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멜레아그로스 – 불꽃에 운명이 묶인 영웅
칼리돈의 왕자 멜레아그로스는 난로의 장작이 모두 타는 순간 죽게 되리라는 운명을 지니고 태어났다. 어머니 알타이아가 장작을 감추어 목숨을 지켜 준 덕분에 그는 영웅으로 자라 아르고호 원정에 참가하고, 아르테미스가 보낸 멧돼지를 쓰러뜨린다. 그러나 사냥의 전리품을 아탈란테에게 주었다가 외삼촌들과 충돌하여 그들을 죽이고 만다. 아들과 형제 사이에서 갈등하던 알타이아가 끝내 장작을 불태우면서, 멜레아그로스의 영광은 가문의 비극으로 끝난다.
1.1 칼리돈 왕가의 아들
아이톨리아 남서쪽에 자리한 칼리돈은 에우에노스강과 비옥한 들판을 거느린 왕국이었다. 그곳을 다스린 오이네우스는 디오니소스에게 포도나무를 받아 백성들에게 포도 재배와 포도주 만드는 법을 널리 퍼뜨린 왕으로 전해진다. 그는 플레우론 왕 테스티오스의 딸 알타이아와 혼인하여 여러 아들과 딸을 두었고, 그 가운데 가장 이름을 떨친 아들이 멜레아그로스였다.
멜레아그로스는 오이네우스의 아들이라고도 하고, 전쟁의 신 아레스가 알타이아에게서 낳은 아들이라고도 전해졌다. 어느 혈통을 따르더라도 왕자는 자라면서 무기를 다루는 힘과 용기로 또래를 앞질렀다. 사람들은 쉽게 상처 입지 않고 위험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그를 보며, 언젠가 칼리돈을 지킬 위대한 전사가 되리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아들의 탄생을 기뻐하던 알타이아의 마음 한편에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 멜레아그로스의 목숨은 사람의 몸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었다. 왕궁 깊숙한 곳에는 그의 생명과 함께 타고 꺼질 운명의 물건이 숨겨져 있었고, 어머니만이 그 비밀을 알고 있었다. 멜레아그로스 자신도 이를 모른 채 다른 영웅들처럼 자신의 목숨이 용기와 신들의 뜻에 달렸다고 믿으며 자라났다.
어린 멜레아그로스를 바라보는 오이네우스와 알타이아
1.2 불타는 장작에 묶인 목숨
멜레아그로스가 태어난 지 이레째 되던 날, 운명을 정하는 세 여신 모이라이가 왕궁에 나타났다. 생명의 실을 잣고 길이를 재며 마지막에는 끊어 버리는 여신들이었지만, 이 아이 앞에서는 실 대신 난롯불 속의 장작을 가리켰다. 세 여신은 갓 태어난 아이와 타오르는 나무에 똑같은 시간을 나누어 주며, 저 장작이 모두 타는 순간 멜레아그로스의 목숨도 끝나리라고 선언했다.
여신들이 사라지자 알타이아는 망설이지 않고 불길 속으로 손을 뻗었다. 그녀는 타오르던 장작을 집어 들어 물을 끼얹고, 남은 불씨가 완전히 꺼질 때까지 품에서 놓지 않았다. 장작이 타기를 멈추자 아기의 숨도 그대로 이어졌다. 알타이아는 검게 그을린 장작을 천으로 감싼 뒤 단단한 궤에 넣어 왕궁 가장 깊은 방에 감추었다.
그날부터 알타이아는 아들의 목숨을 두 번 낳은 어머니가 되었다. 멜레아그로스가 사냥터와 훈련장을 뛰어다니는 동안에도 그녀는 잠긴 궤와 그 안의 장작을 잊지 않았다. 누구도 그 물건을 불에 가까이 가져가지 않는 한 왕자는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아들을 지키기 위해 감춘 장작은 훗날 아들의 생명을 거두는 가장 무서운 무기가 될 운명이었다.
난롯불에서 운명의 장작을 꺼내는 알타이아
1.3 아르고호에 오른 젊은 영웅
멜레아그로스가 젊은 전사로 성장할 무렵, 이올코스의 이아손이 황금 양털을 찾아 먼 콜키스로 떠날 영웅들을 불러 모았다. 칼리돈의 왕자도 그 부름을 받고 아르고호에 올랐다. 오이네우스는 아직 젊은 아들이 걱정되어 자신의 이복형제 라오코온을 보호자로 딸려 보냈고, 알타이아의 형제 이피클로스도 조카와 함께 원정에 참가했다.
배에 오른 멜레아그로스는 헤라클레스와 텔라몬, 펠레우스, 디오스쿠로이 같은 이름난 영웅들 사이에서도 뒤처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가 한 해만 더 자랐다면 헤라클레스를 제외하고 그보다 뛰어난 전사를 찾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돌리오네스인들과 뜻하지 않은 야간 전투가 벌어졌을 때에도 그는 앞장서 적의 장수 이토메네우스와 아르타케우스를 쓰러뜨렸다.
콜키스에서는 불을 뿜는 황소와 맞서야 한다는 말을 듣자 멜레아그로스도 주저하지 않고 나섰다. 결국 그 일을 맡은 것은 이아손이었지만, 위험 앞에서 물러서지 않은 칼리돈 왕자의 용기는 모든 동료에게 알려졌다. 긴 항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더 이상 보호받아야 할 소년이 아니라, 칼리돈의 백성들이 의지할 수 있는 영웅이 되어 있었다.
아르고호에서 영웅들과 출항하는 젊은 멜레아그로스
1.4 아르테미스를 잊은 제사
어느 해 수확이 끝나자 오이네우스는 풍요를 내려 준 신들에게 햇곡식과 포도주를 바쳤다. 데메테르에게는 첫 곡식을, 디오니소스에게는 향기로운 포도주를 올리고 다른 신들의 제단에도 제물을 빠뜨리지 않았다. 그러나 사냥과 들짐승을 다스리는 아르테미스의 제단만은 비어 있었다. 왕의 단순한 실수였는지 오만에서 비롯된 일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신은 자신이 모욕당했다고 여겼다.
분노한 아르테미스는 칼리돈 들판에 전에 없던 거대한 멧돼지를 풀어 놓았다. 짐승은 굽은 엄니로 포도나무의 뿌리를 들어 올리고, 익어 가는 곡식을 짓밟았으며, 울타리와 과수원을 무너뜨렸다. 농부들이 밭을 버리고 성안으로 달아나면서 풍요롭던 들판은 황폐해졌고, 멧돼지를 막으러 나간 사람들마저 목숨을 잃었다.
멜레아그로스는 무너진 농가와 버려진 밭을 직접 돌아보았다. 아버지의 실수로 시작된 재앙이었지만 이를 끝내는 것은 칼리돈을 이을 왕자인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혼자 영광을 차지하려 하지 않고 오이네우스와 함께 그리스 각지의 뛰어난 영웅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렇게 칼리돈은 한 시대의 영웅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거대한 사냥의 무대가 되었다.
황폐해진 칼리돈 들판을 바라보는 멜레아그로스
2.1 사냥을 위해 모인 영웅들
오이네우스는 거대한 멧돼지를 쓰러뜨리는 사람에게 짐승의 가죽을 상으로 주겠다고 약속했다. 소식이 퍼지자 아테나이의 테세우스와 라리사의 페이리토오스, 스파르타의 디오스쿠로이, 이올코스의 이아손이 칼리돈으로 향했다. 펠레우스와 텔라몬, 아드메토스, 암피아라오스도 무기를 들고 찾아왔고, 왕궁의 뜰은 서로 다른 왕국에서 온 영웅과 사냥개들로 가득 찼다.
멜레아그로스는 찾아온 이들을 맞이하며 이번 사냥이 누구 한 사람의 명성을 위한 경쟁이 아니라고 말했다. 멧돼지가 살아 있는 한 칼리돈의 백성들은 밭으로 돌아갈 수 없었고, 더 늦기 전에 재앙을 끝내야 했다. 그는 숲과 짐승의 길을 잘 아는 칼리돈 사냥꾼들을 앞세우고, 영웅들에게 포위할 장소와 지켜야 할 길목을 나누어 주었다.
그 가운데 활과 화살을 든 아탈란테도 있었다. 여인이 위험한 사냥에 참가한다는 사실을 낯설게 여기는 이들도 있었지만, 멜레아그로스는 아르카디아에서 이름을 떨친 그녀의 명성을 알고 있었다. 그는 아탈란테를 다른 영웅들과 같은 사냥꾼으로 받아들였고, 그녀도 자신의 활과 창을 점검하며 다른 영웅들과 함께 다음 날의 출발을 기다렸다.
칼리돈 왕궁에 모여 사냥을 준비하는 그리스 영웅들
2.2 여사냥꾼 아탈란테
아르카디아에서 온 아탈란테는 머리를 단정히 묶고 어깨에 상아 화살통을 멘 채 사냥대 앞에 섰다. 목에서 여민 짧은 옷은 한쪽 무릎을 드러냈고, 한 손에는 활을 들고 다른 손에는 가벼운 창을 쥐고 있었다. 깊은 산속에서 자라 수많은 맹수를 쓰러뜨린 그녀의 명성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으며, 이름난 남자 영웅들 앞에서도 조금의 두려움을 보이지 않았다.
멜레아그로스는 아탈란테를 보자마자 마음속에 또 하나의 불꽃이 피어나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눈앞에는 칼리돈의 들판을 짓밟은 멧돼지와 목숨을 걸고 모인 영웅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아탈란테에게 마음을 드러낼 겨를도 없이 사냥 준비로 돌아갔지만, 숲의 작은 소리와 짐승의 흔적을 놓치지 않는 여사냥꾼의 모습은 오래도록 그의 눈에서 떠나지 않았다.
멜레아그로스는 아탈란테에게 특별한 보호를 약속하거나 안전한 뒷자리를 맡기지 않았다. 다른 영웅들과 마찬가지로 위험한 길목을 맡기는 것이 그녀의 실력을 인정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아탈란테도 아무런 망설임 없이 자신의 자리를 받아들였다. 아직 누구도 알지 못했지만 멜레아그로스가 그녀에게 품은 존중과 호감은 사냥이 끝난 뒤 가문의 운명까지 뒤흔들게 되었다.
활과 상아 화살통을 들고 사냥대 앞에 선 아탈란테
2.3 피로 물든 사냥
이튿날 영웅들은 그물과 사냥개를 앞세우고 멧돼지가 숨어 있는 숲을 에워쌌다. 몰이꾼들이 덤불을 두드리고 개들이 짖어 대자, 거대한 짐승이 부러진 나뭇가지를 헤치며 모습을 드러냈다. 곤두선 털은 창끝처럼 날카로웠고 붉게 충혈된 눈과 굽은 엄니는 가까이 선 사람들을 얼어붙게 했다. 화살과 창이 한꺼번에 날아갔지만 두꺼운 가죽에 튕기거나 나무에 꽂혔고, 성난 멧돼지는 사냥대를 향해 돌진했다.
순식간에 질서가 무너졌다. 멧돼지는 휠레우스를 쓰러뜨리고, 커다란 양날 도끼를 들고 정면에서 맞선 안카이오스마저 엄니로 받아쳤다. 이아손이 던진 창은 빗나가 사냥개를 맞혔고, 펠레우스의 창은 혼란 속에서 장인 에우리티온에게 날아갔다. 이름난 영웅들조차 짐승의 힘과 속도 앞에서 서로를 구할 틈을 찾지 못했다.
멜레아그로스는 흩어진 사람들에게 거리를 벌리고 양옆의 길목을 막으라고 외쳤다. 자신도 창을 들어 멧돼지 앞으로 나아갔지만, 짐승은 쓰러진 나무 사이를 빠르게 오가며 공격할 틈을 주지 않았다. 그때 조금 떨어진 바위 위에서 아탈란테가 활을 당겼다. 숲의 소음 속에서도 그녀의 눈은 오직 멧돼지의 움직임만을 따라가고 있었다.
거대한 멧돼지의 돌진에 맞서는 멜레아그로스와 영웅들
2.4 첫 상처를 입힌 아탈란테
아탈란테가 놓은 화살은 나뭇잎 사이를 가르며 멧돼지의 등에 깊이 박혔다. 짐승의 몸에서 처음으로 피가 흐르자 멜레아그로스는 모든 사람 앞에서 그녀가 첫 번째 영예를 얻었다고 외쳤다. 몇몇 사냥꾼은 여인이 자신들보다 먼저 짐승을 맞힌 것을 못마땅해했지만, 아탈란테는 다시 화살을 메기며 흔들림 없이 다음 기회를 기다렸다. 그녀의 침착함은 흔들린 사냥대에 다시 맞설 용기를 불어넣었다.
뒤이어 암피아라오스의 화살이 멧돼지의 눈을 맞혔다. 한쪽 시야를 잃은 짐승은 더욱 거칠게 몸부림치며 사냥꾼들을 향해 돌진했다. 멜레아그로스는 첫 번째 창을 힘껏 던졌지만 땅에 박히고 말았다. 그는 곧바로 두 번째 창을 집어 들고, 상처 때문에 몸을 비트는 멧돼지의 옆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멜레아그로스가 던진 두 번째 창은 짐승의 등에 깊이 박혔다. 고통에 사로잡힌 멧돼지는 거친 숨을 뿜으며 창을 던진 사람을 향해 머리를 돌렸다. 멜레아그로스는 물러서지 않고 가까이서 사용할 다른 사냥창을 움켜쥐었다. 아탈란테가 열어 준 작은 틈을 놓치지 않는다면 칼리돈을 괴롭힌 재앙을 자신의 손으로 끝낼 수 있었다.
멧돼지의 등에 첫 화살을 명중시키는 아탈란테
3.1 멧돼지를 쓰러뜨린 왕자
멧돼지가 머리를 낮추고 달려들자 멜레아그로스는 엄니를 비켜 옆으로 몸을 던졌다. 그는 짐승이 다시 몸을 돌리기 전에 가까이 뛰어들어 어깨 아래에 사냥창을 깊이 찔렀다. 거대한 멧돼지는 마지막으로 땅을 긁다가 쓰러졌고, 숲에는 영웅들의 함성이 울렸다. 멜레아그로스는 쓰러진 짐승 곁에서 한동안 숨을 고른 뒤 창끝으로 건드려 움직이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사냥꾼들은 죽은 뒤에도 짐승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다가, 마침내 멜레아그로스를 에워싸고 손을 맞잡았다. 몇몇은 자신도 그 사냥에 참여했다는 표시로 창끝을 멧돼지의 피에 적셨다. 사람들은 칼리돈의 왕자가 마지막 일격을 가했으므로 승리의 영예도 그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외쳤다. 약속대로 멧돼지의 가죽과 머리, 거대한 엄니가 그의 앞에 놓였다.
그러나 멜레아그로스는 이 승리를 혼자 차지하려 하지 않았다. 아탈란테의 화살이 먼저 짐승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았다면 자신도 결정적인 틈을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환호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탈란테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의 손에 놓인 전리품은 승리의 증표가 아니라, 누구의 공을 가장 먼저 인정할 것인가를 묻는 선택이 되었다.
멧돼지의 어깨 아래에 사냥창을 찌르는 멜레아그로스
3.2 아탈란테에게 건넨 전리품
멜레아그로스는 멧돼지의 머리에 발을 올리고 아탈란테를 앞으로 불렀다. 그는 자신에게 돌아온 영광을 그녀와 나누겠다며 거친 가죽과 커다란 엄니가 달린 머리를 내주었다. 아탈란테는 자신이 흘린 첫 번째 피를 인정해 준 선물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사냥대 곳곳에서는 왕자가 여인의 아름다움에 눈이 멀어 가장 값진 전리품을 넘겼다는 불평이 터져 나왔다.
그중에서도 플렉시포스와 톡세우스는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두 사람은 알타이아의 형제이자 멜레아그로스의 외삼촌들이었다. 그들은 수많은 남자 영웅이 참가한 사냥에서 여인이 최고의 상을 받는 것은 수치라며 아탈란테의 손에서 전리품을 빼앗았다. 왕자가 그것을 줄 권리도, 아탈란테가 그것을 가질 자격도 없다고 소리쳤다.
멜레아그로스는 두 사람에게 전리품을 돌려주라고 명했다. 자신이 짐승을 죽였으므로 상을 누구에게 줄 것인지도 자신이 결정할 일이며, 첫 상처를 낸 사람의 공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외삼촌들은 조카의 명령을 비웃으며 물러서지 않았다. 사냥의 공을 둘러싼 다툼은 왕자의 권위와 집안의 명예가 맞부딪치는 싸움으로 변해 갔다.
멧돼지의 전리품을 아탈란테에게 건네는 멜레아그로스
3.3 외삼촌들에게 겨눈 창
플렉시포스가 전리품을 들고 돌아서자 멜레아그로스의 분노가 폭발했다. 그는 남의 영예를 빼앗은 대가를 알게 해 주겠다며 창을 들어 외삼촌의 가슴을 찔렀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플렉시포스는 미처 무기를 들지 못한 채 쓰러졌다. 톡세우스는 형제의 죽음을 갚으려 했지만, 두려움에 머뭇거리는 사이 멜레아그로스의 두 번째 공격을 받고 뒤따라 쓰러졌다.
승리를 축하하던 숲은 순식간에 침묵에 잠겼다. 멜레아그로스는 아탈란테의 영예를 지켰지만,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피를 나눈 두 사람을 죽이고 말았다. 바닥에 떨어졌던 멧돼지 가죽은 다시 아탈란테에게 돌아갔으나 누구도 더는 그것을 바라보며 기뻐하지 못했다. 멜레아그로스 역시 분노가 가라앉은 뒤에야 자신이 저지른 일이 얼마나 무거운지 깨달았다.
한편 알타이아는 아들의 승리를 감사하기 위해 화려한 옷을 입고 신전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성문을 지나기도 전에 사람들이 들것에 실어 오는 두 동생의 시신을 보았다. 그녀는 장신구를 뜯어 내고 검은 옷으로 갈아입은 뒤, 누가 그들을 죽였느냐고 물었다. 범인이 자신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슬픔은 복수심으로 바뀌었고, 알타이아는 오래도록 닫아 두었던 방으로 향했다.
두 외삼촌에게 창을 겨누는 분노한 멜레아그로스
3.4 불 속에서 사라진 목숨
알타이아는 궤 속에서 검게 그을린 장작을 꺼내고 난로에 새 불을 피웠다. 그녀는 장작을 불길에 던지려다가 네 번이나 손을 거두었다. 아들을 살리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과 죽은 형제들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누이의 마음이 한 가슴 안에서 싸웠다. 마침내 알타이아는 얼굴을 돌린 채 장작을 불 속에 던졌고, 나무는 오랫동안 피했던 불길에 휩싸여 타오르기 시작했다.
멀리 있던 멜레아그로스는 몸속이 불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그는 상처 하나 없이 죽어 가는 운명을 한탄하며 아버지와 형제자매, 마지막에는 어머니의 이름을 불렀다. 장작이 재로 변하자 그의 숨도 함께 꺼졌다. 뒤늦게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 알타이아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고르게와 데이아네이라를 제외한 누이들은 아르테미스에 의해 멜레아그리데스라 불리는 뿔닭으로 변했다.
호메로스가 전한 오래된 이야기에는 운명의 장작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 이야기에서 멜레아그로스는 외삼촌을 죽인 뒤 어머니의 저주를 받고 전쟁에서 물러났다가, 적이 칼리돈 성벽까지 밀려오자 아내 클레오파트라의 간청을 듣고 다시 싸움에 나선다. 아폴로도로스의 다른 전승에서는 그가 남은 테스티오스의 아들들을 죽인 뒤 자신도 전사한다. 그러나 후대에는 어머니가 한때 구해 준 목숨을 직접 거두는 불꽃의 비극이 그의 마지막으로 널리 전해졌다.
운명의 장작을 불길에 던지는 알타이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