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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 별전가담항설의지식창고 2026.08.25. 14:18 (2026.08.25. 14:18)

크레타 – 미노스의 왕국

 
제우스가 에우로페를 데려온 크레타섬에서는 미노스와 라다만튀스, 사르페돈이 성장했다. 왕이 된 미노스는 바다를 장악하고 강한 왕국을 세웠지만, 포세이돈과의 약속을 어기면서 미노타우로스가 태어나고 왕궁 깊숙이 미궁이 세워진다. 테세우스가 괴물을 죽인 뒤 미노스도 시칠리아에서 최후를 맞는다. 왕가는 아들 데우칼리온과 카트레우스의 두 갈래로 이어졌고, 데우칼리온의 아들 이도메네우스는 크레타군을 이끌고 트로이 전쟁에 참가했다.
목   차
[숨기기]
크레타 – 미노스의 왕국
 
 
 

개요

 
제우스가 에우로페를 데려온 크레타섬에서는 미노스와 라다만튀스, 사르페돈이 성장했다. 왕이 된 미노스는 바다를 장악하고 강한 왕국을 세웠지만, 포세이돈과의 약속을 어기면서 미노타우로스가 태어나고 왕궁 깊숙이 미궁이 세워진다. 테세우스가 괴물을 죽인 뒤 미노스도 시칠리아에서 최후를 맞는다. 왕가는 아들 데우칼리온과 카트레우스의 두 갈래로 이어졌고, 데우칼리온의 아들 이도메네우스는 크레타군을 이끌고 트로이 전쟁에 참가했다.
 
 
 

제1장 에우로페와 크레타 왕가

1.1 황소를 타고 크레타에 닿다
 
페니키아의 공주 에우로페가 시녀들과 바닷가에서 꽃을 따고 있을 때, 눈처럼 흰 황소 한 마리가 무리 가까이 다가왔다. 뿔은 매끄럽게 휘어 있었고 눈빛은 온순했다. 공주가 꽃으로 뿔을 장식하고 등에 올라타자, 황소는 갑자기 물가로 달려가 바다에 몸을 던졌다. 놀란 에우로페가 뿔을 붙잡는 동안 황소는 파도를 가르며 멀리 남쪽으로 나아갔다.
 
황소의 정체는 에우로페에게 마음을 빼앗긴 제우스였다. 바다의 신들과 돌고래들이 길을 열어 주었고, 두 사람은 마침내 크레타에 닿았다. 제우스는 고르틴의 푸른 나무 아래에서 본모습을 드러냈다. 낯선 섬에 홀로 남겨질 것을 두려워하는 공주에게 그는 크레타에서 태어날 아들들이 훗날 넓은 땅과 바다를 다스릴 것이라고 약속했다.
 
에우로페는 크레타에서 미노스와 라다만튀스, 사르페돈을 낳았다. 제우스는 오래 머물지 않았지만, 공주가 위험을 이겨 내도록 특별한 선물과 보호자를 남겼다. 바다 건너 페니키아에서는 오빠 카드모스가 사라진 누이를 찾아 헤매고 있었으나 에우로페는 돌아가지 않았다. 황소의 등에 실려온 공주는 크레타 왕가의 어머니가 되었고, 섬의 운명은 세 아들과 함께 새롭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흰 황소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에우로페
 
 
1.2 아스테리온이 세 왕자를 기르다
 
당시 크레타를 다스리던 왕은 아스테리온이었다. 그는 바다 건너에서 온 에우로페를 왕비로 맞아들이고, 제우스에게서 태어난 세 아들을 자신의 자식으로 받아들였다. 왕궁에서 자란 미노스와 라다만튀스, 사르페돈은 모두 왕자의 이름과 지위를 얻었다. 에우로페는 더 이상 납치되어 온 이방의 공주가 아니라 크레타 왕가의 중심에 선 왕비가 되었다.
 
세 왕자는 같은 궁전에서 성장했지만 서로 다른 길을 바라보았다. 미노스는 크레타의 여러 도시와 항구를 하나의 권력 아래 모으려 했고, 라다만튀스는 다툼을 판결하고 법을 세우는 일로 이름을 얻었다. 사르페돈의 곁에도 그를 따르는 젊은이들이 모였다. 아스테리온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왕의 권위가 형제 사이의 경쟁을 눌렀지만, 세월이 흐르자 왕위의 향방을 둘러싼 긴장이 커졌다.
 
아스테리온에게는 자신의 뒤를 이을 친아들이 없었다. 그는 세 왕자를 차별하지 않고 길렀으나 한 사람에게만 왕좌를 물려주어야 했다. 늙은 왕이 세상을 떠날 무렵, 크레타의 귀족과 도시들도 저마다 지지할 왕자를 선택하기 시작했다. 평온해 보이던 왕궁 안에서 형제의 우애는 흔들렸고, 에우로페가 세운 새로운 왕가는 첫 번째 갈림길을 맞았다.
 
왕궁에서 세 왕자를 돌보는 에우로페와 아스테리온
 
 
1.3 갈라진 미노스와 두 형제
 
성장한 세 왕자는 젊은 밀레토스를 두고 서로 다투기 시작했다. 밀레토스가 사르페돈을 더 가까이하자 미노스는 군사까지 일으켜 동생과 맞섰다. 다른 전승에서는 형제가 제우스의 아들 아팀니오스를 두고 충돌했다고도 한다. 싸움에서 우세를 차지한 미노스는 반대편을 몰아냈고, 사르페돈과 밀레토스는 더 이상 크레타에 머물지 못한 채 소아시아로 달아났다.
 
밀레토스는 카리아 해안에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를 세웠다. 사르페돈은 외삼촌 킬릭스와 힘을 합쳐 리키아인들과 싸운 뒤 그 땅의 왕이 되었다. 제우스는 멀리 떠난 아들에게 세 세대에 이르는 긴 삶을 허락했다고 전해진다. 이 때문에 일부 전승은 그를 훗날 트로이에서 싸운 사르페돈과 이어 보았지만, 호메로스는 트로이의 사르페돈을 제우스와 라오다메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영웅으로 전한다.
 
라다만튀스도 크레타의 여러 섬에 법을 세운 뒤 미노스의 곁을 떠나 그리스 본토로 향했다. 그는 공정한 판결로 명성을 얻고 보이오티아에 정착하여, 암피트리온을 잃은 알크메네와 혼인했다. 죽은 뒤에는 명계에서 영혼들의 삶을 심판하는 재판관이 되었다. 두 형제가 각자의 길로 떠나면서 에우로페의 세 아들 가운데 크레타에 남은 사람은 미노스뿐이었다.
 
크레타를 떠나 소아시아로 향하는 사르페돈과 밀레토스
 
 
1.4 크레타의 왕이 된 미노스
 
미노스는 크레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무엇을 청하든 신들이 들어줄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바닷가에서 포세이돈에게 기도하며 파도 속에서 황소 한 마리를 보내 달라고 청했다. 황소가 나타나면 곧바로 신에게 제물로 바치겠다는 약속도 덧붙였다. 이윽고 물보라 사이에서 눈부시게 흰 황소가 걸어 나오자 사람들은 미노스가 신들의 선택을 받았다고 믿고 그를 왕으로 받아들였다.
 
왕좌에 오른 미노스는 태양신 헬리오스의 딸 파시파에와 혼인했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안드로게오스와 데우칼리온, 카트레우스를 비롯하여 아리아드네와 파이드라 같은 자녀들이 태어났다. 미노스는 함대를 만들어 해적을 몰아내고 주변의 섬과 항로를 장악했다. 또한 정해진 때마다 제우스의 동굴을 찾아가 법을 받아온다고 말하며 크레타의 도시들을 하나의 질서 아래 묶었다.
 
그러나 왕권의 증표로 나타난 흰 황소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미노스는 그것을 자신의 소 떼 속에 숨기고 평범한 황소를 골라 포세이돈에게 바쳤다. 겉으로는 바다를 다스리는 강대한 왕국이 세워졌지만, 왕좌를 얻게 해 준 약속은 이미 깨져 있었다. 포세이돈은 자신을 속인 왕을 잊지 않았고, 미노스가 감춘 흰 황소는 곧 왕가 전체를 뒤흔들 재앙의 시작이 되었다.
 
파도에서 솟아난 흰 황소 앞에 선 미노스
 
 
 

제2장 흰 황소와 미궁

2.1 제물로 바치지 않은 포세이돈의 황소
 
미노스는 포세이돈의 황소를 왕궁의 소 떼 가운데 감추면 약속을 어긴 사실도 곧 잊힐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신에게서 받은 것을 탐낸 대가는 왕의 생각보다 컸다. 포세이돈은 황소를 거칠고 사나운 짐승으로 바꾸어 들판과 마을을 짓밟게 했다. 누구도 가까이 갈 수 없는 흰 황소가 크레타를 헤집고 다니자, 왕권을 증명했던 표징은 백성을 위협하는 재앙으로 변했다.
 
미케네의 왕 에우리스테우스는 헤라클레스에게 그 황소를 산 채로 붙잡아 오라고 명령했다. 크레타에 도착한 헤라클레스에게 미노스는 필요한 도움을 주겠다고 했지만, 영웅은 홀로 황소의 뿔을 붙잡고 힘을 꺾었다. 그는 바다를 건너 황소를 미케네로 데려갔다. 에우리스테우스가 다시 풀어 준 짐승은 그리스 땅을 떠돌다가 아테나이 가까운 마라톤 평원에 자리 잡았다.
 
크레타에서 시작된 황소의 재앙은 그렇게 바다 건너 아테나이로 옮겨 갔다. 마라톤의 황소는 들판을 황폐하게 만들고 다가오는 사람들을 죽였으며, 훗날 미노스의 아들 안드로게오스의 죽음에도 얽히게 된다. 테세우스가 마침내 그 짐승을 붙잡아 아테나이로 끌고 갔지만, 미노스가 황소를 제물로 바치지 않은 대가로 시작된 불행은 끝나지 않았다. 더 끔찍한 흔적은 이미 크레타 왕궁 안에서 자라고 있었다.
 
크레타 들판에서 흰 황소의 뿔을 붙잡은 헤라클레스
 
 
2.2 파시파에가 낳은 미노타우로스
 
포세이돈은 황소만 날뛰게 하는 것으로 분노를 거두지 않았다. 그는 왕비 파시파에가 흰 황소에게 거역할 수 없는 마음을 품도록 만들었다. 자신의 감정을 두려워한 파시파에는 이를 감추려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고통은 깊어졌다. 마침내 왕궁에 머물던 뛰어난 장인 다이달로스를 불러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부탁을 털어놓았다.
 
다이달로스는 나무로 속이 빈 암소를 만들고 그 위에 진짜 소가죽을 씌웠다. 살아 있는 암소처럼 보이는 정교한 작품은 바퀴에 실려 황소가 풀을 뜯는 들판으로 옮겨졌다. 신이 내린 욕망과 인간 장인의 기술이 결합한 끝에 파시파에는 아이를 잉태했다. 얼마 뒤 태어난 아이는 사람의 몸에 황소의 머리를 지닌 존재였으며, 미노스의 양아버지와 같은 아스테리온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사람들은 그를 미노스의 황소라는 뜻의 미노타우로스라고 불렀다. 어린 괴물은 자랄수록 거칠어졌고 평범한 음식으로는 만족하지 않았다. 미노스는 포세이돈에게 맞설 수도, 신의 벌을 받은 왕비를 함부로 처벌할 수도 없었다. 신탁은 괴물을 죽이지 말고 깊숙이 가두라고 명했다. 왕은 다시 다이달로스를 불러 미노타우로스와 그를 둘러싼 왕가의 비밀까지 영원히 감출 건물을 만들라고 명령했다.
 
황소 머리의 아기를 바라보는 미노스와 파시파에
 
 
2.3 다이달로스가 세운 미궁
 
다이달로스는 아테나이에서 이름난 장인이었지만, 자신의 재주를 넘어설 듯한 젊은이를 해친 죄로 고향을 떠나 크레타에 와 있었다. 미노스는 그가 만든 조각이 살아 움직이는 듯하고 어떤 도구도 새롭게 고쳐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왕은 다이달로스에게 한번 들어가면 길을 되짚을 수 없고, 안에 갇힌 존재가 밖으로 나올 수도 없는 거대한 건물을 세우라고 명했다.
 
장인은 크노소스의 왕궁 가까이에 수없이 꺾이는 통로와 서로 닮은 방들을 만들었다. 갈림길을 지나면 다시 처음 자리로 돌아온 듯했고, 출구처럼 보이는 길은 더 깊은 곳으로 이어졌다. 공사를 마친 다이달로스조차 한동안 방향을 찾기 어려울 만큼 복잡했다. 미노스는 미궁의 가장 깊은 방에 미노타우로스를 가두고 무장한 병사들로 입구를 지키게 했다.
 
미궁은 왕국의 힘을 보여 주는 건물이면서 미노스가 숨기고 싶은 진실을 삼킨 감옥이 되었다. 크레타 사람들은 높은 담장 너머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를 듣고도 안에서 무엇이 사는지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러나 괴물은 계속 먹이를 요구했고, 미노스는 죄인과 포로들을 통로 안으로 들여보냈다. 훗날 아테나이가 굴복하자 미궁은 바다 건너에서 보내온 젊은이들까지 삼키는 공포의 장소가 되었다.
 
끝없는 미궁의 입구에서 설계도를 든 다이달로스
 
 
2.4 청동 거인 탈로스가 지킨 섬
 
크레타의 해안에는 칼과 창만으로 쓰러뜨릴 수 없는 수호자가 있었다. 제우스가 에우로페에게 주었다고 전해지는 청동 거인 탈로스였다. 그는 하루에 세 번씩 섬의 둘레를 돌며 낯선 배가 다가오는지 살폈다. 허락받지 않은 배가 해안에 닿으려 하면 절벽에서 거대한 바위를 떼어 던졌다. 탈로스가 지키는 동안에는 적의 함대도 크레타에 함부로 상륙할 수 없었다.
 
탈로스의 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단단한 청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발목에는 생명과 죽음을 함께 품은 붉은 혈관 하나가 지나갔고, 그 위를 얇은 피부가 덮고 있었다. 신들의 피와 같은 이코르가 그 혈관 안을 흐르고 있어, 발목이 찢어지면 거대한 몸도 살아남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약점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탈로스는 오랫동안 크레타의 해안을 쉬지 않고 돌았다.
 
황금 양털을 얻은 아르고호가 귀향길에 크레타로 다가오자 탈로스는 어김없이 바위를 던졌다. 지친 영웅들이 상륙하지 못하고 물러서려 할 때 메데이아가 죽음의 정령들을 부르고 주문으로 거인의 눈을 홀렸다. 환영에 사로잡힌 탈로스는 바위를 들어 올리다가 뾰족한 바위에 발목을 긁혔다. 상처에서 이코르가 녹은 납처럼 쏟아졌고, 힘을 잃은 청동 거인은 절벽 위에서 흔들리다가 커다란 소리를 내며 무너졌다.
 
크레타 절벽에서 아르고호를 향해 바위를 든 탈로스
 
 
 

제3장 아테나이에서 온 왕자

3.1 아테나이에서 죽은 안드로게오스
 
미노스의 아들 안드로게오스는 힘과 기량이 뛰어난 젊은 왕자였다. 그는 아테나이에서 열린 경기에 참가하여 맞서는 선수마다 꺾고 모든 종목의 영예를 차지했다. 아테나이 사람들은 크레타 왕자가 자신들의 젊은이들을 앞선 것을 불편하게 여겼다. 어떤 전승에서는 패배를 시기한 경쟁자들이 그를 길에서 습격했고, 다른 전승에서는 아이게우스 왕이 그를 마라톤의 황소에게 보내 죽게 했다고 전한다.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미노스는 파로스섬에서 카리테스 여신들에게 제사를 올리던 중 죽음의 소식을 들었다. 그는 머리에 쓴 화관을 벗어 던지고 피리 연주를 멈추게 했지만, 왕으로서 시작한 제사를 끝까지 마쳤다. 슬픔을 억누른 채 크레타로 돌아온 미노스는 안드로게오스의 장례를 치르고,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아테나이에 반드시 대가를 받겠다고 맹세했다.
 
미노스에게 안드로게오스는 사랑하는 아들이자 왕국을 이을 수 있는 후계자였다. 왕자의 죽음은 한 가정의 비극에 머물지 않고 크레타와 아테나이 사이의 전쟁으로 번졌다. 미노스는 여러 섬에서 군사를 모으고 자신이 세운 함대를 출동시켰다. 크레타의 배들이 에게해를 북쪽으로 가로지르자 항구마다 문을 닫았고, 아테나이로 향하는 길목의 메가라가 먼저 공격을 받았다.
 
아들의 죽음 소식에 화관을 벗는 미노스
 
 
3.2 메가라를 무너뜨리고 아테나이를 굴복시키다
 
메가라의 왕 니소스에게는 머리카락 사이에 빛나는 자주색 머리카락 한 올이 있었다. 그것이 남아 있는 동안에는 도시가 함락되지 않는다는 신탁이 전해졌다. 미노스의 군대가 성을 포위해도 메가라가 버틸 수 있었던 까닭이었다. 그러나 성벽 위에서 적장을 바라보던 니소스의 딸 스킬라는 미노스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그녀는 한밤중 아버지의 방으로 들어가 운명의 머리카락을 잘라냈다.
 
보호를 잃은 니소스가 죽자 메가라의 성문이 열렸다. 스킬라는 미노스가 자신을 사랑하고 크레타의 왕비로 삼아 줄 것이라 기대했지만, 왕은 아버지와 조국을 배신한 여인을 믿지 않았다. 미노스는 그녀를 배에 매달아 바다에서 죽게 하고 함대를 이끌어 아테나이로 향했다. 견고한 성과 군대를 지닌 아테나이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고 전쟁은 길어졌다.
 
미노스가 제우스에게 아들의 원수를 갚아 달라고 빌자 아테나이에 가뭄과 흉년, 역병이 닥쳤다. 강물이 마르고 죽는 사람이 늘어나자 아테나이인들은 신탁에 구원을 물었다. 신탁은 미노스가 원하는 배상을 받아들여야 재앙이 그칠 것이라고 답했다. 마침내 아이게우스 왕은 사절을 보내 항복을 청했다. 미노스는 아테나이의 소년 일곱 명과 소녀 일곱 명을 정해진 때마다 크레타로 보내라고 요구했다.
 
잠든 니소스의 자주색 머리카락을 자르는 스킬라
 
 
3.3 미궁에 바쳐진 일곱 쌍
 
세 번째 조공의 때가 다가오자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희생을 끝내겠다며 스스로 젊은이들 사이에 들어갔다. 아이게우스는 아들을 말리지 못하자 살아 돌아올 경우 검은 돛 대신 흰 돛을 달라고 당부했다. 테세우스는 소년 일곱 명과 소녀 일곱 명이 탄 배에 올라 아테나이를 떠났다. 검은 돛을 단 배는 북풍을 받으며 크레타를 향해 나아갔다.
 
항해 도중 미노스가 소녀 에리보이아에게 손을 대자 그녀는 테세우스에게 도움을 청했다. 테세우스는 미노스 앞을 막아서며 자신도 포세이돈의 아들이라고 밝혔다. 미노스는 제우스에게 자신이 아들임을 증명해 달라고 기도했고, 하늘에서 번개가 번쩍였다. 그는 이제 테세우스의 혈통을 시험하겠다며 손가락의 황금 반지를 바다에 던지고 포세이돈의 아들이라면 되찾아 오라고 명했다.
 
테세우스는 바다 깊은 곳에서 미노스의 반지를 되찾았다. 바다의 왕비 암피트리테는 그를 반갑게 맞아 자주색 망토를 둘러 주고 빛나는 관을 머리에 씌워 주었다. 테세우스가 아무 상처 없이 수면 위로 돌아오자 배에 있던 사람들은 환호했고 미노스도 더는 그의 혈통을 의심하지 못했다. 얼마 뒤 배가 크레타에 닿았고, 왕궁에서 테세우스를 본 아리아드네는 죽음을 앞두고도 물러서지 않는 왕자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바다에 던져진 황금 반지를 향해 뛰어드는 테세우스
 
 
3.4 아리아드네의 실을 잡은 테세우스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를 살릴 방법을 찾아 다이달로스에게 미궁에서 빠져나오는 길을 물었다. 장인은 복잡한 통로를 외우려 하지 말고 입구에서부터 실을 풀며 걸으라고 일러 주었다. 아리아드네는 실타래와 무기를 테세우스에게 건네며 자신을 함께 데리고 떠나 달라고 부탁했다. 테세우스는 약속을 받아들이고 실의 한쪽 끝을 문에 묶은 뒤 젊은이들을 남겨 둔 채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통로의 가장 깊은 곳에서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로스가 맞섰다. 괴물은 뿔을 앞세워 돌진했지만 테세우스는 몸을 피한 뒤 가까이 달라붙어 치열하게 싸웠다. 마침내 미노타우로스가 쓰러지자 그는 바닥에 놓인 실을 더듬어 입구로 돌아왔다. 기다리던 아테나이 젊은이들과 아리아드네를 이끌고 항구로 달려간 테세우스는 크레타의 배들이 뒤쫓지 못하게 손을 쓴 뒤 밤바다로 떠났다.
 
아리아드네는 낙소스섬에 남겨졌고, 테세우스는 흰 돛을 올리라는 아버지의 당부마저 잊어 아이게우스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크레타에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났다. 미노타우로스는 죽고 아테나이의 조공은 끝났으며, 미노스의 딸은 적국의 왕자와 달아났다. 오랫동안 왕궁 안에 감추었던 비밀이 무너지자 미노스는 모든 책임을 다이달로스에게 돌리고 그와 아들 이카로스를 가두었다.
 
실타래를 따라 미노타우로스와 맞서는 테세우스
 
 
 

제4장 미노스 이후의 왕국

4.1 다이달로스를 쫓아 시칠리아로
 
미노스는 다이달로스가 아리아드네에게 미궁을 빠져나오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장인은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높은 곳에 갇혔지만, 새의 깃털을 모아 밀랍으로 붙인 두 쌍의 날개를 만들었다. 그는 아들에게 바다에 너무 가까이 날지도, 태양 가까이 올라가지도 말라고 당부했다. 두 사람은 하늘로 탈출했으나 이카로스는 높이 날다가 녹아내린 날개를 잃고 바다로 떨어졌다.
 
슬픔에 잠긴 다이달로스는 홀로 시칠리아에 닿아 코칼로스 왕의 보호를 받았다. 미노스는 그를 찾아 여러 나라를 돌며 나선형 소라 껍데기에 실을 꿰는 사람에게 큰 상을 주겠다고 알렸다. 코칼로스가 소라를 다이달로스에게 건네자 장인은 개미의 몸에 실을 묶어 안쪽으로 지나가게 했다. 완성된 소라를 본 미노스는 다이달로스가 왕궁 안에 숨어 있음을 알아차리고 즉시 넘겨 달라고 요구했다.
 
코칼로스는 겉으로는 요구를 받아들이며 미노스를 연회와 목욕에 초대했다. 그러나 다이달로스의 재주를 잃고 싶지 않았던 왕의 딸들은 목욕 중인 미노스에게 끓는 물을 부어 죽였다. 미궁을 세우고 바다를 지배했던 왕은 먼 시칠리아에서 장인을 쫓다가 최후를 맞았다. 크레타로 돌아오지 못한 미노스는 훗날 명계에서 라다만튀스와 함께 죽은 자들의 삶을 판결하는 재판관이 되었다고 전해졌다.
 
시칠리아 궁전에서 실 꿴 소라를 확인하는 미노스
 
 
4.2 데우칼리온이 왕국을 잇다
 
미노스 이후의 크레타 왕권은 하나의 계보로 분명하게 이어지지 않는다. 여러 전승 가운데 데우칼리온은 아버지가 남긴 함대와 도시를 물려받아 크레타를 다스린 왕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가 마주한 왕국은 미노타우로스와 조공 때문에 아테나이의 깊은 원한을 사고 있었다. 데우칼리온은 왕국을 안정시키기 위해 미노스와 달리 테세우스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데우칼리온은 누이 파이드라를 테세우스와 혼인시켰다. 크레타의 공주와 아테나이의 왕이 맺어지면서 두 나라를 갈라놓았던 전쟁은 끝나는 듯했다. 파이드라는 테세우스에게 아카마스와 데모폰을 낳았지만, 훗날 의붓아들 히폴리토스를 사랑하게 되면서 새로운 비극을 일으켰다. 아리아드네에 이어 또 한 명의 크레타 공주가 테세우스의 운명과 깊이 얽힌 것이다.
 
데우칼리온의 아들 이도메네우스는 무예와 통솔력을 익히며 여러 도시의 전사들에게 신망을 얻었고, 친족 메리오네스는 가장 가까운 동료로 성장했다. 한편 미노스의 또 다른 아들 카트레우스도 별도의 왕통을 이루어 크레타를 다스린 것으로 전해진다. 미노스가 홀로 섬을 지배하던 시대가 끝나면서, 미노스 이후의 왕가 이야기는 데우칼리온과 카트레우스의 두 가계를 따라 서로 다른 운명으로 이어졌다.
 
파이드라와 테세우스의 혼인을 지켜보는 데우칼리온
 
 
4.3 카트레우스의 예언과 흩어진 자녀들
 
미노스의 아들 카트레우스에게는 아들 알타이메네스와 딸 아에로페, 클리메네, 아페모시네가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자식 가운데 한 사람의 손에 죽으리라는 신탁을 받았다. 카트레우스는 예언을 숨겼지만 알타이메네스가 먼저 알아차렸고, 아버지를 죽이는 운명을 피하려 누이 아페모시네와 로도스로 떠났다. 그러나 아페모시네는 헤르메스에게 당한 일을 털어놓았다가 이를 믿지 않은 오빠에게 죽임을 당했다.
 
카트레우스는 남은 두 딸 아에로페와 클리메네를 나우플리오스에게 넘겨 외국에 팔도록 했다. 아에로페는 펠로폰네소스로 건너가 미케네의 아트레우스 왕가와 이어졌고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의 어머니가 되었다. 클리메네는 자신을 데려간 나우플리오스와 혼인하여 오이악스와 팔라메데스를 낳았다. 크레타에서 쫓겨난 두 공주의 혈통은 훗날 트로이 전쟁을 이끄는 왕과 영웅들에게 이어졌다.
 
늙은 카트레우스는 왕국을 아들에게 물려주고자 로도스로 향했다. 밤에 상륙한 일행을 해적이라 오해한 목동들이 돌을 던졌고, 개 짖는 소리 때문에 카트레우스의 외침은 들리지 않았다. 달려온 알타이메네스는 창을 던져 낯선 노인을 쓰러뜨린 뒤에야 그가 아버지임을 알았다. 운명을 피하려 고향을 떠났던 아들은 신탁을 이루고 말았고, 절망 속에서 땅이 자신을 삼켜 달라고 빌자 갈라진 틈으로 사라졌다.
 
로도스 해안에서 아버지를 쓰러뜨린 알타이메네스
 
 
4.4 트로이로 떠난 이도메네우스
 
데우칼리온의 아들 이도메네우스는 헬레네의 구혼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헬레네가 메넬라오스의 아내로 선택되자 그는 다른 구혼자들과 함께 그 혼인을 지키겠다고 맹세했다. 세월이 흘러 파리스가 헬레네를 트로이로 데려가자 맹세를 이행할 때가 왔다. 이도메네우스는 메리오네스와 함께 크노소스와 고르틴을 비롯한 크레타의 여러 도시에서 군사를 모아 여든 척의 배를 이끌고 출정했다.
 
이도메네우스는 젊은 전사들 사이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노련한 장수였다. 그는 아가멤논의 회의에서 의견을 내고, 트로이군이 그리스 함선 가까이 밀려왔을 때 창을 들고 앞줄에 섰다. 메리오네스와 나란히 싸우며 수많은 트로이 전사를 쓰러뜨렸고, 헥토르와 아이네이아스가 이끄는 공격에도 진영을 지켰다. 크레타군은 십 년 동안 왕과 함께 싸운 뒤 트로이가 무너지자 고향으로 향했다.
 
호메로스의 이야기에서 이도메네우스는 부하들을 잃지 않고 크레타로 무사히 돌아온다. 그러나 후대에는 폭풍 속에서 살아 돌아가면 처음 만나는 존재를 제물로 바치겠다고 맹세했다가 자신의 아들과 마주쳤고, 그 일로 역병이 일어나 백성들에게 쫓겨났다는 이야기가 생겼다. 이도메네우스가 떠난 뒤 그의 왕통에 관한 전승도 점차 희미해졌다. 에우로페의 도착으로 시작된 미노스 왕국의 신화적 연대기는 트로이 전쟁의 귀환과 함께 막을 내렸다.
 
여든 척의 크레타 함대를 이끌고 떠나는 이도메네우스
【작성】 가담항설 - 떠도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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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