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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로디테 –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
바다의 거품에서 태어난 아프로디테는 신과 인간의 마음에 사랑과 욕망을 일으키는 여신이었다. 올림포스에 오른 그는 헤파이스토스의 아내가 되었으나 아레스와 사랑을 나누었고, 사랑을 존중한 이들에게는 기쁨을, 자신의 권능을 거부한 이들에게는 비극을 내렸다. 아도니스와 안키세스를 사랑한 아프로디테는 파리스에게 헬레네를 약속하여 트로이 전쟁의 불씨를 놓았으며, 전쟁이 끝난 뒤에는 아들 아이네이아스가 새로운 운명을 찾아 떠나는 길을 지켰다.
1.1 우라노스의 몸이 바다에 떨어지다
아직 올림포스의 신들이 태어나기 전, 하늘의 신 우라노스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 위에 군림하고 있었다. 그는 가이아가 낳은 자식들 가운데 퀴클롭스와 헤카톤케이레스의 거대한 모습을 미워하여 그들을 대지 깊숙한 곳에 가두었다. 자식들을 몸속에 품은 채 고통받던 가이아는 단단한 낫을 만들어 티탄들에게 내밀었고, 막내 크로노스만이 어머니의 뜻을 따르겠다고 나섰다.
밤이 되어 우라노스가 가이아에게 내려오자 숨어 있던 크로노스가 낫을 휘둘렀다. 우라노스에게서 떨어진 피는 대지를 적셔 복수의 여신 에리뉘에스와 거인족 기간테스, 물푸레나무의 님프 멜리아이를 낳았다. 크로노스는 아버지에게서 잘라 낸 생명의 근원을 등 뒤로 던졌고, 그것은 하늘과 땅의 경계를 지나 넓은 바다 한가운데로 떨어졌다.
파도는 그것을 삼키지 않고 오랫동안 물결 위로 떠밀었다. 불멸의 살을 짠 바닷물이 감싸자 주위에서 흰 거품이 피어올랐고, 바람이 불 때마다 거품은 더 넓고 부드럽게 부풀었다. 하늘의 지배자가 쓰러진 밤이 지나간 뒤에도 물결 위의 거품은 사라지지 않았다. 밤바다를 밝히는 신비로운 빛 속에서 아직 누구도 보지 못한 새로운 여신이 천천히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밤바다에 떨어진 우라노스의 생명과 흰 거품
1.2 바다의 거품에서 태어나다
흰 거품은 파도 위를 떠다니며 점차 하나의 몸을 이루었다. 물결이 갈라지자 그 가운데서 눈부신 여신이 일어섰다. 젖은 머리카락은 어깨를 따라 흘러내렸고, 바다가 빚은 피부에는 새벽빛이 비쳤다. 전쟁도 왕권도 아닌 사랑과 아름다움의 힘을 지닌 아프로디테가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여신은 처음 퀴테라섬 가까이 다가갔다가 다시 물결을 타고 키프로스를 향했다. 사랑의 신 에로스와 욕망의 신 히메로스가 갓 태어난 여신의 곁으로 다가와 뒤를 따랐다. 아프로디테가 지나간 바다는 잔잔해졌고, 그가 해안에 발을 디딜 때마다 메마른 땅에서는 풀과 작은 꽃이 솟아올랐다. 바다와 대지는 새 여신을 위해 스스로 길을 여는 듯했다.
신들과 인간들은 바다의 거품을 뜻하는 ‘아프로스’에서 태어난 그를 아프로디테라 불렀다. 퀴테라를 거쳤기에 퀴테레이아, 키프로스에 도착했기에 퀴프리스라는 이름도 얻었다. 하늘에서 비롯되어 바다에서 자란 여신은 어느 신의 궁전에도 속하지 않은 채 완전한 모습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어느 이름으로 불리든 여신이 지닌 힘은 같았다. 아프로디테가 걸음을 옮기자 사랑과 결합을 향한 욕망도 그를 따라 신들과 인간들의 세계로 들어왔다.
바다의 흰 거품 속에서 태어나는 아프로디테
1.3 키프로스에 첫발을 내딛다
서풍 제퓌로스는 부드러운 숨결로 아프로디테를 키프로스 해안까지 실어 날랐다. 여신은 부드러운 거품에 싸인 채 파도를 건넜고, 물결이 모래사장에 닿자 계절을 다스리는 호라이가 기쁘게 맞으러 나왔다. 아프로디테가 바다에서 걸어 나오자 발아래로 어린 풀이 돋아났고, 호라이는 새로 태어난 여신에게 경의를 표하며 올림포스로 갈 준비를 도왔다.
호라이는 아프로디테에게 신들이 입는 눈부신 옷을 입히고 머리에 정교한 황금관을 씌웠다. 귀에는 황금과 귀한 금속으로 만든 장식을 걸고, 목과 가슴에는 빛나는 목걸이를 둘렀다. 여신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장신구와 옷자락에서 은은한 빛이 흘렀다. 단장을 마친 호라이가 아프로디테를 올림포스로 인도하자 길가의 꽃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아프로디테는 자신이 처음 발을 디딘 키프로스를 특별히 사랑했다. 파포스와 아마투스에는 훗날 여신을 섬기는 성소가 세워졌고, 향기로운 제물과 꽃이 끊이지 않았다. 비둘기는 여신의 새가 되어 신전과 뜰을 날아다녔다. 바다를 건너는 사람들은 키프로스 앞바다에서 무사한 항해와 사랑의 결실을 빌었다. 그렇게 키프로스는 아프로디테가 태어나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여신의 섬으로 오래 기억되었다.
키프로스 해안에서 아프로디테를 단장하는 호라이
1.4 올림포스가 새로운 여신을 맞이하다
호라이가 아프로디테를 올림포스의 궁전으로 데려가자 신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새 여신에게 향했다. 남신들은 그 아름다움에 놀라 앞다투어 손을 내밀었고, 저마다 아프로디테를 아내로 맞고 싶어 했다. 여신들은 바다에서 막 올라온 그가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신들의 자리를 지나 제우스 앞에 서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프로디테는 신들의 연회에 자리를 얻고 사랑과 아름다움, 결합과 풍요를 맡았다. 그가 미소를 지으면 굳게 닫힌 마음이 흔들렸고, 서로 등을 돌렸던 이들도 다시 상대를 바라보았다. 제우스를 비롯한 올림포스의 신들조차 그 힘을 가볍게 여기지 못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아프로디테는 곧 ‘미소를 사랑하는 여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든 시인이 아프로디테의 탄생을 똑같이 노래한 것은 아니었다. 호메로스의 노래에서 그는 바다의 거품에서 태어난 여신이 아니라 제우스와 오래된 여신 디오네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나타났다. 훗날 트로이 전쟁에서 디오메데스에게 상처를 입었을 때에도 아프로디테는 어머니 디오네에게 달려가 위로받았다. 두 탄생 전승은 나란히 이어졌지만, 어느 이야기에서나 그는 가장 강력한 사랑의 여신이었다.
올림포스의 신들 앞에 처음 선 아프로디테
2.1 신과 인간을 사로잡는 권능
아프로디테가 세상에 나타난 뒤부터 신들과 인간들은 뜻밖의 순간에 서로를 갈망하기 시작했다. 여신이 마음만 먹으면 냉정한 왕도 낯선 여인에게 왕관을 내주었고, 오래 다투던 사람도 상대의 얼굴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아프로디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욕망을 불러내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만남과 이별을 만들어 냈다.
그 힘은 인간의 도시와 올림포스에만 머물지 않았다. 여신이 산길을 걸으면 늑대와 곰, 사자와 표범이 사나움을 잊은 채 뒤를 따랐다. 숲의 짐승과 하늘의 새들도 짝을 찾아 서로에게 다가갔고, 들판에는 새 생명이 이어졌다. 아프로디테가 지나간 자리에서는 온 세상이 사랑과 번식의 기운으로 움직였다.
제우스조차 아프로디테가 일으킨 욕망 때문에 여러 인간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아프로디테는 신들을 인간과 결합하게 만든 자신의 힘을 자랑했고, 어떤 신도 그 손길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여겼다. 올림포스에서는 여신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사랑이 시작될까 조심할 정도였다. 제우스는 언젠가 그에게도 인간을 사랑하는 고통과 두려움을 알게 하리라 마음먹었다. 그 선택은 훗날 트로이 왕가의 목동 안키세스에게로 이어졌다.
숲의 짐승들에게 사랑을 일으키는 아프로디테
2.2 사랑의 신들을 거느리다
아프로디테가 처음 바다에서 나왔을 때부터 에로스와 히메로스가 곁을 따랐다. 에로스는 갑작스럽게 마음을 꿰뚫는 사랑을 일으켰고, 히메로스는 눈앞의 상대를 간절히 원하는 욕망을 불러냈다. 두 신이 아프로디테와 함께 나타나면 신과 인간의 마음은 이성의 명령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설득의 여신 페이토와 우아함을 나누는 카리테스도 아프로디테를 가까이에서 섬겼다. 페이토는 연인들의 입에 부드러운 말을 담아 주었고, 카리테스는 몸짓과 춤, 웃음과 잔치에 매력을 더했다. 계절의 여신 호라이는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때를 열어 사랑이 결혼과 탄생으로 이어지게 했다.
아프로디테는 때로 비둘기나 참새가 끄는 수레를 타고 올림포스를 떠났다. 에로스가 앞서 날고 카리테스가 뒤를 따르면, 여신의 행렬이 지나가는 곳마다 향기가 퍼지고 꽃잎이 흩날렸다. 봄날의 정원과 혼례의 행렬에서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아프로디테와 그 수행 신들을 불러 오래 이어질 사랑과 축복을 청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행렬이 언제나 행복만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사랑은 약속을 맺게도 했지만 질투와 배신, 다툼과 복수의 문도 함께 열었다.
에로스와 카리테스를 거느린 아프로디테의 행렬
2.3 사랑을 거부한 세 여신
아프로디테는 거의 모든 신과 인간의 마음을 움직였지만, 세 여신에게만은 자신의 힘을 미치지 못했다. 지혜의 여신 아테나는 혼인보다 전쟁과 기술을 택했다. 아프로디테가 사랑을 불러일으키려 해도 아테나는 창과 방패를 들고 전장으로 향하거나 베틀 앞에 앉아 정교한 직물을 짰다.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도 산과 숲을 자유롭게 달리는 삶을 지켰다. 그는 님프들과 사냥개를 이끌고 활을 쏘며 어떤 남신의 구혼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화로의 여신 헤스티아에게 포세이돈과 아폴론이 동시에 청혼했을 때, 헤스티아는 제우스의 머리에 손을 얹고 영원히 처녀로 살겠다고 맹세했다.
제우스는 헤스티아의 뜻을 받아들였고, 아프로디테도 세 여신의 선택을 꺾을 수 없었다. 아테나와 아르테미스, 헤스티아는 사랑이 지배하지 못하는 고유한 영역을 영원히 지켰다. 세 여신의 굳고 신성한 맹세 앞에서는 아프로디테의 신비로운 띠도 에로스의 날카로운 화살도 아무 힘을 쓰지 못했다. 아프로디테는 그들을 제외한 신과 인간에게 자신의 힘을 펼쳤다. 누구든 사랑을 하찮게 여기거나 여신을 모욕하면, 그 무시는 곧 더 거센 욕망과 비극으로 돌아왔다.
창과 활과 화로 앞에서 사랑을 거부하는 세 여신
2.4 헤파이스토스의 아내가 되다
아프로디테가 올림포스에 자리를 잡은 뒤 그는 불과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의 아내가 되었다. 두 신이 어떤 까닭으로 혼인했는지는 이야기마다 달랐지만, 시인들은 가장 아름다운 여신과 다리가 불편한 대장장이 신을 부부로 노래했다. 헤파이스토스는 불과 금속을 다루는 솜씨로 황금 궁전과 움직이는 시종, 신들도 감탄할 장신구를 만들어 냈다.
아프로디테가 지닌 신비로운 띠에는 사랑과 욕망, 달콤한 말과 마음을 흐리는 유혹이 모두 담겨 있었다. 트로이 전쟁 때 헤라는 제우스의 마음을 사로잡아 전쟁에서 눈을 돌리게 하려고 아프로디테를 찾아가 그 띠를 빌렸다. 아프로디테가 허리에 띠를 두르면 본래 아름다운 모습에 누구도 거부하기 어려운 매혹이 더해져, 그를 마주한 이들은 쉽게 시선을 돌리지 못했다.
그러나 헤파이스토스의 뛰어난 솜씨와 화려한 궁전도 아프로디테의 마음을 붙들지는 못했다. 대장간의 불꽃과 망치 소리로 가득한 남편의 집에서 여신은 전쟁터를 거침없이 달리는 아레스를 바라보았다. 거칠고 눈부신 전쟁의 신 역시 아프로디테에게 강하게 끌렸다. 두 신은 헤파이스토스가 대장간을 비우는 시간을 기다리며 누구에게도 들켜서는 안 될 비밀스러운 사랑을 시작했다.
헤파이스토스의 궁전에서 아레스를 바라보는 아프로디테
3.1 보이지 않는 그물에 붙잡힌 두 신
아레스는 헤파이스토스가 집을 비울 때마다 아프로디테의 방을 찾았다. 두 신의 사랑에서는 공포의 신 포보스와 두려움의 신 데이모스, 훗날 카드모스와 혼인하여 테바이 왕가의 어머니가 되는 하르모니아가 태어났다고 전해졌다. 그러나 하늘에서 세상을 굽어보는 태양신 헬리오스가 두 사람의 밀회를 발견하여 헤파이스토스에게 알렸다.
헤파이스토스는 분노를 드러내는 대신 대장간으로 들어가 누구도 끊을 수 없고 눈으로도 보기 어려운 가느다란 그물을 만들었다. 그는 그물을 침상 위에 설치한 뒤 렘노스섬으로 떠나는 척했다. 아레스와 아프로디테가 다시 만나 침상에 눕자 숨겨 두었던 그물이 사방에서 내려와 두 신을 단단히 묶었다. 힘센 아레스도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정교한 사슬에서는 빠져나오지 못했다.
헤파이스토스는 올림포스의 신들을 불러 배신의 현장을 보여 주며 제우스에게 자신이 바친 혼인 예물을 돌려 달라고 요구했다. 여신들은 부끄러워 오지 않았지만 모여든 남신들은 붙잡힌 두 신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포세이돈이 아레스의 배상을 보증한 뒤에야 헤파이스토스는 그물을 풀었다. 아레스는 트라키아로 달아났고, 아프로디테는 키프로스로 향하여 카리테스의 도움으로 몸을 씻고 다시 모습을 단장했다.
보이지 않는 그물에 붙잡힌 아레스와 아프로디테
3.2 피그말리온의 소원을 들어주다
키프로스에는 뛰어난 조각가 피그말리온이 살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과 거리를 둔 채 혼자 작업실에 머물며 자신이 꿈꾸던 여인의 모습을 눈처럼 흰 상아에 새겼다. 조각이 완성되자 그 모습은 살아 있는 사람보다도 아름다웠다. 피그말리온은 조각상에 옷과 장신구를 선물하고 말을 걸면서도 차가운 상아가 대답할 수 없다는 사실에 괴로워했다.
아프로디테의 축제가 열리자 피그말리온은 제단 앞에서 향을 피우고 제물을 바쳤다. 그는 자신의 조각상을 사람으로 만들어 달라고 직접 말하지 못하고, 상아의 여인과 닮은 아내를 얻게 해 달라고 빌었다. 그의 말에 숨은 소망을 알아본 아프로디테는 제단의 불꽃을 세 번 높이 타오르게 하여 기도를 받아들였다는 뜻을 보였다.
집으로 돌아온 피그말리온이 조각상의 입술에 입을 맞추자 차가운 상아에 따뜻한 기운이 번졌다. 손가락으로 누른 피부가 부드럽게 들어갔다가 다시 돌아왔고, 여인은 눈을 떠 자신을 바라보는 조각가를 보았다. 후대에 갈라테이아라 불린 여인은 피그말리온과 혼인했다. 아프로디테는 직접 혼례에 찾아와 두 사람을 축복했으며,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파포스의 이름은 훗날 여신의 성소가 세워진 도시에 남았다.
따뜻한 인간으로 깨어나는 피그말리온의 상아 여인
3.3 히포메네스에게 황금 사과를 주다
빠른 발로 이름난 아탈란테는 자신과의 달리기에서 이기는 남자와만 혼인하겠다고 선언했다. 패한 구혼자에게는 죽음이 기다렸지만 젊은 히포메네스는 아탈란테를 본 순간 경주에 나서기로 했다. 그는 경기 전에 아프로디테에게 간절히 기도했고, 여신은 키프로스의 성스러운 나무에서 가져온 황금 사과 세 개를 건네주었다.
경주가 시작되자 아탈란테는 곧 히포메네스를 앞질렀다. 히포메네스가 첫 번째 황금 사과를 길옆에 던지자 빛나는 열매를 본 아탈란테가 몸을 돌려 그것을 주웠다. 두 번째 사과도 그의 발을 늦추었고, 결승을 앞두고 멀리 던진 세 번째 사과가 마지막 시간을 빼앗았다. 히포메네스는 간발의 차이로 먼저 결승선을 넘어 아탈란테와 혼인했다.
그러나 승리와 사랑을 얻은 히포메네스는 아프로디테에게 마땅히 바쳐야 할 감사의 제물을 잊었다. 모욕당한 여신은 두 사람에게 갑작스러운 욕망을 일으켜 신성한 장소에서 서로를 탐하게 했다. 신들의 어머니 퀴벨레는 성소를 더럽힌 두 사람을 사자로 바꾸어 자신의 수레에 매었다. 사랑의 여신이 준 선물을 기억하지 않은 대가는 두 사람이 얻은 행복만큼이나 컸다.
황금 사과를 향해 몸을 돌리는 아탈란테와 히포메네스
3.4 히폴뤼토스를 파멸시키다
테세우스의 아들 히폴뤼토스는 사냥과 순결을 사랑하여 아르테미스만을 섬겼다. 그는 사랑과 욕망을 수치스럽게 여기며 아프로디테의 제단을 지나칠 때에도 경의를 표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돌아와야 할 숭배를 거부당한 아프로디테는 그의 완고한 마음을 직접 꺾는 대신, 계모 파이드라가 의붓아들을 사랑하도록 만들어 그를 파멸시키기로 했다.
파이드라는 이루어질 수 없는 욕망을 숨기며 음식을 끊었지만, 비밀을 알아낸 유모가 히폴뤼토스에게 그 마음을 전했다. 히폴뤼토스가 두려움과 분노로 거절하자 파이드라는 수치심과 절망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파이드라는 죽기 전에 히폴뤼토스가 자신을 욕보였다는 글을 남겼고, 아내의 말을 믿은 테세우스는 결백한 아들을 저주했다.
테세우스가 포세이돈에게 받은 소원으로 아들의 죽음을 빌자 바다에서 거대한 황소가 솟아올랐다. 놀란 말들이 날뛰면서 전차가 뒤집혔고, 고삐에 얽힌 히폴뤼토스는 바위에 부딪혀 치명상을 입었다. 아르테미스가 나타나 진실을 밝혔지만 이미 늦었다. 히폴뤼토스는 아버지를 용서하고 숨을 거두었고, 아르테미스는 언젠가 아프로디테가 사랑하는 인간을 쓰러뜨려 그의 죽음에 보답하겠다고 맹세했다.
바다 황소에 놀란 말들과 뒤집히는 히폴뤼토스의 전차
4.1 아도니스를 사랑하고 잃다
키프로스 왕가의 여인 뮈라는 금지된 욕망에 사로잡혀 아버지와 관계를 맺었다. 뒤늦게 진실을 알게 된 아버지가 칼을 들고 쫓아오자 뮈라는 달아나며 신들에게 자신을 숨겨 달라고 간청했다. 그의 몸은 향기로운 몰약나무로 변했고, 시간이 흐른 뒤 나무의 껍질이 갈라지면서 그 안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아기 아도니스가 태어났다.
아프로디테는 아이의 아름다움에 놀라 그를 몰래 보호하기로 했다. 여신은 아도니스를 작은 궤에 숨겨 명계의 왕비 페르세포네에게 맡겼다. 궤 안의 아이를 본 페르세포네도 그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겨 아도니스를 명계에서 길렀다. 그가 눈부신 청년으로 자라자 두 여신은 모두 그를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결국 아도니스는 한 해의 일부를 페르세포네와 명계에서, 나머지는 아프로디테와 지상에서 보내게 되었다.
아프로디테와 지내는 동안 아도니스는 산과 들을 누비는 사냥꾼이 되었다. 여신은 사자나 멧돼지처럼 사나운 짐승을 뒤쫓지 말라고 거듭 경고했지만, 아도니스는 위험한 사냥에 나섰다가 멧돼지의 엄니에 찔렸다. 아프로디테가 달려왔을 때 그의 생명은 이미 피와 함께 사라지고 있었다. 여신이 피 위에 향기로운 즙을 뿌리자 붉은 아네모네가 피어났고, 사람들은 해마다 그의 죽음과 여신의 슬픔을 기렸다.
죽어 가는 아도니스를 품에 안은 아프로디테
4.2 인간 안키세스를 찾아가다
아프로디테가 신들을 인간과 사랑에 빠뜨린 일을 자랑하자 제우스는 그에게도 같은 운명을 내렸다. 여신은 트로이 왕가의 혈통을 이은 안키세스가 이다산에서 소를 돌보는 모습을 보고 인간 청년에게 강한 욕망을 느꼈다. 아프로디테는 키프로스의 신전으로 가서 몸을 씻고 향유를 바른 뒤, 눈부신 신의 모습을 감추고 아름다운 인간 왕녀처럼 꾸몄다.
안키세스 앞에 선 아프로디테는 자신이 프리기아 왕 오트레우스의 딸이며 헤르메스에게 이끌려 이다산에 왔다고 말했다. 안키세스는 처음에는 눈앞의 여인이 여신이 아닐까 두려워했지만, 아프로디테의 말을 믿고 사랑을 나누었다. 날이 밝자 아프로디테는 천장에 닿을 만큼 찬란한 본모습을 드러냈다. 안키세스는 신과 관계한 인간이 벌을 받을까 두려워 무릎을 꿇었다.
아프로디테는 두 사람 사이에서 아이네이아스라는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인간과 사랑을 나눈 일로 끔찍한 슬픔을 겪었기에 그런 이름을 붙였으며, 산의 님프들이 다섯 살까지 아이를 기른 뒤 아버지에게 데려다줄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네이아스와 그 후손들은 훗날 트로이 사람들을 다스릴 운명이었다. 다만 어머니가 여신임을 누구에게도 자랑하지 말라고 엄하게 경고했다. 후대에는 안키세스가 약속을 어기고 비밀을 말하여 제우스의 벼락을 맞았다는 이야기도 이어졌다.
본모습을 드러낸 아프로디테 앞에 무릎 꿇은 안키세스
4.3 파리스에게 황금 사과를 받다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새긴 황금 사과를 던졌다. 헤라와 아테나, 아프로디테가 동시에 그것을 집으려 하자 제우스는 직접 판정하기를 피했다. 헤르메스는 세 여신을 이다산으로 데려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선택을 맡겼다.
헤라는 파리스에게 넓은 왕국과 지배권을, 아테나는 전쟁의 승리와 뛰어난 지혜를 약속했다.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을 나누게 해 주겠다고 속삭였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에게 황금 사과를 건넸다. 여신은 약속대로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가 파리스에게 마음을 열도록 도왔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인도를 받아 스파르타를 찾아가 손님으로 환대받았고, 메넬라오스가 자리를 비운 사이 헬레네와 함께 트로이로 떠났다. 아프로디테가 맺어 준 사랑은 두 사람에게는 달콤했지만, 왕의 명예와 맹세로 묶인 그리스 영웅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헬레네의 구혼자들이 과거의 맹세에 따라 하나둘 모여들었다. 그리스의 함대가 헬레네를 되찾으러 출항하면서 황금 사과를 얻기 위한 여신들의 다툼은 십 년 전쟁으로 번졌다.
아프로디테에게 황금 사과를 건네는 파리스
4.4 아이네이아스의 길을 지키다
전쟁이 시작되자 아프로디테는 황금 사과를 준 파리스와 자신의 아들 아이네이아스가 있는 트로이 편에 섰다. 파리스가 메넬라오스와의 결투에서 패하여 끌려갈 위기에 놓이자 여신은 짙은 안개로 그를 감싸 성안으로 옮겼다. 헬레네가 파리스에게 돌아가기를 거부하자 아프로디테는 자신의 보호를 거둘 수 있다고 위협하여 두 사람을 다시 만나게 했다.
아이네이아스가 디오메데스에게 쓰러질 위기에 놓였을 때에는 직접 전장으로 내려가 아들을 팔로 감쌌다. 그러나 디오메데스의 창이 아프로디테의 손목을 찢자 신의 피가 흘렀고, 놀란 여신은 아들을 놓치고 올림포스로 달아났다. 아폴론이 아이네이아스를 구하는 동안 아프로디테는 어머니 디오네의 품에서 상처를 치료받았다.
아프로디테도 트로이의 멸망을 막지는 못했다. 성벽이 무너지고 불길이 왕궁을 삼키자 아이네이아스는 늙은 아버지 안키세스를 등에 업고 어린 아들 아스카니오스의 손을 잡은 채 도시를 빠져나왔다. 후대의 이야기에서 여신은 그가 그리스군의 칼날과 불길을 피해 달아날 길을 열어 주었다. 트로이는 사라졌지만 아프로디테의 아들에게 이어진 혈통은 바다 건너 새로운 나라를 향해 나아갔다.
전장에서 아이네이아스를 감싸 구하는 아프로디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