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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인창의 독서여행궁인창의 지식창고 2026.09.04. 19:40 (2026.09.04. 19:40)

이승휴와 죽죽선(竹竹仙)의 애절한 사랑이야기

 
〈동해를 품은 아름다운 사람들 9〉
문신 이승휴는 고려의 정치와 사회 윤리를 바로 잡기 위한 가치 기준을 고대 역사에서 찾고자 했으며, 이에 따라 《제왕운기》의 구성을 중국 역사를 상권으로 우리 역사는 하권으로 분리했다. 그는 우리 역사의 시조(始祖)를 단군으로 정립하고,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이며 고구려 유민들이 모두 발해에 귀속된 사실을 상세하게 서술했다.
〈동해를 품은 아름다운 사람들 9〉
 
 
문신 이승휴는 고려의 정치와 사회 윤리를 바로 잡기 위한 가치 기준을 고대 역사에서 찾고자 했으며, 이에 따라 《제왕운기》의 구성을 중국 역사를 상권으로 우리 역사는 하권으로 분리했다. 그는 우리 역사의 시조(始祖)를 단군으로 정립하고,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이며 고구려 유민들이 모두 발해에 귀속된 사실을 상세하게 서술했다. 이는 발해 역사를 우리 역사로 포용하는 선구적인 인식을 보여주며, 우리 민족이 원나라와 대등한 독자적이고 자주적인 민족임을 천명한 것이다. 비록 몽골제국의 정치적 지배를 받고 있던 시기이지만, 강렬한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을 드러냈다. 《제왕운기》는 국문학상 시가문학(詩歌文學)의 흐름 속에서 역사를 읊은 영사시(詠史詩)로서의 가치를 지니며, 이후 고대소설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7언시와 5언시로 지은 서사시는 이규보(李奎報)의 《동명왕편(東明王篇)》과 함께 고대 서사시의 쌍벽을 이루는 작품으로 높게 평가된다. 위대한 생을 살았던 이승휴는 1300년(충렬왕 26) 10월 2일,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슬하에 아들 이임종(李林宗)과 이연종(李衍宗)을 두었다.
 
죽서루(竹西樓)와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 현판(사진:궁인창)
 
우리 일행이 쉰움산 답사를 마치고 삼척 시내로 가는데, 북평고등학교 최승국 교감 선생이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사)동안이승휴사상선양회 홍보이사이자 문화재 안내 봉사 활동을 오랫동안 해 온 전문가로서 삼척 죽서루의 건축적 특징을 선배들에게 해설하겠다고 제안했다. 최 교감과는 이사부 항로 탐사 때 범선을 타고 함께 독도와 울릉도를 탐방한 적이 있어 더욱 반가웠다.
 
삼척 죽서루(竹西樓)(사진:서울대 규장각)
 
삼척 죽서루는 고려 명종 때의 문인 김극기의 시에 언급된 것으로 보아, 12세기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설에는 고려 충렬왕 때의 문인 이승휴가 창건했다는 기록도 전하며, 조선왕조에 들어와 1403년(태종 3)에 삼척 부사였던 김효손(金孝孫)이 옛 터에 누각을 중창했다. 누(樓)란 사방을 트고 마루를 한층 높여 지은 다락형식의 집을 일컫는다.
 
죽서루라는 이름의 유래에는 두 가지 설이 전해온다. 첫째는 1403년(태종 3) 죽장사(竹藏寺)가 지어져 1662년(현종 3)에 폐사가 되었는데, 절의 서쪽에 위치해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사라진 절터에는 1925년에 이우영(李愚榮)이 삼장사를 창건했다.
 
둘째는 고려 말 삼척에서 가장 유명한 명기(名妓)의 집 서쪽의 누각이라 그리 불렀다는 설이다. 명기는 정조와 자태가 대나무와 선녀 같아 많은 사람이 그녀를 ‘죽죽선(竹竹仙)’으로 불렀다고 한다.
 
삼척 죽서루(竹西樓) 절벽(사진:궁인창)
 
사진가 이효웅은 이사부 항로 울릉도 독도 탐사하기 전날, 코리아나호 선원들에게 죽서루의 절벽 풍광이 매우 뛰어나니 꼭 구경해야 한다고 권하며 죽서루 반대편으로 안내했다. 그는 그곳에서 죽서루의 절벽 풍경과 아주 오래된 암각화를 설명했다. 평소 사진으로 보던 풍광을 강 반대편에서 바라보니, 누각을 바닷가가 아닌 육지 절벽에 세운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관동팔경의 하나로 자연을 그대로 살려 축조한 전통 건축의 백미(白眉)인 죽서루에 도착할 무렵, 앞서 연락을 주었던 최승국 교감 선생님이 주차장에 도착해 우리 일행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교감 선생님은 죽서루의 정문인 평삼문(平三門)을 통과해 안마당으로 안내하며 죽서루의 외관부터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죽서루는 건물을 지을 때 기단과 주춧돌을 인위적으로 다듬지 않고, 울퉁불퉁한 자연 암반을 그대로 이용했습니다. 나무 기둥 밑면을 정밀하게 깎아 톱니처럼 서로 꽉 물리게 하는 ‘그랭이(그렝이) 공법’을 사용해 건물의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할 수가 있었지요. 그래서 17개의 나무 기둥 길이가 저마다 다릅니다. 이러한 기둥 설치 방식을 ‘덤벙 기초’라고 합니다.”라고 상세히 해설했다.
 
최 교감 선생님은 쉬는 날인데도 기꺼이 시간을 내어 죽서루의 이모저모를 소개한 뒤, 다음 약속이 있어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떴다. 그는 이후 년 말에 교장으로 승진하여 도계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했으며, 2026년 3월 1일 모교인 삼척고등학교에 교장으로 부임했다. 현재 그는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에게 혁신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인성 교육을 강조하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취적인 발상 속에 시도하여 지역사회에서 진정한 교육자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학부모와의 대화, 삼척고등학교 최승국 교장(사진:삼척고)
 
강원도 관동팔경 명소를 하나씩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통천 바닷가에 우뚝 솟은 독특한 기둥 모양의 바위들이 아름다운 총석정, 맑은 물과 주변 풍경이 뛰어난 고성 삼일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바위에 세워진 고성 청간정, 푸른 동해가 한눈에 보이는 양양 낙산사, 강릉 경포호 옆에 유서 깊은 경포대, 오십천 강가 절벽 위에 있는 삼척 죽서루, 넓은 바다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울진 망양정, 울창한 소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는 울진 월송정이 이에 속한다. 기이한 주상절리가 가득한 통천 총석정을 구경하고 싶은데, 과연 언제쯤 가볼 수 있으려나!
 
삼척 죽서루와 오십천 일대는 풍광이 수려하여 2007년 12월 7일에 국가지정문화유산 명승 제28호로 지정되었다. 오십천을 품고 있는 죽서루 위로 오르는 것은 조금 복잡하다. 건물이 자연 암반 위에 있어 한참 돌아서 올라가야 비로소 누각에 오를 수 있다. 아찔한 절벽 위에 건립된 죽서루는 새처럼 날렵하며 장중하기 그지없다. 전면에 걸려 있는 죽서루(竹西樓)와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 현판은 1715년(숙종 41)에 당대 명필로 소문난 삼척 부사 이성조가 쓴 글씨이다. 내부에는 당대 대가들의 한시(漢詩) 현판, 시판, 제액 총 26점이 걸려 있다.
 
사방 글씨를 둘러보면 가장 먼저 일필휘지로 쓴 제일계정(第一溪亭) 현판이 눈길을 끈다. 이 글씨는 조선 현종 3년(1662) 삼척 부사였던 전서체의 대가 미수 허목이 68세 때 행초체 운필로 쓴 보기 드문 글씨이다. 해선유희지소(海仙遊戱之所)는 ‘바다의 신선들이 노니는 곳’이라는 뜻으로 1837년(헌종 3) 삼척 부사 이규헌(李圭憲)이 남긴 글씨이다. 죽서루 건물 천장의 우물마루 바닥과 연등 천장의 구조 또한 예사롭지 않다.
 
미수 허목 〈제일계정(第一溪亭)〉 현판(사진:궁인창)
 
죽서루 주요 판각 작품으로는 허목 선생이 지은 《죽서루기》, 홍백련의 《죽서루 중수기》, 율곡 이이의 시를 일중 김충현 선생의 필치로 새긴 《죽서루차운》, 그리고 정조와 숙종의 어제시 편액이 대표적이다. 이렇듯 많은 문장과 묵향을 품은 죽서루는 붓으로 그려낸 수묵화처럼 담박하고 유려한 자태를 자랑한다. 시대를 뛰어넘는 이 아름다운 건축물은 자연과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한국적인 문예의 미(美)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죽서루(竹西樓)-성스러운 땅, 나는 듯한 루〉(사진:국립춘천박물관)
 
삼척시와 국립춘천박물관은 2015년 5월 27일 ‘삼척 죽서루(竹西樓) - 성스러운 땅, 나는 듯한 루’를 주제로 관동팔경 특별전을 공동 개최했다. 지난 전시회에는 조선왕조 태조 이성계가 삼척의 5대 조모 후손에게 하사한 홍서대(삼척시립박물관 소장), 허목의 자필본인 《동해비첩》(보물 592호), 이신흠(李信欽·1570~1631)의 《사천장팔경도》(삼성미술관 리움), 안견의 《사시팔경도(四時八景圖)》, 강세황의 《죽서루도(竹西樓圖)》, 금강산과 관동 장면 산수 75점을 그린 작자 미상의 장축 두루마리 《금강산도권(金剛山圖卷)》 국립중앙박물관) 등의 회화작품이 대거 선보여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김홍도 《금강사군첩》 죽서루(사진:삼척시, 국립춘천박물관)
 
문인 송강 정철도 죽서루에서 아름다운 시를 남겼다.
 
竹樓珠翠映江天 (죽루주취영강천)
上界仙音下界傳 (상계선음하계전)
江上數峰人不見 (강상수봉인불견)
海雲飛盡月娟娟 (해운비진월연연)
 
죽서루 단청 빛이 강과 하늘에 물들었네
천상의 노래가 사바세계에 들려오누나
강 위의 몇 봉우리가 있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고
바다 구름 모두 걷힌 뒤 달빛 참 아름답구나
 
 
이 시에 나오는 주취(珠翠)는 원래 ‘진주와 비취 등 화려한 장신구’를 뜻하지만, 이 시에서는 누각의 화려한 단청 빛이나 미인들의 화려한 복식을 중의적으로 비유한다. 娟娟(연연)은 달이 맑고 예쁘게 빛나는 모습을 뜻한다.
 
삼척 죽서루(사진:삼척시)
 
관동팔경 중 하나인 삼척 죽서루는 동안거사 이승휴의 문집인 《동안거사집》에 기록이 남아 있어 죽서루가 1266년 이전부터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대학자였던 이승휴가 삼척 지역을 관할하던 안집사(安集使) 진자후(陳子使)와 함께 죽서루에 올라 지은 칠언율시가 훗날 문집에 수록되었다.
 
김익하 소설가 《소설 이승휴: 휴휴와 죽죽선이 죽서루에 오르다》(사진:궁인창)
 
민간 전설에 따르면, 이승휴가 오십천 절벽에서 낚시할 자리를 찾다가 발을 헛디뎌 낭떠러지로 떨어졌을 때, 마침 물가에서 나물을 뜯던 아름다운 기생 죽죽선이 그를 구해주면서 인연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곧 깊은 사랑에 빠져 이승휴는 여인을 그리워하며 만남을 이어갔으나, 어머니의 반대에 부딪혀 이승휴는 그리운 여인을 뒤로한 채 송도로 떠난다. 갑작스런 슬픈 이별을 하게 된 죽죽선은 매일 오십천 절벽에 올라 낭군이 있는 곳을 바라보며 그리움을 달랬다. 낭군을 기다리던 여인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절벽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조정에서 물러나 고향에 돌아온 이승휴는 뒤늦게 그녀의 소식을 듣고, 슬픈 그녀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죽서루를 세웠다는 절절한 사랑 이야기다.
 
이승휴와 죽죽선(竹竹仙)의 애절한 사랑(사진:궁인창, AI 이미지생성)
 
이승휴와의 애절한 사랑을 나눈 名妓 죽죽선(竹竹仙)의 사랑 이야기는 삼척 출신 소설가 김익하가 장편소설 《소설 이승휴: 휴휴와 죽죽선이 죽서루에 오르다》로 창작해냈다. 가슴 아픈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뮤지컬로 만들어 국립극장 큰 무대에 올리면 대중에게 깊은 감동과 재미를 선사할 것 같다. 우리나라의 전통설화는 대개 여인이 애절하게 고통을 당해 비극적으로 죽는 것으로 전승되는데, 이는 역사적 사실보다는 극적인 효과를 주려는 믿을 수 없는 소설이자 환타지라고 생각한다.
 
최규하 대통령 중수기(사진:삼척시)
 
최규하(崔圭夏, 1919~2006) 전 대통령은 1978년 국무총리 시절 동해안 해일 피해를 시찰하러 삼척 죽서루를 방문했으며, 대통령 재임기인 1980년에는 죽서루를 둘러본 후 경내 면적을 확장하라고 지시했다. 이 지시는 신군부 집권기인 1981년 10월 18일부터 1982년 12월 14일까지 시행되어 죽서루는 새 단장을 하게 되었다. 삼척 시민들과 삼척시는 늦게나마 최규하 전 대통령의 높은 뜻을 기리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역사적 사실을 《중수기》에 담았다.
 
이 《중수기》는 당시 김광용 삼척시장이 글을 짓고(謹誌), 서예가 일죽(一竹) 홍태의(洪泰義, 1931~2010) 선생이 서각(書刻: 글씨를 쓰고 새김)해 1991년 12월 20일 죽서루에 게시했다.
 
이승휴 선생 추모 제711주기 동안대제(사진:강원도민일보)
 
서예가 일죽 홍태의 선생은 삼척 소공대를 비롯한 여러 명소에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는 2010년 9월 향년 79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이듬해 2011년 10월 아들 홍석태 씨가 아버지가 《제왕운기》를 유려한 해서체로 필사한 18폭 병풍을 세상에 처음 공개했다. 아들은 아버지 유품을 천은사 일원에서 열린 ‘이승휴 선생 추모 제711 주기 동안대제’에서 (사)동안이승휴사상선양회 이원종 이사장에게 기증했다. 당시 추모 행사에 참석한 많은 이들은 이승휴 선생이 삼화사로 경전을 빌리러 다녔던 천은사 입구 ‘이승휴 옛길(저시고개)’을 넘으며 선생의 역사 사상과 뜨거운 민족정신을 기렸다.
 
서예가 홍태의 선생 《제왕운기》 해서체 18폭 병풍(사진:강원도민일보)
 
수많은 문인과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아 오던 삼척 죽서루는 역사적,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2023년 12월 28일 대한민국 국보로 승격되었다. 은은한 묵향이 풍기는 죽서루는 삼척시 유일의 국보 문화유산으로 전 국민의 깊은 사랑을 받고 있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궁인창
【작성】 궁 인창 (생활문화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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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