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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 별전가담항설의지식창고 2026.08.28. 12:07 (2026.08.28. 12:07)

헤라 – 신들의 왕비

 
크로노스와 레아의 딸 헤라는 아버지에게 삼켜졌다가 제우스에 의해 세상으로 돌아와 올림포스의 왕비가 된다. 혼인과 출산을 지키는 여신이었지만, 제우스가 다른 여신과 인간 여성에게 마음을 주면서 그녀는 분노와 복수에 사로잡혔다. 헤라는 이아손을 돕고 헤라클레스에게 시련을 내렸으며, 파리스의 심판 뒤에는 그리스군의 편에 서서 트로이의 몰락을 이끌었다. 상처 입은 아내이자 강력한 왕비였던 그녀는 수많은 갈등 속에서도 끝내 제우스 곁의 왕좌를 지킨다.
목   차
[숨기기]
헤라 – 신들의 왕비
 
 
 

개요

 
크로노스와 레아의 딸 헤라는 아버지에게 삼켜졌다가 제우스에 의해 세상으로 돌아와 올림포스의 왕비가 된다. 혼인과 출산을 지키는 여신이었지만, 제우스가 다른 여신과 인간 여성에게 마음을 주면서 그녀는 분노와 복수에 사로잡혔다. 헤라는 이아손을 돕고 헤라클레스에게 시련을 내렸으며, 파리스의 심판 뒤에는 그리스군의 편에 서서 트로이의 몰락을 이끌었다. 상처 입은 아내이자 강력한 왕비였던 그녀는 수많은 갈등 속에서도 끝내 제우스 곁의 왕좌를 지킨다.
 
 
 

제1장 티탄의 딸에서 신들의 왕비로

1.1 크로노스에게 삼켜진 딸
 
헤라는 티탄의 왕 크로노스와 레아 사이에서 태어났다. 크로노스는 자신의 자식에게 왕좌를 빼앗기리라는 예언을 두려워하여,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통째로 삼켰다. 헤스티아와 데메테르에 이어 태어난 헤라도 어머니의 품에 안겨 보지 못한 채 아버지의 몸속에 갇혔다. 그곳에는 먼저 삼켜진 두 자매가 있었고, 뒤이어 하데스와 포세이돈도 같은 운명을 맞았다.
 
막내 제우스만은 레아의 계책으로 크레타섬에서 살아남았다. 장성한 제우스는 메티스의 도움을 받아 크로노스가 삼킨 자식들을 토해 내게 했다. 오랫동안 어둠 속에 갇혀 있던 헤라는 형제자매들과 함께 다시 빛을 보았다. 그러나 자유를 되찾은 기쁨도 잠시뿐이었다. 크로노스와 티탄들이 권좌를 내놓지 않으면서, 새로 태어난 신들과 옛 신들 사이에 긴 전쟁이 시작되었다.
 
티타노마키아가 제우스의 승리로 끝나자 크로노스의 자식들은 세계의 새로운 지배자가 되었다. 제우스는 하늘을, 포세이돈은 바다를, 하데스는 명계를 차지했고 세 여신도 올림포스의 높은 자리에 올랐다. 그 가운데 헤라에게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더 큰 자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삼켜졌던 티탄의 딸은 머지않아 새 시대를 다스리는 신들의 왕비가 될 운명이었다.
 
크로노스의 몸속에서 형제자매들과 풀려난 헤라
 
 
1.2 오케아노스와 테튀스의 양육
 
헤라는 훗날 자신이 오케아노스와 테튀스의 궁전에서 자랐다고 회상했다. 제우스가 크로노스를 땅과 바다 아래로 몰아내던 무렵, 두 오래된 신은 헤라를 레아에게서 데려와 친딸처럼 보살폈다. 모든 땅을 둥글게 둘러 흐르는 대양의 신과 그의 아내가 어린 여신을 맡으면서, 헤라는 올림포스의 전쟁에서 멀리 떨어진 세상 끝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끝없이 흐르는 물과 강의 신들, 수많은 오케아니스 사이에서 헤라는 성장했다. 테튀스는 어린 여신을 정성껏 보살폈고, 오케아노스의 궁전에는 올림포스를 뒤흔드는 싸움의 소리도 쉽게 닿지 않았다. 헤라는 옛 신들의 세계에 속한 두 신의 보호를 받으면서 새롭게 일어나는 올림포스의 시대를 바라보았고, 왕가에서 태어난 여신다운 위엄을 갖추어 갔다.
 
전쟁이 끝나고 올림포스의 질서가 자리 잡자 헤라는 형제자매들이 있는 신들의 산으로 향했다. 그러나 자신을 길러 준 오케아노스와 테튀스를 잊지 않았다. 훗날 제우스를 속이기 위해 두 양부모가 다투고 있어 화해시키러 간다고 말했을 만큼, 그들의 이름은 헤라에게 믿을 만한 명분이 되었다. 세상 끝에서 자란 크로노스의 딸은 이제 하늘의 지배자 제우스와 다시 만나게 되었다.
 
오케아노스와 테튀스의 궁전에서 자라는 어린 헤라
 
 
1.3 뻐꾸기로 다가온 제우스
 
제우스는 아름답고 위엄 있는 헤라를 아내로 맞고 싶어 했다. 그러나 헤라는 이미 수많은 여신과 사랑을 나눈 제우스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르고스 지방의 전승에 따르면, 제우스는 헤라에게 가까이 가기 위해 작은 뻐꾸기로 모습을 바꾸었다. 차가운 비바람 속에서 깃털이 젖은 새는 떨면서 헤라가 있는 곳으로 날아들었다.
 
가엾게 여긴 헤라는 뻐꾸기를 두 손으로 감싸 품속에 넣어 주었다. 따뜻한 품에 안긴 순간 새는 본래의 모습인 제우스로 돌아왔다. 놀란 헤라는 그를 밀어냈고, 제우스는 정식으로 혼인하여 왕비로 받들겠다고 약속했다. 헤라는 가벼운 사랑이 아니라 모든 신 앞에서 맺는 변치 않는 혼인을 요구했고, 제우스가 그 약속을 받아들인 뒤에야 그의 청혼을 허락했다.
 
또 다른 노래에서는 두 신이 부모들 몰래 처음 사랑을 나누었다고 전한다. 어느 전승을 따르든 제우스와 헤라의 결합은 단순한 연애가 아니었다. 티탄 왕가의 딸과 새로운 하늘의 왕이 맺어지면서 옛 세대와 새 세대의 권위가 하나로 이어졌다. 헤라가 손에 품었던 뻐꾸기는 훗날 그녀의 홀 위에 앉은 상징이 되었고, 두 신은 성대한 혼인을 준비했다.
 
폭풍 속 뻐꾸기 제우스를 품에 안는 헤라
 
 
1.4 신들의 혼인과 왕비의 자리
 
제우스와 헤라의 혼인이 정해지자 신들은 두 사람을 축복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대지는 꽃을 피우고 신들의 연회에는 암브로시아와 넥타르가 가득했다. 전승에 따르면 가이아는 황금 사과가 열리는 나무를 혼인 선물로 주었고, 헤라는 그 나무를 세상 서쪽 끝의 정원에 심었다. 헤스페리데스와 용 라돈이 지키게 된 황금 사과나무는 신성한 혼인의 보물이 되었다.
 
혼인을 마친 헤라는 제우스 곁의 황금 왕좌에 앉았다. 머리에는 왕관을 쓰고 한 손에는 홀을 든 그녀 앞에서 다른 신들도 예를 갖추었다. 헤라는 신들의 왕비일 뿐 아니라 혼인한 여성과 가정, 아이를 낳는 순간을 지키는 여신이 되었다. 아르고스와 사모스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는 처녀에서 신부가 되고 다시 가정의 여주인이 되는 여성의 삶을 헤라의 이름으로 기렸다.
 
그러나 성대한 혼인은 두 신의 다툼까지 끝내 주지는 못했다. 제우스는 왕비를 맞은 뒤에도 다른 여신과 인간 여성에게 마음을 주었고, 헤라는 자신이 수호하는 혼인의 약속이 남편에게서 거듭 깨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녀의 분노는 자주 제우스의 사랑을 받은 이들과 그 자녀들에게 향했다. 올림포스에서 가장 존귀한 자리를 얻은 날은 동시에, 헤라의 길고 격렬한 싸움이 시작된 날이기도 했다.
 
신들의 축복 속에서 혼인하는 제우스와 헤라
 
 
 

제2장 올림포스 왕가의 어머니

2.1 아레스와 헤베와 에일레이튀이아
 
제우스와 헤라 사이에서는 올림포스의 중요한 신들이 태어났다. 아레스는 창과 방패를 들고 전쟁터의 함성과 격렬한 싸움을 다스렸다. 헤베는 시들지 않는 젊음을 나타내며 신들의 연회에서 잔에 넥타르를 따랐다. 에일레이튀이아는 산고를 겪는 여성 곁에 머물며 아이가 세상으로 나오는 순간을 열거나 늦추는 출산의 여신이 되었다.
 
세 자녀는 헤라가 가진 서로 다른 권능을 이어받았다. 아레스에게서는 뜻을 굽히지 않는 어머니의 격렬함이, 헤베에게서는 혼인과 젊은 신부를 보살피는 따뜻함이 드러났다. 에일레이튀이아의 힘은 출산을 지키는 헤라의 권능과 거의 나뉘지 않을 만큼 가까웠다. 헤라는 필요할 때 딸을 보내 산모를 돕기도 했지만, 분노한 상대의 출산을 막기 위해 그 힘을 붙들어 두기도 했다.
 
헤라는 자녀를 사랑했으나 언제나 그들의 편만 들지는 않았다. 트로이 전쟁에서 아레스가 트로이군을 돕자, 그녀는 아테나가 아들을 쓰러뜨리는 모습을 보고도 막지 않았다. 왕비에게는 자식보다 올림포스의 질서와 자신의 뜻이 앞설 때가 있었다. 그럼에도 헤베와 에일레이튀이아, 아레스가 제우스의 궁전에 자리하면서 헤라는 아내의 지위뿐 아니라 올림포스 왕가의 어머니라는 위치를 굳혔다.
 
세 자녀를 거느리고 황금 왕좌에 앉은 헤라
 
 
2.2 홀로 낳은 헤파이스토스
 
제우스가 자신의 머리에서 완전한 무장을 갖춘 아테나를 낳자 헤라는 크게 분노했다. 자신과 의논하지 않고 홀로 딸을 낳은 남편에게 맞서, 헤라도 남신의 도움 없이 아이를 낳기로 했다. 그렇게 태어난 아들이 불과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였다. 그러나 아이는 두 다리가 약하고 모습도 다른 올림포스 신들과 달랐으며, 헤라는 기대했던 아들의 모습을 보고 실망했다.
 
수치심과 분노에 사로잡힌 헤라는 갓 태어난 헤파이스토스를 올림포스 밖으로 던져 버렸다. 바다로 떨어진 아이는 테티스와 에우뤼노메에게 구조되었다. 두 여신은 바닷속 깊은 동굴에 그를 숨겨 길렀고, 헤파이스토스는 그곳에서 불과 금속을 다루는 법을 익혔다. 그는 황금 장신구와 움직이는 기계까지 만들어 내는, 어떤 신도 따를 수 없는 장인이 되었다.
 
다만 모든 전승이 같은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노래에서는 헤파이스토스를 제우스와 헤라의 아들이라 부르며, 그가 헤라를 도우려다 제우스에게 던져졌다고 한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전승에서 헤파이스토스는 자신의 상처를 오래 잊지 않았다. 그는 무력으로 올림포스에 돌아가는 대신, 누구도 풀 수 없는 정교한 선물을 만들어 어머니에게 보내기로 했다.
 
올림포스 아래로 어린 헤파이스토스를 던지는 헤라
 
 
2.3 황금 왕좌에 묶인 왕비
 
어느 날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눈부신 황금 왕좌가 헤라에게 선물로 도착했다. 왕좌에는 이음새도 장치도 보이지 않았고, 표면에는 신들조차 감탄할 만큼 아름다운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헤라는 아들이 화해를 청한다고 생각하고 그 위에 앉았다. 그러나 몸이 닿는 순간 보이지 않던 사슬이 손과 발을 휘감았고, 왕비는 꼼짝할 수 없게 되었다.
 
올림포스의 신들이 차례로 나서 사슬을 풀려 했지만 누구도 헤파이스토스의 기술을 이기지 못했다. 신들은 그에게 올라와 어머니를 풀어 달라고 명령했으나, 그는 자신에게는 어머니가 없다며 거절했다. 마침내 디오니소스가 포도주를 들고 찾아갔다. 그는 헤파이스토스와 술을 나누어 경계를 풀게 한 뒤, 취한 대장장이 신을 나귀에 태워 올림포스로 데려왔다.
 
신들의 웃음과 음악 속에서 돌아온 헤파이스토스는 마침내 황금 왕좌의 사슬을 풀었다. 헤라는 자유를 얻었고, 버림받았던 아들은 올림포스에 자신의 자리를 되찾았다. 이후 그는 신들의 궁전과 무기, 보석을 만드는 장인이 되었으며 어머니를 위한 방도 지어 주었다. 왕비와 아들 사이의 상처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헤라는 자신이 내쫓은 아들의 힘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황금 왕좌에 묶인 헤라 앞에 돌아온 헤파이스토스
 
 
2.4 제우스에게 맞선 왕비
 
제우스의 독단적인 지배에 불만을 품은 신들이 한때 반란을 꾀했다. 헤라는 포세이돈과 아테나와 함께 제우스를 결박하여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천둥과 번개의 주인도 단단히 묶인 매듭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바다의 여신 테티스가 음모를 알아차리고 백 개의 팔을 가진 브리아레오스를 올림포스로 불러오자 상황이 달라졌다. 거대한 힘을 본 신들은 물러났고 제우스는 속박에서 풀려났다.
 
다른 전승에서는 헤라가 헤라클레스를 괴롭히려고 바다에 폭풍을 일으킨 일로 무서운 벌을 받았다. 분노한 제우스는 헤라의 두 손목을 황금 사슬로 묶어 하늘에 매달고, 두 발에는 무거운 모루를 달았다. 다른 신들은 고통스러워하는 왕비를 보면서도 감히 구하지 못했다. 누구도 제우스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고, 그가 마침내 분노를 거둔 뒤에야 헤라는 사슬에서 풀려났다.
 
두 이야기는 서로 다른 때에 전해진 사건이지만, 모두 올림포스의 왕과 왕비가 끊임없이 권력을 다투었음을 보여 준다. 헤라는 제우스의 힘 앞에서 물러날 때도 있었으나 자신의 뜻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다. 정면으로 맞설 수 없으면 다른 신을 움직이거나 계책을 세워 목적을 이루었다. 제우스도 그녀를 왕좌에서 내쫓지는 못했고, 헤라는 패배한 뒤에도 다시 그의 곁에 앉아 신들의 회의에 참여했다.
 
제우스를 결박하는 헤라와 포세이돈, 아테나
 
 
 

제3장 신과 영웅의 운명을 바꾸다

3.1 외짝 신발의 영웅을 선택하다
 
이올코스의 왕 펠리아스는 여러 신에게 제물을 바치면서도 헤라만은 제대로 공경하지 않았다. 헤라는 그의 오만을 벌할 사람으로 왕위를 빼앗긴 집안의 아들 이아손을 눈여겨보았다. 전승에 따르면 어느 날 노파로 변한 헤라가 불어난 아나우로스강 앞에 서 있자, 이아손은 그녀를 등에 업고 거센 물살을 건넜다. 그는 강을 건너는 동안 신발 한 짝을 잃었지만 노파를 끝까지 안전하게 내려놓았다.
 
외짝 신발을 신은 이아손이 왕궁에 나타나자 펠리아스는 오래전 신탁을 떠올리고 두려움에 빠졌다. 그는 이아손을 없애기 위해 먼 콜키스에 있는 황금 양털을 가져오라고 명했다. 헤라는 아테나와 함께 아르고호의 원정을 보살폈다. 충돌하는 바위와 거친 바다가 영웅들을 가로막을 때 길을 열어 주었고, 배가 위험에 빠질 때마다 이아손이 항해를 이어 갈 수 있도록 도왔다.
 
콜키스에서 아이에테스가 불가능한 과업을 내리자 헤라는 아테나와 함께 아프로디테를 찾아갔다. 에로스가 메데이아의 가슴에 사랑의 화살을 쏘았고, 그녀는 마법으로 이아손을 도와 황금 양털을 얻게 했다. 메데이아는 그리스까지 따라와 펠리아스의 몰락에도 힘을 보탰다. 그러나 이아손이 훗날 그녀를 버리면서 헤라가 이끈 원정의 승리는 또 다른 비극으로 이어졌다.
 
노파 모습의 헤라를 업고 강을 건너는 이아손
 
 
3.2 왕비의 자리를 뒤흔든 사랑들
 
제우스의 사랑이 다른 여신과 인간 여성에게 향할 때마다 헤라는 왕비의 자리를 모욕당했다고 여겼다. 제우스가 아르고스의 이오를 암소로 바꾸어 숨기자, 헤라는 그 암소를 선물로 요구하고 눈이 백 개 달린 아르고스에게 맡겼다. 헤르메스가 아르고스를 죽여 이오를 구하자 이번에는 등에를 보내 그녀가 땅끝까지 쉬지 못하고 떠돌게 했다.
 
레토가 제우스의 아이를 가졌을 때에는 어느 땅도 그녀를 받아 주지 못하도록 막았다. 출산의 여신 에일레이튀이아까지 붙잡아 둔 탓에 레토는 델로스섬에서 오랫동안 산고를 겪은 뒤에야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를 낳았다. 테바이의 공주 세멜레에게는 늙은 유모의 모습으로 다가갔다. 헤라는 세멜레가 연인의 정체를 의심하게 만들고, 제우스에게 신의 본모습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도록 부추겼다.
 
맹세에 묶인 제우스가 번개와 광채 속에 나타나자 세멜레는 불길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다. 제우스는 태어나지 않은 디오니소스를 구했지만, 헤라의 추적은 아이를 돌본 사람들에게까지 이어졌다. 이오와 레토, 세멜레의 이야기는 각각 다른 길로 흘렀으나 그 뒤에는 같은 왕비의 분노가 있었다. 헤라는 제우스를 직접 꺾지 못할 때 그의 사랑을 받은 이들과 그 자녀들을 향해 복수했다.
 
암소 이오를 백 개의 눈 아르고스에게 맡기는 헤라
 
 
3.3 헤라클레스에게 내린 시련
 
알크메네가 제우스의 아들을 낳으려 하자 헤라는 그 아이가 누릴 왕권부터 빼앗았다. 제우스가 그날 태어나는 페르세우스의 후손이 아르고스를 다스릴 것이라고 선언하자, 헤라는 그 말을 맹세로 굳혔다. 이어 에일레이튀이아를 보내 알크메네의 출산을 늦추고, 니키페의 아들 에우뤼스테우스는 일찍 태어나게 했다. 먼저 세상에 나올 운명이던 헤라클레스는 왕이 아니라 에우뤼스테우스를 섬기는 처지가 되었다.
 
헤라는 요람에 누운 아기에게 두 마리의 뱀을 보냈지만, 헤라클레스는 작은 두 손으로 뱀의 목을 졸라 죽였다. 장성한 뒤에도 분노는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널리 알려진 한 전승에서 헤라가 광기를 불어넣자 그는 정신을 잃고 가장 사랑하는 가족을 해쳤다. 제정신으로 돌아온 헤라클레스는 죄를 씻기 위해 델포이의 신탁을 따랐고, 에우뤼스테우스가 명하는 위험한 과업들을 수행해야 했다.
 
네메아의 사자와 히드라, 에리만토스의 멧돼지를 비롯한 괴물들이 차례로 그의 앞을 막았다. 헤라는 히드라를 도우라고 거대한 게를 보내고, 아마존과의 싸움에서는 소문을 퍼뜨려 전투를 일으켰다. 그러나 시련이 거듭될수록 헤라클레스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왕비가 쓰러뜨리려 한 영웅은 역설적으로 ‘헤라의 영광’이라는 이름을 지닌 채 인간 가운데 가장 위대한 영웅으로 성장했다.
 
요람에서 두 마리 뱀을 제압하는 아기 헤라클레스
 
 
3.4 원수를 사위로 받아들이다
 
수많은 모험을 마친 헤라클레스에게도 인간의 죽음은 찾아왔다. 독이 스민 옷이 몸을 태우자 그는 오이테산에 장작더미를 쌓고 자신의 마지막을 맞았다. 불길이 솟는 순간 천둥이 울리고 구름이 내려와 그의 불멸하는 부분을 올림포스로 데려갔다. 제우스는 평생 고통받은 아들을 신들의 자리에 앉히려 했지만, 그곳에는 오랫동안 그를 미워한 헤라가 기다리고 있었다.
 
헤라는 마침내 분노를 거두고 헤라클레스와 화해했다. 왕비가 그를 받아들이자 신들 사이의 적대도 끝났고, 헤라클레스는 더 이상 박해받는 인간 영웅이 아니었다. 헤라는 자신의 딸이자 영원한 젊음의 여신인 헤베를 그의 아내로 내주었다. 두 사람의 혼인은 올림포스에서 성대하게 치러졌으며, 부부는 그곳에서 늙지 않는 신들의 삶을 함께 누렸다.
 
헤라클레스와 헤베 사이에서는 알렉시아레스와 아니케토스가 태어났다. 한때 그의 탄생을 막고 끊임없이 괴물을 보냈던 헤라는 이제 그 자손의 할머니가 되었다. 오랜 원한은 영웅이 모든 시련을 견디고 신의 자리에 오른 뒤에야 끝났다. 헤라의 이름을 지닌 영웅이 마침내 헤라의 가족으로 들어오면서, 왕비와 제우스의 아들 사이에 이어졌던 가장 긴 싸움도 막을 내렸다.
 
헤베와 헤라클레스의 혼인을 허락하는 헤라
 
 
 

제4장 트로이 전쟁을 움직인 왕비

4.1 파리스가 외면한 왕비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황금 사과 하나를 던졌다. 사과에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준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헤라와 아테나, 아프로디테가 서로 자신의 것이라 주장하자 제우스는 심판을 피했다. 그는 헤르메스에게 세 여신을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양을 치던 이데산으로 데려가게 했다.
 
세 여신은 파리스의 선택을 얻기 위해 저마다 선물을 약속했다. 헤라는 그가 자신을 택하면 모든 인간 위에 군림하는 강력한 왕권을 주겠다고 했다. 아테나는 전쟁에서 이기는 힘과 지혜를,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헬레네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파리스는 왕권과 승리보다 헬레네를 원했고, 황금 사과를 아프로디테에게 건넸다.
 
헤라는 인간에게 아름다움을 부정당한 일을 잊지 않았다. 파리스 한 사람에게 받은 모욕은 그가 속한 트로이 왕가와 도시 전체를 향한 적의로 커졌다. 파리스가 스파르타에서 헬레네를 데리고 트로이로 돌아가고 그리스의 왕들이 군대를 모으자, 헤라는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아끼는 아르고스와 미케네, 스파르타의 군대가 승리하도록 돕기로 마음먹었다.
 
아프로디테에게 향한 황금 사과를 바라보는 헤라
 
 
4.2 그리스군 편에 선 여신
 
그리스 함대가 트로이 해안에 도착하자 올림포스의 신들도 양편으로 갈라졌다. 헤라는 아테나와 포세이돈과 함께 그리스군을 지지했고, 아프로디테와 아폴론, 아르테미스는 트로이군을 도왔다. 헤라의 아들 아레스마저 아프로디테를 따라 트로이 편에 섰다. 왕비는 같은 편에 선 신들을 움직이며 성벽 앞의 전투가 그리스군에게 유리하게 흐르도록 했다.
 
메넬라오스와 파리스의 결투 뒤에 두 군대가 휴전을 맺으려 하자 헤라는 전쟁을 끝낼 생각이 없었다. 제우스가 트로이와 그리스 가운데 어느 쪽을 구할 것인지 묻자,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아르고스와 스파르타와 미케네가 무너져도 막지 않을 테니 트로이 역시 내어 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아테나가 트로이 궁수 판다로스를 꾀어 메넬라오스에게 화살을 쏘게 했고 깨졌던 전쟁은 다시 시작되었다.
 
그러나 제우스가 테티스와의 약속에 따라 트로이군을 돕자 그리스군은 배가 있는 해안까지 밀려났다. 헤라는 몰래 포세이돈을 격려하고 아테나와 함께 전장으로 나가려 했다. 제우스가 이리스를 보내 번개로 두 여신의 전차를 부수겠다고 경고하자 그들은 올림포스로 돌아갔다. 겉으로 물러난 헤라는 제우스의 눈을 전쟁터에서 돌려놓을 새로운 계책을 준비했다.
 
그리스군을 돕기 위해 전차에 오르는 헤라와 아테나
 
 
4.3 이데산에서 제우스를 속이다
 
트로이군이 그리스 함선 가까이 밀려오자 헤라는 이데산 정상에서 전장을 내려다보았다. 포세이돈이 몰래 그리스군을 돕는 모습을 본 그녀는 제우스만 잠시 전투를 보지 못하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헤라는 몸을 암브로시아로 씻고 가장 아름다운 옷과 장신구를 갖춘 뒤 아프로디테를 찾아가 사랑과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신비한 허리띠를 빌렸다.
 
이어 잠의 신 휘프노스를 찾아가 제우스가 잠들도록 도와 달라고 청했다. 과거에도 같은 부탁을 들어주었다가 제우스의 분노를 샀던 휘프노스는 두려워했지만, 헤라가 카리스 가운데 파시테아를 아내로 주겠다고 약속하자 마음을 돌렸다. 모든 준비를 마친 헤라는 이데산으로 가서 오케아노스와 테튀스의 다툼을 화해시키러 가는 길이라고 제우스에게 말했다.
 
아프로디테의 힘에 사로잡힌 제우스는 전쟁을 잊고 헤라를 품었다. 황금 구름이 두 신을 가렸고, 숨어 있던 휘프노스가 제우스의 눈에 깊은 잠을 내렸다. 그는 곧 포세이돈에게 달려가 지금이 그리스군을 도울 때라고 알렸다. 포세이돈이 군사들을 일으키자 아이아스는 거대한 돌로 헥토르를 쓰러뜨렸고, 그리스군은 불타기 직전이던 함선에서 트로이군을 몰아냈다.
 
이데산의 황금 구름 속 잠든 제우스와 헤라
 
 
4.4 트로이의 몰락을 바라보다
 
잠에서 깨어난 제우스는 쓰러진 헥토르와 진격하는 그리스군을 보고 즉시 헤라의 계책을 알아차렸다. 그는 과거 헤라를 하늘에 매달았던 일을 상기시키며 위협했다. 헤라는 자신이 포세이돈에게 직접 명령하지 않았다고 맹세했고, 제우스의 뜻을 전하기 위해 올림포스로 돌아갔다. 아폴론이 헥토르의 힘을 되살리면서 전세는 다시 트로이군 쪽으로 기울었다.
 
하지만 파트로클로스가 죽고 아킬레우스가 전장으로 돌아오자 헤라에게 다시 기회가 왔다. 강의 신 크산토스가 아킬레우스를 삼키려 하자 헤라는 헤파이스토스에게 불길을 일으켜 강물을 끓이게 했다. 신들이 서로 맞붙었을 때에는 트로이를 돕던 아르테미스의 두 손을 붙잡고, 빼앗은 활로 그녀를 때려 올림포스로 달아나게 했다. 헤라는 더 이상 왕좌에 앉아 바라보기만 하는 여신이 아니었다.
 
헥토르가 죽고 트로이의 가장 강한 방패가 사라진 뒤에도 헤라의 분노는 누그러지지 않았다. 마침내 목마에서 나온 그리스군이 성문을 열고 불길이 도시를 삼키면서 파리스가 선택한 아프로디테의 약속도 트로이를 구하지 못했다. 오랜 원한을 갚은 헤라는 다시 올림포스로 돌아가 제우스 곁의 왕좌에 앉았다. 수많은 다툼과 패배를 겪었어도 그녀는 끝내 신들의 왕비라는 자리를 잃지 않았다.
 
불타는 트로이를 멀리서 바라보는 헤라
【작성】 가담항설 - 떠도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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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