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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스 – 전쟁의 신
제우스와 헤라의 아들 아레스는 창과 방패를 들고 전장의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전쟁의 신이다. 그는 아프로디테와 사랑을 나누고 여러 자식을 두었으며, 자신의 용을 죽인 카드모스와 얽히고 딸 알키페를 지키기 위해 포세이돈의 아들을 죽이고 신들의 재판을 받는다. 인간 영웅 헤라클레스와도 창을 겨눈 아레스는 트로이 전쟁에서는 트로이 편에 서서 싸우지만, 디오메데스와 아테나에게 거듭 패배한다. 그의 이야기는 승리보다 분노와 충돌, 그리고 전쟁이 남기는 상처를 따라 이어진다.
1.1 제우스와 헤라의 아들
올림포스에는 세상을 지배하는 제우스와 그의 왕비 헤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아레스였다.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전해지지 않지만, 성장한 아레스의 손에는 언제나 창과 방패가 들려 있었다.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 그가 전장에 모습을 드러내면 병사들의 함성이 커졌고, 전차가 달리는 곳마다 창과 방패가 부딪쳤다. 그는 멀리 앉아 전쟁을 바라보는 신이 아니라 직접 전투 속으로 뛰어드는 신이었다.
아레스가 사랑한 것은 치밀한 계략이나 오래 계산한 승리가 아니었다. 창을 들고 적에게 달려드는 순간, 전차가 부서지고 두 군대가 뒤엉키는 격렬한 싸움이 그의 영역이었다. 전쟁터를 헤매는 공포와 혼란도 그를 따랐다. 인간들이 분노에 휩싸여 서로를 향해 무기를 들면 아레스의 힘도 더욱 거세지는 듯했다.
그러나 전쟁의 신이라는 이름이 언제나 존경을 뜻한 것은 아니었다. 올림포스의 신들조차 그의 성급함과 거친 성정을 경계했고, 아버지 제우스도 싸움을 즐기는 아들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세상에서 전쟁이 사라지지 않는 한 아레스의 이름도 사라질 수 없었다. 인간들이 방패를 들고 전장으로 향할 때마다, 그들의 함성 속에는 언제나 아레스가 함께하고 있었다.
창과 방패를 들고 전장에 선 젊은 아레스
1.2 전장을 달리는 신
전투가 시작되면 아레스는 전차에 올라 전장의 한복판으로 달려갔다. 그의 곁에는 공포를 뜻하는 포보스와 두려움을 뜻하는 데이모스가 따랐고, 전쟁의 격렬함을 나타내는 에니오도 종종 그와 함께했다. 먼지가 하늘을 덮고 창끝이 햇빛을 받아 번쩍이면 아레스는 어느 한쪽의 대열 속에 섞여 병사들을 더욱 거센 싸움으로 몰아갔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서는 질서 정연하던 전열이 무너지기도 했다. 한 사람이 분노해 앞으로 뛰쳐나가면 다른 사람도 그 뒤를 따랐고, 곧 양쪽 군대가 뒤엉켰다. 아레스에게 중요한 것은 누가 더 정의로운가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싸움이 시작되고 피할 수 없는 충돌이 벌어지는 그 순간 자체가 그의 힘을 드러내는 자리였다.
그 때문에 같은 전쟁의 신이라도 아테나와 아레스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아테나는 영웅의 곁에서 판단하고 때를 기다리게 했지만, 아레스는 이미 시작된 싸움 속으로 몸을 던졌다. 훗날 두 신은 트로이의 들판에서 직접 맞서게 된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전부터 올림포스의 신들은 알고 있었다. 싸움이 거칠어질수록 가장 먼저 창을 들고 나타날 신은 언제나 아레스라는 것을.
포보스와 데이모스를 거느리고 달리는 아레스의 전차
1.3 알로아다이에게 붙잡히다
아레스가 언제나 전장에서 승리한 것은 아니었다. 포세이돈의 아들로 전해지는 거인 형제 오토스와 에피알테스는 알로아다이라 불렸는데, 어린 나이에도 믿기 어려울 만큼 거대한 몸집과 힘을 자랑했다. 하늘의 신들에게까지 도전하려 했던 이들은 어느 날 전쟁의 신 아레스와 맞섰고, 뜻밖에도 그를 붙잡는 데 성공했다.
형제는 아레스를 죽이는 대신 커다란 청동 항아리 속에 가두었다. 무거운 뚜껑이 닫히자 창도 방패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전쟁터의 함성을 사랑하던 신은 어두운 청동 속에서 꼼짝하지 못한 채 세월을 보냈다. 그렇게 열세 달이 흘렀다. 오랫동안 세상과 단절된 아레스는 점점 기력을 잃었고, 그대로 두었다면 목숨까지 위험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전해진다.
알로아다이의 계모 에리보이아가 이 사실을 헤르메스에게 알려 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재빠른 헤르메스는 형제들의 눈을 피해 아레스가 갇힌 곳으로 들어가 청동 항아리를 열었다. 겨우 밖으로 나온 아레스는 지쳐 있었지만 목숨은 건졌다. 전장을 누비며 수많은 적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전쟁신조차 거대한 형제들에게 붙잡혀 다른 신의 구출을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청동 항아리 속에 갇힌 아레스와 거인 형제
1.4 다시 창을 들다
청동 항아리에서 풀려난 아레스는 다시 올림포스로 돌아왔다. 오랫동안 갇혀 있었지만 그의 성정까지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갑옷을 갖추고 창을 손에 쥔 그는 다시 전쟁이 벌어지는 곳으로 향했다. 한때 거인 형제의 포로가 되었던 굴욕은 그에게 싸움을 피해야 할 이유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올림포스로 돌아온 아레스가 다른 신들에게 언제나 환영받은 것은 아니었다. 인간들은 전쟁을 앞두고 그에게 제사를 올렸지만, 신들의 연회에서 그가 가장 존경받는 존재였던 것은 아니었다. 싸움을 일으키고 분노에 쉽게 휩싸이는 그를 불편하게 여기는 신들도 많았다. 하지만 적군이 눈앞에 나타나고 병사들이 무기를 들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바로 그 순간 인간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힘이 아레스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레스에게는 승리와 패배가 번갈아 찾아왔다. 그는 강했지만 무적은 아니었고, 분노했지만 언제나 뜻대로 싸울 수도 없었다. 그런 그의 삶에 곧 전쟁과는 다른 열정이 찾아왔다. 올림포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 아프로디테였다. 창과 방패를 든 전쟁신과 사랑의 여신 사이에서 시작된 비밀스러운 관계는 신들 사이에 커다란 소동을 일으키게 된다.
올림포스로 돌아와 다시 무장을 갖추는 아레스
2.1 아프로디테와 사랑에 빠지다
아프로디테는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의 아내였지만, 그녀는 남편의 눈을 피해 아레스와 사랑을 나누었다. 불꽃이 튀는 대장간에서 묵묵히 일하는 헤파이스토스와 달리 아레스는 빛나는 갑옷을 입고 전장을 누비는 신이었다. 두 신은 아무도 모르게 만났지만, 높은 하늘을 지나며 세상을 굽어보던 태양신 헬리오스의 눈까지 피할 수는 없었다.
헬리오스는 두 사람의 밀회를 발견하고 헤파이스토스에게 그 사실을 알려 주었다. 아내의 배신을 알게 된 헤파이스토스는 곧바로 달려가 분노를 터뜨리지 않았다. 그는 대장간으로 돌아가 누구도 끊을 수 없으면서 눈으로는 알아보기 어려운 가느다란 쇠사슬과 그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침상 둘레에 교묘하게 설치한 뒤 멀리 떠나는 척했다.
후대에는 이 사건과 관련하여 다른 이야기도 전해졌다. 아레스가 알렉트리온이라는 젊은이를 문밖에 세워 해가 뜨면 알려 달라고 했지만, 그가 잠드는 바람에 헬리오스에게 발각되었다는 것이다. 분노한 아레스는 뒤에 알렉트리온을 새벽마다 해가 뜨는 것을 알리는 수탉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어느 전승이든 두 연인의 비밀은 결국 드러났고, 헤파이스토스의 덫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몰래 만나는 아레스와 아프로디테를 바라보는 헬리오스
2.2 헤파이스토스의 그물
아레스는 헤파이스토스가 집을 비운 것을 알고 아프로디테를 찾아갔다. 두 신이 아무것도 모른 채 침상에 눕는 순간, 헤파이스토스가 몰래 설치해 둔 쇠사슬과 그물이 사방에서 몸을 휘감았다. 아레스가 온 힘을 다해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전장에서 수많은 적을 쓰러뜨렸던 전쟁신의 힘으로도 대장장이 신이 만든 덫은 끊을 수 없었다.
헤파이스토스는 두 연인을 붙잡아 둔 채 올림포스의 남신들을 불러 모았다. 집 안으로 들어온 신들은 꼼짝하지 못하고 붙잡힌 아레스와 아프로디테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여신들은 부끄러워 그 광경을 보러 오지 않았다. 아레스에게는 수많은 적 앞에서 패배한 것보다 자신의 비밀이 신들 앞에 드러난 일이 더 큰 굴욕이었다.
포세이돈은 헤파이스토스에게 두 신을 풀어 달라고 거듭 부탁했다. 헤파이스토스가 아레스가 배상하지 않고 달아날 것을 걱정하자, 포세이돈은 그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자신이 대신 갚겠다고 보증했다. 그 말을 믿은 헤파이스토스가 마침내 그물을 풀어 주자 아레스는 곧바로 트라케로 떠났고, 아프로디테는 키프로스의 파포스로 향했다. 그러나 두 신의 인연은 그날의 굴욕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쇠그물에 붙잡혀 남신들 앞에 드러난 두 연인
2.3 포보스와 데이모스
아레스와 아프로디테 사이에서는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닌 자식들이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그 가운데 아버지와 가장 가까이 붙어 다닌 존재가 포보스와 데이모스였다. 포보스는 적을 눈앞에 둔 순간 밀려오는 공포를, 데이모스는 전투 속에서 인간의 마음을 움켜쥐는 두려움을 나타냈다.
아레스가 전차를 타고 전장에 나타날 때면 두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창과 방패가 부딪치는 소리 사이로 병사들이 흔들리고, 용기 있던 사람조차 갑자기 뒤를 돌아 달아나는 순간이 찾아왔다. 전쟁은 무기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상대보다 먼저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군대가 무너지는 순간, 포보스와 데이모스의 힘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아레스와 아프로디테의 자식이 모두 전쟁과 공포를 닮은 것은 아니었다. 두 신 사이에서는 하르모니아도 태어났다. 이름 그대로 조화와 화합을 나타내는 그녀는 부모와는 전혀 다른 운명을 지닌 듯 보였다. 훗날 하르모니아는 테바이의 시조가 되는 카드모스와 혼인한다. 하지만 그 혼인에는 아레스와 카드모스 사이에 먼저 해결해야 할 오래된 피의 빚이 놓여 있었다.
두 아들과 함께 전차를 타고 전장으로 향하는 아레스
2.4 카드모스에게 내려진 속죄
누이 에우로페를 찾아 여러 땅을 떠돌던 카드모스는 델포이의 신탁을 따라 한 암소의 뒤를 쫓았고, 암소가 멈춘 곳에 새로운 도시를 세우기로 했다. 제사를 준비하기 위해 부하들을 가까운 샘으로 보냈지만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샘에는 거대한 용이 살고 있었고, 물을 길으러 온 사람들을 모두 죽여 버렸다. 카드모스는 직접 용에게 다가가 치열하게 싸운 끝에 괴물을 쓰러뜨렸다.
그러나 그 샘은 아레스에게 속한 곳이었고, 용 역시 전쟁신의 샘을 지키는 존재였다. 어떤 전승에서는 그 용 자체가 아레스의 자식이었다고도 한다.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던 카드모스는 첫걸음부터 전쟁신에게 피의 빚을 지게 되었다. 결국 그는 자신이 죽인 용의 대가를 치르기 위해 아레스를 섬기며 오랜 기간 속죄해야 했다.
전승에서는 카드모스가 아레스를 ‘영원한 한 해’ 동안 섬겼다고 하는데, 그 기간은 인간의 계산으로 팔 년에 해당했다고 전해진다. 긴 속죄가 끝난 뒤에야 카드모스는 마침내 자유로워졌다. 아테나는 그가 새로운 나라를 세우도록 도왔고, 카드모스는 자신의 성채를 세워 통치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한때 원수였던 아레스의 집안과 다시 이어지는 뜻밖의 혼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레스의 용을 쓰러뜨린 카드모스
3.1 하르모니아의 혼인
카드모스가 아레스에게 지고 있던 피의 빚을 모두 갚자 그의 삶에는 새로운 전환이 찾아왔다. 제우스는 아레스와 아프로디테의 딸 하르모니아를 카드모스의 아내로 정해 주었다. 한때 아레스의 용을 죽여 오랫동안 속죄해야 했던 인간이 이제 전쟁신의 사위가 되는 뜻밖의 인연이었다. 두 사람의 혼인을 축하하기 위해 올림포스의 신들까지 카드모스가 세운 땅으로 내려왔다.
혼례에는 여러 신이 참석하여 신랑과 신부에게 귀한 선물을 내렸다. 하르모니아는 아름다운 목걸이와 화려한 옷을 받았고, 신들의 음악과 축복 속에서 카드모스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아우토노에와 이노, 세멜레, 아가우에가 태어났고, 아들 폴리도로스도 태어나 카드모스의 왕가를 이어 갔다.
그러나 신들이 직접 축복한 혼인이라고 해서 후손들의 삶까지 평온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르모니아에게 주어진 목걸이는 훗날 여러 사람의 욕망과 비극에 얽혔고, 카드모스의 자손들에게도 수많은 불행이 찾아왔다. 하지만 아직 그런 운명이 닥치기 전이었다. 그날의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는 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부가 되었고, 아레스의 용을 죽인 데서 시작된 피의 인연은 혼인으로 새로운 관계를 맺었다.
신들의 축복 속에 혼인하는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
3.2 딸 알키페를 지키다
아레스에게는 케크롭스의 딸 아글라우로스와의 사이에서 얻은 알키페라는 딸이 있었다. 어느 날 포세이돈의 아들 할리로티오스가 알키페에게 욕정을 품고 그녀를 강제로 범하려 했다고 전해진다. 딸이 위험에 처한 사실을 알게 된 아레스는 곧바로 달려왔다. 전장에서 적을 향해 거침없이 돌진하던 그의 분노가 이번에는 자신의 딸을 해치려 한 남자에게 향했다.
아레스는 할리로티오스를 공격하여 그 자리에서 죽였다. 그러나 죽은 자 역시 강대한 신 포세이돈의 아들이었다. 아들을 잃은 포세이돈은 아레스가 살인을 저질렀다며 그를 고발했고, 사건은 신들의 재판으로 이어졌다. 전승에서는 열두 신이 아테나이의 한 언덕에 모여 아레스가 저지른 살인에 죄가 있는지를 심판했다고 한다.
아레스는 할리로티오스가 자신의 딸을 강제로 범하려 했기 때문에 그를 죽였다고 변론했다. 신들은 사건의 사정을 들은 뒤 아레스에게 죄가 없다고 판결했고, 그는 무죄로 풀려났다. 이후 재판이 열렸던 곳은 아레이오스 파고스, 곧 ‘아레스의 언덕’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전쟁터에서 언제나 무기를 먼저 들었던 아레스가 이번에는 신들 앞에 서서 자신이 창을 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직접 밝혀야 했다.
신들의 재판정에 선 아레스
3.3 아들 퀴크노스
아레스에게는 퀴크노스라는 사나운 아들도 있었다. 그는 테살리아 지방에서 무력을 떨치며 길을 지나는 사람들을 괴롭혔고, 특히 델포이의 아폴론에게 제물을 바치러 가는 이들을 공격해 그들이 가져가던 제물을 빼앗았다고 전해진다. 그 때문에 아폴론은 퀴크노스를 미워하게 되었고, 마침 그 길을 지나게 된 헤라클레스와 퀴크노스 사이에 피할 수 없는 싸움이 다가왔다.
헤라클레스는 이올라오스와 함께 전차를 타고 길을 가다가 퀴크노스와 마주쳤다. 퀴크노스의 곁에는 그의 아버지 아레스도 있었다. 아테나는 헤라클레스 앞에 나타나 퀴크노스를 두려워하지 말라며 싸움을 준비하게 했다. 아레스의 아들이라고 해서 물러날 헤라클레스가 아니었고, 퀴크노스 역시 아버지가 지켜보는 앞에서 인간 영웅에게 길을 내줄 생각이 없었다.
두 전사는 방패를 맞대고 격렬하게 싸웠다. 퀴크노스가 먼저 헤라클레스에게 달려들었지만 영웅의 방어를 뚫지 못했다. 마침내 헤라클레스의 창이 퀴크노스의 목을 꿰뚫었고, 전쟁신의 아들은 아버지가 지켜보는 앞에서 땅에 쓰러졌다. 수많은 죽음이 오가는 전장을 누비던 아레스에게도 이번 죽음은 달랐다. 땅에 쓰러진 사람은 바로 자신의 아들이었다. 눈앞에서 아들을 잃은 그는 분노에 사로잡혀 직접 헤라클레스를 향해 나아갔다.
아레스가 지켜보는 앞에서 맞서는 퀴크노스와 헤라클레스
3.4 헤라클레스와 맞서다
퀴크노스가 쓰러지자 아레스는 더 이상 싸움을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다. 그는 아들의 원수를 갚기 위해 무기를 들고 헤라클레스에게 달려들었다. 아테나는 그의 앞을 막아서며 물러나라고 경고했다. 헤라클레스를 죽이는 것은 운명이 허락한 일이 아니므로 싸움을 계속해도 뜻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눈앞에서 아들을 잃은 아레스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아레스는 먼저 창을 들어 헤라클레스에게 던졌다. 날카로운 창끝이 영웅에게 닿으려는 순간 아테나가 손을 뻗어 방향을 비켜 내 공격을 막았다. 창이 빗나가자 아레스는 이번에는 날카로운 칼을 뽑아 들고 헤라클레스에게 달려들었다. 그 순간 헤라클레스가 먼저 창을 내질렀고, 창끝은 방패 아래로 드러난 아레스의 넓적다리를 깊이 찔렀다. 뜻밖의 일격을 받은 전쟁신은 힘을 잃고 땅 위에 쓰러졌다.
아버지가 쓰러지는 것을 본 포보스와 데이모스가 급히 전차를 몰고 다가왔다. 두 아들은 상처 입은 아레스를 전차에 태우고 전장을 벗어나 올림포스로 돌아갔다. 아레스는 퀴크노스의 원수를 갚기는커녕 인간 영웅의 창에 상처를 입은 채 물러나야 했다. 그리고 훗날 트로이의 들판에서도 그는 아테나의 도움을 받은 또 다른 인간 영웅의 창 앞에서 비슷한 굴욕을 겪게 된다.
칼을 들고 헤라클레스에게 돌진하는 아레스
4.1 트로이 편에 서다
트로이 전쟁이 벌어지자 올림포스의 신들도 서로 다른 편에 섰다. 헤라와 아테나는 그리스군을 도왔고, 아프로디테와 아폴론은 트로이군을 지켰다. 아레스는 처음부터 한쪽에 굳게 선 신이 아니었다. 그는 아테나와 함께 전장을 떠나 인간들끼리 싸우게 두기도 했지만, 전투가 거세지자 다시 인간들의 싸움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디오메데스가 트로이군을 몰아붙이며 아이네이아스에게까지 치명적인 위험이 닥치자 아폴론은 아레스에게 나서 달라고 요청했다. 아레스는 곧 트로이군 사이로 들어갔다. 그는 때로 트로이의 장수 모습을 하고 병사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용기를 북돋웠고, 무너진 대열을 다시 일으켜 그리스군을 향해 진격하게 했다. 전쟁신이 가세하면서 밀리던 트로이군의 기세가 다시 살아났다.
이를 본 아테나는 분노했다. 아레스가 앞서 그리스군을 돕겠다고 해 놓고 이제는 트로이군의 편에 섰다고 비난하며 직접 그를 막기로 했다. 아레스에게는 어느 나라의 승리보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싸움 자체가 더 강하게 그를 끌어당기는 듯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대가 인간 병사만이 아니었다. 아테나는 그리스군 가운데 가장 맹렬하게 싸우던 디오메데스에게 다가가 전쟁신을 상대할 힘을 더해 주었다.
트로이군 사이에서 병사들을 독려하는 아레스
4.2 디오메데스의 창
디오메데스는 그날 누구도 막기 어려울 만큼 거세게 싸우고 있었다. 아프로디테가 아들 아이네이아스를 구하려 전장에 내려오자 그는 여신의 손에까지 상처를 입혔다. 아레스가 트로이군의 편에 서서 그리스군을 거세게 몰아붙이자 아테나는 더 이상 그 모습을 지켜보지 않았다. 그녀는 직접 디오메데스의 전차에 올라 고삐를 잡고 전쟁신을 향해 달렸다.
아레스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인간 영웅을 보자 거대한 창을 내질렀다. 그러나 아테나가 손을 뻗어 창의 방향을 비켜 버렸다. 곧이어 디오메데스가 자신의 창을 힘껏 내질렀고, 아테나는 그 공격에 힘을 더했다. 창끝은 허리띠 아래 드러난 아레스의 몸을 깊이 찔렀다. 상처를 입은 전쟁신은 수많은 병사가 한꺼번에 외치는 듯한 거대한 비명을 지르며 전장을 떠나 올림포스로 달아났다.
아레스는 제우스 앞에 앉아 상처를 보여 주며 아테나가 인간을 도와 자신을 공격했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제우스는 언제나 싸움과 전쟁을 좋아하는 아들의 거친 성정을 호되게 꾸짖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아들이었기에 그대로 내버려 두지는 않았다. 제우스는 치유의 신 파이온에게 아레스의 상처를 치료하게 했고, 약을 바른 상처는 곧 아물었다. 아레스는 다시 일어섰지만 인간 영웅의 창에 쫓겨 올림포스로 돌아온 굴욕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아테나의 도움을 받은 디오메데스에게 상처 입는 아레스
4.3 아들을 잃은 아레스
트로이 전쟁에는 아레스의 자식들 가운데 인간 세상에서 살아가던 이들도 참가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아스칼라포스는 그리스군 편에서 싸우는 장수였다. 전투가 한창이던 어느 날 트로이의 왕자 데이포보스가 이도메네우스를 향해 창을 던졌지만 창은 목표를 빗나갔다. 대신 창끝은 근처에서 싸우던 아스칼라포스의 어깨를 꿰뚫었고, 그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제우스가 신들의 전쟁 개입을 엄격하게 막고 있던 때였기에 아레스는 전장에 나서지 못했고,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얼마 뒤 헤라가 신들 앞에서 아스칼라포스의 죽음을 알렸다. 그 말을 들은 아레스는 두 손으로 허벅지를 내리치며 울부짖었다. 그는 당장 갑옷을 입고 내려가 아들의 원수를 갚겠다고 외쳤고, 제우스의 벼락을 맞더라도 상관없다고 할 만큼 격분했다.
아레스가 무기를 들고 전장으로 뛰쳐나가려 하자 아테나가 급히 그를 붙잡았다. 그녀는 제우스의 명령을 거역하면 아레스뿐 아니라 다른 신들에게까지 더 큰 화가 닥칠 것이라며 갑옷과 무기를 내려놓게 했다. 결국 아레스는 분노를 삼키며 자리에 남았다. 수많은 인간이 쓰러지는 전장을 즐겨 찾던 전쟁신도 자신의 아들이 우연히 날아온 창에 죽었다는 소식 앞에서는 당장 원수를 갚으려 달려가는 아버지였다.
아스칼라포스의 죽음을 듣고 격분하는 아레스
4.4 아테나에게 쓰러지다
전쟁이 막바지로 향하자 제우스는 마침내 신들이 각자 원하는 편을 도와 직접 싸우는 것을 허락했다. 올림포스의 신들이 전장으로 내려오자 인간들의 싸움 위에 신들의 싸움까지 겹쳐졌다. 아레스는 앞서 디오메데스의 창에 상처를 입었을 때 그 배후에서 자신을 공격했던 아테나를 떠올렸다. 그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창을 들고 그녀에게 다가갔고, 두 전쟁신은 마침내 트로이의 들판에서 정면으로 맞섰다.
아레스는 먼저 창을 내질렀다. 창끝은 아테나가 들고 있던 신성한 방패를 향했지만 여신에게 상처를 입히지 못했다. 아테나는 물러서는 대신 주변에 놓인 거대한 돌을 집어 들었다. 사람들이 들판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세워 둔 크고 거친 돌이었다. 그녀가 힘껏 던진 돌은 아레스의 목을 강타했고, 전쟁신은 두 다리가 풀리며 넓은 땅 위에 그대로 쓰러졌다.
아프로디테가 급히 달려와 쓰러진 아레스를 일으켜 전장에서 데려가려 했다. 이를 본 헤라가 아테나에게 소리쳤고, 아테나는 곧 두 신을 뒤쫓았다. 그녀가 아프로디테의 가슴을 내리치자 사랑의 여신까지 힘없이 쓰러졌고, 아레스와 아프로디테는 나란히 땅 위에 누웠다. 아테나는 두 신을 내려다보며 트로이를 돕는 신들이 모두 이렇게 되기를 바란다고 외쳤다. 아레스는 끝내 반격하지 못한 채 다시 한번 아테나에게 전장을 내주어야 했다.
거대한 돌을 던지는 아테나와 쓰러지는 아레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