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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전쟁 별전가담항설의지식창고 2026.08.27. 22:44 (2026.08.27. 22:44)

안틸로코스 – 아버지를 지킨 젊은 영웅

 
필로스의 노왕 네스토르의 아들 안틸로코스는 트로이 전쟁에 참가한 그리스군의 젊고 재빠른 전사였다. 그는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아킬레우스에게 전하고, 장례 경기에서는 아버지에게 배운 지혜로 뛰어난 전차병들과 겨루었다. 훗날 에오스의 아들 멤논이 늙은 네스토르를 덮치자 안틸로코스는 아버지 앞을 가로막고 대신 죽음을 맞는다. 그의 희생은 아킬레우스의 복수로 이어졌고, 죽은 뒤에도 그는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 곁에 남았다.
목   차
[숨기기]
이도메네우스 – 크레타의 왕
 
 
 

개요

 
미노스의 손자이자 데우칼리온의 아들 이도메네우스크레타를 다스리던 왕으로, 헬레네의 구혼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자 그는 메리오네스와 함께 크레타의 대함대를 이끌고 출정해 오랜 전쟁을 견뎠다. 노년에 이르러서도 앞장서 싸운 그는 함선을 지키는 격전에서 이름을 떨치고 트로이 함락까지 살아남았다. 그러나 귀환 뒤의 운명은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와 왕국을 잃고 방랑했다는 비극적인 이야기로 갈라져 전해진다.
 
 
 

제1장 미노스 왕가의 후계자

1.1 미노스의 손자
 
크레타에는 한때 미노스가 세운 강대한 왕가가 있었다. 미노스의 뒤를 이은 아들 가운데 데우칼리온이 있었고, 그의 아들로 태어난 이가 이도메네우스였다. 바다로 둘러싸인 크레타에서 성장한 그는 미노스 왕가의 혈통을 이어받은 인물이었다. 그의 계보는 제우스와 에우로페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갔고, 크레타 사람들에게 미노스의 이름은 오래도록 특별한 권위와 영광을 지니고 있었다.
 
이도메네우스 곁에는 일찍부터 메리오네스가 있었다. 메리오네스는 몰로스의 아들로, 이도메네우스와 같은 미노스 왕가에 속한 가까운 친족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혈연에만 머물지 않았다. 훗날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자 메리오네스는 이도메네우스의 가장 믿음직한 동료가 되어 전투와 회의, 함선과 진영을 함께 누비게 된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도메네우스는 크레타의 여러 도시를 거느리는 왕으로 자리 잡았다. 크노소스와 고르튀스를 비롯한 오래된 도시들이 흩어진 섬을 이끄는 일에는 왕가의 혈통뿐 아니라 전사의 능력과 지휘력이 필요했다. 이도메네우스는 창과 방패를 직접 들고 군사들 앞에 서는 왕으로 성장했고, 그렇게 미노스 왕가를 대표하는 크레타의 지도자로 이름을 알렸다.
 
미노스 왕가의 계보를 이어받은 젊은 이도메네우스
 
 
1.2 크레타의 왕이 되다
 
데우칼리온의 뒤를 이어 이도메네우스는 크레타의 왕으로 자리 잡았다. 크레타에는 크노소스와 고르튀스, 륏토스, 밀레토스, 파이스토스와 같은 여러 도시가 흩어져 있었고, 오래된 전승은 이 섬을 ‘백 개의 도시를 가진 크레타’라고 불렀다. 이도메네우스가 다스린 왕국은 한 성벽 안에 모인 나라가 아니라 산과 평야, 항구와 섬의 길로 이어진 넓은 공동체였다.
 
그에게 왕의 권위는 미노스의 후손이라는 혈통에서 시작되었지만, 그것만으로 군사들을 따르게 할 수는 없었다. 이도메네우스는 직접 무장을 하고 전사들 앞에 서는 왕이었다. 창과 방패를 다루는 데 익숙했고, 회의에서는 다른 왕들과 나란히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노련함도 갖추었다. 훗날 아카이아의 영웅들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 그가 자연스럽게 주요 장수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여진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었다.
 
왕의 곁에는 메리오네스가 있었다. 그는 단순한 수행원이 아니라 크레타군을 함께 움직이는 부장과 같은 존재였다. 이도메네우스가 왕으로서 군대를 모으면 메리오네스는 전사들을 이끌었고, 위험한 싸움에서는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서 창을 들었다. 두 사람의 이름은 훗날 트로이 전쟁 이야기에서 거의 한 쌍처럼 이어지게 된다.
 
크레타 여러 도시의 전사들 앞에 선 왕 이도메네우스
 
 
1.3 헬레네의 구혼자가 되다
 
스파르타의 왕녀 헬레네가 혼인할 나이가 되자 그리스 각지에서 이름난 왕과 영웅들이 몰려들었다. 이도메네우스도 크레타를 떠나 스파르타로 향했다. 여러 구혼자들이 자신들의 재산과 혈통, 힘을 내세우는 가운데 이도메네우스 역시 미노스 왕가의 후손이자 크레타를 이끄는 왕으로 헬레네의 혼인을 기다렸다. 훗날 전승은 그를 헬레네의 수많은 구혼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그러나 경쟁이 격해질수록 스파르타 왕가에는 새로운 걱정이 생겼다. 누구 한 사람이 신랑으로 정해지면 나머지 구혼자들이 분노해 싸움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오디세우스가 내놓은 계책에 따라 구혼자들은 헬레네의 남편으로 선택된 사람을 인정하고, 누군가 그 혼인을 깨뜨리려 한다면 모두 힘을 합쳐 돕겠다고 맹세했다. 마침내 메넬라오스가 헬레네의 남편이 되었고, 이도메네우스는 크레타로 돌아갔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그 맹세가 현실이 되었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헬레네를 데리고 바다를 건너자 메넬라오스와 아가멤논은 옛 구혼자들에게 약속을 지킬 것을 요구했다. 크레타에도 전쟁의 부름이 닿았다. 이도메네우스는 젊은 날 스파르타에서 세운 맹세를 외면하지 않았고, 이제 한 사람의 구혼자가 아니라 크레타의 왕으로 군사와 함선을 모으기 시작했다.
 
스파르타에서 구혼자들과 맹세하는 이도메네우스
 
 
1.4 여든 척의 함대를 모으다
 
전쟁의 부름이 크레타에 전해지자 이도메네우스는 섬 곳곳의 전사들을 모았다. 크노소스와 고르튀스, 륏토스와 밀레토스, 뤼카스토스와 파이스토스, 뤼티온을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군사들이 항구로 모여들었다. 바닷가에는 검은 선체의 함선들이 차례로 준비되었고, 호메로스는 이도메네우스와 메리오네스가 이끄는 크레타의 배가 모두 여든 척에 이르렀다고 노래한다.
 
이도메네우스는 당시 그리스 영웅들 가운데 비교적 나이가 많은 노련한 왕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그는 나이를 이유로 전쟁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직접 갑옷을 입고 창을 들었으며, 메리오네스와 함께 전사들의 앞에 섰다. 크레타 사람들에게 이번 원정은 먼 스파르타의 왕비를 되찾는 싸움이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왕이 직접 바다를 건너 이끄는 거대한 전쟁이었다.
 
마침내 크레타의 함선들이 항구를 떠나 에게해를 건넜다. 아울리스에 모인 그리스 연합군 속에서 이도메네우스는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 같은 여러 왕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미노스 왕가의 후손이 지휘하는 여든 척의 크레타 함대도 그 거대한 원정의 한 축이 되었다. 그렇게 이도메네우스의 가장 길고 험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여든 척의 크레타 함대를 이끌고 떠나는 이도메네우스
 
 
 

제2장 트로이의 크레타 장수

2.1 트로이 앞에 선 크레타군
 
트로이 해안에 도착한 그리스군은 함선을 육지로 끌어올리고 길게 진영을 세웠다. 크레타군의 여든 척도 다른 왕들의 배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이도메네우스는 메리오네스와 함께 전사들을 정비하고 성벽 너머의 트로이를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오래 걸리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전쟁이었지만 해를 거듭해도 성은 무너지지 않았고, 수많은 전사가 쓰러지는 동안 크레타군 역시 긴 포위를 견뎌야 했다.
 
이도메네우스는 왕들의 회의에 참여하면서도 전투가 벌어지면 직접 창을 들었다. 헬레네가 트로이 성벽 위에서 아카이아의 장수들을 바라보던 날에도 그는 눈에 띄는 인물이었다. 헬레네는 프리아모스에게 그가 크레타의 지도자 이도메네우스라고 알려 주며, 그가 크레타에서 올 때마다 메넬라오스가 자신의 집에서 여러 차례 손님으로 맞아 주었던 일을 떠올렸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이도메네우스의 역할은 더욱 분명해졌다. 그는 가장 젊거나 빠른 영웅은 아니었지만 많은 군사를 거느린 왕이자 경험 많은 장수였다. 전선이 흔들리면 병사들 앞에서 창을 들었고, 왕들의 회의에서는 다음 싸움을 함께 논했다. 메리오네스가 그의 곁을 지키는 가운데 크레타군은 십 년 가까운 전쟁을 버텼고, 이도메네우스의 이름도 아카이아의 주요 장수들 가운데 굳게 자리 잡았다.
 
트로이 성벽을 바라보며 크레타군을 지휘하는 이도메네우스
 
 
2.2 헥토르에게 도전하다
 
트로이 전쟁이 한창이던 어느 날, 헥토르는 두 군대 사이로 나와 그리스군의 영웅 한 사람과 일대일로 싸우겠다고 외쳤다. 그의 명성이 워낙 두려웠기에 처음에는 아무도 쉽게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노왕 네스토르가 젊은 시절의 용맹을 이야기하며 장수들을 꾸짖자 마침내 여러 영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가멤논과 디오메데스, 두 아이아스, 오디세우스와 함께 이도메네우스도 창을 들고 나섰다.
 
메리오네스 역시 그 곁에서 도전을 받아들였다. 누가 헥토르와 싸울지는 제비를 뽑아 정하기로 했다. 아홉 영웅의 표식이 아가멤논의 투구 속으로 들어갔고, 병사들은 제우스에게 자신들이 바라는 강한 전사가 선택되기를 기도했다. 이도메네우스도 다른 장수들과 함께 결과를 기다렸다. 마침내 뽑힌 것은 큰 아이아스의 표식이었다.
 
이도메네우스가 헥토르와 직접 결투하지는 않았지만, 그날 앞으로 나섰다는 사실은 그의 위치를 보여 주었다. 그는 크레타의 군사를 뒤에서 명령만 하는 왕이 아니었다. 트로이 최고의 전사와 한 사람씩 맞서야 하는 자리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 머리에 희끗한 빛이 보이기 시작했어도, 전장에서는 여전히 창으로 이름난 왕이었다.
 
헥토르와의 결투에 자원해 앞으로 나서는 이도메네우스
 
 
2.3 메리오네스와 함께 싸우다
 
긴 전쟁 동안 이도메네우스의 곁을 가장 오래 지킨 사람은 메리오네스였다. 어느 격전에서 메리오네스는 데이포보스의 방패를 향해 창을 던졌다가 창대를 부러뜨리고 진영으로 돌아왔다. 그때 자신의 막사에서 다시 무장을 갖추던 이도메네우스와 마주쳤다. 이도메네우스가 까닭을 묻자 메리오네스는 새 창을 찾으러 왔다고 대답했다.
 
이도메네우스는 자신의 막사 벽에 트로이군에게서 빼앗은 창이 얼마든지 있으니 가져가라고 말했다. 그는 적과 멀리 떨어져 싸우지 않았기 때문에 창과 방패, 투구와 갑옷 같은 전리품이 많이 쌓였다고 했다. 이어 메리오네스의 용기를 자신은 이미 잘 알고 있다며, 매복전을 벌여 진짜 용맹을 가려낸다 해도 누구도 그의 담력을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라고 격려했다.
 
메리오네스는 새 창을 들었고 두 사람은 함께 전선으로 돌아갔다. 어느 쪽을 도울지 살핀 이도메네우스는 중앙에는 두 아이아스와 테우크로스가 있으니 자신들은 더 약한 왼쪽으로 가자고 정했다. 왕과 동료가 나란히 청동 갑옷을 빛내며 달려오자 트로이군도 그들을 향해 몰려들었다. 두 크레타 전사의 가장 치열한 싸움이 그곳에서 시작되었다.
 
새 창을 든 메리오네스와 함께 전선으로 향하는 이도메네우스
 
 
2.4 아카이아의 함선을 지키다
 
아킬레우스가 싸움에서 물러난 뒤 그리스군은 크게 흔들렸다. 헥토르가 이끄는 트로이군은 방벽을 넘어 해안까지 밀려왔고, 그리스의 함선들은 불길에 휩싸일 위험에 놓였다. 함선이 타 버리면 고향으로 돌아갈 길도 사라질 터였다. 포세이돈은 그리스군을 돕기 위해 사람의 모습을 하고 전사들을 격려했고, 이도메네우스에게도 다시 무장을 갖추고 싸움으로 돌아가라고 힘을 북돋웠다.
 
이도메네우스는 두 개의 창을 들고 막사에서 뛰쳐나왔다. 그의 갑옷은 번개처럼 빛났고, 새 창을 구한 메리오네스가 뒤따랐다. 두 사람은 함선 가까운 왼쪽 전선으로 향했다. 트로이군은 그들이 오는 것을 보고 한꺼번에 달려들었고, 배의 고물 아래에서 창과 칼이 부딪치는 거센 백병전이 벌어졌다.
 
나이가 든 이도메네우스는 그 한복판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병사들에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외치며 직접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함선을 지키는 싸움은 왕의 명예를 위한 결투가 아니었다. 지금 밀리면 오랜 원정 전체가 무너질 수 있었다. 이도메네우스는 크레타의 왕이면서 동시에 그리스군의 전선을 붙들어 세우는 한 사람의 전사로 싸웠다.
 
함선 앞에서 트로이군과 맞서는 이도메네우스와 메리오네스
 
 
 

제3장 창으로 이름난 왕

3.1 오트뤼오네우스를 쓰러뜨리다
 
함선 주변의 싸움이 격렬해지자 이도메네우스는 트로이군 속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그 앞에는 카베소스에서 온 오트뤼오네우스가 있었다. 그는 전쟁이 시작된 뒤 뒤늦게 트로이에 와서 프리아모스의 딸 카산드라와 혼인하기를 바랐다. 오트뤼오네우스는 혼인 예물을 내놓는 대신 자신이 그리스군을 트로이에서 몰아내겠다고 약속했고, 프리아모스는 그 공을 세우면 딸을 주겠다고 받아들였다.
 
오트뤼오네우스가 자신 있게 전진하자 이도메네우스는 창을 겨누었다. 날아간 창은 청동 갑옷을 뚫고 그의 몸에 박혔고, 그는 그대로 땅에 쓰러졌다. 이도메네우스는 죽은 적을 향해 카산드라와 혼인하려고 아카이아군을 몰아내겠다고 약속했다면 이제 자신들과 함께 트로이를 공격하러 가자고 거칠게 비웃었다. 전장의 한복판에서 승리의 조롱이 잠시 울려 퍼졌다.
 
그러나 싸움은 멈추지 않았다. 이도메네우스는 쓰러진 오트뤼오네우스를 뒤로하고 다시 창을 들었다. 트로이군은 동료의 죽음을 갚으려 몰려왔고, 크레타군도 왕을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머리가 희끗한 노왕은 젊은 전사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가장 먼저 적에게 달려드는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그의 창이 적장을 쓰러뜨리자 흔들리던 그리스군의 전선에도 다시 힘이 붙기 시작했다.
 
오트뤼오네우스를 창으로 쓰러뜨리는 이도메네우스
 
 
3.2 아시오스를 무너뜨리다
 
오트뤼오네우스가 쓰러지자 트로이 편의 장수 아시오스가 분노하여 이도메네우스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전차 앞에서 두 발로 뛰어 나왔고, 마부는 말과 전차를 그의 바로 뒤까지 바싹 몰았다. 아시오스는 가까이 다가가 단숨에 크레타의 왕을 쓰러뜨리려 했다. 그러나 이도메네우스는 피하지 않고 방패를 세운 채 그가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이도메네우스가 던진 창은 아시오스의 목 부근을 꿰뚫었다. 거대한 나무가 산에서 도끼에 찍혀 넘어지듯 아시오스도 땅에 쓰러졌다. 그의 마부는 갑작스러운 죽음에 놀라 전차를 돌리지 못했고, 안틸로코스가 달려들어 그를 쓰러뜨린 뒤 말과 전차를 그리스군 쪽으로 몰고 갔다. 전장의 작은 승리는 곧 다음 싸움을 불러왔다.
 
아시오스의 죽음을 본 데이포보스가 창을 던지며 달려들었다. 이도메네우스는 재빨리 둥근 방패 뒤로 몸을 낮춰 창을 피했고, 날아간 창은 다른 그리스 전사를 쓰러뜨렸다. 이도메네우스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에게는 승리를 기뻐할 시간도, 죽은 적을 오래 바라볼 여유도 없었다. 창 하나가 빗나가면 곧 다른 창이 날아오는 곳이 트로이의 전장이었다. 싸움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새로운 적을 불러들였다.
 
달려드는 아시오스를 창으로 쓰러뜨리는 이도메네우스
 
 
3.3 데이포보스와 맞서다
 
데이포보스가 그리스 전사를 쓰러뜨리자 이도메네우스는 분노했다. 그는 다시 창을 던져 데이포보스 곁에서 싸우던 알카토오스를 쓰러뜨렸다. 알카토오스는 아이네이아스의 누이 히포다메이아와 결혼한 트로이의 유력한 전사였다. 이도메네우스는 쓰러진 적 앞에서 데이포보스를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직접 앞으로 나와 맞서 보라고 도전했다.
 
그는 자신의 혈통도 전장 한복판에서 밝혔다. 제우스에게서 미노스가 태어났고, 미노스에게서 데우칼리온이 태어났으며, 데우칼리온이 자신을 낳아 크레타의 많은 사람을 다스리게 했다고 외쳤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배들이 그를 트로이까지 데려왔다고 말했다. 왕가의 계보를 입으로 늘어놓은 것은 자랑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눈앞의 적에게 자신 역시 쉽게 물러날 사람이 아니라는 선언이었다.
 
데이포보스는 혼자 맞설지 망설이다가 아이네이아스를 찾아갔다. 곧 트로이의 강한 전사들이 모여 이도메네우스를 압박했고, 그리스 쪽에서도 동료들이 달려왔다. 싸움은 한 사람의 결투에서 다시 집단전으로 번졌다. 이도메네우스는 수적으로 밀리는 순간에도 자리를 지켰고, 메리오네스와 동료들이 합류할 때까지 방패와 창으로 전선을 버텼다.
 
데이포보스를 향해 창을 들고 맞서는 이도메네우스
 
 
3.4 목마 안으로 들어가다
 
십 년 가까이 이어진 싸움 끝에도 트로이의 성벽은 무너지지 않았다. 마침내 오디세우스를 비롯한 그리스 장수들은 정면 공격 대신 거대한 목마를 이용하는 계책을 받아들였다. 에페이오스가 아테나의 도움을 받아 속이 빈 목마를 만들자, 그 안에 들어가 밤이 되기를 기다릴 영웅들이 뽑혔다. 후대의 서사시는 그 명단에 이도메네우스와 메리오네스도 함께 넣는다.
 
두 사람은 좁고 어두운 목마 안으로 들어갔다. 네오프톨레모스와 메넬라오스, 오디세우스, 디오메데스와 여러 장수들이 숨을 죽인 채 곁에 앉았다. 바깥에서는 그리스군이 진영을 불태우고 떠난 것처럼 꾸몄고, 트로이 사람들은 오랜 포위가 끝났다고 믿었다. 목마가 성안으로 끌려가는 동안 안에 숨은 전사들은 작은 소리 하나에도 계획 전체가 무너질 수 있어 움직이지 않았다.
 
밤이 깊어 트로이가 잠들자 목마의 문이 열렸다. 영웅들은 차례로 땅에 내려와 성문을 열었고, 되돌아온 그리스군이 도시 안으로 밀려들었다. 오랫동안 들판에서 창을 맞대던 이도메네우스에게 마지막 승리는 정면의 힘만으로 얻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메리오네스와 함께 트로이의 마지막 밤까지 살아남아, 길었던 원정의 끝을 보게 되었다.
 
트로이 목마 안에서 때를 기다리는 이도메네우스와 메리오네스
 
 
 

제4장 크레타로 돌아간 왕

4.1 전쟁에서 살아 돌아오다
 
트로이가 무너진 뒤 살아남은 그리스 장수들은 각자의 배를 준비해 고향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승리했다고 해서 모두 무사히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아테나의 분노와 바다의 폭풍 때문에 많은 함대가 흩어졌고, 어떤 영웅은 다른 땅을 떠돌았으며 어떤 왕은 고향에 도착한 뒤 죽음을 맞았다. 십 년의 전쟁 뒤에는 또 다른 고난인 귀환의 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이도메네우스의 귀환은 비교적 평온하게 전해진다. 네스토르는 트로이에서 돌아온 영웅들의 소식을 말하면서, 이도메네우스가 이끌고 떠난 사람들을 바다가 빼앗지 않았으며 그가 크레타로 무사히 돌아왔다고 전한다. 오랜 전쟁에서 살아남은 크레타군은 마침내 익숙한 섬의 해안을 다시 보게 된 셈이다.
 
이 전승을 따르면 이도메네우스의 이야기는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는 메리오네스와 함께 전장에서 살아남아 크레타로 돌아왔고, 고향 사람들은 두 영웅을 오래 기억했다. 훗날 크노소스에는 두 사람의 무덤이 나란히 있다고 전해졌으며, 크레타 사람들은 전쟁의 위험이 닥칠 때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영웅으로 기렸다. 긴 원정을 견딘 왕에게 그것은 가장 드문 행운이었다.
 
크레타 해안에 무사히 돌아온 이도메네우스와 전사들
 
 
4.2 폭풍 속에서 포세이돈에게 맹세하다
 
그러나 후대에는 이도메네우스의 귀환을 전혀 다르게 전하는 이야기가 생겨났다. 트로이를 떠난 그의 함대가 거센 폭풍을 만나자 배들은 높은 파도 사이에서 방향을 잃고 부서질 위기에 놓였다. 전쟁에서 수없이 죽음을 넘긴 왕도 바다의 힘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눈앞에서 선원들과 배가 사라질지 모르는 순간, 그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구원을 청했다.
 
이도메네우스는 자신과 함대를 무사히 크레타에 닿게 해 준다면 육지에 내려 처음 만나는 생명을 제물로 바치겠다고 맹세했다. 폭풍 속에서 내뱉은 약속은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람이 잦아들고 배들은 다시 길을 잡았다. 멀리 크레타의 산과 해안이 보이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마침내 전쟁과 항해가 모두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도메네우스에게는 자신이 한 맹세가 남아 있었다. 배가 육지에 닿고 왕이 해안으로 발을 옮겼을 때 누군가가 그를 맞으러 달려왔다.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은 아버지를 기다리던 그의 아들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포세이돈에게 바친 말이 이제 가장 잔인한 모습으로 왕 앞에 돌아왔다. 환호하던 선원들과 달리 왕의 얼굴에는 자신이 바친 약속의 무게가 남아 있었다.
 
폭풍 치는 바다에서 포세이돈에게 맹세하는 이도메네우스
 
 
4.3 아들을 제물로 바치다
 
해안에서 아들을 마주한 순간 이도메네우스는 자신의 맹세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깨달았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포세이돈에게 처음 만나는 존재를 제물로 바치겠다고 약속했고, 그 대상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아들이 되었다. 십 년 동안 수많은 전사의 죽음을 보아 온 왕에게도 이 선택은 전쟁의 어떤 순간보다 가혹했다.
 
후대의 이야기는 이도메네우스가 결국 맹세를 지켜 아들을 희생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그 제사는 크레타에 평안을 가져오지 못했다. 오히려 섬에 역병이 퍼졌고 사람들은 끔찍한 희생이 신들의 분노를 불러왔다고 여겼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왕의 귀환은 축제가 아니라 두려움과 원망으로 바뀌었다. 백성들은 더 이상 그를 미노스 왕가의 영광스러운 후손으로만 바라보지 않았다.
 
마침내 크레타 사람들은 이도메네우스를 섬에서 몰아냈다. 트로이의 성벽과 헥토르의 군대를 견뎌 낸 왕이 정작 자신의 고향에서는 머물 곳을 잃게 된 것이다. 다만 이것은 호메로스가 전한 귀환과는 다른 후대 전승이다. 오래된 이야기에서는 무사히 돌아온 왕이, 세월이 흐른 뒤에는 지키지 않을 수도 없었던 맹세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은 비극의 주인공으로 바뀌었다.
 
크레타 해안에서 아들과 마주한 이도메네우스
 
 
4.4 돌아갈 왕국을 잃다
 
이도메네우스가 크레타를 떠나게 된 까닭은 전승마다 다르게 전해진다. 포세이돈에게 한 맹세 때문에 아들을 희생하고 백성들에게 쫓겨났다는 이야기와 달리, 아폴로도로스는 레우코스라는 인물이 그의 왕국을 빼앗았다고 전한다. 이도메네우스가 트로이에서 싸우는 동안 레우코스는 그의 아내 메다와 관계를 맺고 왕가를 장악했으며, 마침내 메다와 딸 클레이시튀라를 죽이고 크레타의 열 도시를 차지했다.
 
십 년의 전쟁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이도메네우스에게 기다리고 있던 것은 환영이 아니라 빼앗긴 왕국이었다. 레우코스는 돌아온 왕을 받아들이지 않고 크레타에서 몰아냈다. 한때 여든 척의 함선을 이끌고 수많은 전사들의 앞에 섰던 왕은 이제 자신의 섬에서도 머물 곳을 잃었다. 후대 전승에서는 그가 바다를 건너 이탈리아 남부의 살렌툼, 오늘날의 살렌토 지방으로 향했다고도 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이도메네우스가 다시 동쪽으로 옮겨 소아시아의 콜로폰 부근에서 생을 마쳤다고 전한다. 그러나 크레타에는 그가 메리오네스와 함께 무사히 귀환해 크노소스에 묻혔다는 전승도 남아 있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은 하나로 이어지지 않는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고향으로 돌아온 영웅이고, 다른 이야기에서는 맹세나 배신 때문에 왕국을 잃은 방랑자다. 어느 전승에서도 그는 트로이의 긴 전쟁을 끝까지 견딘 크레타의 왕으로 기억되었다.
 
빼앗긴 크레타를 뒤로하고 떠나는 이도메네우스
【작성】 가담항설 - 떠도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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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