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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바이 – 저주받은 왕국
페니키아의 왕자 카드모스가 신탁을 따라 세운 테바이는 용의 이빨에서 태어난 전사들과 신들의 축복 속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펜테우스와 니오베의 비극에 이어 라이오스의 신탁은 오이디푸스와 그 자식들에게까지 닿았다. 두 왕자의 전쟁 뒤에는 에피고노이의 복수가 이어졌으며, 다시 일어선 일곱 성문의 왕국도 오래된 저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마침내 마지막 왕이 결투에서 죽자 테바이인들은 왕정을 끝내고 새로운 통치의 길을 선택했다.
1.1 에우로페를 찾아 떠난 카드모스
페니키아 왕 아게노르의 딸 에우로페가 바닷가에서 사라지자 왕궁은 혼란에 빠졌다. 제우스가 황소의 모습으로 나타나 그녀를 크레타로 데려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아게노르는 아들들에게 누이를 찾아오라고 명했다. 빈손으로는 돌아오지 말라는 아버지의 명령을 받은 카드모스는 어머니 텔레파사와 동료들을 이끌고 배에 올라 먼 서쪽으로 떠났다.
카드모스 일행은 섬과 해안의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지만 에우로페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함께 떠난 형제들은 각자 머문 땅에 정착했고, 어머니 텔레파사마저 트라케에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카드모스는 더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남은 동료들과 델포이의 신전으로 향하여 아폴론에게 누이를 찾을 길을 물었다.
신탁은 에우로페를 찾는 일을 그만두고 들판에서 만나는 암소를 따라가라고 일렀다. 그 암소가 지쳐 쓰러지는 곳에 새로운 도시를 세우라는 것이었다. 카드모스는 포키스에서 양쪽 옆구리에 초승달 모양의 흰 무늬가 있는 암소를 발견하고 그 뒤를 따랐다. 암소는 보이오티아의 들판을 지나 한 언덕에 이르러 조용히 몸을 눕혔다. 누이를 되찾지는 못했지만, 카드모스는 그곳에서 자신이 세울 새로운 왕국의 터를 찾았다.
보이오티아 언덕에 누운 암소를 바라보는 카드모스
1.2 아레스의 용과 스파르토이
카드모스는 자신을 이끈 암소를 아테나에게 제물로 바치려 했다. 그는 의식에 필요한 물을 구하기 위해 동료들을 가까운 샘으로 보냈다. 그러나 그 샘은 전쟁의 신 아레스에게 바쳐진 곳이었으며, 거대한 용이 물가를 지키고 있었다. 용은 물을 뜨러 온 사람들을 차례로 덮쳤고, 기다리다 지친 카드모스가 샘을 찾아왔을 때 동료들은 모두 땅에 쓰러져 있었다.
카드모스는 바위와 창을 들고 용에게 맞섰다. 용은 비늘로 뒤덮인 몸을 일으켜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으로 달려들었다. 카드모스는 몇 번이나 공격을 피한 끝에 창으로 용의 목을 꿰뚫었다. 싸움에서는 이겼지만 새로운 도시를 함께 세우려던 동료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홀로 남은 카드모스 앞에 아테나가 나타나 용의 이빨을 뽑아 땅에 뿌리라고 명했다.
이빨이 흙에 닿자 갑옷과 무기를 갖춘 전사들이 밭의 싹처럼 땅속에서 솟아올랐다. 카드모스가 그들 사이에 돌을 던지자 전사들은 서로가 던진 것으로 생각하고 싸우기 시작했다. 마침내 에키온과 크토니오스, 히페레노르, 펠로로스, 우다이오스 다섯 명만 살아남았다. 뿌려진 자들이라는 뜻의 스파르토이라 불린 이들은 카드모스에게 충성을 맹세했고, 그와 함께 성채를 쌓아 카드메이아라고 이름 붙였다.
용의 이빨이 뿌려진 땅에서 솟아나는 스파르토이
1.3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의 혼인
아레스의 용을 죽인 대가는 가볍지 않았다. 카드모스는 신의 분노를 씻기 위해 여덟 해 동안 아레스를 섬겨야 했다. 속죄의 시간이 끝나자 신들은 그에게 아레스와 아프로디테의 딸 하르모니아를 아내로 주었다. 용을 죽인 인간과 용의 주인인 신의 딸이 부부가 되면서, 오랫동안 이어진 분노도 마침내 화해로 바뀌는 듯했다.
두 사람의 혼인식에는 올림포스의 신들이 직접 내려왔다. 아폴론이 리라를 연주하고 뮤즈들이 노래하는 가운데 신과 인간이 한자리에 모여 잔치를 벌였다. 신들은 신부에게 눈부신 선물을 내렸고,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황금 목걸이와 아름다운 옷도 그 가운데 있었다. 사람들은 신들이 내려 준 보물과 성대한 혼인을 테바이 왕가에 내린 최고의 축복으로 여겼다.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 사이에서는 폴리도로스와 세멜레, 이노, 아가우에, 아우토노에가 태어났다. 자녀들은 신과 영웅들의 운명에 얽혔고, 후손들은 테바이의 왕위와 비극을 이어받았다. 하르모니아의 목걸이와 옷도 훗날 그것을 차지하려는 사람들에게 욕망과 다툼을 불러왔다. 신들의 축복 속에서 시작된 왕가는 카드모스가 흘린 용의 피와 혼인 선물 속에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불행의 씨앗을 품고 있었다.
올림포스 신들의 축복 속에 열린 두 사람의 혼인식
1.4 디오니소스를 거부한 펜테우스
카드모스가 늙어 왕좌에서 물러난 뒤, 딸 아가우에와 스파르토이 에키온 사이에서 태어난 펜테우스가 테바이를 다스렸다. 그 무렵 카드모스의 또 다른 딸 세멜레에게서 태어난 디오니소스가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포도주와 황홀경의 신이 되어 자신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는 테바이에 새로운 제의를 전하려 했다.
펜테우스는 디오니소스를 사촌이 꾸며 낸 거짓 신이라고 여겼다. 그는 제의를 금지하고 신을 따르는 여인들을 붙잡으라고 명했다. 젊은이의 모습으로 왕 앞에 선 디오니소스도 결박했지만 쇠사슬은 저절로 풀리고 왕궁은 흔들렸다. 그런데도 펜테우스는 물러서지 않았고, 여인들의 의식을 몰래 살펴보기 위해 여장을 한 채 키타이론산으로 향했다.
신에게 홀린 여인들은 나무 위에 숨어 있던 펜테우스를 짐승으로 착각하고 달려들었다. 그 가운데에는 어머니 아가우에도 있었다. 정신이 돌아온 뒤에야 아가우에는 자신이 들고 온 것이 아들의 머리임을 깨달았다. 카드모스는 무너진 딸을 바라본 뒤 하르모니아와 함께 테바이를 떠났고, 펜테우스가 죽은 뒤에는 카드모스의 아들 폴리도로스가 왕위를 이어받았다. 왕가는 계속되었지만 신의 분노가 남긴 상처는 사라지지 않았다.
키타이론산에서 펜테우스를 에워싼 아가우에와 여인들
2.1 어린 라이오스와 빼앗긴 왕위
왕위에 오른 폴리도로스는 뉵테우스의 딸 뉵테이스를 왕비로 맞아 랍다코스를 낳았다. 폴리도로스가 세상을 떠났을 때 랍다코스가 아직 어렸으므로 외조부 뉵테우스가 왕자와 나라를 맡았다. 뉵테우스가 죽자 그의 형제 리코스가 섭정을 이어받았고, 장성한 랍다코스에게 왕권을 돌려주었다. 그러나 랍다코스도 오래 살지 못하고 어린 아들 라이오스를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리코스는 다시 어린 왕자의 보호자이자 섭정이 되었지만, 곧 왕권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 무렵 뉵테우스의 딸 안티오페는 제우스의 아이를 품고 고향을 떠나 쌍둥이 암피온과 제토스를 낳았다.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들판에 버려졌으나 목자에게 발견되어 키타이론산에서 자랐다. 안티오페는 테바이로 끌려와 리코스와 그의 아내 디르케에게 오랫동안 갇혀 지내며 가혹한 학대를 받았다.
마침내 속박에서 벗어난 안티오페는 장성한 두 아들을 찾아갔다. 어머니가 겪은 일을 알게 된 암피온과 제토스는 테바이로 진군하여 리코스를 쓰러뜨리고 디르케를 황소에 묶어 벌했다. 두 형제가 왕권을 차지하자 어린 라이오스는 목숨을 지키기 위해 펠로폰네소스로 피신했다. 카드모스와 폴리도로스로 이어진 왕통은 테바이 밖으로 밀려났고, 왕국은 쌍둥이 형제의 새로운 통치를 맞았다.
감금에서 벗어난 안티오페와 재회한 쌍둥이 형제
2.2 테바이를 다스린 쌍둥이 형제
암피온과 제토스는 같은 날 태어난 형제였지만 성품과 재능은 서로 달랐다. 제토스는 들판에서 가축을 돌보고 무거운 돌을 옮기는 데 능한 힘센 사람이었다. 암피온은 헤르메스에게 받은 리라를 즐겨 연주했으며, 그의 음악에는 사람뿐 아니라 짐승과 돌까지 움직이는 힘이 있다고 전해졌다. 두 형제는 서로 다른 재능으로 혼란에 빠진 도시를 다시 일으켰다.
제토스는 산에서 거대한 돌을 날라 도시를 둘러쌀 성벽을 쌓았다. 암피온이 리라를 연주하자 바위들이 음악을 따라 움직이며 스스로 제자리를 찾아갔다. 형제는 카드모스가 세운 성채 카드메이아 주변에 넓은 시가지를 만들고 일곱 개의 성문을 갖춘 성벽을 완성했다. 성채에 불과했던 카드메이아는 비로소 보이오티아의 강대한 도시로 성장했다.
제토스는 아소포스의 딸 테베와 혼인했고, 확장된 도시는 그녀의 이름을 따라 테바이라 불리게 되었다. 암피온은 탄탈로스의 딸 니오베를 왕비로 맞아 많은 아들과 딸을 두었다. 성벽 안에는 집과 신전이 들어서고 왕궁에는 아이들의 웃음이 가득했다. 라이오스가 타국을 떠도는 동안 테바이는 암피온의 음악과 제토스의 힘 아래 일곱 성문의 왕국으로 이름을 떨쳤다.
암피온의 리라 소리를 따라 쌓이는 일곱 성문의 성벽
2.3 니오베가 잃은 자식들
암피온의 왕비 니오베에게는 여러 아들과 딸이 있었다. 자녀들의 수는 전승마다 다르게 전해지지만, 니오베는 아름답고 씩씩한 아이들이 가득한 왕궁을 무엇보다 자랑스러워했다. 어느 날 테바이의 여인들이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의 어머니 레토에게 제사를 드리자, 니오베는 자신이 레토보다 많은 자식을 두었다며 숭배받을 자격도 더 크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모욕당한 것을 안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는 활을 들고 테바이에 내려왔다. 아폴론의 화살에 니오베의 아들들이 쓰러졌고, 아르테미스의 화살은 딸들을 차례로 꿰뚫었다. 니오베는 남은 아이들을 감싸며 살려 달라고 애원했지만 신들의 화살은 멈추지 않았다. 자랑과 웃음으로 가득했던 왕궁은 하루아침에 자식을 잃은 부모의 울음만 남은 집으로 변했다.
제토스의 집안에도 먼저 비극이 닥쳤다. 그의 아들이 어머니의 실수로 죽자 제토스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고, 암피온도 자식들을 잃은 뒤 생을 마쳤다. 니오베는 고향 땅으로 돌아가 돌이 되어서도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두 형제와 후계자들이 모두 사라지면서 일곱 성문을 세운 왕가의 통치는 끝났다. 이제 테바이의 왕좌를 이을 사람은 펠로폰네소스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라이오스뿐이었다.
쓰러진 자식들을 끌어안고 슬퍼하는 니오베
2.4 라이오스의 귀환과 두려운 신탁
망명 중이던 라이오스는 피사의 왕 펠롭스에게 보호받으며 그의 아들 크뤼십포스에게 전차를 모는 법을 가르쳤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받아 준 펠롭스의 은혜를 저버리고 크뤼십포스를 강제로 데려갔으며, 이 일로 펠롭스의 저주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암피온과 제토스의 왕가가 사라지자 라이오스는 테바이로 돌아와 왕위에 올랐고, 메노이케우스의 딸 이오카스테를 왕비로 맞았다.
라이오스는 왕가를 이을 후사를 얻고 싶어 델포이의 신탁을 구했다. 그러나 신탁은 그에게 아들을 낳지 말라고 경고했다. 아들이 태어나면 그 아이의 손에 라이오스가 죽고, 아들은 자신의 어머니와 혼인하게 되리라는 무서운 예언이었다. 라이오스는 펠롭스의 저주와 신탁을 두려워하면서도 왕가의 대가 끊어질 수 있다는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이오카스테는 아들을 낳았다. 라이오스는 아이가 살아 있으면 예언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여 두 발목을 뚫어 묶고 목자에게 넘겼다. 목자는 갓난아이를 키타이론산에 버리라는 명령을 받았다. 라이오스는 아들만 사라지면 운명을 피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왕궁 밖으로 보내진 아기는 죽지 않았고, 아버지가 피하려던 신탁은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다시 테바이로 향하고 있었다.
갓난 오이디푸스를 목자에게 넘기는 라이오스
3.1 버려진 왕자의 성장
라이오스의 목자는 갓난아이를 차마 산에 버리지 못했다. 그는 키타이론산에서 양을 치던 코린토스의 목자에게 아이를 건넸고, 아기는 자식이 없던 코린토스 왕 폴뤼보스와 왕비 메로페에게 보내졌다. 왕과 왕비는 뜻밖에 찾아온 아이를 신들이 내려 준 아들로 여기고 친왕자처럼 길렀다. 발목에 남은 깊은 상처 때문에 아이는 ‘부은 발’이라는 뜻의 오이디푸스라는 이름을 얻었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코린토스 왕가에서 태어났다고 믿으며 건장한 청년으로 자랐다. 그러나 어느 잔치에서 술에 취한 사람이 그를 폴뤼보스의 친아들이 아니라고 비웃었다. 오이디푸스는 부모에게 달려가 사실을 물었지만 두 사람은 소문을 강하게 부인했다. 부모의 대답에도 의심이 가라앉지 않자 그는 자신의 출생을 알아내기 위해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홀로 델포이로 향했다.
신탁은 그의 친부모가 누구인지 알려 주지 않았다. 대신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혼인하게 되리라는 두려운 운명만을 밝혔다. 그는 자신을 길러 준 폴뤼보스와 메로페가 친부모라고 믿었으므로, 예언을 막으려면 코린토스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그가 택한 길은 오히려 친부모가 있는 테바이로 이어졌다. 자신의 이름과 상처에 숨은 비밀을 모르는 청년은 포키스의 세 갈래 길로 향했다.
델포이 신전에서 두려운 신탁을 듣는 오이디푸스
3.2 세 갈래 길에서 죽은 왕
포키스의 좁은 갈림길에서 오이디푸스는 마차를 타고 오는 노인과 수행원들을 만났다. 길을 먼저 지나가려던 마부는 그에게 비키라고 소리치며 채찍을 휘둘렀고, 마차 안의 노인도 지팡이로 그의 머리를 내리쳤다. 분노한 오이디푸스는 노인과 수행원들에게 맞섰다. 좁은 길 위에서 거친 싸움이 벌어졌고, 마침내 한 사람을 제외한 일행이 모두 죽어 쓰러졌다.
그 노인은 델포이에서 돌아오던 테바이 왕 라이오스였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죽인 사람이 친아버지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길을 떠났다. 살아남은 수행원은 테바이로 돌아가 왕이 여러 도적에게 습격당했다고 보고했다. 그는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부끄러움과 두려움 때문에 진실을 감추었지만, 훗날 오이디푸스의 출생과 라이오스의 죽음을 밝혀낼 마지막 증인이 된다.
왕을 잃은 테바이에서는 이오카스테의 오라비 크레온이 나라를 맡았다. 그러나 라이오스의 죽음을 조사할 겨를도 없이 사자의 몸에 여인의 얼굴과 날개를 가진 스핑크스가 나타났다. 괴물은 도시로 들어오는 길목을 막고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사람들을 차례로 죽였다. 희생자가 계속 늘어나자 크레온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 도시를 구하는 사람에게 테바이의 왕위와 왕비 이오카스테를 주겠다고 선언했다.
세 갈래 길에서 라이오스의 마차와 맞선 오이디푸스
3.3 스핑크스를 물리친 새로운 왕
헤라가 보냈다고 전해지는 스핑크스는 테바이 가까이의 피키온산에 앉아 길을 막았다. 뮤즈들에게 수수께끼를 배운 괴물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아침에는 네 발, 낮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테바이인들은 괴물의 질문을 풀기 위해 여러 차례 지혜를 모았지만 정답을 찾지 못했고, 대답하지 못한 사람들은 산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테바이에 다다른 오이디푸스도 스핑크스 앞에 섰다. 그는 수수께끼가 가리키는 것은 인간이라고 대답했다. 아기는 두 손과 두 무릎으로 기고, 어른이 되면 두 발로 걸으며, 늙으면 지팡이를 짚어 세 발로 걷기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수수께끼가 풀리자 스핑크스는 절벽에서 몸을 던졌고, 공포에 떨던 테바이인들은 자신들을 구한 낯선 청년을 환호하며 맞아들였다.
약속에 따라 오이디푸스는 테바이의 왕위에 오르고 선왕 라이오스의 왕비였던 이오카스테와 혼인했다. 두 사람은 서로가 어머니와 아들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왕궁으로 들어갔다. 그들 사이에서는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 안티고네와 이스메네가 태어났다. 스핑크스를 물리친 지혜로운 왕 아래 도시는 평온을 되찾은 듯했지만, 라이오스의 살해범은 벌을 받지 않은 채 왕좌에 앉아 있었다.
스핑크스 앞에서 수수께끼의 답을 말하는 오이디푸스
3.4 역병과 밝혀진 진실
세월이 흐르자 테바이의 들판에서는 곡식이 자라지 않았고 가축과 사람들이 잇달아 죽었다. 오이디푸스는 크레온을 델포이로 보내 재앙을 끝낼 방법을 물었다. 돌아온 크레온은 선왕 라이오스를 죽인 자를 찾아 추방하거나 벌해야만 도시가 구원받을 수 있다는 신탁을 전했다. 오이디푸스는 시민들 앞에서 살해범을 반드시 찾아내겠다고 선언했다.
눈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처음에는 진실을 말하려 하지 않았다. 왕이 거듭 다그치자 그는 오이디푸스가 바로 찾고 있는 살해범이라고 밝혔다. 분노한 오이디푸스는 크레온과 예언자가 왕위를 빼앗으려 한다고 의심했다. 그러나 라이오스가 죽은 장소와 버려진 아기의 상처, 코린토스에서 온 전령과 옛 목자의 증언이 하나씩 맞물리면서 감추어진 진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이 낳은 아들과 혼인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오카스테는 목숨을 끊었다. 오이디푸스는 죽은 왕비의 옷에서 장식핀을 뽑아 자신의 두 눈을 찔렀다. 테바이를 구했던 왕이 바로 도시를 뒤덮은 재앙의 원인이었다. 피투성이가 된 오이디푸스가 왕궁에서 나오자 한때 그를 환호했던 시민들은 침묵했다. 스핑크스를 물리친 왕은 모든 것을 잃었고, 비어 버린 왕좌와 오래된 저주는 그의 자식들에게 넘어갔다.
출생의 진실 앞에서 절망하는 오이디푸스
4.1 눈먼 왕과 갈라진 두 아들
오이디푸스가 몰락한 뒤 크레온이 테바이의 왕권을 맡았다. 눈먼 오이디푸스가 도시에서 쫓겨날 때 두 아들은 아버지를 붙잡거나 돕지 않았다. 딸 안티고네만이 그의 손을 잡고 긴 방랑길에 동행했다. 분노한 오이디푸스는 두 아들이 왕국을 평화롭게 나누지 못하고 서로의 손에 죽게 되리라고 저주했다. 그는 마침내 아테나이 가까이의 콜로노스에 도착하여 테세우스의 보호 아래 생을 마쳤다.
테바이에 남은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는 왕좌를 한 해씩 번갈아 맡기로 약속했다. 먼저 왕이 된 에테오클레스는 정해진 기간이 지나도 권력을 내놓지 않았고, 폴리네이케스를 나라 밖으로 몰아냈다. 쫓겨난 폴리네이케스는 아르고스로 가서 왕 아드라스토스의 딸 아르게이아와 혼인했다. 아드라스토스는 사위가 빼앗긴 왕위를 되찾을 수 있도록 군대를 내주겠다고 약속했다.
폴리네이케스는 튀데우스와 카파네우스, 힙포메돈, 파르테노파이오스 등과 함께 원정군을 모았다. 예언자 암피아라오스는 원정이 실패하리라는 것을 알고 출전을 거부했다. 그러자 폴리네이케스는 하르모니아의 목걸이를 그의 아내 에리퓔레에게 주었고, 보물에 마음을 빼앗긴 에리퓔레는 남편이 원정에 참여해야 한다고 판정했다. 마침내 일곱 장수의 군대가 완성되면서 형제의 왕위 다툼은 왕국 전체를 삼킬 전쟁으로 번졌다.
성문 밖에서 두 아들을 저주하는 눈먼 오이디푸스
4.2 일곱 장수와 일곱 성문
아르고스군은 테바이에 도착하여 일곱 성문마다 한 명의 장수를 배치했다. 에테오클레스도 각 성문을 지킬 전사를 정하고 시민들에게 끝까지 싸우라고 명했다.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스파르토이의 후손 한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바쳐야 도시가 구원받는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크레온의 아들 메노이케우스는 아버지의 만류를 뿌리치고 성문 앞에서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
일곱 성문 앞에서 격렬한 싸움이 벌어졌다. 카파네우스는 신들조차 자신을 막지 못한다고 외치며 사다리를 타고 성벽에 올랐다가 제우스의 벼락에 맞아 떨어졌다. 암피아라오스는 추격을 피해 전차를 몰아 달아났지만, 제우스가 벼락으로 땅을 가르자 전차와 함께 갈라진 땅속으로 사라졌다. 다른 장수들도 차례로 쓰러지면서 아르고스군은 성벽 밖으로 밀려났다.
전쟁의 원인이 된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는 왕국의 주인을 가리기 위해 마지막 결투를 벌였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같은 자리에서 쓰러졌다. 테바이는 아르고스군을 물리쳤지만 왕자들을 모두 잃었고, 일곱 장수 가운데 아드라스토스만이 살아서 아르고스로 돌아갔다. 승리를 외치는 시민들 앞에는 오이디푸스의 저주를 이루듯 두 형제의 시신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일곱 성문 앞에서 서로 창을 겨누는 두 형제
4.3 크레온과 안티고네
두 왕자가 죽자 크레온이 다시 테바이의 왕이 되었다. 그는 도시를 지킨 에테오클레스에게 성대한 장례를 허락했지만, 적군을 이끌고 고향을 공격한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은 들판에 버려 두라고 명했다. 누구든 그를 매장하면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고 선포하여, 왕의 명령이 혈육에 대한 의무보다 앞선다는 것을 보이려 했다.
안티고네는 오라비가 적으로 돌아왔더라도 장례를 치르지 못하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여동생 이스메네가 두려워하며 말렸지만, 안티고네는 홀로 성 밖으로 나가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에 흙을 뿌리고 제의를 올렸다. 경비병에게 붙잡혀 왕 앞에 선 뒤에도 자신의 행동을 부인하지 않았다. 크레온은 아들 하이몬의 약혼녀인 그녀를 동굴에 가두라고 명했다.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매장되지 않은 시신 때문에 신들이 분노했다고 경고했다. 뒤늦게 마음을 돌린 크레온이 동굴로 달려갔지만 안티고네는 이미 죽은 뒤였다. 하이몬도 그녀 곁에서 목숨을 끊었고, 왕비 에우리디케마저 아들의 죽음을 듣고 세상을 떠났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크레온은 하루 사이에 가족을 잃고, 텅 빈 왕궁으로 돌아왔다.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에 흙을 뿌리는 안티고네
4.4 에피고노이와 왕정의 마지막
일곱 장수가 패배한 지 십 년 뒤 그들의 아들들이 다시 모였다. 테르산드로스는 하르모니아의 옷을 에리퓔레에게 주어 두 아들 알크마이온과 암필로코스를 원정에 참여시켰다. 신탁에 따라 알크마이온을 지휘자로 세운 에피고노이는 테바이로 진군했다. 에테오클레스의 아들 라오다마스는 성 밖에서 맞섰지만 알크마이온에게 죽었다. 테이레시아스의 권고를 받은 백성들은 밤중에 도시를 버렸고, 늙은 예언자는 피난길의 틸푸사 샘에서 생을 마쳤다.
에피고노이는 테바이에 들어가 성벽을 허물고 폴리네이케스의 아들 테르산드로스에게 왕국을 넘겼다. 그러나 그는 트로이로 향하던 그리스군과 미시아에 상륙했다가 텔레포스에게 죽었다. 아들 티사메노스가 어렸으므로 페넬레오스가 테바이군을 이끌었고, 그가 트로이에서 에우뤼필로스에게 죽은 뒤 장성한 티사메노스가 왕위에 올랐다. 왕국은 되살아났지만 라이오스와 오이디푸스의 저주는 사라지지 않았다.
저주는 티사메노스를 비껴가 그의 아들 아우테시온에게 닿았다. 아우테시온은 복수의 여신들을 피하라는 신탁을 받고 테바이를 떠났으며, 뒤이어 다마시크톤과 프톨레마이오스, 크산토스가 왕위에 올랐다. 마지막 왕 크산토스가 넬레우스 가문의 안드로폼포스와 벌인 결투에서 속임수에 넘어가 죽자, 테바이인들은 더는 한 사람에게 나라를 맡기지 않기로 했다. 여러 사람이 함께 다스리는 통치가 시작되면서 카드모스 이래 이어진 왕들의 시대도 막을 내렸다.
무너진 성벽을 지나 텅 빈 테바이에 들어선 에피고노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