 배부터 만들어야 했다. 배를 만드는 일을 맡은 장인은 아르고스였고, 아테나는 그의 곁에 서서 배의 건조를 도왔다.
여신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진 배는 장인의 이름을 따라 ‘아르고호’라 불렸다. 전승에 따르면 아테나는 배의 건조 방법을 알려 주었을 뿐 아니라 도도나의 신성한 참나무 일부를 선수에 넣도록 하여 배가 위험을 알려 줄 수 있게 했다고도 한다. 마침내 배가 완성되자 헤라클레스와 오르페우스, 카스토르와 폴리데우케스 등 당대의 이름난 영웅들이 차례로 올라탔다.
아르고호가 출항한 뒤에도 아테나의 도움은 이어졌다. 영웅들이 부딪칠 듯한 바위 사이를 지나야 할 때 여신이 배를 밀어 주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아테나는 영웅을 대신해 모험을 완성해 주지는 않았다. 배를 만들 방법과 위험을 통과할 기회를 마련할 뿐, 마지막 선택과 행동은 인간에게 맡겼다. 이렇게 아테나는 페르세우스와 헤라클레스에 이어 또 다른 세대의 영웅들이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길에도 함께했다.
아르고호를 만드는 장인들을 돕는 아테나
3.4 벨레로폰에게 건넨 황금 고삐
코린토스의 영웅 벨레로폰에게는 인간의 힘만으로 붙잡기 어려운 존재가 있었다. 바로 날개 달린 말 페가소스였다. 벨레로폰은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페가소스를 자신의 말로 삼고 싶었지만 아무리 애써도 붙잡을 방법을 찾지 못했다. 마침내 그는 신들의 도움을 구했고, 어느 날 아테나의 제단 근처에서 잠이 들었다. 그날 밤 그의 꿈속에 투구를 쓴 여신 아테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테나는 벨레로폰에게 황금으로 된 고삐를 내밀며 이것을 사용해 페가소스를 길들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잠에서 깨어난 벨레로폰은 자신의 곁에 실제로 황금 고삐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페가소스가 물을 마시러 찾아오는 샘으로 가서 조심스럽게 기다렸다. 그리고 여신이 준 고삐를 이용해 마침내 날개 달린 말을 길들였고, 인간이 걸어서 갈 수 없는 하늘로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다.
페가소스를 얻은 벨레로폰은 훗날 불을 뿜는 키마이라와 맞섰다. 날개 달린 말을 타고 하늘에서 공격할 수 있게 된 그는 지상에서 상대하기 어려운 괴물을 마침내 쓰러뜨렸다. 이번에도 아테나는 자신이 직접 영웅의 싸움을 대신하지 않았다. 페르세우스에게는 메두사를 쓰러뜨릴 방법을, 헤라클레스에게는 필요한 도구와 지혜를, 아르고나우타이에게는 바다를 건널 배를 마련해 주었던 것처럼 벨레로폰에게는 하늘로 오를 수 있는 황금 고삐를 건넸다.
벨레로폰에게 황금 고삐를 건네는 아테나
4.1 파리스가 선택하지 않은 여신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에리스가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는 황금 사과를 던지면서 새로운 싸움이 시작되었다. 헤라와 아테나, 아프로디테가 모두 사과의 주인이라고 주장하자 제우스는 직접 판단하기를 피했다. 세 여신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찾아가 그가 누구에게 사과를 줄 것인지 결정하도록 했다.
여신들은 파리스에게 각자의 선물을 약속했다. 헤라는 강대한 왕권을, 아테나는 전쟁에서의 승리와 뛰어난 능력을 제시했고,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얻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를 선택하여 황금 사과를 그녀에게 건넸다. 그날 이후 헤라와 아테나는 파리스와 그가 속한 트로이에 등을 돌렸다.
그 선택의 끝에는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가 있었다. 파리스가 헬레네와 함께 트로이로 돌아가자 그녀를 되찾기 위해 그리스의 왕과 영웅들이 모였고, 마침내 거대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헤라와 아테나는 자연스럽게 그리스군의 편에 섰고 아프로디테와 아폴론 등은 트로이를 도왔다. 오래전 한 인간 왕자가 건넨 황금 사과가 이제 올림포스의 신들까지 서로 다른 편으로 갈라놓고 있었다.
황금 사과를 든 파리스 앞의 세 여신
4.2 신에게 창을 겨누게 하다
트로이 전쟁에서 아테나는 단순히 높은 곳에서 그리스군을 지켜보기만 하지 않았다.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에게 분노하여 칼을 뽑으려 했을 때 뒤에서 나타나 그의 머리카락을 붙잡고 멈추게 한 것도 아테나였다. 그녀는 싸워야 할 적과 싸워서는 안 될 상대를 구분하게 했다. 그러나 전투가 벌어지면 자신이 선택한 전사에게 누구보다 대담한 힘을 불어넣었다.
아테나가 특별히 도운 영웅 가운데 하나가 디오메데스였다. 그녀는 디오메데스의 눈에서 신과 인간을 가리는 안개를 걷어 내어 전장에서 신들을 알아볼 수 있게 했다. 디오메데스가 아프로디테에게 상처를 입힌 뒤 전쟁의 신 아레스가 직접 트로이군을 돕자, 아테나는 더욱 과감하게 개입했다. 여신은 전차에 올라 디오메데스와 함께 아레스를 향해 달려갔다.
디오메데스가 창을 던지는 순간 아테나는 그 창이 아레스에게 정확히 닿도록 이끌었다. 부상을 입은 전쟁의 신은 거대한 비명을 지르며 올림포스로 물러났다. 인간 영웅이 신에게 창을 겨누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아테나가 그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아레스와 아테나가 얼마나 다른 전쟁의 신인지를 보여 주었다. 격정적으로 전장을 휩쓰는 아레스와 달리 아테나는 인간 전사를 선택하고 순간을 계산하여 전쟁의 흐름 자체를 바꾸었다.
전차에서 디오메데스와 함께 아레스에 맞서는 아테나
4.3 트로이를 무너뜨린 계략
아테나는 트로이 전쟁의 마지막까지 그리스군의 편에 섰다. 아킬레우스와 헥토르가 성벽 앞에서 마지막 결투를 벌이기 전, 달아나는 헥토르에게 그의 동생 데이포보스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도 아테나였다. 여신은 자신이 곁에서 함께 싸우겠다고 말해 헥토르가 아킬레우스와 맞서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헥토르가 창을 던진 뒤 데이포보스를 불렀을 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제야 헥토르는 신들이 자신의 죽음을 결정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헥토르가 죽은 뒤에도 트로이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그리스군은 팔라디온을 빼내는 등 여러 계책을 사용했고, 마침내 오디세우스는 거대한 목마 안에 병사들을 숨기는 계획을 세웠다. 에페이오스가 목마를 만들 때에는 아테나가 그 제작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전해진다. 트로이인들은 그리스군이 떠났다고 생각하고 목마를 아테나에게 바쳐진 성물로 여겨 성 안으로 끌어들였다. 밤이 되자 목마 속 영웅들이 내려와 성문을 열었고, 십 년 동안 버티던 트로이는 마침내 함락되었다.
그러나 승리가 아테나의 분노까지 잠재운 것은 아니었다. 트로이가 불타는 가운데 소 아이아스는 아테나의 신상에 매달려 보호를 구하던 카산드라를 강제로 끌어냈다. 칼카스가 여신의 분노를 알리자 그리스군은 아이아스를 죽이려 했지만, 그는 아테나의 제단으로 달아나 몸을 피했고 그들은 끝내 손대지 못했다. 카산드라를 둘러싼 신성모독이 제대로 처벌되지 않자 아테나의 분노는 승리한 그리스군에게까지 향했다. 그들이 트로이를 떠나 귀향길에 오르자 아테나는 제우스에게 그리스 함대를 향해 폭풍을 보내 달라고 청했고, 승리한 영웅들의 길은 거센 바다 위에서 다시 여러 갈래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트로이 성 안으로 들어가는 거대한 목마
4.4 오디세우스를 고향으로
트로이가 함락되었다고 해서 모든 영웅의 이야기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에게는 또 다른 십 년의 방랑이 기다리고 있었다. 포세이돈의 분노를 산 그는 여러 바다를 떠돌았고, 동료들을 모두 잃은 뒤 홀로 오기기아섬에 머물렀다. 그러나 긴 세월이 흐른 뒤, 아테나는 자신과 닮은 지혜를 지닌 이 영웅이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바랐고, 마침내 신들의 회의에서 그의 귀환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테나는 먼저 이타카에 있는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를 찾아갔다.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한 여신은 젊은 왕자에게 아버지의 소식을 찾아 나설 용기를 주었다. 이후 오디세우스가 파이아케스인의 도움으로 이타카에 도착하자 아테나는 그를 늙은 거지의 모습으로 바꾸고 왕궁의 상황을 살피게 했다. 오디세우스는 아들 텔레마코스와 힘을 합쳐 왕궁을 차지하고 있던 구혼자들을 쓰러뜨리고 마침내 페넬로페와 재회했다.
그러나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불러올 수 있었다. 죽은 구혼자들의 가족들이 무기를 들고 왕궁으로 몰려오자 마지막 싸움이 시작되려 했다. 그때 아테나가 모습을 드러내 전투를 멈추게 했고 제우스의 뜻에 따라 양쪽이 화해하도록 이끌었다. 수많은 전장에서 영웅들에게 승리를 안겨 주었던 전쟁의 여신이 마지막에 선택한 것은 또 다른 승리가 아니라 싸움의 종결이었다. 지혜와 전쟁의 여신 아테나의 긴 이야기는 그렇게 오디세우스의 고향에 다시 평화가 찾아오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타카의 마지막 싸움을 멈추는 아테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