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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틸로코스 – 아버지를 지킨 젊은 영웅
필로스의 노왕 네스토르의 아들 안틸로코스는 트로이 전쟁에 참가한 그리스군의 젊고 재빠른 전사였다. 그는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아킬레우스에게 전하고, 장례 경기에서는 아버지에게 배운 지혜로 뛰어난 전차병들과 겨루었다. 훗날 에오스의 아들 멤논이 늙은 네스토르를 덮치자 안틸로코스는 아버지 앞을 가로막고 대신 죽음을 맞는다. 그의 희생은 아킬레우스의 복수로 이어졌고, 죽은 뒤에도 그는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 곁에 남았다.
1.1 네스토르의 아들
필로스의 왕궁에는 수많은 세월을 살아온 네스토르와 그의 아들들이 함께 살고 있었다. 네스토르는 젊은 시절 라피테스족과 켄타우로스들의 전쟁, 칼리돈의 멧돼지 사냥에 참가한 노장이었으며, 이제는 힘보다 오랜 경험과 뛰어난 말솜씨로 사람들을 이끌었다. 안틸로코스는 그런 아버지 곁에서 자라며 전쟁의 기술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의 기질은 달랐다. 네스토르는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오래 생각했지만, 안틸로코스는 결심이 서면 누구보다 먼저 몸을 움직였다. 그는 말을 다루고 전차를 모는 데 능했으며, 넓은 들판을 달릴 때에는 또래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창과 방패를 익히는 동안에도 젊은 왕자는 언젠가 아버지와 나란히 전장에 설 날을 기다렸다.
트로이를 향한 원정이 일어나자 늙은 네스토르도 필로스의 군대를 이끌기로 했다. 안틸로코스는 형 트라쉬메데스와 함께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왕궁에 남아 안전하게 지낼 수도 있었지만 그는 노왕을 혼자 위험한 전쟁터로 보낼 수 없었다. 아직 이름난 공적은 없었으나, 필로스의 젊은 왕자는 아버지의 전차와 검은 배 곁을 지키며 긴 항해를 시작했다.
필로스 왕궁에서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는 안틸로코스
1.2 아버지와 함께 트로이로
필로스의 배들이 트로이 해안에 닿았을 때 안틸로코스 앞에는 높은 성벽과 끝없는 평원이 펼쳐졌다. 그리스의 여러 왕이 모인 진영에는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 두 아이아스와 디오메데스, 아킬레우스처럼 이미 이름을 떨친 영웅들이 가득했다. 그는 그들 가운데 가장 젊은 축에 들었지만, 네스토르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뒤에 머물려 하지 않았다.
전쟁이 길어지자 안틸로코스는 형 트라쉬메데스와 함께 필로스군의 앞줄에 섰다. 네스토르는 두 아들에게 무모하게 적진 깊숙이 들어가지 말고, 전우들의 방패와 보조를 맞추라고 거듭 일렀다. 안틸로코스는 때로 성급하게 달려 나가려다가도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면 고삐를 잡아당겼다. 노왕의 지혜와 젊은 아들의 속도가 필로스군을 든든하게 받쳤다.
싸움이 없는 날이면 그는 아버지의 막사에 모인 장수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네스토르는 오래된 전쟁을 들려주며 힘센 적을 이기는 것은 팔의 힘만이 아니라고 가르쳤다. 안틸로코스는 그 가르침을 품고 여러 영웅과 나란히 싸우며 젊은 전사로서 이름을 알렸다. 오랜 포위전이 이어지는 동안 그는 아버지의 보호를 받는 왕자에서, 전우들이 믿고 곁을 맡기는 한 사람의 전사로 자라났다.
트로이 평원을 바라보는 네스토르와 두 아들
1.3 전열에서 거둔 첫 승리
트로이군과 그리스군이 평원에서 다시 맞붙은 날, 양쪽의 방패와 창이 부딪치며 거대한 함성이 일었다. 맹약이 깨어진 뒤 처음 벌어진 격전에서 어느 쪽도 쉽게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그때 안틸로코스가 먼저 전공을 세웠다. 그가 던진 창은 선두에서 달려오던 트로이 전사 에케폴로스의 투구를 뚫고 이마에 박혔다.
에케폴로스가 성벽처럼 무너지자 그리스군이 함성을 올리며 앞으로 밀려 나갔다. 그의 갑옷을 벗기려던 엘레페노르는 곧 다른 트로이 전사의 창에 쓰러졌고, 한 사람의 죽음은 다시 또 다른 죽음을 불러왔다. 안틸로코스는 자신의 첫 승리를 기뻐할 겨를도 없이 방패를 들고 밀려드는 적을 막았다. 눈앞의 전쟁은 아버지에게 들었던 영웅담보다 훨씬 빠르고 가혹했다.
그날 이후 안틸로코스는 전장의 여러 곳에서 활약했다. 그는 아블레로스와 미돈을 쓰러뜨리고, 전우가 위기에 빠지면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 빈틈을 메웠다. 젊은 용기는 때로 그를 위험한 곳으로 이끌었지만, 그는 싸움을 거듭할수록 아버지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물러날 때와 나아갈 때를 배웠다. 필로스의 왕자는 마침내 자신의 이름으로 그리스군의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에케폴로스를 향해 창을 던지는 안틸로코스
1.4 아킬레우스가 아낀 전우
아이네이아스가 페라이 출신의 쌍둥이 전사 크레톤과 오르실로코스를 쓰러뜨리자 메넬라오스는 분노하여 홀로 앞으로 나섰다. 전쟁의 신 아레스가 아이네이아스의 기세를 돋우고 있었기에 그대로 맞서면 메넬라오스가 위험해질 수 있었다. 이를 본 안틸로코스는 망설이지 않고 전열을 가로질러 그의 곁에 섰다. 아이네이아스는 두 영웅이 나란히 창을 겨누자 싸움을 피하고 뒤로 물러났다.
안틸로코스와 메넬라오스는 쓰러진 전우들의 시신을 그리스군 진영으로 옮긴 뒤 다시 선두로 돌아갔다. 메넬라오스가 파플라고니아의 장수 퓔라이메네스를 쓰러뜨리자 안틸로코스는 그의 전차병 미돈의 팔꿈치를 돌로 맞혔다. 미돈이 고삐를 놓치자 그는 전차로 뛰어올라 칼로 관자놀이를 찔렀다. 미돈이 떨어지자 안틸로코스는 적의 말들을 몰아 그리스군 쪽으로 가져왔다.
이처럼 안틸로코스는 자신의 공적을 세우는 일보다 위험에 빠진 전우에게 먼저 달려가곤 했다. 그의 빠른 발과 충직한 마음은 여러 장수의 신뢰를 얻었고, 아킬레우스도 그를 가까운 벗으로 아꼈다. 훗날 파트로클로스를 잃은 뒤에는 안틸로코스가 아킬레우스에게 가장 소중한 전우가 되었다. 그러나 세 사람 가운데 누구도 트로이 해안에서 차례로 기다리는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다.
메넬라오스 곁에 서서 아이네이아스를 막는 안틸로코스
2.1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듣다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싸우던 파트로클로스가 헥토르에게 쓰러지자, 그의 시신을 차지하려는 격전이 벌어졌다. 두 아이아스와 메넬라오스는 몰려드는 트로이군을 막으며 시신을 함선으로 옮길 길을 찾았다. 그러나 전장의 다른 쪽에서 싸우던 안틸로코스와 트라쉬메데스는 아직 그 죽음을 알지 못했다. 두 형제는 파트로클로스가 살아서 적진 앞쪽에서 싸우고 있으리라 여겼다.
짙은 먼지와 어둠이 걷히자 아이아스는 메넬라오스에게 안틸로코스를 찾아보라고 했다. 빠른 발을 가진 그라면 누구보다 먼저 아킬레우스에게 달려갈 수 있었다. 메넬라오스는 싸움터를 훑다가 왼쪽 전열에서 병사들을 격려하는 젊은 왕자를 발견했다. 그는 안틸로코스를 불러 세우고, 차마 전하고 싶지 않았던 소식을 무거운 목소리로 꺼냈다.
파트로클로스가 죽었으며 헥토르가 그의 갑옷을 빼앗았다는 말을 듣자 안틸로코스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두 눈에 눈물이 차오르고 목이 막혔지만, 그는 명령을 잊지 않았다. 곁에 있던 라오도코스에게 자신의 무장을 맡긴 뒤 곧바로 함선 쪽으로 몸을 돌렸다. 전우들이 아직 싸우는 가운데 안틸로코스는 가장 사랑하는 벗의 죽음을 알지 못하는 아킬레우스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메넬라오스에게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듣는 안틸로코스
2.2 아킬레우스에게 달려가다
함선 앞에 앉아 있던 아킬레우스는 전장에서 들려오는 함성을 들으며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때 안틸로코스가 눈물을 흘리며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킬레우스는 그 얼굴만 보고도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음을 알아차렸다. 숨을 고를 틈도 없이 안틸로코스는 파트로클로스가 쓰러졌고, 그의 시신을 두고 아직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고 알렸다.
아킬레우스는 두 손으로 검은 재를 움켜쥐어 머리와 얼굴에 뿌린 뒤 땅에 엎드렸다. 그의 울부짖음이 바다까지 울려 퍼지자 막사의 여인들도 가슴을 치며 함께 통곡했다. 안틸로코스는 아킬레우스 곁에 무릎을 꿇고 그의 두 손을 붙잡았다. 깊은 슬픔에 빠진 친구가 칼을 뽑아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 순간 안틸로코스는 비보를 전한 전령이면서 남겨진 친구를 붙드는 사람이었다. 그는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아킬레우스가 쏟아내는 울음을 곁에서 견뎠다. 곧 테티스가 아들의 슬픔을 듣고 바다에서 올라왔고, 새로운 갑옷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안틸로코스가 전한 한마디는 아킬레우스를 다시 전장으로 불러냈으며, 헥토르의 죽음으로 이어질 거대한 분노를 깨웠다.
통곡하는 아킬레우스의 두 손을 붙잡는 안틸로코스
2.3 아버지의 지혜를 품은 전차
헥토르가 죽은 뒤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의 장례를 치르고 성대한 경기를 열었다. 전차 경주를 앞두고 에우멜로스와 디오메데스, 메넬라오스와 안틸로코스, 메리오네스가 차례로 말과 전차를 준비했다. 안틸로코스의 말은 다른 영웅들의 준마보다 느렸다. 이를 지켜본 네스토르는 아들을 불러 속도에서 밀리더라도 지혜를 쓰면 앞설 수 있다고 일러주었다.
네스토르는 먼 곳에 서 있는 마른 나무기둥과 그 양옆의 흰 돌을 반환점으로 가리켰다. 그는 바퀴통이 기둥에 닿을 듯 가까이 붙어 돌되 돌에 부딪치지는 말라고 가르쳤다. 힘만 믿고 넓게 도는 전차는 빠른 말을 가지고도 거리를 잃지만, 고삐를 정확히 다루는 전차병은 느린 말로도 앞설 수 있었다. 안틸로코스는 아버지의 말을 마음에 새기고 전차에 올랐다.
출발 신호가 떨어지자 말들의 발굽이 모래를 걷어 올리고 전차들이 평원을 질주했다. 디오메데스가 앞서고 에우멜로스의 전차가 사고로 뒤처진 가운데, 안틸로코스는 메넬라오스의 바로 뒤를 쫓았다. 그는 비로 파인 좁은 길을 발견하자 그 틈으로 전차를 밀어 넣었다. 충돌을 두려워한 메넬라오스가 고삐를 늦추면서 안틸로코스는 앞질러 두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반환점을 가리키며 전차 경주의 지혜를 전하는 네스토르
2.4 승리보다 지킨 명예
아킬레우스는 사고를 당해 마지막으로 들어온 에우멜로스를 가엾게 여겨 안틸로코스의 두 번째 상을 주려 했다. 그러자 안틸로코스는 자신이 정당하게 얻은 암말을 내놓을 수 없다며 드물게 강한 목소리로 항의했다. 친구의 당당한 모습에 아킬레우스는 오랜 슬픔 속에서도 미소를 지었다. 그는 안틸로코스의 상을 그대로 두고, 에우멜로스에게 아스테로파이오스에게서 빼앗은 청동 흉갑을 따로 내주었다.
그러나 메넬라오스는 좁은 길에서 위험하게 앞을 가로막은 일을 문제 삼았다. 그는 안틸로코스에게 속임수를 쓰지 않았다고 맹세해 보라고 요구했다. 흥분을 가라앉힌 안틸로코스는 자신이 젊은 혈기에 잘못을 저질렀다고 인정하며, 받은 암말을 메넬라오스에게 내놓았다. 상을 지키기 위해 큰소리쳤던 젊은 왕자는 승리보다 오랜 전우의 마음과 자신의 명예를 택했다.
메넬라오스의 분노도 그 솔직한 사과 앞에서 풀렸다. 그는 안틸로코스와 네스토르가 자신을 위해 겪은 수고를 기억한다며 암말을 다시 돌려주었다. 뒤이어 달리기 경기에 나선 안틸로코스는 오디세우스와 소 아이아스에게 뒤졌지만, 나이 든 영웅들이 신들의 사랑을 받는다며 재치 있게 패배를 받아들였다. 아킬레우스는 웃으며 그에게 상을 더했고, 장례의 슬픔 속에 잠시 따뜻한 기운이 돌아왔다.
메넬라오스에게 암말을 내놓으며 사과하는 안틸로코스
3.1 에오스의 아들 멤논
헥토르와 아마존의 여왕 펜테실레이아가 차례로 쓰러진 뒤, 트로이에는 또 하나의 지원군이 찾아왔다. 새벽의 여신 에오스와 인간 티토노스 사이에서 태어난 멤논이 먼 에티오피아의 군대를 이끌고 온 것이다. 그는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빛나는 무장을 걸친 거대한 전사였다. 멤논의 도착은 잇따라 영웅을 잃은 트로이군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었다.
프리아모스는 멤논과 에티오피아 전사들을 성 안으로 맞아들이고 풍성한 잔치를 베풀었다. 멤논은 아킬레우스를 비롯한 그리스의 영웅들과 싸워 트로이를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에오스는 아들이 맞을 운명을 알고도 새벽의 문을 열어야 했다. 밤이 물러가자 멤논은 아침 햇살에 번쩍이는 갑옷을 입고 트로이군과 함께 스카이아이 성문을 나섰다.
멤논은 아킬레우스와 견줄 만큼 강하고 빨랐다. 그가 이끄는 군대가 돌진하자 그리스군의 전열이 흔들렸고, 필로스에서 온 페론과 에레우토스도 그의 창에 쓰러졌다. 멤논은 달아나는 병사들을 쫓으며 네스토르가 이끄는 필로스군 깊숙이 밀고 들어왔다. 안틸로코스는 무너지는 전열을 붙들려 했지만, 적장의 거센 공세는 마침내 늙은 네스토르의 전차 가까이 다가갔다.
에티오피아군을 이끌고 트로이 성문을 나서는 멤논
3.2 움직이지 못한 네스토르의 전차
싸움이 거세지자 네스토르도 전차를 타고 병사들을 독려했다. 그는 노인이었으나 창이 빗발치는 곳에서도 자리를 지켰다. 그때 파리스가 쏜 화살이 전차를 끌던 말 한 마리를 맞혔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말이 고삐와 멍에에 얽혀 쓰러지면서 전차가 멈추었다. 네스토르는 급히 줄을 끊으려 했지만, 트로이군은 이미 달아날 길을 막고 있었다.
멤논은 움직이지 못하는 전차와 그 위의 백발 노인을 발견했다. 그는 네스토르가 그리스군의 지혜로운 조언자이며 필로스 병사들의 중심이라는 것을 알고 곧장 창을 겨누었다. 젊은 시절 수많은 영웅과 싸웠던 네스토르도 이제 멤논의 힘을 정면으로 받아낼 수 없었다. 줄을 끊어 말을 풀어 주거나 자신이 전차에서 빠져나갈 시간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네스토르는 멤논의 창이 가까워지자 전장 너머에 있는 아들 안틸로코스의 이름을 다급하게 불렀다. 노왕이 온 힘을 다해 내지른 외침은 창과 방패가 부딪치는 소리를 넘어 아들에게 닿았다. 필로스군의 전열에서 싸우던 안틸로코스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멈춰 선 전차를 돌아보았다. 그는 곧바로 몸을 돌려 창이 빗발치는 싸움터를 가로질러 달려갔다.
멈춘 전차 위에서 아들의 이름을 부르는 네스토르
3.3 아버지 앞을 막아선 아들
전차에 다다른 안틸로코스는 멤논이 이미 백발의 노왕에게 창을 겨누고 있는 것을 보았다. 두 사람이 함께 빠져나갈 시간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에게 등을 돌린 채 방패와 창을 들어 적장의 앞을 가로막았다. 자신이 이길 수 있는지를 헤아릴 겨를도 없었다. 지금 안틸로코스가 물러서면 멤논의 창이 그대로 네스토르에게 닿을 터였다.
안틸로코스는 먼저 멤논을 향해 긴 창을 던졌다. 멤논이 몸을 비틀어 피하면서 창은 곁에 있던 에티오피아 전사를 쓰러뜨렸다. 분노한 멤논이 달려들자 안틸로코스는 땅에서 커다란 돌을 집어 그의 투구를 힘껏 내리쳤다. 신이 만든 투구가 울리고 멤논의 몸이 잠시 흔들렸지만, 단단한 청동은 부서지지 않았다. 그 짧은 사이 네스토르의 전차는 위험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멤논은 투구에 울린 충격에도 쓰러지지 않고 곧바로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는 안틸로코스의 방어를 헤치고 창을 내질렀다. 날카로운 창끝이 젊은 전사의 가슴을 뚫고 심장에 닿자 안틸로코스는 트로이의 먼지 위에 쓰러졌다. 네스토르는 물러나는 전차에서 아들의 죽음을 보며 울부짖었다. 트라쉬메데스와 필로스의 전사들이 달려드는 동안, 안틸로코스는 자신의 목숨으로 아버지가 피할 시간을 벌었다.
멤논과 네스토르 사이를 가로막은 안틸로코스
3.4 아킬레우스의 복수와 남겨진 무덤
네스토르는 아킬레우스를 찾아가 안틸로코스가 멤논에게 죽었다고 알렸다. 파트로클로스를 잃은 뒤 가장 아끼던 젊은 전우마저 쓰러졌다는 말에 아킬레우스는 다시 격렬한 슬픔과 분노에 휩싸였다. 그는 안틸로코스의 시신을 되찾아 달라는 노왕의 부탁을 듣고 곧바로 멤논에게 달려갔다. 두 영웅이 맞서자 제우스는 황금 저울에 그들의 운명을 올려놓았다.
오랜 격전 끝에 멤논에게 내려진 죽음의 몫이 기울었고, 아킬레우스의 무기가 그의 가슴을 꿰뚫었다. 에오스가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하늘을 어둡게 했지만, 아킬레우스는 원수를 갚은 뒤에도 분노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달아나는 트로이군을 성문까지 뒤쫓다가 파리스와 아폴론의 공격을 받고 쓰러졌다. 안틸로코스의 복수는 아킬레우스가 거둔 마지막 승리가 되었다.
그리스군은 안틸로코스의 장례를 치르고 아킬레우스의 장례까지 마친 뒤 헬레스폰토스가 내려다보이는 곶에 커다란 봉분을 세웠다. 황금 항아리에는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의 유골이 함께 놓였고, 안틸로코스의 유골도 두 사람 곁에 따로 안치되었다. 세 영웅은 죽어서도 서로 헤어지지 않았다. 명계의 아스포델로스 들판에서도 안틸로코스의 영혼은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 곁에 머물렀다.
안틸로코스의 원수를 갚으려 멤논과 맞서는 아킬레우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