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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스티스 – 죽음을 대신한 왕비
이올코스 왕 펠리아스의 딸 알케스티스는 사자와 멧돼지를 한 수레에 매고 온 페라이의 왕 아드메토스와 혼인한다. 아폴론의 도움으로 죽음을 피할 기회를 얻은 아드메토스에게 대신 죽어 줄 사람이 필요해지자, 알케스티스는 어린 자녀들과 남편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놓는다. 왕비가 숨을 거둔 날 페라이에 도착한 헤라클레스는 뒤늦게 친구의 슬픔을 알고 타나토스와 맞선다. 죽음에게서 풀려난 알케스티스는 마침내 베일을 쓴 채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다.
1.1 펠리아스 왕의 딸
이올코스의 왕 펠리아스에게는 여러 딸이 있었고, 그 가운데 알케스티스는 아름다움과 온화한 성품으로 이름이 높았다. 왕궁에는 그녀와 혼인하려는 젊은이들이 끊이지 않았지만, 펠리아스는 어느 누구에게도 쉽게 딸을 내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왕가에 걸맞은 사위라면 보통 사람은 해낼 수 없는 일을 이루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펠리아스가 내건 조건은 사나운 사자와 거친 멧돼지를 한 수레의 멍에에 매어 이올코스로 끌고 오는 것이었다. 서로 다른 야생 짐승을 나란히 길들이는 일은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해 보였다. 구혼자들은 조건을 듣고 물러났고, 알케스티스의 혼인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세월만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테살리아 페라이를 다스리는 젊은 왕 아드메토스가 그녀에게 구혼했다.
아드메토스는 펠리아스의 조건을 받아들였지만, 자신에게도 두 짐승을 굴복시킬 힘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알케스티스를 포기하고 물러날 수도 없었다. 그는 반드시 사자와 멧돼지를 한 수레에 매어 다시 이올코스로 돌아오겠다고 약속한 뒤 페라이로 향했다. 사람의 힘으로는 이룰 수 없는 시험을 앞둔 그에게는 신의 도움이 필요했다.
혼인 조건을 밝히는 펠리아스 앞의 알케스티스와 구혼자들
1.2 아드메토스를 섬긴 아폴론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가 죽은 사람까지 되살리자, 제우스는 세상의 질서가 무너질 것을 두려워해 벼락으로 그를 죽였다. 아들 아스클레피오스를 잃은 아폴론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제우스의 벼락을 만든 퀴클롭스들을 활로 쏘아 죽였다. 제우스는 그 죄를 물어 아폴론을 인간 세상으로 내려보내고, 한동안 사람을 섬기며 지내게 했다.
아폴론이 종으로 일하게 된 곳은 테살리아의 페라이였으며, 그곳의 왕은 페레스의 아들 아드메토스였다. 아드메토스는 종의 처지가 된 신을 업신여기지 않고 따뜻하게 대하며 자신의 가축을 맡겼다. 아폴론은 들판에서 소와 양을 돌보고 피리를 불며 정해진 시간을 보냈다. 신의 보살핌 아래 가축들은 크게 불어났고 페라이의 들판에는 평온이 이어졌다.
형벌의 시간이 끝난 뒤에도 아폴론은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왕을 잊지 않았다. 아드메토스가 이올코스 왕 펠리아스의 딸 알케스티스에게 구혼했지만 불가능한 시험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다시 그의 곁에 나타났다. 아폴론은 사나운 사자와 멧돼지를 굴복시켜 하나의 멍에에 매고, 아드메토스가 알케스티스를 아내로 맞이하도록 돕겠다고 약속했다.
페라이 들판에서 아드메토스의 가축을 돌보는 아폴론
1.3 사자와 멧돼지를 멍에에 매다
약속한 날이 되자 아폴론은 산과 숲에서 가장 사나운 사자와 멧돼지를 불러냈다. 사자는 갈기를 세우고 포효했으며 멧돼지는 땅을 긁으며 날카로운 엄니를 드러냈다. 두 짐승은 서로에게 달려들려 했지만 신의 손길 앞에서 움직임을 멈추었다. 아폴론은 마침내 그들을 한 멍에에 묶고 아드메토스가 몰 수레 앞에 나란히 세웠다.
아드메토스가 수레를 몰고 이올코스에 들어서자 사람들은 성문과 길가로 몰려나왔다. 한쪽에서는 사자가 으르렁거리고 다른 쪽에서는 멧돼지가 거친 숨을 내뿜었지만, 수레는 흔들리지 않고 왕궁까지 나아갔다.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조건이 눈앞에서 이루어지자 펠리아스도 더는 약속을 미룰 수 없었다. 그는 아드메토스를 사위로 인정하고 알케스티스와의 혼인을 허락했다.
알케스티스는 고향과 가족을 떠나 아드메토스와 함께 페라이로 향했다.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이 혼인을 받아들였는지는 옛이야기에 자세히 남아 있지 않지만, 두 사람은 곧 서로를 아끼는 부부가 되었다. 아드메토스는 아폴론의 도움으로 얻은 왕비를 소중히 대했고, 알케스티스는 낯선 왕국에서 백성과 집안을 돌보며 페라이의 왕비로 자리를 잡아 갔다.
사자와 멧돼지를 멍에에 맨 수레를 모는 아드메토스
1.4 뱀으로 가득 찬 신방
성대한 혼례가 열리자 아드메토스는 여러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새로운 가정을 축복해 달라고 빌었다. 그러나 기쁨과 분주함 속에서 사냥과 야생 짐승을 다스리는 아르테미스에게 제사를 드리는 일을 빠뜨렸다. 혼례에서 아르테미스에게 제사를 올리지 않은 실수는 곧 두 사람의 첫날밤에 불길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알케스티스와 아드메토스가 신방의 문을 열었을 때 방 안에는 수많은 뱀이 몸을 휘감고 있었다. 뱀들은 침상과 기둥을 뒤덮고 혀를 날름거리며 두 사람의 앞을 가로막았다. 놀란 아드메토스는 그제야 자신이 아르테미스에게 제물을 바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혼례의 노래가 울리던 왕궁은 순식간에 공포와 침묵에 휩싸였다.
다시 아폴론이 나서서 아드메토스에게 빠뜨린 제사를 정성껏 올려 노여운 아르테미스를 달래라고 일렀다. 아드메토스가 제사를 올리자 뱀들은 자취를 감추었고 두 사람은 마침내 부부로 함께 살 수 있었다. 알케스티스는 페라이의 왕비가 되어 아들 에우멜로스와 어린 딸을 낳았다. 한 차례 불길한 징조를 넘긴 왕궁에는 다시 웃음과 평온이 찾아왔지만, 더 큰 운명이 이미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많은 뱀으로 뒤덮인 신방 앞의 알케스티스와 아드메토스
2.1 운명의 여신들이 내건 조건
아폴론은 아드메토스에게 베푼 도움을 혼인으로 끝내지 않았다. 어느 날 왕에게 정해진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알게 된 신은 운명의 여신 모이라이에게 찾아갔다. 그는 아드메토스가 자신을 잘 대접한 의로운 왕이라며 아직 젊은 그에게 삶을 더 허락해 달라고 청했다. 그러나 한 번 정해진 인간의 수명은 신이라 해도 마음대로 바꿀 수 없었다.
아폴론의 거듭된 요청을 들은 모이라이는 마침내 한 가지 조건을 내놓았다. 아드메토스가 죽어야 할 날, 다른 누군가가 자원하여 그를 대신해 죽는다면 왕의 생명을 이어 주겠다는 것이었다. 죽음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한 사람이 살아남으려면 또 다른 한 사람이 스스로 삶을 내놓아 운명의 빈자리를 채워야 했다.
아폴론은 조건을 받아들였고 아드메토스에게 죽음을 피할 길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왕은 자신을 사랑하는 가족 가운데 누군가는 기꺼이 대신해 줄 것이라 믿었다. 특히 늙은 부모는 이미 오랜 생을 누렸으므로 젊은 아들과 왕국을 위해 남은 시간을 내놓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약속된 날이 다가오면서, 쉬워 보였던 조건은 누구도 선뜻 감당할 수 없는 두려운 선택으로 변했다.
생명의 실을 앞에 두고 아폴론과 마주한 모이라이
2.2 죽음을 거부한 아드메토스의 부모
죽음의 날이 가까워지자 아드메토스는 먼저 늙은 아버지 페레스와 어머니에게 자신을 대신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자신이 살아야 왕국을 지키고 어린 자녀들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날 날도 멀지 않았으니 아들을 위해 조금 일찍 생을 마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부모의 대답은 왕의 기대와 전혀 달랐다.
페레스는 아무리 짧게 남았더라도 자신의 생명은 소중하며, 아들을 낳아 길렀다는 이유로 대신 죽어야 할 의무는 없다고 거절했다. 어머니도 죽음 앞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은 왕위와 재산을 아들에게 주었지만 목숨까지 빚진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아드메토스는 부모의 냉정함을 원망했으나, 두 사람은 오히려 자신의 죽음을 다른 이에게 떠넘기려는 아들을 바라보았다.
왕은 친척과 친구들에게도 도움을 청했지만 누구도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평소 충성을 맹세하던 이들마저 죽음이라는 말을 듣자 눈을 피했다. 넓은 왕궁과 수많은 백성을 거느린 아드메토스였지만, 그의 목숨과 바꿀 자신의 삶을 내놓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죽음 앞에서 물러나자 왕궁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을 지켜본 알케스티스는 이미 남편을 살릴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죽음을 거부하는 부모 앞에 선 아드메토스
2.3 자신의 생명을 내놓은 알케스티스
아드메토스를 대신해 죽겠다는 사람이 아무도 나타나지 않자 알케스티스가 남편 앞에 섰다. 그녀는 자신이 죽음을 받아들이겠다고 조용히 말했다. 아드메토스가 세상을 떠나면 어린 에우멜로스와 딸은 아버지를 잃고, 왕의 보호 없이 자라야 했다. 알케스티스는 아이들이 아버지의 손에서 자라고 남편이 계속 햇빛을 바라볼 수 있도록 자신의 생명을 내놓기로 했다.
아드메토스는 살아날 길이 열렸는데도 기뻐하지 못했다. 자신의 생명을 이어 주기 위해 가장 사랑하는 아내가 죽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알케스티스를 붙잡고 결정을 거두어 달라고 애원했지만 그녀의 뜻은 흔들리지 않았다. 알케스티스는 자신도 젊고 삶을 사랑하지만, 혼자 살아남아 아이들이 아버지 없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보다 자신이 떠나는 길을 택하겠다고 말했다.
죽음을 앞둔 알케스티스는 남편에게 단 하나의 부탁을 남겼다. 자신이 떠난 뒤 다른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두 아이 위에 새어머니를 세우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새로운 왕비가 전처의 아이들을 미워한다면 자신이 목숨을 바쳐 지키려 한 가족도 끝내 무너질 수 있었다. 아드메토스는 아이들을 직접 돌보며 평생 다시 혼인하지 않고 알케스티스만을 아내로 기억하겠다고 맹세했다.
남편을 대신해 자신의 생명을 내놓는 알케스티스
2.4 아이들과 나눈 마지막 인사
죽기로 정해진 날이 밝자 알케스티스는 강물로 몸을 씻고 가장 아름다운 옷과 장신구를 갖추었다. 화로 앞에 선 그녀는 집안을 지키는 여신에게 자신이 떠난 뒤에도 두 아이를 보살펴 달라고 기도했다. 아들에게는 사랑할 아내를, 딸에게는 따뜻한 남편을 만나게 해 달라고 빈 뒤 왕궁의 제단마다 화환과 도금양 가지를 올렸다. 그러고는 신방으로 들어가 침상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기력이 다한 알케스티스가 아드메토스의 부축을 받아 왕궁 밖으로 나오자 두 아이가 어머니의 옷자락에 매달렸다. 에우멜로스는 자신들을 두고 어디로 가느냐고 울었고, 어린 딸도 어머니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알케스티스는 두 아이를 차례로 품에 안아 입을 맞춘 뒤 그들의 손을 아드메토스의 손에 포개었다. 이제부터 자신을 대신해 아이들의 어머니가 되어 달라는 부탁도 남겼다.
죽음이 가까워지자 알케스티스의 눈에는 햇빛이 흐려지고 발끝부터 힘이 빠져나갔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두 개의 노가 달린 배와 노를 잡은 카론을 보았다. 나루터의 뱃사공은 지체하지 말고 서두르라며 그녀를 재촉했다. 아드메토스가 이름을 부르며 붙잡았지만 알케스티스는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작별을 고한 뒤 숨을 거두었다. 살아남은 왕과 두 아이의 울음만이 페라이 왕궁에 남았다.
두 아이의 손을 남편에게 맡기는 알케스티스
3.1 상중의 왕궁을 찾아온 헤라클레스
알케스티스가 숨을 거두자 아드메토스는 페라이를 비롯한 테살리아의 백성들에게 머리카락을 자르고 검은 옷을 입어 왕비를 애도하라고 명했다. 도시에서는 열두 달 동안 피리와 수금 소리가 울리지 못하게 하고 장례를 준비했다. 바로 그때 헤라클레스가 트라키아 왕 디오메데스의 사람을 잡아먹는 암말들을 끌고 오라는 과업을 수행하러 가다가 페라이 왕궁에 도착했다.
헤라클레스는 상복을 입고 머리카락을 자른 아드메토스에게 누가 죽었느냐고 물었다. 자녀들과 늙은 부모가 무사하다는 말을 들은 그는 혹시 알케스티스가 죽었느냐고 거듭 물었다. 아드메토스는 아내의 이름을 분명히 말하지 않은 채 집안과 관계된 한 여인이 세상을 떠났다고 둘러댔다. 헤라클레스는 상중인 집에 폐를 끼칠 수 없다며 다른 친구의 집을 찾아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아드메토스는 슬픔 때문에 손님을 돌려보낸다면 자신의 집이 환대를 저버린 곳으로 남을 것이라며 그를 붙잡았다. 그는 왕궁에서 떨어진 별채를 내주고 음식과 술을 넉넉히 마련하게 했다. 또한 안쪽 문을 닫아 장례의 울음소리가 손님에게 들리지 않도록 명했다. 알케스티스의 시신이 아직 왕궁에 놓여 있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헤라클레스는 화관을 쓰고 술잔을 들었다.
상중의 왕궁에서 헤라클레스를 맞이하는 아드메토스
3.2 알케스티스를 떠나보내다
장례 행렬이 출발하려 할 때 늙은 페레스가 수의와 장례 제물을 들고 찾아왔다. 그는 아들을 살리고 왕가를 지킨 알케스티스를 가장 훌륭한 여인이라 칭송했다. 그러나 아드메토스는 자신을 대신해 죽기를 거부한 아버지에게 아내를 애도할 자격이 없다며 제물을 받지 않았다. 페레스 역시 자신의 목숨을 지킬 권리가 있으며, 아내의 죽음으로 살아남은 사람은 아드메토스라고 맞섰다.
부자는 알케스티스의 시신 앞에서 서로를 비난하며 거친 말을 주고받았다. 페레스가 분노하여 돌아간 뒤 아드메토스는 왕비의 시신을 장례용 화장단으로 옮기라고 명했다. 머리카락을 자르고 검은 옷을 입은 백성들이 뒤를 따랐고, 장례 행렬은 천천히 성 밖으로 향했다. 아드메토스는 자신을 대신해 죽은 아내를 떠나보내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상여 곁을 지켰다.
그동안 별채에서는 헤라클레스가 왕궁의 슬픔을 모른 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왕비를 사랑했던 하인은 그 모습을 견디지 못하고, 오늘 죽은 사람이 아드메토스를 대신한 알케스티스라고 털어놓았다. 헤라클레스는 즉시 화관을 벗고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는 큰 슬픔을 숨기면서까지 자신을 대접한 친구의 환대에 보답하기로 하고, 하인에게 알케스티스의 장례가 치러지는 곳을 물은 뒤 성 밖으로 나갔다.
왕비의 상여 곁에서 충돌하는 아드메토스와 페레스
3.3 타나토스와 맞선 영웅
헤라클레스는 알케스티스의 무덤 가까운 곳에 몸을 숨기고 타나토스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죽은 자에게 바친 제물의 피를 마시기 위해 죽음의 신이 무덤으로 올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때 타나토스를 붙잡아 굴복시킨다면 알케스티스를 되찾을 수 있었다. 헤라클레스는 곤봉을 곁에 내려놓고 어둠 속에서 숨을 죽인 채 장례 제물만을 바라보았다.
얼마 뒤 검은 옷을 입고 칼을 든 타나토스가 무덤으로 다가왔다. 그가 제물 곁으로 몸을 굽히는 순간 헤라클레스가 뛰쳐나가 두 팔로 붙잡았다. 타나토스는 몸을 비틀며 빠져나가려 했지만 네메아의 사자를 꺾고 수많은 괴물을 물리친 영웅의 팔은 풀리지 않았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에서 두 존재는 서로를 넘어뜨리려 하며 오랫동안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마침내 힘이 다한 타나토스는 알케스티스를 놓아주겠다고 약속했다. 헤라클레스가 팔을 풀자 죽음의 신은 어둠 속으로 물러났고, 빼앗겼던 생명은 다시 왕비에게 돌아왔다. 알케스티스는 아직 말을 할 수 없었지만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세상으로 되돌아와 헤라클레스 앞에 섰다. 헤라클레스는 그녀에게 베일을 씌우고 정체를 밝히지 않은 채 페라이 왕궁으로 데리고 갔다.
알케스티스의 무덤 앞에서 타나토스와 씨름하는 헤라클레스
3.4 베일을 쓰고 돌아온 알케스티스
장례를 마치고 돌아온 아드메토스 앞에 헤라클레스가 베일을 쓴 젊은 여인을 데리고 나타났다. 그는 경기에서 상으로 받은 여인이라며 자신이 과업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왕궁에서 보호해 달라고 부탁했다. 아드메토스는 아내에게 다시 혼인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으며, 낯선 여인의 모습이 알케스티스를 떠올리게 한다며 완강하게 거절했다.
헤라클레스는 친구에게 약속을 저버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손님을 맡아 달라는 것뿐이라고 설득했다. 아드메토스가 끝내 여인의 손을 잡자 헤라클레스는 얼굴을 가린 베일을 걷었다. 그 아래에는 다시는 볼 수 없으리라 여겼던 알케스티스가 살아서 서 있었다. 아드메토스는 눈앞의 모습을 믿지 못한 채 아내의 얼굴과 몸을 살피다가 마침내 그녀가 돌아왔음을 깨달았다.
알케스티스는 바로 말을 하지 않았다. 명계의 신들에게 바쳐졌던 몸을 사흘 동안 정화해야 비로소 예전처럼 목소리를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헤라클레스는 자신이 무덤에서 타나토스와 싸워 왕비를 되찾았다고 설명하고 다시 길을 떠났다. 아드메토스는 굳게 닫았던 왕궁의 문을 열고 도시 전체에 축제를 명했다. 베일을 벗은 알케스티스는 두 아이와 남편 곁으로 돌아와 다시 페라이의 왕비로 섰다.
베일을 벗은 알케스티스와 재회하는 아드메토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