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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론 – 태양과 예언의 신
델로스의 종려나무 아래에서 태어난 아폴론은 황금 활을 들고 델포이로 향해 피톤을 쓰러뜨리고 신탁의 주인이 된다. 그는 질병을 내리면서도 치유하고, 리라와 예언으로 신과 인간의 길을 밝힌다. 그러나 다프네와 코로니스, 히아킨토스를 향한 사랑은 상실로 끝나고, 아들 아스클레피오스의 죽음은 그를 인간 왕의 목동으로 내려가게 한다. 트로이 전쟁에서는 활과 역병으로 운명에 개입했으며, 후대에는 헬리오스와 동일시되어 태양의 신으로도 기억된다.
1.1 헤라에게 쫓긴 레토
티탄 코이오스와 포이베의 딸 레토는 제우스의 사랑을 받아 두 아이를 잉태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헤라는 분노하여 하늘 아래 어떤 땅도 레토에게 출산할 자리를 내주지 못하게 했다. 도시와 섬들은 헤라의 뜻을 거역하면 두려운 벌을 받을 것을 알았기에 지쳐 찾아온 레토를 보고도 문을 닫았다. 출산의 때가 가까워질수록 레토의 걸음은 무거워지고 고통은 깊어졌다.
레토는 아티카와 에우보이아, 테살리아의 산과 여러 섬을 떠돌았지만 몸을 누일 곳조차 얻지 못했다. 마침내 에게해를 떠돌던 작고 메마른 섬 델로스에 이르렀다. 델로스는 본래 제우스를 피해 메추라기로 변해 바다에 몸을 던진 별의 여신 아스테리아였으며, 땅속에 뿌리를 내리지 못해 파도와 바람을 따라 움직였다고 한다.
레토는 델로스에 자신의 아들이 태어나면 찬란한 신전을 세우고 수많은 사람이 제물을 들고 찾아오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황량한 섬은 강대한 신이 자신을 버리고 다른 땅을 택할까 두려워 맹세를 요구했다. 레토가 땅과 하늘, 스틱스강을 걸고 약속하자 델로스는 마침내 도망자를 품었고, 레토는 종려나무 곁에서 출산의 순간을 기다렸다.
떠도는 델로스섬에 도착한 지친 레토
1.2 떠도는 섬에서 태어나다
레토가 델로스에 도착했지만 출산의 여신 에일레이티이아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헤라는 그녀를 황금 구름이 둘러싼 올림포스에 붙잡아 두었고, 레토는 아흐레 동안이나 고통에 시달렸다. 곁을 지키던 여신들은 헤라 몰래 이리스를 보내 아홉 큐빗 길이의 아름다운 목걸이를 약속하고 에일레이티이아를 데려오게 했다.
에일레이티이아가 섬에 발을 디디자 레토는 종려나무를 붙잡고 풀밭에 무릎을 꿇었다. 후대 전승에서는 아르테미스가 먼저 태어나 어머니가 쌍둥이 동생을 낳는 일을 도왔다고 한다. 마침내 아폴론이 세상에 나오자 땅이 기쁨으로 웃고 델로스에는 황금빛이 번졌다. 모여 있던 여신들은 아기를 맑은 물로 씻기고 흰 천과 황금 띠로 감쌌다.
테미스가 암브로시아와 넥타르를 아기의 입에 넣어 주자 아폴론은 곧 포대기를 풀고 일어났다. 그는 굽은 활과 리라를 사랑하고 제우스의 어김없는 뜻을 인간에게 전하겠다고 선언했다. 레토는 눈부신 아들을 품에 안고 긴 고통을 잊었다. 백조들은 섬의 하늘을 일곱 차례 돌며 탄생을 알렸고, 떠돌던 델로스는 바다에 굳게 자리를 잡았다. 황량했던 섬에는 황금빛 꽃이 피어나고 훗날 순례자들이 찾는 성지가 되었다.
종려나무 아래 황금빛 속에서 태어난 아폴론
1.3 황금 활을 든 어린 신
아폴론은 태어난 지 오래되지 않아도 다른 신들처럼 눈부신 청년의 모습을 갖추었다. 황금빛 활과 화살을 든 그는 먼 곳의 표적까지 단숨에 꿰뚫었다. 활시위를 당기면 섬의 짐승들이 몸을 낮추었고, 하늘을 날던 새들마저 젊은 궁수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날갯짓을 멈추었다. 그의 화살은 멀리 떨어진 적에게 질병과 죽음을 내리는 힘도 지니고 있었다. 레토는 더 이상 아들을 뒤쫓을 존재가 없음을 알고 비로소 긴 방랑의 두려움에서 벗어났다.
델로스에 머무르던 아폴론은 제우스의 뜻을 인간에게 전할 신탁소를 세우겠다고 선언했다. 한 전승에서는 제우스가 백조들이 끄는 수레를 주어 그를 델포이로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아폴론은 수레의 방향을 북쪽으로 돌려, 겨울도 늙음도 모른다는 휘페르보레오이의 땅으로 먼저 날아갔다.
휘페르보레오이 사람들은 노래와 춤, 월계수와 향기로운 제물로 젊은 신을 맞이했다. 아폴론은 그들 가운데 한 해를 머물며 신탁을 내렸고, 봄이 돌아오자 다시 백조의 수레에 올랐다. 그는 그리스의 산과 들을 굽어보며 수많은 사람이 찾아와 제우스의 뜻을 물을 신성한 자리를 직접 찾기 시작했다.
백조의 수레를 타고 북쪽으로 향하는 아폴론
1.4 어머니를 지킨 남매
휘페르보레오이의 땅에서 돌아온 아폴론은 레토와 아르테미스를 만나 함께 남쪽으로 향했다. 세 사람이 델포이로 이어지는 길을 지나던 중 거인 티튀오스가 앞을 가로막았다. 넓은 땅에 몸을 뻗을 만큼 거대했던 그는 레토를 붙잡으려 달려들었다. 헤라가 제우스의 연인을 벌하기 위해 그를 보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티튀오스가 거대한 손을 뻗자 레토는 두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물러났다.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는 곧 어머니의 앞을 막아 서서 활을 당겼다. 황금 화살과 은빛 화살이 거인의 가슴과 옆구리를 잇달아 꿰뚫었고, 티튀오스는 산과 들을 뒤흔들며 쓰러졌다. 어린 남매는 쓰러진 거인 앞에 서서 끝까지 어머니의 곁을 지켰다.
죽은 티튀오스는 타르타로스로 떨어져 그곳에서도 끝없는 형벌을 받았다. 그의 몸은 땅 위로 아홉 플레트론이나 펼쳐졌고, 두 마리의 거대한 독수리가 양옆에 앉아 끊임없이 간을 쪼아 먹었다. 먹힌 간은 다시 자라났으므로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레토를 지킨 아르테미스는 어머니 곁에 남았고, 아폴론은 자신의 신탁소를 찾기 위해 다시 남쪽으로 길을 떠났다.
레토 앞에서 티튀오스에게 활을 겨눈 남매
2.1 신탁의 땅을 찾아가다
아폴론은 신탁소를 세울 땅을 찾아 올림포스산에서 남쪽으로 내려왔다. 피에리아와 이올코스, 에우보이아를 지나 보이오티아 평원에 이르렀지만 어느 곳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펠로폰네소스와 섬들, 먼 나라의 사람들이 찾아와 제물을 바치고 제우스의 뜻과 앞으로 닥칠 운명을 물을 수 있는 자리를 원했다.
아폴론은 맑은 물과 울창한 숲이 있는 텔푸사의 샘을 보고 그곳에 신전을 세우려 했다. 그러나 자신의 명성이 새로운 신전의 주인에게 가려질 것을 두려워한 텔푸사는 말과 노새들이 샘물을 마시러 오고 전차 소리가 끊이지 않아 신탁소로 알맞지 않다고 말했다. 대신 파르나소스산 아래의 조용한 크리사 골짜기로 가라고 아폴론을 부추겼다.
텔푸사의 속셈을 알지 못한 아폴론은 크리사로 향했다. 깎아지른 바위와 숲으로 둘러싸인 골짜기를 본 그는 그곳에 신전의 터를 정하고 넓은 기초를 놓았다. 에르기노스의 아들 트로포니오스와 아가메데스가 돌로 문지방을 만들고 수많은 사람이 신전을 쌓기 시작했다. 아폴론은 마침내 자신이 찾던 조용한 땅을 얻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완성되지 않은 신전 가까이에는 오래전부터 그 땅과 샘을 지키던 거대한 뱀이 숨어 있었다.
크리사 골짜기에 신전 터를 정하는 아폴론
2.2 피톤을 쓰러뜨리다
파르나소스산 아래의 신성한 샘에는 피톤이라 불리는 거대한 뱀이 살고 있었다. 오래된 찬가에서는 그 괴물이 사람과 가축을 해치고 헤라가 낳은 튀폰을 길러 낸 암룡으로 나타난다. 다른 전승에서는 헤라의 명을 받아 임신한 레토를 쫓아다니며 그녀가 아이를 낳지 못하도록 괴롭힌 존재라고 전해진다.
아폴론이 신탁소를 세우려 하자 피톤은 바위틈에서 거대한 몸을 일으켜 길을 막았다. 괴물이 몸을 뒤틀 때마다 샘물이 흐려지고 숲의 나무들이 흔들렸다. 숲의 새와 짐승들은 거친 울음소리에 놀라 골짜기 밖으로 달아났다. 아폴론은 황금빛 활에 화살을 걸어 괴물을 향해 연달아 쏘았다. 피톤은 산과 골짜기를 뒤흔들며 달아났지만 화살을 피하지 못했고, 마침내 신전의 터 가까이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아폴론은 피톤에게 그 자리에서 썩어 땅으로 돌아가라고 선언했다. 태양의 열기가 시신을 썩게 했으므로 그곳을 ‘피토’라 부르고, 아폴론에게는 ‘피티오스’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피톤이 사라지자 아폴론은 샘과 신탁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후대 델포이 전승에서는 그에게도 살해의 부정이 남았다고 이야기했다.
파르나소스산 아래에서 피톤을 쓰러뜨린 아폴론
2.3 피톤을 죽인 죄를 씻다
후대 델포이 전승에 따르면 아폴론은 피톤을 죽인 뒤 곧바로 신탁의 자리에 앉지 않았다. 오래된 신성한 존재의 피를 흘린 부정을 씻기 위해 파르나소스산을 떠나 테살리아의 템페 계곡으로 향했다. 올림포스산과 오사산 사이로 흐르는 페네이오스강의 물에 몸을 씻고 제물을 바치며 정화를 기다렸다.
정화를 마친 아폴론은 계곡에서 월계수 가지를 꺾어 관을 만들고, 어린 월계수 한 그루도 가져왔다. 그는 그 관을 머리에 쓰고 델포이로 돌아왔으며, 길을 따르는 사람들은 승리와 귀환을 기리는 찬가를 불렀다. 훗날 델포이 사람들은 소년들을 템페로 보내 월계수를 가져오게 하며 아폴론의 귀환을 되풀이했다. 돌아온 소년들은 월계수로 신전과 제단을 장식했다. 이 행렬은 오랜 세월 동안 델포이의 중요한 의식으로 이어졌다.
아폴론은 피톤을 쓰러뜨린 일을 기념하여 음악과 시, 운동을 겨루는 피티아 제전을 열었다. 승자에게는 금이나 보석이 아니라 템페에서 가져온 월계관이 주어졌다. 피톤을 죽인 화살로 신탁의 땅을 얻은 아폴론은 정화와 귀환을 거치며 그곳의 정당한 주인이 되었고, 월계수는 그의 승리와 예언을 나타내는 나무가 되었다.
템페 계곡에서 월계관을 쓰고 돌아오는 아폴론
2.4 델포이의 신탁을 열다
신전으로 돌아온 아폴론에게는 제사를 맡고 신탁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이끌 사제들이 필요했다. 그는 바다를 바라보다 크노소스에서 필로스로 항해하던 크레타 선원들의 배를 발견했다. 곧 거대한 돌고래로 모습을 바꿔 바다에서 뛰어올랐고, 배 위에 몸을 누운 채 선원들이 자신을 밀어내지 못하게 했다.
놀란 선원들은 돛과 키를 붙잡았지만 배는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려 항로를 벗어났다. 거센 남풍이 배를 밀었고 선원들은 두려움 속에서도 감히 돛을 내리지 못했다. 배는 말레아곶과 펠로폰네소스 해안을 돌아 크리사 항구에 닿았다. 아폴론은 한낮의 별처럼 빛나는 모습으로 배에서 뛰어내려 신전으로 향한 뒤, 다시 아름다운 청년의 모습으로 돌아와 선원들 앞에 나타났다.
아폴론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선원들에게 바닷가에 제단을 세워 곡식을 바치게 했다. 선원들은 다시 크레타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에 두려워했다. 돌고래 모습으로 나타난 자신을 ‘델피니오스’라 부르게 한 아폴론은 그들을 이끌고 찬가를 부르며 파르나소스산에 올랐다. 크레타인들은 신전의 첫 사제가 되었고, 피티아는 삼각 의자에 앉아 아폴론이 전하는 제우스의 뜻을 인간에게 들려주었다.
델포이의 삼각 의자에서 신탁을 전하는 피티아
3.1 헤르메스에게 받은 리라
마이아가 킬레네산의 동굴에서 헤르메스를 낳은 날, 갓난 신은 요람을 빠져나오다가 동굴 앞에서 거북 한 마리를 발견했다. 그는 거북의 등껍질에 갈대와 두 개의 뿔을 붙이고 양의 창자로 만든 일곱 줄을 걸었다. 헤르메스가 줄을 튕기자 세상에 없던 맑은 소리를 내는 리라가 완성되었다. 그는 자신의 탄생과 제우스와 마이아의 사랑을 노래하며 새 악기의 소리를 시험했다.
그날 저녁 헤르메스는 피에리아로 달려가 아폴론의 소 떼 가운데 쉰 마리를 훔쳤다. 그는 소들의 발자국이 반대 방향을 향하도록 몰아 추적을 어렵게 하고, 자신도 나뭇가지를 발에 묶어 흔적을 감추었다. 그러나 소가 사라진 것을 안 아폴론은 예언의 힘으로 범인을 찾아내어 시치미를 떼는 아기 신을 제우스 앞으로 데려갔다.
제우스가 소를 돌려주라고 명하자 헤르메스는 아폴론을 소 떼가 있는 곳으로 안내한 뒤 리라를 연주했다. 처음 듣는 선율에 마음을 빼앗긴 아폴론은 소 떼를 리라와 맞바꾸고, 헤르메스에게 가축을 모는 황금 지팡이도 주었다. 두 신의 다툼은 우정으로 바뀌었다. 헤르메스는 다시 아폴론의 재산을 훔치지 않겠다고 맹세했고, 아폴론도 영리한 동생을 신들 가운데 존중하겠다고 약속했다.
리라를 연주하는 헤르메스와 귀 기울이는 아폴론
3.2 판과 음악을 겨루다
아폴론이 리라를 들고 올림포스의 연회에 들어서면 신들은 대화를 멈추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무사이 아홉 자매는 그의 연주에 맞추어 신과 영웅의 이야기를 노래했고, 카리테스와 호라이는 손을 잡고 춤을 추었다. 제우스와 레토는 황금빛에 싸여 합창을 이끄는 아폴론을 바라보며 기뻐했다.
목축의 신 판은 갈대로 만든 피리를 잘 연주했고, 어느 날 자신의 음악이 아폴론의 리라보다 뛰어나다고 자랑했다. 두 신은 트몰로스산의 신에게 판정을 맡기고 솜씨를 겨루었다. 판의 피리는 산과 들의 흥겨움을 들려주었지만, 아폴론의 리라가 울리자 바람과 나무까지 고요해졌다. 트몰로스는 아폴론의 승리를 선언했다.
그러나 프리기아의 왕 미다스만은 판의 연주가 더 훌륭하다고 고집했다. 아폴론은 음악을 알아듣지 못한 왕의 두 귀를 당나귀 귀로 바꾸었고, 미다스는 머리 장식으로 이를 감췄다. 비밀을 알게 된 이발사는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땅에 구덩이를 파고 왕의 귀를 말한 뒤 흙으로 덮었다. 그 자리에 자란 갈대는 바람이 불 때마다 “미다스 왕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속삭였고, 왕의 비밀은 온 나라에 퍼졌다.
트몰로스산에서 리라와 피리로 겨루는 두 신
3.3 마르시아스와 겨루다
아테나는 사슴뼈로 만든 쌍피리 아울로스를 불다가 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피리를 부느라 두 볼이 부풀어 오른 모습을 본 여신은 악기를 내던지고, 그것을 줍는 자에게 불행이 닥치리라 저주했다. 프리기아의 사튀로스 마르시아스는 그 피리를 발견해 연주법을 익혔다. 선율에 매료된 사람들이 모여들자 그는 마침내 자신의 솜씨가 아폴론보다 뛰어나다고 자랑했다.
아폴론은 마르시아스의 도전을 받아들였고, 두 사람은 패자가 승자의 처분을 따르기로 약속했다. 무사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리라와 피리의 연주가 이어졌지만 처음에는 어느 쪽이 더 뛰어난지 가리기 어려웠다. 한 전승에서는 아폴론이 악기를 거꾸로 들어 다시 연주하자고 했고, 다른 전승에서는 연주하면서 동시에 노래하자고 요구했다고 한다. 리라는 두 조건을 따를 수 있었지만 마르시아스는 피리를 문 채 노래할 수 없었다.
경기는 아폴론의 승리로 끝났고, 마르시아스는 자신이 받아들인 약속에 따라 신의 처분을 기다렸다. 아폴론은 감히 신에게 도전한 그를 나무에 매달아 가죽을 벗기는 가혹한 형벌을 내렸다. 사튀로스와 요정, 목동들은 마르시아스의 죽음을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이 한곳에 모여 프리기아를 흐르는 마르시아스강이 되었다.
무사이 앞에서 음악을 겨루는 아폴론과 마르시아스
3.4 니오베의 자식들을 벌하다
테바이 왕비 니오베는 여러 아들과 딸을 두고 그들의 수와 아름다움을 자랑했다. 여인들이 레토에게 제사를 바치는 모습을 본 그녀는 아들 하나와 딸 하나만 둔 레토보다 자신이 더 훌륭한 어머니라고 말했다. 니오베는 제물을 거두게 하고, 눈앞에 있는 자신을 여신처럼 섬기라고 사람들에게 명했다.
모욕을 당한 레토는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에게 니오베가 자신을 업신여겼다고 호소했다. 두 신은 곧 활을 들고 테바이로 내려갔다. 아폴론은 성 밖에서 말을 타고 훈련하던 니오베의 아들들에게 화살을 쏘았고, 아르테미스는 궁전에 남아 있던 딸들을 쓰러뜨렸다. 니오베의 남편 암피온도 자식들을 잃은 슬픔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니오베는 아직 남은 아이가 있다며 레토에게 맞섰지만 마지막 아이마저 화살을 피하지 못했다. 시신들은 아흐레 동안 거두어지지 못하다가 열흘째에 신들의 손으로 묻혔다고 한다. 제우스가 주변 사람들을 돌로 바꾸어 장례를 치를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부 전승에서는 클로리스 등 한두 자녀가 살아남았다. 깊은 슬픔에 잠긴 니오베는 시필로스산에서 돌이 되었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아 바위틈에서 샘물로 흘러내렸다.
니오베의 자식들에게 활을 겨눈 아폴론과 아르테미스
4.1 월계수가 된 다프네
피톤을 쓰러뜨린 아폴론은 작은 활을 든 에로스를 보고 그런 무기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며 비웃었다. 화가 난 에로스는 자신의 화살이 아폴론의 화살보다 더 깊은 상처를 남길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어 사랑을 일으키는 황금 화살을 아폴론에게 쏘고, 사랑을 밀어내는 납 화살을 강의 신 페네이오스의 딸 다프네에게 날렸다.
아폴론은 다프네를 보는 순간 사랑에 빠져 뒤를 쫓았다. 자신이 제우스의 아들이며 델포이의 주인이고 미래를 내다보며 질병을 고치는 신이라고 밝혔지만 다프네는 멈추지 않았다. 숲과 사냥을 사랑하고 혼인을 피하고 싶었던 그녀는 신이 가까워질수록 더 빠르게 달아났다. 아폴론은 모든 병을 고치면서도 자신의 가슴에 박힌 사랑의 상처에는 약을 찾지 못했다.
마침내 힘이 다한 다프네는 아버지 페네이오스에게 자신의 모습을 바꾸어 달라고 간청했다. 두 발은 뿌리가 되고 팔은 가지가 되었으며 머리카락은 푸른 잎으로 변했다. 아폴론은 월계수가 된 다프네를 끌어안고 그 잎이 영원히 푸르기를 바랐다. 델포이의 정화와 제전에 쓰이던 월계수는 이제 다프네의 기억까지 품은 아폴론의 성수가 되었고, 신은 자신의 머리와 리라를 그 잎으로 장식했다.
월계수로 변해 가는 다프네를 붙잡은 아폴론
4.2 아폴론을 떠난 코로니스
아폴론은 테살리아 왕 플레귀아스의 딸 코로니스를 사랑했고, 그녀는 신의 아이를 잉태했다. 그러나 코로니스는 인간 청년 이스퀴스에게 마음을 주고 그와 혼인을 약속했다. 당시 눈처럼 흰 깃털을 지녔다고 전해지는 까마귀가 두 사람의 모습을 발견했다. 새는 자신이 본 일을 알리기 위해 곧장 아폴론에게 날아갔다.
소식을 들은 아폴론은 사랑을 배신당했다는 분노에 사로잡혔다. 한 전승에서는 그가 직접 코로니스에게 화살을 쏘았고, 다른 전승에서는 아르테미스가 오빠를 대신해 그녀를 쓰러뜨렸다고 한다. 코로니스가 숨을 거두자 아폴론은 곧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그의 분노는 사랑했던 여인과 충실하게 소식을 전한 새에게까지 향했다. 아폴론은 까마귀의 흰 깃털을 검게 만들어 버렸다.
코로니스의 시신이 장작더미에 놓이고 불길이 오르자 아폴론은 그녀의 몸속에 아직 살아 있는 아들을 떠올렸다. 그는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태어나지 않은 아기를 꺼내 구했다. 아폴론은 아이에게 아스클레피오스라는 이름을 주고 펠리온산의 현명한 켄타우로스 케이론에게 맡겼다. 어머니를 잃은 아스클레피오스는 그곳에서 약초와 사냥, 상처를 치료하는 의술을 배우며 자라났다.
장작더미의 불길에서 아기를 구하는 아폴론
4.3 죽음을 넘은 아스클레피오스
케이론에게 의술을 배운 아스클레피오스는 약초와 수술법으로 어떤 상처와 질병도 치료했다. 아테나는 그에게 메두사의 몸에서 얻은 피를 나누어 주었다. 왼쪽 혈관의 피는 생명을 빼앗았지만 오른쪽 혈관의 피는 죽은 자도 되살렸다. 그는 글라우코스와 히폴뤼토스 등 이미 죽은 이들까지 다시 세상으로 불러냈다. 그의 명성이 퍼지자 죽음을 피하려는 사람들이 사방에서 찾아왔다.
죽은 사람들이 되돌아오자 하데스는 명계의 질서가 무너진다며 제우스에게 호소했다. 제우스는 인간이 죽음을 마음대로 넘는다면 신과 인간의 경계가 사라질 것을 두려워해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벼락을 던졌다. 아들을 잃은 아폴론은 제우스에게 직접 맞서지 못하고, 그 벼락을 만든 퀴클롭스들을 찾아가 화살로 죽였다. 그러나 아폴론의 분노도 아들을 되살리지는 못했다.
제우스는 아폴론을 타르타로스에 던지려 했지만 레토의 간청을 듣고 형벌을 낮추었다. 아폴론은 일 년 동안 인간 왕을 섬기며 죄를 갚아야 했다. 후대 전승에서는 제우스가 아스클레피오스를 다시 불러 뱀주인자리로 만들었다고 한다. 인간들은 그를 의술의 신으로 섬기고 병든 이들을 그의 신전으로 데려와 치유를 빌었다.
제우스의 벼락에 쓰러진 아스클레피오스
4.4 히아킨토스와 퀴파리소스
아폴론은 스파르타의 아름다운 왕자 히아킨토스를 사랑하여 활쏘기와 음악, 원반던지기를 가르쳤다. 두 사람은 들과 산을 함께 다니며 사냥하고 운동을 즐겼다. 그러나 서풍의 신 제퓌로스도 히아킨토스를 사랑했으며, 소년이 자신보다 아폴론을 따르자 깊은 질투에 사로잡혔다.
어느 날 아폴론이 힘껏 던진 원반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가 땅에 부딪혀 히아킨토스의 머리를 쳤다. 제퓌로스가 바람으로 원반의 방향을 틀었다는 전승도 있다. 아폴론은 약초를 바르고 상처를 막으려 했지만 소년의 생명을 붙잡지 못했다. 그는 흘러내린 피에서 꽃을 피우고 꽃잎에 자신의 탄식인 ‘아이, 아이’를 새겼다. 스파르타 사람들은 해마다 휘아킨티아 제전을 열어 소년을 기렸다.
아폴론이 사랑한 퀴파리소스에게는 금빛 뿔을 지닌 온순한 사슴이 있었다. 어느 더운 날 소년은 나무 그늘에 누운 사슴을 알아보지 못하고 창을 던져 죽였다. 그는 사슴을 묻은 자리에서 여러 날 동안 울며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했다. 퀴파리소스는 아폴론의 위로도 거절하고 영원히 슬퍼하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그의 몸은 높고 어두운 사이프러스나무로 변했고, 아폴론은 그 나무를 죽은 자를 애도하는 표지로 삼았다.
쓰러진 히아킨토스를 품에 안은 아폴론
5.1 아드메토스의 목동이 되다
퀴클롭스를 죽인 벌을 받은 아폴론은 테살리아의 페라이로 내려가 아드메토스 왕을 섬겼다. 아드메토스는 그의 정체를 알지 못했지만 낯선 목동을 따뜻하게 받아들였다. 아폴론이 돌보는 동안 가축들은 병들지 않았고 암소들은 한 번에 두 마리씩 새끼를 낳아 왕의 소 떼가 크게 늘어났다.
아폴론은 자신을 선하게 대한 아드메토스가 이올코스의 공주 알케스티스와 혼인하도록 도왔다. 펠리아스는 사자와 멧돼지를 한 수레에 매어 오는 사람에게만 딸을 주겠다고 했다. 아폴론이 두 맹수를 길들여 멍에를 메게 하자 아드메토스는 수레를 몰고 궁전에 들어갔고, 두 사람은 신들의 축복 속에 혼인을 올렸다. 그러나 그는 혼인 제사에서 아르테미스를 빠뜨려 신방을 뱀으로 가득 차게 했다. 놀란 왕은 아폴론의 충고에 따라 여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용서를 구했다.
아폴론은 아드메토스의 죽을 날이 다가오자 모이라이에게 술을 먹여 다른 사람이 대신 죽는다면 목숨을 연장해 주겠다는 약속을 얻었다. 늙은 부모는 거절했지만 알케스티스가 남편을 위해 죽음을 택했다. 훗날 헤라클레스가 타나토스와 싸워 왕비를 되찾으면서 아폴론이 마련한 기회는 새로운 결말을 맞았다.
사자와 멧돼지의 수레를 건네는 아폴론
5.2 라오메돈을 섬기다
아폴론은 한때 포세이돈과 함께 인간의 모습으로 트로이 왕 라오메돈을 섬겼다. 두 신이 제우스에게 맞선 벌을 받았다는 전승도 있고, 제우스가 일정 기간 인간 왕 아래에서 일하도록 명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라오메돈은 정해진 기간 동안 자신을 위해 일하면 많은 보물을 품삯으로 주겠다고 약속했다.
포세이돈은 거대한 돌을 옮겨 트로이의 성벽을 쌓았고, 아폴론은 이다산에서 왕의 소 떼를 돌보았다. 아폴론이 지키는 동안 가축들은 짐승의 습격을 받지 않고 크게 번성했으며, 트로이는 견고한 성벽을 갖추었다. 그러나 일이 끝나자 라오메돈은 품삯을 주지 않았다. 그는 두 신을 묶어 먼 섬에 노예로 팔고 귀까지 자르겠다며 위협했다. 아폴론과 포세이돈은 모욕을 기억한 채 트로이를 떠났다.
정체를 드러낸 아폴론은 트로이에 역병을 내렸고, 포세이돈은 바다 괴물을 보내 해안을 황폐하게 했다. 신탁은 라오메돈의 딸 헤시오네를 괴물에게 바쳐야 재앙이 끝난다고 알렸다. 헤라클레스가 공주를 구했지만 라오메돈은 그에게 약속한 불사의 말도 주지 않았다. 거듭된 배신은 마침내 헤라클레스의 공격과 라오메돈 왕가의 몰락을 불러왔다.
품삯을 거부하는 라오메돈과 분노한 두 신
5.3 트로이 전쟁에 내려오다
아폴론은 트로이의 공주 카산드라를 사랑하여 그녀에게 미래를 보는 능력을 주었다. 그러나 카산드라가 약속을 깨고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자, 이미 준 능력을 거둘 수 없었던 아폴론은 누구도 그녀의 예언을 믿지 않게 만들었다. 카산드라는 파리스가 가져올 재앙과 목마에 숨은 적을 내다보았지만 사람들은 그녀를 미친 여인으로 여겼다.
트로이 전쟁이 십 년째에 접어들었을 때 아가멤논은 아폴론의 사제 크리세스의 딸을 돌려주지 않았다. 사제가 바닷가에서 호소하자 아폴론은 은빛 활을 메고 그리스군 진영에 내려왔다. 그의 화살이 날아들자 먼저 노새와 개들이 죽고 이어 병사들이 역병에 쓰러졌다. 아홉 날 동안 진영에서는 시신을 태우는 불길이 꺼지지 않았다.
파트로클로스가 트로이 성벽으로 돌진하자 아폴론은 세 차례 그를 밀어냈다. 그래도 물러나지 않자 뒤에서 등을 치고 투구와 방패를 떨어뜨렸으며 갑옷을 풀어 버렸다. 정신을 잃은 파트로클로스를 에우포르보스가 먼저 찌르고 헥토르가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아폴론은 아이네이아스를 구하고 트로이 성벽을 지켰으며, 아킬레우스에게 모욕당한 헥토르의 시신도 썩지 않게 보호했다.
그리스군 진영에 역병의 화살을 쏘는 아폴론
5.4 태양 마차와 파에톤
후대에 아폴론이 태양의 신으로 받아들여지면서 헬리오스의 아들 파에톤 이야기도 아폴론 신화와 겹쳐 전해졌다. 그러나 초기 그리스 전승에서 파에톤의 아버지는 태양 마차를 모는 헬리오스였다. 오케아니스 클뤼메네의 아들 파에톤은 자신의 혈통을 의심하는 친구들의 조롱을 견디지 못하고 동쪽 끝에 있는 태양의 궁전으로 향했다.
헬리오스는 아들을 반기며 혈통을 증명하기 위해 어떤 소원이든 들어주겠다고 스틱스강을 걸고 맹세했다. 파에톤은 단 하루만 태양 마차를 몰게 해 달라고 청했다. 헬리오스는 하늘의 길이 가파르고 불을 내뿜는 말들을 다루기 어렵다며 만류했지만 약속을 거둘 수 없었다. 마차에 오른 파에톤은 곧 고삐를 놓쳐 정해진 길을 벗어났다.
마차가 땅 가까이 내려오자 산과 들이 불타고 강물이 말랐다. 대지가 고통을 호소하자 제우스는 벼락을 던져 파에톤을 마차에서 떨어뜨렸고, 그의 몸은 에리다노스강에 잠겼다. 강의 요정들은 파에톤의 시신을 거두어 묻었다. 누이 헬리아데스는 강가에서 동생을 애도하다 포플러나무로 변했으며 눈물은 호박이 되었다. 이 비극은 헬리오스와 후대에 태양신으로 받아들여진 아폴론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아폴론의 이야기로도 널리 알려졌다.
불타는 하늘에서 태양 마차를 붙잡은 파에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