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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고스 – 디오메데스의 왕국
헤라가 지킨 아르고스는 그리스에서 가장 오래된 왕국 가운데 하나였다. 이나코스와 포로네우스의 시대를 지나 이집트에서 돌아온 다나오스가 새 왕조를 열었고, 왕위는 아크리시오스와 프로이토스의 다툼으로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훗날 아드라스토스는 일곱 장수를 이끌고 테바이로 향했으나 홀로 돌아왔고, 외손자 디오메데스는 에피고노이의 승리를 거쳐 왕위에 올랐다. 트로이에서 신들에게 창을 겨눈 그는 전쟁을 마치고도 왕국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1.1 헤라가 선택한 이나코스의 땅
펠로폰네소스 동쪽의 넓은 평야에는 이나코스강이 흘렀다. 먼 옛날 그 강의 신 이나코스는 사람들의 왕이 되어 물가에 첫 터전을 마련했다. 비가 내릴 때마다 산에서 흘러온 물은 메마른 들판을 적셨고, 사람들은 강기슭에 밭을 일구고 가축을 길렀다. 그때부터 이나코스는 강의 이름이면서 아르고스 최초의 왕을 가리키는 이름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헤라와 포세이돈이 이 땅을 두고 서로 자신의 것이라 주장했다. 두 신은 이나코스와 케피소스, 아스테리온 세 강의 신에게 주인을 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세 강은 들판과 사람들을 보살펴 온 헤라의 손을 들어 주었다. 헤라는 기뻐하며 아르고스를 자신의 땅으로 삼았지만, 패한 포세이돈은 분노하여 강물을 땅속으로 감추었다.
그 뒤 아르고스의 강들은 비가 올 때만 세차게 흐르고 여름이면 바닥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마른 강바닥을 보며 바다의 신이 내린 분노를 기억했다. 그러나 높은 곳에 자리 잡은 헤라는 왕국을 떠나지 않았다. 훗날 왕들은 들판 너머에 헤라의 성소를 세우고 나라의 보호를 빌었으며, 아르고스 사람들은 자신들의 왕국을 헤라가 직접 선택한 가장 오래된 땅이라고 이야기했다.
아르고스의 주인을 정하는 세 강의 신과 헤라
1.2 사람들을 모은 포로네우스
이나코스에게는 포로네우스라는 아들이 있었다. 그가 자랄 무렵 사람들은 아직 들판과 산기슭에 흩어져 살았다. 이웃의 얼굴조차 모르는 집들이 많았고, 들짐승이나 약탈자가 나타나도 함께 맞설 수 없었다. 왕위에 오른 포로네우스는 사람들을 이나코스강 가까운 한곳으로 불러 모아 집과 길을 나란히 세우게 했다.
사람들은 공동의 광장을 만들고 같은 화로에서 불씨를 나누었다. 아르고스 전승은 프로메테우스가 아니라 포로네우스가 처음 불을 발견하여 사람들에게 주었다고도 전한다. 불이 꺼지지 않도록 지키는 화로 곁에서 사람들은 제사를 올리고 다툼을 판결받았다. 흩어져 있던 가족들은 비로소 하나의 공동체가 되었고, 그곳은 ‘포로네우스의 도시’라고 불렸다.
포로네우스의 뒤를 이은 손자 아르고스는 자신의 이름을 나라와 백성에게 주었다. 작은 도시는 점차 주변 평야와 산지까지 품으며 아르고스 왕국으로 자라났다. 그러나 왕가에서는 평온한 날만 이어지지 않았다. 이나코스의 후손 이오는 헤라의 질투를 받아 암소의 모습으로 먼 나라를 떠돌았고, 그녀에게서 이어진 혈통은 여러 세대 뒤 이집트에서 다시 아르고스로 돌아오게 된다.
공동 화로의 불씨를 사람들에게 나누는 포로네우스
1.3 이집트에서 돌아온 다나오스
이오의 후손 벨로스에게는 아이귑토스와 다나오스라는 쌍둥이 아들이 있었다. 두 형제는 이집트와 그 주변을 나누어 다스렸지만 곧 왕권을 두고 맞섰다. 쉰 아들을 둔 아이귑토스가 자신의 아들들과 다나오스의 쉰 딸을 혼인시키려 하자, 다나오스는 그것이 왕국을 빼앗으려는 계략이라고 의심했다. 그는 아테나의 도움으로 배를 만들고 딸들을 태워 바다를 건넜다.
긴 항해 끝에 다나오스 일행은 조상 이오가 떠나온 아르고스에 닿았다. 그러나 그곳에는 겔라노르라는 왕이 있었다. 다나오스는 자신이 이나코스의 혈통이므로 왕위를 이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겔라노르는 오랫동안 나라를 지켜 온 자신에게 권리가 있다고 맞섰다. 백성들은 어느 쪽도 쉽게 택하지 못하고 다음 날 다시 판결하기로 했다.
이튿날 성벽 밖에서 낯선 늑대 한 마리가 소 떼의 우두머리 황소와 싸워 쓰러뜨렸다. 사람들은 황소를 겔라노르, 외지에서 온 늑대를 다나오스라고 여겼다. 신들이 보낸 징조라 믿은 아르고스인들은 다나오스를 왕으로 세웠다. 그는 승리를 내려 준 아폴론 뤼케이오스에게 신전을 바치고, 메마른 땅에서 샘을 찾도록 딸들을 보내며 새로운 왕국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황소를 쓰러뜨린 늑대를 바라보는 다나오스와 백성들
1.4 남편을 살린 휘페르므네스트라
다나오스가 왕이 된 뒤 아이귑토스의 쉰 아들이 아르고스로 찾아왔다. 그들은 두 집안의 오랜 다툼을 끝내자며 다나오스의 쉰 딸과 혼인하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맞서 싸울 힘이 부족했던 다나오스는 겉으로 청혼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혼례를 앞둔 밤, 그는 딸들에게 짧은 칼을 하나씩 나누어 주며 남편들이 잠들면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다.
화려한 혼례가 끝나고 어둠이 내리자 마흔아홉 딸은 아버지의 명령을 따랐다. 단 한 사람, 휘페르므네스트라만은 남편 륀케우스를 살려 주었다. 륀케우스가 그녀의 뜻을 존중하고 억지로 가까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휘페르므네스트라는 남편을 성 밖으로 달아나게 했고, 명령을 어긴 사실을 안 다나오스는 딸을 붙잡아 아르고스 사람들 앞에서 재판받게 했다.
사람들은 남편의 목숨을 지킨 휘페르므네스트라에게 죄가 없다고 판결했다. 풀려난 그녀는 재판에서 승리하게 해 준 아프로디테에게 감사의 상을 바쳤다. 륀케우스도 마침내 아르고스로 돌아와 아내와 다시 만났고, 다나오스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바스가 왕통을 이어 갔지만, 피로 시작된 왕가는 그의 두 아들이 하나의 왕좌를 놓고 맞서면서 다시 흔들리게 된다.
륀케우스를 성 밖으로 탈출시키는 휘페르므네스트라
2.1 왕국을 나눈 쌍둥이
륀케우스와 휘페르므네스트라의 아들 아바스가 왕위를 이은 뒤, 왕비 아글라이아는 쌍둥이 아크리시오스와 프로이토스를 낳았다. 두 형제는 어머니의 배 속에서부터 서로 밀치고 싸웠다고 전해졌다. 장성한 뒤에도 다툼은 끝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죽자 두 사람은 서로 자신이 아르고스의 왕이 되어야 한다며 군사를 모아 전쟁을 벌였다.
치열한 싸움 끝에 아크리시오스가 승리하여 동생을 나라 밖으로 몰아냈다. 이 전쟁에서 두 형제가 처음 방패를 만들어 사용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졌다. 프로이토스는 바다를 건너 뤼키아로 달아나 왕 이오바테스에게 몸을 의탁했다. 그는 왕의 딸 안테이아와 혼인하고 군대까지 얻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아크리시오스는 다시 나타난 동생을 끝내 물리치지 못했다.
오랜 싸움으로 왕국이 무너질 것을 두려워한 형제는 마침내 아르고스의 땅을 나누었다. 아크리시오스는 옛 도성과 평야를 차지했고, 프로이토스는 티륀스와 미데이아, 헤라이온과 해안 지역을 다스렸다. 프로이토스는 퀴클롭스들에게 티륀스의 거대한 돌 성벽을 쌓게 했다. 하나였던 왕국에는 두 개의 왕좌가 세워졌고, 그 분열은 뒤이은 왕가들의 운명까지 바꾸어 놓았다.
아르고스의 지도를 사이에 두고 왕국을 나누는 쌍둥이
2.2 광기에 빠진 프로이토스의 딸들
티륀스를 다스리던 프로이토스에게는 뤼시페와 이피노에, 이피아낫사라는 세 딸이 있었다. 아름답게 자란 왕녀들은 자신들이 헤라보다 빼어나다고 자랑하거나 디오니소스의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모욕받은 신은 세 자매의 정신을 흐려 놓았다. 왕녀들은 자신들이 암소라고 믿으며 왕궁을 뛰쳐나가 들판과 산속을 헤맸다.
세 자매의 광기는 다른 여인들에게까지 번졌다. 집을 버린 여인들이 아이들을 해치고 떼를 지어 황야로 달려가자 프로이토스는 예언자이자 치료자인 멜람푸스를 불렀다. 멜람푸스는 왕국의 삼분의 일을 준다면 병을 고치겠다고 했다. 왕이 너무 큰 대가라며 거절하는 동안 광기는 더욱 거세졌고, 멜람푸스는 자신의 형제 비아스에게도 같은 몫을 달라고 요구했다.
두 몫마저 잃을까 두려워진 프로이토스는 마침내 조건을 받아들였다. 멜람푸스는 건장한 젊은이들을 이끌고 신에게 노래하고 춤추며 여인들을 산에서 몰아냈다. 추격 도중 이피노에는 목숨을 잃었지만, 남은 두 왕녀는 정화 의식을 거쳐 정신을 되찾았다. 프로이토스는 약속대로 땅을 나누고 두 딸을 멜람푸스와 비아스에게 주었으며, 아르고스에는 새로운 두 왕가가 자리 잡았다.
암소처럼 울며 산과 들을 헤매는 프로이토스의 세 딸
2.3 세 왕가로 나뉜 아르고스
멜람푸스와 비아스가 왕국의 몫을 받은 뒤 아르고스에는 세 왕가가 함께 서게 되었다. 어떤 전승은 프로이토스가 직접 땅을 나누었다고 하고, 아르고스 사람들이 전한 이야기는 그의 후손 아낙사고라스 시대에 분할이 확정되었다고 했다. 아낙사고라스와 멜람푸스, 비아스의 세 집안은 저마다 같은 몫을 차지하고 하나의 나라 안에서 왕권을 이어 갔다.
멜람푸스의 집안에는 신의 뜻을 알아듣는 예언자들이 태어났다. 그의 후손 암피아라오스는 전쟁의 끝과 땅속의 징조를 내다보는 사람이 되었다. 비아스의 집안에서는 탈라오스와 아드라스토스 같은 전사와 왕이 나왔다. 아낙사고라스의 혈통도 알렉토르와 이피스를 거쳐 왕위의 한 몫을 지키며 다른 두 집안과 나란히 아르고스를 다스렸다.
왕국이 셋으로 갈라졌어도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아르고스인이라 불렀다. 전쟁이 닥치면 세 왕가는 같은 성문과 들판을 지키고, 제사를 올릴 때면 함께 헤라의 신전으로 향했다. 그러나 누가 군대를 이끌고 어느 왕의 결정을 따라야 하는지를 두고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훗날 아드라스토스와 암피아라오스의 충돌, 그리고 테바이 원정은 이 세 왕가의 불안한 동맹에서 시작된다.
하나의 왕국을 세 몫으로 나누는 세 왕가의 왕들
2.4 미케네를 세우러 떠난 페르세우스
아크리시오스는 딸 다나에가 낳은 아들에게 죽으리라는 신탁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바다에 버렸던 다나에와 페르세우스는 살아남았고, 페르세우스는 메두사를 쓰러뜨린 영웅이 되어 그리스로 돌아왔다. 외손자를 피해 테살리아의 라리사로 달아난 아크리시오스는 그곳에서 열린 경기를 구경하다가 페르세우스가 던진 원반에 맞아 숨졌다.
신탁을 피하려 했던 외조부를 자신의 손으로 죽인 페르세우스는 슬픔과 부끄러움 속에서 아르고스로 돌아왔다. 그는 피로 얻은 왕좌에 앉을 수 없다며 프로이토스의 아들 메가펜테스에게 왕국을 바꾸자고 청했다. 메가펜테스가 아르고스를 차지하는 대신 페르세우스는 티륀스와 그 주변 땅을 넘겨받았다.
페르세우스는 아르고스 북쪽에 새로운 성채를 세우고 미케네라고 이름 붙였다. 퀴클롭스들이 거대한 돌을 쌓아 올린 성벽 안에서 그의 후손들은 독립된 왕가를 이루었다. 이렇게 아르고스의 오래된 왕통에서 미케네 왕국이 갈라져 나왔고, 두 도시는 가까이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왕조의 중심지가 되었다. 훗날 미케네에는 아트레우스와 아가멤논이, 아르고스에는 아드라스토스와 디오메데스가 나타나 서로 다른 군대를 이끌게 된다.
거대한 돌 성벽 아래 미케네를 세우는 페르세우스
3.1 아르고스로 돌아온 아드라스토스
비아스의 후손 탈라오스에게는 아드라스토스라는 아들이 있었다. 그러나 같은 아르고스에서 멜람푸스의 혈통을 이은 암피아라오스가 세력을 넓히면서 두 집안은 왕권을 놓고 충돌했다. 싸움에서 밀려난 아드라스토스는 북쪽 시키온으로 달아났다. 그는 그곳의 왕 폴뤼보스에게 받아들여졌고, 마침내 시키온의 왕좌까지 물려받았다.
세월이 흐른 뒤 아드라스토스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기회를 얻었다. 그는 암피아라오스와 화해하고 자신의 누이 에리퓔레를 그의 아내로 주었다. 두 사람은 앞으로 다툼이 생기면 에리퓔레의 판단을 따르기로 맹세했다. 오랜 추방을 끝낸 아드라스토스는 아르고스의 왕좌를 되찾았지만, 그 맹세가 훗날 암피아라오스를 죽음으로 보내게 되리라고는 알지 못했다.
왕이 된 아드라스토스는 흩어진 왕가들을 다시 묶고 궁전의 문을 망명자들에게 열어 주었다. 낯선 땅에서 지낸 자신의 세월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쫓겨난 두 젊은이가 거의 동시에 아르고스에 도착했다. 테바이의 폴리네이케스와 칼리돈의 튀데우스였다. 두 사람의 등장은 아르고스군을 거대한 전쟁으로 이끌게 된다.
오랜 추방을 끝내고 아르고스 성문으로 돌아온 아드라스토스
3.2 사자와 멧돼지의 신탁
폴리네이케스와 튀데우스는 아드라스토스의 궁전 앞에서 하룻밤을 보내려 했다. 그러나 같은 자리를 차지하려다 말다툼을 벌였고, 곧 무기를 들고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소란을 들은 아드라스토스가 밖으로 나왔을 때 두 망명자는 사자와 멧돼지처럼 거칠게 싸우고 있었다. 한 사람의 방패에는 사자가, 다른 사람의 방패에는 멧돼지가 새겨져 있었다.
아드라스토스는 오래전에 받은 신탁을 떠올렸다. 자신의 두 딸을 사자와 멧돼지에게 짝지어 주게 되리라는 말이었다. 그는 두 젊은이의 싸움을 멈추고 이름과 사연을 물었다. 폴리네이케스는 약속을 어긴 형 에테오클레스에게 테바이 왕좌를 빼앗겼고, 튀데우스는 친족을 죽인 죄로 칼리돈에서 추방되어 돌아갈 곳을 잃은 몸이었다.
왕은 신탁이 이루어졌다고 믿고 두 사람을 사위로 맞았다. 딸 아르게이아는 폴리네이케스와, 데이퓔레는 튀데우스와 혼인했다. 그리고 두 사위가 잃어버린 왕국을 되찾도록 돕겠다고 약속했다. 아드라스토스는 먼저 테바이로 향하기로 결정하고 아르고스의 장수들을 불러 모았다. 어린 디오메데스는 아버지 튀데우스가 군장을 갖추는 모습을 바라보았고, 소년의 운명도 그 행렬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자와 멧돼지 문양의 방패를 바라보는 아드라스토스
3.3 테바이에서 무너진 일곱 장수
아드라스토스는 폴리네이케스와 튀데우스, 암피아라오스, 카파네우스, 히포메돈, 파르테노파이오스를 이끌고 테바이로 향했다. 암피아라오스는 원정에 나선 장수들이 죽고 아드라스토스만 돌아올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참전을 거부했지만, 하르모니아의 목걸이를 받은 에리퓔레가 출정을 명하자 그녀의 판단을 따르겠다는 맹세 때문에 군장을 갖추었다.
테바이로 가던 군대는 네메아에서 뱀에게 죽은 아기 오펠테스를 묻고 장례 경기를 열었다. 불길한 징조를 뒤로한 채 일곱 장수는 테바이의 일곱 성문을 하나씩 맡아 공격했다. 성벽을 넘으려던 카파네우스는 제우스의 벼락에 쓰러졌고, 폴리네이케스는 형 에테오클레스와 서로를 찔러 죽었다. 아르고스의 군대도 성문 앞에서 차례로 무너졌다.
아테나는 치명상을 입은 튀데우스를 살리려 했지만, 그가 분노에 사로잡혀 쓰러뜨린 적의 시신을 훼손하는 모습을 보고 돌아섰다. 도망치던 암피아라오스는 제우스가 갈라 놓은 땅속으로 전차와 함께 사라졌다. 다른 장수들도 모두 쓰러지고, 아드라스토스만이 신마 아리온을 타고 아르고스로 돌아왔다. 아버지를 잃은 디오메데스와 장수들의 아들들은 언젠가 테바이로 돌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신마 아리온을 타고 무너진 전장을 빠져나오는 아드라스토스
3.4 아버지들의 전쟁을 끝낸 에피고노이
일곱 장수가 쓰러진 뒤 십 년이 흐르자 그 아들들은 다시 테바이 원정을 준비했다. 사람들은 그들을 ‘뒤에 태어난 자들’이라는 뜻의 에피고노이라 불렀다. 신탁은 암피아라오스의 아들 알크마이온이 지휘해야 승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튀데우스의 아들 디오메데스와 카파네우스의 아들 스테넬로스도 아르고스군을 이끌고 원정에 합류했다.
젊은 장수들은 아버지들의 패배를 되풀이하지 않았다. 그들은 글리사스 부근에서 테바이군을 꺾고 성벽으로 진격했다. 예언자 테이레시아스가 더는 도시를 지킬 수 없다고 알리자 테바이 사람들은 밤중에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에피고노이는 텅 빈 성문을 지나 왕궁에 들어갔고, 폴리네이케스의 아들 테르산드로스를 왕으로 세웠다.
그러나 승리에도 희생은 따랐다. 아드라스토스의 아들 아이기알레우스가 전투에서 죽자, 노왕은 돌아오는 길에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디오메데스는 아버지 튀데우스의 원수를 갚고 아르고스로 돌아와 외조부 아드라스토스의 뒤를 이었다. 한때 궁전에서 아버지의 출정을 바라보던 소년은 이제 스테넬로스와 에우뤼알로스를 거느린 젊은 왕이 되었다.
테바이 성문으로 들어서는 디오메데스와 에피고노이
4.1 여든 척의 배를 이끈 젊은 왕
아르고스의 왕이 된 디오메데스는 아드라스토스 왕가의 아이기알레이아와 혼인하여 왕실의 결속을 다졌다. 그는 젊었지만 이미 에피고노이 원정에서 테바이를 함락한 이름난 장수였다. 또한 한때 헬레네에게 구혼하고, 그녀가 선택한 신랑을 모두가 지켜 주겠다는 틴다레오스의 맹세에 참여한 왕이기도 했다.
파리스가 헬레네를 데리고 트로이로 떠나자 메넬라오스는 맹세에 참여했던 왕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디오메데스의 깃발 아래에는 아르고스와 거대한 성벽의 티륀스, 헤르미오네와 아시네, 트로이젠과 에피다우로스, 아이기나에서 온 병사들이 모였다. 스테넬로스와 에우뤼알로스가 함께 지휘했지만 모든 군대의 으뜸은 디오메데스였고, 그들이 준비한 배는 여든 척에 이르렀다.
미케네의 아가멤논이 그리스군 전체를 지휘했지만 아르고스 군대는 디오메데스의 명령을 따랐다. 그는 아울리스에서 다른 왕들과 합류하여 바람이 열리기를 기다렸고, 마침내 바다를 건너 트로이 앞에 진을 쳤다. 아테나는 그의 아버지 튀데우스를 도왔듯 젊은 왕도 지켜보았다. 아버지들의 전쟁을 끝낸 디오메데스는 이제 아킬레우스 다음가는 전사로 이름을 떨치게 된다.
여든 척의 검은 배 앞에서 군대를 이끄는 디오메데스
4.2 두 신에게 상처를 입히다
트로이 전쟁이 길어지던 어느 날, 아테나는 디오메데스의 투구와 방패에서 불꽃이 솟게 하고 그의 눈에서 안개를 걷어 냈다. 여신은 인간과 신을 구별할 수 있게 해 주면서 다른 신들과 맞서지 말되, 아프로디테가 전장에 나타나면 공격하라고 일렀다. 곧 판다로스의 화살이 어깨를 꿰뚫었지만, 스테넬로스가 화살을 뽑자 그는 아테나에게 기도하고 다시 전차에 올랐다.
디오메데스는 판다로스를 죽이고 거대한 돌을 들어 아이네이아스를 쓰러뜨렸다. 아프로디테가 아들을 안고 전장을 빠져나가려 하자 그는 여신을 뒤쫓아 손목을 창으로 찔렀다. 피를 흘린 아프로디테는 아이네이아스를 놓치고 올림포스로 달아났다. 디오메데스가 아폴론에게까지 다가가자, 신은 인간의 한계를 넘지 말라고 경고하며 그를 물러서게 했다.
잠시 뒤 아레스가 트로이군을 도우며 전장을 휩쓸자 아테나가 직접 디오메데스의 전차에 올랐다. 여신은 하데스의 투구를 써 모습을 감추고 아레스의 창을 막은 뒤, 디오메데스가 던진 창을 전쟁신의 몸에 꽂히게 했다. 아레스의 울부짖음이 전장을 뒤흔들었다. 신은 올림포스로 달아났고, 아르고스의 젊은 왕은 두 신에게 상처를 입힌 인간으로 기억되었다.
아테나와 함께 전쟁신 아레스에게 창을 겨누는 디오메데스
4.3 트로이 함락의 열쇠를 모으다
트로이군이 그리스군의 배 가까이 밀려온 어느 밤, 디오메데스는 오디세우스와 함께 적진으로 향했다. 그때 회색 늑대 가죽을 걸친 돌론이 그리스 진영을 엿보러 다가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돌론을 붙잡아 트로이군의 배치와 새로 도착한 지원군의 위치를 알아낸 뒤 그를 죽였다. 이어 트라키아군의 진영에 숨어든 디오메데스는 잠든 왕 레소스와 병사들을 쓰러뜨렸고, 오디세우스는 눈처럼 흰 명마들의 고삐를 풀어 그리스 진영으로 몰고 돌아왔다.
전쟁의 마지막 무렵, 포로가 된 헬레노스는 헤라클레스의 활을 가진 필록테테스가 없으면 트로이를 함락할 수 없다고 예언했다. 디오메데스는 렘노스섬으로 건너가 오랫동안 버려져 있던 필록테테스를 설득해 데려왔다. 치료를 받고 전장에 선 필록테테스는 독화살로 파리스를 쓰러뜨렸다. 디오메데스가 데려온 영웅은 트로이의 운명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후대 전승에서는 성을 지키는 아테나의 신상 팔라디온이 남아 있는 동안 트로이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예언도 전해졌다. 디오메데스는 다시 오디세우스와 성 안으로 숨어들어 신상을 훔쳐 그리스 진영으로 돌아왔다. 오디세우스가 길을 찾고 계략을 세우면 디오메데스는 앞에서 창을 들었다. 필요한 영웅과 신물을 하나씩 손에 넣은 두 사람은 마침내 트로이 함락의 길을 열었다.
트로이 성안에서 팔라디온을 훔쳐 나오는 두 영웅
4.4 돌아갈 왕국을 잃다
트로이가 무너진 뒤 디오메데스는 네스토르와 함께 먼저 바다로 나서 큰 표류 없이 아르고스 가까이 돌아왔다. 그러나 후대 전승에 따르면 왕궁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아이기알레이아가 스테넬로스의 아들 코메테스를 가까이하며 남편을 몰아내려 했기 때문이다. 디오메데스는 전쟁에서 승리하고도 자신의 도성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사람들은 아이기알레이아가 배신한 까닭을 서로 다르게 전했다. 어떤 이들은 상처 입은 아프로디테가 복수한 것이라고 했고, 다른 이들은 팔라메데스의 형제 오이악스가 디오메데스가 트로이 여인을 새 아내로 데려온다고 거짓말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디오메데스는 왕좌를 되찾으려고 동족과 싸우지 않고 전사들을 이끌고 아르고스를 떠나 아이톨리아를 거쳐 서쪽 바다로 향했다.
이탈리아의 다우니아에 닿은 디오메데스는 왕 다우노스를 도와 적들을 물리치고 땅을 얻어 여러 도시를 세웠다. 그의 마지막을 두고는 다우노스에게 배신당해 죽었다거나 아테나가 불사의 존재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동료들이 새로 변해 그의 무덤과 섬을 지켰다고도 했다. 아르고스의 왕은 고향의 왕좌를 잃었지만, 먼 이탈리아에서 새로운 도시들의 시조로 기억되었다.
굳게 닫힌 아르고스 성문 앞의 디오메데스와 전사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