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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메돈 – 신들과의 약속을 저버린 왕
트로이를 세운 일로스의 아들 라오메돈은 포세이돈과 아폴론에게 성벽과 가축을 맡기고도 약속한 품삯을 주지 않았다. 분노한 신들이 역병과 바다 괴물을 보내자 그는 딸 헤시오네를 제물로 내놓았고, 그녀를 구한 헤라클레스에게도 신마를 주겠다는 약속을 저버렸다. 마침내 헤라클레스의 군대가 트로이를 함락하고 라오메돈을 쓰러뜨렸으며, 살아남은 왕자 포다르케스는 프리아모스라는 이름으로 폐허가 된 트로이의 왕위를 이었다.
1.1 일로스의 왕위를 잇다
다르다노스의 후손 트로스는 스카만드로스강과 이다산 사이의 넓은 땅을 다스렸고, 그 땅은 그의 이름을 따라 트로아스라 불렸다. 트로스의 아들 일로스는 신탁을 따라 언덕 위에 새로운 도시 일리오스를 세웠다. 훗날 트로이라 불릴 이 도시는 비옥한 평야와 헬레스폰토스로 이어지는 바닷길을 함께 품고 있었다.
일로스가 세상을 떠나자 아들 라오메돈이 왕위를 이었다. 아직 도시는 크고 견고한 성벽으로 완전히 둘러싸이지 않았지만, 상인과 목동들이 모여들고 들판에는 소와 말이 가득했다. 라오메돈은 아버지가 세운 도시를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국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높은 성루와 끊어지지 않는 성벽은 그 야심을 드러낼 가장 분명한 표지였다.
왕에게는 티토노스와 람포스, 클리티오스, 히케타온, 포다르케스 같은 아들들과 헤시오네를 비롯한 딸들이 있었다. 왕실 마구간에는 제우스가 가뉘메데스를 데려간 뒤 그의 아버지 트로스에게 보상으로 준 신마들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물 위를 달릴 만큼 빠른 그 말들은 왕가의 가장 귀한 보물이었고, 라오메돈은 그것을 자신의 권세를 증명하는 재산으로 여겼다.
트로이 성루에서 신마와 도시를 바라보는 라오메돈
1.2 인간을 섬기게 된 두 신
어느 날 포세이돈과 아폴론이 제우스의 명을 받고 올림포스를 떠나 트로이로 내려왔다. 일부 후대 전승에서는 두 신이 제우스에게 맞섰다가 벌을 받은 것이라고 전하지만, 그들에게 내려진 일은 분명했다. 인간의 왕 라오메돈 밑에서 한 해 동안 일하고 정해진 품삯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두 신은 평범한 일꾼의 모습을 하고 왕 앞에 섰다.
라오메돈은 그들에게 도시를 지키는 일과 왕실의 가축을 돌보는 일을 맡겼다. 포세이돈은 일리오스의 언덕을 두르는 성벽을 세우기로 했고, 아폴론은 숲이 우거진 이다산 비탈에서 왕의 소 떼를 치기로 했다. 왕은 한 해의 일이 끝나면 그 수고에 맞는 품삯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두 일꾼은 값을 더 요구하지도, 왕의 명령에 거스르지도 않았다.
포세이돈이 땅을 고르면 거대한 돌들이 빈틈없이 맞물렸고, 아폴론이 수금을 연주하며 지나가면 소 떼가 온순하게 그 뒤를 따랐다. 가축은 병들지 않고 불어났으며 성벽은 하루가 다르게 높아졌다. 라오메돈은 눈앞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일을 보면서도 약속의 무게를 헤아리지 않았다. 그는 품삯을 치러야 할 두 일꾼보다 그들이 만들어 줄 부와 성벽만 바라보았다.
인간의 모습으로 왕 앞에 선 포세이돈과 아폴론
1.3 무너지지 않을 성벽
포세이돈은 거대한 돌을 끌어올려 언덕 둘레에 높고 넓은 성벽을 쌓았다. 돌과 돌 사이에는 칼날 하나 들어갈 틈도 없었고, 성문 양쪽에는 높은 망루가 솟았다. 아폴론이 돌보는 왕의 소 떼도 이다산의 풀을 먹으며 번성했다. 한 해가 저물 무렵, 일리오스는 어느 군대도 넘기 어려운 요새로 변해 있었다.
또 다른 전승에서는 아이기나의 왕 아이아코스가 두 신의 부름을 받아 성벽 일부를 함께 쌓았다고 한다. 공사가 끝나자 검은 뱀 세 마리가 성벽으로 달려들었다. 두 마리는 신들이 세운 곳을 오르지 못하고 떨어졌지만, 한 마리는 아이아코스가 쌓은 부분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아폴론은 그 광경을 보고 인간의 손으로 쌓은 부분이 언젠가 적에게 길을 열어 주리라고 예언했다. 아이아코스의 아들 텔라몬과 먼 후손 네오프톨레모스는 훗날 서로 다른 시대에 트로이의 두 차례 함락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라오메돈은 불길한 징조보다 완성된 성벽의 위용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는 성루에 올라 스카만드로스 평야와 바다를 내려다보며 이제 자신의 도시는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으리라 믿었다. 성벽을 만든 손이 신의 것이고, 인간이 쌓은 작은 부분에는 운명의 틈이 남았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왕의 눈에는 약속을 지켜야 할 날이 아니라 자신의 힘을 자랑할 날만 다가오고 있었다.
완성된 트로이 성벽을 오르는 세 마리의 검은 뱀
1.4 품삯을 거부한 왕
약속한 한 해가 끝나자 포세이돈과 아폴론은 왕궁으로 가서 품삯을 요구했다. 성벽은 완성되었고 가축도 풍성하게 불어났으므로 라오메돈이 대가를 미룰 까닭은 없었다. 그러나 왕은 창고를 열지 않았다. 그는 처음부터 그런 값을 약속한 적이 없다는 듯 두 일꾼을 모욕하고, 아무것도 주지 않은 채 트로이에서 내쫓으려 했다.
두 신이 약속을 상기시키자 라오메돈의 말은 더욱 사나워졌다. 왕은 그들의 손발을 묶어 먼 섬에 노예로 팔아 버리고, 귀까지 잘라 버리겠다고 위협했다. 자신의 성벽과 병사들이 두 낯선 일꾼보다 강하다고 믿은 것이다. 포세이돈과 아폴론은 더 다투지 않았지만, 왕이 던진 말과 지키지 않은 맹세를 하나도 잊지 않았다.
라오메돈은 두 낯선 일꾼을 빈손으로 내쫓았다고 생각했다. 왕은 오히려 자신이 그들을 굴복시켰다고 믿었다. 포세이돈은 자신이 세운 성벽을 차갑게 바라본 뒤 바다로 돌아갔고, 아폴론은 활을 들고 이다산을 떠났다. 왕이 모욕하고 위협한 이들은 아무 힘도 없는 인간이 아니었다. 두 신은 약속을 저버린 라오메돈에게 반드시 값을 치르게 하겠다는 분노를 품고 트로이를 등졌다.
완성된 성벽 앞에서 두 신의 품삯을 거부하는 라오메돈
2.1 트로이에 닥친 재앙
신들이 떠난 뒤 트로이에는 전에 없던 재앙이 시작되었다. 아폴론이 보낸 역병이 성 안과 들판을 휩쓸어 사람들이 열병으로 쓰러졌고, 왕의 가축도 떼 지어 죽어 갔다. 시장은 텅 비고 제단의 불마저 희미해졌다. 라오메돈이 자랑하던 성벽은 바깥의 적을 막을 수 있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병까지 가두어 둘 수는 없었다.
이어 포세이돈이 바다를 뒤흔들자 거센 물결이 해안을 넘어 스카만드로스 평야로 밀려들었다. 물길을 타고 올라온 거대한 바다 괴물은 어부와 목동을 덮치고 가축과 사람을 가리지 않고 삼켰다. 사람들은 높은 성벽 안으로 달아났지만, 괴물은 날마다 바다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들판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트로이의 풍요는 순식간에 굶주림과 공포로 바뀌었다.
라오메돈은 제물을 바치고 신들의 뜻을 물었으나 재앙은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신탁은 왕이 저버린 약속의 대가를 밝히며, 바다 괴물에게 왕녀 헤시오네를 내놓아야 나라가 구원받을 것이라고 알렸다. 성 안의 백성들은 왕궁 앞으로 몰려와 신탁을 따르라고 외쳤다. 신들에게 주지 않은 품삯은 이제 금과 가축이 아니라 왕 자신의 딸을 요구하고 있었다.
역병과 거대한 바다 괴물에 휩싸인 트로이
2.2 바위에 묶인 헤시오네
라오메돈은 왕궁의 문을 닫고 다른 길을 찾으려 했다. 더 많은 소를 잡아 제사를 올리고 먼 지방의 예언자들을 불렀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헤시오네가 바다 괴물의 먹이가 되어야 역병과 홍수가 끝난다는 것이었다. 죽어 가는 백성들의 탄원과 병사들의 동요가 커지자 왕은 마침내 딸을 내어 주기로 했다.
헤시오네는 화려한 왕녀의 옷 대신 아무 장식도 없는 소박한 옷을 입고 해안으로 끌려갔다. 제관과 병사들은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에 굵은 사슬로 그녀의 몸을 묶었다. 멀리 성벽 위에는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가득했지만 누구도 괴물이 나타나는 물가로 내려오지 못했다. 왕녀는 자신을 두고 물러가는 아버지의 행렬을 바라보다가 홀로 검은 바다를 마주했다.
해가 기울수록 물결은 높아지고 바다 깊은 곳에서 짐승의 울음이 들려왔다. 헤시오네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왕가가 저지른 잘못 때문에 백성이 고통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약속을 어긴 사람은 아버지였고, 그 값을 치르도록 묶인 사람은 딸이었다. 그녀의 눈앞에서 파도가 갈라지고 괴물의 검은 등이 솟기 시작했을 때, 해안을 지나던 낯선 배 한 척이 방향을 돌렸다.
거센 파도 앞 바위에 사슬로 묶인 헤시오네
2.3 신마를 약속받은 헤라클레스
배에서 내린 이는 아마존의 땅에서 돌아오던 헤라클레스와 그의 동료들이었다. 헤라클레스는 바위에 묶인 헤시오네를 발견하고 사정을 물었다. 왕녀와 트로이인들은 신들의 분노와 바다 괴물에 관한 일을 숨김없이 말했다. 그는 괴물과 싸우겠다고 했지만, 먼저 라오메돈이 구원의 대가를 분명히 약속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헤라클레스가 원한 것은 왕실 마구간의 신마들이었다. 그 말들은 제우스가 아름다운 가뉘메데스를 올림포스로 데려간 뒤, 슬픔에 빠진 트로스에게 보상으로 보낸 것이었다. 늙지도 지치지도 않는 그 신마들을 라오메돈은 무엇보다 아꼈다. 그러나 딸과 나라가 한꺼번에 위태로운 상황에서 왕은 헤라클레스가 괴물을 죽이면 그 말들을 넘겨주겠다고 맹세했다.
왕의 약속은 트로이 사람들과 헤시오네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루어졌다. 헤라클레스는 동료들에게 배를 지키게 하고 활과 칼, 곤봉을 챙겨 해안으로 향했다. 라오메돈은 높은 곳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영웅이 괴물에게 죽으면 말을 내줄 필요가 없고 살아남으면 그때 다시 생각하면 된다고 여겼다. 첫 번째 맹세를 저버려 딸을 잃을 뻔한 왕은 또 하나의 약속을 가볍게 입에 올렸다.
헤시오네 구원의 대가로 신마를 약속하는 라오메돈
2.4 바다 괴물을 쓰러뜨리다
포세이돈의 괴물이 물결을 가르며 해안으로 다가오자 헤라클레스는 바위 앞을 막아섰다. 그는 괴물의 벌어진 입을 향해 화살을 잇달아 쏘고, 파도가 몸을 덮쳐도 물러서지 않았다. 상처 입은 괴물이 꼬리로 바위를 내리치자 돌 조각과 물보라가 사방으로 튀었다. 헤시오네의 몸을 묶은 사슬도 충격에 흔들렸지만 헤라클레스는 괴물의 시선을 자신에게 붙들어 두었다.
괴물이 얕은 물로 몸을 밀어 올린 순간, 헤라클레스는 곤봉과 칼을 들고 달려들었다. 긴 싸움 끝에 영웅의 마지막 공격이 괴물의 숨통을 끊었고, 거대한 몸이 파도 사이로 무너졌다. 바다는 한동안 검게 요동쳤으나 곧 물결이 잦아들었다. 헤라클레스는 바위로 올라가 헤시오네의 사슬을 끊고 지친 왕녀를 두 팔로 붙들어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성벽 위에서 싸움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환호하며 해안으로 달려왔다. 헤시오네는 죽음에서 돌아왔고, 괴물에게 막혔던 들판과 바닷길도 다시 열리게 되었다. 라오메돈은 영웅을 왕궁으로 맞아들이며 큰 잔치를 열었지만, 마구간의 신마를 넘겨주라는 말에는 대답을 미뤘다. 축제가 끝나자 구원의 기쁨보다 귀한 말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왕의 마음을 차지했다.
바다 괴물을 쓰러뜨리고 헤시오네를 구하는 헤라클레스
3.1 두 번째 약속을 저버리다
헤라클레스가 약속한 신마들을 요구하자 라오메돈은 태도를 바꾸었다. 그는 바다 괴물을 죽인 일이 왕실의 가장 귀한 보물을 내줄 만큼 큰 공은 아니라고 깎아내렸다. 다른 말이나 금을 줄 수는 있어도 신마만은 넘길 수 없다고 버텼다. 헤라클레스가 백성들 앞에서 맺은 맹세를 상기시키자, 왕은 병사들을 불러 영웅과 동료들을 왕궁 밖으로 몰아내려 했다.
헤시오네는 자신을 죽음에서 구한 사람에게 약속한 대가를 주어야 한다고 아버지에게 호소했다. 한 전승에 따르면 포다르케스도 신들을 속인 뒤 나라에 어떤 재앙이 닥쳤는지 잊지 말라며 신마를 돌려주라고 간언했다. 그러나 라오메돈은 자식들의 말을 반역처럼 받아들였다. 그는 신들이 세운 견고한 성벽 안에 있는 한, 헤라클레스도 자신과 트로이를 해치지 못하리라 믿었다.
헤라클레스는 당장 성을 공격할 병력과 배가 충분하지 않았으므로 분노를 억누르고 해안으로 물러났다. 그는 언젠가 군대를 이끌고 돌아와 거짓 맹세의 값을 반드시 받겠다고 선언한 뒤 동료들과 함께 트로이를 떠났다. 라오메돈은 멀어지는 배를 바라보며 위협이 끝났다고 웃었지만, 헤시오네와 포다르케스는 그것이 잠시 미뤄진 심판임을 알고 있었다. 신들에게 한 약속을 저버려 딸을 제물로 내놓았던 왕은 이제 영웅에게 한 약속까지 스스로 끊어 버렸다.
신마 지급을 거부하며 헤라클레스를 내쫓는 라오메돈
3.2 트로이로 돌아온 헤라클레스
세월이 흘러 열두 과업과 옴팔레 밑에서의 복무를 마치자 헤라클레스는 트로이에서 당한 모욕을 갚을 준비를 했다. 그는 그리스의 뛰어난 전사들을 불러 모았고, 아이아코스의 아들 텔라몬과 예언자 집안의 오이클레스도 원정에 합류했다. 쉰 명의 노잡이를 태운 배 열여덟 척이 바다를 건너 트로아스 해안에 닿았다. 라오메돈이 잊었다고 여긴 맹세가 군대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헤라클레스는 오이클레스에게 배를 지키게 하고 텔라몬을 비롯한 전사들과 함께 성을 향해 진군했다. 라오메돈은 적이 많지 않다는 보고를 받자 성벽 안에서 기다리지 않고 병력을 이끌고 해안으로 나갔다. 그는 그리스군의 배를 불태워 퇴로를 끊으면 전쟁을 단번에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으로 오이클레스가 쓰러지고 선박을 지키던 군사들이 밀려났다.
그러나 소식을 들은 헤라클레스가 돌아오자 전세가 뒤집혔다. 라오메돈의 군대는 영웅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성 안으로 물러났고, 그리스군은 뒤따라 트로이를 포위했다. 바다에는 그들의 배가 남고 육지에는 창과 방패가 성문을 에워쌌다. 한때 라오메돈을 외부의 적에게서 지켜 주던 신의 성벽은 이제 약속을 받아 내러 온 군대를 왕과 함께 가두는 벽이 되었다.
열여덟 척의 배를 이끌고 돌아온 헤라클레스
3.3 성벽을 넘은 텔라몬
헤라클레스의 군대는 포세이돈이 세운 성벽 앞에서 여러 차례 공격을 되풀이했다. 성문은 쉽게 부서지지 않았고 높은 성루에서는 트로이군의 화살과 돌이 쏟아졌다. 그때 텔라몬은 성벽 가운데 다른 곳보다 약한 부분을 찾아냈다. 그의 아버지 아이아코스가 인간의 손으로 쌓았다고 전해지는 바로 그곳이었다. 텔라몬은 방패로 몸을 가리며 올라가 가장 먼저 성 안으로 뛰어들었다.
뒤따라 벽을 넘은 헤라클레스는 자신보다 먼저 입성한 텔라몬을 보고 순간 질투와 분노에 사로잡혔다. 영웅이 칼을 뽑는 것을 본 텔라몬은 재빨리 주변의 돌을 쌓기 시작했다. 무엇을 하느냐는 물음에 그는 ‘승리자 헤라클레스’에게 바칠 제단을 세우고 있다고 답했다. 그 기지에 마음이 풀린 헤라클레스는 칼을 거두고 텔라몬과 함께 왕궁으로 돌진했다.
성 안의 전투는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라오메돈은 끝까지 무기를 들고 맞섰지만 헤라클레스의 화살을 피하지 못했고, 성 안에 남은 아들들도 포다르케스를 제외하고 모두 쓰러졌다. 왕을 잃은 병사들이 무너지자 성문이 열리고, 신들이 세운 트로이는 처음으로 적의 손에 함락되었다. 어느 군대도 넘지 못하리라 믿었던 성벽은 견고했지만, 그 성벽을 얻기 위해 저버린 약속까지 왕을 지켜 주지는 못했다.
아이아코스가 쌓은 성벽을 가장 먼저 넘는 텔라몬
3.4 포다르케스가 프리아모스가 되다
트로이가 함락되자 성 안에 남아 있던 라오메돈의 아들들 가운데 포다르케스만 목숨을 건졌고, 헤시오네도 포로로 살아남았다. 헤라클레스는 가장 먼저 성 안으로 들어온 공을 인정하여 헤시오네를 전리품으로 텔라몬에게 주고, 포로들 가운데 한 사람을 골라 데려가도록 허락했다. 헤시오네는 망설이지 않고 동생 포다르케스를 가리켰다. 무너진 왕가에서 그녀가 구할 수 있는 마지막 혈육이었다.
헤라클레스는 포다르케스도 먼저 포로의 몸값을 치러야 자유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헤시오네는 머리에 두르고 있던 황금빛 베일을 벗어 동생의 값으로 내놓았다. 그렇게 값을 치르고 구원받은 포다르케스는 ‘사들인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프리아모스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한때 바위에 묶여 구원을 기다렸던 헤시오네가 이번에는 자신의 손으로 동생을 죽음과 노예의 운명에서 건져 냈다.
한 전승에 따르면 헤라클레스는 포다르케스가 일찍이 아버지에게 신마를 돌려주라고 간언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에게 트로이의 왕국을 맡겼다. 헤시오네는 텔라몬과 함께 바다를 건너가 훗날 궁수 테우크로스를 낳았고, 테우크로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그리스군으로 싸우게 된다. 프리아모스는 폐허가 된 도시를 다시 일으켰지만, 아버지가 저버린 약속에서 시작된 트로이 왕가의 운명까지 벗어나지는 못했다.
황금빛 베일로 포다르케스의 몸값을 치르는 헤시오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