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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미스 – 아이아스의 섬
아티카 앞바다의 살라미스는 강의 신 아소포스의 딸에게서 이름을 얻은 섬이다. 포세이돈의 아들 퀴크레우스가 첫 왕이 되고, 아이기나에서 추방된 텔라몬이 그 왕위를 이어받는다. 그의 두 아들 아이아스와 테우크로스는 함께 트로이로 떠나지만, 아이아스는 불명예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친다. 형 없이 돌아온 테우크로스마저 아버지에게 쫓겨나면서 텔라몬 왕가의 운명은 고향의 살라미스와 키프로스의 새로운 살라미스로 갈라진다.
1.1 포세이돈이 데려간 살라미스
보이오티아의 들판을 적시며 흐르는 강 아소포스에게는 여러 딸이 있었다. 그 가운데 살라미스는 물가에서 자라며 강의 잔잔함과 바다를 향한 그리움을 함께 품은 처녀였다. 어느 날 바다를 다스리는 포세이돈이 강가에 나타나 그녀를 보았다. 신은 살라미스를 사랑하게 되었고, 거센 물결과 바람으로 그녀를 감싸 아버지의 강에서 멀리 데려갔다.
포세이돈이 살라미스를 데려간 곳은 아티카와 메가라 사이의 좁은 바다에 놓인 섬이었다. 바위투성이 해안과 소나무가 우거진 산, 잔잔한 만이 이어졌지만 아직 널리 알려진 이름은 없었다. 살라미스는 처음에는 돌아갈 길을 찾으며 먼 육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물결은 매번 해안에서 부서졌고, 그녀는 마침내 그 섬에 머물러 자신의 삶을 받아들였다.
얼마 뒤 살라미스는 포세이돈의 아들을 낳아 퀴크레우스라 이름 지었다. 아이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자랐고, 바다 신의 굳센 기질을 물려받았다. 훗날 퀴크레우스가 섬의 왕이 되자 사람들은 그의 어머니를 잊지 않았다. 그들은 이름 없던 섬을 살라미스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강가에서 바다로 옮겨 온 여인의 이름은 아들의 왕국과 함께 오래 남았다.
거센 물결을 타고 섬으로 건너가는 포세이돈과 살라미스
1.2 뱀을 물리친 퀴크레우스
퀴크레우스가 장성할 무렵, 살라미스에는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거대한 뱀이 나타났다. 뱀은 바위틈과 숲을 오가며 가축을 삼키고 길을 막았으며, 사람들이 해안에서 안쪽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날이 저물면 집마다 문이 굳게 닫혔고, 밭은 돌보는 이 없이 버려졌다. 섬을 떠나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자 퀴크레우스가 무기를 들었다.
그는 뱀이 남긴 자국을 따라 숲 깊숙이 들어갔다. 뱀은 굵은 몸으로 나무를 휘감고 머리를 치켜들어 침입자를 노려보았다. 퀴크레우스는 달려드는 머리를 피한 뒤 창을 찔렀지만, 단단한 비늘은 쉽게 뚫리지 않았다. 그는 물러서지 않고 바위 사이로 괴물을 몰아넣었고, 마침내 드러난 목 아래에 창끝을 깊이 박아 사나운 뱀을 쓰러뜨렸다.
숨어 있던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자 섬에는 오랜만에 횃불이 밝혀졌다. 밭과 목초지를 되찾은 사람들은 자신들을 구한 퀴크레우스를 왕으로 세웠다. 그는 안전한 만 가까이에 거처를 마련하고 흩어져 살던 이들을 불러 모았다. 포세이돈과 살라미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괴물을 물리치고 첫 왕좌에 오르면서, 작은 섬에도 비로소 하나의 왕국이 세워졌다.
거대한 뱀에게 창을 겨누는 퀴크레우스
1.3 아이기나에서 쫓겨난 텔라몬
살라미스 건너편 아이기나섬에는 제우스의 아들 아이아코스가 다스리는 왕국이 있었다. 그에게는 텔라몬과 펠레우스, 그리고 바다의 여신 프사마테가 낳은 포코스가 있었다. 포코스는 경기와 무예에서 뛰어나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의 명성이 높아질수록 두 형의 마음에는 질투가 쌓였고, 마침내 그들은 동생을 없애기로 마음먹었다.
원반던지기 경기가 열린 날, 텔라몬이 던진 무거운 원반이 포코스의 머리를 때렸다. 포코스가 쓰러지자 형제는 시신을 숲에 숨기고 사고였던 것처럼 꾸미려 했다. 그러나 아이아코스는 사라진 아들의 행방을 찾다가 두 사람이 저지른 일을 알아냈다. 공정한 재판으로 이름 높았던 그는 친아들들이라도 죄를 덮어 줄 수 없다며 두 사람을 아이기나에서 추방했다.
펠레우스는 북쪽 프티아로 향했고, 텔라몬은 작은 배를 타고 서쪽의 살라미스로 건너갔다. 고향의 산과 아버지의 왕궁이 멀어지는 동안 그는 자신이 다시는 아이기나의 땅을 밟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바다를 건넌 텔라몬은 퀴크레우스의 궁정 앞에 무기를 내려놓고 몸을 의탁했다. 그렇게 죄를 짊어진 망명자가 살라미스 왕가의 문 안으로 들어왔다.
아이기나를 떠나 살라미스로 향하는 추방자 텔라몬
1.4 살라미스의 새 왕
퀴크레우스는 아이기나에서 온 텔라몬을 내치지 않았다. 그는 무기를 내려놓고 보호를 청한 망명자에게 머물 곳을 내주고 섬의 해안을 지키는 일을 맡겼다. 텔라몬은 바다를 건너오는 침입자들을 물리치고 왕의 곁에서 사람들의 분쟁을 다스렸다. 말보다 행동으로 충성을 보이는 그를 지켜본 퀴크레우스는 점차 왕국의 중요한 일들을 맡기기 시작했다.
세월이 흘렀지만 퀴크레우스에게는 왕위를 물려줄 아들이 없었다. 늙은 왕은 자신이 죽은 뒤 살라미스가 다시 여러 세력으로 갈라질 것을 걱정했다. 그는 섬을 지킬 힘과 사람들의 신망을 모두 얻은 텔라몬을 후계자로 삼았다. 퀴크레우스가 세상을 떠나자 텔라몬은 왕의 장례를 치르고 왕좌에 올라, 아이기나에서 쫓겨난 망명자가 아닌 살라미스의 새로운 왕이 되었다.
텔라몬은 펠롭스의 아들 알카토오스의 딸 페리보이아를 왕비로 맞았다. 아이기나에서 모든 것을 잃었던 그는 이제 자신의 궁전과 백성, 함께 왕가를 이어 갈 아내를 얻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이에는 오랫동안 왕위를 물려받을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후계자를 기다리는 텔라몬의 근심이 깊어지던 어느 날, 오랜 벗 헤라클레스가 살라미스의 왕궁을 찾아왔다.
퀴크레우스에게 살라미스의 왕위를 이어받는 텔라몬
2.1 헤라클레스가 찾아온 살라미스
텔라몬과 헤라클레스는 젊은 시절 아르고호에 함께 올라 황금 양털을 찾아 떠난 사이였다. 거친 바다와 낯선 땅의 싸움을 함께 겪으며 두 사람은 서로의 용기를 굳게 믿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트로이의 왕 라오메돈을 벌할 원정을 준비하던 헤라클레스가 살라미스에 들렀다. 텔라몬은 옛 전우를 반갑게 맞아들이고 자신도 원정에 힘을 보태겠다고 약속했다.
왕궁에는 헤라클레스를 위한 잔치가 열렸다. 텔라몬은 금으로 장식된 술잔을 내밀며 벗에게 신들을 위한 첫 잔을 바쳐 달라고 청했다. 네메아의 사자 가죽을 걸친 헤라클레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을 하늘로 들었다. 그는 아버지 제우스에게 페리보이아가 자신처럼 굳센 몸과 두려움을 모르는 마음을 지닌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가 끝나자 커다란 독수리 한 마리가 하늘에서 내려와 왕궁 위를 천천히 돌았다. 헤라클레스는 독수리를 가리키며 제우스가 기도를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그는 태어날 아들이 적의 대열을 무너뜨리고 살라미스의 이름을 널리 떨칠 것이며, 독수리의 징표를 따라 아이아스라 불리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텔라몬과 페리보이아는 독수리가 바다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희망에 찬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제단 앞에서 텔라몬의 아들을 기원하는 헤라클레스
2.2 독수리가 알린 아이아스의 탄생
페리보이아가 마침내 아들을 낳자 텔라몬은 헤라클레스의 기도가 끝난 뒤 나타났던 독수리를 떠올렸다. 그는 제우스가 보낸 독수리의 징표를 따라 아이를 아이아스라고 불렀다. 살라미스 사람들은 왕위를 이을 아들의 탄생을 축하하며 신들에게 제물을 바쳤고, 왕궁에는 밤새 횃불이 타올랐다. 추방자로 섬에 들어왔던 텔라몬에게 비로소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가 생겼다.
아이아스는 어린 시절부터 또래보다 몸집이 크고 힘이 셌다. 다른 아이들이 여러 명 달라붙어야 옮기던 방패를 혼자 들어 올렸고, 가파른 바위길도 숨을 고르지 않고 올랐다. 그는 화려한 말로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맡은 일을 끝까지 해내는 것을 좋아했다. 텔라몬은 아들에게 창과 방패를 다루는 법을 가르치며 힘만 믿지 말고 왕가의 명예를 지키라고 거듭 일렀다.
청년이 된 아이아스의 넓은 어깨와 굳센 팔을 당해 낼 사람은 섬에 거의 없었다. 장인 튀키오스가 일곱 겹의 소가죽을 청동으로 덮어 만든 방패는 그의 온몸을 가릴 만큼 컸지만, 아이아스는 그것을 벽처럼 세우고도 자유롭게 움직였다. 사람들은 헤라클레스가 남긴 예언이 이루어졌다며 그를 살라미스의 방패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 방패도 훗날 그에게 닥칠 수치와 슬픔까지 막아 주지는 못했다.
왕궁 위를 도는 독수리와 갓난아이 아이아스
2.3 트로이 왕녀가 낳은 테우크로스
한편 트로이의 왕 라오메돈은 바다 괴물에게 바쳐진 딸 헤시오네를 구해 주면 신마를 내놓겠다고 헤라클레스에게 약속했다. 헤라클레스가 괴물을 죽이고 공주를 구했지만 왕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분노한 헤라클레스가 군사를 모아 트로이를 공격하자 텔라몬도 벗의 부름을 받고 바다를 건넜다. 그는 누구보다 먼저 성벽을 넘어 트로이 안으로 들어갔다.
전투가 끝나자 라오메돈은 죽고 도시는 헤라클레스의 손에 넘어갔다. 헤시오네는 사로잡힌 동생 포다르케스를 자신의 베일로 사서 살려 냈고, 그때부터 그는 ‘값을 치르고 구한 자’라는 뜻의 프리아모스로 불렸다. 헤라클레스는 전리품 가운데 헤시오네를 텔라몬에게 주었다. 텔라몬은 트로이 왕녀와 함께 살라미스로 돌아왔고, 헤시오네는 그곳에서 아들을 낳았다.
아이는 어머니의 고향 트로이의 옛 왕과 같은 테우크로스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는 형 아이아스처럼 거대한 방패를 들지는 않았지만, 멀리 있는 표적을 놓치지 않는 뛰어난 궁수가 되었다. 어머니는 바다 건너 트로이에 남은 프리아모스와 옛 왕궁을 이야기해 주었고, 아들은 자신에게 트로이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알며 자랐다. 훗날 그는 외삼촌이 다스리는 트로이를 향해 형과 함께 활을 들고 떠나게 된다.
아기 테우크로스를 품에 안은 트로이 왕녀 헤시오네
2.4 두 왕자를 전쟁터로 보내다
세월이 흘러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데려가자, 메넬라오스와 아가멤논은 그리스의 왕들에게 군사를 요청했다. 살라미스에도 전쟁을 알리는 사자가 도착했다. 이제 장성한 아이아스는 아버지를 대신해 출전하기로 했고, 테우크로스도 활과 화살통을 챙겨 형의 곁에 섰다. 아이아스에게 트로이는 명예를 얻을 전쟁터였지만, 헤시오네의 아들 테우크로스에게는 외가의 혈족이 사는 땅이기도 했다.
아이아스는 살라미스의 전사들을 모아 열두 척의 배에 태웠다. 그는 거대한 방패와 긴 창을 실었고, 테우크로스는 수많은 화살의 촉을 하나씩 살폈다. 텔라몬은 두 아들에게 전장에서 서로를 지키고 왕가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고 당부했다. 특히 테우크로스에게는 형과 함께 돌아오라는 말을 거듭했지만, 어느 누구도 그 당부가 훗날 아들을 심판하는 말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배들이 항구를 빠져나가자 텔라몬은 해안 가까이의 바위에 앉아 돛이 사라질 때까지 바다를 바라보았다. 젊은 시절 자신도 헤라클레스와 함께 트로이로 떠났다가 승리하여 돌아왔기에 두 아들 역시 무사히 귀환하리라 믿었다. 그러나 살라미스의 배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두 왕자를 함께 데려오지 못한다. 그날의 작별은 텔라몬과 두 아들이 한자리에서 서로를 바라본 마지막 순간이 되었다.
살라미스 항구에서 두 아들을 떠나보내는 텔라몬
3.1 거대한 방패를 든 살라미스의 왕자
트로이 전쟁이 시작되자 아이아스는 아킬레우스 다음가는 강한 전사로 이름을 떨쳤다. 그는 온몸을 가리는 탑과 같은 방패를 세우고 그리스군의 앞줄을 지켰다. 테우크로스는 형의 방패 뒤에서 몸을 내밀어 화살을 쏜 뒤 다시 그 안으로 몸을 숨겼다. 한 사람은 몰려오는 적을 막고 다른 사람은 정확한 화살로 쓰러뜨리며, 두 형제는 마치 하나의 전사처럼 싸웠다.
헥토르가 그리스군의 용사에게 일대일 대결을 청했을 때 제비는 아이아스를 선택했다. 두 사람의 창은 방패와 갑옷을 파고들었고, 서로 던진 거대한 돌은 방패를 뒤흔들었다. 아이아스가 던진 돌에 헥토르가 쓰러졌다가 아폴론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났지만, 날이 저물도록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 전령들이 싸움을 멈추게 하자 두 영웅은 서로의 용기를 인정했다. 헥토르는 칼을, 아이아스는 허리띠를 건네고 헤어졌다. 전장에서 주고받은 두 선물은 훗날 각자의 죽음과 이어진다.
아킬레우스가 전투에서 물러난 뒤에도 아이아스는 함선 앞을 지켰고, 파트로클로스가 죽자 트로이군이 시신을 빼앗지 못하도록 방패로 막아섰다. 마침내 아킬레우스마저 전사하자 오디세우스가 뒤따르는 트로이군을 막는 동안, 아이아스는 영웅의 시신을 어깨에 메고 그리스 진영으로 옮겼다. 가장 위험한 일을 맡았던 그의 마음에는 자신이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받아야 한다는 굳은 믿음이 자리 잡았다.
탑 같은 방패를 들고 헥토르와 맞서는 아이아스
3.2 아킬레우스의 무구와 아이아스의 죽음
아킬레우스의 장례가 끝나자 테티스가 내놓은 신의 무구를 누가 가질지를 두고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가 맞섰다. 아이아스는 자신이 아킬레우스의 시신을 직접 옮겼으며 힘과 용기에서도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리스군의 판정은 말과 지략으로 자신의 공을 밝힌 오디세우스에게 무구를 주었다. 아이아스는 오랜 싸움에서 얻은 명예가 한순간에 빼앗겼다고 여겼다.
분노에 사로잡힌 그는 밤이 되자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 오디세우스를 죽이려고 칼을 들었다. 그러나 아테나가 그의 눈을 흐리게 하여 그리스 지휘관들 대신 가축 떼를 적으로 보게 했다. 아이아스는 짐승들을 쓰러뜨리고 한 마리를 오디세우스라 믿으며 진영으로 끌고 왔다. 정신이 돌아온 아침, 그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보고 동료들의 조롱 속에서는 더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테크메사와 어린 아들 에우뤼사케스가 곁에 남아 달라고 매달렸지만 아이아스의 뜻을 돌리지 못했다. 그는 에우뤼사케스라는 이름의 유래가 된 넓은 방패를 아들에게 주고, 나머지 무구는 자신과 함께 묻어 달라고 부탁했다. 홀로 바닷가로 간 아이아스는 오래전 헥토르에게 받은 칼을 땅에 세웠다. 그리고 살라미스와 부모, 형제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긴 뒤 그 칼 위에 몸을 던져 생을 마쳤다.
에우뤼사케스에게 넓은 방패를 건네는 아이아스
3.3 살라미스에 돌아가지 못하다
테우크로스가 진영으로 돌아왔을 때 아이아스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메넬라오스가 반역을 꾀한 사람에게 장례를 허락할 수 없다며 시신을 그대로 두라고 명령했고, 뒤이어 나타난 아가멤논도 테우크로스를 몰아세웠다. 테우크로스는 형이 그리스군을 위해 싸운 세월을 들며 두 왕에게 맞섰다. 마침내 오디세우스가 생전의 원한과 죽은 사람에게 바치는 예는 다르다고 설득한 뒤에야 아이아스의 장례가 허락되었다.
전쟁이 끝난 뒤 테우크로스는 살아남은 살라미스 전사들을 이끌고 고향으로 향했다. 그러나 배가 섬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텔라몬은 그의 배가 항구에 닿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늙은 왕은 아이아스가 돌아오지 못했을뿐더러 그의 시신과 무구마저 가져오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아들을 불러 세웠다. 그는 왜 형을 지키지 못했으며, 죽음을 막지 못했다면 어째서 원수라도 갚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테우크로스는 형이 자신의 무구를 함께 묻어 달라고 부탁했으며, 자신은 그 뜻에 따라 장례를 치렀다고 설명했다. 이어 형의 광기와 죽음, 장례를 둘러싼 다툼을 모두 말했지만 아버지의 분노를 누그러뜨릴 수 없었다. 텔라몬은 형 없이 돌아온 아들을 살라미스 왕가의 사람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며 추방을 명했다. 테우크로스는 끝내 고향 땅을 밟지 못한 채 뱃머리를 돌렸다. 트로이에서 형을 잃고 돌아온 궁수에게 이제 남은 것은 몇 척의 배와 함께 떠도는 전우들뿐이었다.
살라미스 해안에서 테우크로스의 귀환을 막는 텔라몬
3.4 두 개의 살라미스
갈 곳을 잃은 테우크로스는 아폴론의 뜻을 묻고 새로운 고향을 찾아 다시 바다로 나갔다. 신탁은 그를 동쪽의 키프로스섬으로 이끌었다. 긴 항해 끝에 해안에 닿은 그는 함께 온 전사들과 성벽과 집을 세우고 배들이 드나들 항구를 열었다. 새로운 도시는 옛 고향과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테우크로스는 자신을 받아 주지 않은 섬을 잊지 못해 그곳에도 살라미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편 아이아스의 아들 에우뤼사케스는 원래의 살라미스로 돌아왔다. 세월이 흘러 텔라몬이 세상을 떠나자 그는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가를 지켰다. 에우뤼사케스의 아들 필라이오스는 훗날 아테나이 시민으로 받아들여진 뒤 섬을 아테나이에 넘겼다고 전해진다. 왕가의 통치는 끝났지만 아이아스의 후손들은 아테나이로 옮겨가 새로운 가문을 이어 갔다.
살라미스 사람들은 아이아스의 신전을 세우고 전쟁에서 돌아오지 못한 왕자를 섬의 영웅으로 받들었다. 텔라몬이 두 아들의 배를 바라보았다는 항구 가까이의 바위도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바다의 서쪽에는 에우뤼사케스가 지킨 옛 섬이, 동쪽에는 추방된 테우크로스가 세운 새 도시가 자리했다. 한 왕가의 비극으로 갈라진 두 살라미스는 서로 먼 바다에서 아이아스와 테우크로스의 이름을 전하게 되었다.
키프로스 해안에 새로운 살라미스를 세우는 테우크로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