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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조노마키아 – 아마조네스의 아테나이 침공
아마조노마키아는 넓게는 그리스인과 아마조네스의 전투를 가리키지만, 이 이야기는 테세우스 시대 아마조네스의 아티카 침공을 중심으로 한다. 헤라클레스의 아마조네스 원정과 테세우스가 안티오페를 아테나이로 데려온 일을 계기로, 아마조네스는 보복 원정을 일으켜 도시 가까이까지 진군했다. 치열한 전투 끝에 그들은 물러났으며, 다른 전승에서는 평화 협정이 맺어졌다고 한다. 훗날 여왕 펜테실레이아는 트로이 전쟁에 나타나 다시 그리스 영웅들과 맞섰다.
1.1 헤라클레스의 원정이 남긴 불씨
헤라클레스가 에우뤼스테우스에게 받은 과업 가운데 하나는 아마조네스 여왕 히폴뤼테의 허리띠를 가져오는 일이었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흑해 남쪽 테르모돈 강 유역의 테미스퀴라로 향했다. 어떤 전승에서는 히폴뤼테가 처음에는 허리띠를 순순히 내주려 했으나 헤라의 계략으로 싸움이 벌어졌다고 하고, 다른 전승에서는 처음부터 전투 끝에 허리띠를 얻었다고 한다.
결국 히폴뤼테의 허리띠는 헤라클레스의 손에 들어갔고, 여러 아마조네스가 싸움에서 목숨을 잃었다. 디오도로스의 전승에서는 이때 살아남은 아마조네스가 자신들의 땅을 침범하고 동료들을 죽인 그리스인들에게 깊은 원한을 품었다고 한다. 훗날 아테나이를 향한 원정에도 헤라클레스의 공격에 대한 보복이 하나의 이유로 제시된다.
테세우스가 이 원정에 참여했는지는 전승이 갈린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그가 헤라클레스와 함께 싸우고 그 공로로 안티오페를 얻었다고 하며, 다른 이야기에서는 헤라클레스의 원정과 별도로 아마조네스의 땅을 찾아가 그녀를 데려왔다고 한다. 어느 경우이든 헤라클레스의 원정으로 시작된 그리스 영웅들과 아마조네스의 충돌은 끝나지 않았고, 뒤이어 테세우스와 안티오페를 둘러싼 더 큰 전쟁으로 이어졌다.
테미스퀴라에서 히폴뤼테의 허리띠를 얻는 헤라클레스
1.2 테세우스와 안티오페
테세우스가 아마조네스의 땅에서 데려온 여인은 많은 전승에서 안티오페라고 불린다. 그러나 일부 전승에서는 그녀를 히폴뤼테라고 하며, 안티오페와 히폴뤼테를 서로 다른 자매로 전하는 이야기도 있다. 따라서 테세우스와 관계를 맺은 아마조네스의 이름과 그들이 처음 만난 경위는 고대 자료에서도 하나로 일치하지 않는다.
플루타르코스가 소개한 한 전승에서는 테세우스가 아마조네스의 해안에 배를 대었을 때 전투가 벌어지지 않았다. 아마조네스가 선물을 보냈고, 테세우스는 선물을 가지고 배에 오른 안티오페를 태운 채 곧바로 출항했다고 한다. 다른 전승에서는 테세우스가 헤라클레스의 원정에서 보인 용맹의 대가로 그녀를 받았다고도 하고, 별도의 원정에서 포로로 데려왔다고도 한다.
어떤 경위였든 안티오페는 테세우스와 함께 아테나이로 갔고, 두 사람 사이에서는 히폴뤼토스가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녀가 아마조네스의 나라를 떠난 일은 곧 새로운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이미 헤라클레스의 원정으로 그리스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던 아마조네스에게 테세우스가 자신들의 여인을 데려간 사건까지 더해지면서, 두 세력의 갈등은 마침내 아테나이를 겨냥한 전쟁으로 발전하게 된다.
배에 오른 안티오페와 출항하는 테세우스
1.3 아테나이로 온 안티오페
안티오페는 테세우스와 함께 아테나이에 머물게 되었다. 테세우스는 이미 크레타에서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돌아와 아테나이의 왕이 된 영웅이었다. 아마조네스의 여인이 그의 곁에 자리한 뒤 두 사람 사이에서는 히폴뤼토스가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히폴뤼토스는 훗날 테세우스와 파이드라의 이야기에서 다시 중요한 인물로 등장한다.
그러나 안티오페가 어떤 처지로 아테나이에 왔는지는 전승마다 다르다. 테세우스를 스스로 따랐다고 볼 수 있는 이야기도 있는 반면, 그가 그녀를 배에 태워 데려갔다거나 전쟁에서 얻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따라서 안티오페가 아테나이에서 테세우스와 함께 살게 된 과정이나 그녀 자신의 뜻을 하나의 이야기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멀리 테르모돈 강 유역의 아마조네스에게 그녀의 일은 그대로 끝난 사건이 아니었다. 디오도로스는 아마조네스가 헤라클레스에게 입은 피해에 복수하려 했으며, 테세우스가 안티오페를 데려간 일에도 분노했다고 전한다. 이렇게 헤라클레스의 원정에서 비롯된 원한과 안티오페를 둘러싼 갈등이 겹치면서 아마조네스의 눈은 아테나이를 향했다. 이제 싸움의 무대는 흑해 연안이 아니라 테세우스가 다스리는 아티카로 옮겨가려 하고 있었다.
아테나이에서 테세우스와 함께 있는 안티오페
1.4 보복을 결의한 여전사들
아마조네스는 마침내 그리스 본토로 원정하기로 결정했다. 디오도로스의 전승에서 그들은 헤라클레스가 자신들의 나라를 공격하고 많은 전사를 죽인 일에 복수하려 했으며, 특히 테세우스가 안티오페를 데려간 아테나이를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이전에는 그리스 영웅들이 아마조네스의 땅을 찾아왔지만, 이번에는 아마조네스가 직접 적의 나라로 향하는 차례였다.
파우사니아스가 전하는 메가라의 전승에서는 안티오페의 자매 히폴뤼테가 이 원정에서 아마조네스를 이끌었다고 한다. 다른 자료에서는 테세우스와 관계를 맺은 여인 자체를 히폴뤼테라고 부르기도 한다. 안티오페와 히폴뤼테의 이름이 여러 전승에서 뒤섞여 있기 때문에 원정군을 이끈 여왕의 이름도 하나로 확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아마조네스가 아티카를 향해 대규모 원정을 떠났다는 이야기의 줄기는 분명하게 전해진다. 그들에게 이번 전쟁은 단순히 한 여인을 찾으러 가는 추격전이 아니었다. 과거 그리스 영웅들이 자신들의 땅에서 벌인 싸움에 대한 보복과 테세우스에게 품은 원한이 함께 얽힌 원정이었다. 군대가 갖추어지면서 오랫동안 쌓인 갈등은 마침내 아마조네스와 아테나이가 직접 맞붙는 전쟁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아티카 원정을 위해 무장을 갖추는 아마조네스
2.1 스키타이인들과 원정군을 이루다
아마조네스는 아테나이를 공격하기 위해 군대를 모았다. 디오도로스는 이 원정에 스키타이인들이 합류하여 상당한 규모의 군대가 이루어졌다고 전한다. 말과 활, 창을 다루는 아마조네스 전사들은 이제 자신의 땅을 지키는 싸움이 아니라 먼 그리스 본토를 향한 공격을 준비했다. 그들의 목적지는 테세우스가 왕으로 있는 아테나이였다.
원정군은 흑해 남쪽 테르모돈 강과 테미스퀴라 일대에서 출발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곳에서 아티카까지 가려면 여러 지역을 지나야 했으며, 짧은 습격으로 끝낼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정확한 병력 수나 부대의 구성은 전해지지 않지만, 뒤에 아마조네스가 아테나이 중심부 가까이까지 진출했다는 이야기를 보면 상당한 규모의 전쟁군이 움직였던 것으로 묘사된다.
아마조네스는 원정을 시작하면서 자신들의 영역을 완전히 벗어났다. 테르모돈의 강과 평원을 떠난 군대는 먼 길을 거쳐 유럽 방면으로 향했고, 여러 지역을 지나 그리스로 내려왔다. 헤라클레스가 배를 타고 자신들의 나라를 찾아왔던 과거와는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이제 테세우스는 자신의 도시에서 아마조네스의 공격을 맞아야 했고, 두 세력의 싸움은 점점 아테나이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스키타이인들과 원정군을 이루는 아마조네스
2.2 킴메리아 보스포로스를 건너다
아마조네스가 아테나이까지 어떤 길을 따라왔는지는 전승마다 자세한 내용이 다르다. 디오도로스는 그들이 스키타이인들과 함께 킴메리아 보스포로스를 건너 트라키아를 지나고, 유럽 여러 지역을 통과하여 마침내 아티카에 도착했다고 전한다. 여기서 킴메리아 보스포로스는 오늘날 이스탄불의 보스포루스가 아니라 흑해와 아조프해 사이의 케르치 해협 일대를 가리킨다.
플루타르코스는 헬라니코스의 이야기를 인용하여 아마조네스가 겨울에 얼어붙은 킴메리아 보스포로스를 건넜다고 전한다. 그러나 그는 이 경로가 실제로 그들이 아테나이에 도착한 길인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덧붙인다. 따라서 얼어붙은 킴메리아 보스포로스를 건넜다는 이야기는 여러 전승 가운데 하나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어떤 길을 택했든 아마조네스의 원정군은 먼 거리를 지나 마침내 그리스 본토로 들어왔다. 그들은 트라키아와 여러 지역을 거쳐 남쪽으로 내려와 아티카에 이르렀고, 그곳에서도 멈추지 않고 아테나이를 향해 전진했다. 테르모돈에서 시작된 보복 원정은 이제 테세우스의 도시를 눈앞에 둔 단계에 이르렀다. 그리스인과 아마조네스의 싸움은 더 이상 먼 흑해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테나이의 전쟁이 되려 하고 있었다.
얼어붙은 킴메리아 보스포로스를 건너는 원정군
2.3 아티카에 들어서다
아마조네스의 군대가 아티카에 들어왔을 때, 그들은 변두리에서 곧바로 저지되지 않았다. 플루타르코스는 그들이 주변 지역을 장악하지 못했다면 아테나이 도심 가까이까지 들어와 싸울 수 없었을 것이라고 적었다. 이는 후대의 설명이지만, 아마조네스의 원정이 아테나이 사람들에게 상당한 위협으로 기억되었음을 보여 준다.
디오도로스에 따르면 원정군은 아티카에 도착한 뒤 훗날 ‘아마조네이온’이라 불린 곳에 진을 쳤다. 아이스킬로스의 《에우메니데스》에서는 아마조네스가 아레이오스 파고스에 진을 쳤다고 전한다. 이처럼 여러 전승은 침공군이 아테나이 중심부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고 전하고 있다.
테세우스는 더 이상 먼 곳에서 다가오는 적을 기다릴 수 없었다. 아마조네스는 그의 도시가 보이는 곳까지 진군해 있었고, 아테나이인들도 무장을 갖추기 시작했다. 안티오페를 둘러싼 오래된 갈등은 이제 두 집단의 군대가 직접 마주 보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아테나이 사람들에게는 성 밖 먼 곳의 전쟁이 아니라 집과 신역, 시민들의 집회 장소 가까이에서 벌어질 전투가 눈앞에 다가온 것이었다. 그러나 양쪽은 곧바로 돌격하지 않고 한동안 서로의 움직임을 살피며 대치했다.
아레이오스 파고스에 진을 치는 아마조네스
2.4 아테나이 안쪽에 진을 치다
아마조네스는 아테나이 중심부와 가까운 곳까지 들어와 전열을 펼쳤다. 플루타르코스가 클레이데모스의 기록을 인용해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들의 왼쪽 날개는 아마조네이온 방면에 자리하고 오른쪽 날개는 프뉙스 부근까지 뻗어 있었다. 무세이온과 프뉙스, 아레이오스 파고스 주변이 전쟁의 무대가 되면서 아테나이 사람들은 도시 바로 곁에서 침공군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러나 두 군대는 곧바로 전면전에 들어가지 않았다. 플루타르코스는 양쪽이 오랫동안 공격을 망설이며 대치했다고 전한다. 긴 거리를 이동한 아마조네스와 도시를 지키는 아테나이군은 언덕과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싸움이 시작되기 전의 긴장은 점점 높아졌다.
양쪽의 대치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아마조네스는 이미 아테나이 중심부 가까이에 진을 친 상태였고, 테세우스와 아테나이군도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었다. 플루타르코스는 뒤이어 벌어진 전투가 보에드로미온 달에 보에드로미아 축제가 열리던 날이었다고 전한다. 언덕과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선 두 군대가 움직일 순간이 다가오면서, 테르모돈에서 시작된 보복 원정은 마침내 아테나이 한복판의 전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프뉙스와 무세이온 일대에 전열을 펼친 아마조네스
3.1 테세우스가 싸움을 시작하다
테세우스는 아테나이군을 이끌고 아마조네스와 맞섰다. 플루타르코스가 전한 전승에서는 그는 신탁에 따라 ‘공포’에게 제사를 올린 뒤 싸움에 나섰다. 아마조네스가 이미 도시 가까이에 진을 친 만큼 더 물러설 곳은 없었다. 시민과 전사들은 여러 방향에서 적의 진지를 향해 움직였고, 테세우스는 침공군을 도시 밖으로 밀어내려 했다.
전투는 한곳에서만 벌어지지 않았다. 클레이데모스의 설명에 따르면 아테나이군 일부는 무세이온 쪽에서 아마조네스의 왼쪽 날개를 공격했고, 다른 병력은 팔라디온과 아르데토스, 뤼케이온 방면에서 그들의 오른쪽을 압박했다. 언덕과 길이 이어진 아테나이의 지형 전체가 전선으로 바뀌었다.
처음부터 아테나이군이 우세했던 것은 아니다. 무세이온 방면에서 맞붙은 아테나이인들은 아마조네스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에우메니데스의 신역 가까이까지 밀려났다고 한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아테나이군이 아마조네스의 오른쪽 날개를 진영까지 후퇴시켰다. 어느 한쪽도 쉽게 무너지지 않으면서 전투는 치열한 공방으로 이어졌다. 테세우스에게도 이것은 영웅 개인의 결투가 아니라 자신의 도시를 지켜야 하는 전쟁이었고, 그 결과에는 아테나이 전체의 운명이 걸려 있었다.
공포에게 제사를 올린 뒤 군대를 이끄는 테세우스
3.2 프뉙스와 무세이온의 격전
아마조네스는 아테나이의 중심 가까이에서 물러서지 않고 싸웠다. 무세이온과 프뉙스 주변에서는 두 군대의 전사들이 맞붙었고, 다른 방향에서도 아테나이군이 침공군을 공격했다. 클레이데모스의 전승에 따르면 무세이온 방면에서는 아마조네스가 아테나이군을 에우메니데스의 신역까지 밀어냈지만, 팔라디온과 아르데토스, 뤼케이온 방면에서는 오히려 아마조네스의 오른쪽 날개가 자신들의 진영까지 후퇴했다.
전투의 양상은 오랫동안 엇갈렸다. 한쪽에서 아테나이군이 밀리면 다른 쪽에서는 아마조네스가 후퇴했다. 플루타르코스가 인용한 기록에는 전사자들의 무덤이 피레아스 문으로 이어지는 길 양쪽에 있었다는 설명도 남아 있다. 후대 아테나이 사람들이 여러 장소를 이 전쟁의 흔적으로 기억했다는 점에서, 싸움은 단순한 성 밖의 충돌로 전해지지 않았다.
결국 아마조네스는 아테나이를 장악하지 못했다. 아테나이군은 여러 방향에서 공격을 계속했고 침공군의 진격도 멈추었다. 그러나 이 첫 격전으로 전쟁 전체가 곧바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아마조네스는 아테나이 가까이에서 아테나이군과 맞섰고, 전쟁이 어떻게 끝났는지는 전승에 따라 다르게 전해진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테세우스가 침공군을 물리쳐 아티카 밖으로 몰아냈다고 하며, 다른 이야기에서는 얼마 뒤 양측이 화친했다고 한다.
프뉙스와 무세이온에서 맞붙는 두 군대의 격전
3.3 안티오페의 마지막
전쟁의 한가운데에는 안티오페의 운명도 놓여 있었다. 디오도로스는 그녀가 테세우스와 함께 아마조네스에 맞서 싸웠다고 전한다. 이미 테세우스와의 사이에서 히폴뤼토스를 낳은 안티오페는 아테나이를 공격해 온 동족의 편으로 돌아가지 않고 테세우스 곁에서 싸웠으며, 격렬한 전투가 이어지는 가운데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그녀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전승마다 다르게 전해진다. 파우사니아스가 기록한 아테나이의 전승에서는 몰파디아라는 아마조네스가 안티오페를 공격해 죽였고, 테세우스가 곧 몰파디아를 죽였다고 한다. 플루타르코스 역시 테세우스 편에서 싸우던 아마조네스 여인이 몰파디아의 공격을 받아 죽었다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아테나이에는 안티오페와 몰파디아의 무덤에 관한 전승도 남아 있었다.
그러나 다른 이야기는 안티오페의 죽음을 훗날 테세우스와 파이드라의 혼인과 연결하기도 하며, 그녀를 히폴뤼테라고 부르는 전승도 있다. 따라서 한 가지 죽음의 장면을 모든 전승에 공통된 사실로 볼 수는 없다. 여기에서는 아테나이 침공과 직접 이어지는 전승에 따라 안티오페가 테세우스 편에서 싸우다 전사한 것으로 다룬다. 아마조네스 원정의 원인이 된 여인은 이렇게 자신을 둘러싸고 벌어진 전쟁 속에서 마지막을 맞았다.
테세우스 편에서 싸우다 쓰러지는 안티오페
3.4 전쟁의 끝과 펜테실레이아
오랜 싸움 끝에 아마조네스는 아테나이를 차지하지 못했다. 디오도로스는 테세우스가 침공군을 물리치고 살아남은 아마조네스를 아티카 밖으로 몰아냈다고 전한다. 반면 플루타르코스가 클레이데모스의 기록을 인용해 소개한 전승에서는 전투가 시작된 지 세 달 뒤 평화 협정이 맺어졌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서는 테세우스와 함께 있던 아마조네스 여인을 히폴뤼테라고 부르며, 그녀의 중재로 양측이 화해했다고 전한다.
아테나이에는 이 전쟁을 기억하는 장소와 그림이 오랫동안 남았다. 아마조네이온과 전사자들의 무덤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졌고, 파우사니아스는 테세우스의 신역과 채색 주랑 등에서 아테나이인들과 아마조네스가 싸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기록했다. 아마조네스의 침공과 테세우스의 방어전은 이렇게 아테나이에서 오래 기억되는 전쟁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아마조네스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파우사니아스도 아테나이의 채색 주랑에 그려진 아마조노마키아를 설명하면서, 헤라클레스에게 테미스퀴라가 공격받고 아테나이를 침공한 군대가 패한 뒤에도 아마조네스가 훗날 트로이에 나타났다고 전한다. 트로이 전쟁에서 헥토르가 죽은 뒤에는 아레스의 딸로 전해지는 여왕 펜테실레이아가 전사들을 이끌고 트로이를 돕기 위해 왔다. 그녀는 여러 그리스 전사와 맞서 싸우다가 마침내 아킬레우스에게 죽었다. 헤라클레스의 원정에서 시작된 그리스 영웅들과 아마조네스의 충돌은 아테나이의 아마조노마키아를 거쳐 펜테실레이아의 트로이 전쟁으로 이어졌다.
패퇴하는 아마조네스와 아테나이를 지키는 테세우스 |